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길 잃은 한 마리 양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오늘도 숨 가쁜 하루가 지나갑니다. 새벽 별을 보며 집을 나서고, 어둠이 내려앉은 후에야 돌아오는 고단한 삶의 현장입니다. 휴일이 언제였는지 까마득한 팍팍한 삶 속에서도, 가슴 한편의 작은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들은 폭풍우 속에서 촛불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성전을 향하는 하느님의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은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마태 18,13)고 하셨습니다.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교회는 “길을 잃지 마라, 냉담하지 마라”고 호소하면서도, 정작 그 양들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우물을 하나둘 덮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돌아보게 됩니다. 바리사이의 율법적 의로움을 좇습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좇습니까? 교회는 신자들에게 ‘신앙인의 향기’를 강조하지만, 정작 그들이 발 디디고 선 곳은 삶의 모진 풍파가 몰아치는 일상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높은 담장 위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기꺼이 먼지 날리는 시장통에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들의 언어와 눈높이로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형식보다 ‘정의와 하느님 사랑’을 강조하셨던 그분의 뜻을 되새겨 봅니다. 그리운 것은 목자의 흙냄새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 신부님들에게선 흙냄새가 났습니다. 가정을 방문해 냉담 교우의 차가운 손을 잡고, 가난한 이들을 남몰래 도우시던 그 땀방울이 곧 살아있는 복음이었습니다. 지금의 사제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간혹 양 떼와 함께 걷는 동반자가 아닌 관리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수직적 관계가 아닌, 거친 파도를 한 배를 타고 헤쳐 나가는 동반자, 즉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성직자부터 평신도까지 경청과 대화를 통해 함께 걷는 길입니다. 성령 안에서 서로 존중하며 교회의 방향을 함께 식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목마름을 달래러 찾아가는 미사에서부터 실현되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미사는 모두가 함께 걷는 길을 향해 열려 있는지, 아니면 효율성의 논리로 그 문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효율성을 이유로 미사 시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신앙 안에 머무르라”고 당부하지만, 늦은 퇴근길 지친 몸을 이끌고 온 ‘한 마리 어린양’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갈 곳을 잃습니다. “미사가 있는 더 큰 본당으로 가라”는 말은, 목마른 이에게 “우물 문 닫았으니 딴 마을로 가라”는 안타까운 답변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새벽 미사는 뒤로 밀리고, 저녁 미사마저 줄어드는 현실 속에서 겨우 동네 작은 성당을 찾은 이들에게 ‘풍요로운 본당’ 이야기는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지치고 힘든 그 한 마리 양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라면 이 닫혀가는 문 앞에서 어떤 말씀을 건네셨을까요?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이 이 시대에 오신다면 땀 흘려 늦게 온 신자를 위해 기꺼이 다시 초에 불을 붙이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은 잘 정돈된 아흔아홉 마리의 대열이 아니라, 덤불 속에 갇혀 울고 있는 단 한 마리를 향해 손을 뻗는 그 간절한 마음일 것입니다. 글 _ 전백근 요셉(전주교구 호성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22면

[독자마당] "가정, 말씀으로 피어나는 작은 교회"

대구대교구 대봉본당이 5월 성모 성월을 맞아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고 신앙의 뿌리를 튼튼히 다지기 위해 ‘성모 성월 성경가훈전시회’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본당 공동체가 지난 4년간 꾸준히 기도하며 정성을 쏟아온 ‘가정 성화’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김충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임신부는 가정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자 앞선 4년 동안 매월 넷째 주를 ‘가정 주일’로 지정해 운영해 왔다. 가정 주일에는 온 가족이 함께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가정 기도 바치기, 가정 안에서 세례명 부르기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가정 성화의 영적 토대를 다졌다. 김 신부는 “가정은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가장 작은 교회”라고 강조하며, “지난 4년간 매월 가정 주일을 지내며 쌓아온 기도와 노력이 성경 가훈 전시라는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나게 되어 매우 뜻깊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구대교구의 ‘1인 1개의 성경 구절 갖기 운동’에 발맞춰 신자들이 성령 강림 대축일 전까지 성경 가훈과 더불어 각자의 성경 구절을 정하도록 권장했다.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손길로 완성된 200여 점의 성경 가훈 작품은 5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간 성당과 야외 마당 일원에 전시되었다. 앞서 4월부터 2주간 진행된 접수 기간에는 각 가정이 회의를 거쳐 중심이 되는 성경 구절 중 하나를 선정해 신청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이번 전시는 가정위원회 회원 중 이선영 로사, 박영주 가브리엘라 자매의 노고가 더해져 완성되었다. 이웃 가정이 말씀 안에서 하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자 한 자 정성껏 써 내려간 액자들은 그 자체로 나눔과 사랑의 실천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본당은 전시가 끝난 후, 출품된 성경 가훈 액자들을 각 가정에 전달했다. 각 가정이 거실 등의 공간에 성경 말씀을 모심으로써, 일상에서 ‘작은 교회’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가정위원회 회원들의 정성과 각 가정의 신앙 고백이 담긴 작품들은 전시 기간 내내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각 가정으로 돌아간 성경 가훈은 앞으로 가족 구성원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성모 성월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성모 마리아의 순명과 사랑을 본받아, 각 가정을 성가정으로 가꾸어 나가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_ 예옥현 베로니카(대구대교구 대봉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22면

[독자마당] ‘한사랑 가족 공동체’에서 열두 해를 맞으며

2013년 5월, 이스라엘에서 요르단으로 넘어가는 시간, 프란치스코 수도회 박재한 루카 신부님을 통해 정말 우연히 ‘한사랑 가족 공동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서울 중림동 쪽방촌에 자리 잡아,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밥상과 쉴 곳을 내어주며 자립을 돕는 소중한 사랑방입니다.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신 하느님께서 ‘한사랑 가족 공동체’로 이끌어 주신 시간이 어느덧 12년째 접어듭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봉사한다는 마음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공동체의 식구들과 더불어 보낸 시간을 통해서 천국을 향한 여정에서 만난 벗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만남 자체가 참으로 편안해졌습니다. 함께 먹고 이야기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시간…. 한 달에 한 번뿐이지만, 매월 두 번째 주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날입니다. 아침 일찍 잔칫집 분위기라도 내려고 전이나 튀김을 하는 저희의 마음을 아시는지, 공동체 식구들과 수사님 그리고 간혹 신부님께서도 “냄새 좋아요”라며 맛을 보시곤 합니다. 솜씨가 부족해 아주 맛있게 끓이지는 못하는 국수지만, 요리하는 저희의 정성을 보아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게 드셔 주시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좁은 방에서 거룩한 미사를 드릴 때면,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하실 때도 이렇게 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에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사제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함께해 주시는 수사님들의 모습에서도 하느님께 봉헌된 삶, 즉 그리스도께 바치는 향기가 느껴집니다. 독서와 미사 해설을 맡아 주시는 형제들의 모습은 신심으로 가득하며, 가난한 삶 속에서도 봉헌의 바구니는 정성으로 넘쳐납니다. 가끔 윤 프란치스코 신부님과 다과를 같이할 때 문득 궁금해집니다. 각자 태어난 곳도 다르고 살아왔던 환경도 다른 공동체 구성원들을 신부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이토록 끈끈한 한 식구로 만드셨을까요? 그간 얼마나 많은 기도와 희생으로 노력해 오셨을지 생각하면 저희 또한 본받고자 다짐하게 됩니다. 아울러 그 귀한 시간 속에서 영적 상담과 지도를 받을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윤석찬 프란치스코 신부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 바오로 신부님, 백 에드몬드 신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격의 없이 따뜻하게 받아주시는 한사랑 가족 공동체 실장님과 식구들께도 인사를 전합니다. 백 프란치스코 님과 마리아 님 내외분이 전례와 반주를 통해 하느님께 거룩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봉사해 주시는 것, 한사랑 공동체 식구들을 위해 김치와 찬거리를 만들어 보내주시는 후원자님들, 정성스레 맛깔나는 떡을 만들어오시는 형제님, 단주 모임을 주관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희와 함께 식사 준비를 해 주시는 경기도 용인 지역 군종회원회 회원분들께도 고맙다는 말씀을 지면을 통해 전합니다. “주님, 다양한 환경 속에서 복음의 기쁨을 나눌 수 있게 하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를 당신의 피조물과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영적으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친교의 부르심에 신앙으로 응답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아멘.”(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창설 100주년 기도문 중) 글 _ 김영미 바울라(수원교구 용인 삼가동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22면

[독자마당] 오늘은 나, 내일은 너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마태 25,13 참조) 우리 가족이 함께 다니는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성당에는 연도실이 있습니다. 장례식장이라고도 부르는 그곳에서는 수시로 연도가 이루어지고, 연도 안내판이 성당 마당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태어나는 데는 어느 정도 순서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죽는 데는 순서가 없다는 것이 새삼 제 가슴에 깊이 와닿습니다. 젊은 이도, 나이 든 이도, 건강한 이도, 병든 이도 죽음 앞에서는 평등합니다. 집 근처 대구대교구청 안에 자리한 성직자 묘지로 들어서는 입구 양쪽 벽에는 라틴어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 오늘은 내가 무덤 속에 잠들어 있지만, 내일은 바로 네 차례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미 세상을 떠나 흙 속에 고이 잠들어 있는 이들이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전해 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피해 갈 수 없는 것 한 가지가 바로 죽음입니다. 성당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례 안내를 볼 때마다, 죽음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 가까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수시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이 말씀은 단순한 경고가 아닙니다. 우리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단 한 번 죽고, 그 죽음 이후에는 하느님 대전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심판 때는 사랑의 실천을 많이 했는지를 평가하실 것이고, 그 기준에 따라 영원한 생명이냐 아니면 영원한 벌인지를 결정짓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또 언제 어떻게 우리를 부르실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만 한 가지, 주님께서는 도둑처럼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매 순간을 마지막 순간처럼, 그러나 두려움이 아닌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께서는 서로에게 밥이 되어주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밥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밥이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는 빛나는 상급으로 우리에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고, 저희 또한 그 자리에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여 주소서. 아멘.’ 글 _ 현창걸 세바스티아노(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본당)

발행일 2026-05-24 제3492호 22면

[독자마당] 성모님께 드리는 한 아버지의 고백

아름다운 장미와 빛나는 별 그리고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한 오늘 밤, 그리운 성모님을 불러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모님이 말씀하신 순종의 응답으로,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고 어지신 어머니가 되신 성모님! 그래서 오늘 밤은 더욱더 마음이 뭉클합니다. 1997년 5월의 어느 날 한 영혼이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을 때, 성모님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전구해 주셨습니다. 아무런 바람도 없이 그냥 제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날 성모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속에 휩싸여 방탕의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서서 성모님께 드리는 장미와 촛불을 바라보니, 저의 지난 세월이 더더욱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일흔이 넘은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입니다. 삶의 고비마다 늘 지켜보고, 보듬어 주시는 성모님의 지극한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따뜻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 마음을 온통 사로잡은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의 사랑스러운 자식들도 만났습니다. 그날 이후, 나만을 생각하던 삶에서 벗어나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기도 했고, 때로는 길고 고단하기도 했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아이들이 건강하고 다치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때로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말없이 지켜봐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제, 자식들은 또 다른 가정을 이루어 모두 떠나고 저는 아내와 그 시절을 뒤돌아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을 품에 안으셨던 성모님이 생각납니다. ‘아, 성모님의 마음이 이런 거였구나!’ 묵묵히 뒤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시던 성모님의 모습이 제 어머니의 모습이었고, 제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로서의 제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며 고통 중에서도 묵묵히 견디셨던 그 모습이 이제야 제 마음에 깊이 와닿습니다. 그 옛날, 당신 아들을 십자가 아래에서 바라봐야 하셨던 성모님의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아마 저였다면, 그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자애로운 성모님!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삶은 예전보다 더 불안해졌습니다. 성모님께서 저희를 위해, 우리 자녀들을 위해 지금도 기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길을 잃지 않고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품고 믿음으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항상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손을 내어 주십시오. 성모님, 저희 모든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글 _ 박기섭 바오로(안동교구 주교좌 목성동본당)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2면

[독자마당] 공동체 신앙의 결실, 예비신자 15명 전원 세례

안동교구 의성본당(주임 김한모 바오로 신부)은 2025년 10월 21일 환영식을 열고 하느님을 향한 첫걸음을 내딛는 15명의 예비신자를 기쁘게 맞이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던 그 시작은 이 스콜라스티카 수녀님의 따뜻하고 헌신적인 교리 지도에 힘입어 점차 성숙한 믿음의 여정으로 깊어져 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부활의 기쁨 속에서 예비신자 15명 전원이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긴 교리 과정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끝까지 함께 걸어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공동체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이러한 결실 뒤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애써온 많은 이의 사랑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예비신자 모집에 헌신해 온 안순란 데보라 자매님의 공로가 컸습니다. 자매님은 20명 이상의 예비신자를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데 앞장섰고, 자매님이 보여준 열정은 본당 공동체 안에서 선교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큰 울림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또한 교리 과정 중 전교부의 세심한 지원도 빛을 발했습니다. 전교부는 예비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해 대구대교구 성모당 순례를 비롯하여 다채로운 신앙 체험의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예비신자들은 성지순례를 통해 교회 역사의 현장을 마주하며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한층 단단하게 정립해 나갔으며, 이 과정은 서로 간의 공동체적 유대를 더욱 끈끈하게 강화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여정 속에서 예비신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믿음 안에서 한 가족이 되어갔습니다. 흔히 여러 개인적인 사정과 어려움으로 중도에 길을 멈추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오늘날의 교리 여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낙오자 없이 모두가 세례의 은총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우리 공동체 신앙의 힘이 얼마나 크고 따뜻한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결실입니다. 이번에 성령의 인도로 새로 태어난 15명의 새 신자들이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늘 주님 안에서 기쁨과 희망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더불어 의성본당에서 일어난 이 작은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본당에도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_ 김기환 토마스(안동교구 의성본당 사목회)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2면

[독자마당]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

안개가 자욱한 마음을 화창하게 하기 위하여 이 노래 저 노래 다 들어보아도 성가만이 제 마음에 안개를 걷어가 줍니다 이 걱정 저 걱정으로 구름 낀 흐린 마음을 맑게 하고자 이 책 저 책을 다 펴보아도 성경만이 제 마음에 구름을 걷히게 해 줍니다 이 분심 저 분심으로 원망과 후회와 서러움으로 송곳처럼 모가 나 있는 못생긴 제 가슴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시간은 꽃잎처럼 둥글둥글 예뻐져서 죄 없는 새처럼 가벼워집니다 일흔이 넘은 세월 사연 많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변함없이 언제 들어도 종일 들어도 싫증 나지 않고 언제나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아름다운 성가와 신비로운 성경과 은혜로운 미사입니다 저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보약보다 더 좋은 보물입니다 저에게 이토록 고귀한 보물이 있으니 저는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요 가장 건강한 사람입니다 믿음도 부족한 저를 오래오래 예뻐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글 _ 김희님 마리아(부산교구 장림본당)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22면

[독자마당] 성모님께 바치는 글

“나의 어머니 은총의 성모님” 싱그러운 오월, 성모 성월에 은총이 가득하신 천상의 어머니와 사랑으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사랑의 어머니, 나의 허물과 원죄까지 굽어살피시고 세월이 흐르는 것처럼 더욱 그리움이 쌓이니 어머니, 당신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어머니의 미소같이 활짝 핀 장미처럼 위로의 꽃이 되어 세상 모든 근심 걱정에 굳어있던 얼굴과 그 입가에 웃음이 가득하도록 성모님을 바라봅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언제나처럼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사는 이 몸 매일이 그립고 매일이 감사하기에 그 마음 그대로 모아 기도드립니다.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와 오월에 더 빛나시는 천상의 어머니, 나의 하늘 엄마 두 분 어머니를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어두운 이 밤 두 분을 가슴에 안고 장미꽃 하나하나 엮어 만든 로사리오로 감사의 기도를 바치옵니다. 글 _ 전종석 호영 베드로 ※ 독자마당은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과 따뜻한 신앙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일상 속 은총의 순간들, 이웃과 나누고 싶은 미담을 자유롭게 보내 주세요.(A4 ⅔장 이내) 보내실 곳 서울 광진구 능동로 37길 11 2층 이메일 jebo@catimes.kr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2면

[독자마당] “마석본당의 부활은 40년 동안 지속될 것입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손은 바쁩니다. 전 신자가 모여 성당 구석구석을 반듯하고 반질반질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구석은 성당이 생기고 처음으로 손이 닿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40여 년 만에 닦여 나가는 먼지는, 우리가 그동안 ‘내 성당’보다는 ‘마석성당’ 신자였음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쌓아두고 미뤄두며 살아온, 타성에 젖어, 또 새 성당 건축에 대한 막연한 그림에 기대어 정리되지 못한 시공간에서 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보며 마음이 산란하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무겁고 깊은 짐을 덜어내니 이내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애쓰는 형제님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성당 올 때마다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첫 번째 놀라운 일은, 주임신부님께서 성당 안으로 이사를 오신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감실에 계신 예수님과 마당에 서 계신 성모님께 성당을 맡긴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동안 뒤척이시느라 밤이 편치 않으셨을 신부님이 예수님과 한 마당을 쓰시게 된 일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예사모’(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르신 모임) 회원분들이 쾌적하고 넓은 공간에서 식사하시게 된 일입니다. 이곳은 회합실과 교리실로도 잘 쓰일 것 같습니다. 따스한 나무 소재로 장식된 실내 벽면 덕분에 본당에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이 외에도 성당 출입문이 자동문으로 바뀌었고, 작은 본당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성가대를 1층으로 옮겨 2층 공간이 생겼습니다. 좁고 어두웠던 고해실은 단골을 삼고 싶을 만큼 편안합니다. 성당 중앙에 깔린 빨간 카펫은 보는 이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만듭니다. 교중미사 후 성당에 머무르고 싶게 야외 카페가 정돈되었고, 성수대 옆에 새로이 모셔져 본당의 품격을 높여주신 성모님의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오랜 시간 마당을 내려다보며 우리를 지켜주던 십자가가 듬직한 청동제로 바뀌었습니다. 동네 이웃과 함께 쓰던 담을 걷어내고 새로 단장된 모습은 성당을 더욱 단아하게 만듭니다. 성당 구석구석은 물론, 회랑을 대신한 마당의 가제보(Gazebo, 야외 쉼터)는 신자들을 배려하는 본당 신부님 마음을 읽게 됩니다.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감사의 제목들은 하느님께서는 아실 것입니다. 본당 주임 요셉 신부님은 미사 시간 외에는 늘 작업복 차림입니다. 오죽하면 어느 신자가 “마석본당 신자세요?”라고 물었다는 일화에 맘껏 웃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만큼 성당을 향한 신부님의 사랑이 고스란히 묻어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열정에 화답하여, 물적 기증과 노동의 땀방울을 보태주신 교우 여러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죽어서 거듭나라. 죽어라, 그리고 생성하라.”(괴테 「성스러운 동경」 중) 이 말은 인간 정신이 이뤄낼 수 있는 최고의 역동적 도약을 표현한 말이라 합니다. 이제 다시 맞이한 예수님의 부활 시기에, 우리 본당의 새로운 40년이 도약의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부활하신 예수님께 기도드립니다. 아멘. 글 _ 이순일 마리아(의정부교구 남양주 마석본당)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22면

[독자마당] 왕과 사는 남자, 신부와 사는 남자

경기도 용인 고초골 근처 학일리에서 양봉하는 말씀의 성모 영보 수녀회 수녀님들이 1500만 국민들이 관람했다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여 달라고 성화를 해서 함께 시내에 나가 영화를 관람했다. 16살 나이에 숙부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온 단종, 그리고 마을 호장 엄흥도와 주민들 사이 인간미 넘치는 삶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엄흥도가 단종의 주검을 수습해 선산에 묻었다는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한 슬픈 영화였다. 팝콘을 먹으면서도 눈물을 훔쳐내는 수녀님들과는 달리, 고초골 촌장인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고종으로부터 ‘충의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엄흥도와 비슷한 인생을 살다 떠난 신앙의 선조 ‘이민식 빈첸시오’가 떠올랐다. 고초골 근처 먹뱅이에 살던 17살 청년 이민식은 한국교회 첫 사제로 서품을 받고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도와 은이성지를 중심으로 근처 공소인 싸리틔, 미리내, 어농, 고초골, 용바위, 시어골, 한터를 안내하고 미사 때는 복사를 섰던 김 신부님의 말동무였다. 5개월 동안 공소를 안내하고 미사 봉헌을 도왔던 이민식은 경비가 삼엄한 육로 대신 바닷길을 열기 위해 연평도 근처 순위도로 갔다가 관헌들에게 붙잡혀 서울 새남터에서 참수당하고 모래사장에 암매장되었다는 김대건 신부님의 소식을 전해 듣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누군가는 김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새남터로 발길을 재촉하여 올라간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 달이 넘은 신부님을 모셔 오기 위해 지게에 이불을 둘둘 말아 올리고 머리를 감쌀 큰 보자기를 준비하여 새남터에 도착하니 아직도 관헌들이 지키고 있었다. 며칠을 조심히 살피다 관헌들에게 술을 사다 주고 곯아떨어지게 한 이민식은 모래사장을 맨손으로 파고는 썩어가는 신부님의 시신을 모시고 밤으로, 밤으로 남태령을 넘고 하우고개를 넘어 지금의 신덕(은이) 고개와 망덕(해실이) 고개를 지나 애덕(오두재) 고개 앞에 이르게 된다. 신자들과 함께 조용히 장례를 치른 이민식은 자신의 선산인 지금의 미리내에 신부님을 모셨다. 그는 김 신부님을 따라 사제의 꿈을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순교자 곁에 묻어 달라는 페레올 주교님과 김 신부님의 어머니 고 우르술라도 김 신부님 곁에 모시고 92살까지 묘지를 지킨다. 훗날 미리내가 성역화되면서 이민식의 후손들은 선산을 교회에 기증했고, 이민식도 신부님 곁에 묻히게 됐다. 단종의 장례를 치르고 장능에 모신 충의공 엄흥도는 ‘왕과 사는 남자’로 세인들의 관심을 받고 영월은 관광지로 주목받게 됐지만, 아직도 김대건 신부의 남자인 이민식은 신자들에게 잊힌 존재로 미리내 김 신부님 옆에 말없이 묻혀 있다. 먼 옛날이야기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 교회에서는 이민식에게 아무런 공적 치하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김 신부님의 유해를 받들어 모신 빈첸시오와 그 후손들에게 마땅히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공로를 치하하는 교회 훈장이라도 추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년 전 원삼본당 주임 겸 고초골 피정의 집 원장으로 발령받아 고초골에 왔다. 이때 만난 이민식의 6대손 이선행 요아킴 회장님은 병자 영성체를 하시며 입에 침이 마르게 이민식의 이야기를 전해주셨고, 그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초상화를 보여 주며 대단한 자부심으로 살고 계셨다. 지난해 고초골 마지막 공소회장을 지내셨던 이선행님이 선종하셨고, 지금은 요아킴 회장님의 막내아들이자 이민식의 7대손인 바오로가 피정의 집 관리장으로 고초골을 지키고 있다. 단종의 남자가 엄흥도라면 김대건 신부님과 살았던 남자는 이민식 빈첸시오인 것이다. 글 _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수원교구 용인 원삼본당 주임)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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