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에 파병했고, 튀르키예군은 유엔군 안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후퇴를 모르는 군대라는 칭송을 받았다. 지금도 튀르키예 국민들은 우리나라를 형제의 나라라며 친근감을 보이고 있다. 수도 이스탄불에는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연결하는 보스포루스대교가 유명하다. 2016년에는 튀르키예의 군부가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이틀 만에 실패했다. 당시에 인기가 하락한 에르도안 대통령을 축출하려던 시도는 불발로 그쳤다. 당시 쿠데타가 실패한 데에는 SNS가 큰 역할을 했다. SNS로 시민들은 거리로 일시에 쏟아져 나와서 보스포루스대교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군사 작전에서 보안이 생명인데 쿠데타군과 시민들의 대치가 개인 스마트폰으로 생중계되었다. 방송국 몇 곳을 장악한 쿠데타군은 모든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었다. 보스포루스대교에서 쿠데타군의 탱크를 막아서는 수많은 시민들은 세계에 아주 큰 인상을 남겼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 불린다. 성경에서 보면 구약과 신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다.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후손이었고, 아버지는 제사장인 즈카리야,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다. 요한은 어린 시절부터 광야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는 시험과 시련의 장소이기도 했다.(탈출 15,22-26) 동시에 하느님과의 친교 장소로 그분의 보호와 은총을 체험하는 장소였다.(탈출 16,32) 신약성경에서 광야는 고행이나 수련, 정화, 기도의 장소로 묘사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극기 생활을 하면서 회개와 세례를 촉구했다. 군중들은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 혹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인물로 믿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회개를 권고하고 그 표지로서 세례를 받을 것을 외쳤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고 회개의 필요성이 절박하다고 생각했다.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고 생활에서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세리들은 정해진 세금 외에는 징수하지 않아야 하고 군인들은 무력한 백성들을 억압하여 착복하는 것을 금지했다. 세례자 요한의 교훈들은 당시에 만연한 과중한 징세와 권력의 남용이 공공연한 부패한 사회상의 반영이라고 수 있다. 예수님도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그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마르 1,7-8)라고 하며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한 구약이 마지막 예언자가 된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왕에게 동생 필립보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에 대해서 책망을 하며 정권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결국 사형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세례 운동은 이후에도 한참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5-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