출판

「함세웅의 붓으로 쓰는 역사 기도」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23-01-10 수정일 2023-01-10 발행일 2023-01-15 제 332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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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지음/480쪽/3만5000원/라의눈
영성과 정의, 힘찬 붓으로 역사를 쓰다
한국 근현대사 52가지 장면
기도로 시대 정신 되살리고
붓글씨와 관련 사진 곁들여
글이 울부짖는다. 거칠고 강렬하면서도 차분하게 정제된 필체로 시대의 정신을 녹여냈다. 그 생생함에 진한 묵향마저 느껴지는 듯하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 치열하게 역사의 현장을 살아온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의 붓글씨와 기억이, 그리고 기도가 책에 담겼다.

책은 함 신부가 바라본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52가지 장면을 그리고 있다. 여운형 선생의 ‘조선건국위원회’부터 맥아더 포고령, 4·3 제주항쟁, 사사오입 개헌, 유신헌법 철폐, 5·18 민주항쟁, 6월 항쟁 등에 얽힌 역사의 구호들이 함 신부의 붓 끝에서 살아 숨 쉬듯 다가온다. 그 시대를 함축하는 함 신부의 붓글씨와 함께 함 신부의 글과 관련 사진도 실렸다.

특히 함 신부가 그 시대의 한복판을 걸어왔기에 생동감을 더한다. 함 신부는 어린 시절 해방을 맞았고, 초등학교 시절엔 6·25전쟁을, 신학생 시절에는 4·19혁명을, 유학시절 5·16군사반란을 경험했다. 사제품을 받은 이후로는 유신체제와 군사정권을 겪으며 정의구현사제단을 발족시켜 불의 한가운데서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러면서 수없이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고 2년 넘는 감옥생활도 치러야 했다. 그래서 책에는 역사책에는 없는, 함 신부만이 알고 있던 이야기, 3·1민주구국선언, 명동성당 5박6일 농성, 정의구현전국사제단 탄생 등에 얽힌 비화들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책은 단순히 역사의 기록이 아니다. 함 신부는 ‘역사 기도’라고 말한다. 성경 시편에는 찬미, 탄원, 감사, 지혜, 전례 기도 등과 함께 역사 기도도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을 향하며 살아온 역사를 기억하고, 하느님 자녀로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온 기도다. 함 신부는 하느님 안에서 역사를 회상한다는 마음으로 역사 기도를 써내려간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안에서 헌신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과거가 된 역사를 지금에 되살려 시대의 정신을 벼리기 위한 결심에서다.

함 신부는 책 서두에서 “우리 민족이 걸어온 지난한 길을 한 글자 한 글자 옮기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기도한다”며 “붓을 잡기 전에 늘 기도하지만, 이제는 붓글씨가 곧 기도이며 나아가 미래를 향한 길잡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