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함으로 보는 리더십

한국을 방문한 작은형제회 총봉사자 마시모 푸사렐리 신부를 처음 만났다. 전 세계 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수도회의 총봉사자는 어떤 사람일지 내심 궁금했다. 만나기 전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과 수도회 영성답게 이민자를 비롯한 약자들과 함께해 온 인물이라는 점 등이었다. 그는 12월 4일 경기도 파주시 파티마 평화의 성당에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까지 수도자, 재속회원들과 함께 도보로 순례했다. 공원에 도착해 저만치 북한이 보이는 전망대에 오르자 재속회원들이 그에게 삼삼오오 몰려갔다. 아마 짧은 휴식 시간 동안 푸사렐리 신부는 이들과 스무 장은 족히 넘는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그는 그 와중에도 공원 내 분단과 평화를 상징하는 전시물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한국 수도자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무심한 듯 소소한 것에 관심을 두는 모습은 총봉사자라는 직책보다는 수도회의 평범한 ‘수사’에 더욱 가까워 보였다. 반면 그와 인터뷰를 시작하자 부드러움에 감춰졌던 확고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간의 수도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인 유럽 내 이민자들, 전쟁과 폭력, 불평등 문제와 이에 대해 수도회가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에 따라 행하는 활동들에 대해서는 일관되고 명확하게 이야기했다. 건전한 신념과 뚝심, 겸손함과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세심함보다는 거친 언행과 자극적인 발언을 곁들여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지도자가 마치 유행인 듯하다. 지도자의 발언 하나하나가 세계 경제를 술렁이게 한다. 하지만 리더십은 청중을 향해 크게 외치는 발언이 아니라 그 지도자의 작고 소소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더욱 푸사렐리 신부의 세심함이 유독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발행일 2025-12-14 제3470호 23면

태아 인권

‘사람은 언제부터 사람인가?’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중앙의료원은 11월 28일 제5차 가톨릭 의료윤리 심포지엄 ‘생명의 시작과 가톨릭 의료윤리’를 개최하고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다뤘다. 발제자는 ‘사람이 되는 시기’에 대해서도 살폈다. 교회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순간부터’ 새로운 한 사람의 생명이 시작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입장은 다르다. 2008년에는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밝혔으나(2004헌바81 결정), 2019년 자기낙태죄·의사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에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할 수 있는 경우에는, 훨씬 ‘인간에 근접한 상태’에 도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하며 아직 사람과 같지는 않다는 태도를 취했다. 임신 22주 내외 태아의 ‘독자적 생존 능력’을 기준으로 낙태 허용 주수를 정하자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사실 ‘독자적 생존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 모태의 영양분을 받아야 하든, 모유나 분유를 먹여줘야 하든, 더 나아가 일해 번 돈으로 음식을 사 먹어야 하든, 우리 모두는 ‘세상의 도움’을 공급받아 성장하고 생존하고 있다. 여성 인권도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더 약한 자를 제거하는 쉬운 해결은 약자 인권에 대한 보호를 되려 퇴보시킨다. 일부 여성이 태아를 ‘내 몸에 기생하는 짐’으로 여기게 만든 것은, 사회적 지원 부족과 생명 교육 부재 등 다방면의 사회적 책임이 크다.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이다. 하느님이 미천한 우리를 기억하여 아기 예수님을 보내셨듯 자꾸 기억해 본다. “나도 태아였다.”

발행일 2025-12-07 제3469호 23면

전부를 주는 사랑

“학교 등록금도 내지 못할 만큼 가난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했어요. 잘 데가 없어 서울역에서 노숙까지도 했고요.” 11월 11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씨젠 천경준(마티아) 회장이 아내 안정숙(카타리나) 씨의 보유 주식 30만 주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에 대신 기부하며 열어 보인 가난의 상처다. 두 부부가 “기금이 무의탁 영유아와 독거노인을 위해 쓰이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도 고통 속에 홀로 버티는 아픔을 깊이 알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이웃의 상처를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성덕으로 자신의 거의 전부를 내어주는 신자들의 애틋한 실천을 그간 많이 목격했다. 아내와 함께 평생 기부에 앞장서 왔던 최영길(시몬) 씨는 국제개발협력단체 한국희망재단의 오랜 후원자로서, 암 투병 중에도 재단에 선종 후 자택을 기부할 것을 지난 4월 기꺼이 서약했다. 지난해 8월에는 대장암 4기로 항암치료 중이던 오종순(바울라) 씨가 강원도에서 뱃일과 식당 일로 평생 고생해 모은 재산 20억 원을 사단법인 올마이키즈에 기부했다. 극빈국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했던 본인과 달리 교육 기회만큼은 박탈당하지 않기를 간구하며. 과학자이자 신학자였던 테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우리는 영적 체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 체험을 하는 영적 존재”라는 격언을 남겼다. 신적 존재의 초자연적 현현 없이도 우리 스스로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알게 하는 힘은 이렇듯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헌신에서 나왔다. 그래서 믿게 된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죽음에서 허무가 아닌 초월을 그릴 수 있게 되리라고.

발행일 2025-11-30 제3468호 23면

성경이 이뤄 준 소원

“성경을 쓰다 보면 말씀에 빠져서 집에 불이 나도 모를 정도예요. 오죽하면 성경 필사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겠어요.” 신구약 성경 전체를 무려 26번이나 필사한 윤정구 씨의 집. 그가 29년간 방에서 성경을 쓰는 동안 부인의 가슴은 타들어 갔다. 성경 쓸 때만큼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는 탓에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길까 걱정이 돼서다. 그야말로 성경 쓰기에 미쳤던(?) 윤정구 씨는 수원교구 내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매일 성경을 썼을 뿐인데 신자들 앞에서 강의하기도 하고 교황님의 선물을 받고 싶다던 평생소원을 이루기도 했다. 올해 성경잔치에서 수원교구 총대리 문희종(요한 세례자) 주교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받은 기념품을 윤 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성경을 쓰고 소원을 이룬 이들은 또 있었다. 올해 전 신자 성경필사를 한 안산성안나본당에서는 냉담했던 남편이 성당을 다니게 되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흔들렸던 가정이 다시 회복된 일들이 있었다고 신자들은 전했다. 단순히 성경을 보고 쓴 것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진 사람들. 신자들의 말을 곱씹으며 그 비결을 생각해 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성경을 쓰면서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알게 된 것이다. 혼자인 줄 알았던 순간, 세상이 자신을 비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순간, 내 옆에 하느님이 계신다는 말씀을 성경에서 찾았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사실은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줬다. 신자들은 힘들었던 순간, 하느님의 말씀이 나에게 찾아왔다고 입을 모았다. 신자들이 신앙의 빛을 찾을 수 있도록 성경사목을 통해 등불을 밝혀준 교구의 동행도 신자들의 신앙을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소원을 이루고 싶다면, 성경 필사를 해보는 건 어떨까?

발행일 2025-11-23 제3467호 23면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가

11월 16일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기자는 세계교회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하는 교회 활동들을 접하게 됐다. 우선, 레오 14세 교황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있던 11월 6일 이탈리아 북부 파르마에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세탁소’라는 이름을 붙인 무료 세탁소를 개장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시기에 처음 시작된 무료 세탁소 사업을 레오 14세 교황도 이어가는 것이어서 반가운 소식으로 느껴졌다. 빈민들이나 노숙인들이 무료 세탁소에서 빨래하고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교황청 애덕봉사부 장관 콘라드 크라예프스키 추기경이 말한 대로 무료 세탁소는 큰 물질적 도움은 못 될지라도 가난한 이들이 존엄성을 되찾고 삶을 변화시키는 마중물은 될 수 있다. 무료 세탁소가 문을 연 비슷한 시기,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세계 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에 대한 강력한 단속 정책을 지속하자 오리건주 포틀랜드대교구장 알렉산더 샘플 대주교가 11월 8일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는 기사도 볼 수 있었다. 샘플 대주교는 성명에서 “이주민들이 적절한 서류를 지니고 있지 못해도 그들은 우리의 형제자매”라고 말했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가톨릭교회 정신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같은 기사에는 이주민들을 단속하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을 지지하는 시위대의 활동도 언급돼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이웃과 이주민들이 많다. 가난을 가난한 이들만의 탓으로 돌리고, 이주민들을 배척하려는 이들도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세탁소’를 만든 교황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23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시선이 중요한 것 같아요.” 평신도 주일 특집 인터뷰를 위해 만난 2027 서울 WYD 조직위원회 김수지(가브리엘라) 이사는 “‘당연히 안 되겠지,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라는 생각을 깨야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며 한국교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평신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이사의 말에 문득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 것을 당연하지 않게 여겼던 용기 있는 평신도들이 떠올랐다. 평신도 주일은 하느님의 종 이승훈(베드로)이 동지사로 떠난 시기에 맞춰 제정된 날이다. 선교사 없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신앙 선조들이 ‘천주를 공경하는 참다운 방식’을 알고자 파견한 이승훈이 중국으로 출발한 때가 이즈음이었다. 당시 교회를 이끄는 이는 모두 평신도였다. 모든 의사 결정이 평신도들의 논의로 이뤄졌고, 선교사 파견 이후로도 평신도들은 회장직 등을 통해 사제를 보필하며 다른 평신도들을 이끄는 역할을 수행했다. 신앙 선조들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봤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사제가 공동체를 신앙으로 이끄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평신도들이 공동체를 신앙으로 이끌었다. 남녀 차별이 ‘당연한’ 조선사회에서 복자 강완숙(골룸바) 같은 여회장이 활약했다. 세계 교회에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가 세운 교회는 ‘당연한’ 것에서 벗어난 신앙 선조들에게서 비롯했다. ‘평신도가 세운 교회’를, 그를 이룬 신앙 선조를 두고두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모범을 따르고 있을까. 평신도 주일을 맞은 오늘, 혹시 ‘평신도의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당연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쯤 돌아보면 어떨까.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23면

함께있음의 50년

1975년 2월, 서울 시흥동 산동네에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 세 명이 전진상의원·복지관(이하 전진상)의 둥지를 틀었다.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요청으로, 아프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사회복지의 손길을 나누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들은 약국을 열고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고 가정 간호 활동을 벌이며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의 벗이 되었다.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 마음의 희망조차 붙들기 힘들었던 이웃들을, 밤을 새워 찾아가 진료하고 약상자를 열어 생명을 건졌다. 그 씨앗은 자라면서 장학사업으로 이어지고 지역아동센터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등으로 확장됐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그들에게서 A.F.I의 영성인 전(全)·진(眞)·상(常) - 온전한 자아 봉헌과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 - 이라는 이름이 사랑 실천의 언어로 번역됐음을 느낀다. 반세기 동안 전진상의 활동에 동행한 의사, 간호사 등 봉사자의 숫자는 천 명이 넘는다. 10월 25일 열린 50주년 기념식에는 처음 진료를 도왔던 의사에서부터 개원 때부터 지금도 약국 일을 거드는 약사, 콩나물값과 전화비를 아껴가며 수십 년간 후원해 온 이들까지 전진상과 함께 걸어온 얼굴들이 모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인간적 공로를 넘어 ‘함께 나눔의 기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이경상 주교는 전진상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낸 곳’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전진상의 역사는 복음이 문장이 아니라 ‘손길과 발걸음’으로 드러난 이야기 같다. 복지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여전히 제도와 제도 사이의 틈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온 ‘함께 있음’은 여전히 유효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23면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가톨릭과 달리, 개신교는 일원화된 구조가 아닌 목회자 개인이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모아 운영하는 방식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교회의 활력은 목회자의 재정 상황이나 전교 역량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탈종교화 현상까지 이어지면서 교회를 둘러싼 환경은 한층 더 위축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개신교는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공유교회’라는 개념이 그중 하나다. 일부 선교단체나 신도들이 자신들의 예배 공간을 나누거나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형 교회들이 자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더라이프교회 또한 이런 공유교회를 거쳐 독립한 사례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접한 최용택 목사는 공유교회가 아니었다면 지금과 같은 시기에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작은 교회들이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선교지와 이웃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부활·성탄 대축일뿐만 아니라 산불 피해가 발생했을 때는 주민센터를 통해 구호 물품을 전달하며 지역사회를 위해 움직였다. 최 목사는 이러한 활동이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려는 몸부림이자 저마다의 사명을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교회를 세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 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규모나 재정이 아닌, 신앙이 어떻게 이어지고 지속될 수 있는가를 되묻게 되는 순간이었다.

발행일 2025-10-26 제3463호 23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어요.”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귀에 맴돌도록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득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떠올랐다. 극 중 25년간 제지 전문가로 일해온 만수(이병헌)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해고당한다. 이후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일들에 가족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합리화하며 대사를 반복한다. 기업 관계자들도 비슷하게 말한다. “노동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이 이윤을 남겨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면 기업이 버틸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그러니 더 큰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다. 물질이 중요시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던 이들은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을 해고했다는 세종호텔 측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아직 해고자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겼다고 전망했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야고 5,4)라는 말씀처럼 노동자들의 고통에 찬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23면

수도자들의 각오와 절박함

‘축성생활의 해’를 맞아 한국 남녀 수도자들이 준비한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오세요(OSEYO, Open Space Every YOuth)’ 취재를 다녀왔다. 수도자들이 청년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이뿐 아니라 그간 수도자들이 축성생활의 해를 준비하며 준비위원회를 꾸린 과정부터 최근까지의 활동도 함께 취재해 왔다. 지금껏 안 해봤던 것들을 시도하고, ‘축성생활자’라는 정체성과 영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부터 각종 행사를 위해 따라오는 부수적인 행정 업무까지 수행해 내는 수도자들의 모습에서 올해 축성생활의 해를 정말 ‘제대로’ 보내겠다는 각오와 절박함이 느껴졌다. 그 절박함은 수도 성소가 줄어든 현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도자들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쇄신해야 한다”는 내적 요청에 더 가까워 보인다. 수도자들은 이렇게 스스로 설정한 과제를 다뤄보기 위해 심포지엄을 열고, 함께 걷기 위해 평화 순례를 개최했다. 수도회 장상들은 시노달리타스 경청 피정을 하고, 청년들과 어울리고 스스럼없이 다가가며 수도 성소를 알리는 것은 물론 청년들을 그 자체로 위로했다. 특히 이번 ‘오세요’에서 대부분 교육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던 수도자들이 청년들 곁에서 진심으로 함께 즐기고자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취재를 마치고 나서, 수도자들이 올해 축성생활의 해를 거치며 ‘축성생활자’를 알리는 것과 쇄신이라는 두 가지 고민에 대한 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도 이렇게 잘 놀 줄 알아”라고 말하는 듯하기도 했다. 올해는 아직 석 달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수도자들이 보여준 노력과 의지를 보건대, 이 1년을 ‘제대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발행일 2025-10-05 제3461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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