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파도를 넘어 영원한 미소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얇은 유리 벽 같았다. 췌장암 3기라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1년 6개월의 시간을 버텨오신 마르코 고모부님. 항암치료의 고통 속에서도 회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직접 운전대를 잡고 한의원을 다니시던 그 간절한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끔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식사를 나누실 때면, 젓가락을 움직이는 그 평범한 손길조차 우리에겐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집에서 마지막이 되어 버린 식사를 하고 나가실 때 고모부님은 고백하셨다. “무섭다, 참 무서워.” 떨리는 목소리로 남기신 그 말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본원적인 두려움이었다. 그 후 며칠 뒤 간 기능의 저하와 함께 찾아온 쇼크는 순식간에 고모부님을 의식 없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병원에서 마주한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이별’을 직감했다. 매일 묵주기도로 고모부의 영혼을 보호해 주십사 청했고, 미사 때마다 그의 영혼을 주님 손에 맡겨드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의식을 회복해 식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달려간 병실에서 식사를 마치시고 해맑게 웃으시는 고모부. 부은 손을 잡고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기도하며 눈시울이 자꾸 붉어졌지만, 그 눈물의 의미는 주님께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 “주님, 이렇게 고모부와 함께 기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신 후, 아내와 함께 찾아간 마지막 면회 날. 그날의 기억은 내 평생 잊지 못할 장면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침대에 누워 계신 고모부님. 황달로 눈은 색이 변했고 여기저기 터진 실핏줄과 부은 손. 그 모습에 마음이 무너지면서도 우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뵙지 못했던,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해맑은 웃음을 봤다.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아이처럼, 근심 하나 없는 천진난만한 그 미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그 웃음을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위로를 드려야 할 우리 부부가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 미소는 “무섭다”던 한 인간의 두려움이 주님의 평화에 완전히 잠겼음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인간의 의술이 멈춘 곳에서 주님의 자비가 완성되었다. 고모부님은 당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며 죽음이라는 파도를 넘어서고 계셨다. 그리고 며칠 후 주님께 가셨다. 이제 고모부님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정거장을 지나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음에도 내 마음이 이토록 잔잔한 것은, 고모부님이 보여주신 그 해맑은 미소가 주님의 약속임을 믿기 때문이다. 죽음은 모든 것이 끝나는 절벽이 아니라, 주님의 손을 잡고 영원한 빛의 나라로 건너가는 아름다운 과정임을 고모부님은 온몸으로 가르쳐 주셨다. “주님, 저 또한 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를 고모부님처럼 해맑은 미소로 장식하게 하소서.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으며, 주님의 품에서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게 하소서.” 부활의 햇살 속에 마르코 고모부님을 주님께 돌려보내 드렸다. 이제는 두려움도, 통증도 없는 그곳에서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영원히 미소 짓고 계실 고모부님을 위해, 남겨진 우리는 다시금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2면

‘사랑’의 자리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을 때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4-7 참조) 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성경 말씀 속 ‘사랑’이라는 단어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보라는 권고였다. 나는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읊조려 보았다. ‘나는 참고 기다립니다. 나는 친절합니다. 나는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문장을 완성해 나가던 순간, 내 안에서 거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라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머릿속은 나 자신의 성찰이 아닌,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한 사람의 얼굴로 가득 찼다. “내가 참아야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먼저 참았어야지. 내가 변해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게도 내 마음의 첫 번째 순위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나’가 아니라, 여전히 ‘남의 탓’을 하며 그가 변화하기만을 바라는, 그것이 우선이라 믿는 심판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준다고 하는데, 그 사람이 준 상처를 하나하나 들춰내며 마음의 수첩에 기록하고 있었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는다는데, 나는 그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 밑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스스로를 향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주님. 저라는 사람은 아직도 이토록 멀었나 봅니다.” 꽃이 피고 세상이 부활의 생명력으로 반짝이는 이 시기에, 정작 내 마음은 무덤처럼 여전히 원망과 미움의 돌덩이로 굳게 닫혀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나에게 잘해주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 가시를 돋친 이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부활의 길임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가슴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는 말씀은 어쩌면 상대의 잘못을 견디는 것보다, 그를 미워하고 싶은 내 안의 본능을 견디어 내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르겠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넣어 그 구절을 읽으셨을 때 느끼셨을 그 겸손과 고뇌가 오늘 제 마음에 낮은 울림으로 전해진다. “주님, 제 안의 ‘나’를 비우고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을 채우기가 이토록 힘이 듭니다. 아픈 상처를 건드리면 비명이 터져 나오듯, 상처 준 이를 떠올리면 사랑보다 억울함이 먼저 앞섭니다. 하지만 오늘 이 아린 마음마저도 주님 앞에 봉헌합니다.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저 문 뒤의 빗장을 풀 수 없기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닫힌 제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제가 변해야 세상이 변하고, 제가 먼저 사랑해야 주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붙듭니다. 올봄,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저 꽃들처럼 제 안의 미움도 녹아내려, 언젠가는 부끄러움 없이 ‘사랑’의 자리에 제 이름을 넣고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날을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22면

아들아, 네 마음에 희망의 씨앗을 심으렴

언제 그랬냐는 듯 큰아이의 신학기는 시작되었다. 반 배정과 교복을 구매하러 다니는 분주함 속에 고등학교 1학년이 시작된 것이다. 큰아들 요한이의 컨디션은 하루하루 파도를 타는 듯하다. 낯선 친구들, 서먹한 교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잠 못 들게 하는 관계의 피로함. 밤늦게 돌아온 아이는 학교의 후일담을 토로하며 한 시간가량을 우리 부부에게 털어놓는다. 위로도 해주고 편도 들어 주면서 그렇게 신학기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첫 모의고사. 잘하고 싶은 열망과 주변의 기대에 전전긍긍하는 아이를 보며 조건 없이 지지하지만, 아이를 챙기는 심정이 참 녹록지는 않다. 성장기의 아이에게 어떤 말로 거름 역할을 해줘야 할지 우리 부부가 나누는 대화의 중심은 늘 아이에게 있다. 참…. 그게 부모 마음인가 보다. 오늘 저녁은 유독 큰아이가 힘겨워했다. 아이 입에서 부정의 말이 끊이지를 않는다. “해도 안 돼. 어떻게 하지. 엄마가 몰라서 그래” 등등 그 모습이 예전의 나를 보는듯하다. 나랑 참 많이 닮은 큰애. 사실 나 또한 오랜 시간 어둠 속을 걸었다. 배우로 살아온 28년, 배우를 아직도 하고 있는 건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그 과정은 너무 쓰고 고달팠다. 우울증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절도 있었고, 배우를 포기하려고 기도드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런 부정으로 가득했던 난 예수님을 만났고, 1년간 울며불며 상처의 회복을 경험했다. 현재는 180도 바뀐 삶을 산다. 예수님에게서 오는 희망의 힘으로 사는 것이다. 이제 내가 희망을 말하는 삶으로 변화된 걸 보면 이 기적의 삶을 우리 아이들도 함께 누리길 바란다. 요한이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일러주었다. “요한아, 항상 네 혀를 잘 다스려야 해. 아빠도 힘든 시기를 지났고, 부정적인 말이 버릇처럼 붙어 살았지만 주님은 새 삶을 주셨고, 비로소 삶이 희망으로 바뀌기 시작했어. 그건 주님의 도우심이고, 동시에 그 도우심을 믿기로 한 아빠의 의지였어.” 우리는 흔히 상황이 좋아져야 좋은 말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앙의 신비’는 반대로 작용하는 듯하다. 내 마음의 밭이 바뀌고 말이 바뀌어야 상황이 바뀐다. 아이에게 “넌 안돼”라고 말하는 대신 “넌 무슨 일이든 가능해”라고 말할 때 그 아이는 가능한 아이로 성장할 것이다. 이 믿음은 세상이 말하는 ‘자신감’과는 결이 다르다. 내 성적이나 외모, 인기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나를 만드시고 사랑하시는 주님께 근거를 두었기에 역설적으로 ‘근거 없는’ 무한한 신뢰가 뒷받침하는 것이다. 눈앞의 상황은 여전히 막막할지라도, 선하신 목자께서 반드시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는 맹목적인 사랑의 확신이다. 요한이가 겪는 이 진통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한 영적 ‘성장통’일 것이다. 아이가 뱉는 말 한마디가 거름이 되어 그 인생의 뜰에 희망의 꽃을 피우길 기도한다. “사랑하는 아들아, 첫 모의고사의 점수보다 더 중요한 건 네 입술의 고백이야. 네가 ‘주님 안에서 나는 괜찮다’라고 말할 때, 네 영혼은 이미 승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렴. 아빠는 오늘도 네가 뱉은 그 믿음의 말들로 네 삶의 지평을 넓혀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께서 너를 위해 예비하신 그 ‘가장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으며. 글 _ 우기홍 미카엘(연극배우, 가톨릭 세계복음화 ICPE 선교회 한국지부장)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22면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뜻

“선배님, 올해 데뷔 30주년이면 공연 한번 하셔야 하지 않아요?” 1996년 성령 세미나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후, 찬양하는 도구의 삶으로 살아온 지 30년이 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하시며 말씀하실 때의 제자들 모습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찬양의 삶에 보호자이신 성령의 개입과 축복이 있었지만 개인의 이기적이고 교만했던 순간도 참 많았던 것 같다. 처음에 주님께 세 가지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첫 번째는 내 성가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 두 번째는 자주 외국에 나가 찬양 선교를 했으면 하는 마음, 세 번째는 문화선교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했고, 하느님의 일이라면 먼 거리라도 금전적인 걸 떠나 전국을 열심히 다녔다. 30년이 지난 지금, 참 많은 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영적 지도 신부님께서 “만약 어느 교구에서 문화 관련 담당자를 찾는다면 해답은 너다”라고 하시면서 그동안 내가 교회 안에서 활동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주시며 그 이유를 알려 주시기도 했다. 찬양 사도, 작사·작곡가, 음반 제작자, 뮤지컬, 연극, 공연 제작자 겸 교육극 연출자, 피정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자, 라디오 진행자, 유명한 TV 프로그램 출연 및 광고 모델, 국내외 성지순례 프로그램 기획 및 진행자 등등. 참 많은 일을 하고 살아왔다. 연극으로 필리핀과 미국 LA, 뉴욕, 워싱턴도 다녀오고, 가톨릭신문사 창간 90주년 기념 뮤지컬도 기획·제작했으며 제주교구 요청으로 3·1운동 100주년 기념 뮤지컬도 제작했다. 4년 전부터는 제주교구 신성학원의 요청으로 제주에 있는 문화, 예술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신성 뮤지컬 페스티벌을 매년 기획, 진행하고 있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활발히 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나열한 이유는 나의 업적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일을 할 수 있게 인도해 주신 성령의 놀라운 개입과 계획을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주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계획되었던 일들이기에 영광을 주님께 드리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지나고 보니 내가 원했던 세 가지 기도도 이루어졌다. 요즘 청년들 사이에 자주 불리는 <사막의 별>과 <매듭의 어머니>는 내 앨범에 있는 곡이고, 해외 선교는 일 년에 수차례 다녀오고 있다. 첫 뮤지컬 작품인 <이마고 데이 -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진 문화선교 공동체는 지금까지 3000여 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있다. 나에게 늘 따끔한 영적 조언을 해주신 선배가 있었다. 늘 바쁘게 살고 움직였던 내가 가끔은 지치고 힘겨워할 때마다 그 선배는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뜻을 잘 분별하라”고 조언하셨다. 또 “모든 것은 너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과 축복이 함께하니 혼자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힘을 빼라”고도 하셨다. 이 말은 늘 내 삶의 모토가 되었고 지금까지 열정으로 살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하느님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분별하고 걸어가는 찬양 사도, 문화선교사의 삶을 통해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세상에 선포하려고 한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22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도다

어느 날 찬양 사도 후배가 제주도에 왔다. 부활을 맞이하여 제주교구 본당의 초대를 받아 공연차 미리 내려왔는데, 이를 어쩌나! 날씨 관계로 배가 뜨지 않아 행사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말엔 항공료가 비싸 평일에 내려왔는데, 교통비만 날리게 됐다. 성당은 공연을 취소하는 게 크게 상관없겠지만, 찬양 사도들은 경제적, 시간적으로 손해가 크다. 그날 저녁, 위로해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회포를 풀다 나름 억울했던(?) 지난날들을 떠올리게 됐다. 신인 때 일이다. 작은 시골 본당에서 나를 초대해 주셨다. 행사 예산이 적으니 식사비 정도만 줄 수 있다고 하셨지만 승낙하고 무사히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이나 먹고 올라가라 하셔서 뒤풀이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뒤풀이로 소고기 파티가 열렸다. 행사 예산은 적다고 했는데 식사비가 행사 비용보다 더 나올 만큼 성대하게(?) 음식을 드시는 모습을 보면서 ‘식사비 일부를 출연료로 주시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올라온 적이 있었다. 수녀원에서 연락이 왔다. 행사가 있는데 출연할 수 있겠냐고. 그런데 수녀원과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구 사항이 참 많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수녀원 행사는 늘 난감했다. 한사람 정도의 출연료로 두세 사람이 함께 출연하기를 원하시거나, 음향 설비를 대여하려면 더 큰 비용이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올해 예산이 책정된 것 이외는 사용할 수 없으니, 올해는 이대로 해주시고 내년에는 더 올려서 진행하겠다”고 하신다. 이런 사정을 함께 섭외된 찬양 사도에게 설명하고, 다 같이 기쁘게 행사에 임했다. 마무리하면서 내년에 뵙자고 하시는 수녀님들의 모습이 참 선하시다. 그런데 1년 뒤 같은 수녀회에서 행사 의뢰로 전화가 온다. “작년과 같은 금액으로 부탁드린다”며 “담당자가 바뀌어서 작년 금액으로 인수인계를 받았으니 그대로 해달라”고 하신다. 참 난감했다. 누구나 힘든 시기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는 더욱 그랬다. 행사는커녕 미사도 취소되는 상황 속에 찬양 사도들은 직업이 하나 추가되었다. 무직. 당시 본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활동했지만 유급은 아니었고, 피정이나 행사가 있어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상황이었기에 ‘풀타임’으로 활동하는 찬양 사도들은 하루하루가 인내의 시간이었다. 물론 당시 몇몇 공동체 신부님께서 개인적으로 후원과 위로를 해주시기도 해 큰 힘이 됐다. “한 달이면 되겠지? 석 달이면 되겠지?” 했던 시간 속에서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 있었다. 동료 찬양 사도들이 혹시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에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서 밥 한 끼라도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다행히 다른 찬양 사도들도 서로 같은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다. 본인도 여유가 없는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나누고, 함께 이겨내려 노력한 모습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찬양 사도의 삶이 늘 부족하고 손해를 보는 듯 보이지만, 사도의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모습 속에서 주님의 향기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오늘은 떼제성가 <사랑의 나눔>을 부르고 싶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22면

놀라운 신비

4월이 되면 제주는 참 바쁘다. 봄 여행도 봄 여행이지만 부활 시기 많은 본당에서 ‘엠마오’로 제주를 방문하신다. 성지를 돌아보기도 하고, 봄꽃 가득한 곳을 찾기도 하고, 맛있고 풍경 좋은 카페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끔은 “제주에 살고 계시니 좋으시겠어요?” 하며 뭐가 좋은지 묻는 분들도 있다. 이곳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좋은 점을 적어본다면, 첫 번째로는 자연이다. 매일 아침 보는 나무와 하늘이 같은 모습이 아니라 날마다 날마다 새로운 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난 창조주를 미술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머무는 서귀포의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에서 보는 한라산은 하루하루가 다르고, 바쁜 일정을 마무리하고 차에서 내려 바라보는 밤하늘은 늘 맑고 초롱초롱한 별들이 수고했다고 웃어준다. 두 번째로는 겉모습으로 판단 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흙먼지 가득한 바지를 입고 다니더라도, 아주 오래된 차를 몰고 다닌다 하더라도 이곳 제주에서의 편견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사실 그런 분 대다수는 넓은 감귤밭이나 땅을 갖고 있다. 세 번째로는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혼숨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옆집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정도로 담이 낮다. 가끔 정원을 정리하느라 장비를 마당에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상황이 되어도, 차량에 물건을 실어 놓고 문을 잠그지 않더라도 물건을 집어 가거나 훔쳐 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표현을 안 할 뿐 관심도 많다. 물론 가끔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도 많지만 이곳에 있다가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폐쇄적인 관계가 힘들 때가 있고, 오늘 말과 내일 말이 다르기도 해서 당황하기도 하고, 운전 문화도 달라 가끔 교통사고의 위험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저 사람 왜 저럴까” 의심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4월이 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4·3.’ 아직도 정확한 용어 정리도 되어 있지 못할 만큼 아픈 단어다. 제주에 대해 알아가다 보니, 조선시대 200년이 넘도록 제주 사람은 육지에 가지 못하게 한 ‘출륙 금지령’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처럼 아프고 힘든 시간이 많은 곳이다 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웃음이 사라진 삶을 사는 분들도 있다. 그런 제주를 주님께서는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서울 할망’이라고도 불리는 정난주(마리아) 선조는 대정현에서 관비(官婢)로 유배 생활을 했지만 참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차귀도라는 곳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조난을 당하는 바람에 첫 미사를 봉헌하게 된 은총의 장소가 됐다. 또 제주교구 유일한 복자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을 통해 제주도에 신앙의 씨앗을 맺게 하셨으니, 세상은 보잘것없고 가난한 곳을 외면할지라도 주님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며 놀라운 신비를 보여 주신 곳이 제주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12 제3486호 22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안돼!’라는 말은 없어요. ‘빨리빨리’라는 말도 없어요~” “20분 걷는 거리는 30분으로 10분 늦게 걷고, 여유롭게 즐기면서 오늘 하루를 즐기세요.” 주교회의 교육위원회 학교법인 사무국장 신부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제주도에서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모여 축제를 하는데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장소와 프로그램을 내어놓으라는 압박(?)의 전화였다. 제주에서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을 관리하면서 터득한 아이디어로 하루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내드렸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학생들 인솔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획에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살짝 당황과 부담감이 생기고, 그러면서도 청소년들을 만난다는 즐거운 마음도 공유되고 있었다. 제주에서 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을 관리, 운영하고 있다. 예전 가나안 공소를 리모델링하여 제주에 오는 주일학교, 복사단, 청년 단체들이 부담 없이 머물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같은 피정 센터이다. 혼숨의 뜻은 ‘하느님의 숨결’, ‘큰 숨결’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오는 청소년, 청년들이 호흡 한번 길게 쉬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짓게 되었다. 처음엔 프로그램도 만들고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 운영하였지만, 지금은 프로그램도, 규칙도 없다. 다만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빨리빨리 하세요~”, “왜 그렇게 행동이 느려요”라는 말들이 나오지 않는 곳으로 변해 버렸다.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에 지쳐 있는 이들에게, 늘 주변의 비교 대상이 되어 있는 청년들에게 ‘혼숨’에서도 똑같은 말을 듣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방문한 청년들을 통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잔소리(?)를 멈추고, 청년들이 자유롭게 머물며 하고 싶은 것을 제약 없이 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2박3일 동안 방에서 잠만 자다가 집으로 돌아간 청년이 있었는데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올라간 일도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니, 의외로 청소년·청년들이 전보다 정겹게 다가온다. 물론 까칠한 친구들도 있고, 시선조차 주지 않는 친구들도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런 친구들이 마음을 열면 더욱 대박이다. 얼마나 순수하고 이쁜 친구들인지. 그래서 제주에 온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고, 함께 걸어주고, 들어주면 되겠다 싶어 프로그램 인솔을 하게 되었다. 바다를 보며 걷는 30여 분의 시간. 그들은 어느덧 바위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다. 나중엔 끼리끼리 단체 사진도 찍는다. 가끔 위험한 곳에 올라 사진을 찍기도 하지만 지켜만 본다. 잠시 머문 성지에선 짧은 기도를 하고 나오자는 말에 조용히 기도하고 나오는 학생들. 시장에서의 자유시간엔 친구들과 어울려 음식도 먹고, 작은 소품을 사면서 가족들을 위한 선물, 꼭 선물을 주고픈 사람들 것도 구입하는 모습들, 유채꽃밭에서는 꽃처럼 화사하게 웃는 모습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게 다였다. 하루 일정이 끝났을 때 목이 쉬거나, 감정이 불안하거나,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의 청소년· 청년들은 그렇게 살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하느님의 귀한 자녀들이었다. 다음 날 아침, 나를 본 학생들은 이렇게 먼저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4-05 제3485호 26면

키레네 사람 시몬의 고백

사순 찬양 피정 의뢰를 받고 준비하면서 늘 묵상하는 성가가 있다. <키레네 사람 시몬의 고백>(박우곤 작사·작곡)이다. 키레네 사람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사람으로, 늘 내가 궁금해하던 인물이었다. ‘찬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어 드린다’는 교만한 생각에 머물렀던 나는 영성체 후 관상기도 중에 시몬을 만났다. 시몬은 가족들과 큰 축제를 지내기 위해 골고타 언덕을 내려오다가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난다. 군사의 강압으로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되지만 왜 십자가를 져야 되는지, 사람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욕을 들어야 하는 억울함과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권력 앞에 꼼짝 못 하는 자존심 상하고 분노한 마음에 예수라는 사람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을 것이다. ‘그냥 모르는 척 지나칠걸’이라는 아쉬운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기도 중 내가 시몬이 되어 십자가를 등에 지어 보기로 했다.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찢기고 피투성이인 예수님, 바로 쓰러져 죽어도 당연할 만큼 힘겨운 그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십자가를 지려 하는 모습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보라고 한다. 십자가를 보는 순간 나는 놀란다. 내가 살아오면서 버겁고 힘든 나머지 버렸던 십자가였고, 외면하고 지지 않았던 십자가였던 것이었다. 그리곤 예수가 나에게 말한다. “외로웠지? 무거웠지? 지치고 힘들었지? 그리고 이 고통이 왜 나에게만 있는 거냐고 불만도 늘어놨지? 그런데 알렉시우스야~ 넌 혼자가 아니었어!!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있었는데 앞에 놓인 어려움 때문에, 어깨에 눌린 무게 때문에 나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거지~. 그런데 난 늘 너와 함께하고 있었고, 너의 십자가를 지고 여기까지 온 거야~. 어때 다시 같이 가지 않겠니?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시몬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었더니 내리막길이 아닌 오르막길을 걷게 되었다. 나의 인생도 사실 내리막길이었다. 하루에 스케줄 2~3개가 있을 정도로 바쁜 나날 중에도 페이를 좀 더 많이 주는 피정이나 공연을 선호했고, 나를 잘 대해 주는 행사에 다니려던 이기적인 삶이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오로지 주님을 찬양하겠다는 생각으로 기타 하나 메고 험난한 찬양 사도의 길을 걸어가기로 다짐했지만, 어느새 내 앞의 십자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십자가만 찾으면서 그마저도 나 편해지자고 남에게 십자가를 미뤘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는 더욱 무거워지고 날카로워지고 거칠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또 그런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십자가를 놓지 않으셨으며 당신의 무한한 사랑과 희생으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고, 나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키레네 사람 시몬이 되어 주님을 만나고 있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29 제3484호 22면

무뎌진 마음…그리고 이기적인 삶

주님을 뜨겁게 체험했던 20대 시절부터 뉴스나 신문 기사에 사건,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주님, 저 영혼에 영원한 안식과 위로를 주소서”라는 화살기도를 봉헌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30여 년간 기도를 해왔지만, 요즈음은 기도하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성의 없는 기도라도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전대사를 남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여러 행사를 참여하며 받은 전대사를 연옥에 있는 불쌍한 영혼에게 양보하기도 했다. 내가 해 온 나름의 선행이라면 최선을 다한 기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전쟁으로 많은 이가, 특히 170여 명의 어린 학생들이 안타깝게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예전과는 다르게 습관적이고 형식적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던 무뎌진 마음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주가가 폭락하고 유류 가격이 올랐다는 뉴스에 분노하며 주식장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 순간 우습고 초라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이웃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엔 마음이 무뎌지고, 내 생활에 당장이라도 불편한 상황은 분노하는 이기적인 내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한심해 보일까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가장 지저분한 발을 씻겨 주고 닦아주고 안아주고 입맞춤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다면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고 전하는 내가 사실은 무디고 이기적인 삶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신앙인이라면 고통 가운데 있을 그들을 기억하며 기도해야 하고, 게다가 찬양 사도라면 찬양으로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노래해야 할 거다. 하지만 전쟁으로 세상이 혼란한 가운데 SNS 같은 인터넷 세상에 여전히 나의 활동을 알리고, 나의 생활을 자랑하고, 나를 홍보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에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멈춰 나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외롭고 힘들었던 때 주님은 마냥 가만히 계시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위로와 격려, 그리고 기도가 멈추지 않도록 해 주셨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말만 할 게 아니라, 고통과 두려움에 있을 이웃을 위해 최소한의 기도와 찬양으로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을 위해 애타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위로해 주시는 주님께 작게나마 동참하고 기도하자. 오히려 주님께 위로와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를 비판하며 하셨던 말씀으로 마무리해 본다. “노숙자가 추위에 얼어 죽어도 뉴스가 되지 않지만, 주식 시장이 2포인트 떨어지면 뉴스가 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복음의 기쁨」 53항)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22 제3483호 22면

즐거운 미사

“아니, 주님께서 부활하셨는데 대영광송을 외국어로 들어야 하나요?” 매년 부활 때마다 내 마음속에 드는 불만 중 하나는 부활 성가를 라틴어나 이탈리아어로 들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마저 성가가 길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일어나 달라”는 해설자의 멘트에 마지못해 일어난 적도 있었는데, 이 또한 불만이었다. “과연 이런 모습으로 어려운 성가들을 듣고 있기만 할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하는 것이 전례 형식에 들어 있는 줄 알았다. 2025년 겨울, 제주교구 하귀본당에서 성가대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이보다 더 예전에 어느 교구의 작은 본당에서 한 달 정도 지휘자 흉내를 내다가 쫓겨 난 이후로 관심조차 없었던, 아니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생각조차 안 했던 내가 지휘를 한다고 성가대원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스타일도 아니라서 하귀본당에서 나를 선택한 건 실수라는 핑계를 마음에 두고 성가대원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어색한 인사를 끝내고 학교 다닐 때 배웠던 기초적인 지휘를 시작했다. 이때 깜짝 놀랐던 것은 내 손짓에 반주와 노래가 시작되고, 내 지휘 템포에 맞춰 성가가 불리고, 나의 마무리 지휘 액션에 노래가 끝난다는 것이었다. 당황스럽고 등짝에 땀이 물 흐르는 듯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위치에 있는 게 맞는지, 뭔가 잘못된 건 아닌지 심장이 뛰었다. 연속되는 긴장감 속에 어깨는 무거워지고, 정신이 없었다. 어떻게 연습을 했고, 어떻게 미사를 했는지도 모른 채 빨리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학수고대했던 것 같다. 육지에서 지휘하고 있는 후배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주변의 신부님들에게 전례에 관해 여쭈어보기도 하고, 영상도 참고하기 시작하였다. 30년의 찬양 사도 활동에서 얻은 경험과 현장에서 배우고 느꼈던 방법도 생각해 내며 본격적인 공부(?)를 하려고 했을 때, 그동안 불만이었던 것들이 해결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꼭 성가를 어렵게 외국어로 불러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성가는 신자들이 즐겁고 기쁘게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불러야 한다는 것이 전례 관련 책을 읽고 계셨던 신부님께 들은 내용이었다. 오호라~. 그다음부터 성가대 단원들에게 “외국어로 된 특송은 절대 하지 않겠다. 제 능력이 거기까지고, 전례서에도 꼭 어렵게 부르라는 내용도 없으니, 불만이면 저를 쫒아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서 연습에 임하고 지휘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휘한 지 아직 짧은 기간임에도, 느낀 것이 있다면 성가대가 즐겁고 행복하게 성가를 불러야 미사에 오시는 신자들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또한 일주일 동안 힘겨운 일상생활에서 시간을 내어 미사에 참석하신 신자분들에게 성가를 통해 주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은혜로운 시간인지를 신자분들의 얼굴을 통해, 목소리를 통해 조금씩 체험하고 있다. 이 체험을 한 후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그 바람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어려운 성가를 부르는 것보다, 내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써 주님의 이름이 가려지는 것보다, 나의 작은 찬양과 작은 몸짓이 주님과 신자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미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글 _ 박우곤 알렉시우스(가톨릭청년머뭄터 혼숨지기, 안드레아여행사 성지순례 프로그램 담당)

발행일 2026-03-15 제348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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