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님을 위한 대리석, 카라라에서 찾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설치되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을 만드는 작가로 최종 선정된 후 첫 번째로 시작한 작업은 양질의 대리석을 찾는 일이었다. 작품의 크기는 높이 3.77m 가로 1.83m 폭 1.22m로, 이보다 큰 4m이상의 대리석을 구해야 했다. 무늬가 거의 없어야 하며 크랙이 없고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 강도가 강한 대리석이 필요했다. 세계에서 품질이 가장 뛰어난 대리석이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카라라를 염두에 뒀다. 사람도 성격과 얼굴이 조금씩 다르듯이 흰색 대리석도 수백 종류가 있다. 따뜻한 느낌, 차가운 느낌, 쨍쨍거리는 느낌, 신경질적인 느낌, 단단한 느낌, 강도가 약해 푸근해 보이는 느낌, 무늬가 많아 산만한 느낌 등 다양하다. 작가가 대리석을 구입할 때에는 대리석 채석장에 가서 직접 돌을 주문하는 방법과 대리석을 절단해서 육면체로 만들어서 파는 공장에서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카라라에서 피에트라산타까지 약 25km 정도 되는 구간에 수백 개의 대리석 공장이 있다. 거의 모든 채석장과 공장을 몇 번씩 다녀봤지만 4m가 넘는 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있다고 해도 크랙과 무늬가 너무 많아서 성상의 재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주변에 대리석 전문가들이 많아서 양질의 대리석 찾는 일에 동행을 해줬다. 작업 파트너 니콜라와 그의 아들 세바스티아노, 좋은 대리석을 잘 찾는다는 최윤숙 선생 그리고 카라라 아카데미 동창생인 마시모 펠레그리네티 교수 등 ‘돌 박사’들이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주었다. 카라라에서 피에트라산타까지 수십 번 왔다갔다 하면서 열심히 좋은 대리석을 찾던 중, 니콜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좋은 대리석을 발견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모두가 달려가서 대리석을 보는 순간 좋은 대리석이라고 느꼈다. 무늬가 없고 색상이 따뜻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크기도 충분했다. 무늬를 확인하기 위해 물 호스를 끌고 와서 물을 부어 보니 문제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바닥을 살펴봐야 하는데 크레인 기사가 출근하지 않아 며칠을 기다려야 했다. 2023년 1월 9일, 기다림 끝에 대리석을 들어 올려 확인하고 “오케이!”를 외쳤다. 함께 고생한 동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5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최상의 대리석을 찾은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밖에서 보이지 않던 크랙과 무늬가 돌 안쪽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다시 돌을 구입해 작업을 해야 한다. 최고의 대리석을 찾은 순간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며 생각이 났다. 피에트라산타본당 주임 신부님을 모시고 축복을 받고 싶었다. 니콜라는 바로 전화를 걸고 성당으로 가서 신부님을 모시고 왔다. 신부님이 축복을 해주시면 돌 속의 크랙과 무늬가 없어질 것 같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기도했다. 축복식을 마치고 모두가 모여 기념 파티를 했다. 나의 아내 고종희, 형제 같은 피엘안젤로, 니콜라, 세바스티아노, 마시모, 마리아, 최인숙 선생과 함께 대리석을 찾은 기념 파티를 했다.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커다란 선물을 받고 난 뒤,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대리석 안에 계신 김대건 신부님을 해방시켜 자유를 찾아드려야지!” 글 _ 한진섭 요셉(조각가)

2024-05-19

김대건 신부님, 바티칸에 우뚝서다

2023년은 작가 생활하는 내게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 성 김대건 성인상을 설치했던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해였습니다. 바티칸에 동양 성인의 성상이 모셔지는 것이 처음 있는 일이고 성인상이 설치된 성 베드로 대성당 외부 벽감(壁龕, 벽면을 오목하게 파서 만든 공간)은 600년 전부터 비어 있었던 아주 중요한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작업은 2021년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라자로) 추기경님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김대건 신부 성상 봉헌 의사를 밝히며 시작됐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2020년 11월 29일~2021년 11월 27일)을 마무리하며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억하고자 유 추기경님이 성상 봉헌 의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작가를 찾는 과정에서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수석사제였던 마우로 감베티 추기경님은 대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의 작품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지켜보던 유 추기경님은 한국의 성인은 한국인 작가가 만드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하셨습니다. 그렇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첫 한국 성인상 제작을 한국인 작가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티칸에서 한국인 작가를 찾기 시작했는데, 가톨릭신자이면서 이탈리아에서 작업이 가능한 돌 조각 작업 전문가를 원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경력이 있는 작가를 찾는 것으로 결정이 됐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45년 동안 돌 조각을 했고 이탈리아 카라라서 유학한 저의 경력이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이 준비시킨 것으로 여겨집니다. 2021년 12월, 교황청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바티칸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제작하려고 하니 제작에 필요한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얼마 전에 대전교구청에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제작한 적이 있었기에 저는 그때 만들었던 네 개의 모형과 완성한 사진을 보냈습니다. 얼마 뒤 교황청에서 심사를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2022년 7월 18일에 있었던 1차 심사에는 바티칸 예술 책임자 피에트로 잔데르를 비롯해 미술 담당자, 바티칸 건축가, 유흥식 추기경님이 참석했습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크기, 제작 방법, 작품이 의미하고 있는 것, 작품의 설치 방법까지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답변했습니다. 1차 심사가 끝난 뒤 작업실이 있는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로 돌아와 작품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배경을 모형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김대건 신부님 성상 제작 작가로 최종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습니다. 말과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쁨이 몰려왔습니다. 50년간 힘들고 어려운 돌조각을 포기하지 않고 작업해 왔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성상의 모습을 결정하는 과정이 남았습니다. 여러 개의 모형 중에 오른손에 십자가를 든 자세를 염두에 뒀으나 설치 장소가 외부인 점을 고려했을 때 눈과 비, 바람, 햇빛에 노출돼 색과 모양에 변형의 우려가 있기에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으로 최종 선정이 됐습니다. 그렇게 바티칸에 성 김대건 신부님의 성상을 세우는 의미 있는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글 _ 한진섭 요셉(조각가)

2024-05-12

성모 마리아와 장미이야기

장미의 계절, 5월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장미축제가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장미축제를 일컫는 ‘로살리아’가 죽은 자들에 대한 숭배와 관련된 의식 중 하나였다. 죽은 자들에 대한 숭배의식을 그대로 흡수한 그리스도교 전통은 가시가 달린 장미를 순교자들의 고통으로 받아들였다.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했을 때도 한겨울에 장미꽃들이 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고, 프랑스의 라 살레트와 루르드에서 발현했을 때도, 성모님 곁에 장미꽃이 있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는 파티마의 어린 목동들에게 발현하시어 러시아가 자신의 오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파티마의 기도’를 포함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요청하셨다. 따라서 묵주는 항상 이단과 곤경에 대항하는 무기였다. 사실 1571년 10월 7일 레판토 해전에서 이슬람 세력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 즉, 이교도에 대한 최초의 해전 승리는 신자들이 바친 묵주기도에 힘입은 것이었다고 한다. 성모 마리아를 그린 그림에도 장미가 자주 등장한다. 1642년에 그린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작품 ‘성모의 대관식’도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 장미 화환을 씌우고 있다. 하트형 구도로 되어 있는데, 오른편은 성부 하느님께서 손에 투명한 지구를 들고 있고 아들 예수와 함께 장미꽃 화관을 들고 있다. 그리고 왼편은 성모의 아들 예수가 그려져 있다. 손에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홀이 들려져 있고, 성부와 함께 성자 예수는 장미꽃 화환을 성모의 머리에 씌우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빛을 발하며 대관식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의 기도 생활에서도 마리아와 장미는 깊게 이어져 있다. 묵주기도(Rosario)가 라틴어로 ‘장미 꽃다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마리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장미를 떠올린다. 장미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마리아의 사랑을 상징한다. 하지만 단순히 상징만이 아니라 마리아와 연관이 있는 꽃이기도 하다. 로사리오의 기원은 도미니코회 수도원의 창시자인 성 도미니코가 이단인 프랑스의 알비주아파와 싸울 때 성모 마리아가 출현하여, 영적 무기로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라는 계시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이후 도미니코회와 로사리오형제회가 신자들에게 널리 보급하게 되었고, 레오 13세교황은 10월을 묵주 기도 성월로 선포하였다. 동방교회의 수도원에서는 ‘비잔틴식 로사리오’라 하여 100개의 구슬로 엮은 것을 사용하였다. 묵주의 기도는 복음 전체의 요약이자 구원적인 강생에 집중하는 기도이며 인류 구원의 신비, 그리스도의 신비, 교회의 신비 그리고 마리아의 신비를 요약 함축하고 있다. 묵주기도는 반복되는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깊은 내적 일치를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성모신심을 특성으로 지니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다. 이 기도는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집약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와 동행하셨던 성모님을 따라 예수님의 전 생애를 묵상하고 관상하는 데 탁월한 방법이다. 묵주기도는 대중 신심의 단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더욱 깊은 관상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신학적 깊이도 갖추고 있다. 또한 반복하며 묵상하는 특징은 개인적으로는 내적인 평화를 얻어 일상의 어려운 문제들을 직시하게 해주며, 공동체로 바쳐짐으로써 구성원들 간의 평화와 화합을 촉진하게 한다. 글_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5-05

이 세상이 천국이다

어느 갤럽조사에서 ‘극락이나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는 대답이 63.4%인 것으로 나와 국민의 현세 중심적 사고가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상세계를 꿈꾸어왔다. 그곳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동양에선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와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동경했다. 19세기 독일의 서정시인 카를 부세(Carl Busse)는 자신의 시 '저 산 너머‘(Over the Mountains)에서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그 말만 듣고 남들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라고 했다. 니체는 1881년 여름, 알프스 산중에서 산책하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영원회귀 사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 일체의 사물과 인식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인 수소와 산소가 모여 전혀 새로운 물이 출현하면서 신비로운 형이상학이 된다. 이 신비의 과정을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창조’라고 표현하고, 불교에서는 연기라 부른다. 흔히 생명은 유한한 삶을 산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체로서의 생명일 뿐, 전체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를 이어가는 한 죽음은 없다. 생명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한 생명은 영원하다. 자기 인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개체의 유한한 삶에 대한 강박감도 내려놓을 수 있다. 자기가 사라지면 죽게 될 자기도 없어지고 따라서 죽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기 인식을 내려놓아야 세상 속박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본래 이 세상은 아름다운 천국이다. 그 천국에서 소풍을 즐기는 것이 인생이다. 장자의 '소요유'도 멀리 소풍 가서 영혼을 정화시키며 놀면서 절대 자유를 누리는 이야기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리에게 긍정 마인드를 깊이 심어준 위대한 시인 천상병은 모진 전기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천국을 살았다. 프랑스 가르멜 수도원의 성녀 엘리사벳은 이 세상에도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찾았습니다. 천국이란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0-21),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루카 18, 16)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에서는 참된 신자가 죽은 후 그 영혼이 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드시 사후의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지배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곳을 말하며, 현세에도, 또 인간의 마음속에도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이 세상이 천국이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28

신앙에 대한 사유

“나는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보았고, 천사가 나올 때까지 돌을 깎아 냈다.” 다비드상을 조각한 미켈란젤로의 신앙고백이다. 그는 이미 대리석 안에 있는 천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조각상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 들어있는 천사를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우리 안의 그리스도를 볼 줄 아는 눈을 갖는 것이다. 신앙은 곧 우리 안에 있는 주님을 발견하고 믿는 것이다. 신앙은 성스러운 절대자를 믿고 절대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 내지는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신뢰와 순종이라는 인격적 관계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신앙이란 하느님과 그분이 보이신 계시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반응 즉,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계시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전적으로 하느님의 증거와 언약에 의존한다. 즉 신앙은 하느님의 언약인 ‘말씀’에 전 존재를 걸고 신뢰하는 것이다. 신앙은 구원의 필수 조건이다. 하느님의 창조와 섭리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재림과 최후 심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신앙이다.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끝’이 아니라 한 방식의 삶이 끝나고 다른 방식의 삶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썩어질 육체를 위하여 삶을 소진할 것이 아니라 부활의 신앙으로 영생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마르 16,4) 성경은 이 짧은 한 문장으로 무덤 안과 무덤 밖을 연결한다. 참으로 놀랍고 엄청난 변화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그렇게 성경은 단호하고 분명히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다. 무덤 안의 어둠과 두려움이 무덤 밖의 빛과 희망으로 연결된 것이다. 무덤 안의 죽음과 무덤 밖의 생명이 연결됐다.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돌이 치워진 것이다.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은 치워졌고, 창으로 찔려 벌어진 그 옆구리 사이가 보고 믿은 이의 손으로 메워졌다. 그리고 믿지 못한 토마스는 벌어진 상처를 넣어 보고 나서야 신앙고백을 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부활을 통해 열어 주신 생명의 문, 그분께서 당신을 믿고 당신의 뜻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켜 온 사람들을 하늘의 영광에 참여시키기 위해 열어 주신 천국의 문,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발걸음이 우리 신앙의 전부일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 그 생생한 기억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펼치신 구원의 손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를 고립과 절망으로부터 꺼내 주며, 지금 우리 안에 희망의 기쁨을 움트게 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서 양팔을 벌려 신앙으로 다져진 우리를 맞이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능력은 성령이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 성령을 받아 부활의 신앙으로 각자에게 내려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며 작은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신앙인의 진정한 삶이 아닐까.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21

예수 초상에 대한 상징성

2020년 선보인 한국천주교 103위 순교성인화 중에서 얼굴이 없는 77위의 성인화가 새로 제작되었는데, 그 당시 여러 명의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려냈다. 초상화들을 보면 당시의 사진 자료가 없고 직계 혈손도 없으므로 화가 개인의 주관적인 감각으로 창조된 얼굴들이다. 그러다 보니 충분한 형태적 분석이 안 된 화가는 신앙적 품성이 결여된 느낌이 들거나 자신을 닮은 모습이 나오기도 하여 심의에서 탈락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예수의 초상화는 어떠한가. 인성과 신성으로 상징화된 예수의 초상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예술형식과 매체에 의해 신앙과 관습적 인식의 조합으로 창조되어 왔는데, 그리스·로마 미술에 뿌리를 둔 3세기경에 처음으로 양을 어깨에 메고 있는, 수염이 없는 관습화된 선한 목자의 얼굴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6세기경에는 비잔틴제국과 중세미술에서 관습화된 초상인,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에 수염이 있는 모습이 되어, 예수의 도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오른손에는 하늘과 땅을 축복하고 왼손에는 복음서를 들고 있는 성상화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인간적 가치를 중시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배경으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서 묘사된 남성미 넘치는 근육질의 예수,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나타난 우아하고 이상적인 용모를 지닌 예수가 등장한다. 예수의 초상화는 20세기로 들어서면서 미국의 워너 샐먼이 그린 하얀 피부와 긴 머리, 푸른 눈을 가진 예수의 얼굴로 탄생한다. 샐먼의 그림은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마치 표준영정처럼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갔다. 결과적으로 이전보다 훨씬 친근하고 달콤한 예수의 이미지가 대중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에 비해 조선 시대 공신들의 초상화는 곰보나 사팔눈, 흉터가 있는 얼굴을 한 용모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 아름답고 잘생긴 외모 지상주의가 아닌 진솔한 얼굴 그 자체를 가감 없이 담아내어 예수의 초상화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영국 BBC 다큐멘터리 ‘신의 아들’이 공개한, 현대과학이 만들어 낸 예수의 얼굴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아닌 농민이나 노동자 계층의 검고 짧은 머리카락과 까무잡잡한 피부색을 가진 거칠고 투박한 생김새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부근에서 도로공사 중 발견된 1세기 유대인들의 두개골 중 가장 대표적인 형태를 가진 것들을 골라 첨단 법의학 기법과 컴퓨터로 실제 얼굴을 복원했다. 머리카락, 턱수염, 피부색 등은 이라크 북부의 한 사원에서 발견된 예수상을 토대로 제작했다고 한다. 성경의 이사야서 53장에도 그의 용모에 대해,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만한 모습도 없었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어쩌면 직업이 목수(마르코 6:3)였으므로 육체노동자의 다부진 체격을 가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성상은 성경에서만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얼굴로서, 아무도 보고 그린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인간이 창조해 낸 관습적 인식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뒷받침할 시대적 공감대를 형성해 주는 예수의 초상이, 우리를 신앙과 영적 성장에 길잡이 역할을 해 주고 있는 것이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14

성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의 동행 / 윤여환

2021년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로 선정된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맞아, 2021년 1월 1일자 가톨릭신문 신년호 1면에 성체의 빛을 받으며 걷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를 그린 ‘아름다운 동행’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하늘에 계신 성체의 빛을 받으며 솔뫼성지를 걷고 있는 성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이 함께 서 있는 모습으로 설정했는데, 그것은 두 분이 친척이면서 동년배이시고, 마카오로 건너가 함께 신학 수업을 받으셨던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 두 분이 이 땅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주님께 다가가고자 했던 그 시절 신앙의 열정을 최대한 담아내 보려고 하였다. 그리고 화면 양 옆으로는 신부들이 뿌린 신앙의 씨앗으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한 한국교회를 상징하는 명동성당과 나바위성당을 배치하여 거룩한 분위기를 고취시키려고 노력했다. 성 김대건 신부님은 한국천주교회 첫 사제이면서 성인이시기 때문에 후광을 넣었고 사제복식을 따랐다.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교우촌 신자들을 위한 사목과 전교활동을 하시다가 순직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있는 복식으로 표현했다. 또한 대전가톨릭대 학생 자치회는 그 당시 학생들의 뜻을 모아 교내에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 그림을 걸자고 뜻을 모으고 학교의 허락을 받았다. 이어 두 신부의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수소문하고 선별해 재학생 모두에게 의견을 물었고, 내가 제작한 ‘아름다운 동행’ 작품을 최종 선정했다. 이 그림을 가로 120㎝, 세로 105㎝ 크기 액자로 제작하여 4월 19일에 성당으로 가는 복도에 걸어 하루에도 여러 번 성당으로 들고 나는 신학생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학생회장 이재홍(미카엘) 부제는 “사제직을 향해 가는 우리 신학생들이 두 분 선배 신부님들의 신앙과 정신을 항상 되새기고 참 사제가 되기를 다짐하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충청 솔뫼에서 태어나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까지 25년을 살았다. 1845년 한국 최초로 사제 서품을 받고 그 이듬해 처형됐다. 지극히 짧은 삶이었으나 한국 천주교의 불꽃을 일으킨 선각자로서의 울림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교황청은 지난 1925년 김 신부를 복자로, 1984년 성인으로 선포했다. 유네스코는 2019년 총회를 통해 김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리며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한 것이다. 충청 다락골에서 태어난 최양업 신부는 15세 때 프랑스 모방 신부에 의해 김대건, 최방제 등과 함께 한국 첫 신학생으로 선발됐다. 유학길에 올라 마카오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849년 사제 서품을 받고 두 번째 한국인 신부가 됐다. 라틴어로 된 교리를 우리말로 번역해 박해를 피해서 산골 곳곳에 숨어 있던 천주교인들에게 전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 많이 불리던 가사양식을 활용해 ‘천주가사’를 창작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최 신부는 사목 활동 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선종했다. 1984년 한국 성인 시성식 때 명단에 들지 못했으나, 이후 주교회의는 최 신부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6년 최 신부를 가경자로 선포했다.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제도가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님의 순교 영성에 누가 되지 않게 되기를 빌며, 순교정신을 본받아 자아성찰과 묵상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07

103위 순교 성인화 스토리 / 윤여환

한국 천주교 103위 순교 성인화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서 한국가톨릭미술가협회는 지난 2017년 2월 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에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추진을 요청했다. 그해 7월에 초상화 제작사업 승인을 받아 ‘103위 순교 성인화 제작 운영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그리고 전국 교구 가톨릭미술가회를 통해 참여 작가를 공모하여 성인화 제작 작가를 선정하였다. 이어서 ‘한국 103위 순교성인 초상화 제작자 워크숍’을 개최하여 복식 고증과 자세 그리고 손에 든 서적, 성물, 갓, 머리모양 등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였다. 회의 결과, 새로 제작하는 성인화들은 모두 상반신에 20호 크기로 통일하였다. 그런데 2018년 2월 본격적인 제작에 돌입한 성인화 제작 사업이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12월에는 채색된 작품들을 검토하여 인준, 조건부 인준, 비인준으로 분류해 조건부 인준 작품은 수정을 거쳤고, 비인준된 12점의 작품은 다시 제작하기로 하였다. 결국 2019년 6월에 작가 63명이 참여하여, 1차로 68위 성인화를 완성하였고, 기존 성인화 중에서 다시 제작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한 9위를 포함하여 2020년 6월에 최종 77위 성인화를 완성하여 인준을 받아 3년 만에 천주교 표준성인화가 탄생했다. 나는 그 당시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작가당 1위를 제작하기로 했는데, 추가 성인이 늘어나 부득이 6인의 성인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0년 9월 4일에서 27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관에서 성인화전을 개최했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화 특별전’의 가장 큰 의미는 103위 성인의 시성식이 거행된 지 36년이 지난 지금, 최초로 103위 성인 초상화 전체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이었다. 이 가운데 문화예술위원회가 진행한 103위 순교 성인 초상화 제작사업을 통해 새로 제작한 초상화가 77점이었고, 기존에 제작된 26위의 초상화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 정하상 바오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 조신철 가롤로 등과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 10명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103위 성인들을 박해 시기별로 나눠보면 기해박해 순교 성인이 70위, 병오박해 9위, 병인박해 24위이다. 성인 초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머리 뒤에 후광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하지만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10위의 성인들은 시복 시성 이전인 19세기 말에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진 초상화이기 때문에 후광이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제작한 성인화 6위는 성 이광렬 요한, 성 김임이 데레사, 성 권희 바르바라, 성 손소벽 막달레나,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아들인 성 유대철 베드로이다. 이 성인화들은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육리문법과 배채법, 적선법을 사용한 견본채색 방식으로 전통초상기법에 충실하였다. 그동안 초상화 작업은 다양하게 연구해 왔지만 이번 성인화는 처음 접하면서 용모 추출의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고심 끝에, 순교하신 103위 성인들의 영적 교감을 얻기 위해 해당되는 성인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신심 깊은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의 모습에서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를 분석해 이를 바탕으로 순교 성인의 성스러운 얼굴을 표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3-31

내포의 마더 테레사 초상 / 윤여환

긴 세월, 초상이 없는 선현들의 용모를 찾아내기 위한 영정 작업을 꾸준히 해 왔다. 주로 해당 위인들의 문헌자료와 직계 혈손들의 용모에서 표준우성인자를 추출하여, 어느 정도 직계 후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결과를 얻어냈다. 혈손들의 용모에서 그 위인의 인품과 진상(眞像)을 찾아내는 작업은 무척 난이도가 높고, 영혼의 교감까지 요구되는 영역이라서 여간 까다롭고 난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연구 분석한 통계적 골상학과 관상학 그리고 인상학과 기색의 찰색법 등 가능한 모든 추출 방식을 동원하여 유전적 형태를 부위별로 분석한다. 그 표준유전인자를 모본으로 하여 주인공의 근사치를 찾아내고 최종결과의 용모를 도출하여 완성한다. 지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내포 지역 방문 기념 특집으로 ‘TJB화첩기행-내포성지순례 2부작’을 제작하기 위해 2주간 촬영과 현장 사생 작업을 진행한 일이 있었다. ‘TJB화첩기행’은 TJB대전방송의 예술과 여행 프로그램으로,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를 읽고 그리며,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휴머니티를 사생과 음악을 통해 풀어갔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로 꼽히는 내포 지역의 의미를 되새기며, 교황이 찾는 당진 솔뫼성지와 서산 해미순교성지를 비롯해 한국 천주교의 샘터로 불리는 여사울성지 등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를 미리 돌아보았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할 만한 일을 고민하던 중 “마더 테레사가 한국인이었다면 어떤 모습일까”하는 생각에 내포의 마더 테레사를 찾아보는 시나리오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의 천사 마더 테레사 수녀의 따뜻한 품성과 신앙적 향기를 기리기 위해 내포 지역 성지인, 해미순교성지 성당의 신자 중에서 오랜 세월 동안 깊은 신앙심으로 다져진 여성 신자들을 물색했다. 그 결과 14명의 할머니 얼굴에서 신앙적 용모 우성인자를 추출하여 한국의 ‘내포 마더 테레사’ 초상을 구현해 냈다. 신앙적 용모란 하느님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다져진 용모를 말하는데, 안면근육의 활성도를 측정하고, 안면피부의 발색도를 찰색하여, 발색도와 활성도 등이 높은 용모인자 중에서 우성인자를 찾아 분석하였다. 그리하여 인자하고 단아하며 맑고 신앙심이 깊은 내포의 할머니 초상을 탄생시켰다. 이번 초상화 작업을 통해 마더 테레사 수녀가 걸어온 성녀의 삶과 참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과 우리 곁에서 발견한 테레사 수녀의 모습 등을 통해 삶의 행복과 기쁨, 보람과 희망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포 지역에 다시 탄생하는, 부활하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초상화를 구현해 내는 일련의 과정들은 오롯이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잠재의식 속에 깊숙이 침잠해 있던 어떤 영적 메시지를 받는 시간, 묵상하며 기도하는 무언의 영적 소통의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3-24

[일요한담] 성령묵상회의 추억

동양회화를 하면서부터 동양사상과 동양철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 왔다. 특히 동양의 기사상이라든가, 음양오행론에 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왔지만 결국 사상과 철학의 근간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곳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음양오행에 심취하다 보니 신비주의에 빠져들기도 하여 신적인 존재나 영적인 세계를 찾으려는 노력도 했었다. 그러한 종교적 편린 끝에 1991년에는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세례성사 즉, 물과 기름에 의한 세례를 받고, 다음에는 더욱 굳건한 믿음을 위해 견진성사를 받았다. 또 소위 불세례라고 하는 성령묵상회 등을 통한 성령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나는 그 무렵 유인성 신부님의 성령묵상회 안수 중에 바위처럼 큰 불덩어리가 머리 위에 내려오면서 전신이 감전되는 듯한 전율을 느꼈고, 신령한 언어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에 그 신령한 언어가 글자화되는 심령 글씨를 쓰게 되었고, 그 언어는 리듬을 타고 노래로 나오기도 하였다. 말하자면 영가(靈歌)라고 할 수 있다. 노래는 시작과 끝도 없이 저절로 작사 작곡이 되어 불러졌다. 글씨도 자동필기로 글씨가 저절로 빨리 써지는데 한 자도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기록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작품 제작에 들어갔을 때 어느 틈에 그 글씨들이 나의 작품 속에 잠식해 들어왔음을 보고 무척 놀랐다. 그로 인해 그림이 마무리가 안 되고 망쳐버리는 결과가 자주 일어났다. 나의 의도와 그 글자 조형이 서로 불협화음을 낸 것이다. 결국 기도 중에 나는 자동 필기되는 그 의도에 따라주라는 무언의 암시를 받고 아무 생각 없이 무작위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그 후부터 나는 무작위적 글자의 조형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그림의 소재도 자유로워졌다. 그 심령 글씨가 나의 조형적 회화 세계를 점유하여 나의 조형적 사고와 신적 문자 조형이 혼연일체가 되어 표출되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상과 본질, 순수조형감각과 신비적 로고스와의 만남이었다. 나의 경험적 미의식과 초월적 미의식과의 융화였다. 이른바 ‘묵시찬가’(黙示讚歌) 시리즈는 이렇게 해서 제작되었다. 이들 작품에 나타난 심령 글씨들은 하느님에 대한 찬미, 감사, 참회, 비탄, 예언, 교훈, 찬양, 찬가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말하자면 하느님과의 묵시적 심령 기도문이다. 그것이 언어의 한계성과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우리를 대신해서 하느님께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듣거나 해득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하느님 자신을 위해 조배 드리는 것이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지금도 이 세 가지(심령 언어와 심령 글씨, 심령 노래) 기도 형식은 변함없이 나의 신앙과 작품세계 속에서 발현되고 있다. 이 묵시적 ‘사유문자’(思惟文字)는 내 작품 속에서 하느님을 통해 참나(眞我)를 찾기 위한 표현 기제로 내 잠재의식 속에 들어앉아 있다.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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