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 - 세상을 읽는 신학] (56)교회 안의 교육과 문화 1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
입력일 2023-03-28 수정일 2023-03-28 발행일 2023-04-02 제 333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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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유 속에서 마음으로 응답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과정 필요
오늘날 교회 변화와 쇄신 위해선
교육 그 자체의 변혁 필요한 때
교회 쇄신은 성직자 쇄신이 먼저
사제 양성에도 ‘시노달리타스’ 절실

지난해 12월 수원교구가 사제들의 인성·영성·지성의 성숙과 사목적 쇄신을 위해 신설한 중견사제연수원에서 교구장 이용훈 주교가 개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사제 양성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정직한 진단과 새로운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가톨릭신문사 자료사진

■ 쇄신은 어떻게?

쇄신은 제도와 구조의 개혁과 사람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제도와 구조의 변화는 정치적 노력과 운동을 통해 가능하다. 사람의 변화는 교육과 문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정치와 교육·문화의 영역은 때때로 서로 겹치면서 상호보완적이다. 제도와 구조의 개혁이 단기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을 포함한다면, 사람의 변화는 교육과 문화를 통한 여정이기에 장기적인 성격을 지닌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 역시 제도와 구조의 변혁을 통해 촉진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교회 구성원들의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제도와 구조의 변화는, 사람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늘 일시적이고 미봉적일 위험이 있다. 사람이 제도와 구조를 만들지만, 제도와 구조가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제도와 구조의 개혁과 사람의 변화는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변화와 쇄신이 어렵다. 정치적 운동과 교육·문화적 노력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 변화를 위한 교육과 문화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이야기할 때 제도와 구조에 대해 말하기 쉽다. 성직주의와 교계제도에서 발생하는 위계적 시스템과 문화가 교회 변화와 쇄신의 걸림돌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사실, 하늘 아래 모든 제도와 구조는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 한다. 변치 않는 분은 주님뿐이다. 하지만 제도와 구조의 개혁을 말하기 전에 먼저 교회의 제도와 구조가 갖는 발생학적 원인과 목적론적 지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절실히 요청된다. 진정한 의미의 교계제도는 위계와 서열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교회 복음화 사명 수행을 위한 일종의 목적지향적 제도다. 교회의 모든 제도와 구조는 교회의 사명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의 변화가 제도와 구조의 변화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진정한 교회의 변화와 쇄신은 교회 구성원들의 변화와 쇄신에 달려있다. 성직자의 쇄신과 신자의 변화가 더 절실히 요청된다는 의미다.

사람의 변화는 교육과 문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은 교육 환경과 문화적 배경 속에서 신념과 태도와 행동 방식을 습득한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사건들과 실존적 경험들이 그 사람의 신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전체적 맥락에서 보면 인간은 교육과 문화를 통해 형성된다.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배움이 이루어지는 장이 교육과 문화의 장이다. 제도와 구조의 문제 역시 문화적 차원에 포함된다. 어떤 교육을 받았고 받고 있는지, 어떤 문화 속에 살았고 살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거듭 말하지만, 교육 환경과 문화적 맥락을 뛰어넘어 개인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으로 자신을 형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교육과 문화 속에서 자신을 형성해간다.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는 교육과 문화의 자리를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2021년 발표된 유네스코 국제미래교육위원회의 보고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매우 시사적이다. 서론에서 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교육, 즉 우리가 평생 동안 가르침과 배움을 수행하는 방식은 오랫동안 인간사회 전환의 기반이 되어왔다. 교육은 우리를 세계와, 또한 서로와 연결시키고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며 대화와 행동을 위한 우리의 역량을 높여준다. 하지만 평화롭고,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 그 자체도 변혁이 필요하다.” 어쩌면 변화와 쇄신을 갈망하는 오늘의 교회가 깊이 새겨야 하는 통찰과 화두인지도 모르겠다.

■ 사제 양성 교육과 문화

가끔 사제들끼리 한탄하면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점점 훌륭한 신부를 찾기가 어렵다고, 사제 생활의 연륜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좋은 사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신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이 가장 순수했다고 말이다. 비판적으로 보면, 이러한 현실은 신학교 교육, 지속 양성 교육, 성직자 문화가 그리 건강하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의 증거일 수도 있다.

교육은 전인적 방식으로, 자율적 방식으로, 상호관계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머리와 마음과 몸 모두를 훈련해야 한다. 자율적이고 비판적 사유 속에서 마음으로 응답하고 몸으로 실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규범과 규율은 일시적으로 몸을 강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비판적 성찰을 통한 마음의 수용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몸은 언제든 새로운 환경에서 배반할 수 있다. 목적과 지향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면서, 마음과 영성의 수련 속에서 내면적 견고함을 키운다고 해도, 편안함과 욕망을 추구하는 몸의 성향을 극복하고 단련하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비판적 성찰과 내면의 훈련이 없는, 단순히 규범과 규율을 통한 양성은 일시적 순응과 은폐를 낳을 뿐이다.

비판적 성찰과 새로운 상상력을 키우지 못하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다. 비판적 성찰이란 단순히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고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지향을 기억하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유 방식이다. 전통적인 신학교 교육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좋은 교육은 정신의 세 가지 능력인 이성, 기억 그리고 상상력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또한 다른 이들과 더불어 비판적,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것이다.(토마스 그룸 「신앙은 지속될 수 있을까」) “배움이란 익숙한 세계관을 뒤흔드는 내면의 불편함과 좋은 질문을 수반하는 것이다. 진정한 배움의 전제는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다.”(심성보 「프레이리에게 변혁의 길을 묻다」)

교육은 상호관계적이다. 가르침과 배움은 상호순환적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없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의 상호 교류 속에서 발생한다. 교육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위계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신학생과 성직자들은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으로 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경향이 있다. 위계적 문화가 교육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신학교 선생들끼리 하는 농담이 있다. 학기 중에 열심히 훈련시켜 놓지만, 방학만 지나고 오면 모든 게 되풀이된다고 말이다. 신학생은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본당과 가정에서 교육되고 형성된다. 특히 본당 사제들의 문화 속에서 깊은 영향을 받는다. 젊은 사제들 역시 그가 속한 사제단의 문화 속에서 물들어 간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오늘날 성직자 문화가 공부와 성찰과 수행의 문화라고 말하기 어렵다. 또한 성직자 문화가 자율적이고 창의적이며 인격적이고 상호관계적 문화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교회의 변화와 쇄신은 무엇보다 성직자의 변화와 쇄신을 요청한다. 사제 양성 교육과 문화에 대한 정직한 진단과 새로운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교육과 문화의 장에서도 실현되어야 한다.

정희완 요한 사도 신부(가톨릭문화와신학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