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한마음한몸 자살예방센터 공동기획 ‘우리는 모두 하나’] (9) 누구도 원하지 않는 존재, 누구도 애석해하지 않는 죽음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
입력일 2023-02-27 수정일 2023-03-02 발행일 2023-03-05 제 3333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빈곤·질병·고독에 시달리는 노인들
몇 년 전 위기상담 전화를 받던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한 70대 어르신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시고, 제가 살아야 하는지 죽어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그 순간 뭔가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어 최대한 침착하게 “어르신, 무슨 일이 있으신지, 찬찬히 한번 말씀해주세요. 무슨 이야기든 제가 잘 들어볼게요”하고 응대했습니다.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차근차근 자신의 상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어르신은 혼자 사시면서 기초생활수급비로 매월 40만 원가량을 받으셨는데, 집세 20만 원과 각종 공과금을 내고 나머지 돈으로 생필품, 라면 등을 사서 생활하시는데, 하루 한 끼 이상 먹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치아도 온전치 않아 음식도 제대로 먹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일주일 내내 전화 한 통 오는 데가 없고, 한 달 가까이 다른 사람과 교류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과는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통화를 나눴고 어르신께 필요한 지역 내 복지자원을 연결해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번은 80대 어르신이 병원 앞에서 자살 시도를 하신다는 연락을 받고 긴급출동 나간 적이 있습니다. 이른 봄이라 제법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얇은 옷차림의 어르신께서 진한 갈색 액체가 든 약수통을 들고, “나는 이거 다 마시고 죽을 테니까, 병원에서 학생들 실험용으로 써 줘!”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그 갈색 액체는 일종의 사약(賜藥)으로 비상이 혼합된 부자탕(附子湯)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셨나, “우선 날씨가 추우니까 차 안으로 들어오셔서, 어르신 하시고 싶은 말씀 다 해주세요. 무슨 일이 있으신지 다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재차 부모님 대하는 듯한 목소리와 태도로 다가가자 어르신은 마음이 조금 풀리셨는지, 차 안으로 들어오셨고 왜 이곳까지 이렇게 와서 죽으려고 하셨는지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디데이로 잡고 오랫동안 결심하셨던 터라, 자살 실행을 포기하시기까지 근 6시간 이상의 설득과정이 있었습니다. 어르신 역시 오랫동안 빈곤과 병마에 시달리며 살아오셨으나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셨습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시신이 방치될 게 뻔한 상황이어서 이렇게 병원 앞에서 죽고 시신을 기증해야 그나마 마음 편히 갈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멀리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까지 찾아온 거라 하셨습니다.

제가 만난 죽음 앞에 선 어르신들은 대부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끈이 없는 분들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지나 관계의 질을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자 생활하며 고립되어 있었고, 현재의 자살 예방 정책(정신의학 패러다임)이 도움을 제공할 수도, 도움이 될 수도 없는 차원에 계셨습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혼자 생활하며 빈곤과 질병, 고독 속에 신음하는 노인이 진정으로 존재하기를 원하는지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러한 노인이 계속 생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니 그러한 노인들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석해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지금과 같이 노인자살률이 OECD 평균보다 3배 가까이 높은 그런 나라는 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황순찬 베드로 교수,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