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강 푸른 숲에 넋 잃고… ‘자연 보호’ 고민에 빠지고… 천혜의 경관 지닌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로 찬반 논란 예정지 돌아보고 관련 논의 “자본에 의한 희생 막아야”
시원하다. 온 몸을 휘감아 도는 바람결에 도시 열섬 안에서 쌓인 열기가 묻어나간다. 눈앞은 더욱 시원하다. 동서남북 어디로 눈을 돌려도 시원한 절경이 펼쳐진다. 글자그대로 푸르른 6월의 신록이다. 금강소나무의 당당한 풍채와 마주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신갈나무, 굴참나무, 박달나무, 층층나무 등 갖가지 종류의 나무숲이 이어진다. 다시 몇 걸음 걸어 나가니 이번엔 기이한 암석들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봄가뭄으로 수량이 줄었어도 계곡물은 여전히 수정처럼 맑다.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산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용소폭포에서 오색약수터로 이어지는 주전골 탐방로는 대부분 내리막길이다. 어르신이나 어린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특히 선녀탕과 금강문 일대는 암벽과 계곡의 조화가 장관을 연출한다. ‘설악(雪岳)’.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설악’으로 불린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이자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1호),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보호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자연유산이다.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들의 피난처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울타리로 보호되고 있는 곳은 전국에서 설악산이 유일하다. 그런데 단단하다고 믿었던 이 울타리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면? 자칫 설악산 허리가 뚝 끊어지게 생겼다. 지난해 오색지구는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예정지로 승인됐다. 찬반 논란은 뜨겁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는 6월 11일 설악산 생태탐방 시간을 마련했다. 이번 생태탐방은 ‘설악산 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이 설악산 케이블 설치 반대 활동의 하나로 펼치는 ‘천(天)인 설악에 들다’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 예정지도 돌아보고, 관련 대화도 나누는 자리였다. 서울과 설악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는 생태 강의와 영상 상영 등의 시간도 이어졌다.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신자들과 환경사목위와 발걸음을 함께 하는 청년환경활동가, 청소년환경기자 등이 참가했다. 생태탐방 후 참가자들은 백 마디 말이 소용없다는 것이 절감된다고 입을 모았다. 직접 와서 보고 느껴야, 우리가 무엇을 담보로 개발을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개발을 추진하는 이들은 ‘자연을 보호만 하지 말고 이용하자’고 소리친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더더욱 열심히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다. 난개발을 강행해 파헤쳐진 4대강들이 이미 검게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또 개발 타령이다. 개발 비용을 마련한답시고 지역 주민들을 위한 재해 예방, 의료 및 복지 비용 등을 삭감해도, 정작 주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생태탐방의 끝자락, ‘설악산 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대표와의 만남 시간이 이어졌다. 박 대표는 “자연이 경제 논리와 자본의 폭력에 희생되지 않도록 빗장을 잘 채워야 한다”면서 “지금 이 문을 닫지 않으면, 대신 아이들의 미래가 닫힌다”고 토로했다. 참가자들은 이 아름다운 설악산을 껴안고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을 시작했다. 아직 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되고 있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등도 남아 있다. 난개발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