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연중 제24주일

좋은 질문을 던져야 좋은 답을 얻는다고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에서도 맹목적 믿음보다는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도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주셨지만, 때로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을 성장시키십니다. 예를 들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루카 10,36)는 질문,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마르 3,33)는 질문은 단순히 답을 듣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예수님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도록 초대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던지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에 대한 질문입니다. 복음의 전후를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논쟁하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며, 마귀를 쫓아내시는 가운데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표징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의 답을 듣고,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혹은 예언자 중 한 명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자신이 알고 있는 틀을 통해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기존 관념으로 타인을 판단하게 되면, 그 사람의 참모습을 알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단순히 뛰어난 가르침을 주는 스승님,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인물, 초자연적 기적을 행하시는 신적 존재로만 본다면 예수님이 진정 누구신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시각을 넘어, 제자들에게 자신과 함께 살아오면서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그들 자신의 언어로 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베드로가 이렇게 답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수제자 베드로의 대답이 정답처럼 들리지만, 그 후의 복음 내용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겪어갈 길에 대해 알려주시는데, 앞서 정답을 말한 베드로 성인이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더 나아가 예수님은 베드로 성인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하며 야단치시는 장면까지 나오니 더욱 혼란스럽게 다가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따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과 마음이 다 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의 고백 역시 예수님을 진정 이해해서 한 대답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예전부터 들어온 그리고 기대해 온 그리스도라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대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나서서 그 힘든 길을 갔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진리를 찾고, 사랑을 나누고, 그런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 있기를 그들은 원했습니다. 이 열망과 용기를 하느님이 심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신들이 생각한 메시아의 모습에 사로잡혀서 예수님의 진정한 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걸어가는 사랑의 길은 세상의 환호에 안주하지 않고, 반대자들의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직 하느님의 뜻을 살고 모든 이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이 길을 걷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할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반박까지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뜻을 관철시키려 한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과 기대를 이루고자 합니다. 이런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면서 계속 함께 가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나 욕망을 갖고 따르면 함께 갈 수 없기에 각자의 인생에 부여된 하느님의 사명을 갖고 따르라고 초대하십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저 역시 하느님이 주신 열망 덕분에 예수님을 따른다고 했으나 어리석음과 두려움 속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저와 함께 걸으셨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저는 무엇을 원하면서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1·2독서에서 말하고 있듯이 주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실천하는 믿음이 제가 예수님을 따를 때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알려줘서 알 수 있는 분, 열심히 공부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분은 늘 삶을 통해 자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셨고, 지금도 그렇게 삶을 통해 만나게 되는 분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가 원하는 정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인생을 걸어가면서 질문을 던지시는 분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삶에서 예수님이 던지는 이 질문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스스로가 고민하고 자신의 삶에서 진실하게 답을 찾아갈 때 비로소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고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 길을 걸어갑니다. 글 _ 현재우 에드몬드(한국평단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 소장)

[교회 상식 팩트 체크] 미사보 착용은 남녀차별이다?

미사 시간만을 위한 특별한 복식들이 있지요. 주로 신부님이나 전례 봉사자의 복식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직자나 전례 봉사자 외의 신자들도 미사 때 착용할 수 있는 복식이 있습니다. 미사 등의 전례 중에 세례를 받은 여성 신자들이 쓰는 베일, 바로 미사보입니다. 교회가 전례 중 미사보를 사용한 것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씀(1코린 11,2-16)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편지에서 바오로 사도는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1,5) 전례 때 여성은 베일을 써서 머리를 가리라는 것이지요. 심지어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11,9)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 구절들만 봐서는 남녀를 차별하는 것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정말 미사보로 남녀를 차별한 것일까요? 사실 바오로 사도는 오히려 교회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자주 강조한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여성의 머리를 가리는 것에 관해 언급한 후에 바로 “그러나 주님 안에서는 남자 없이 여자가 있을 수 없고 여자 없이 남자가 있을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온다”(11,11-12)고 강조했습니다. 다른 편지에서도 성별, 출신 모두 관계없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갈라 3,27-28)라며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평등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이 당시 그리스도교 풍습을 말한 것일 뿐, 절대적인 규칙이나 본질적인 신앙의 행위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코린토 1서 강해」를 집필하신 이영헌 신부님(마리오·광주대교구 성사전담)은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당시 코린토의 문화 안에서 예의였다”면서 “바오로 사도가 머리를 가리라고 한 것은 기도할 때 예의를 지키도록 당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살던 시대의 문화에서 시작된 미사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사보에는 더 큰 의미가 담기게 됐습니다. 세례 받은 신자가 입는 ‘흰옷’을 나타내게 된 것이지요. 세례성사에서 흰옷은 세례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입었다”(갈라 3,27)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음을 상징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243항) 이런 이유로 세례성사의 흰옷을 입는 예식에서 미사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한 미사보는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도 뜻합니다. 미사보 착용은 의무가 아니라 자유입니다. 쓰고 싶은 분만 쓰시면 되지요. 미사보에 있어서는 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선택할 수 있다는 권한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적합한 표현일 듯합니다. 혹시 ‘예수님을 입고’ 더 깊이 예수님의 성찬례에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미사보를 쓰고 미사에 참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를 포함한 남성분들은 미사보를 선택할 권한이 없습니다.

2024-09-15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최후의 날 예언한 스바니야 예언자

예로부터 사람들은 개를 가축과 애완용으로 길들여 옆에 데리고 살았다, 그 역사가 약 2만 년에서 4만 년 전부터라니 유구하다. 얼마 전 동영상에서 큰 곰이 우리를 넘어 강아지를 공격하자 어미 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10배나 큰 곰을 맹렬하게 공격해 곰이 허둥지둥 도망가는 것을 보고 그 용맹성에 놀랐다. 개는 훈련을 받으면 구조견이나 마약탐지견, 시각장애인인도견이 되는 아주 이로운 동물이다. 그런데 비슷한 줄 알았던 들개와 이리는 서로 다른 종(種)이다. 이리는 개와 달리 결코 길들일 수 없는 사납고 잔인한 동물이다. 성경에서 이리는 안 좋은 것에 비유할 때 자주 등장한다. 스바니야 예언자가 대표적으로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할 때 이리의 습성을 비유했다. “그 안에 있는 대신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 그 판관들은 저녁 이리 떼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스바 3,3) 성경 저자들은 이리에 비유되는 악인들이나 악한 제도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끔찍함과 잔인함을 비유하고 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이기적인 종교 지도자들, 부정직한 대신들과(스바 3,3) 거짓 예언자들과 거짓 교사들도 싸잡아 이리의 습성을 닮았다고 매섭게 공격했다. 스바니야라는 이름은 ‘하느님께서 숨기셨다’ 또는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다’를 의미하는데 활동 현장은 예루살렘 성이었다. 기원전 7세기 중엽 이집트를 점령한 아시리아에게 근동의 패권이 넘어왔다. 아시리아는 주변 민족들을 파멸시키고 잔학 행위를 저지르며 세력을 키웠다. 이스라엘은 왕국의 주권과 하느님 신앙을 포기하고 아시리아의 위세에 눌려 납작 엎드렸다.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는 아시리아의 우상을 세워졌고, 매음이 성전에서 행해졌다. 요시야 왕이 즉위할 때 나이가 고작 8살이라 직접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어 상당 기간 섭정이 이뤄졌고, 이 시기에 스바니야가 열심히 활동했다. 요시야 왕 때 섭정을 한 권세가들은 우상 숭배를 자행하고 사회를 도탄에 빠뜨렸다. 이러한 시대 배경 아래 스바니야 예언자는 우상 숭배자들과 불의한 지도층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1,2-13), ‘아시리아의 몰락’(2,13-15)을 예언한다. 스바니야는 ‘교만’이 모든 죄악의 뿌리라고 가르친다. 교만은 하느님께 대한 불신과 반항, 우상 숭배, 율법을 거스르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며 마침내 사회 부정과 불의로 나타난다고 강조한다. 스바니야는 ‘하느님의 심판’ 곧 ‘주님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다른 예언자와 달리 무섭게 빠르게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했고 그의 예언은 50년 후 예루살렘 멸망으로 현실이 된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주님만을 찾으며 주님께만 기댈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들이 희망이 된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왕국이 멸망한 후에라도 미래를 희망할 근거는 존재한다는 스바니야의 메시지는 하느님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기대하는 한 줄기 빛이 된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9-15

[성경 속 기도 이야기] 자기 착각에 빠진 요나의 기도(요나 2,3-10)

예언자 요나는 적국인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라는 주님의 명을 피해 달아나다 폭풍을 만나고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냈습니다. 그는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며 니느베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느님께서 벌을 거두신 것을 보고 죽고 싶다고 떼를 씁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드린 기도는 사실을 왜곡하는 기도의 전형을 보여 줍니다. 폭풍이 일자 이방인 뱃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지만 깊이 잠들어 있던 요나는 기도하라는 선장의 요구를 받고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뱃사람들은 요나를 바다로 집어 던지기 전에 주님(야훼)께서 폭풍을 일으키신 것을 알고 그분께 자신들이 하는 일에 용서를 청합니다.(1,14) 하지만 요나는 사흘 밤낮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2,1) 더구나 그의 기도는 왜곡된 사실로 그득합니다.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2,3)라고 하지만 그는 사실 ‘배 밑창에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1,5) 요나는 ‘당신께서 바닷속 깊은 곳에 저를 던지셨다’(2,4)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를 던진 이들은 뱃사람들이었고(1,15) 그것은 요나가 자신의 사명을 피해 도망친 결과였습니다. ‘당신의 눈앞에서 쫓겨난 이 몸’(2,5)이라고 하지만 그는 스스로 주님을 피해 도망갔습니다.(1,3) “헛된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신의를 저버립니다”(2,9)라고 하지만 이방인 뱃사람들은 자신들을 불행에 빠뜨린 요나를 구하려 끝까지 애썼고 다른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주님(야훼)의 용서를 구하며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1,13-16) 하느님이 니네베 사람들을 용서하신 것 때문에 요나는 다시 기도합니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면,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4,1-8) 요나는 적에 대한 미움에서 사실을 왜곡하고 하느님이 자신의 적을 용서하신 사실을 자기 죽음으로 부정하려 합니다. 우리가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을 눈앞에 떠올리는 것이 요나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내 바람과 달리 잘 되고 하느님의 복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부정하며 왜곡된 기도를 바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자기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삐뚤게 이해하는 위선자의 전형입니다. 예언자들과 예수님은 그런 기도가 잘못되었다고 거듭 지적하십니다.(이사 1,15;29,13; 마르 7,6-7; 예레 7,9-10; 호세 6,1-3;8,1-2; 미카 3,3-4; 스바 1,5-6; 즈카 11,5; 마르 12,40; 마태 6,5-7) 내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우리는 사실을 왜곡하는 위험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을 얻으리라 희망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요나의 거짓된 기도를 들으시고도 요나를 육지에 뱉어 내게 하시고(2,11) 죽고 싶다는 요나를 타이르시고 그에게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십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느님이 요나와 니네베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회하고 회개하는 나 자신도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에도 불구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새로이 시작할 용기를 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휩 오스터하위스, 네덜란드 시인)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2024-09-15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과 스승 엘리야를 백성들과 이어준 엘리사

제2차 세계대전 말 독일은 천혜의 방어망 라인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삼았다. 라인강은 강폭이 넓고 회오리치는 곳이 많아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최적지이다. 히틀러는 라인강의 모든 다리를 폭파하라고 명령했다. 중부 라인강변에 도착한 미군 일부는 아침 안개가 걷히고 포연이 사라진 뒤 기적을 목격했다. 라인강 사이의 레마겐과 에르펠을 잇는 철교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이 다리에서만 폭발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군 특공대는 다리 위에서 총격전을 벌이며 한발씩 전진해 1945년 3월 7일 다리를 접수했다, 연합군에게 점령된 라인강 최초의 다리인 셈이다. 연합군은 라인강 너머로 교두보를 마련했고 대공포대를 설치했다. 베를린으로 직행하는 독일의 전략요충지로 계속 병력과 탱크와 물자를 수송했다. 히틀러는 크게 화를 내며 지휘한 장교들을 처형했고, 독일군은 여러 번의 공습과 심지어 실험 중이던 V2로켓까지 10발 이상 발사했지만 다리를 폭파시키지 못했다. 열흘 정도 지나 다리 중간이 무너졌지만 이미 많은 병력이 동쪽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연합군의 라인강 도하는 연합군 심리와 사기진작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베를린으로 밀고 들어갔다. 레마겐의 철교 덕분에 수많은 생명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전투와 전쟁에서 다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레마겐 철교의 존재는 기적 같은 일이다. 예언자도 결국 다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느님의 기적을 사람들에게 이어주고 백성들에게 예언을 전하는 측면에서 말이다. 엘리사가 처음 예언자로 활동할 때는 아합의 통치 말년이었다.(1열왕 19,1-17)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와 같이 기적으로 유명하다. 엘리사의 첫 번째 공식 활동이 스승의 승천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엘리야의 옷을 집어 들고 내리쳐 요르단강물을 갈라친 것이었다. 엘리야가 행했던 기적을 다시 행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엘리사를 그들의 지도자와 엘리야의 계승자로서 섬겼다. 대부분의 기적 설화들은 깊은 존경심과 경건한 경외심을 지닌 예언자 그룹과 목격자들과 관련되어 있다. 엘리사는 기적 설화들이 쌓여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가장 유명한 기적은 나병 걸린 아람의 장군 나아만을 고친 것이었다. 죽은 후에도 엘리사의 기적은 중단되지 않았다. 죽은 엘리사의 몸에 닿은 다른 주검이 다시 살아나 제 발로 일어섰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올 정도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 탁월하고, 동정심 많고, 남을 돕기를 좋아하는 엘리사의 인간성이 예언자 그룹의 제자들 기억에 깊이 간직되었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이스라엘 역사에 준 영향력에 대한 진정성은 명백했다. 왜냐하면 엘리사는 우선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을 맨 앞자리에 놓았다. 그가 행한 무수한 기적들도 하느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엘리사는 평생을 스승과 제자단, 그리고 백성들을 이어주는 평화와 생명의 다리 역할을 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9-15

[말씀묵상]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

신부님, 교목실 창문 너머에는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목련은 신학교 성당 곁에도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몇 해의 봄을 지나면서도 그 나무를 피해 다녔습니다. 꽃이 만개했을 때도, 애써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날아오를 듯, 포롱포롱 가지마다 핀 하얀 꽃잎들이, 질 때만큼은 너무나도 서글펐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올해 봄에는 무언가 홀린 듯이, 목련 지는 그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습니다. 하얀 꽃잎이 녹슬어 떨어지는 모습은, 목이 잘리어 피를 흘리는 것 같았고, 저는 문득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목련이 피를 흘리며 지고 나니, 봄이 왔습니다. 봄을 알리는 그 꽃은, 봄이 만개할 때는 자취를 감추더군요. 학교 앞뜰에 벚꽃이 만개할 무렵 존재를 감춘 목련은, 여름 뙤약볕 아래 잎을 돋우어 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그 앞을 뛰어다니며 웃음 지을 것이고, 그 앞을 지나 성당에서 두 손을 모을 겁니다. 신부님, 당신이 목을 떨군 그 땅에, 교회는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꽃피우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도 찾지 않는 여름 목련 아래서, 당신을 기억합니다. 신부님과 동료 순교자를 기억하는 오늘, 교회 공동체는 루카 복음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말씀은 송연합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목련꽃을 애써 피하고 다닐 무렵, 저는 이 말씀이 너무나도 서운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바른 정신을 가진 맑은 청년이 내몰린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입바른 소리가 싫어 십자가로 내몰았습니다. 그 억울한 죽음을 마주했다면, 다시는 누구도 십자가에 못 박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목도한 사람들은, 다시 그 십자가를 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고통의 의미를,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신앙이 그런 방식으로 고통에 의미를 부여할 때마다, 사람들은 스러져갔습니다. 우리 신앙은 왜 이리도 사람들의 고통에 관대한가. 신앙은 왜 고통을 예방하려 하지 않는가. 피로 새겨진 저 말씀을 눈물로 닦으며, 저는 묻고 또 물었습니다. 그럴수록, 저 문장은 제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여름 목련 나무 앞에서, 다시 성경을 폅니다. 말씀 구절을 찾아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십자가를 ‘지다’를 표현하기 위해 ‘아이로’(αἴρω)라는 낱말을 썼습니다. 이 단어는 ‘짐을 짊어지다’는 뜻입니다. 이 낱말에는 무게를 견디어 내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복음 어귀에, 다시 한번 십자가 이야기를 꺼냅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오늘날 성경이 ‘짊어지다’로 번역하는 이 낱말은 ‘바스타조’(βαστάζω)입니다. 이 단어도 ‘옮기다’, ‘참다’, ‘짐을 지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그 어감은 조금 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안고 간다는 뜻에 가깝지요. 아기 엄마가 젖먹이를 품에 안고 갈 때, ‘아이로’보다는 ‘바스타조’에 가깝습니다. 역설적입니다. 아마도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놀랐을 겁니다. 십자가라는 형벌도구를, 아이를 품듯 하라니요. 그런데, 이 ‘바스타조’라는 낱말은 로마서에 다시 등장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믿음이 나약한 이들의 약점을 그대로 받아주어야 합니다.”(로마 15,1) 바오로 사도는 나약한 이들을 보듬는 일을 표현하고자 ‘바스타조’란 낱말을 쓰고 있습니다. 어쩌면 ‘십자가를 지다’는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통을 신앙적으로 해석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누군가의 어려움과 고통을 돌본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루카 복음사가가 십자가를 대하는 행동을 표현하기 위해, 두 단어를 오가는 이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또렷해지는 것도 있습니다. 신앙의 여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고, 그것을 견디어 낸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 소중히 끌어안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 운명을 피할 길이 없다면, 저는 끌어안는 쪽을 택하려 합니다. 신부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낭랑하게 들립니다. 교실 창가로 아이들이 보입니다. 교실에 걸린 십자가 아래로, 아이들은 따뜻한 햇볕을 책상 위에 펴고, 책을 읽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습니다. 이곳의 오늘은 안온합니다. 당신이 꿈꾸었을 일상을 저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더 이상 숨어서 신앙하지 않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함께 기도할 수 있고, 우리 손에는 한글로 된 성경이 들려있어서, 마음껏 성경을 소리 내 읽을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꾸벅꾸벅 졸 수 있습니다.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저희로서는,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주님의 말씀은 어떻게 들리셨나요. 어떤 힘을 내는 말이었나요. 저는 신부님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오늘의 안온함은 어제의 절박함과 너무 멀고, 저는 그 소슬한 거리를 좁히지 못해, 격절의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제야 저는 어제의 서운함이 부끄럽습니다. 신부님, 어느 날 무심한 눈길이 목련에 가닿는다면, 저는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때 오늘 말씀을 포개어 두고, 삶과 꿈을 다시 성찰하겠습니다. 당신이 이른 봄의 목련꽃처럼 행하신 사제직을, 저는 여름 목련처럼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날마다 십자가를 품에 꼬옥 안고, 자박자박 걸으며 그 뒤를 따르겠습니다. 글 _ 전형천 미카엘 신부(대건중학교 교목실장)

2024-09-15

[말씀묵상] 연중 제23주일

저에게도 ‘귀먹고 말 더듬는 이’로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입니다. 언어를 배우면서 현지 생활에 적응하던 시기에는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하고 싶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길거리에 산책을 나와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 심지어는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 강아지가 부러웠습니다. 듣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갈릴래아 호수로 다시 돌아온 예수님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바라는 것은 한 가지, 귀먹고 말 더듬는 이가 다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는 사람들의 바람에는 예수님께서 손을 얹어 주심으로써 병자가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있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누구인가요?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귀먹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어 형용사 ‘코포스’(마르 7,32)를 사용했습니다. 이 단어는 ‘무딘’ 혹은 ‘둔한’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청각 장애를 가진 이들을 이방 민족과 연결지었는데, 이방 민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이사 42,17-19; 43,8-9; 미카 7,16 참조) 이러한 연결점을 고려할 때,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간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던 이방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데려간 이는 들을 수 없었던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저자는 ‘말을 더듬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그리스어 형용사 ‘모길리오스’(마르 7,32)를 추가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형용사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마르코 복음 7장 32절에서만 등장합니다.(hapax legomenon) 이 단어는 이사야서 35장 6절의 칠십인역본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말할 수 없는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의미는 마르코 복음 7장 37절에서 언급된 “말못하는 이”, 곧 그리스어 ‘알랄루스’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손가락을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면서 “에파타!”, 곧 “열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치유를 받은 병자는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마르 7,35)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귀가 열림’, 그리고 ‘혀가 풀림’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치유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신적수동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에게 예수님은 치유자이며 구원자이십니다. 그는 이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마르 8,18 참조) 예수님의 치유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은 놀라서 말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7) 사람들이 이처럼 놀란 것은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치유가 특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당시 이러한 기적 행위는 메시아가 오실 때 일어날 사건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하던 비현실적 사건이 실현될 것이라는 희망을 예고하였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5-6: 제1독서) 오늘 복음은 눈먼 이들의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의 귀가 열릴 것이라는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되었고 선포합니다. 기원전 8세기,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예언자의 심판 예고는 실현되었고, 이 결과 예루살렘은 멸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이후 페르시아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바빌론의 세력이 점차 약화되었는데, 이때 예언자(제2이사야)는 바빌론으로부터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을 예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과 고향에로의 복귀가 임박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1독서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귀환과 재건의 희망을 알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해 미래 없는 멸망을 예고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 안에 담긴 구원의 희망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과 바빌론 유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망과 시련을 체험하도록 하셨지만, 그들을 바빌론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심으로써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셨습니다. 귀먹고 말 더듬는 이도 절망과 시련, 불안과 두려움에 빠져있었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음으로써 자유와 해방, 곧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절망에 빠져 ‘어둔 밤’ 속에서 헤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겠지만, 그들의 장애는 단순히 하느님께서 내리신 심판의 결과로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두움을 비추는 밝은 빛을 준비하고 계시며, 우리에게 그 빛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십니다. 저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귀를 열어주시고 혀를 풀어 말할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글 _ 정진만 안젤로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2024-09-08

[성경 속 기도 이야기] 고통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예레미야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같이 하느님과 한 개인의 씨름을 다룬 고백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기록된 예례미야의 다섯 개 고백은 아주 오래되었으면서도 하느님께 따지는 고통스러운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치욕과 비웃음을 당하지만, 자신의 기쁨이자 즐거움인 그분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기에 침묵할 수도 없습니다.(예레 15,15-16) 그는 자신의 사명 때문에 자신이 처하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하느님께 화를 내고 따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을 계속 신뢰합니다. 그의 마음은 양쪽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습니다. … 그럴지라도 당신께 공정성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악인들의 길은 번성하고 배신자들은 모두 성공하여 편히 살기만 합니까?”(예레 11,20;12,1) 큰 고난을 겪는 예레미야는 자기를 박해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습니다.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닥치게 하시고 그들을 부수시되 갑절로 부수어 주소서.”(예레 17,18) “그들의 죄악을 용서하지 마시고 … 그들을 당신 앞에서 거꾸러지게 하시고 당신 분노의 때에 그들을 마구 다루소서.”(예레 18,23) 나아가 자기의 운명을 욕하며 신세 한탄을 합니다. “저주를 받아라, 내가 태어난 날! …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와 고난과 슬픔을 겪으며 내 일생을 수치 속에서 마감해야 하는가?”(예레 20,14.18). 그는 급기야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하느님께 실망을 느끼고 하느님을 나쁘게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가짜 시냇물처럼, 믿을 수 없는 물이 되었습니다.”(예레 15,17)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 20,7) 하지만 하느님은 예레미야의 원망에도 화를 내시지 않습니다. 다만 ‘네가 쓸모없는 말을 삼가면’(예레 15,19)이라고 따끔한 주의를 주시면서 그를 당신의 대변인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여러 가지를 약속해 주십니다.(예레 15,19;20-21) 하느님은 예레미야가 지금의 고통을 견디고 앞으로의 사명에 걸맞게 성장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네가 사람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먼저 지쳤다면 어찌 말들과 겨루겠느냐? 네가 안전한 땅에만 의지한다면 요르단의 울창한 숲속에서는 어찌하겠느냐?”(예레 12,5) 너무나 힘들어 타인과 하느님과 자신 등 누구에 대해서도 고운 말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마음을 토로할 수 있으며 하느님은 그것을 귀여겨들으시고 설령 당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의 고통을 가볍게 해 주십니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어디인지를 내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나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계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라고 말합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마태 1,23)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길(요한 14,6)이십니다. 첫 번째 고백과 두 번째 고백이 예레미야의 기도(11,18-20; 12,1-4; 15,10; 15,15-18)와 하느님의 응답(11,21-23; 12,5-6)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세 번째 네 번째 고백에서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상대방을 저주하기에 이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자세가 우리로 하여금 고통의 늪에서 벗어나 그분의 위안을 얻도록 이끕니다. 글 _ 신정훈 미카엘 신부(서울대교구 해외선교)

2024-09-08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언자들의 스승 엘리야

신학생 시절 한 선배가 소개해 준 헬렌 켈러의 「사흘 동안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이란 글을 본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헬렌 켈러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 장애인이었다. 그는 장애를 훌륭히 극복한 현대의 위인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의 삶을 성공적으로 가능하게 한 스승이 있다. 헬렌이 7세 때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보스턴의 한 시각 장애 학원을 찾았다가 만난, 평생의 교사가 될 앤 설리번이었다. 당시 앤 설리번은 겨우 21살이었다. 앤 설리번도 5세 때 눈병으로 시력을 잃었다가 수술로 시력을 회복했지만, 평생 실명의 불안과 싸우면서 살아야 했다. 앤 설리번의 이러한 체험이 헬렌의 교육에 도움이 되었다. 앤 설리번은 엄마가 아기에게 말을 걸듯이 끊임없이 헬렌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말을 써 주었다. 헬렌도 마찬가지로 손가락 말로 대답했다. 헬렌은 1904년 하버드대학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3중 장애의 몸으로 대학 교육을 마친 세계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앤 설리번은 학교 강의실에서 언제나 곁에 앉아 강의를 손가락 말로 헬렌에게 전해 주었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내용을 점자로 다시 적어 읽게 하였다. 이처럼 헬렌 같은 위인의 생애에서 앤 설리번이라는 스승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처럼 인생의 큰 행복은 없을 듯하다. 엘리야는 기원전 9세기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 유명한 예언자 엘리사의 스승이기도 하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중의 하나였지만 그의 통치기간 중 이스라엘의 종교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합은 시돈 왕의 딸 이제벨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바알을 섬기고 예배하기까지 하였다. 엘리야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역사적으로도 얼마나 혹독했는지 고증된 심각한 가뭄이 닥쳐올 것을 경고한다.(1열왕 17,1) 아합은 엘리야에게 나라를 불행하게 만든 자라고 힐책했지만, 엘리야는 오히려 임금의 잘못이라고 맞받아친다. 엘리야는 카르멜산으로 바알의 예언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사백 명도 함께 모아 대결을 벌인다. 대결에서 엘리야가 승리하고 백성들은 반대편의 예언자들을 죽인다. 엘리야의 승천(2열왕 2,1-12 참조)은 엘리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엘리사가 엘리야의 후계자라는 정당성을 부과하고 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자기 혼자 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여정을 같이 했다. 엘리사는 그의 스승 엘리야가 곧 승천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야의 영적 능력 가운데 장자로서 받아야 할 몫을 요구했다. 예언자들은 분명히 엘리사에게 엘리야의 영감을 내렸다고 확신한다.(2열왕 2,15) 엘리야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과 열성적인 헌신으로 바알과의 투쟁을 선도한 예언자이다. 그의 제자들은 엘리야의 가르침을 계속 오랫동안 기억하며 실천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9-08

[교회 상식 팩트 체크] 아카펠라는 교회 음악이다?

아카펠라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아카펠라는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화음을 맞춰 부르는 음악인데요. 아카펠라를 들으면 사람의 목소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카펠라가 교회 음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금은 교회 음악에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고 있지만, 초기 교회에는 전례 중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이후 9세기경 교회 음악에 오르간이 도입되고 여러 악기들이 차츰 교회 음악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클래식 음악들도 교회 음악으로 작곡된 곡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의 목소리로 내는 음악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히 큰 악기를 두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기도 공간, 경당에서 반주 없이도 하느님께 경건하게 찬미를 드리는 무반주 합창을 불렀습니다. 1500여 년 전부터 무반주 합창을 불러온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이 대표적인데요. 이 합창단이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에서 무반주 합창을 노래해, ‘성당식으로’, ‘성당 풍으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아카펠라(A Cappella)가 성당에서 부르는 무반주 합창을 일컫는 말이 됐습니다. 아카펠라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경에 많이 작곡돼,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렇게 교회 음악을 뜻하던 아카펠라는 19세기 무렵 합창음악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변해 교회 음악과 관계없이 악기 반주 없이 하는 모든 합창을 부르는 말이 됐습니다. 카펠라, 바로 ‘성당’이라는 말이 음악의 한 장르를 뜻하는 말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성당을 뜻하는 카펠라는 이전에도 뜻이 변한 적이 있는 말입니다. 카펠라는 성당 중에서도 작은 규모의 성당, 즉 경당을 부르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 군인의 외투인 카파(cappa)가 뜻이 변한 말입니다. 세례 받기 전 군인이었던 마르티노 성인(316~397)은 어느 날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카파를 반으로 잘라 내어줬습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 성인의 꿈에 마르티노의 반쪽 카파를 입은 예수님이 나타나 “예비신자 마르티노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줬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마르티노 성인은 그 후 세례를 받고, 나아가 주교가 돼 목자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선종 후에도 성인으로 널리 공경받았지요. 이후 성인의 카파를 보관하기 위한 작은 성당이 세워졌는데요. 사람들은 마르티노 성인의 카파가 있는 이곳을 카펠라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마르티노 성인의 성당처럼 작은 성당, 즉 다른 경당들도 카펠라라고 부르게 됐고, 그래서 카펠라는 성당을 뜻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마르티노 성인의 일화에서 경당, 경당에서 찬미 노래를 부르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관련 없는 줄 알았던 ‘아카펠라’에 참 많은 교회의 이야기가 숨어있던 것 같습니다.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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