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연중 제5주일 - 사랑의 연료, 함께 더불어 지내고…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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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이사 58,7-10 / 제2독서 1코린 2,1-5 / 복음  마태 5,13-16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 하신 예수님
부족함을 한없이 품어주시는 사랑
주님 은혜 속에 함께하는 마음으로
반짝이는 진리의 빛 가득한 삶 살길

프라 안젤리코 ‘산상설교’.

1994년 2월 5일, 서품을 받았습니다. 시간의 리듬은 성실하게 흘러, 서른 해를 쌓아 놓았네요.

또 다른 사랑의 삶으로 뛰어들었던 그 소스라치게 어여쁜 시간을 기억했고 찬란했던 그날의 영롱한 꿈과 멀어졌던 날들을 아쉽게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이 밥벌이가 되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무수한 어긋남을 바로잡았던 동기 사제들과 포콜라레 신부님들의 사랑에 감사드렸습니다. 그들의 사랑으로 저는 사제의 삶을 ‘제대로 살겠다’라는 의지를 거듭거듭 다질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서로 함께하며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을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시간이야말로 서로의 축복이고 행운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오늘 복음 말씀이 진심으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에 의구심마저 솟구쳤습니다. “정말요?” “진짜요?”라고 주님께 되물을 뻔했습니다. “이렇게 모자란데요?”, “이렇게 탄탄하지 못한데요?”라면서 투정을 부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선언에 어떤 토를 달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점령했습니다. 믿음은 무수한 세상의 제한과 구속 안에서도 무한한 자유를 선물해주는 것임을,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는 삶일지라도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는 진리를 다시 새기게 된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더 열심히 자신을 닦고 연마해서 빛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추궁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진짜 고마웠습니다. 정말로 순수한 진짜 소금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더 노력하라거나 현재의 상태는 100%의 순도에 미치지 못한다고 경고하지도 않으시다니,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은혜로 이미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었으며 세상을 지탱시키는 소금의 삶을 살게 되었음을 명확히 밝혀주시기에 그랬습니다.

주님께서 빛이라 하셨으니, 우리는 이미 빛입니다. 주님께서 소금이라고 이르셨으니 의심할 이유가 도무지 없습니다. 못내 미심쩍어하며 머뭇댈 사안이 전혀 아닙니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청하는 기도 “세상의 빛이 되게 해주십시오”라거나 세상의 소금이 되어 부패를 막는 삶을 살게 해달라는 기도는 옳지 않은 것이라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참이며 진리이니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자람을 우리 자신보다 더 분명히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당신의 잣대를 우리의 자격이나 능력, 혹은 성품에 두지 않으십니다. 개개인의 허물에 전혀 상관치 않으시고 오직 가없는 은혜로써 소금이 되게 하셨고 빛이 되어 살게 하셨습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우리 모두가 온전히 느끼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만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모든 영화를 버리고 온통 당신을 비우며 봉헌하시는 일에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빛이 아닙니다”라며 뒷걸음치며 손사래를 친다면, “소금의 순도를 조금 더 높여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있다면 이야말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 행태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빛이라 하셨으니 빛이 되어 살아가는 것, 반짝반짝 영롱한 빛을 발하기 위해서만 힘쓰는 게 마땅합니다. 우리가 소금임을 깨달았으니 소금처럼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녹아들어 지내야 옳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사랑에 깊이 반응하는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믿음은 무한한 하느님을 이 작은 영혼에 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곧잘 주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못하는 게 사실입니다. 방향을 잃고 갈라지고 흐릿해지기 일쑤인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그럴듯한 겉모습으로 스스로를 속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주신 축복의 완전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곤고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사실 우리는 모두가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1코린 15,9) 그런 우리들이 오직 주님 은혜로 소금이며 빛으로 변화됐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실하심으로 오늘 우리를 더욱 “굳세게 하시고”,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해주십니다. 하느님을 마음에 담아서 말하고 표현하며 실천할 능력을 선물해주십니다. 주님의 뜻에 항상 ‘예’라고 응답해드리지 못하는 우리 안에 튼튼한 당신의 뜻을 채워주십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뜻을 위한 소금과 빛의 역할에 모자람이 없도록 응원해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주님의 말씀 속에서 한없이 품어주시는 사랑을 느끼면 됩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시는 예수님의 마음에 감격할 수가 있습니다. 끝없이 용납해 주시는 너른 사랑에 기대어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낼 수가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똑같이 소금과 빛이 되는 은혜인임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뜻을 ‘생략’하거나 묵살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하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의 빛을 함지 속에 감추어 두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랑의 연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한마음이 될 때, 세상을 더욱 환하게 밝히는 큰불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그분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반짝이는 빛이며 순도 100%의 소금입니다.

이 진리에 민감하여 우리 모두의 삶이 진리의 빛으로 초롱초롱 빛나고 생기발랄하시길, 소원합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