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장에서] ‘자초한 일’이라고요? / 이승훈 기자

이승훈 요셉 기자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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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가난한 이들의 곁에 서는 현장을 다니다보면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듣게 된다. 그중 참 가슴을 에는 말이 ‘자초한 일’이다. 자기 선택으로 주어진 결과에 왜 관여하느냐는 것이다.

‘자초한 일’이란 말은 가난한 이를 가해자로 만든다. 1월 18일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를 만난 한 10·29 참사 유가족도 “우리 아이가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냈다. 무료진료소를 이용하는 미등록외국인들도 “불법체류를 한 자기 탓”이라는 손가락질을 견뎌야 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자초한 일’이란 논리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내 성공이 순전히 내 덕이라면 그들의 실패도 순전히 그들 탓”이라는 논리는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논리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내 선택의 결과가 순전히 내 덕이라면, 거기엔 ‘하느님’ 덕도 없지 않을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31차 세계 병자의 날 담화에서 “불평등 수위의 상승과 소수 이익의 지배가 인간 환경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모든 고통이 ‘문화’의 맥락과 문화적 모순들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피조물은 서로 연결돼 있다. 모두가 연결돼 있다면 ‘자초한 일’이란 손가락질은 우리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강도를 당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그를 돌보는 일이 아닐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6-37)

이승훈 요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