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주께서 내리신 은총과 축복의 가족 신앙공동체

25년 전인 1999년, 선친 바오로 아버지께서는 우리 가족에게 천주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선종하셨습니다. 9남매의 장남으로 어린 시절부터 가장의 역할을 하시면서 홀로되신 모친과 동생들을 건사하며 힘들게 사신 까닭인지 육체의 병적 증상이 나타난 후 급성 혈액암으로 70세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임종 전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서도 필사적인 힘으로 세례를 받고 떠나신 것은 저에게 깊은 삶의 감동을 남겨주셨습니다. 지금의 거주지로 옮긴 후 불과 10개월 만의 일이었습니다. 편찮으신 아버지를 위해 본당의 해당 구역 신자들이 지극 정성으로 방문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아버지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자녀로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본당 연령회의 친절과 봉사는 천주교에 대한 신뢰를 다지는 기틀이 되었고 이내 저희 부부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입교하여 10개월 후에 필자는 대건 안드레아로, 배우자는 데레사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960년생 동갑내기인 저희 부부는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라 여기며 의욕적으로 신앙생활에 임했고 본당에서의 각종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을 했습니다.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마리애는 오랜 기간에 걸쳐 신앙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꾸르실료 과정 이수를 비롯한 복사단, 부부 독서모임, 그리고 성소후원회 및 기타 단체에도 가입해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인지 2년 터울인 86년생 딸 율리아와 88년생 아들 바오로도 고등학교 시절에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제는 결혼을 해서 낳은 2020년생 동갑내기 외손자와 친손녀가 3살 되던 해에 같은 날 스테파노와 스텔라라는 이름으로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보다 앞서 며느리는 비비안나로 세례를 받아 아들 가족은 성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나의 직계 가족 중에서 사위만 비신자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일이면 가족들과 함께 미사에 참례할 정도로 신앙에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우리 부부가 열심히 해온 신앙생활은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전해 가까운 인척들, 본가의 누님(모니카)과 여동생(체칠리아), 삼촌(바오로), 그리고 처가의 가족들도 차례차례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는 친가든 처가든 가족이 모이면 신앙공동체가 되어 성호를 긋고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특히 최근에 타계하신 장인(요셉)과 장모님(마리아)의 세례를 위해 저희 부부가 공을 들여 노력한 것은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모두가 하느님의 무한하고 크신 축복과 은총의 결과이며, 또한 성령의 보호하심에 따른 신앙의 신비라 믿습니다. 저희 부부는 늘 기뻐하고 감사하며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 기도는 주님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는 말씀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는 약속에서 시작합니다. 지금은 폭풍 성장 중인 두 손주가 식사 전 기도를 바치기 위해 앙증맞고 예쁘게 두 손을 모아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삶의 커다란 보람과 기쁨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더욱더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되도록 주님께 더욱 의지하며 예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더욱 선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글 _ 전재학(대건 안드레아, 인천교구 부천 중3동본당)

2025-01-05

[독자마당] 보내는 아쉬움과 기다리는 설렘

기다림과 설렘으로 한해를 열었던 첫날 아픔보다는 기쁨을 기쁨보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기를 소원하였는데 가슴이 아파서 할 수만 있다면 건너뛰고 싶었던 날들 가슴이 벅차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었던 날들 소중한 인연들과 마음 나누며 주님의 집에서 산다면서도 참 많은 우여곡절 속에 은근슬쩍 담장 넘는 날들이 찰나처럼 느껴지는데 보내는 12월이 아쉬움으로 무겁게 느껴지고 내일은 무지개의 꿈보다 가슴을 채우는 행복한 이야기를 가득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보내는 12월이나 맞이하는 1월이 세월의 흐름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는데 사람들은 시간의 매듭을 지어 세월에 마디를 만들고자 한다. 아마 이것도 하느님이 만드신 자연의 이치인 모양이다. 대나무가 마디를 이루며 성장하고 소나무가 나이테를 이루듯 우리 인간들도 세월이라는 공간에 시간이라는 나이테를 새기며 새로움을 더하며 성장하는 것 같다. 한 노시인이 “꽃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름답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분명 우리는 무지개의 영롱함과 아침이슬 같은 순수함,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물질적 욕망과 자신의 편함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다. 편리함이라는 명목으로 서양의 물질문명을 무조건 받아들인 산물인 셈이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행복하게 사는 비결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주변을 단순화하라’, ‘적당한 운동을 하라’ 등등의 일상적인 것 외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끊임없이 봉사활동을 하고 이웃과 교감을 하며 살아라’는 것으로 이것이 노년까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 종교인이 아니라도 봉사와 이웃과의 화목이 평생 행복의 조건인데 하물며 믿음을 갖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주님의 말씀이 절실한 때인 듯하다. 새해에 뜨는 해는 나의 큰 뜻이고, 새해에 부는 바람은 나의 힘찬 기운임을 간직하면서 묵은 한 해를 보내고 밝고 희망찬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할 우리가 되도록 기도드리고 싶다. 글 _ 강병순 아우구스티노(마산교구 고성본당 상리공소)

2025-01-01

[독자마당] 첫눈에 이은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찬양의 밤

11월 2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세계 청년 대회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환영의 밤이 열렸다. 폭설도 내렸고 며칠째 추운 날씨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핫팩이었다. 평소에 핫팩을 사용하지 않지만 왜 하필 핫팩이 떠오를까? 성모 동산에서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몹시 추울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작 핫팩을 가져가지는 않았다. 오후 5시 시작이라 저녁도 먹지 않고 달려갔다. 배고픔에 식사는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대성당에는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많은 청년들로 가득했다. 처음에 마당에 들어섰을 때 봉사자들이 안내 리플렛을 나눠주며 핫팩도 함께 주었다. 내가 집에서 깜빡한 그것이다. 다행히도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온이 계속 올라가 따뜻해졌다. 옥외 행사는 없었다. 식사는 청년들이 좋아하는 피자, 핫도그, 붕어빵, 녹차 호떡 등을 따뜻한 음료와 함께 나눠주었다. 음식을 뻥튀기에 담아 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환경을 생각한 아이디어 같았다. 개막 공연에는 여러 나라가 참여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필리핀 공동체의 공연이었다. 그들의 노래에는 떨림이 있었다. 대성당에서 떼제기도를 봉헌했고, 찬양하는 사람들이 성당 안을 충만하게 이끌었다. 이어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의 인도 하에 ‘십자가의 길’을 진행하였다. 멋진 분위기의 밤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오랜 시간 청년들은 성당 마당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분위기를 즐겼다. 행사 중에 마주친 WYD t성모 성화의 눈빛에 놀랐다. 엄하고도 아름다운 눈빛이어서 뭔가 마음에서 찔끔하였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첫눈이 내리고 바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공개되며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교회 안에서 함께 눈을 굴리자는 것이다. 함께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면 분명 눈사람이 그대들의 삶을 이끌 것이다.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눈을 굴리듯 그렇게 연륜을 교회에서 쌓아나가면 하느님 안에서 삶의 원동력을 얻게 될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글 _ 김동기 요한 사도(서울대교구 신월동본당)

2024-12-25

[독자마당]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는 엄마

2022년 12월 1일, 사랑하는 엄마께서 99번째 생신날 새벽 3시30분경에 하늘나라를 향해 떠나셨다. 평생을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흐트러진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분, 자신을 위한 삶이라고는 한순간도 없으셨던, 친인척들로부터 천사라 불리셨던 분, 비록 글은 모르셨지만 참으로 지혜로우셨던 성모님을 참 많이도 닮으셨던 나의 엄마는 그렇게 떠나가셨다. 돌아가시기 8개월 전부터 산소호흡기를 하면서 엄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느껴지면서, 너무너무 궁금한 것 하나가 생겼다. ‘사람이 죽으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어찌나 간절히 궁금했는지 저절로 나오는 신음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를 애타게 불렀다. 장례식장에는 엄마가 정말로 안 계셨다. ‘엄마는 지금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계신 것일까? 혼자 외롭고 쓸쓸하고 무섭지는 않으실까?’ 하는 걱정뿐이었다. 발인날이 되었다. 상실감을 넘어 황망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엄마 없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게를 잴 수 없을 만큼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다시는 만날 수도 만져 볼 수도 없고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도 없는 아득한 이별이라는 생각은 너무 슬펐다. 장지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창밖에 내리는 첫눈을 보며 그제야 깨달았다. 엄마가 눈을 좋아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계시지 않은 지금의 엄마한테 열심히 물어보고 있었다. 엄마와 버스를 타고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어서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 엄마와의 여행이 되고 있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바윗덩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 깃털처럼 가볍고 아주 평온한 이 마음은 뭐지?’ 하는 순간, 반짝반짝 해같이 빛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 너~무 이쁘다!” 하고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남편 바오로가 나를 툭 치면서 “무슨 소리야? 엄마가 이쁘다니?” 하는 바람에 엄마는 사라져 버렸다. 순간 아차 싶었다. ‘폰으로 라도 찍어둘걸’ 싶었는데 나중에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는 “엄마가 폰으로 찍을 수 있었으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을 거야. 그건 엄마한테만 보인 것이고, 천국 가신 할머니를 보여 주신 거야” 한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그 뒤로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으셨고 가장 행복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으로 하늘나라에 계신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슬플 수가 없었다. 오히려 기쁨이 넘치고 가슴이 벅차올라 감사할 뿐이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내게 보여 주셨다. 심연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간절함으로 구했던 나의 목마름에 그분께서는 “죽은 후에 가는 곳은 이런 곳이란다” 하시며 은밀히 보여주셨다. 이 세상 그 누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처절하게 무너진 이를 이렇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위로를 넘어 기쁨과 환희가 가득 차도록 바꿔 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에게는 있다! 그분은 바로 나의 하느님, 나와 늘 함께 계시는 나의 주님이시다! 그분은 나에게서 절대 눈을 떼지 않으신다. 그 애틋한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온 세상이 내 품 안에 있는 듯하다. 평생 고생만 하다가 가신 엄마를 품에 안아 주신 그분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인간의 품에 비할 수 없는 한없이 좋은 그분의 품 안에 계시니 이보다 더 안심되는 일이 있을까? 늘 가여웠던 엄마에 대한 가슴 시림이 눈 녹듯 사라졌다. 오히려 큰 위로가 되고 평안함이 되고 감사와 기쁨이 넘쳐 흐르게 한다. 나는 이제 영원한 삶이 있음을 굳게 믿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을 다 마치고 하느님 나라로 가게 되는 날 ‘해 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엄마와 천사들의 마중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글 _ 이길남 파우스티나(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본당)

2024-12-15

[독자마당] 오늘은 세례받는 날

드디어 기다리던 세례식 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성당으로 향했다. 하늘은 어쩜 이리 맑은지. 진짜 맑은 가을 하늘이다. 어제까지 추웠는데 또 나를 위해 이렇게 좋은 날을 주셨나?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무슨 노래를 할까? 그래, 이런 날은 성가를 부르면 좋겠다. 근데 내가 아는 성가는 대영광송 307번 밖에 없잖아. “하늘 높은 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참, 여기는 신부님이 부르셨지.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난 이 부분이 특히 좋은 것 같다. 예비신자 교리 선생님이 성가는 두 배의 기도 효과가 있다고 하셨으니, ‘다른 성가들도 얼른 배워야겠군’이라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혼자 큰 소리로 대영광송을 부르며 성당으로 향했다. 수원교구 모전동성당은 집에서 신호에 걸리지 않으면 차로 5분도 안 걸린다. 가까운데 사는 사람이 꼭 지각한다고 했던가? 날이 날이니만큼 다른 날보다 약간 꾸미느라 조금 늦었다. 주차 봉사를 하고 계신 처음 뵙는 형제님께 오늘 세례받는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후다닥 뛰어가니, 기다리고 있던 선교분과 봉사자분께서 가슴에 생화 코르사주를 달아주셨다. 숨 쉴 때마다 장미향이 바로 코밑에서 계속 올라오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사실 내가 성당에 첫발을 들여놓은 건 좀 오래되었다. 친하게 지내는 가타리나 언니로부터 같이 성경 공부하러 가자는 권유를 받고 성경은 상식적으로도 알면 좋겠다 싶어 ‘여정’ 공부를 시작했던 게 벌써 다섯 학기째가 되었다. 코로나19 때 쉬었던 것까지 합치면 5년 정도 된 것 같다. 그러던 중 예비신자 교리반이 열려 친한 동생 안젤라가 일방적으로 등록을 해놓았다고 통보했다. 원래 나는 성경 공부만 하고 하느님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당에만 오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우리 여정 식구들은 원래 모두 좋은 사람들인 것 같았지만 특히 내가 예비신자라고 미안하리만큼 더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성당만 갔다 오면 뭐라도 좋은 일이 생겼다. 정말 하느님이 나를 부르시는 건가? 생각될 정도로. 가톨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예비신자 교리를 통해 배우는 시간은 정말 새롭고 흥미로웠다. 성호경 긋는 법부터 기도하는 법, 기도의 종류, 한국 천주교 역사 등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가득했다. 10개월간 주일 아침마다 해온 교리 공부를 끝내고 드디어 오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오늘 함께 세례받는 고등학생 지형이가 하얀 코트를 입고 왔는데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나는 까만색으로 온몸을 감싸고 온 게 좀 아쉬웠다. 나도 밝은색 옷을 입고 빛나는 느낌을 내고 싶었지만, 세례식이 끝나고 구역별 연도 대회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도 이미 우리 구역의 한 명이 된 것이다. 세례식이 시작되고 드디어 내 이름이 세례명 ‘에스테르’로 불렸다. 신부님이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해 주실 때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처음으로 ‘예수님의 몸’도 받아 모셨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오늘 하루 넘치게 축하를 받았다. 생각보다 더 복된 날이었다. 대모님이 미사보랑 파우치를 준비해 주셨고 여정 식구들은 성경, 성가책, 기도서, 십자고상 등을 선물해 주셨다. 또한 구역 식구들이 주신 꽃다발과 성모상을 비롯해 신부님이 주신 가톨릭신문 구독권까지 너무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아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오늘 하루 너무너무 행복한 날이었다. 나중에 하느님께 가는 길도 이렇게 행복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리 선생님이 각자 좋아하는 성경 문구를 정한 다음 예쁜 글씨로 써서 코팅해 주셨는데 나의 세례 문구는 ‘네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4)이다.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착한 일을 남들 몰래 할 기회가 있을 때 하느님은 알고 계실 테니 말이다. 나도 하느님께서 좋아하실만한 자녀가 되고, 또 새로 세례받는 후배가 들어올 때 이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많이 축하해 줘야겠다. 드디어 하하하! 나는 이제 당당한 천주교인이 되었다. 글 _ 임은옥 에스테르(수원교구 모전동본당)

2024-12-08

[독자마당] 황새바위 순교성지를 다녀오며

지난 11월 3일 인천교구 풍무동본당 공동체는 충남 공주에 자리한 대전교구 황새바위 순교성지를 찾아 주일미사를 드렸습니다. 순교성지를 둘러보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전, 얼마나 많은 이가 생명을 바쳐 투쟁했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머리를 숙여 순교자들의 믿음에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러한 순교 유적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너무나 귀중한 것으로, 이를 잘 돌봐 이웃뿐만 아니라 많은 외국인 관광객도 찾아오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라 생각합니다. 한국교회가 천주교를 받아들인 과정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평신도의 자발적인 신앙으로 한국교회가 시작된 이래 신자들이 교황청에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청원하고 외국 선교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국 땅을 찾아 믿음의 씨앗을 뿌린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며 선조들의 신앙을 본받아 믿음의 폭을 더욱 넓히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번에 다녀온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지닌 귀한 보물을 좀 더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루르드 성지’나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지’ 등은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이 알려진 곳으로 오늘날도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성지를 중심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세계 방방곡곡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성지는 순교의 뼈아픈 역사가 바탕이 되었고, 이것은 귀한 신앙 유산입니다. 다만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더구나 2027년에는 세계청년대회(WYD)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이는 좀 더 우리가 지닌 신앙 유산의 가치를 돋보이게 닦고 손질해서 새롭게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황새바위’라는 아름다운 성역을 중심으로 숨어있는 전설은 없는지, 이를 중심으로 있었던 소문은 없었는지 등 자세히 확인해 보고 이러한 내용을, 사진을 활용해 영상자료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지를 중심으로 내려오는 순교 장면에 관한 이야기나 역사적 사실 등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편소설처럼 엮어도 좋고 단순한 수필을 모은 것으로 해도 좋겠습니다. 가능한 대로 많은 사진을 곁들인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성지 소개와 성지가 있는 고장의 특이점 및 지역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소개하면 누가 찾아와도 볼거리가 풍성해져 좋을 것입니다. 또한 이 같은 내용으로 모든 공주 시민을 대상으로 일종의 공모전을 열고 입상자에게는 상을 준다면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입상작으로 책자를 만들어 널리 홍보하며 성지에서 판매한다면 외부에서 찾아온 사람들 또한 소중한 신앙 유산을 접할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영어, 스페인어 또는 프랑스어로 번역해 판매해 외국인들이 와서 보게 되면 그 지역은 널리 알려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홍보 책자 작업은 지자체와도 협의해 보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의 보물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보존하고 알려야 합니다. 글_조갑동 테오도시오(인천교구 김포 풍무동본당)

2024-12-01

[독자마당] 조취서공(鳥聚鼠拱)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관할의 도전공소(옛 지명: 원심이공소)가 있는 곳으로, 1869년 기사년 박해 때 전생서(典牲暑,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서 살던 정 안토니오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룬 유서 깊은 천주교 교우촌이다. 「박순집 증언록」과 「치명일기」에 의하면 정 안토니오의 아내 임 가타리나는 당시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했는데, 임 가타리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녀인 박황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촌 이모이기도 하다. 도전공소는 1887년 강원도 담당 드게트 신부가 작성한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신자 수가 58명인 꽤 큰 교우촌으로, 1900년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조선교구 제8대 뮈텔 주교가 사목 방문을 하기도 하였고, 현재까지도 옛 공소 건물에서 본당 주임 신부가 방문해 미사를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마을회관 마당에는 40년이 훨씬 지난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녹음이 짙은 여름철 저녁이 되면 수많은 새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 시끄러울 정도로 재잘거린다. 마을 쉼터인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더위를 피해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묵주 기도를 바치며 저녁기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이 쉼터를 지날 때마다 새들의 재잘거림과 교우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대목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1795년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 후 금정역의 찰방으로 좌천되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활동하면서 남긴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일기에서 다산은 관찰사 유강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주교 신자 체포의 어려움을 표현하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또 모두 그림자를 감추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는 행실이 많습니다. 말을 타고 강변을 달리다 보면 박넝쿨 얹힌 울타리와 오두막집들이 이따금 마을을 이룬 것이 보일 뿐입니다. 저들이 그 속에 몰래 숨어서 엎디어 새처럼 모여서 쥐처럼 손을 모으는 것을 무슨 수로 적발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조취서공’(鳥聚鼠拱)!!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쥐처럼 두 손을 맞잡는다는 이 기막힌 표현에서 나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정약용은 초창기 임시 성직자제도의 10인의 신부 중 한 사람이었고, 주문모 신부를 탈출시키는 장본인이기도 하였다. 그런 정약용이 진심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섰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박해시대처럼 그림자를 감추고 동과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며 몰래 숨어서 기도할 일도 없다. 더군다나 적발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들의 기도 모습과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쉼터 느티나무에서는 새들이 모여 여전히 회의를 하고 있다. 글 _ 박용식 스테파노(수원교구 북여주본당)

2024-11-24

[독자마당] 조취서공(鳥聚鼠拱)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수원교구 북여주본당 관할의 도전공소(옛 지명: 원심이공소)가 있는 곳으로, 1869년 기사년 박해 때 전생서(典牲暑,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 일대)에서 살던 정 안토니오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룬 유서 깊은 천주교 교우촌이다. 「박순집 증언록」과 「치명일기」에 의하면 정 안토니오의 아내 임 가타리나는 당시 포도청에 체포되어 순교했는데, 임 가타리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녀인 박황월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사촌 이모이기도 하다. 도전공소는 1887년 강원도 담당 드게트 신부가 작성한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신자수가 58명인 꽤 큰 교우촌으로, 1900년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조선교구 제8대 뮈텔 주교가 사목 방문을 하기도 하였고, 현재까지도 옛 공소 건물에서 본당 주임 신부가 방문해 미사를 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마을회관 마당에는 40년이 훨씬 지난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녹음이 짙은 여름철 저녁이 되면 수많은 새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듯 시끄러울 정도로 재잘거린다. 마을 쉼터인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더위를 피해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며 저녁기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이 쉼터를 지날 때마다 새들의 재잘거림과 교우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떠오르는 대목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1795년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 후 금정역의 찰방으로 좌천되어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라는 정조의 명을 받고 활동하면서 남긴 일기인 「금정일록」(金井日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일기에서 다산은 관찰사 유강에게 보낸 편지에서 천주교 신자 체포의 어려움을 나타내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이 또 모두 그림자를 감추고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는 행실이 많습니다. 말을 타고 강변을 달리다 보면 박넝쿨 얹힌 울타리와 오두막집들이 이따금 마을을 이룬 것이 보일 뿐입니다. 저들이 그 속에 몰래 숨어서 엎디어 새처럼 모여서 쥐처럼 손을 모으는 것을 무슨 수로 적발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조취서공’(鳥聚鼠拱)!! 머리를 맞대고 모여서 쥐처럼 두 손을 맞잡는다는 이 기막힌 표현에서 나는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정약용은 초창기 임시 성직자제도의 10인의 신부 중 한 사람이었고, 주문모 신부를 탈출시키는 장본이기도 하였다. 그런 정약용이 진심으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하는데 앞장섰을 리 만무하다. 지금은 박해시대처럼 그림자를 감추고 동과 서에서 번쩍 속이고 숨기며 몰래 숨어서 기도할 일도 없다. 더군다나 적발할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들의 기도 모습과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쉼터 느티나무에서는 새들이 모여 여전히 회의를 하고 있다. 글_박용식 스테파노(수원교구 북여주본당)

2024-11-17

[독자마당] 세례를 받으며

나는 오늘 단 한 일요일도 빠짐없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전 과정을 마친 예비 신자로서, 성유로 도유될 것이다. 내가 선택한 ‘발레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동안 한 번은 성부의, 한 번은 성자의, 한 번은 성령의 이름으로 성수가 머리 위에 세 차례 부어질 것이다. 당시 이교도였던 발레리안은 성녀 체칠리아와 결혼하며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체칠리아는 나의 아내 세례명이다. 아내는 무신론자인 나와 혼인한 후 60년이 넘는 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대모를 배반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껴왔는데, 대모는 아내에게 결코 신앙을 포기하지 말라며 만약 아내가 신앙을 포기한다면 그녀, 즉 그 대모가 천국에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슬픈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내에게 성당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책임이 있다고 느꼈다. 심지어 나는 아내가 결혼 전에 가톨릭신자였는지도 몰랐다. 마침내 아내가 다시 신앙생활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나도 아내를 따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 심적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관에 부딪혀 있다. 내가 온순한 양처럼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니면 고집불통 염소처럼 호전적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이런 상태의 모순 속에서 내가 프랑스 어느 수도원 입구 돌 위에 새겨진 “그 다음엔, 그 다음엔, 그 다음엔”이라는 문구가 나를 갈림길에 이르게 한다. 허무주의적 선회냐, 아니면 영적 향상이냐. 이 양면성의 철학적 질문에 신을 믿는 자의 대답으로서 “내 탓이오”를 실천할 것을 다짐한다. 결국 나는 아내의 뒤를 따르기로 결심하지 않았던가? 아,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어떻게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과 하느님을 공경하는 일에 형평을 이룰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나는 자기 전과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 있다. 부모님은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분들이다. 어떻게 새로운 존재가 부모 자식 관계와 같아질 수 있을까? 해결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에서 나는 고향을 오고 가는 길에 한 신부님의 유튜브를 보며 다소 위안을 찾았다. 그 신부님은 감히 경건하고 성스럽다고 여겨지는 영역을 넘나드는 흥미롭게 용감한 사람이다. 아내는 그의 방송 프로그램 팬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이 신부님이 이단자이거나 그런 것과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아내를 따라 그 신부님이 주례하시는 미사에 참례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부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부모님과 하느님이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나는 성당에 갈 때, 부모님에게 나를 따라오시라고 제언한다. “어머니 아버지, 저희 부부와 함께 성당에 가시지 않겠어요?” 날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아내에게 하느님 품 안으로 다시 돌아온 것에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가운데, 나는 하수영이 부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좀 더 자주 부를까 한다. 아내는 노래 가사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다. 가사가 보내는 메시지가 변화무쌍했던 60년의 결혼 생활과 거의 병치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남편인 내가 부를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 노래는 부부 생활에 있어 행복, 인정, 애정, 동정심, 사려 깊음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여기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소개한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미운 투정 고운 투정 말없이 웃어넘기고 거울처럼 마주보며 살아온 꿈같은 세월 가는 세월에 고운 얼굴은 잔주름이 하나 둘 늘어도 내가 아니면 누가 살피랴 나 하나만 믿어온 당신을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김행정(발레리안) vividcecil@catimes.kr

2024-11-10

[독자마당] 한강의 문장에서 만난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그가 세상을 읽어가는 방법을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막 내려앉은 순간 눈송이는 차갑지 않았다. 거의 살갗에 닿지도 않았다. …손바닥이 연한 분홍빛으로 부푸는 동안, 내 열기를 빨아들인 눈이 세상에서 가장 연한 얼음이 되었다. 잊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 ( 작별하지 않는다. p 186 ) 한 조각 눈을 우주인 듯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 그 부드러움을 잊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 눈을 들여다보듯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되는 사람… 우리는 너를 이해한다고 하면서 네가 아닌 나의 방법으로, 나의 사랑으로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한강 작가는 안타까울 정도로 너의 삶에 들어가고 그 삶에 물들고 함께 아파하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사랑이 그러해야 함을 주님은 우리 되어 오셔서 온 생애를 통해 보여 주시고, 우리 곁에 지금도 계십니다. 사랑은 ‘내가’가 아니라, ‘네가’ 되는 일이니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의 사랑이 지나치지 않나? 걱정하고 판단합니다. 한강 작가의 글 속엔 사랑이 되신 예수님의 생애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해도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인격은 이토록 아름다운 일이구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수술을 받거나 기적을 통해 태양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조차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는 게 바빠 마음을 쓸 수 없었던 사람들, 몰라서 들여다볼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우리 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지금 어떤 시대를 지나가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많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안에서 사람다움만 잃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간다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좋지 아니한가? 생각합니다. 한강 작가는 말합니다. ‘고통이 아픔이 우리 가운데 이토록 가득한데 어쩌면 또 세상은 이토록 아름다운가?’ 한강 작가가 발 디디고 있는 삶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제대인 것 같습니다. 기억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한강 작가의 글 속엔 바다처럼 흘러넘쳐 납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이 모두에게 가 닿기를 희망합니다. 한강 작가가 아프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으로 가득한 생을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것이기에... 사랑은 너로 물들어 가는 일입니다. 글_권미향(베로니카·대구대교구 무태본당)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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