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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신약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13) 성내지 말라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입력일 2023-03-28 수정일 2023-03-28 발행일 2023-04-02 제 333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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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도 중요한 감정… 억누르기만 해선 안 됩니다
성경, 글자만 읽어선 안 돼
2000여 년 전 배경 이해하고
주님 말씀의 행간 읽어내야

감정을 표현해야 심리적 건강을 얻을 수 있다.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기만 해서는, 자아를 제대로 알고 꽃 피우며 살아가기 어렵다.

■ 형제에게 ‘바보’라 하면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 하면 지옥에 넘겨질 것이라는 말씀을 읽고 너무 엄격한 것 같아서 부담스럽고 무섭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성경을 보는 분들 중에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2000년 전의 배경에 대한 지식 없이 지금의 지식으로 성경을 이해하려는 것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인데도 여전히 일부 종교인들에 의해서 권장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 복음을 본다면 ‘멍청이’라고 하기만 해도 지옥에 간다는 식으로 받아들이게 돼서 감정표현이 억압돼 마음이 신경증 상태로 전락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당대 문맹자들이 많아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하신 말씀이 많기에 행간을 읽는 노력이 요청됩니다.

복음에서 주님은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질 것”이란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열등감이란 자신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데서 오는 것입니다. 자기 이해나 자기존중이 없을 때 생기는 것인데 이런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할 줄 모르고 무시하거나 경멸함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나 자기 안의 도덕적 자아가 끊임없이 자신을 무시하기에 평안함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안에 법정이 생겨서 그런 것입니다.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 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란 말씀.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산다면 아무리 화가 나도 욕 한마디 못하고 자기 감정을 억압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감정을 표현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감정은 마음의 근육이기에 사용해야 하고 감정표현을 통해 심리적 건강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인데 죽어서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 억압한다면 마음이 지옥 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면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당연히 같이 욕하고 돌을 던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는 게 지옥이 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하신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가지고 있으면 일상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가도 미운 사람이 생각나면 입맛 살맛 다 없어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음 안에서 놓아주라고, 용서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경의 이 부분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감정이 필요한데 그중에서 분노 감정도 아주 중요합니다. 흔히 종교인들이 분노를 없애라고 하지만 우리 마음 안에서 분노가 다 사라지면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증이 오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마음의 근육인데 그 근육이 약해지면 생기는 부작용이 마음 안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지 않는 것과 분노를 없애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 마태 5, 21-26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홍성남 마태오 신부,(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