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가운데 자리

성당에서 아기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초등부쯤 되면 주일학교라도 있지만, 그 전의 어린 아이는 성당에 ‘머리 둘 곳조차’ 없다. 전례가 시작되면 대부분은 유리벽 너머에 ‘격리’되고, 아기가 얌전해 뒷자리 어디쯤 있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아기가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을 성당에서는 자연스럽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성당 가운데 자리에서는 울 수도, 먹을 수도, 기저귀를 갈 수도 없다. 혹여 신부님이 괜찮다해도 신자들의 눈총은 여전히 따갑다. 고령를 넘어 초고령이 된 한국교회에서 아기란 존재는 낯설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5월 11일 수원교구 시흥지구 중심 성당인 시화성바오로성당 가운데 자리에 어린아이들이 가득 찬 모습은 참 반가웠다. 우는 아이, 젖병을 물고 있는 아이, 두리번거리는 아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아이, 잠자는 아이…. 아이들은 각양각색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 있었다. 이 각양각색의 어린이들이 성당 가운데 자리에 모여 참례하는 전례에서는 어느 때보다 생명력이 느껴졌다. 물론 유아세례식이니 어린아이들이 가운데 자리를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성당에서 사제들, 봉사자들, 전례에 함께한 모든 신자들이 어린이들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또 어린이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는 모습이 따듯하게 다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세계 어린이 날을 제정하면서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어린이들을 가운데 자리에 두고 그들을 돌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보편교회의 흐름에 한국교회는 얼마나 함께하고 있을까? 언젠가 모든 성당에서 어린이들에게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때가 오길 손꼽아본다.

2024-05-19

브뤼기에르 주교를 생각하며

서울대교구가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중국에 남긴 발자취를 따르는 순례를 동행 취재했다. 4월 16일 이른 아침 김포공항에서부터 21일 늦은 저녁 인천공항에 돌아오기까지 5박6일 일정으로 진행된 이 순례 기간 동안 중국 내에서 버스로 이동한 거리가 20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1년 9월 9일 조선교구가 설정될 때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자신의 사목지인 조선에 들어가려 광활한 중국 대륙을 걸어서 이동하다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마가자(馬架子, 마지아쯔)에서 1835년 10월 20일 선종했다. 과로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브뤼기에르 주교는 교회법적으로는 ‘순교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가 그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하는 이유는 박해시기 조선 땅에 들어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초대 조선교구장 직책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중국 곳곳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흔적을 취재하고 3주에 걸쳐 순례기를 연재하면서 190년의 시간 차이가 나는 과거와 현재, 중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연상하곤 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천주교 역사가 먼저 시작된 곳이다. 한국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도 중국을 통해서다. 현재는 어떤가? 중국에서 취재하면서 지금의 중국 천주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중국에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곳이 있었고, 사진 한 장 편하게 찍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중국의 종교 현실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박해시기에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조선에 들어오려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걸음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인의 모범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2024-05-12

역설의 길

지난 4월 16일, 무료병원 요셉의원을 설립한 고(故) 선우경식 원장(요셉·1945~2008)의 16주기 추모 미사 및 「의사 선우경식」 출판 기념회가 열렸던 날,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는 강론 중 몇 번이나 목이 메어 말을 멈췄다. 구 주교는 선우 원장 생전에 사목 현장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격려했던 인연이 있었다. 고인의 삶을 회고하면서 함께한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선우 원장은 젊은 시절,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환자들을 보며 마음 아픈 경험을 했다. 그것은 ‘돈을 잘 버는 의사보다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사람도 치료해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구 주교는 ‘이를 평생 정말 성실히 실천해 나갔던’ 고인의 면모를 들려주면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성자의 모습’이라고 했다. 「의사 선우경식」을 펼쳐 읽으며 기자에게는 그의 ‘의사다운’ 삶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푸코 성인의 말처럼 예수님을 따라 ‘아무도 위로해 주거나 돌보지 않는 이들을 위로하고 돌보자’ 했던 애씀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초대받은 길은 세상과는 완전히 반대인 내어줌으로써 얻는 역설의 길이고 바보의 길’이라는 한 사제의 말을 떠올렸다. 그처럼 고인이 걸었던 길은 무난하게 섬김과 부를 얻을 수 있는 세속의 길이 아니라 생명을 내어줌으로써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움을 얻는 길이었다. 1987년 무료병원 시작 때 그가 뿌린 겨자씨는 지금 연인원 600여 명의 봉사자와 하루 평균 100여 명이 진료받는 큰 나무가 됐다. 선우 원장의 일생은 질문을 던진다. 내가 가는 길은 어떠한가.

2024-05-05

신자위탁? ‘시너지’ 얻으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민간위탁’이라는 말이 있다. 넓은 의미에선 국가나 지자체가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시민이 주체가 되도록 자원봉사에 위탁하는 것도 민간위탁에 들어간다. 요즘 교회 내에도 평신도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민간위탁처럼 지역에 대한 이해도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에서 평신도가 주체가 됐을 때 더 효율적인 일들이 많다. 수원 조원동주교좌본당의 집수리 봉사단체 ‘사랑나눔봉사단’은 평신도가 주체적으로 사목에 참여한 모범적 예다. ‘사랑나눔봉사단’은 평신도가 비신자 봉사단체를 경험하고 교회 내에도 어려운 이웃의 집을 고쳐주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인식해 자발적으로 결성됐다. 봉사단의 취지는 수원교구 사목 방향 중 하나인 ‘외적 복음화’에 들어맞았다. 덕분에 창단 취지에 공감한 본당 주임 신부의 지원 아래 본당 사회복지분과에 소속된 공식 단체가 됐다. 수원교구 도시변방위원회 이준섭(도미니코) 신부는 “교회에 집수리봉사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당 소속으로 이미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봉사단을 보수가 필요한 지역 노숙자쉼터와 연결해 줬다. 평신도가 시작한 것에 본당과 교구 부서의 사목자가 공식성을 부여해 완성했다. 성공적인 ‘신자위탁’의 모습이다. 본당 사목자와 신자 간 협력은 좋은 ‘시너지’를 낸다. 하지만 교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간위탁’보다 어려운 과제도 많다. 평신도 스스로 어색해하지 말아야 하고 사목자는 정확한 식별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듯 ‘사랑나눔봉사단’처럼 평신도로서의 장점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어떨까.

2024-04-28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분들이 왜 이렇게 많지?’ 수원교구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 취재를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검은 정장의 남성들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곧 앳된 얼굴의 수원교구 신학생들이었다. 또래라면 또래일 수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 미사에 참례한 신학생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이용훈 주교의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깊은 위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예비신학생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친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가 추모 편지를 읽을 땐, 신학생과 신자들 사이에서 훌쩍이거나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참던 심 부제의 낭독을 들으며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집안의 활력소이자 엔도르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귀를 움직여 웃게 하는 아들, 재외교포를 돕는 최고 외교관을 꿈꾸는 서재능(6반)’,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등 희생자 각각에 대한 메시지가 붙은 세월호 리본 봉도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해명도 한 번 받지 못했다는 희생자 가족들. “우리는 평범한 부모들이었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애통한 발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2024-04-21

열매 하나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내 마음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지 체험하고 나면, 그 사랑이 넘쳐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밖에 없게 되는 것 같아요.” 4월 5일 서울 예수회센터에서 열린 교황님 기도 네트워크 첫 금요일 예수 성심 신심 미사 후 마련된 청년 회원들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과자는 ‘그리스도의 몸’, 와인은 ‘그리스도의 피’라며 농담하는 청년들 중, 자칭 ‘고인물’이라며 웃던 유스티노씨의 나눔이었다. 평온한 어조였지만 큰 여운으로 다가왔다. 핵심은 “인격적 예수님 체험의 열매는 열매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열매를 맺어 과수원처럼 커져 간다”는 것이었다. 그의 고백에 청년 개개인의 영신수련을 동반하는 부책임자 신부님 공로가 크게 느껴졌다. 사제 한 사람이 전체 50명 넘는 청년 회원들을 한 사람씩 개인 면담하는 많은 시간을 희생한다는 게 상상되지 않았다. 사제가 이미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로써 내면에 사랑이 가득 차지 않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됐다. 그와 달리 다른 사람을 향할 줄 모르는, 사랑이 메말라 붙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게 됐다. 인간 예수를 만나지 못한 것, 어쩌면 만날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었을까. 늘 자신을 성찰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에는 예수가 빠져 있고 늘 나로 채워져 있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의 뜻에 맡기기보다 내가 생각의 흐름을 주도하고 판단했다. 늘 과수원이 되길 꿈꾸지만, 정작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황량한 나를 반성하게 됐다. 꼭 언젠가는 열매가 열리고 사랑이 차오르길 바랄 따름이다.

2024-04-14

공동선에 닿기 위해 / 민경화 기자

13년 전 핵발전소 사고가 있었던 일본 후쿠시마에는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생업을 위해 고향에 남기를 선택한 가장은 가족과 헤어져야 했고 이혼이 급증하는 원인이 됐다. 그렇게 다른 도시로 떠난 아이들은 위험한 곳에서 왔다며 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여전히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는 암이나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웃의 소식을 듣는 일이 흔했다. 핵발전소를 운영하는 곳은 전력회사이고 이를 도운 것은 정부였지만 슬픔과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은 그곳을 지키는 주민들이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에서 물고기를 잡는 시가 가쓰야키씨는 핵발전을 반대하며 50년 넘게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가 주변의 비난과 협박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소중한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공동선을 위해 용감히 나아가는 시가씨의 모습은 국가의 핵진흥 정책을 멈추고자 거리로 나온 한국의 종교·시민단체와 닮았다. 이들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후의제를 염두에 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교회의가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 보낸 정책질의서 답변에서 특히 환경분야는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신규핵발전소 건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 문제에 대해 어떤 당은 동의했고, 어떤 당은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교회는 정치 공동체의 최종 목적이 공동선의 실현이라고 강조한다. 이를 수행하지 못했을 때 교회는 정치에 관여할 수 있고, 이때 복음이 정치적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는 복음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제대로 식별해 공동선을 위해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들 곁에 서야 하겠다.

2024-04-07

부활, 기억하고 기도하며

10년 전 부활은 그 어느 부활보다 절실히 부활을 바랐던 시기였다. 파스카 성삼일, 예수님이 묻히시던 날, 그분과 함께 바다에 묻힌 사람들. 당시 희생자들이 많이 거주했던 안산, 수원교구를 출입하던 나는 그 현장에서 참담함과 슬픔을 목도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슬픔 속에서 합동분향소를 찾으며 ‘잊지 않겠노라’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겠노라’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모습을 취재했다. 그리고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슴에 단 노란 리본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 마음을 되새기기도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안산 합동분향소가 철거됐고, 진도 팽목성당도 문을 닫았다. 기억하던 공간이 하나 둘 사라졌다. 슬퍼하던 사람도, 화를 내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그렇게 변해 가는데 여전히 이 사회는 변하지 않고 비슷한 슬픔을 반복한다. 어쩐지 변하지 말아야 할 마음은 변하고, 변해야 할 세상은 변하지 않는 듯 같다. 그러던 중 10주기를 앞두고 보수공사를 한 임마누엘 경당을 찾았다. 희생자를 추모하고자 안산 합동분향소에 세워졌던 작은 목조 경당. 수원가톨릭대학교는 갈 곳 잃은 이 경당과 팽목항 십자가를 교정에 품었다. 나아가 그 경당을 더 오래 보존하고 기억하고자 비용을 들여 보수공사를 진행한 것이었다. 한민택(바오로) 신부는 “기억하고 기도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며 경당 보수의 취지를 말했다. 기억하고 기도하는 경당이 새로 나는 모습, 그 부활에 적잖이 위로를 받았다. 기억하고 기도하는 이유는 그 슬픔이 반복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하길 바라서, 부활하길 바라서다. 세월호 참사 후 10번째 부활. 다시 기억하고 기도한다.

2024-03-31

‘시노달리타스’에 담긴 뜻은? / 박지순 기자

올해 10월 본회의 제2회기가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전국 각 교구 담당 사제들을 취재하면서 한국교회와 세계주교시노드는 거리가 꽤 멀다는 것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었다. 시노드 담당 사제들도 세계주교시노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취재에 응한 시노드 담당 사제들은 각자 한국교회에서 왜 시노달리타스가 낯설게 여겨지는지 나름대로 원인을 들려줬다. 무엇보다 다시 생각해야 할 점이 있다. 시노달리타스라는 라틴어 원어가 신자들에게 생소하게 들리고 왜 우리말 번역어를 사용하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지만, 시노달리타스는 없던 말이 아니라 가톨릭교회 전통에서 오랜 세월 사용돼 왔다는 사실이다. 부산교구 시노드 담당 노우재(미카엘) 신부는 시노달리타스를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야 할 여정’, 달리 말해 ‘교회 공동체 자체’라고 정의했다. 춘천교구 시노드 담당 김도형(스테파노) 신부 역시 시노달리타스가 지향하는 교회의 원형은 사도행전에 그려진 초대교회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 시노달리타스가 멀게만 느껴진다는 것은 곧, 함께 걷는 교회나 초대교회로부터 그만큼 멀어졌다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노우재 신부가 시노달리타스 실현을 방해하는 핵심 원인을 ‘교회의 세속성’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 여겨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5일 교황청 복음화부 정기총회에 참석해 오늘날 가톨릭교회의 최대 위기를 ‘세속화’라고 지적하면서 “가정과 공동체에서 극복의 길을 찾자”고 말한 것도 기자에게는 시노달리타스의 길을 걷자는 의미로 들렸다. 시노달리타스는 그 안에 담긴 본래 의미를 아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2024-03-24

[현장에서] Quiet Quitting

‘Quiet Quitting’(조용한 사직)은 직장을 그만두진 않지만, 마음은 떠나 최소한의 일만 하겠다는 직장인의 태도를 일컫는다. 일이 곧 삶은 아니고 성취에도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에 지극히 합리적인 선에서만 업(業)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팬데믹 전후 미국의 MZ세대에서 유행처럼 번졌고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지금껏 회자되고 있다. 지난 3월 9일 수원교구 본당 총회장 연수에서 교구 복음화국장 이승환(루카) 신부는 “종교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면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대중의 탈종교화 현상을 설명했다. 강의를 접하며 어쩌면 신앙의 ‘Quiet Quitting’으로 젊은이들이 교회와 멀어지고 결국 떠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주일미사 거르지 않는 ‘의무’ 외에는 더 이상 성당 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이 늘고 있다. ‘팬데믹이 종교와 신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결과가 그 이유를 보여준다. 청년들은 가장 변해야 할 교회 문화로 권위주의, 사제의 독단적 의사결정 구조, 환대 부족을 꼽았다. 사정이 이러한데 매력은커녕 머물 이유조차 찾을 수 있을까. 해법은? 역시 청년들이 제시한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교회 종합의견서에서 청년들은 팬데믹 이후 교회의 우선적 사목 대상으로 ‘청년 자신’을 꼽았다. 담대하게 전한 자신들의 의견이 유효하게 전달될 창구를 마련해 달라고도 했다. 권위주의에서 탈피해 환대의 마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교회가 줄곧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첫 출발이 아닐까.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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