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우크라이나 방문할까’…연내 방문 기대감 커져

[외신종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많은 희생자를 내며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다시금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프라우다’(Ukrainska Pravda)지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키이우-할리크대교구장 스비아토슬라프 셰브추크 상급대주교가 최근 ‘자유 유럽 라디오’(Radio Free Europe)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직 교황 방문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교황 성하께서는 가끔 놀라운 일을 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교황은 우크라이나 방문 결정 한 달 전에 이 사실을 발표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청 공보실은 12월 27일 현재 교황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에 대해 확인해 주지는 않았다. 같은 날, 우크라이나 주재 교황대사 비스발다스 쿨보카스 대주교는 미국의 가톨릭계 통신사인 OSV 뉴스의 질의에 대해 “셰브추크 상급대주교가 교황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교황 성하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기쁠 것이니 지켜보자”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우크라이나 방문 가능성은 여러 차례 논의된 바 있다. 특히 교황은 2022년 4월 2일 몰타로 향한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 방문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월 21일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 나시온’(La Nación)과의 인터뷰에서는 “전쟁 종식, 휴전, 또는 적어도 인도주의적 구호 통로 구축을 위험에 빠뜨리는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방문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전했다. 또 2022년 6월, 로마에서 열린 ‘어린이 기차’(Children’s Train) 행사 중 교황은 “우크라이나에 가고 싶다”며 “하지만 그것이 세계 전체에 선보다 악을 더 가져올 수 있는 결정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23년 3월 11일 라 나시온과의 인터뷰에서는 “모스크바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를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양쪽을 모두 방문하거나 둘 다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방문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기대는 교황이 2024년 성탄 우르비 엣 오르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이어지고 있는 지속적인 참상을 언급하며 조속한 전쟁 중단과 평화 협상을 촉구한 이후 제기되고 있다. 교황은 지난 12월 25일 “우크라이나에서 무기의 소리가 멈추기를 바란다”며 “대화와 만남의 문을 열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셰브추크 상급대주교는 오래전부터 교황 방문을 요청했다. 그는 2022년 4월 2일 교황이 몰타로 향한 비행기 안에서 열린 기자회견 내용을 바탕으로, 교황이 가능한 대로 빠른 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주길 희망했다. 당시 그는 우크라이나의 가톨릭교회와 정부 관계자들이 “교황 성하의 우크라이나 방문이 이뤄지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새해에는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회복되기를 기대한다”며 “정의로운 평화가 결국 우크라이나에 깃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기적으로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로 특사를 파견해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교황은 2023년 6월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마테오 추피 추기경을 특별 특사로 임명,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를 교대로 방문해 평화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교황청 애덕봉사부 장관인 폴란드의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은 2024년 성탄절을 우크라이나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의 이번 우크라이나 방문은 9번째다.

‘마약 밀매 혐의’ 필리핀 사형수, 14년 만에 고국으로

[외신종합] 필리핀 안티폴로 교구 루페르토 산토스 주교는 12월 18일 인도네시아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체포돼 사형언도를 받았던 필리핀 여성 메리 제인 벨로소의 귀환에 대해 기쁨과 감사를 표시했다. 필리핀 주교회의(CBCP)는 이날 뉴스 보도를 통해 주교회의 이주사목위원회 부위원장인 산토스 주교가 벨로소의 귀환은 “신앙과 정의, 그리고 공동체의 흔들림 없는 지지의 승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벨로소는 지난 2010년 인도네시아 방문 중 자신이 소지한 여행 가방 속에서 2.6kg의 헤로인이 발견돼 체포된 후 사형을 언도받았다. 유죄 판결에 이어 2015년 사형 집행이 예정됐었지만 벨로소를 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여성이 인신매매 혐의로 체포되고 벨로소가 검찰 측 증인으로 지목되면서 마지막 순간에 사형 집행이 유예됐다. 이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정부간의 오랜 협의 끝에 지난 12월 13일 합의에 이르러 마침내 필리핀으로 귀환하게 됐다. 이번 인도 협정에 따라 벨로소의 형량은 이제 필리핀의 관할 아래 놓이게 됐고, 여기에는 사면, 감형, 특사 등의 권한이 모두 포함된다. 전직 가사 도우미였던 벨로소는 14년간에 걸친 수감 생활 동안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왔다. 벨로소와 그녀의 지지자들은 그녀가 인신매매의 피해자이고 마약 밀반출 혐의 역시 그를 기만한 다른 이들의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벨로소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동참해온 필리핀 카리타스는 “마리 제인이 귀환하는 날,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그녀에게 사면을 베풀기를 기도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며 “인신매매 피해자인 그녀가 인도적 차원에서 즉각적이고 완전한 사면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와 연대에 동참한다”고 덧붙였다.

2025-01-05

[글로벌칼럼] 믿음이라는 모험

사람들은 왜 믿음을 가질까? 아마도 많은 신앙인, 아니 대부분의 신앙인은 아주 예전에 부모님들이 그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믿을 것이다. 부모님들에게 왜 그랬는지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 왜 그렇게까지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며, 때로는 우리의 의사에 반해 교회에 다니게 했는지 말이다. 결국, 그 대답은 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믿음은 신앙과 희망, 의심의 혼합체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의심과 씨름하며, 의심 속에서 살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비신앙인, 즉 무신론자들이 신앙인들보다 더 독단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모든 답을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반면, 신앙인들은 그렇게 확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무신론자들은 세상의 고통을 바라보며 신앙인들과 마찬가지로 “왜?”라고 묻는다. 무신론자들은 우주의 광대함을 보며 하찮은 우리 인류에게 신경을 쓸 신이 있을지를 의심한다. 신앙인들은 똑같은 고통과 과학, 그리고 세상의 혼란스러움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없다거나 누군가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인정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신은 산타클로스와 경찰의 혼합체 같은 존재일 것이다. 우리가 정중히 요청하면 선물을 주지만, 잘못을 저지르면 잡으러 오는 존재로 말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기도해도 종종 응답이 없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신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나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나쁜’ 일이란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할까? 암에 걸린 어린이? 이건 막아야겠지만, 주말에 비가 오는 건? 글쎄다. 결국, 그런 신은 모든 것을 통제하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꼭두각시 조종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우리의 행동이나 자연의 작용은 실제로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신이 모든 것을 고치거나 막아버릴 테니까.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은 실제 결과나 자유 없이 단순한 연극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자유가 없는 상태에서 사랑이 신앙인은 항상 의심을 품어야 한다. 특히 고통과 신의 부재처럼 보이는 상황 앞에서 말이다. 하지만 비신앙인 또한 항상 의문을 품어야 한다. 신앙인이 고통과 신의 부재를 묻는 것처럼, 비신앙인은 아름다움, 사랑,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해야 한다. 비신앙인들은 또한 고통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고통은 세상의 자연스러운 상태일 테니까. 우리의 삶에서의 ‘마땅히 해야 한다’는 것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이들은 고통받아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조차 자연 외부의 어떤 절대적 기준에 의존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고통에 대해 왜 화를 내야 할까? 왜 고래나 나무를 보호해야 할까? 왜 후손에 대해 신경 써야 할까? 왜 이웃의 복지에 대해서 걱정하면서도 이기심을 물리쳐야 할까? 우리 안에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 내재되어 있다. 이는 대개 우리의 안락이나 우리의 이익에 반대된다. 이 당위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분명히 경험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외부에서 온다. 그렇다면 어디서, 누구에게서 올까? 또한, 우주의 질서도 생각해 볼 만하다. 우주의 수학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아무런 이득이 없지만, 우리 안에는 그것을 이해하려는 열망, 그것을 더 깊이 알아가려는 열망,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이성적으로 조직되어 있는지에 대해 경탄하려는 열망이 있다. 이와 관련해, 우주의 기원에 대한 현재의 빅뱅 이론을 처음 제안한 벨기에 천문학자 조르주 르메트르가 가톨릭 신부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볼 만하다. 그리고 궁극적인 질문, 왜 무(無) 대신 어떤 것이 존재할까? 결국,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다. 그 어느 쪽도 절대적으로 확실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에게 그것은 신념에 관한 행위이다. 하지만 믿음을 선택하는 것이 무신론보다 현실을 더 근본적으로 다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믿음을 선택하면 의심과 명백히 반대되는 증거를 무신론보다 더 잘 수용할 수 있다. 신앙인에게는 믿음을 선택할 의지가 있다. 우리는 공동체를 형성한다. 공동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그것에 반대되는 증거들 앞에서 끊임없이 지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숙한 신앙인은 그 선택이 갖고 있는 함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앙인은 의심과 끊임없는 성장의 필요성을 정직하게 마주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 모든 것이 그 선택에 의해 그리고 그 믿음을 살아가는 모험을 향한 우리의 의지에 의해 형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글 _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 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2025-01-05

교황, 교도소에서 ‘희년’ 두 번째 성문 열어

[외신종합] 지난 12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을 연 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26일 로마 레비비아 교도소 성당에서 2025년 희년의 두 번째 성문을 열었다. 교회력으로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의 축일을 기념해 붉은색 제의를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교도소 중 하나인 레비비아 교도소에서 희년의 막을 여는 두 번째 성문을 열었다. 교황이 교도소에 도착했을 때, 교도소 경찰 악단이 희년 공식 찬미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성당 안에는 300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죄를 짓고 형기를 살고 있는 100여 명의 남녀 수감자와 가족들, 자원봉사자와 교도소 직원들, 그리고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시장과 이탈리아 법무부 관계자들이 포함됐다. 벽돌로 지어진 성당 안에서 두 번째 성문을 여는 교황의 얼굴은 환하게 빛났다. 이는 이틀 전 성 베드로 대성당의 화려한 대리석 바닥 위를 휠체어를 타고 지나며 보여준 비교적 무거운 표정과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틀 전 휠체어에 앉아 청동문에 가까스로 손을 대어 의식을 진행했던 것과 달리, 교황은 이날 지팡이에 의지해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붉은 망토를 두른 채 그동안 여러 차례 방문했던 이 교도소 성당의 검은 문으로 나아가 문을 여섯 번 두드렸다. 교황은 성문을 열기 전 카메라를 바라보며, “희년의 두 번째 성문을 이곳, 교도소에서 열고 싶었다”며 “교도소 안팎의 모든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희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교황이 휠체어로 돌아온 후, 검은 재킷을 입고 두 손을 모은 재소자가 성당으로 걸어들어갔고, 죄수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교황은 미사 주례를 하면서 미리 준비된 강론 대신 교도소에서 성문을 여는 의미를 설명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라며 “희년의 은총은 희망으로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며, 희망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황은 성문 개방과 미사를 마친 뒤 참석한 죄수들과 대화하고 웃음을 나누면서 죄수들이 준비한 올리브유, 쿠키, 세라믹 그릇, 앞치마 등의 선물을 받았다. 교황은 레비비아 교도소 성문 개방은 “죄수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그들에 대한 사회의 존중과 연대를 상징하는 희망의 징표”라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후, 교황은 모든 사람과 인사하며 악수를 나누고, 다시 한번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우리가 꼭 해야 할 일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첫째, 희망의 밧줄을 꼭 붙잡으세요. 닻과 연결된 밧줄을 절대 놓지 마십시오. 둘째, 마음을 활짝 여세요. 열린 마음을 가지십시오.”

2025-01-05

‘인도네시아 쓰나미 20주년’…새 희망 위한 추모·재건 노력 지속

[외신종합] 자연재해 피해에 취약한 태국과 아시아 인근 나라들이 2004년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온 역사상 최악의 쓰나미 20주년을 기념하고, 새 희망을 찾기 위한 추모의 시간을 갖고 있다. 2004년 12월 26일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1의 강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쓰나미를 발생시켰다. 최대 30미터 높이의 파도가 해안 지역을 휩쓸며 아시아 전역 14개국에서 약 23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태국 역시 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나라 중 하나다. 팡아 주 안다만 해안에 위치한 인기 관광지 카오악은 참혹한 재난의 중심지였다. 마을 전체가 파괴됐고 태국에서만 지역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해 약 54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국 외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약 17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그후 20년이 지난 지금 팡아 주는 쓰나미로 인한 참사의 아픔을 딛고 활기 넘치는 관광산업을 바탕으로 재건됐다. 파도가 넘쳤던 자리는 이제 많은 식당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처럼 지역 사회의 재건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에게 참사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카오락 인근 은총의 성모 성당 체이나롱 리차른피탁 신부는 “해안가를 따라 대피로와 쓰나미 대피소 표지판이 설치돼 있어 과거의 위험과 참사를 상기시킨다”며 “만약을 위해 실시하는 대피 훈련은 참사를 경험한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쓰나미 이후 세워진 기념관과 박물관들은 그날의 공포를 전하며 희생자들을 기리고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 리차른피탁 신부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며 “그 일환으로 수랏타니 교구 사회개발센터를 설립해 쓰나미 생존자와 이주 노동자, 취약 계층에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쓰나미 이후 지어진 은총의 성모 성당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목적 돌봄을 제공하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25-01-05

러시아, ‘비공식 예배’ 금지 법안 논란 확대

[외신종합] 러시아 의회가 공식 인정된 예배 장소가 아닌 건물에서의 종교 모임을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함에 따라 현지 정교회와 인권운동가들이 종교의 자유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의회 하원인 국가두마(State Duma)가 수 주 안에 비공식적 예배 장소를 금지, 단속하는 내용의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 10월 말, 다수당인 새국민당(New People Party)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예배 장소가 아닌 가정이나 건물에서 이뤄지는 종교 활동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러시아는 정교회, 이슬람, 불교, 유대교 등 4개 기성 종교를 공식 인정하고 기타 종파는 관례적으로 허용되지만 엄격하게 감시된다. 이 법안은 러시아 사회에 대한 국가 통제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법안 통과 시 전체 종파를 합쳐 인구의 약 1%를 차지하는 개신교 신자들의 종교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현재 개신교뿐만 아니라 정교회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정교회 측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교회의 가정교회도 폐쇄될 것이고, 성찬례와 함께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요청으로 가정으로 이뤄지는 각종 종교 행위가 금지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안이 현 상태로 통과될 가능성은 확실하지 않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에서도 제기되는 법안 재검토 요구가 향후 의회에서의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25-01-05

[글로벌칼럼] 새 추기경들과 나이든 교황, 다가올 콘클라베

12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88세 생일을 맞았다. 기록 방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중 다섯 번째 혹은 여섯 번째 고령의 교황이다. 전설에 따르면, 가장 나이가 많은 교황은 성 아가토 교황이다. 시칠리아 출신의 베네딕도회 은수자였던 그는 7세기 말 로마 주교로 선종할 당시 104세(혹은 어떤 기록에 따르면 107세)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성 아가토 교황의 재임 기간은 매우 짧았다. 그는 99세에 추기경이 되었고,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나이가 이미 101세였다. 14세기가 지난 지금, 또 다른 99세의 성직자가 추기경이 됐다. 전 교황대사였던 안젤로 아체르비 추기경으로, 12월 7일 21명의 새로운 추기경과 함께 서임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의도적으로 교회를 뒤흔들고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시하며, 여러 수준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이는 유럽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교회의 중심이 급격히 이동하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는 피로한 교회를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또한 교회의 자기 보존이나 자기 몰입에 빠지기 쉬운 태도를 뒤흔들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번 추기경 서임은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 열 번째다. 새로 임명된 80세 미만 추기경 20명에 포함된 인물들은 다양한 재능과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17명은 70세 미만이며, 그중 13명은 65세 이하, 7명은 60세 미만이다. 프란시스 레오 추기경(53, 캐나다 토론토대교구장), 발다사레 레이나 추기경(54, 로마대리구장), 로베르토 레폴레 추기경(57, 이탈리아 토리노대교구장)과 같은 젊은 추기경들은 앞으로 수십 년간 교회 활동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교황은 이들이 교회의 삶에 시노달리타스를 필수 요소로 정착시키기 위한 주요 인물로 활약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두 명의 말씀의 선교 수도회 출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일본 도쿄대교구장이자 국제 카리타스 의장인 기쿠치 이사오 추기경(66)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대교구장 네메트 라디슬라브 추기경(68)이다. 하지만 이 ‘젊은’ 그룹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79세의 티모시 래드클리프 추기경이다. 그는 영국 출신의 신학자, 저술가, 연설가로 도미니코 수도회 총장이기도 했다. 최근 두 차례 열린 시노드 본회의의 주요 영적 지도자이자 설교자로 활동했다. 이 시노드 본회의에서는 시노달리타스를 교회의 삶, 증언, 의사 결정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 만드는 방안을 논의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래드클리프 추기경 임명으로 교황은 차기 로마 주교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 전 이 도미니코회 신학자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보장한 셈이다. 그렇다면 콘클라베는 언제 열릴까? 아마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첫 번째 신대륙 출신 교황은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점점 더 체력이 약해지는 징후를 보인다. 호흡이 가빠지고 목소리가 약해지는 경우가 더 자주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교황은 88번째 생일 전에 추기경을 서임했을 뿐만 아니라 코르시카섬 사목방문도 했다. 교황은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의 새로운 희년을 공식적으로 선포한다. 그리고 3월 13일에는 로마의 주교로 선출된 지 12주년을 맞게 된다. 해외 사목방문 일정 중 하나는 거의 확정적이다. 교황은 5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총대주교와 함께 니케아공의회 17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방문한다.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는 이 행사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시금 ‘교황이 사임할 가능성은?’이라는 질문이 제기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임한다면, 교황직 사임은 6세기나 8세기에 한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닌 일상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또한 이는 교황직의 신화를 더욱 해체하며, 추기경들로 하여금 차기 교황으로 젊은 인물을 선택하게 할 것이다. 교황직을 죽을 때까지 고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선종한다면, 2013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사임은 여전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남게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스스로 교황직에서 물러난 마지막 교황은 1294년의 첼레스티노 5세 교황이 아니라 1415년의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이었다. 그레고레오 12세 교황은 서방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임했다. 내년 7월 4일은 그레고리오 12세 교황의 사임 6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재미있게도 그는 88세였다. 글 _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

2025-01-01

미국 힙합스타와 필리핀 학생들의 컬래버

[마닐라 OSV] 필리핀의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 3000명이 미국의 3인조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가 제작한 성탄 노래 <It’s That Time of Year>로 팝음악계에 데뷔했다. 이들의 공연이 담긴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12월 13일 공개됐고 음원은 11월 29일에 발매됐다. 마닐라 외곽 카비테(Cavite)에 위치한 마리아 수녀회(Sisters of Mary) 중고등학교 저소득층 자녀 학생들로 구성된 3000명의 합창단이 재즈 스타일의 성탄 노래를 부른다. 여기에 학생 핸드벨 합주단의 맑은 벨소리가 생동감을 더해준다.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인 래퍼 겸 가수인 애플딥, 프로듀서 겸 드러머 키스 해리스, 작곡가 데이비드 ‘DQ’ 키논스가 공동으로 작곡했다. 마리아 수녀회 학교는 1985년 설립됐다. 학교를 운영하는 마리아 수녀회는 1964년 미국 워싱턴 출신의 알로이시오 슈워츠 신부에 의해 한국에서 처음 설립됐다. 슈워츠 신부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됐다. 전 세계 7개국에서 학교를 운영하며 극빈층 가정 자녀들을 교육한다. 애플딥과 이 학교와의 인연은 학교 운영재단의 초청으로 시작됐다. 필리핀 팜팡가 지방 작은 마을 출신인 애플딥은 1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고, 음악 활동을 해오면서 어려운 가정의 청소년들을 위한 자선활동에 적극 참여해 왔다. 그는 이 노래의 원본 녹음본을 학교와 공유했다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곡이 되어 선한 영향을 미치기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 노래를 통해 모든 학생들의 1년 치 학비가 충당됐으면 좋겠다”며 “우리의 밝은 미래인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학비는 연간 약 1020달러이고 필리핀 내 4개 학교에 약 94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수익은 제작자들과 애플딥의 APLFI 재단, 그리고 학교가 균등하게 배분한다. 학교 재단의 자원봉사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인 칼라 바레토는 필리핀에서 학교 기부자들은 대부분 고령층이라며, 애플딥의 명성이 학교에 대한 인식을 젊은 층으로 확대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1-01

프랑스 혁명 때 순교한 가르멜 수녀들 시성 확정

[외신종합]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18일 교령을 발표, 프랑스 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처형된 가르멜 수녀회 순교자 16명의 시성을 선포했다. 이날 시성이 확정, 선포된 성인은 콩피에뉴의 거룩한 강생 맨발 가르멜 수녀회 소속 성 아우구스티노의 데레사 복자와 동료 순교자 15명이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1790년 수도생활을 금지했고, 콩피에뉴의 가르멜 수녀회는 2년 후 수도원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1794년 이들이 수도 공동체 생활을 계속한 것이 발각됐고, 재판을 거쳐 7월 17일 공개적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수녀들이 순교한 며칠 뒤인 7월 28일 공포정치가 막을 내렸고, 성 비오 10세 교황은 1906년 5월 26일 순교자들을 시복했다. 이날 시성이 선언된 가르멜회 수녀들은 프란치스코 풀랑크의 1956년 오페라 ‘가르멜회 수녀들의 대화’(Dialogue of the Carmelite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한편 교황은 이날 별도의 교령을 통해 2명의 순교 사실과 3명의 영웅적 덕행을 공식 인정했다. 1942년 러시아 감옥에서 순교한 에두아르 프로피틀리히(Eduard Profitlich) 대주교는 1890년 독일에서 태어나 예수회에 입회, 사제품을 받았다. 에스토니아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그는 1940년 소련의 점령 후에도 에스토니아에 남아 있었다. 독일이 소련을 공격한 1941년 체포돼 러시아로 이송됐고 반소련 선동 및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1942년 2월 22일 혹한 속에서 사망, 순교했다. 교황은 또 평신도인 피에르 구르사(Pierre Goursat)의 영웅적 덕행을 인정했다. 엠마누엘 공동체의 창립자인 그는 미디어를 복음화의 도구로 활용하는데 헌신했다. 1951년 프랑스 시네마 클럽을 창립하고 1960년 프랑스 가톨릭 영화사무국 사무총장으로 활동했으며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도 참여했다. 평신도 카리스마 쇄신에 적극 나서 1972년 엠마누엘 공동체를 창설했다.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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