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생명의 존엄 지키는 데 앞장서자

최근 세계 각국에서 안락사 합법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입법 시도가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인간 생명의 본질과 존엄성을 깊이 위협하는 일이다. 가톨릭교회는 안락사를 단호히 반대한다. 안락사는 어떤 이유에서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죽음을 유발하는 행위로, 그 본질은 ‘살인’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고귀한 선물이며, 시작부터 끝까지 하느님만이 그 주인이시다. 따라서 생명을 해치는 어떠한 행위도 교회는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으로 안락사에 대한 찬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은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증거다. 삶의 가치에 조건을 두고, 고통 중에 있는 생명은 죽어도 된다는 생각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가치는 고통이나 건강 상태로 측정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병들고 약해졌더라도 여전히 존귀하며 보호받아야 한다. 우리는 그 어떤 생명도 예외 없이 소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해야 한다. 생명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써 주신 선물이자 우리가 지켜야 할 소명이다.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 위에, 모든 생명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세워야 할 참된 인간 문명이다. 안락사 허용은 문명의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생명을 죽이는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도록 연대하고 돌보는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생명을 위한 법, 생명을 위한 문화, 생명을 위한 사회를 향해 나아가자. 생명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하느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3면

인공지능을 배우자

인공지능(AI)이 미래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교회 안에서도 AI를 신앙생활과 사목활동에 활용하려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수원교구가 사제들을 대상으로 생성형 AI의 기본 원리와 활용 방법을 배우는 자리를 마련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교회의 AI에 대한 첫 번째 관심은 신앙과 윤리적 측면에서의 고민이다. 교회는 인간 문명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 늘 신중하면서도 적극적인 접근 방식을 취해 왔다. 영화와 TV 등 영상 매체의 발달, 통신 수단과 디지털 기기의 통합으로 형성된 사이버 세계에 대해서도 교회는 사목적 우려와 더불어 복음 선포에 기여할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왔다. AI의 발달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과학기술보다도 더 깊고 광범위한 영향을 사회와 세계에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교회는 어떤 과학기술이나 문명의 이기(利器)든,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AI가 인간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그것이 항상 인간 중심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당위성은 더욱 커진다. 그러나 교회는 AI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오히려 AI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더욱 적극적으로 이를 배우려는 자세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 AI의 기본 원리와 활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문명의 이기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교회의 기본 가르침은 AI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교회가 이를 적극적으로 선용하는 것은 신앙적 소명이기도 하다.

발행일 2025-07-13 제3450호 23면

신앙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도’

가톨릭 신앙의 중심에는 ‘기도하는 삶’이 있다. 매일의 삶 속에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신앙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식이 바로 기도다. 특히 식사 전후 기도와 아침·저녁기도, 삼종기도는 일상에서 신앙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가톨릭신문과 가톨릭굿뉴스가 실시한 ‘가톨릭 POLL’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7%가 식사 전 기도를 “대체로 바친다”고 응답했다. 이는 많은 신자가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식탁 앞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뜻이다. 식사 후 기도(57%)와 아침·저녁기도(62%)도 절반 이상의 실천율을 보였다. 하지만 삼종기도(부활삼종기도)의 경우에는 36%만이 실천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기도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자 선교의 실천이다. 바쁜 현대인의 삶 속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습관은 하느님 안에서 질서 있는 신앙생활을 유지하게 해준다. 특히 삼종기도는 교회 전통 안에서 아침과 정오, 저녁 등 하루의 중심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중요한 전례다. 많은 이가 이를 ‘신앙인의 의무’이자 ‘공동체와 함께하는 전례’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은 부족한 현실이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끊임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식사 전후의 짧은 기도라도 성실히 바친다면, 그것은 곧 신앙인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세상을 향한 작은 선교의 불씨가 될 수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어 하느님을 기억하고 공동체와 하나 되는 기도는 우리 신앙의 뿌리를 더욱 깊게 만들 것이다. 기도는 신앙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23면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자

오늘날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에 가까운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누누이 경고했던 이 끔찍한 현실은 지난 3월 20일, 그의 마지막 부활절 미사 강론에서도 되풀이됐다. 그는 “전쟁 당사국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인질을 석방하며, 굶주린 채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레오 14세 교황 역시 취임 직후부터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며 “교회는 우크라이나, 이란,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 울려 나오는 절규에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결코 전쟁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며,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해결이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어린아이와 여성, 노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집과 학교, 병원이 무너지고, 삶의 터전이 파괴됐다. 인도주의적 지원이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이해관계와 무기 거래는 폭력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책무는 분명하다. 세상의 평화를 위해,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 안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해야 한다. 주님의 평화가 세상에 깃들도록, 우리 모두가 ‘평화의 도구’가 돼야 한다. 지금도 전쟁터에서는 수많은 이가 살아가던 터전을 잃고 굶주림과 폭력에 울고 있다. 그 절규를 외면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는 참 신앙인이라 할 수 없다. 교회는 언제나 평화의 사도가 되어야 하며,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치자.

발행일 2025-07-06 제3449호 23면

청소년 자살, 더 이상은 안된다

최근 부산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 3명이 함께 숨진 이유가 학업 스트레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입시와 학업 부담, 진로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는 아이들이 얼마나 큰 압박감에 시달렸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5월 발표한 ‘2025년 청소년 통계’에 의하면, 2023년 청소년 자살 사망자는 인구 10만 명당 11.7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위인 안전사고로 인한 청소년 사망자 수(3.2명)의 4배에 달해 2011년 이후 13년째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극적인 현실이 현행 교육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며 고도 경쟁 위주의 교육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번 사건을 청소년들이 처한 삶의 조건과, 학교·사회·국가가 함께 만들어 낸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했다. 굳이 전문적인 진단을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과 그 친구들의 참담한 현실을 매일 눈으로 보고 있다. 더 이상 우리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아야 한다. 사실 문제는 교육제도와 학교 현장의 모순에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전반의 문제이기에 단기적이고 미시적인 정책으로 온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극도의 입시 경쟁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교육 제도와 학교 현장은 반드시 개선돼야 하며, 아이들의 정서적 건강을 돌보는 시스템과 안전망의 강화는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는 시급한 문제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3면

참된 교회로 나아가는 사랑의 실천, 한국 카리타스 50년

‘교회가 참된 교회가 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카리타스’라는 말처럼, 지난 50년간 한국 카리타스는 한국 사회와 세계 곳곳의 고통받는 이웃을 위한 사랑과 나눔의 길을 걸어왔다. 1975년 ‘인성회’ 설립으로 시작한 한국 카리타스는 가난과 재난, 전쟁과 박해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복음적 사랑을 실천해 왔다. 단순한 원조를 넘어, 연대와 회복을 통해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도록 이끌어온 여정이었다. 이 아름다운 사명의 뒤에는 조용히 손을 내민 수많은 후원자들과 독지가들이 있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자신이 받은 것을 다시 나누며, 카리타스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그 덕분에 ‘받는 교회’로 출발했던 한국 교회는 이제 다른 나라의 아픔까지 품을 수 있는 ‘주는 교회’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모든 여정은 결국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했다. 절망의 골짜기에서도 사람을 향한 신뢰를 잃지 않았고, 나눔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진리를 함께 증명해 왔다. 한국 카리타스의 50년은 단순히 한 기관의 역사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냈는지를 보여주는 ‘나눔의 역사’이다. 이제 다음 50년을 향해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더 낮은 곳으로, 더 외로운 이들에게 나아가는 용기야말로 참된 교회의 본질이며, 카리타스 정신의 핵심이다. 50년을 함께 걸어온 모든 이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한국 카리타스가 앞으로도 세상의 눈물이 머무는 곳에 가장 먼저 다가서는 사랑의 이름이 되기를 기원한다.

발행일 2025-06-29 제3448호 23면

거룩한 사제를 위해

교회는 매년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낸다. 특별히 그 거룩한 날 중 하루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로 기념한다. 한국 주교회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이날을 ‘사제 성화의 날’로 정해 모든 하느님 백성이 사제직의 존엄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도록 했다. 오늘날 교회는 사제직과 관련해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그중 하나는 가톨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성직자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다. 그러나 거룩한 성사를 집행함으로써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사제직의 존엄함이, 성직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 소홀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 심화되는 사제 성소의 부족은 교회 생활과 신앙 생활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사제 수가 급감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사제 지망자의 감소로 인해 원로 사목자의 비율은 높아지고, 사제단의 고령화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제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고, 완전한 성덕을 향해 나아가며, 교회와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직분이다. 사제들 스스로 성덕을 향한 자신의 소명을 철저히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특별히 신자들은 사제직의 존엄함을 잊지 않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해 기도와 정성으로 함께해야 한다. 사제 성화는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동체 전체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동반하며 지지할 때,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심성월을 맞아, 우리 모두가 사제 성화를 위한 기도의 불을 다시 밝히자.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3면

민족 화해와 일치를 향한 희망 잃지 말아야

올해 우리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며 기쁨과 아픔이 교차하는 역사의 경계에 서 있다. 해방은 완전한 독립을 뜻하지 못했고, 분단은 지금껏 민족의 화해를 가로막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의 비상계엄 사태와 그 여파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불신이 얼마나 깊은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 뿌리 깊은 분열과 증오의 시대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남북의 긴장, 사회의 이념적 대립, 정치적 갈등은 단순한 사건이 아닌 분단 80년의 잔재가 만들어낸 결과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분열을 넘어서려는 첫걸음은 바로 ‘희망을 잃지 않는 용기’이며, 이는 복음에서 비롯된다. 희망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화해를 이루는 실천의 동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지막 부활 우르비 엣 오르비에서 “사랑이 증오를 이겼고, 빛이 어둠을 이겼으며, 용서가 복수를 이겼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인은 이 부활 신앙 안에서 화해의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평화는 제도나 법 이전에, 서로를 돌보는 일상적 선택에서 시작된다. 광장보다 가정에서, SNS보다 침묵의 기도에서 우리는 평화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 또한 교회가 선포한 희년의 정신, ‘희망의 순례자들’처럼 우리는 갈등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의 순례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갈등의 경계에 서 있는 침묵하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꺼지지 않는 희망을 품고,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함께 내딛는 것이다. 이 땅의 진정한 해방은 그때에야 완성될 것이다.

발행일 2025-06-22 제3447호 23면

인간 존엄성과 공동선을 수호하는 정부가 되어야

대한민국을 이끌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 이해와 관용을 통한 사회 통합일 것이다. 그동안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모든 국민이 극단적 대립의 양상을 보여왔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치적 이권을 위해서 사람들을 갈라 세우려 했던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에게 드리는 축하와 당부’에서 “지금 우리에게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정의와 참된 평화의 길을 걸어갈 믿음직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는 새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벽이 아닌 다리를 세우는 지도자’로서 공동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기를 희망했다. 이는 결코 피할 수 없는 ‘갈등과 대립’ 속에서도 원칙을 잃어버리지 않고 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헌신해 달라는 요청이다. 세대와 성별, 지역에 따라 국민들을 가르며 혐오와 배제를 정치 권력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악용했던 구태를 이제는 단호하게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국가 권력이 우리 사회의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살피고 보호하는 것을 가장 첫 번째 의무로 여기기를 바란다. 모든 나라와 사회에서 정치와 문화의 성숙도를 드러내는 것은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의 수준이다.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경제의 발전에 따라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생계조차 유지가 어려운 절대적 빈곤의 정도는 완화된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존재하며, 이른바 가진 이와 못 가진 이의 격차는 갈수록 극심하게 벌어져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 고착되고 있다.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와 동행하고 빈부 격차를 완화할 수 있는, 가난한 이들과 동행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새 정부가 주력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는 남북 간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모습을 봐야 했다. 남북 관계는 남한과 북한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주변국들의 정세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사실 그간 정부는 남북 관계의 회복보다는 대립과 강경 대응만을 추구해 왔다. 증오와 적개심이 아니라 화해와 일치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아울러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생태환경의 보호 정책이다. 무분별한 국토개발과 핵발전 위주의 에너지 정책 등은 기후위기 시대에 공동의 집 지구를 보호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의무에 반대되는 국가 정책 방향이다. 개발과 성장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이 지구 환경의 파괴에 대한 우려마저 외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은 어느 때보다도 더 크고 절실하다. 공동선에 대한 무관심과 그릇된 권력욕과 집단적 이기주의 등이 결합될 때 민주적 헌정 질서와 법치, 사회 정의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음을 온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새 대통령과 정부가 이러한 국민의 우려와 기대를 잊지 않고 오로지 공동선과 국민의 권리와 행복을 지켜주는 데 헌신해 주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발행일 2025-06-15 제3446호 23면

고(故) 유수일 주교의 안식을 기도하며

제3대 군종교구장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5월 28일 선종했다. 이틀 동안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마련된 빈소에는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슬픔을 달래며 고인의 생전 모습을 돌아보는 조문객들이 줄을 이어 그가 얼마나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유수일 주교는 1945년 논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작은형제회에 입회했다. 사제품을 받은 후에는 수원교구와 마산교구 등에서 사목활동을 했고 미국 유학 뒤 작은형제회 한국 관구장과 로마 본부 총평의원을 지냈다. 유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된 2010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군종교구 식구 모두를 똑같은 형제자매로 대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다짐대로 유 주교는 항상 성경 말씀에 바탕을 둔 신앙을 강조하고, 모든 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고 고백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는 특히 군 복음화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군사목을 지원하는 군종후원회를 활성화하고 직접 장병들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청년들이 군 생활을 할 때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능한 많은 청년이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 주교를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한결같이 겸손하고 정이 넘치는 다정다감한 모습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 소박하고 따뜻한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남긴 뜻을 우리 모두가 간직할 것을 다짐하며 주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기도한다.

발행일 2025-06-08 제3445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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