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위선을 넘는 진실한 기도 / 강주석 신부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1-3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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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츨라프 하벨(Václav Havel)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이자 반체제 인사로 ‘벨벳혁명’(Sametová revoluce)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변혁의 시기에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과 체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힘없는 자의 힘’(The Power of the Powerless)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후기 전체주의’(post-totalitarianism) 사회의 모순을 풍자했다. 하벨이 얘기하는 후기 전체주의에서는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선과 개인이 일상에서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완전히 다르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이 위선적이기 쉽다는 것이다.

하벨의 글에 등장하는 식품점 관리인은 양파, 당근 등의 야채를 늘어놓은 가운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포스터를 유리창에 붙여 놓고 있다. 하벨은 묻는다. ‘그 관리인은 왜 그렇게 행동할까? 그가 이 세상에 전하려고 하는 말은 과연 무엇일까? 그 관리인이 진정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열정에 북받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을 알리려고 하는 것인가?’

하벨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기 전체주의 사회에서 절대 대다수의 상점 관리인들은 그들이 창문에 부착한 표어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부에서 배급하는 양파, 당근과 함께 전달된 포스터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그렇게 해 왔던 대로 또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관리인은 그 표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혹시 충성심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기에, 하다못해 그 포스터가 아니면 딱히 창문을 장식할 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라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위선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가 진실하기를 바라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화해가 너무 어려운 남북관계이지만, 한국천주교회가 오랜 세월 바치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에도 우리의 마음이 잘 담아지기를 소망한다.

“사랑으로 하나 되신 주님처럼 저희가 서로 사랑하여 하나 되게 하소서. 평화를 바라시는 주님,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한 핏줄 한 겨레이면서도 서로 헐뜯고 싸웠던 저희 잘못을 깨우쳐 주소서. 분단의 깊은 상처를 낫게 하시고 서로 용서하는 화해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아멘.”

강주석 베드로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