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TH

[르포] 청소년 찾아다니는 이동형 쉼터 ‘서울A지T’

박주헌 기자
입력일 2024-03-12 수정일 2024-03-13 발행일 2024-03-17 제 338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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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위 아이들에게는, 두드리면 열리는 문이 필요합니다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 운영
위기 청소년 스스로 쉼터에 오지 않아
버스 활용해 번화가 등에서 청소년 맞이

청소년들이 3월 8일 서울 성신여대입구역에 ‘아웃리칭’을 나온 서울A지T 버스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다.

청소년 누구나 어른들의 보호 아래 미래의 꿈을 키워갈 권리가 있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가정은 가장 작은 사회 단위로 기초적인 보호를 제공한다. 가정이 보금자리로 온전한 기능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가출, 학업중단, 일탈 위험에 노출된 위기 청소년이 된다.

전국 청소년 쉼터는 138개소(지난해 12월 기준)나 되지만, 위기 청소년들 스스로 쉼터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들은 오늘도 보호 밖에 놓인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담당 은성제 요셉 신부, 이하 아지트)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으로, 청소년들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피난처가 되어주고 있다. 가정불화와 폭력, 학대 등 어른들의 잘못으로 상처받은 9~24세 청소년들을 지켜주고 치유하는 버스 현장을 찾아갔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3월 8일 퇴근 시각인 6시 무렵, 서울 성신여대입구역 1번 출구 앞 길목은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금요일을 즐기고자 번화가로 향하는 20·30대 대학생과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물녘 가로등이 켜지자, 쉴 새 없이 지나가는 어른들 틈으로 확연하게 앳된 얼굴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등에 멘 가방에는 캐릭터 인형을 매달았다. 체육복 바지나 교복 치마 차림까지 영락없는 10대들이었다.

서너 명씩 무리 지어 걸어오는 아이들이 멈춰 선 곳은 1번 출구 앞에 세워진 주황색 버스 앞. 버스 문을 두드리자 주황색 옷을 입은 활동가들이 나왔다. 서로 포옹의 인사를 나누는 사이 버스 옆면에 짙푸른 색으로 큼직하게 적힌 ‘서울A지T’ 글귀가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서 와, 얘들아. 저녁은 먹었니? 노래도 부르고 간식도 먹고 놀다 가~”

버스로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은 노래방 리모컨부터 집어 들었다. 버스 안에는 노래방 기계와 TV 스크린, 등받이가 있는 좌식 의자, 품에 꼭 껴안을 만한 동물 인형들도 놓여있었다.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는 와중, 봉사자들이 마련한 오리 불고기와 잡곡밥으로 식사하는 아이도 있었다.

이동형 쉼터인 아지트는 생활보호 시설인 일반 쉼터와 달리 대상 청소년들이 있을 만한 장소로 찾아가는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이 주가 된다. 청소년 복지 관계자들 사이에서 ‘발굴한다’는 표현이 쓰일 만큼, 위기 청소년들을 실제로 만나고 시설로 오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번화가 등 아이들이 밀집한 현장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아이들은 버스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자들의 보호 안에 놓인다. 식사·간식뿐 아니라 생리대 등 긴급 생필품 제공, 치과 진료를 포함해 함께 병원에 가는 등 의료 지원도 받는다. 아린양(15·가명)은 “다른 쉼터와 달리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와 주니까 당장 도움이 절실할 때 받을 수 있어 안심되고 나쁜 어른들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처 입은 어린 마음

“신뢰 관계가 형성되면 여느 친구들처럼 결 고운 아이들”이라고 봉사자들은 말하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대여섯이 모여 버스 앞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세 보이고 싶다”는 이유로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고 나타난 아이들도 있었다.

치유되지 않고 방치된 내면의 상처 때문이다. 말 못 할 폭력 피해를 당한 자신에게 같은 편이 되어 싸워주지 않은 부모에게 절망해 극단적 선택을 누차 시도한 아이도 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때문에 가출했다”는 사연은 자주 반복되는 대표적 사례다.

“저는 엄마 때문에 학교를 그만뒀어요.”

지우양(16·가명)은 어머니에게 대물림받은 상처를 고백했다. 지우양은 어머니의 강요로 학교를 자퇴했다. 어머니는 “집안이 어려우니 공부는 꿈도 꾸지 말고 돈이나 벌어 오라”며 지우양을 떠밀었다. 어머니 자신도 어린 시절 가난한 형편 때문에 억지로 자퇴하고 어머니를 모셨다.

누구도 상처를 보듬어 주지 않았기에, 위기 청소년들은 이전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어른들을 따라 하며 일탈로 치닫는다. 나쁜 영향을 준 것은 어른들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동시에 “어른들을 따라 해서 내가 날 지켜야 한다”는 잘못된 인지가 깔려 있는 것이다.

포용할 줄 모르는 사회의 냉대는 아이들에게 두 번 상처를 준다. 식당에서 청소년증을 내밀지 못할 때, 식당 주인이 큰소리로 “너 자퇴했냐?”라며 무안을 주는 건 다반사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난 사랑받을 수 없구나” 하는 절망감을 맛본다.

“저희도 사랑받고 싶어요. 그런데 받아본 적이 없어서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저희를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청소년들이 3월 8일 서울 성신여대입구역에 ‘아웃리칭’을 나온 서울A지T 버스에 오르고 있다.

3월 8일 서울 성신여대입구역에 ‘아웃리칭’을 나온 서울A지T 활동가들이 버스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믿음을 통해 치유되는 상처

“선생님은 널 믿어. 너도 언젠가는 네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될 거야.”

상처가 깊은 아이들은 가치 기준이 무너졌거나 죄의식에 무감각하기 쉬워 사회화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아지트와 함께하는 위기 청소년들은 비교적 빨리 마음을 열고 변화한다. 아이들을 믿어주는 마음으로, 가족과 같은 ‘라포르’(Rapport, 공감적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활동가들의 진심 덕분이다.

아지트는 ‘밥상머리 교육’처럼 아이들에게 가족처럼 다가가는 것을 지향하기에 정형화된 프로그램을 펼치지 않는다. 가족생활이 짜여진 프로그램대로 이뤄지지 않듯, 그때그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부모님처럼 함께한다. 함께 카드놀이나 보드게임을 하기도, 출출하면 라면을 끓여 먹기도, 아이들 성화에 못 이긴 척 늦은 밤 치킨을 시켜주기도 한다.

활동가들은 상담 시간과 횟수를 정해두는 타 시설의 상담과 달리 아이들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든 상담에 나선다. 아지트 활동을 마친 새벽에라도 “죽고 싶다,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다”는 청소년의 연락이 오면 이불에 누웠다가도 일어나 찾아간다. 활동가들 사랑에 힘입은 아이들이 가족과 세상을 용서하고, 원망에서 해방될 잠재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가 잘못 살았다고 어저께 신부님께 고백했어요. 성당에 가서 성사를 볼 거예요.”

트리(가명·20·루카)군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으로 하느님을 등지고 있었다. 그런 트리군은 “천천히 용서로 다가가며 하느님과 화해하는 마음을 먹은 건 지금껏 많은 사람의 기도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신부님과 선생님들은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어요. 잘 준비해 고해성사도 하고 용서의 의미를 배워 나갈 거예요.”

은성제 신부는 “아지트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상처 입고 방치된 아이들을 찾아나서 가족 같은 피난처가 돼주고 용서의 가치를 심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 법인지원금만으로 운영되는 아지트가 위기 청소년들에게 참된 치유를 안겨줄 수 있도록 함께해 달라”고 당부했다.

※후원 우리 1005-701-540128 예금주 (재)서울가톨릭청소년회

※문의 010-7655-9510 서울A지T 담당 은성제 신부

서울A지T 활동가들이 아지트 버스 안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은성제 신부 제공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