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18)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종으로 달라진 계산법/ 로버트 미켄스

입력일 2023-01-17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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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직 수행 못 하게 될 경우
사임하겠다던 프란치스코 교황
은퇴한 전임교황 선종하면서
향후 어떤 일 생길지 귀추 주목

지난해 12월 31일은 그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일 만이 아니다. 이날은 지난 10년 동안 존재해 온 교황청과 전 세계 가톨릭교회 두 세력의 취약했던 휴전의 종식을 의미한다. 바로 베네딕토 16세 교황 지지자들과 프란치스코 교황 지지자들 사이의 휴전 말이다. 하지만 익명성 안에 숨었던 이들이 서슴지 않고 상대방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좀 이르다. 또 어느 편이 먼저 교회 내 데탕트(detente)를 깰지도 확실치 않다.

지난 12월 2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매우 위중하다고 발표해 교황청 직원들을 놀라게 한 뒤, 일련의 사건들이 순서대로 벌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3일 뒤 아침 교황청 공보실이 전임교황의 선종을 발표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선종 며칠 후인 1월 5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장례미사를 생전의 유지에 따라 ‘검소하고 진지하며 장엄하게’ 거행했다. 장례미사 전 2일부터 4일까지 성 베드로 대성당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시신을 안치하고 조문을 받았다. 이를 통해 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 자신을 포함해 국무원 관리 등 프란치스코 교황의 수행단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개인비서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를 포함한 전임교황 주변의 인물들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 일이 틀어진 것처럼 보인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종 몇 시간 뒤, 사전에 녹화된 겐스바인 대주교의 인터뷰가 갑자기 소셜미디어와 주류 언론에 공개됐다. 여기에는 장례미사 바로 다음 날 출간된 겐스바인 대주교의 책에 담긴 내용도 포함됐다. 겐스바인 대주교의 발언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공격으로 보였다. 그의 발언 중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 몇몇 결정들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응은 약간 어색했고 냉정했으며 거리를 두는 느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장례미사 전까지 정해져 있던 일정을 계속해서 수행했다. 그리고 4번에 걸친 연설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대해 짧게 언급하는 데 그쳤다. 과연 프란치스코 교황이 겐스바인 대주교의 행동에 대해 앙갚음을 한 것일까?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도 장례와 관련한 프란치스코 교황 진영의 결정이 겐스바인 대주교를 부추겼을 수도 있다.

시작이 어찌됐든, 누가 먼저 경고사격을 했든, 두 진영의 취약했던 평화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 상황은 86세의 고령에 건강 문제를 안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과거보다 더 큰 반대에 부딪혀 교황직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임교황의 선종으로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교회를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양 진영의 급진주의자들을 중화시킬 수 있는 요소였다. 하지만 이 요소가 사라져버렸다.

교황청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시절부터 일했던 인물이 여전히 많다. 이들 중 몇몇은 프란치스코 교황 아래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의 지위는 여전히 공고하다. 그 중, 폴란드 출신의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1990년대 교황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그를 교황자선소장(현 교황청 애덕봉사부 장관)에 임명하고 대주교로 서품했으며, 2018년에는 추기경에 서임했다. 2012년부터 경신성사성(현 경신성사부)에서 일했으며 2021년 장관에 임명된 아서 로시 추기경도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베네딕토 16세 교황 시절 인물들이 교황청 요직에 있다. 주교부 장관 마르크 우엘레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청 내사원장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 수도회부 장관 주앙 브라스 지 아비스 추기경, 신앙교리부 장관 루이스 라다리아 추기경,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 쿠르트 코흐 추기경, 복음화부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 등이 대표적이다. 몇몇 사람들은 왜 아직도 이들이 이렇게 오랫동안 교황청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의아해하지만, 이들은 휴전의 일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더 이상 교황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 사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은퇴한 전임교황이 살아있는 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절대로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선종으로 계산법이 바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확신은 금물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장례식과 관련된 일, 그리고 교회 내 분열을 감안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죽을 때까지 교황직을 수행할 수도 있다. 온 교회가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이를 궁금해하고 있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