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민족·화해·일치] 통일주방 / 이향규

이향규 테오도라(런던한겨레학교 교장)
입력일 2023-02-27 수정일 2023-02-28 발행일 2023-03-05 제 3333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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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주방’(Conflict Kitchen)은 미국 펜실베니아에 있는 테이크 아웃 식당이었다. 심상치 않은 이름의 이 식당에서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쿠바, 팔레스타인, 북한 등 미국과 분쟁 중인 국가의 음식을 팔았다. 음식 포장지에는 그 나라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글을 인쇄해서 사람들이 읽어 볼 수 있도록 했다. 악마화돼 적대적으로 소개됐던 국가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영국 뉴몰든에 ‘통일주방’(Unification Kitchen)이 생겼다. 몇개 민간 단체가 뜻을 모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원과 재영탈북민협회가 주축이 됐고, 런던한겨레학교도 함께했다. 갈등주방과 비슷하다. 음식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평화를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통일주방의 목표는 남북한 사람이 ‘함께’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평등하게 참여해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했다. 손님은 주로 영국사람들이었다. 메뉴는 평양냉면, 두부밥 같은 북한 음식도 있고, 김밥, 떡볶이 같은 남한 음식도 있었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이 구별이 별로 의미가 없다. 남북 사람은 다 코리안이고, 남북 음식은 다 코리안 푸드이다.

2022년 6월에 영국여왕 즉위 70주년을 축하하는 지역 페스티벌에 우리는 부스를 차리고 음식을 팔았다. 나는 이런 글을 써서 부스에 붙였다. “1945년 분단된 후 지금까지, 남북한은 헤어짐과 갈등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뉴몰든에서는 남북한 사람들이 친구로,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당신을 위해 ‘같이’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와서 드세요.” 우리는 이틀 동안 3000파운드(약 500만 원)어치 음식을 팔았다.

이렇게만 보면 갈등주방도 통일주방도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삶에는 난관이 많다. 갈등주방은 2017년에 폐업했다. 실패한 프로젝트라고 보기는 어렵다. 극복해야 할 어려움을 확인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2023년에 통일주방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것인가도 아직은 숙제다. ‘함께’ 일을 도모할 때는 꼼꼼하게 합의해 나가야 할 것이 많다. 갈등을 조정하는 절차도 갖춰야 하고, 합의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배운다. 화합과 평화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중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모든 시도는 가치롭다. 함께 만들고 나누는 음식, 해볼 만한 일이다.

이향규 테오도라(런던한겨레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