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봉사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 정희성 베드로 신부

정희성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입력일 2023-01-17 수정일 2023-01-17 발행일 2023-01-22 제 3328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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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본당에 들어가든지 ‘본당 조직표’ 혹은 ‘본당 봉사자’ 조직도를 보게 됩니다. 본당이 공동체로서의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리들과 그 자리에서 봉사 직무를 맡고 있는 이들을 표시한 것입니다.

표를 보면, 수많은 역할과 이름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본당이라는 공동체는 수많은 봉사자의 열정과 봉사로 운영되며, 그들의 헌신이 있기에 본당에 오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 있어 공동체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이들인데 본당에서 지내다 보면 그분들의 열정과 헌신의 가치를 때로 놓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처럼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분들을 본당신부라는 ‘장’의 자리에서 쉽게 생각하고 기능적으로 바라볼 때 하게 되는 실수입니다. 마치 고용인과 피고용인 관계처럼 그분들을 대하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좋지 않은 실수를 하는 것이지요.

본당 신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일입니다. 미사 후 봉사를 열심히 하시던 한 자매님께서 오셨습니다. 개인 사정으로 맡은 봉사를 더 이상 못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간단하게 “네, 알겠습니다. 사정이 있으시니 할 수 없죠.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하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제관으로 올라왔는데, 무언가 놓친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아 찜찜한 상태로 있던 중 그날 저녁 다른 봉사자분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자매님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자신도 그분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분이 서운함을 토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열정을 가지고 기쁘게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공동체를 위해 내어주었다고 생각한 것이 단 몇 마디 말로 정리된 느낌이어서 서운했다는 것입니다.

그제야 제가 놓친 것이 무엇인지 보였습니다. 공동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그분 노력의 가치를 너무 쉽게 보았던 것입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단 몇 마디 말로 오랜 시간 공동체를 위해 내어준 모든 것을 정리해 버린 것입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서운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날 그분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만나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은 제게 봉사하면서 체험한 좋았던 것들과 서운했던 것들,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더 하지 못하게 된 아쉬운 마음도 함께 나눠 주셨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그분께서 오랜 시간 속에서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사건은 제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시는 분들 노력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교훈을 주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기회에, 저와 지내며 저의 모든 부족함을 받아주시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해주신 모든 봉사자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정희성 베드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