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사람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자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값싼 노동력’이라는 낡은 시선과 이들의 삶을 억압하는 제도 사이에서 쉽게 다치고, 쉽게 버려진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숨진 유학생, 지게차에 결박된 채 끌려다닌 노동자 사건은 예외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이 겪는 실제의 삶이다. 폭행과 차별, 장시간 노동과 휴일 미보장, 임금체불은 반복되지만, 언어 장벽과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 이동 제한은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권리조차 배제되는 현실은 더 큰 비극을 예고한다. 교회는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고백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이주민을 환대하는 공동체야말로 그 존엄이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본당과 신자들은 이주노동자가 겪는 다양한 어려움을 보듬어 주는 등, 이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동반해야 한다.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식탁을 나누며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체험하게 하는 것도 복음의 실천이다. 미등록 이주민 산모와 아기를 돕는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여수이주민지원센터의 ‘친정엄마 프로젝트’는 그 대표적인 예다. 국가와 사회는 제도를 고쳐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의 생명줄이며, 고의·상습 체불은 ‘절도’에 준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체불 사업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노동자의 실질적 사업장 이동권을 보장하며, 단속의 인권 기준과 긴급구제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공동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이다. 오늘 우리의 기도와 연대가, ‘설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이들에게 사람답게 살 권리를 돌려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3면

그리스도인은 갈등 치유하는 ‘화해의 사도’

교회는 매년 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25일까지 8일간을 일치 주간으로 지내며 함께 기도한다. 종교에 대한 무관심과 물질만능주의, 양극화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 일치를 위한 기도는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는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에페 4,4) 제목의 공동담화문을 발표하고,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본보기가 되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하는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가 형식적인 만남을 넘어 영적 일치와 우정을 쌓음으로써 세상에 희망을 전해야 함을 당부한 것이다. 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청주교구 서운동본당과 한국기독교장로회 청주제일교회 이야기는 좋은 본보기다. 청주제일교회는 복자 오반지(바오로)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 터로 알려진 교회 내 부지를 제공했고, 서운동본당은 그곳에 ‘순교 정원’과 더불어 지역사회에 기여해 온 제일교회의 의미를 기리는 ‘민주 정원’도 함께 조성했다. 충청북도의 종교 평화 프로그램에도 포함됐다고 하니, 교파 간 갈등과 반목 대신 화해와 일치를 보여주는 의미도 크다. 개신교회 뒷마당을 드나드는 천주교 신자들과 이를 환대하는 개신교 신자들의 모습이 생경하지 않은 것은,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일치 주간을 맞아 이 두 교회의 모습처럼 우리도 열린 마음으로 서로 화합하며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화해의 사도가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함께 기도하자.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3면

‘제주교구 복음화센터’ 출범을 축하하며

‘제주교구 복음화센터’가 2026년 새해 첫날 공식 출범했다.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함께 교회의 가르침을 배우고 나누며, 이를 지역사회에서 실천하도록 돕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신앙이 개인의 위안에 머물지 않고, 삶의 선택과 공동체의 방향을 비추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는가’만큼 ‘어떻게 살아내는가’를 묻는 자리가 필요하다. 제주교구의 이번 시도는 그 물음에 응답하려는 결단으로 읽힌다. 복음화센터의 강점은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구조’와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지역의 장벽을 낮추고, 교회의 가르침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문을 연다. 교회 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참여자들이 질문과 고민을 듣고 토론에 참여하도록 설계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본격적인 시노달리타스 이행기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교육의 산실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교회의 가르침은 ‘정답’의 목록이 아니라 ‘길’의 제시다. 인간 존엄, 공동선, 연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같은 원리는 문헌 속 문장으로만 존재할 때 힘을 잃는다. 가정에서의 돌봄, 일터에서의 정의, 지역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참여로 구체화될 때 비로소 복음은 살아 움직인다.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는 올해 사목교서에서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숨 쉬는 포용과 연대, 함께 빛을 나누는 평화의 소공동체가 되자”고 당부했다. 복음화센터가 이 여정의 ‘구심점’이 되길 바란다. 교회의 가르침을 더 쉽게 접하고,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용기 있게 실천하도록 돕는 배움의 장, 나눔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3면

‘K-성지’를 순교영성 체험의 공간으로

한국교회 성지를 찾는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2025년 서울대교구 내 성지를 찾은 외국인 순례자는 38만 명을 넘어섰고, 성지 미사 참례자 또한 전년 대비 11% 늘었다. 전국 교구의 성지가 다국어 안내 체계를 정비하고 디지털 콘텐츠를 확충하는 등 외국인 순례자 환대 채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하지만 진정 고민해야 할 본질은 한국교회 순교영성을 세계인과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로 어떻게 승화시키느냐에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콘텐츠가 한국의 전통과 결합해 전 세계인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한국 고유의 색채가 세련된 감각과 만났을 때 얼마나 강한 설득력이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성지순례 역시 이러한 ‘K-컬처’의 역동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할 수 있다. 순교자들의 드라마 같은 생애와 신앙 수호 여정을 간직한 성지가 한국교회의 활기찬 모습과 연결될 때, 외국인 순례자들에게는 더 매력적이고 깊이 있는 영적 체험의 공간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14년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땅의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희망과 일치를 선사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말처럼, 한국 순교자들의 신심과 영성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평등과 희생, 인간 존엄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불과 200여 년 전 신앙을 증거한 신앙 선조들의 삶은, 세계 각국 순례자들에게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는 신앙의 모델’로 다가갈 수 있다. 모든 순례자가 한국 순교자들의 숨결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정성 어린 마중물을 준비해야 할 때다.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3면

진실을 향한 책임이야말로 참된 추모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된 그날의 비행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끝났고, 수많은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어처구니없는 사고 앞에서 남겨진 이들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서 있다.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는 이 비극 앞에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 결코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하며, 유가족들에게 하느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청한다. 유가족의 슬픔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남아 있다. 그래서 추모는 애도에만 머물 수 없다. 기억은 반드시 성찰과 책임으로 이어져야 한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무안공항에서 봉헌된 참사 1주기 추모미사에서 “기억하지 않고,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런 참사는 다시 반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참사는 안전을 비용과 효율의 문제로 다뤄 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무책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옥 대주교가 지적했듯, 유가족들이 1년이 지나도록 공항 로비를 떠나지 못한 현실은 이 사회가 아직 참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는 유가족의 요청처럼 정부가 진상 규명을 끝까지 완수하고, 책임자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는 일을 외면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이는 공동선을 향한 도덕적 요청이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의다. 진실 없는 추모는 공허하고, 책임 없는 애도는 또 다른 방치를 낳을 뿐이다.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3면

희년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상에 희망을 전하자

‘희망의 순례자’를 주제로 지낸 2025년 희년이 마무리됐다. 한국교회는 희년을 지내며 이 주제를 단순한 구호로 두지 않고,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실제 삶으로 옮기려 노력했다. 각 교구에서 봉헌된 희년 폐막미사는 ‘희망의 순례’가 끝이 아니라, 희년 동안 받은 은총을 되짚고 다음 걸음을 내딛는 자리였다. 희년 기간 한국교회는 다양한 행사를 통해 ‘순례’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각 교구는 순례지를 지정하고 우리가 지상의 순례자로서 이 세상에 희망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비신자와 함께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희년이 성당 안의 행사에만 갇히지 않고, 더 많은 이가 복음의 기쁨을 접하도록 문을 열었다. 또한 생태 환경 회복을 위해 함께한 노력은, 희망이 미래 세대와 피조물을 향한 책임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드러냈다. 젊은이들을 향한 교회의 관심은 희년의 중요한 표지였다. 특히 로마에서 열린 ‘젊은이들의 희년’에 한국 청년 1400여 명이 참여한 일은, 희년이 세계 교회와 호흡을 맞추는 자리였음을 보여줬다. 이제 희년의 성문이 닫히지만 ‘희망의 순례’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희년이 남긴 과제는 더 선명해졌다. 낯선 이를 환대하고, 가난한 이의 식탁을 지키며, 상처 입은 이들의 기억을 함께 짊어지고, 피조물의 신음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폐막미사에서 요청한 대로, 희년 동안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바탕으로 계속해서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3면

수원교구 보좌주교 임명을 축하하며

곽진상 신부의 수원교구 보좌주교 임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성탄을 앞둔 시기에 전해진 새 주교 임명 소식은 수원교구민에게 큰 위로이자 새로운 출발의 표지가 될 수 있다. 총대리 문희종 주교가 말했듯 이는 하느님께서 교구에 주신 ‘크나큰 성탄 선물’이다. 곽 주교임명자는 임명 소식을 듣고 자신이 합당하지 않다며 떨림과 두려움을 고백했다. 그러나 성체 앞에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는 성모님의 순명을 떠올리며 받아들였다. 이는 그의 겸손한 성품을 보여준다. 곽 주교임명자는 오래도록 경청과 포용의 사목자로 기억돼 왔고, 유학과 연구, 신학교 교수와 총장 직무를 통해 사제 양성에 헌신해 왔다. 앙리 드 뤼박 추기경 연구와 번역, 덴칭거 편람 번역 참여는 교회의 가르침을 오늘의 언어로 전하려는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본당 사목에서도 ‘새로운 방법과 열정’으로 침체된 공동체를 일으켜 세웠다. 수원교구는 1963년 설정 이후 빠르게 성장했고, 지금도 도시화·고령화, 청년 신앙의 약화, 돌봄과 복지의 과제, 사회적 갈등의 심화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보좌주교의 직무는 교구장 주교의 사목을 가까이에서 돕고 교구의 현안을 함께 짊어지는 일이다. 곽 주교임명자가 밝힌 다짐처럼 교구장 주교와 총대리 주교를 성심껏 보필하며, 복음화와 시노달리타스의 길에서 교구의 내적 쇄신과 사회적 책임을 함께 이끌어 주길 바란다. 특히 청년과 가정, 가난한 이웃 곁에서 ‘성탄 선물로 오신 주교님’으로 기쁘게 섬기는 목자가 되시길 기원한다. 교구민 모두가 기도와 협력으로 새 주교의 걸음에 동행해야 하겠다.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바란다.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23면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새해를 시작하는 1월 1일은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원하는 세계 평화의 날이다. 오늘날 세계는 마치 끝이 없는 듯한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건네신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는 갈라진 세상에 다시금 그리스도의 참된 평화가 회복되기를 바라시는 주님의 간절한 기원이자,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격려다. 레오 14세 교황은 1월 1일 발표한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이렇게 묻는다. 참된 평화는 무기의 균형이 아니라 신뢰와 대화, 그리고 생명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는 진실을 우리는 잊고 있지 않은가? 불행하게도 오늘날 세상 곳곳에서는 분쟁과 전쟁의 참상이 펼쳐지고, 군비 증강은 마치 불가피한 선택처럼 합리화되고 있다. 평화는 단지 이상이거나 비현실적인 망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시작한다면, 평화는 허황한 이상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으로 구체화될 것이다. 여전히 분단의 비극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평화는 여전히 가시밭길이며, 긴장과 서로에 대한 불신은 깊어만 가고 있다. 군사적 대응과 안보 논리가 대화를 압도하면서 평화는 더욱 멀어 보인다. 하지만 교황이 분명히 말하듯, 평화는 목표 이전에 이미 주어진 실재이며 우리가 걸어가야 할 여정이다. 말과 생각에서부터 무장을 해제하고, 상대를 적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담화가 강조하듯, 평화를 전하려면 우리 안에 먼저 평화가 불타올라야 한다. 올 한 해, “평화가 여러분과 우리 모두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23면

낮은 이와 함께 주님 성탄의 기쁨을

주님의 성탄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축하드린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신비이다. 주님께서는 태어나시자마자 베들레헴 마구간의 구유, 가장 낮은 자리에 누우셨다. ‘빵의 집’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주님은 훗날 생명의 빵이 되시어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하셨다. 마리아와 요셉의 숨결 안에서 시작된 그 평화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전쟁과 폭력, 탐욕과 혐오, 분열로 신음하고 있다. 대화는 사라지고 대립만 남은 사회 분위기, 진영 논리에 기대어 무관심을 키우는 태도가 공동선을 흔들고 있다. 기술과 인공지능마저 돈벌이와 선동의 도구로 소비되며, 약자를 더 밀어내는 장면을 우리는 목도한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천사들의 노래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성탄은 ‘새로운 시작’이며 동시에 ‘책임의 회복’이어야 한다. 동방박사와 목자들처럼, 소외된 이들 가운데 계신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을 청해야 한다. 내 안의 교만과 무관심을 비우고 가난한 이웃, 이주민, 홀로 지내는 어르신과 기쁨을 나눌 때, 구유는 다시 하느님 사랑이 머무는 자리로 되살아날 수 있다. 희년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맞는 올해 성탄, 교회는 ‘함께 걷는’ 시노드의 길 위에서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끼니를 나누고, 시간을 내어 봉사하며, 상처받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작은 실천이 성탄의 빛을 오늘의 거리와 가정, 공동체에 비출 것이다. 자비와 나눔으로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자. 낮은 이로 오신 주님을 기억하며, 가장 낮은 이웃에게 먼저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27면

아픔을 딛고 다시 ‘섬김’을 희망하자

숨 가쁘게 달려온 2025년이 저물어가고 있다. 지난 한 해는 우리에게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하고 고단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은 극한 대립으로 치달았고, 이념과 세대, 계층 간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경제적 한파로 서민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고, 정작 보호받아야 할 이들은 사회의 그늘 속에서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이 혼돈의 시대를 넘어 희망찬 새해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까지 감내하는 희생과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셨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국가와 위정자들의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촉구한다. 우리는 정치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를 목격했다. 권력은 사유화할 수 있는 전리품이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헌신해야 할 무거운 십자가와 같다. 올바른 정치의 길은 희생과 헌신이라는 면에서 예수님의 길과 닮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모범을 따를 각오를 다져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여야 한다. 예수님께서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듯,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들을 향한 연대와 나눔이야말로 신앙인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다. 지난 아픔을 딛고 일어나 다시 서로를 섬기는 공동체로 나아가자.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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