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본당의 신앙 토착화에 대한 기대

한국 사람들은 강원도 정선 하면 ‘정선아리랑’을 먼저 떠올린다. 정선에는 원주교구 정선본당이 있다. 본당은 올해 3월 8일 한옥풍의 성당 외벽에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 14처를 설치해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받았다. 10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제51회 정선아리랑제와 처음으로 연계해 본당 차원에서 ‘정선아리랑성당 열린마당: 아리랑, 생명을 품다’ 행사도 진행했다. 이웃 본당과 비신자 주민들의 발길이 성당에 이어졌다. 이규형(도미니코) 작가가 제작한 14처 성화를 보면 예수님은 머리에 상투를 하고 한복을 입고 있다. 각 처의 ‘골고타 아리랑’ 노랫말은 다른 본당 십자가의 길과 큰 차이가 없지만 정선아리랑 가락으로 부른다. 아리랑과 십자가의 길이 어떻게 연결된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본당 주임 이동훈(프란치스코) 신부는 ‘신앙의 토착화’라는 표현을 썼다. 토착화는 ‘지역 교회의 그리스도인 체험을 그 민족의 문화 안에 통합시키는 것’이라 정의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을 발표해 토착화 필요성을 수용하면서도 그리스도교 신앙의 고유성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요구했다. 한과 고통을 승화시켜 희망과 부활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아리랑과 십자가의 길은 상호 통합될 수 있다. ‘골고타 아리랑 십자가의 길’을 토착화의 성공적 사례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이 신부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원주 교구대회 기간에 정선 출신 이길영 씨가 이끄는 ‘고구려밴드’를 초청해 ‘골고타 아리랑 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선본당의 토착화 노력이 가톨릭 신앙을 널리 알리고 선교에도 크게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발행일 2026-10-11 제3510호 23면

‘맨땅에 헤딩’도 하느님의 이끄심으로

10월 첫 무대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공연을 앞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의 뮤지컬 <프란치스코, 맨발의 찬가> 연습실을 지난 9월 초 찾았다. 전문 배우의 연기 지도를 받으며 수도자와 배우들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교회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특별 희년을 보내고 있는 올해, 뮤지컬 제작은 수도회 한국관구 수도자들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프란치스칸뿐 아니라 일반 신자들도 특별 희년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도록 공연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 규모가 커졌고 공연장도 늘어났다. 내년에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에 맞춰 더 큰 무대도 준비하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 역을 맡은 정민휘(미카엘) 수사의 말을 들어보니 뮤지컬 제작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주어진 시간이 짧아 제작비가 확보되기도 전에 배우를 섭외하고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뮤지컬의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선뜻 함께해 준 덕분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프란치스코, 맨발의 찬가>도 그런 경우였다. 작은 공연으로 시작한 일이 내년 WYD 무대까지 바라보고 있다. 그 과정에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일이 커졌지만 오히려 기대가 된다. 방은미(요한 보스코) 연출가는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죄 없는 이들이 고통받는 지금,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와 가난의 영성이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성인 역시 전쟁과 가난, 질병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마주하며 하느님을 만났다. 연습실을 나서며 수도자들의 작은 아이디어가 800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신자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할지 궁금해졌다.

발행일 2026-10-04 제3509호 23면

망가진 폐로도 서로에게 숨결을 불어 넣는

2023 리스본 세계청년대회(WYD)에 참가했던 청년 함주완(바오로) 씨는 9월 5일 열린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 학술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친목이 목적이라면 구조가 더 안정된 동호회를 택하는 편이 합리적일 텐데도 청년들이 가톨릭에 머무는 이유는 하나, 세상은 줄 수 없는 영적 목마름을 채워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마름이란 뭘까. 같은 주 작성했던 기사들에서 찾았다. 당뇨 합병증에도 37세의 중증 자폐인 아들을 홀로 돌보던 어머니가 온갖 수술과 투석을 견디다 숨졌다. 홀로 남겨진 아들은 제도 공백에 내몰렸다. 자해와 공격행동이 있는 최중증 장애인을 선뜻 받아 줄 곳도, 부모가 쓰러진 순간 즉시 개입할 긴급 돌봄 체계도 없다. 내전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사가잉에는 대홍수까지 닥쳤다. 저수지는 군부가, 하류 마을은 저항 세력이 통제해 구호의 손길도 좀처럼 닿지 못하고, 군부는 물에 잠긴 마을에까지 폭격을 가한다. 인류사의 참극 앞에 우리는 신의 부재를 느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그래도 그 부재의 자리마다, 꼭 사람이 있었다. 최중증 발달장애 자녀 부모들과 시민들이 연대해 성명을 냈다. 한국희망재단은 긴급 모금에 나섰다. 재단 나눔기획팀은 “기사가 나가자마자 후원금을 보내온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얼굴도 모르는 미얀마인 농부를 위해. 숱한 아픔으로 영육이 병들고 신을 부정하던 함 씨가 WYD에서 만난 것도 ‘사람들 사이에 있는 하느님’이었다. 결국 사랑만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건 망가진 폐로도 서로에게 숨결을 불어 넣고, 제 심장에서 흘린 피로 이웃의 심장을 뛰게 하는 역설적인 신비였다. 2027 서울 WYD가 청년에게 건넬 물도 여기 있지 않을까.

발행일 2026-09-20 제3508호 23면

성령 안에서 대화

개인적인 고민이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을 온라인에서 손쉽게 풀 수 있는 시대에 인격적 만남은 뒤로 밀려난 지 오래다. 내 생각을 온전히 말할 기회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오래 귀 기울일 기회도 줄어든 시대에 교회는 ‘만나고, 경청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 성령의 이끄심을 발견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수원교구 성경교육봉사자회는 9월 4일 ‘성령 안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참가자는 190여 명. 대규모 인원이 같은 날 한 장소에 모였다. 그들 사이에 거창한 신학적·철학적 담론이 오간 것은 아니었다. “내가 과연 성경교육봉사자로서 자격이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봉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 평소 쉽게 꺼내놓지 못했던 고민을 한 사람씩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발표가 끝난 뒤 2분간 묵상이 이어졌다. 이윽고 “저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경청과 묵상 끝에 참가자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자신의 경험을 포개며 공감했다. 누구도 정답을 내놓거나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찾으며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깊은 위로가 됐다. 서로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것만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의구심을 품고 시작한 취재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참가자들의 표정과 말에서 변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묵상을 통해 자신의 사명을 돌아보고, 경청을 통해 교회의 사명에 함께하고 있다는 기쁨을 되새겼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열렸고, 봉사의 기쁨은 배가 됐다. 그 자리에는 성령이 함께하고 있었다.

발행일 2026-09-13 제3507호 23면

순례잡기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WYD 홍보단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홍보 현장을 취재하며 순례길을 걷는 여러 한국 청년을 만났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만난 청년 중 천주교 신자는 한 명도 없었다. 종교와 관계없이 그들은 순례길을 찾고 있었다. 많은 청년이 종교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어째서 순례에는 매력을 느끼는 걸까? 청년들은 순례길이 “재미있다”고 했다. 일상에서, 모바일기기에서 벗어나 표지석만 보고 길을 찾아가는 여정이 재미있고, 순례길에 있는 성당을 방문하며 도장을 찍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다른 순례자들과 기약 없이 헤어졌다가 다시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일이 술래잡기 같다고도 했다. ‘순례길의 술래잡기’니 ‘순례잡기’란다. 하지만 순례의 끝은 ‘재미’가 아니었다. 청년들은 순례길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나누고 배려하며 그를 통해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고, 성당에서 위로받고, 성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고 했다. 서울대교구 청년·순례사목 홍사영(바오로) 신부는 “순례길에서는 교회적인 이미지나 메시지를 마주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길을 즐기다 보면 복음으로의 초대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순례길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이 순례잡기라면, 교회를 떠난 청년들과도 순례잡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재미로 시작해서 복음으로 끝나는 매력적인 순례를 보여준다면 말이다. 청년만이 아니다. ‘순례하는 교회’인 우리 모두는 어쩌면 줄곧 하느님과 순례잡기 중일지 모른다. 순교자 성월이다. 순교의 고통을 기억하는 순례도 좋지만, 하느님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던 신앙 선조들을 좇는 순례잡기가 필요한 때일지도 모르겠다.

발행일 2026-09-06 제3506호 23면

‘창조적 소수’로 사는 청년들에게 거는 기대

‘우리 청년들에게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청년 모임 ‘토마스회’가 8월 22일 서울 민화위 회의실에서 연 공개 세미나의 주제다. 북한과 통일을 바라보는 청년들의 생각이 빠르게 달라지는 요즘,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물음이었다. 현장에서 마주한 참석자는 기대보다 많지 않았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북한 문제와 남북 평화에 관심을 갖고 이 자리를 찾은 청년 한 명 한 명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퍼뜨리는 ‘창조적 소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성공회대학교 김태경(미리암) 교수의 강의는 무겁게 다가왔다. 북한과 통일을 바라보는 청년 세대의 인식이 기성세대와 크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대립하던 시기에도 ‘우리는 한 민족’이고 ‘통일은 이뤄야 한다’는 인식이 한국 사회에 어느 정도 공유돼 왔다. 하지만 오늘의 청년들에게 통일은 더 이상 당연한 과제가 아니다. 2025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조사에서 20대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4.4%에 그친 반면 ‘필요 없다’는 응답은 50.7%로 절반을 넘었다. 2007년 조사 시작 이래 20대에서 ‘필요 없다’는 응답이 50%를 넘은 것은 처음이다. 이날 참석한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도 “학생들이 과거보다 북한을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토마스회는 남북이 함께 걸어야 할 화해와 평화의 길을 찾고 만들어 가는 청년들의 모임이다. 지금 이들의 목소리는 시대의 큰 흐름과 거리가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류를 거슬러서라도 그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교회 안에 있는 한, 남북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할 이유는 없다.

발행일 2026-08-30 제3505호 23면

‘우리 모두 하나 되어’… 그 말이 현실이 되려면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전주교구 청년대회(JYD)의 주제는 하나의 질문으로 다가왔다. “정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8월 15일부터 전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JYD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청년들은 서로 다른 본당에서 왔고 나이도, 삶의 배경도 달랐다. 외국인 청년들도 함께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 차이를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다. 모르는 것은 먼저 알려주고, 낯선 이에게 말을 건네며, 어색함 대신 환대를 선택했다. ‘우리 모두 하나 되어’라는 주제는 강론이나 강의보다 청년들의 행동 속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현실을 돌아보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정치권은 통합을 말하면서도 조롱과 막말을 쏟아내고, 비난과 혐오의 언어가 오간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온·오프라인에서 혐오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차이를 이해하기보다 밀어내는 일이 더 쉬워진 듯하다. 그래서 이번 청년대회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하나 됨’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다가가는 용기,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려는 마음,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미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됐다. 청년들은 그런 작은 실천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서울 WYD를 앞두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행사만이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부터 세상 안에서 ‘하나 됨’을 살아내는 일이다. 청년대회에서 만난 젊은이들과 봉사자들이 보여준 환대와 존중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우리의 일상으로 이어질 때, ‘우리 모두 하나 되어’라는 말은 비로소 구호를 넘어 삶이 될 것이다.

발행일 2026-08-23 제3504호 23면

연결된 존재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세상과 연결돼 있음을 강조해 왔다. 그에게 글쓰기란 다른 존재들과 연결돼 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7월 프랑스 아비뇽에서 열린 페스티벌에서도 그는 물이 순환하듯 인간 역시 서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을 작품 안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간은 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받고, 수많은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결국 타인은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삶을 이루는 이웃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관계성은 우리의 마음에도 닿는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함께 슬퍼하고, 누군가의 기쁨 앞에서 함께 웃는 이유도 서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혼자가 아닌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신앙인인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된 존재이기에 이웃을 하느님처럼 바라보고자 한다. 제주교구 신창본당이 설립 74주년을 맞아 개최한 전 신자 성경 이어쓰기 특별전은 이러한 연결성을 보여준다. 청년회가 없을 만큼 고령화된 작은 공동체였지만, 신자들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리고 함께 성경을 써 내려가며 세계 청년들을 향한 기도와 응원의 마음을 모았다. 본당은 대회를 청년들만의 행사가 아닌 한국교회 모두의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다른 이를 위한 기도가 결국 자신의 영혼을 치유하는 은총이 될 수 있음을 체험했다. 다가오는 서울 WYD가 전 세계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발행일 2026-08-16 제3503호 23면

WYD가 가장 필요한 이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서울 WYD 본대회에 앞서 열리는 예수회의 ‘마지스 2027 코리아’도 7월 25일 발대식을 열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예수회 한국관구는 발대식에서 우크라이나와 레바논, 미얀마 등 전쟁과 분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의 난민 청년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초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 청년들의 축제라지만, 아무리 뜻깊은 행사라도 소외되는 이들이 생길 수 있다. 국내 난민 청년들에게는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난민을 향한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이 참가를 망설이게 하는 장벽이 된다. 전쟁이나 정치적 혼란 속에 놓인 해외 청년들에게도 여비를 마련하고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들에게 서울 WYD는 그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난민과 이주민 청년들이 WYD의 변두리에 머물지 않도록 돕는 교회의 노력은 중요하다. 예수회뿐 아니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과 이주사목위원회도 8월 30일 서울 혜화동 동성중고등학교에서 ‘세계 청년 한마당’을 열고 세계 전통놀이와 체험 활동, 공연 등을 마련한다. 이주민 청년과 한국 청년이 자연스럽게 만나 어울리는 자리다. 어쩌면 WYD의 은총과 치유가 가장 절실한 이들은 이주민과 난민 청년들일지 모른다.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 다른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며 국적과 언어, 처지를 넘어선 ‘하나의 교회’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WYD가 쉽게 초대받지 못하고 나서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소외된 이들까지 함께 품는 ‘모든 청년’의 축제가 되기를 기원한다.

발행일 2026-08-02 제3502호 23면

[Reportage] Love That Found Its Way into the Universe named ‘Kyle’

This ‘reportage’ is released on July 26, 2026, in both print and online formats, alongside the Doctor Mary Healy instalment of Hearing the Intellectuals of the global church. « It was in 2020, when all my events and travels were canceled due to Covid, that I began to think about the possibility of fostering a child. I read in the news that with the increase in unemployment and other social disruptions, at-risk families were facing even greater pressures than usual, and children were suffering. Through much prayer and discernment, I decided to apply for a fostering license. It took a long time to go through the process, but finally Kyle, who was ten years old, was placed with me. After four years of fostering him, I was thrilled to be able to adopt him. It is a joy to watch him grow up as a young man who loves the Lord. » This is how Dr. Mary Healy answered when asked what had led her to adopt Kyle, toward the end of our interview session connecting Detroit and Seoul on 14 July. What most clearly revealed who she really is was her story with Kyle, more than any of her other accomplishments as one of the leading female biblical scholars in the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r her service in the Roman Curia. We all know that it's easy to express concern for children in distress and call upon the Church and society to act. Becoming a parent for the sake of one child, however, is ‘love’ of a different order. It means bringing love into a child’s once-parched universe, thawing their frozen heart with the warmest maternal love that can even transcend far beyond blood ties, and willingly becoming both a parent and a place of refuge — like Mary, who did not turn Jesus away. Kyle had no background in the faith, but, as Dr Healy put it, he « soaked it all up like a sponge. » Last year, he not only became her son but was also « adopted into the family of God through the sacraments of baptism, confirmation and First Holy Communion. » He is now flourishing in the vibrant community of his parish, Catholic school and youth group. Dr Healy’s teaching did not ring hollow because she has never spoken about God from a place detached from life. In the end, what gives an intellectual’s words their persuasive power is not simply how much that person knows, but how deeply that knowledge has been translated into love. by Bak Juhyeon ogoya@catimes.kr

발행일 2026-07-26 제350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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