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가 추계 정기총회에서 ‘시노드를 위한 한국교회 본당 사제 모임’을 지속적으로 열기로 했다. 본당 사제 모임이 일회성 행사에 머무르지 않고 ‘시노달리타스 선교사’를 양성해 교회 내에 확산시키는 매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가 마무리되고 하느님 백성의 수용 단계에 들어서는 시점이라 더욱 시의적절하다. 사목 환경도, 시노드에 대한 관심도 각기 다른 각 교구 본당 사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서로에게 귀 기울이며 진정한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는 자리는 시노드 이후 교회에 맡겨진 ‘시노달리타스 수용’의 의미 있는 첫걸음이자 토대가 될 것이다. 첫 본당 사제 모임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의견을 적극 수용해 보다 발전적인 모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올해 9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이하 WYD) 주제 성구와 로고가 발표된 데 이어, 11월에는 교황청에서 WYD의 상징인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한국 청년들에게 전달된다. 주교회의는 정기총회에서 이 자리에 전국 14개 교구와 수도회 청년 대표 등 57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대표단의 구성에서 드러나듯 서울 WYD는 본대회를 개최하는 서울대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손을 맞잡고 준비해야 할 행사다. 이미 각 교구는 준비위원회를 꾸리고 WYD에 깊은 관심을 표한 광역·지방자치단체 등과 긴밀히 협력하며 교구대회 준비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주교회의의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를 중심으로 모자란 부분은 채우고 여유 있는 부분은 서로 나누며 서울 WYD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제19회 가톨릭 환경상 대상 수상자로 대전교구 천안성정동본당을 선정했다. 올해 환경상의 주제는 ‘재생에너지 전환을 통한 탄소중립’이다. 천안성정동본당은 「찬미받으소서」 정신에 따라 햇빛발전소 건설을 통한 재생에너지 보급으로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고 창조질서 보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무분별한 화석에너지 사용으로 발생한 온실가스가 지구의 온도를 높여 생태계와 자연환경을 훼손함으로써 발생한, 인류 공통의 위기 상황을 말한다.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역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무분별한 신공항 개발,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핵발전 진흥 등 기후위기에 대한 올바른 대응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가톨릭 환경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천안성정동본당의 사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본당 차원의 모범을 보여준다. 본당은 햇빛발전소 설치와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크게 감축했다. 또한 전 신자들이 생태환경 사목 활동에 적극 참여할 뿐만 아니라 본당의 울타리를 넘어 인근 본당과 지역 사회와의 연대를 이뤄냈다. 우리는 천안성정동본당의 생태적 회개와 활동이 전국의 모든 본당으로 확산될 수 있고 확산돼야 한다고 믿는다. 만약 한국교회의 모든 본당들이 이처럼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선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대응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은 발 마사지 외에 침상 목욕 환우가 몇 분 계시니 신경 더 써주시고, 면도도 원하시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수녀님의 병실별, 환우별 지시 사항을 메모하고 파견기도를 바친 다음 병실로 향합니다. 밤새 고통과 불면으로 잠을 못 주무신 환우와 보호자가 지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으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손과 발을 먼저 만지며 서로의 따스한 체온을 교감하면서 필요한 것을 여쭤봅니다.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해서 몸과 머리가 가려워요.” 따뜻한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드리고 머리도 전용 세정제로 감겨드립니다.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면도도 깔끔하게 해드린 후 부드러운 오일로 발 마사지를 하며 마무리 케어를 해드립니다. 그리고 기도와 성가를 불러드린 다음 다른 병실로 향합니다. 저는 제 아내와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센터에서 매주 토요일 환우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2012년에 호스피스 봉사회에 입회하여 그동안 많은 환우의 아픔과 죽음의 시간을 함께해 왔습니다.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우들의 몸을 닦아드리고 마사지도 하며 기도와 성가로 작게나마 위로드릴 수 있는 시간은 정말 큰 은총인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냉담했던 환우와 가족이 성사를 청하고, 또 저희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세를 요청할 때면 정말 큰 보람을 느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임종을 앞둔 이분들을 통하여 저희 봉사자들은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봉사자들은 함께 기도하고 희생의 소중함을 느끼며 서로의 신뢰와 친교를 더욱 돈독히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환우 돌봄을 통해 봉사와 감사로 우리의 삶을 채찍질하고 더욱 주님의 부르심에 충실해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는 정말 큰 은혜이고 선물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봉사자들이 영적으로 더 정화되고 내면이 치유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서 삶에 더 감사하게 됩니다. 아픔 속에 있는 그분들의 몸을 예수님 몸처럼 닦고 문지르며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더 잘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하면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이야기해 드립니다. 저희는 일주일 동안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며 생명이라는 그 숭고한 가치와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큰 축복의 시간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저희는 이 은혜로운 봉사만큼은 기력이 다하는 날까지 꼭 하고 싶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삶을 준비하는 환우들과 매주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은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는 본당 성령기도회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며 찬양팀을 만들어 사회복지시설에서 찬양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양로원인데 외롭고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생활 성가로만 음악을 준비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함께 손뼉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을 보며 찬양 안에서 예수님의 손길이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심을 느낍니다. 저희의 찬양을 정말 좋아해 주시고 늘 기다려 주셔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금이나마 위안과 즐거움을 드리기 위해 힘차게 더 열정을 다해 찬양 봉사를 해드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과 찬양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시간은 하느님의 영이 우리와 함께함을 느끼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시거나 뒷정리를 도와주시고 저희 찬양팀을 위해 늘 기도 해주신다는 말씀에 큰 힘을 얻으며 더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각오를 새깁니다. 양로원 찬양 봉사를 통해 저희 부부의 마음이 정화되어 새로워지고, 오히려 저희가 새 힘을 충전하고 돌아오는 것 같아 하느님께 항상 감사드리고 행복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아프고 외롭고 가난한 이웃이 저의 갈릴래아고, 그들 안에서 예수님을 뵙고 있다고 믿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삶 안에서 그리고 봉사직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내 영혼의 갈릴래아는 지금 여기에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더 기쁘고 감사합니다. “주님, 부족한 저희의 삶을 통하여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아멘!” 글 _ 박기석 시몬(대구대교구 포항 장량본당)
교회는 해마다 9월의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지내고 있다. 올해로 110차를 맞는 이날은 이주민과 난민 문제가 오랫동안 교회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주는 날이다. 의정부교구는 해마다 이날 이주민 축제를 열어 교구 내 거주 중인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국가, 인종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몇 년 동안 중지됐던 이주민 축제를 다시 열기로 결정하며,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이하 엑소더스)는 고민에 빠졌다. 이주민 축제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어느새 이주민들‘만’의 축제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10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다 보니 교구 산하 수련원을 축제 장소로 선택했던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축제에 대한 선주민의 관심이 줄어들게 만들었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일선 본당을 섭외해 축제를 열고 축제 이름도 ‘엑소더스 축제’로 변경해 선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갈피가 잡혔다. 그리하여, 본당에서 열리는 첫 ‘엑소더스 축제’의 장소는 자연스럽게(?) 동두천성당으로 낙점됐다. 본당 관할 구역에 오랫동안 이주민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어 선주민 신자들도 어렵지 않게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축제 장소로 선정된 후 엑소더스 위원장 신부들과 직원들이 몇 차례 방문해 차근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함께 하면서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 하며 놀란 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 축제들에서 파악한 문제점이 어디서 기인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축제에 참여하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또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할지 등 정말 많은 것을 염두에 둔 기획 과정이었다. 마침내 엑소더스 축제 당일. 축제는 의정부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님이 주례하신 개회미사로 막을 열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한 미사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성찬 안의 일치’였다. 주교님은 영어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셨고, 비영어권인 베트남, 동티모르 공동체를 위해 전례문과 강론을 번역해 화면에 띄우고, 보편지향기도는 영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다양하게 진행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언어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긴 했지만, 미사 후 선주민 신자에게서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울 것인가 헤아려 볼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주님의 식탁에 함께 모인 존재임을 느꼈으면 했던 우리의 의도가 성공한 듯했다. 미사 후에는 먹을거리 장터가 마련돼 성당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부스마다 이주민 공동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선주민을 배려해 강한 향신료는 배제하고 음식을 준비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어르신들도 음식을 맛있게 드실 수 있었다. 이주민, 선주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가 오감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화목한 식사 자리를 언제고 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과 함께. 뒤돌아보니, ‘성찬의 식탁’과 ‘오찬의 식탁’이 함께한 엑소더스 축제였다.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한몸을 이루고 있음을 성체와 음식을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 ‘한몸됨’을, 이 ‘일치’를 우리가 늘 잊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생활성가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부디 우리 모두,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1976년 11월, 전남 함평군에서는 지역 특산품인 고구마가 길거리에서 썩어갔다. 당시 고구마 값이 크게 오르면서 농협 측은 수매값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고 농민들이 고구마를 팔지 않고 기다렸으나 농협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농협은 약속했던 양의 40%만 사들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이고 자식과 같이 키운 고구마를 모두 버려야 하는 농민들의 심정은 타들어 갔다. 하지만 힘없는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유일하게 그들의 손을 잡아준 곳이 교회였다. 광주 계림동성당에서는 당시 윤공희 대주교 주례로 기도회가 열렸고, 사제와 농민들은 농협의 태도를 규탄하고 피해보상을 촉구했다. 이들의 함께한 기도는 농민들의 억울함을 푸는 열쇠가 됐다. 50여 년이 지났지만 농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농사짓는 어려움은 가중됐고, 각종 수입산 먹거리로 길든 입맛은 우리 농산물을 찾지 않는 원인이 됐다. 이제 목소리조차,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진 농민들 곁에서 손을 잡아 준 것은 여전히 교회였다. 10월 20일 열린 수원교구 상현동본당의 상현달장. 가톨릭 농민이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직거래 장터에서는 농산물뿐 아니라 희망이 오갔다. 흙때 묻은 농민의 손으로 전한 농산물은 농촌과 농민을, 우리 땅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살리며 농사짓는 이들에 대한 감사함도 남았다. 도시와 농촌이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가치를 생각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상현달장에서 사고판 희망은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기름진 거름이 되고 있었다.
세상을 다 가졌어도 진정 사랑이 없고 우정이 없다면 인생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다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 작품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02-379-1975)에서 열리는 사진전 ‘다른 오늘’에서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25년 3월 2일까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제자들은 모두 제 이름으로 된 총서(叢書)를 가지고 있었다. 총서가 있느냐 없느냐, 많으냐 적으냐로 아끼는 제자였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처음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이게 모두 그들의 저술인 줄 알았다. 실제로는 꼭 읽어야 할 내용을 초서(抄書)한, 즉 베껴 쓴 책이었다. 총서 대신 일록(日錄)이나 수초(手抄)로 제목을 붙인 경우도 있었다. 황상의 「치원총서」, 황경의 「양포총서」, 윤종심의 「순암총서」, 초의의 「초의수초」 등이 그러한 예이다. 다산이 깊은 정을 두었던 제자 황상은 그렇게 베껴 쓴 총서가 자기 키를 넘겼다. 현재 강진 다산박물관에 남아있는 것만 14책이다. 베낀 책의 목록을 보면 그 사람의 관심사가 드러난다. 시인의 삶을 살았던 황상은 각 시대별 주요 시집들을 총서 속에 온전하게 갖추어 놓았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어째서 베껴 쓰기 같은 비효율적인 공부를 시켰을까? 책을 여러 번 밑줄 긋고 메모해 가며 읽는 것이 낫지 무슨 맛에 책을 통째로 베끼게 했을까? 구하기 힘든 책은 전체를 베꼈고, 간혹 핵심만 간추려 썼다. 중간중간 자신의 생각을 남기기도 했다. 그 생각을 살피는 것이 또 중요한 나의 공부 거리다. 공부의 방법으로 이 초서 작업은 뜻밖에 위력적이다. 연암 박지원의 친필 필사본 중 「영대정집」(映帶亭集)이 단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 첫머리에 적힌 친필 서문은 나중에 간행된 문집 어디에도 없는 글이다. 처음에는 글의 맥락이 눈에 잘 잡히지 않았다. 공책을 펴서 또박또박 옮겨적고, 전철에서 자리에 앉아 우리말로 옮겼다. 막히는 부분은 다음날 보고, 다시 또 보았다. 전에 미심하던 뜻이 다음번에 보니 명확하게 눈에 들어 왔다. 책을 눈으로 볼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어지럽게 메모한 번역을 다시 깨끗하게 옮겨 쓰자 이제 단락별 맥락이 소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덧붙인 메모가 다시 어지러워져서 깨끗한 종이에 한 번 더 필사했다. 앞의 것을 보지 않은 채 내 생각을 메모하자 의미가 한 단계 더 정열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나서도 나의 필사는 두 차례 더 이어졌다. 베껴 쓰기는 절대로 시간 낭비가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박아서 뇌리에 심는 과정이다. 일종의 되새김질에 가깝다. 기계적으로 영혼 없이 베껴 쓰는 일은 없다. 교회사 연구자인 박용식 선생은 책을 눈으로 읽지 않고 손가락으로 읽는다. 중요한 책은 무조건 통째 입력부터 한다.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3책은 200자 원고지로 근 7000매 분량인데 다 입력했다. 한국 교회사의 주요 저작들이 그의 컴퓨터 안에 없는 것이 없다. 「사학징의」, 「칠극」, 「벽위편」까지 다 있다. 글을 쓰다가 예전에 본 자료가 생각나지 않아 물으면 얼마 안 있어 원문과 함께 대답이 돌아온다.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히면 나는 빈 종이를 꺼내 초서를 시작한다. 문득 예전 읽었던 글을 찾아 베껴 쓰기도 하고, 논문을 준비 중인 글을 다시 베껴 쓰기도 한다. 또박또박, 따박따박 베끼는 동안 글과 대화하고, 글쓴이의 생각 속에서 헤엄친다. 그러고 나서 그 아래에 내 생각을 다시 메모해 둔다. 서류봉투의 뒷면이나 포장지의 뒷면에 적은 메모가 묘목이 되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큰 나무로 자라난다. 글 _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과 교수)
기후위기 극복은 인류 최대의 과제다. 우리나라도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태풍, 홍수, 산불 등을 통해 극심해지는 기후위기의 영향을 체험하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교회 역시 인간의 생태환경 훼손이 가져오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창조질서의 보전이 신앙적 소명에 속함을 가르쳐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자연생태계의 보호가 인간과 사회 생태계의 보호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통합적 생태론을 선포했다. 생태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 한국협의회는 10월 9일 서울 명동에서 제1회 전국대회를 개최했다. 59개 본당 89개 단체가 참여한 이날 대회는 처음으로 전국의 모든 하늘땅물벗 ‘벗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생태사도직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다짐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하늘땅물벗’은 그 유래가 깊다. 교회 환경운동이 처음 태동한 90년대 초 생태적 회개를 바탕으로 창조질서 회복을 지향하며 결성된 이 단체는 창립 이후 다소간의 침체기를 거쳤지만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이후 다시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모든 사도직 활동이 그러하듯, 생태사도직 역시 교회의 모세혈관이라고 할 수 있는 본당에서의 활동이 관건이다. 보편교회의 창조질서 보전에 대한 굳건한 의지는 본당에서의 왕성하고 적극적인 생태사도직 활동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이번 전국대회가 본당은 물론 교회 내 기관 단체, 수도회와 교육 기관 등 모든 영역에서 생태사도직 활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0월 쌀쌀해진 어느 날 새벽, 살아 숨 쉬는 아기를 상자에 담아 내려놓고 돌아서는 한 어머니가 있다. 이렇게 하는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다 알기란 어렵다. 건강한 아기도 있고,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기나 뇌성마비가 온 아기도 있다. 심주희 어린이를 만난 수많은 이들이 물었다. “주희가 고통이 저렇게 심하다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주희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1981년 2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지체 장애와 언어 장애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놔두고 가출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뇌성마비로 자율신경의 조절 기능을 상실한 그에게는 강직성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한쪽 어깨를 움직이면 양쪽 팔이 탈골돼 고통을 겪곤 했다. 말 한 마디에도 몸이 울려 고통을 겪었다. 한 번 자극을 받으면 주희의 등은 활처럼 휘어졌다. 거꾸로 휘어지는 등. 자세 교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희는 그 격렬한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8년을 돌보며 지내다가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를 버렸다. 그런데 주희가 꽃동네에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꽃동네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자원봉사를 청했다. 그의 청은 받아들여져서 부녀가 함께 꽃동네에서 행복하게 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꽃동네 사람들은 염려했다. 아프고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가 없어지면서, 더군다나 이번까지 부모에게 세 번이나 버려지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가 겪을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을까 걱정하면서 너무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떠난 후에도 ‘수선화 같은 그 고운 미소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날들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수도자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신상현(야고보) 수사가 물었다. “너를 세 번씩이나 버린 부모가 밉지 않니?” 그러자 그는 온 존재로 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을 모아 경어로 답했다. “선생님, 전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어디 계시든지 잘 사시라고요. 요즘은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주희는 1995년 4월 4일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급성호흡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음을 맞기 전 자기를 돌보기 위해 온 신 수사에게 늘 그렇듯 경어로 말했다. “선생님, 엄마 아빠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어요.”, “너를 버린 미운 사람들인데도?”, “그래도 엄마 아빠예요. 부모님 용서는 벌써 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그는 끝내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귀천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그의 아버지가 왔다가 장례가 끝난 뒤에 그가 사랑한 딸 심주희 그를 가슴에 품고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심주희, 그는 자신의 온 존재,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온 삶으로 우리에게 탄생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은 ‘한 상태’, 고통보다 축복이 더 큰 상태라는 것을 증거했다. 이 신학적 진리를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탄생(삶) = 상태(축복 > 고통)’ 한 존재가 자기 존재의 원뿌리에 닿아서 부르는 존재의 노래, 저 탄생과 삶의 진리를 증거한 증거자 심주희가 죽기 직전 갈망으로 애타하며 말했다.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자기 존재를 매개해 준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충만을 향한 갈망, 이것이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거룩한 갈망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인데, 우리는 심주희처럼 자신의 이 같은 갈망을 알고 사는가?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 테네시주에 위치한 녹스빌이다. 이곳의 한국인 가톨릭신자 수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매달 첫째 주, 셋째 주에만 한인 미사를 드릴 수가 있다. 다행히도 2시간 반 거리의 내슈빌 한국순교자본당에서 사목하시는 이영승(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이 우리 공동체에 와 주셔서 이곳 Most Sacred Heart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Most Sacred Heart 주교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아름다운 성당 모습에 반하며, 이렇게 멋진 곳에서 30명 남짓 작은 공동체가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는 것이 늘 너무 황송하다. 이런 감사한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 순교 성인들의 희생과 한국 가톨릭 역사의 특별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가톨릭 역사를 볼 때, 한국천주교회는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고 교회를 세운 유례없는 경우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이곳 미국 가톨릭교회에서도 매해 순교자성월이 되면, 한국의 103위 성인을 기억하고 그분들을 위해 기도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평소 내가 다니는 현지 성당인 St. Mary 성당 달력의 9월 이미지에는 한국 103위 성인의 그림과 기도문이 들어있다. 그리고 우리 공동체가 한인 미사를 드리는 Most Sacred Heart 성당의 돔 천장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마리아, 요셉이 가장 윗부분에 그려져 있고, 바로 밑에 다른 여러 성인과 함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형상이 그려져 있다. 미국 가톨릭교회의 다양한 나라 공동체 대표 성인들을 표시한 것인데, 우리 한국 공동체의 대표 성인으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한인 미사를 봉헌하러 갈 때마다 한복 입으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바라보면서 항상 감사 기도와 성인의 전구를 청하게 된다. 우리 가톨릭 신앙 선조들의 숭고한 희생과 가르침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 가톨릭교회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순교자들의 신앙은 이렇게 타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한국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밝은 등불로 우리 신앙생활을 비춰 주시고 모범이 되어 주시는 순교 성인들에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 글 _ 정현주 로사(미국 녹스빌 한인 천주교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