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은 여유가 아니라 태도이다

며칠 전 과천에서 전철을 타려다 플랫폼에서 노부부가 다투고 있는 모습을 봤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향해 연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이번 달 생활이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얼마나 썼기에 그러시나 싶어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그 액수는 오만 원이었다. 오만 원. 누군가에게는 점심 몇 번 값에 지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한 달의 숨통을 조이는 무게가 된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계셨다. 변명도, 억울함도 드러내지 않은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말없이 서 계신 그 모습에서, 돈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 속에는 마침 오만 원이 있었다. 조용히 드릴까 하는 마음이 스쳤다. 그러나 괜한 오해를 사지는 않을지, 오히려 모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을지, 내 행동이 그분들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지는 않을지 망설이게 되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전철이 들어왔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전철에 올라탄 뒤에도 하늘만 바라보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나눔은 늘 그렇게, 마음에서는 시작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까지가 어렵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이 언젠가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구나. 노후의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 삶, 작은 지출 하나에도 마음이 조급해지는 현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인생 앞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이 다가오니 여기저기서 선물을 주고받는다.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선물을 드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문득 매일같이 아파트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간 자리를 말없이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묵묵히 비우는 분이다. 이름도 잘 알지 못한 채 늘 스쳐 지나가던 분이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발걸음이 멈췄다.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어 커피믹스 한 봉지를 건넸다. 그분은 뜻밖에도 크게 기뻐하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교수님이 어떻게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걸 다 주세요.” 그 말속에는 물건에 대한 감사보다도, 사람으로 존중받았다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선물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 이 말씀은 거창한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찾기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는 초대에 가깝다. 나눔은 특별한 결단이 아니라, 일상의 방향에서 시작된다. 나눔은 여유가 있는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사람의 지위에 높고 낮음이 없듯, 나눔에도 위아래는 없다. 있을 때 조금씩 나누며 사는 삶, 그 작은 실천이 서로를 버티게 한다. 설을 맞아 오가는 많은 선물 속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미 충분히 가진 이들보다, 오늘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마음 하나가 이 계절을 더 따뜻하게 만들지 않을까.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22면

고통의 시간도 사랑 안에 있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나는 늘 학생들에게 많은 숙제와 과제를 내주었다. 프로젝트도 빠지지 않았고, 시험은 대부분 주관식이었다. 답안지는 10장씩 이어졌고, 학생들은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서둘러 써 내려가야 했다. 문제 중에는 교과서에 없는 상황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하는 질문도 꼭 포함했다. 단순히 외운 지식을 옮겨 적는 시험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반응은 늘 거칠었다. “이 과목은 공부를 하나 마나입니다.” “가능하면 신청하지 말아야 할 수업입니다.” 이런 말들이 들려왔다. 실제로 수강 신청 기간이면 내 과목을 두고 고민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의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배움이란 원래 편안한 과정이 아니라는 생각을 쉽게 내려놓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 그렇게 힘겹게 공부하고 시험을 치렀던 제자들이 사회인이 되어 20여 년 만에 길에서 나를 만나곤 한다. 그때 그들은 뜻밖에도 웃으며 이런 말을 건넨다. “교수님을 뵈면 학창 시절의 괴로웠던 기억이 먼저 떠오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간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때야 대학이 무엇인지, 공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마음 한쪽을 조용히 두드린다. 이 장면은 어린아이가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모습과 닮았다. 아이는 병원 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린다. 주사를 맞지 않겠다고 온몸으로 저항한다. 그러나 주사가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 열은 내리고 통증은 사라진다. 아이는 그제야 아픔보다 회복을 먼저 경험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재난과 고통 앞에서 자주 묻는다. 왜 하느님께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아픔과 시련을 허락하시는가. 왜 착한 이들이 먼저 무너지고, 선한 이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도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 자유의지는 사랑 안에서만 온전히 드러난다. 만일 우리가 창조주의 뜻대로만 움직이는 기계와 같은 존재였다면, 거기에는 선택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사랑을 강요받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그래서 삶에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의 순간들이 허락된다. 그 고통은 벌이기보다는 부르심에 가깝다. 지금 이 순간의 시야로 보면 슬픔은 불공평하고, 괴로움은 과도해 보인다. 그러나 인생 전체의 흐름 속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면, 그 의미는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슬픔과 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게 하며, 사랑의 깊이를 넓히는 과정일 수 있다. 주사를 맞고 울던 아이가 건강을 되찾듯, 시험과 부담을 견딘 제자들이 삶의 힘을 얻듯, 우리의 아픔 또한 언젠가는 의미로 바뀌는 날을 맞이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한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고 계신다. 지금은 아프고 버거워 보이는 시간일지라도, 훗날 돌아보면 그 시간 역시 은총의 일부였음을 고백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믿음의 자리에서 바라본 삶의 깊이일 것이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22면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 중요

어릴 적 나는 대가족 속에서 자랐다. 조부모님을 중심으로 삼촌, 고모, 사촌 형제들이 한집에 모여 살았다. 식사 시간이 되면 집안은 늘 소란스러웠다. 국그릇 하나를 가운데 두고 숟가락들이 분주히 오갔다. 국에 떠 있는 두부 몇 조각은 늘 경쟁의 대상이었다. 막내였던 나는 어렵게 건져 올린 두부를 입에 넣기도 전에 형들의 젓가락에 빼앗기기 일쑤였다. 국은 있었지만, 내 몫의 두부는 늘 없었다. 그때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형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려 보면, 문제는 음식의 양이 아니라 나누는 질서였다. 모두가 동시에 손을 뻗는 식탁에는 기다림도, 배려도 없었다. 그 결과 음식은 남았지만, 마음은 늘 허기졌었다. 마르코복음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이야기도 우리는 흔히 그렇게 기억한다. 빵이 갑자기 늘어났고, 물고기가 기적처럼 불어났다는 이야기로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 보면, 복음이 강조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방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굶주림은 단순히 배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먹을 수 있는지, 누가 책임지는지, 무엇을 믿고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을 때 사람은 먼저 불안해진다. 배보다 먼저 마음이 무너진다. 제자들의 제안은 매우 현실적이다. “저들을 돌려보내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오늘의 시장 논리로 보면 합리적인 해결책이다. 각자 책임지고 각자 해결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앉히신다. 50명, 100명씩 자리를 잡게 하신다. 혼란을 가라앉히고, 모두가 받을 준비를 하게 하신다. 질서 없는 자리에서는 음식이 넘쳐도 다툼이 생긴다. 자리가 정리되어야 나눔이 시작된다. 이 장면은 먹는 일보다 앞서는 준비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 준다. 그다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다. 먹기 전의 감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음식이 ‘내가 차지해야 할 몫’에서 ‘오늘 나에게 맡겨진 선물’로 바뀌는 순간이다. 소유가 되는 순간 경쟁이 시작되지만, 선물이 되는 순간 나눔이 열린다. 우리가 식사 전에 드리는 짧은 기도에는 바로 이 고백이 담겨 있다. 빵은 예수님의 손에서 곧바로 군중에게 가지 않는다. 제자들을 거쳐 전달된다. 기적은 한 사람의 손에 머무르지 않는다. 참여와 전달을 통해 완성된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는다. 이것은 과잉이 아니라 충만의 표지다. 필요한 만큼 먹고도 남는 상태,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풍요다. 이 이야기를 오늘 우리의 식탁으로 옮겨 놓으면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정말 가진 것이 부족한가, 아니면 나누는 질서가 무너져 있는가? 양을 늘리기 전에, 자리를 먼저 정리했는가? 먹기 전에, 감사했는가? 어릴 적 국그릇 속 두부를 둘러싼 기억은 이제 다른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예수님의 기적은 빵의 양을 바꾼 사건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바꾼 사건이었다. 오늘 우리의 식탁에서도 기적은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그 기적은 숫자가 아니라, 나누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2-01 제3477호 22면

말씀을 ‘소화’하는 신앙

요즘 우리는 신앙 안에서도 ‘맛집’을 찾아다닐 때가 있다. 말씀을 잘 풀어 주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의 강의를 찾아 멀리까지 가고, 영상과 녹음을 챙겨 들으며 깊은 감동을 받는 경우다. 그 시간은 분명 은총의 시간이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신앙이 새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나 역시 그런 체험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이 마음에 남는다. 나는 말씀을 제대로 듣고 있는가, 아니면 살고 있는가! 감동은 받았지만, 그 말씀이 내 하루의 선택과 태도를 실제로 바꾸고 있는지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말씀도 음식과 비슷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씹지 않고 삼키면 몸에 제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귀로만 듣고 흘려보내는 말씀은 잠깐의 포만감은 줄지 몰라도 우리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직 소화되지 않은 말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말씀을 소화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씀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시간, 곧 묵상의 시간이다. 미사나 강론에서 들은 한 문장을 마음속에 남겨 두고, 하루를 살다가 문득 떠올려 보는 일이다. “이 말씀이 오늘의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이 질문들이 반복될 때, 말씀이 우리 안에서 서서히 분해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의미가 분명하지 않았던 말씀이 삶의 장면과 부딪히며 새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바로 그때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기준이 된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들은 한 번에 이해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곱씹을수록 마음을 건드리고, 살아갈수록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말씀은 그렇게 소화된다. 말씀이 소화되어 흡수되면 변화가 일어난다. 말씀은 내 감정과 판단 위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화가 날 때 나를 멈추게 하고,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때 다른 길을 가리킨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이 말씀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삶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 안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즉각적인 반응 대신 한 박자 늦추고, 단호한 판단 대신 여지를 남긴다. 흡수된 말씀은 말의 톤을 바꾸고, 관계의 방향을 바꾸며, 하루의 리듬을 바꾼다.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아, 말씀이 나를 살리고 있구나.” 말씀은 더 이상 책의 문장이 아니라, 내 삶을 이끄는 내적 나침반이 된다. 몸에서 배설이 막히면 병이 되듯, 신앙에서도 흘려보내지 못하면 병이 된다. 말씀을 듣고 감동하고 깨닫고도 그 모든 것이 나에게서 끝난다면, 신앙은 쉽게 자기만족에 머문다. 나만의 영적 체험으로 굳어 버릴 수 있다. 신앙의 배설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이다. 작은 관심과 작은 배려, 작은 나눔이면 충분하다. 말 한마디를 삼키고,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일.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를 살리는 행동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듣는 말씀에서 머무르지 않고, 소화되어 삶이 되고, 다시 사랑으로 흘러갈 때 신앙은 막히지 않고 순환한다. 말씀을 잘 듣는 신앙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으로. 오늘 우리가 찾아야 할 ‘맛집’은 강연장이 아니라, 우리의 하루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1-25 제3476호 22면

생명을 나누는 길에서

30년쯤 되었을까. 백혈병을 앓던 미 공군사관생도 김성덕(브라이언 성덕 바우만) 군이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도 전해졌고, 많은 사람이 유전자 적합성 검사를 받았다. 나 역시 혈액원을 찾아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결과는 불일치였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초등학생 아이가 나와 완전히 같은 유전자 적합성을 지니고 있어, 내가 기증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증을 승낙하자 생활 전반에 주의가 요구되었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으며, 이식일이 가까워질수록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교통사고까지 조심해 달라는 당부를 들었다. 마치 내가 임신이라도 한 사람처럼 보호의 대상이 된 느낌이었다. 기증을 위해 2박3일간 입원하게 되었다. 서약서를 쓰며 뜻밖의 문장을 마주했다. 전신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 가능성에 동의하느냐는 내용이었다. 순간 망설임이 스쳤다. 내 치료도 아니고, 타인을 돕는 일인데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벌써 환아는 면역력을 거의 제로로 만든 채 무균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포기하면 그 아이의 생명도 위태로워질 상황이었다. 아내는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있겠느냐며 조용히 등을 떠밀었다. 골반에서 골수 1000cc를 채취하여 제공했고, 이식은 다행히 원만히 이루어졌다. 그 아이의 혈액형이 이제 나와 같은 B형으로 바뀐다는 말을 듣고는 생명의 신비 앞에 잠시 말을 잃었다. 회복 후 강의실로 돌아가 보강하려 했더니, 학생들은 박수로 맞아 주며 쉬어도 괜찮다고 했다. 이식 과정을 들은 학생 중 상당수가 헌혈과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삶을 전하는 시간이었기에 더욱 감사했다. 요즘은 입원이나 전신마취 없이 말초혈관에서 성분 헌혈 방식으로 이식이 가능해져, 당시와 같은 부담은 크게 줄었다. 이식 후 일주일이 지나 열린 감사의 밤에서는 여러 수혜자 가족과 기증자가 한 줄로 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누가 누구에게 기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부모는 기증자들을 끌어안고 기쁨과 감사의 눈물을 흘렸고, 어떤 가족은 큰 절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 장면 앞에서 나 역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백혈병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병이다. 내가 만났던 환우들 가운데는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도 있었고, 20년째 군 복무 중인 부사관도 있었으며, 젊은 대학생과 유명 배우도 있었다. 북한에서 치료를 위해 탈북한 고위층의 딸도 있었다. 병은 차별하지 않는다. 조혈모세포 유전자 적합성 데이터베이스는 과거에 비해 많이 확보되었고, 의학적 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바로 경제적 어려움이다. 치료의 길은 열려 있지만,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힘이 부족한 이들이 있다. 지금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이웃의 손길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참조)라고 말씀하셨다. 생명을 살리는 일은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복음의 자리를 향한다. 이 글을 읽는 우리의 작은 마음과 나눔이,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내일이 될 수 있다. 생명을 나누는 이 길에, 더 많은 이가 함께해 주기를 조심스럽게 청해 본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22면

새벽에 피어나는 묵상 수필

지난여름, 충북농업기술원에서 특강을 맡게 되었다. 초청을 담당한 과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순간, 시간은 뜻밖에도 거꾸로 흘렀다. 그는 45년 전 가톨릭학생회 동아리에서 함께했던 제자였다. 그때 나는 지도교수였고, 그는 아직 세상 앞에 서툰 학생이었다. 졸업과 함께 각자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소식은 자연스레 끊겼다. 그런데 어느 날, 제자가 우연히 SNS에서 나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작은 인연의 실마리가 다시 강단 위의 만남으로 이어질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의를 앞두고 우리는 옛 동아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은 자매’라는 이름의 모임이 지금도 카카오톡 방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말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도 초대해 달라 했고, 곧 반가운 인사들이 이어졌다. “교수님, 꼭 한번 뵈어요”, “주례 서 주셨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호주에 사는 제자는 귀국하면 가장 먼저 인사드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흩어졌던 인연은 다시 사람을 불러 모았고, 결국 제자와 한 저녁 식탁에 마주 앉게 되었다. 그날 나는 얼마 전 출간한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 이야기」를 작은 기념으로 건넸다. 제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온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었고, 나는 여전히 학교와 가톨릭교수협의회 그리고 본당에서의 일상을 나누었다. 신앙 이야기와 추억이 겹치자 오랜 공백은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마치 늘 함께해 온 사람들처럼 웃고 공감했다. 헤어지며 제자들은 “영원한 동아리 지도교수님”이라는 과분한 말을 남겼다. 그 한마디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 뒤로 카톡방은 하루도 쉬지 않고 살아 움직였다. 매일 복음 말씀이 공유되고, 신부님의 강론이 이어졌다. 묵묵히 준비해 주는 제자들의 마음이 고마워,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묵상 수필을 시작했다. 성경을 신앙의 언어로만이 아니라, 식품과학자의 시선으로, 때로는 농업인의 삶의 언어로 다시 읽어 내려간 글이었다. 제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렇게도 다가올 수 있군요”라며 기뻐해 주었다. 그 변화는 결국 나에게로 돌아왔다. 매일 이른 새벽, 말씀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도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바쁜 일상에서도 그 글을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돌이켜보면, 내가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남겼다기보다 그들이 다시 내 삶 안으로 신앙의 숨결을 불어 넣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르침은 시간이 지나 사라질 수 있지만, 함께 나눈 말씀의 온기와 삶의 태도는 사람 사이에 남아 조용히 이어진다. 신앙은 거창한 선언으로 자라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만남 하나, 잊고 있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인사 한마디, 그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는 작은 성실함 속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제자들과 나눈 이 작은 수필의 인연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내게 다시 맡기신 ‘지도’가 아니라 ‘동행’의 소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앞서 가르치기보다 나란히 걷도록 부르시는 초대 말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묻는다. 얼마나 더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더 함께 머물 수 있는가를. 신앙은 그렇게, 말없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머물며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22면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몇 해 전, 지방으로 자문하러 가던 길이었다. 차가 많지 않은 고속도로를 달리며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주님의 기도를 외우던 중,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문장이 마음을 스치는 순간, 뜻밖에도 서울 명동밥집의 노숙자들이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헐벗고 배고프며 고생하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주님께서 풍성하게 대접해 주시겠지.’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가 곧 멈춰 섰다.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기도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정년 퇴임을 한 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주 스스로에게 묻던 때였다. 그 순간 문득, 내가 평생 몸담아 온 전공이 떠올랐다. 식품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식품 회사에 도움을 청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묵주기도를 잠시 멈추고, 오늘 찾아가는 회사 대표에게 이야기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17가지 농산물과 수산물을 동결 건조해 만든 코인 육수 제품을, 코인 형태가 아닌 대량 단위로 공급한다면 쓰레기도 줄고, 시간도 절약되어 많은 사람에게 국을 손쉽게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행히 대표이사님은 흔쾌히 무상 제공을 약속해 주셨다. 처음엔 주당 6~700명이던 식사가 해가 바뀌며 2400여 명으로 늘어났음에도 3년 동안 변함없이 무상 지원해 주셨다. 지금도 그 고마움은 마음 깊이 남아 있다. 이후 커피 회사에서는 커피믹스를, 제과 회사에서는 초코파이를, 라면 회사에서는 컵라면을, 두부 회사에서는 두부와 콩나물을, 만두 회사에서는 설날에 최고급 만두를, 장류 회사에서는 된장, 간장, 쌈장, 식용유, 꽁치통조림 등 각종 양념류를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다. 흥미로운 일도 있었다. 양념류를 제공해 준 회사의 관계자는 제자였는데, 금액이 많지 않다며 회사에 보고 없이 개인적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감사의 뜻으로 제품 사진과 함께 SNS에 글을 올렸다. 이를 본 회사 대표는 “왜 이런 일이 보고되지 않았냐”며 깜짝 놀랐고, 나중에 제자의 소행(?)임을 알고는 “이런 일은 회사 이름으로 처리하라”며 오히려 칭찬했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전무로 승진했다.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재직 시절 함께 일했던 학교 직원은 자신의 텃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기증하고 싶다며 연락해 줬고, 그 채소들은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명동으로 향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마음이 모이자 명동밥집에는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도 생겼다. 어떤 노숙자분은 밥을 여러 그릇 드시기에 “이렇게 많이 드시면 탈이 납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몰라서요”라고 답하셨다. 두 시간이나 전철을 타고 와 아침 10시부터 배식을 기다렸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분들에게 명동밥집은 마치 지병을 고치고 싶어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길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날 문득,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 기도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왔다. 글 _ 노봉수 야고보(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22면

교사는 거들 뿐

2025년 12월 28일 본당 주일학교의 교리 방학이 시작됐다. 교리는 방학이라 아이들은 오후 3시에 미사를 드리고 나서 간식만 먹고 집에 간다. 교리교사들은 대신 새 학년 맞을 준비를 한다. 일 년 행사 계획을 잡고 부서 활동을 정비하고 각자 새로 맡은 학년과 함께 무엇을 배우고 어떤 활동을 할지 고민한다. 올해 초 나는 6학년 아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몇 가지 계획을 세웠다. 매주 아이들과 함께 짧은 글을 쓰리라. 툭하면 공원으로 나가 재밌는 추억을 쌓으리라. 학원 가느라 성당에 빠지는 아이들이 없게 하리라. 결과는? 뭐 하나 계획대로 된 게 없다. 1학기엔 15명 정도 되던 6학년 아이들이 요 몇 주 10명도 나오지 않는다. 글쓰기는 하도 원성이 자자해서 그만두었다. 아이들로 하여금 ‘부담 없이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들게 하려면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만 다시금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우리 밖에 나가서 수업 하자” 하면 “추워요, 귀찮아요, 그냥 여기서 해요”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다.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내가 맡은 영상선교부에서 영상을 4편 제작해서 미사 시간에 상영회를 연 것, 새침하던 6학년 아이들과 서로 별명을 부르며 장난할 만큼 친해진 것은 나름 뿌듯한 성과다. 내년 이맘때엔 스스로 ‘나 좀 잘했네’ 여길 정도가 되면 좋겠다. 진부하지만 이런 질문이 어울리는 시기다. ‘어떤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싶은가?’, ‘이 일을 왜 하는가?’ 20대 때 평일이고 주말이고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는 날 보며 부모님도 친구들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내게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순전히 재밌어서”라고 대답했다. 애들 만나는 것도 재밌고 같이 교사하는 언니·오빠랑 노는 것도 재밌다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조금 진지해졌다. ‘요즘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필요로 하지만 다른 데선 얻을 수 없는 것’을 성당에서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바로, 환대와 신앙이다. 성적이나 가정환경, 성장 배경 등에 상관없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이 이 사회에 얼마나 될까. 적어도 주일학교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자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주일학교만큼은 정서적으로 어려움 겪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최근 부쩍 자아가 발달한 큰애와 인내심의 바닥을 치는 대화를 나누면서 확인하게 된 사실이 있는데, 아이들에게도 깊은 신앙이 자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뭐 대충 맛있는 거 먹이고 재밌는 활동 하면 좋아해’라는 생각은 얼마나 안일한가.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라도 제 나름대로 교리를 이해하며, 부모의 모든 말에 어깃장을 놓는 사춘기 청소년이라도 하느님과 성모님을 공경한다. 그런 아이들의 삶에 신앙의 초석을 놓는 게 주일학교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책임감에 아찔해지다가도 깊이 감사하게 된다. 결국 일하시는 건 하느님이다. 교사는 거들 뿐.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지만 그 성실함이 열매로 맺히는 시기와 형태는 인간의 사고 범위를 벗어나므로, 그저 믿어야 한다. 주일학교 교사로 일하는 동안 해온 모든 고민과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고, 하느님은 나의 시행착오조차도 재료로 쓰신다고 말이다. 지금 우리가 더 좋은 교리교사가 되기 위해 헤매는 것조차 당신 계획 안에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22면

너희의 ‘최애’가 예수님이면 좋겠어

주일학교 교리 시간, 종이에 뭘 적는 활동을 하고 나서 “활동지는 집에 가져가렴~” 말해도 아이들은 늘 종이를 놓고 간다. 교리실 바닥에 나뒹구는 종이를 주워 정리할 때면 낙서와 함께 웬 이름들을 볼 수 있는데 낯선 그 이름을 통해 요즘 아이돌 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가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6학년 아이들의 ‘덕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청소년기 덕질의 순기능에 대해서라면 이미 수많은 논문이 존재할 만큼 효과가 입증돼 있다. 나 역시 서태지를 통해 삶의 재미를 알았고 사회성과 행동력을 길렀기에, 연예인을 향한 아이들의 팬심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말할 때 생기가 도는 아이들의 얼굴은 참 예쁘다. 그리곤 바람이 생긴다. 아이들이 팬심 일부를 떼어다 예수님께 드렸으면 하는 바람. ‘투어스’를 덕질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덕질할 순 없을까? 종교는 덕질 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깊은 덕질이다. 고대 구석기 시대부터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과 의례가 있었다. 가톨릭 신자는 우리의 최애인 예수님의 탄생과 구원 역사를 이천 년 넘게 기념하고 있다. 그의 말과 행적을 다룬 책인 성경을 읽고 공부한다. 묵주, 성상, 성화같은 다양한 굿즈도 있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예수님이 살았던 곳을 방문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종교와 덕질은 닮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열정에는 차이가 있는데, 하느님을 향한 마음은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를 향한 팬심보다 훨씬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특히 팬덤 문화가 발달한 청소년기에서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지는데, 박보검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소녀는 많이 봤어도 예수님이 내 최애라고 말하는 소녀는 보지 못했다. 청소년기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한데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 않으니 그러하리라. 그래서 우리에겐 전례가 필요하다. 전례는 덕질을 지속하는 힘이 된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거행되는 미사와 십자고상과 봉헌초, 묵주, 물과 기름…. 게다가 오묘한 향냄새라니! 그 안에서 나는 낯선 편안함을 느낀다. 다소 엄격해 보이는 예식을 통해 우리가 지상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천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유명인이 팬미팅 같은 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해서 팬들을 결속시키고 열정을 새롭게 하듯이 우리도 거룩한 의식에 참례함으로써 복음을 깊이 받아들이고 구원 사건을 기념할 수 있다. 특히 영성체는 내 최애를 향한 사랑에 사로잡히는 결정적 순간이다. 멀고 고귀한 어딘가에 있는 줄만 알았던 나의 최애가 살과 피가 있는 존재로 현존하시는 것도 모자라 나와 하나가 되신다니. 내가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가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 존재하면서도 그분과 함께 거룩해질 수 있다니. 지난봄 부활 행사 때 우리 주일학교는 파티를 열었다.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성경에 드러난 예수님의 행적을 담은 성화에 스티커를 붙여 투표하고(최애 투표), 예수님 등신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다(포토존). 청소년에게 익숙한 ‘연예인 생일카페’를 모티프로 삼아 예수님을 덕질하는 시간을 만들어본 것이다. 아이들의 최애가 예수님이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다들 지독한 덕후가 되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주일학교만큼 즐거운 곳도 없을 것이다. 덕후끼리 매주 모여서 미사드리고 노래하고 밥 먹고 최애 이야기를 한다니, 이렇게 신날 수가!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26면

엄격함과 관대함 사이에서

작년에 큰애가 첫영성체를 했다. 미사 중 아이가 처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을 지켜보며 나는 거의 오열했다. ‘어흑! 이 장면을 위해 그 고생을 했단 말인가!’ 우리 본당은 첫영성체를 받기까지 과정이 까다로운 편이다.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짧게는 5개월 길게는 8개월간 매주 어린이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기본이고 새벽미사를 포함한 평일미사에 일정한 횟수 이상 참례하며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을 필사하고, 과제를 하고, 교리 시험을 치른다. 매년 30~40명 어린이가 첫영성체반에 들어오는데, 탈락하는 아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 완주한다. 다른 지역의 주일학교 이야길 들으니 첫영성체 대상자가 한 명뿐이라 서너 번 정도 일대일 교리 수업을 한 후 온 교우의 환영 속에 첫영성체를 했다고 한다. 8개월 동안 숨 가쁜 과정을 거친 첫영성체와 단기간에 달성한 첫영성체, 그 둘은 은총의 크기가 다를까.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자주 갈등한다. “성당에서까지 엄격할 필요가 있을까?”, “성당이라고 느슨해선 안 되잖아?” 결혼 전엔 괜히 엄격하고 융통성 없는 교사 시늉이었는데 결혼 후 아이들을 성당에 데리고 가려고 구슬리고 협박하는 학부모가 돼보니 교사로서 엄격해지기 어렵다. 다행인 건 내가 어떤 기준을 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신부님이 회칙과 본당 사정에 근거해서 정한 기준을 따르면 된다. 다만 평교사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조금 유연성을 발휘한다. 주일학교에 등록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에 처음 온 어린이가 참여 의사를 밝혔을 때, 일단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고 가급적 빨리 주일학교에 등록하도록 안내하는 식이다. 성당에 오는 아이가 갈수록 줄고 있는 시대에 등록을 했든 안 했든 행사에 참여하고, 첫영성체도 기준을 완화하는 것이 좀 더 보편교회다운 방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탓일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귀하게 여기기 어렵단 생각이다. 많이 내어놓은 만큼 많은 것을 얻는 건 당연한 이치다. 1을 내놓으면 고작 1을 얻지만 10을 내놓으면 무려 100을 얻기도 하는 게 삶 아니던가. 어쩌면 이것은 신앙의 신비를 깨닫지 못한 자의 어리석은 셈법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은 아주 커다란 은총을 때론 아무 힘들이지 않고도 얻게 하신다. 나 역시 값없이 받은 은총으로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내년에 첫영성체 반에 들어가는 둘째는 엄마의 호들갑 때문에 다소 긴장한 상태다. 울상인 얼굴로, 지금도 성당에 자주 가는데 3학년이 되면 얼마나 자주 가는 거냐고 묻는다. 이번 주는 주님의 기도, 다음 주는 식사 후 기도를 외우자고 했더니 아이가 첫영성체를 꼭 해야 하냐고 반문한다. 아이는 앞으로 몇 번쯤 더 같은 말을 할 거다. 가뜩이나 잠이 많은 아이이니, 새벽 미사를 드리는 날엔 짜증을 내겠지. 그런 지난한 과정 끝에 마침내 처음으로 성체를 모시는 날, 나는 또 미사 중에 오열할 거다. ‘아직 막내가 남았다’ 하면서. 울 땐 울더라도 잊지 않으려 한다. 복음을 필사하고 기도문을 외우는 동안 이미 우리 일상의 무게중심이 주님에게로 기울어졌음을. 그분이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도록 스스로 몸을 낮추는 과정이었음을.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

발행일 2025-12-14 제347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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