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위한 현양운동에 박차를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4월 16~21일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에 나섰다. 위원회는 순례길에서 그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뒤 사목지인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거쳐 간 여정과 유해 이송로를 따라가며 조선 복음화를 간절하게 기원했던 그의 정신을 되새겼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은 지난해 10월 12일 서울대교구가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시복 추진에 요구되는 외부 검증 절차, 즉 지역 주교회의와 교황청 시성부의 검증을 거친 결과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 추진을 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마쳤다. 이제 복잡하고 엄격하게 이뤄지는 시복 재판을 위해 서울대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을 증거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힘쓰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교회의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는 현양운동이다.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그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이 널리 퍼진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자, 나아가 성인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 전체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현양을 위해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기도와 현양의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복시성은 사실 그 대상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신앙 성숙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일이다. 신앙 선조들의 삶과 굳건한 신앙을 본받으려는 일상의 실천과 현양의 노력이야말로 시복 추진의 핵심이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다.

모든 노동자들의 인간존엄을 위해 노력하자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날은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족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벌인 파업 집회에서 비롯됐다. 이후 1889년부터 전 세계 각국은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절 제정 이후 134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또 노동자들 사이를 차별하는 법과 제도가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 국적에 따른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차별 등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차별과 불의에 대항해 교회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고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불의한 법 제정과 집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노동절 담화 제목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로 정했다. 김 주교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것이 안식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안식일의 근본 정신에 따라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힘쓰는 모든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이들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사설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위한 현양운동에 박차를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가 4월 16~21일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에 나섰다. 위원회는 순례길에서 그가 조선대목구장에 임명된 뒤 사목지인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거쳐 간 여정과 유해 이송로를 따라가며 조선 복음화를 간절하게 기원했던 그의 정신을 되새겼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은 지난해 10월 12일 서울대교구가 교황청 시성부로부터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승인받음으로써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시복 추진에 요구되는 외부 검증 절차, 즉 지역 주교회의와 교황청 시성부의 검증을 거친 결과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복 추진을 하기 위한 사전 절차를 마쳤다. 이제 복잡하고 엄격하게 이뤄지는 시복 재판을 위해 서울대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을 증거할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하는데 힘쓰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교회의 하느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는 현양운동이다. 하느님 백성들 사이에 그의 영웅적 덕행과 성덕의 명성이 널리 퍼진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자, 나아가 성인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대교구와 한국교회 전체에서 브뤼기에르 주교의 현양을 위해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바치는 기도와 현양의 움직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시복시성은 사실 그 대상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신앙 성숙과 영혼의 구원을 위한 일이다. 신앙 선조들의 삶과 굳건한 신앙을 본받으려는 일상의 실천과 현양의 노력이야말로 시복 추진의 핵심이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다.

2024-04-28
현장에서

신자위탁? ‘시너지’ 얻으려면 우리도 적극적으로

‘민간위탁’이라는 말이 있다. 넓은 의미에선 국가나 지자체가 공익에 도움이 되는 일을 시민이 주체가 되도록 자원봉사에 위탁하는 것도 민간위탁에 들어간다. 요즘 교회 내에도 평신도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민간위탁처럼 지역에 대한 이해도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에서 평신도가 주체가 됐을 때 더 효율적인 일들이 많다. 수원 조원동주교좌본당의 집수리 봉사단체 ‘사랑나눔봉사단’은 평신도가 주체적으로 사목에 참여한 모범적 예다. ‘사랑나눔봉사단’은 평신도가 비신자 봉사단체를 경험하고 교회 내에도 어려운 이웃의 집을 고쳐주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인식해 자발적으로 결성됐다. 봉사단의 취지는 수원교구 사목 방향 중 하나인 ‘외적 복음화’에 들어맞았다. 덕분에 창단 취지에 공감한 본당 주임 신부의 지원 아래 본당 사회복지분과에 소속된 공식 단체가 됐다. 수원교구 도시변방위원회 이준섭(도미니코) 신부는 “교회에 집수리봉사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본당 소속으로 이미 있다는 게 놀라웠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봉사단을 보수가 필요한 지역 노숙자쉼터와 연결해 줬다. 평신도가 시작한 것에 본당과 교구 부서의 사목자가 공식성을 부여해 완성했다. 성공적인 ‘신자위탁’의 모습이다. 본당 사목자와 신자 간 협력은 좋은 ‘시너지’를 낸다. 하지만 교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민간위탁’보다 어려운 과제도 많다. 평신도 스스로 어색해하지 말아야 하고 사목자는 정확한 식별능력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듯 ‘사랑나눔봉사단’처럼 평신도로서의 장점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어떨까.

2024-04-28
사설

모든 노동자들의 인간존엄을 위해 노력하자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날이라고 부른다. 이날은 노동자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자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에서 노동자와 가족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벌인 파업 집회에서 비롯됐다. 이후 1889년부터 전 세계 각국은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절 제정 이후 134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전히 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또 노동자들 사이를 차별하는 법과 제도가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 국적에 따른 차별,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차별 등이 바로 그 예다. 이러한 차별과 불의에 대항해 교회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서고 노동자들과 끊임없이 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불의한 법 제정과 집행을 개선하기 위해 노동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는 올해 노동절 담화 제목을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로 정했다. 김 주교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것이 안식일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가 가르치는 안식일의 근본 정신에 따라 모든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동등한 존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증진하기 위해 힘쓰는 모든 노동자들을 기억하고 이들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2024-04-28
방주의 창

갈라짐이 익숙한 세상

총선이 끝났다. 원래도 정치 뉴스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고 지냈다. 선거 공보물이 사제관에 도착한 이후에야 우리 동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누구인지, 비례대표 의석 확보를 위해 어떤 위성 정당이 생겨났는지 알 정도였다. 그마저도 자금력 부족으로 공보물을 보내지 못하거나 보내지 않은 정당이 훨씬 많았다. 천성이 얕고 지력이 일천해 골치 아픈 것은 딱 질색이고, 그리하여 뉴스도 일절 보지 않았던 게으름을 기워 갚기라도 하듯, 검색창을 두드려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정당투표 용지에 기입될 정당의 수를 찾아보고선 기함했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됐다. 과연 다음 총선에서 얼마나 더 긴 투표용지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다. 지난 2012년부터 주교회의는 총선 및 대선과 같은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당(총선) 및 후보들(대선)에게 정책 질의서를 보내고 그 답변을 발표해 신자들로 하여금 복음의 가치와 교회의 가르침에 좀 더 부합하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주교회의는 주요 4개 정당에 정책 질의서를 보내 3개 정당으로부터 받은 답변을 발표했고, 각 교구별로도 교구장 재량에 따라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정책 질의서를 보내 답변을 받아 발표하기도 했다. 주교회의가 보낸 질의서는 노동, 민족화해, 사회복지, 생명윤리, 생태환경, 여성, 정의평화, 청소년 등 8개 분야 43개 문항으로, 각 분야는 모두 한국교회가 관심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답변 가운데 노동(노란봉투법 입법 재추진), 생태환경(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및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 제정,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정의평화(전세사기특별법 제정, 생명안전기본법 및 이태원참사특별법 제정) 분야에서 정당 간 의견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문제는 이런 의견 차이가 정당 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 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자들이 자신의 지지 정당의 입장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정당 간 의견 차이가 신자 간 의견 차이로 전이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목 일선에서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현안에 따라 교회의 입장이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어 따라가기 어렵다”며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복음이나 교회의 가르침을 기준으로 보라”고 권면하면 대부분은 적어도 사제 앞에서는 수긍하고 돌아가긴 하지만, “교회가 세상 돌아가는 일을 어떻게 알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고는 단순히 세상을 영과 육, 성과 속으로 나누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이를 도구 삼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기 모습은 교회 안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다시 말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더불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고자 노력하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조차 자기와 마찬가지로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인 복음과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가르침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못한다면, 그가 가슴에 새기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분열적이며 헛된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온전한 존재일 텐데, 정작 우리는 우리의 육신이든 영혼이든 절반만 구원받고자 하는 꼴을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속에 솟아난다. 갈라짐이 익숙한 세상이라곤 하지만, 세상 속을 살아가면서도 ‘지금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를 증언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조차 갈라짐에 아파하며 회심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라짐에 익숙해져 아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4-28
열린마당

[내 눈의 들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이 물음은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모멘토, 2021)의 책 제목을 차용한 것임을 밝힌다.) 한국에서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 비율이 증가함에 따라 교회에서도 ‘반려동물 축복식’을 하는 본당들이 늘고 있다. 동물의 수호성인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인 10월 4일에 본당 주임 신부의 재량으로 반려동물 축복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반려동물 축복식에 참여한 신자들의 만족감과 기대치는 꽤 높아 보인다. 반려인 신자들은 ‘감사하다’, ‘감동적이었다’, ‘뜻깊은 시간이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또한 자신의 반려동물이 사제의 축복을 받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고 이 축복을 통해 반려동물이 앞으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오랫동안 함께 하기를 기대했다. 본당 입장에서도 반려동물 축복식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려동물에게 위로를 받는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로 시작된 축복식에 비신자들도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 축복식이 곧 전교의 장이 된 것이다. 나아가 반려동물 축복식은 치유의 장도 될 수 있다고 한다. 반려동물의 사진이나 유골함을 들고 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데,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반려인들이 이 축복의 예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슬픔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반려동물 축복식을 바라보며, 조금은 엉뚱한 상상을 해 본다. 자신의 반려동물은 오래오래 함께 살기를 바라면서 삼겹살을 즐겨 먹는 것은 당연한가? 사육장에 있는 돼지는 축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인가? 소는 개 다음으로 일찍부터 가축화된 동물인데, 왜 소의 관련어는 고기 아니면 가죽일까? 이 시점에서 교회는 반려동물을 축복하는 신학적 근거를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반려동물 축복식은 축복 예식서의 양식에 근거한다. 「축복 예식」의 제21장 ‘동물 축복 예식’ 따르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섭리대로 많은 동물들은 인간 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것은 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며 어떤 것은 인간의 양식이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적절한 기회에, 예컨대 어떤 성인 축일에 동물들을 축복하는 관습이 있다면 이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347쪽)라고 명시하고 있다. 예식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축복의 대상이 되는 동물은 저 멀리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도 아니며, 내가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 동물은 ‘인간 생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동물’로서 인간이 자신의 이익, 즉 도움과 위로, 그리고 양식을 위해 길들인 동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축복 예식의 대상은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가축도 해당이 되며, 심지어 실험동물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10월 4일에 이뤄지는 축복식이 ‘반려동물’만을 위한 선택적 축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예식이 동물 축복을 통해 “모든 것을 지혜로 창조하신 우리 주 하느님”(347쪽)을 찬양하고 다른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확인하는 자리라 할 수 있겠다. “온갖 선물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 사람들이 일하고 필요로 할 때에 동물들까지도 도움이 되도록 섭리하셨으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저희에게 힘과 지혜를 주시어 인간을 위하여 창조하신 이 동물들을 올바로 이용하게 하소서.”(353쪽) 이렇듯 동물을 위한 축복은 “만물의 창조주를 찬양하고, 인간을 만물 위에 들어 높이셨음에 감사드리며, 우리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언제나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347-348쪽)하려는 인간의 기도이다. 글 _ 김남희 율리아(가톨릭대학교 교수)

2024-04-28
신한열 수사의 다리 놓기

눈물꽃 소년

박노해 시인이 자전 수필집 「눈물꽃 소년」(느린 걸음, 2024)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작가는 초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가 그때의 눈으로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 자연과 학교와 하느님을 바라보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독자는 가난과 결핍과 열망으로 가득 찬 시절을 살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소년 ‘평이’(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이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제는 사라진 자신의 유년기와 잃어버린 순수함을 추억하게 된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동심이 심연에서 깨어날 때 나는 지금 어디에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문한다. 평이가 자라는 남도의 시골 마을 동강은 작은 우주다. 거기에는 신앙의 요람이었던 동강공소와 멕시코 선교사 호세 신부, 학교와 반 친구들, 배고픔을 채우듯 많은 책을 읽게 해 준 선생님과 도서실, 밤하늘의 별들과 자연, 할머니와 어머니, 애틋한 첫사랑 여자애까지 있다. 작가는 오늘날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원형의 것들, ‘순수하고 기품 있는 흙 가슴의 사람들’을 소환하면서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가슴 시린 풍경’을 그려낸다. 어린 평이는 벙어리 처녀 연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고 맘이 있어도 쓸 수가 없는 그런 사람의 입이 되고 글이 될라요.” 첫사랑 소녀를 만나서는 “나처럼 외롭고 혼자인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 눈물이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시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눈물꽃 소년」에는 훗날 박노해 시인의 삶과 문학을 만든 싹이 다 담겨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직관, 강직함과 인내, 약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아우르는 인간의 심성과 자세의 큰 부분은 유년기에 형성된다. 그런데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며 쉼 없이 달려온 우리는 그 순수한 눈길과 동심을 잃어버렸다. 어른들은 자신의 동심을 지워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동심마저 타락시켰다.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 말하는 초등학생이 다른 급우를 ‘빌거’(빌라에 사는 거지), ‘휴거’(임대아파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 비하하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부동산이 계급이 된 사회’에서 어른들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의대 준비반을 만들어 선행학습을 시킨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물신주의 속물주의, 무한 경쟁의 사고와 의식을 심어준다. “세상이 하루하루 독해지고 사나와지고, 노골적인 저속화와 천박성이 우리 영혼을 병들게 하는 지금”, 작가는 “길잃은 날엔 자기 안의 소년 소녀로 돌아가기를” 권한다. 우리에게도 ‘영혼의 순수가 가장 빛나던 시간’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천진무구함이 상처받은 모습이 지금의 나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작가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영원한 소년 소녀가 우리 안에 살아 있다”고 속삭인다. 그 소년이 우리에게 눈물꽃을 건넨다. 글 _ 신한열 프란치스코(떼제공동체 수사·공익단체 이음새 대표)

2024-04-28
일요한담

이 세상이 천국이다

어느 갤럽조사에서 ‘극락이나 천국은 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있다’는 대답이 63.4%인 것으로 나와 국민의 현세 중심적 사고가 큰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류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이상세계를 꿈꾸어왔다. 그곳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동양에선 옥황상제가 사는 하늘나라와 신선들이 사는 선계를 동경했다. 19세기 독일의 서정시인 카를 부세(Carl Busse)는 자신의 시 '저 산 너머‘(Over the Mountains)에서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기에 그 말만 듣고 남들 따라 행복을 찾아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되돌아 왔네”라고 했다. 니체는 1881년 여름, 알프스 산중에서 산책하다가 갑자기 번개처럼 영원회귀 사상이 떠올랐다고 한다.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 일체의 사물과 인식이 그대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은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고뇌와 기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생의 자유와 구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인 수소와 산소가 모여 전혀 새로운 물이 출현하면서 신비로운 형이상학이 된다. 이 신비의 과정을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의 창조’라고 표현하고, 불교에서는 연기라 부른다. 흔히 생명은 유한한 삶을 산다고들 말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체로서의 생명일 뿐, 전체로서의 생명은 유전자를 이어가는 한 죽음은 없다. 생명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한 생명은 영원하다. 자기 인식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개체의 유한한 삶에 대한 강박감도 내려놓을 수 있다. 자기가 사라지면 죽게 될 자기도 없어지고 따라서 죽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기 인식을 내려놓아야 세상 속박과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본래 이 세상은 아름다운 천국이다. 그 천국에서 소풍을 즐기는 것이 인생이다. 장자의 '소요유'도 멀리 소풍 가서 영혼을 정화시키며 놀면서 절대 자유를 누리는 이야기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우리에게 긍정 마인드를 깊이 심어준 위대한 시인 천상병은 모진 전기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이렇게 천국을 살았다. 프랑스 가르멜 수도원의 성녀 엘리사벳은 이 세상에도 천국이 있다는 것을 증언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찾았습니다. 천국이란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내 영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0-21),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루카 18, 16)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교에서는 참된 신자가 죽은 후 그 영혼이 가서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장소가 천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반드시 사후의 세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지배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곳을 말하며, 현세에도, 또 인간의 마음속에도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이 세상이 천국이다. 글 _ 윤여환 요한 사도(충남대 회화과 명예교수)

2024-04-28
사설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우리는 유례없는 아픔과 어려운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전 세계는 가까스로 팬데믹의 긴 터널을 빠져나왔지만 전쟁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고, 인간이 오염시킨 지구는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려운 나라 살림에 가난한 이들은 더 곤궁해졌다. 연이은 사회적 참사가 국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고 건강을 책임지는 의료계와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대치를 이어간다. 그 와중에 정치인들은 당리당략과 개인적 영달 추구에 여념이 없고, 표를 얻기 위해 국민들을 갈라치기한다. 제22대 총선을 지켜본 국민들은 때로는 절망, 때로는 분노로 가득 찼다.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정부와 여당을 심판하자는 것이 유일한 구호였다. 국민들은 지혜로웠다. 실망과 혐오에도 불구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모두에 대한 기대와 경고를 담은 결과를 선사했다. 모든 당선자들이 이제는 공동선을 위해 일하기를 호소한다. 특별히 신자 당선자들에게 기대한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 신자는 국민 10명 중 1명꼴이지만 신자 국회의원은 4명 중 1명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정치가 ‘사랑의 가장 고결한 형태’라며 “사회 상황과 국민과 가난한 이들의 삶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정치인들을 더 많이 보내 주시도록 기도한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205항)고 말했다. 신자 당선자들은 고결한 사랑을 실천하고 공동선에 봉사하도록 불린 이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 활동을 신앙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주님은 이들이 정치 활동에서도 하느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새로 선출된 22대 국회의 신자 당선자들이 하느님 뜻에 충실하기를 간절하게 기대한다.

2024-04-21
사설

각자의 성소 찾으며 희망의 순례 나서자

올해로 제61차 성소 주일을 맞이했다. 교회는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 주일로 기념한다. 성소 주일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아버지께 거룩한 성소의 선물을 청하며 기도하는 날이다. 한국교회는 특별히 사제·수도 성소 증진에 보다 집중하며 성소 주일을 지낸다.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감소하는 현실에서 이는 중요하고도 꼭 필요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은사에 따라 고유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올해 성소 주일 담화를 통해 밝히고 있듯, 우리 모두는 “다양한 생활 신분 안에서 복음의 아름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특별히 2025년 희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강조하며 ‘희망의 순례자’, ‘평화의 건설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당부하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과 갈등,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고향 땅을 떠나는 많은 이주민과 난민들,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이 시대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희망의 순례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요청을 되새기자. “저마다 교회와 세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성소를 찾고 희망의 순례자이며 평화의 건설자가 될 수 있도록…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돌보는 일에 투신합시다.” 우리 각자가 용기를 낼 때 ‘우리 모두는 고유한 생활 신분에서 나름대로 작은 방식으로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희망과 평화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

2024-04-21
현장에서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분들이 왜 이렇게 많지?’ 수원교구의 세월호 참사 10주기 추모 미사 취재를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에 다다를 때쯤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검은 정장의 남성들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곧 앳된 얼굴의 수원교구 신학생들이었다. 또래라면 또래일 수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추모 미사에 참례한 신학생들의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경건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교구장 이용훈(마티아) 주교와 교구 사제단의 공동 집전으로 추모 미사가 거행됐다. 이용훈 주교의 강론과 보편지향기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 희생자 및 생존자와 유가족들에 대한 깊은 위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예비신학생이었던 세월호 희생자 고(故) 박성호(임마누엘)군의 친구 심기윤(요한 사도) 부제가 추모 편지를 읽을 땐, 신학생과 신자들 사이에서 훌쩍이거나 눈물을 닦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끝내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을 참던 심 부제의 낭독을 들으며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집안의 활력소이자 엔도르핀, 엄마가 기분이 안 좋을 때 귀를 움직여 웃게 하는 아들, 재외교포를 돕는 최고 외교관을 꿈꾸는 서재능(6반)’,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고, 자동차 공학박사를 꿈꾸는 안주현(8반)’ 등 희생자 각각에 대한 메시지가 붙은 세월호 리본 봉도 사람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아직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해명도 한 번 받지 못했다는 희생자 가족들. “우리는 평범한 부모들이었다”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애통한 발언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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