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예로보암

1974년 3월, 중국 시안(西安) 교외에서 주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진흙으로 만들어진 토용과 청동 화살촉을 발견했다. 진시황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었다. 무덤 안에는 온통 구리를 녹여서 왕궁을 재현하고 수은을 환류시켜 은하수를 만들었으며, 천장에 이십팔수의 성좌를 그렸다. 죽어서 살 집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그가 생존했을 때 왕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이후 아방궁(阿房宮)은 초호화 건물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초대형 건물을 짓고자 하는 것은 독재자들의 꿈인 것 같다.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도 베를린 시내를 완전히 재건축하려 했다. 유럽을 지배하는 새로운 대(大) 게르만 제국의 수도로서의 위용을 갖추겠다며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 건축계획을 세운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초대형 공사가 이루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노력 봉사에 동원되는 힘없는 서민들이다. 솔로몬도 거대공사를 진행했는데 예로보암은 그 책임자였다. 솔로몬은 통치 기간 특별히 이방인 여성들을 후궁으로 받아들였는데 외국인 아내들을 위하여 그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도록 했다. 어떻게 보면 국방력과 경제력이 안정되어 너무 편안하고 부유한 생활이 그를 교만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예로보암이 우연히 길에서 아히야 예언자를 만나는데, 아히야 자기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중 열 조각을 예로보암에게 주면서 10개의 지파를 지배하는 왕이 된다고 예언했다. 소문이 퍼져 솔로몬의 귀에도 이 사실을 들어가 예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예로보암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예로보암은 기원전 931년경에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솔로몬을 이어 왕좌에 오른 르하브암에게 힘겨운 백성들의 과도한 노동력 동원과 무거운 과세를 가볍게 해달라고 청했다. 며칠 말미를 주고 르하브암은 솔로몬의 원로들을 불러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런데 결론은 “내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가죽 채찍으로 징벌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라며 강대강으로 맞섰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결국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개로 쪼개지는 분단의 상황이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예로보암이 등극했다. 기세등등했던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스켐을 세우고 살다가, 그곳에서 나와 프누엘을 세웠다. 남유다의 침공이 두려워 군사 요충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노역과 무거운 과세로 고통을 받아 예로보암을 왕으로 세웠는데, 예로보암도 솔로몬이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또한 두 마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겨 하느님께도 죄를 지었다. 권력을 잡은 예로보암은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지 않고 간신들의 기분 좋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사람은 욕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운다고 했던가. 북이스라엘 왕 19명 중, 예로보암의 성적표는 꼴찌였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7-28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의 말씀에 잡혀 활동한 예레미야 예언자

중국의 두보(杜甫)는 사회풍자와 교훈적인 주제를 담아낸 시를 많이 썼다. 두보가 살던 당나라는 찬란한 문화와 막강한 군사력을 지녔다. 당나라의 뛰어난 문물과 정비된 제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강했던 당나라도 잦은 전쟁과 반란,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차츰 국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현종이 임금일 때 아름다운 여성 양귀비에 빠져 정사(政事)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이 틈을 이용해 낙양 등의 큰 도시를 점령한 큰 군벌들이 수도인 장안까지 쳐들어왔는데, 당나라 중엽에 일어난 ‘안녹산의 난’이 가장 유명하다. 부패한 관리들은 모두 꽁무니를 뺐고 장안을 지키는 군인들도 변변하게 싸워 보지도 못하고 패배의 굴욕을 당했다. 당시 말단 관리였던 두보도 포로가 되었다가 1년 만에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그는 도망쳐 나오다가 높은 성 위에서 수도 장안이 불타고 부서져 내려 폐허가 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보가 눈물을 흘리며 쓴 시 “國破山河在(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여전하고) 城春草木深 (도성에 봄이 오니 초목은 우거지는구나)…(후략)”는 그의 시집 「춘망」(春望)에 남아있다. 두보는 지금도 시성(詩聖)으로 불리며 애민정신에 투철하고 사람의 마음과 역사적 진실을 아주 섬세한 감정으로 표현한 시들을 많이 써서 중국인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시인이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방 사제의 아들이었다. 예레미야는 20세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유다의 마지막 왕 때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인 약 40여년간 예언자로 활동했다. 그의 활동 기간은 이스라엘의 역사 중에서 가장 비참하고 혹독한 시기였다. 55년간 왕들의 폭정이 계속됐고, 요시아왕의 개혁정책도 뒤이은 왕들의 실정으로 좋은 결과를 보지 못했다. 나라가 부실한 상태가 되다 보니 암흑과도 같은 시대가 지속되었고, 일반 백성들의 생활은 굶주림과 고통으로 몹시 피폐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심을 잡아야 할 종교가 더 부패하여 일반 백성들의 고충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대신 전하였다. 그는 예언자와 사제들을 정조준했다. 그들의 부패상을 모두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실 당시의 시대상은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가 부패하고 썩은 상태였기에 예레미야가 멸망을 예언하는 것은 지나친 경고가 아니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활동은 녹록지 않았다. 한마디로 고통과 수난의 연속이었다. 예레미야는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 불평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나라의 멸망을 예언하는 와중에 예레미야는 펑펑 울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항복하라고 하여 매국노라는 오해를 받고 백성들의 미움까지 사게 되었다. 예레미야는 너무 억울했지만, 백성들의 어두운 미래가 측은해 눈물을 흘렸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언자가 된 예레미야는 웃음거리, 조롱거리로 내몰려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그칠 수 없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에 철저히 잡혀있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7-21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타락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해도 즐겁고 어리석은 사람은 부유해도 걱정에 잠을 못 이룬다.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857-?)은 생활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혜라고 했다. 만족하면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고 자기 일에서 행복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원님과 백정이 있었다. 원님은 그야말로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났고 착하고 예쁜 부인을 만나 자식도 여럿 두었다. 백정은 천한 신분 때문에 매일 무시당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쌓여 일찍 늙어 보여 결혼도 못 하는 신세였다. 어느 날 원님이 산책 중에 백정을 만났다. 백정은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였다. “그런데 원님, 안색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 혹시 어디 안 좋으신 곳이라도?” 원님은 하늘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걱정이 너무 많네. 혹시 고을에 강도나 도둑이 들지 않을까? 혹시 누가 나에게 불만이 있는 자가 나를 모함하여 임금님이 갑자기 벼슬에서 파직시키지 않을까? 그 밖에도 걱정거리가 많다네. 내가 이런데 자네는 오죽하겠나?” 그 말에 백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쇤네는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가족이 없으니 걱정할 게 없고, 가진 재산도 없으니 신경 쓸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고기를 사람들에게 팔면 돈을 받으니 기쁘고, 매일매일 그냥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 백정의 말에 원님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충격이 왔다. 비로소 백정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의 삶에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보통 인간의 고통은 욕심에서 비롯되고 이 욕심이 사람들을 죄와 잘못된 길로 이끈다. 솔로몬은 그야말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태평성대를 이룬 왕이었다. 솔로몬 하면 항상 지혜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영민한 왕이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정을 확립했다면 그의 아들 솔로몬은 안정된 정치적 수완으로 왕국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다. 정략적인 혼인과 무역을 바탕으로 경제적 성장을 이뤄냈고, 그리고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부전자전이라 했나? 솔로몬도 아버지를 닮아 호색가의 DNA(?)를 갖추었다. 그는 수많은 외국 이방인 여인들, 모압 여인, 아몬 여인, 에돔 여인, 시돈 여인, 헷 여인 등 온갖 외국 여인들을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분명 정치적 장점도 있었지만, 왕궁 깊숙한 곳에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에게 드리는 제사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게 됐다. 이스라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교국가이며 항상 이스라엘의 문제는 역사는 잡신들과의 투쟁과정으로 점철돼 있었다. 솔로몬은 우상숭배가 궁정 안에서 이루어지게 했고, 지나친 세금 부과와 강제노역으로 백성의 원성을 샀다. 큰 둑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가장 약한 부분부터 방심한 사이 어느새 전체가 무너진다. 하느님의 축복을 약속받는 것으로 시작된 솔로몬의 통치는 하느님의 분노를 사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풍요와 큰 성공은 솔로몬을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는 결국 타락하게 됐다. 인생에서 겸손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의 마음을 지니자.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7-14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간 다윗왕

중국 명나라 시대에 큰 도둑 떼가 국경에 몰려들었다. 왕양명(1472-1528)은 황제의 명령으로 국경 마을로 떠났는데 도둑들은 산속 깊이 숨어 있고 좀처럼 쉽게 정벌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읍에 있는 왕양명의 제자들이 학문을 게을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왕양명은 즉시 제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아무리 험한 산속에 버티고 있는 도둑이라도 무찌르기를 계속하면 결국 정벌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도둑은 완전히 무찌르기가 정말 어렵다.” 스승의 편지는 제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에 정진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유혹의 연속이다. 왕양명은 안 될 일인 줄 알면서 하는 것, 열심히 해야 할 때 피우는 게으름, 이런 것들이 모두 마음속의 도둑이라 했다. 그는 이 도둑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것을 탐하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그저 혼자만 잘 먹고 잘살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왕양명은 항상 곧은 마음으로 자신 속의 도둑을 물리쳐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윗왕은 어느 날 밤에 궁전을 거닐다가 멀리서 목욕을 하고 있는 여성을 발견했다. 그 여성은 밧 세바란 여성인데 이미 결혼한 유부녀였다, 그의 남편은 충신 우리야였다. 그런데 다윗은 부하를 시켜 여성을 데려와 정을 통했다. 다윗은 부하 우리야를 죽이기 위해 꾀를 냈다. 다윗은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에 보내 결국 그를 죽었다. 그후 다윗은 우리야의 부인을 아내로 삼았다. 다윗은 탐욕에 눈이 멀어 부하를 일부러 죽게 하고 그 아내마저 차지하는 죄를 지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냈다. “어떤 성에 부자와 가난한 이가 살았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많았지만 가난한 이에게는 암컷 새끼 양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잣집에 손님이 왔는데, 부자는 자기 양이 아까워서 가난한 집의 새끼 양을 빼앗아 손님 대접을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다윗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저런 세상에 그런 파렴치한 놈이 있단 말인가? 하늘이 무섭지 않은가?” 소리를 지르며 흥분한 다윗을 보고 나단은 결정구를 날린다. “그 파렴치한 놈이 바로 임금님입니다. 임금님은 충신 우리야를 죽게 하고 그의 아내를 차지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임금님은 그 일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나 하느님은 마치 대낮처럼 그 일을 온 천하에 비출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하느님께 큰 죄를 지었소.” 다윗왕은 나단에게 즉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다. 이스라엘 역사상에서 위대한 성군으로 존경받는 다윗왕도 예상외로 죄를 많이 지었다. 그러나 다윗이 위대한 것은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인정하고 회개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진솔하게 뉘우칠 줄 알았던 다윗,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순수한 그의 믿음을 높이 존경하는 것이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7-07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민심을 잃고 몰락한 이스라엘의 사울왕

1939년 독일의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폴란드를 완전히 장악한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에 평화회의를 제의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거부하자 독일은 프랑스 파리까지 단번에 진격했다. 이제 마지막 영국만이 남았다. 영국을 향한 공격이 계속됐기 때문에 영국 국민은 대단히 불안했다. 평화 협상을 제의하는 국민들도 많았다. 말이 평화 협상이지 독일에 점령당하는 것이었다. 이때 영국은 처칠을 수상의 자리에 앉히고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 처칠은 의원들과 국민들에게 “내가 영국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력과 땀과 눈물뿐입니다. 나는 모든 힘을 기울여서, 또한 하느님의 도움에 의지하여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마지막 목적은 단 한 가지, 승리입니다”라고 역설했다. 처칠은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치는 민심이 떠나면 민심은 모래처럼 흩어지고 힘이 분산되어 전쟁에서는 백전백패한다. 사무엘은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베냐민 지파의 사울을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뽑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안에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우리 민족을 구할 수 있겠어?’하며 얕잡아 보고 사울을 따르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사울은 처음에는 큰 포용력을 가지고 자신의 정적들을 감싸 안았다.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책봉된 사울은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고 백성들은 사울을 하느님이 보내주신 임금으로 섬겼다. 사울이 왕에 오른 지 2년이 지나 필리스티나와 전쟁을 벌였다. 아군의 군대는 적군의 위세에 눌려 모두 떨고 있었고 병사들도 하나둘씩 도망쳤다. 마음이 급해진 사울은 자신이 제사를 지냈다. 그때 바로 사무엘이 나타나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을 백성들 앞에서 추궁했다. 사울은 전쟁에서는 다행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전폭적인 존경을 받던 예언자 사무엘의 추궁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는 큰 결함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사울은 후에도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전승비를 세우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결국 하느님은 사무엘에게 사울을 버리겠다고 최후통첩을 한다. 하느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더욱 궁지로 몰렸는데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백성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이었다. 사울은 다윗을 노골적으로 질투하고 시기했다. 그럴수록 이스라엘 백성의 민심이 떠나고, 가족들의 냉대를 받고, 스승 사무엘에게도 버림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사울은 왕의 자리는 차지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사울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손꼽는 영웅이었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놓쳐버린 실패한 군주였다. 능력이 출중한 장수였던 사울왕이 권력을 잡은 후 교만해져 민심을 잃고 하느님의 징벌을 당했다, 추락하는 그의 삶은 모든 지도자들에게도 큰 교훈을 안겨준다. 지도자의 가장 큰 힘은 민심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6-30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이스라엘 최후의 판관 사무엘

옛날 아테네에서 누더기 옷을 걸친 한 노인이 거리에서 소리를 쳤다. “여러분, 돼지가 되어 즐기기보다는 사람이 되어 슬퍼하십시오.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하여 먹는 것이니까요.” 노인은 당대의 스승, 소크라테스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말에 호응했다.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고 했다. 특히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의 부패한 정치가와 학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올바르게 살라고 충고를 거듭했다. 아테네 정부는 눈엣가시 같은 소크라테스를 잡아 “청년들을 현혹하고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을 탈출시키려 했지만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끝내 사형당하고 말았다. 예언자는 히브리말로 ‘나비’(nabi)혹은 ‘로에’(roeh)라 하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대리해서 전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권력자의 미움을 받아 박해나 죽음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였다. 이스라엘 역사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자를 꼽으라면 사무엘이 빠질 수 없다. 사무엘은 예언자 중의 예언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판관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에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마지막 판관이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첫 예언자로 칭송받는다.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인과 본래 살고 있던 필리스티아인은 계속해서 충돌했다. 기원전 10세기경 필리스티아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실로에 있던 하느님의 계약 궤까지 모셔와 전투를 했지만 대패하고 계약 궤마저 필리스티아인에게 빼앗기고 만다.(1사무 4,1-17) 나중에 이스라엘은 우여곡절 끝에 하느님의 계약 궤를 되돌려받았다. 전투에서 진 후 이스라엘에서는 강력한 왕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사무엘이 등장해 왕정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왕조국가가 되면 생겨날 폐해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설명했다.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왕의 종이 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의 경고를 귓등으로 들었다. 할 수 없이 사무엘은 12지파 중 선택된 야곱의 막내아들 베냐민 지파 중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뽑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민족중흥의 주역이었으며, 왕국의 건설자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의 왕은 주변 나라의 군주와 분명히 다르다. 이스라엘 왕은 절대군주가 아니며 이스라엘의 왕은 오직 주 하느님뿐이었다. 위대한 예언자 사무엘도 자식 복은 없었다. 늙은 나이에 판관으로 임명한 사무엘의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아를 판관은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탐관오리의 길을 갔다. 최고의 예언자 사무엘에게도 아들들의 타락은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사무엘은 아들을 감싸고 선택하기 보다는 하느님의 말씀과 경고에 순응했다. 이처럼 사무엘은 평생을 청렴결백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사울에게 기름 부어 축복하는 사무엘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

2024-06-23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목숨을 걸고 정의를 외쳤던 아모스

중세 영국의 비인간화를 비판한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마스 모어(1478~1535)는 영국인들이 존경하는 대법관이었다. 이미 왕비를 6명이나 폐위시키고 대부분 처형시키는 불의한 군주였던 헨리 8세가 다시 왕비인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와 결혼하려고 하자 토마스 모어는 국왕이라도 국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며 결국 대법관직을 사직했다. 헨리 8세는 믿었던 토마스 모어를 런던탑에 가두었고 결국 반역죄로 몰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이때 단두대에서 했던 토마스 모어의 말이 영국인들 사이에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평소 유머를 즐겨하던 토마스 모어는 관리에게 “목은 잘리더라도 죄 없는 수염은 다치지 않게 해주게”하며 여유를 보였다. 그는 죽기 전 시편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54,4)를 마지막 기도로 바치며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토마스 모어의 정의와 용기는 지금도 영국인들의 기억과 그들의 삶 속에 살아있다. 트코아의 목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모스는 어느 날 이스라엘이 몰락하는 환시를 보았다. 이스라엘의 전 지역이 망하고 불바다가 되어 백성들은 곤욕을 치르고 임금과 관리들은 포로로 잡혀간다는 내용이었다. 하느님은 아모스에게 자신의 말을 백성에게 전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아모스는 평생 양을 치고 나무를 가꿔서 먹고사는 무식하고 능력도 없는 일개 농부의 말을 누가 귀담아듣겠냐며 부르심을 거절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아모스에게 당신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심부름꾼이 되어 달라며 계속 설득했다. 아모스는 어쩔 수 없이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기로 했다. 아모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실 이스라엘은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해질수록 정신은 타락하여 사회의 기강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지도자나 백성들은 방심하고 있었다. 특히 지도자들은 술과 여자에 빠져 흥청거리며 정치는 뒷전이었다. 사회의 지도층이 썩고 부패하자 물질주의의 나쁜 물이 종교에도 물들어 갔다. 물질의 풍요가 극성을 부려 지도층이 부패할수록 일반 서민들은 더 착취당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힘 있는 자들이 마음대로 서민들을 착취하여 백성들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당시의 이스라엘의 위선과 잘못에 대해 엄하게 고발했다. 종교도 예외가 없었다. 이런 아모스의 예언은 당시의 지도층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사제들은 아모스를 몰아내기 위해 모함과 공격을 감행한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아첨은 지도자에게 우선 듣기는 좋지만 결국 모두 파멸과 멸망으로 이끈다. 어떤 공격과 모함에도 아모스는 당당했다. 보잘것없는 신분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던 아모스야말로 참된 예언자였다. 아모스는 목숨을 걸고 특별히 정의를 강조했다. 아모스같은 예언자는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인재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6-16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한 의인 욥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마가렛 미첼(1900-1949)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서 나오는 마지막 대사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견디면 분명히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좌우명같은 대목이다. 영화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배우 비비안리 분)는 당시의 여성들과는 달리 외향적이며 매우 강인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이기심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사랑하던 사람은 떠나고, 아이는 죽고, 전쟁으로 인해 그 풍요롭던 농장마저 폐허가 된다. 그녀가 엉망이 되어버린 농장의 흙을 한 줌 움켜쥐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테니까”라고 말하는 엔딩 장면이 오랜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잔상 속에 남아있다. 욥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한 일을 거들떠보지 않는 신앙의 사람이었다. 하느님 앞에 천사들이 모여 있을 때 그중에 사탄도 끼어있었다. 하느님은 욥의 믿음을 칭찬하면서 욥은 진실되고 온전한 사람이라 칭찬했다. 그러자 사탄은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진 이가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도 고통을 당하게 되면 하느님을 원망할 것이라 단언한다. 그러자 하느님은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했다. 첫 번째 시험은 재물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웃 부족들이 와서 재산을 약탈하고 일꾼들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벼락이 떨어져 양 떼와 일꾼들이 모두 죽게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시험으로 집을 무너뜨려 자녀들을 모두 죽였다. 이런 일을 당하자, 욥은 회개의 표시로 겉옷을 찢고 머리를 깎았고 기도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태어난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욥 1,21) 사탄은 욥이 시험에 넘어가지 않자, 욥이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심한 부스럼이 나는 병을 앓게 했다. 욥은 잿더미에 앉아 깨진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었다. 그 모습이 너무 비참해 아내는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한다. 그러자 욥은 아내에게 우리가 하느님께 좋은 것을 받았다면 나쁜 것도 받아야 한다고 이른다. 욥은 이어지는 고통의 삶 속에서 한때는 흔들리기도 했지만, 인생의 신비를 깨닫고 회개했다. 욥은 고통을 통해 인생의 허무와 인간의 무지를 철저히 깨닫는다. 욥은 회개를 통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그럴 때 단념하고 포기한다면 모든 것은 끝이다. 욥의 이야기를 통해 고통의 문제 해결과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잘 깨달아야 한다. ‘가시에 찔리지 않고 장미꽃을 모을 수 없다’는 외국 격언처럼 고통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시인 괴테는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인생에서 고통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6-09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킨 한나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Johann Heinrich Pestalozzi, 1746-1827)는 유명한 교육학자이다. 그런데 페스탈로치를 학자보다는 개혁가라고 보는 시선도 많다. 페스탈로치가 살았던 18세기 후반 스위스의 농촌은 피폐했고, 농민들은 교육을 못 받아 무지했으며,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충돌로 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져있었다.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정직하고 인류애가 많은 의사라 돈을 생각하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불행히도 페스탈로치가 5살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는 죽기 전 집안의 가정부인 바아베리라에게 남은 가족들을 돌봐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그녀는 결혼도 하지 않고 그 약속을 평생 지켰다. 헌신적이고 봉사적인 바아베리라의 삶은 페스탈로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약속을 지키려는 그녀의 삶에서 페스탈로치가 사회개혁과 빈민을 위한 복지사업에 관심을 갖게 했다. 한 여성의 약속 실천이 세상을 바꾼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페스탈로치는 빈부에 상관없이 교육의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보통교육의 이념을 마련하여 인류 교육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스라엘에는 삼손 이후 괄목할 만한 민족의 영웅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주변 이방인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마침내 모세와 비견될 큰 인물이 등장하는 데 바로 사무엘 예언자이다. 오늘 이야기할 한나는 사무엘의 어머니이다. 한나와 그의 남편 엘카나는 에브라임 산악지대에 살았다. 엘카나는 한나 외에 브닌나라는 다른 아내를 거느리고 있었다. 당시에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이라 브닌나는 한나를 몹시 괴롭혀서 한나는 잘 먹지도 못했다. 당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큰 수치와 하느님의 벌로 여겨졌다. 한나는 하느님께 울며 애원하며 기도했다. 한나는 하느님께 서원을 하고 기도했다. 한나는 사내아이를 주시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다. 한나는 기도하는 것을 감추려고 마치 술주정을 하는 듯 보였다. 사제 엘리는 그녀를 보고 질책했지만 사정을 듣고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안심시키며 귀가시켰다. 그제야 한나는 힘을 내서 음식도 먹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외모도 더 예쁘게 가꾸었을 것이다. 남편 엘카나와 한나는 잠자리에 들었는데 임신을 하게 되었다. 한나는 아들을 낳자 하느님께 기도하여 얻은 아이라 하여 사무엘이라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사무엘이 젖을 떼자, 하느님께 한 약속대로 사제 엘리에게 데려가 맡겼다. 한나는 아들을 바치며 인간적으로 심한 갈등에 빠졌을 것이다. 아들을 통해 그동안에 받은 수모와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지만, 인간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하느님께 대한 서약을 지켰다. 사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실제 이루어지고 나서 감사기도를 잊을 때도 많다. 한나의 모습에서 우리는 약속을 지키는 의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6-02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불리한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

새로운 시대를 창출하려면 일반적인 용기와 태도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비난 중에도 지지를 받으려면 험난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길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려면 확고한 신념과 큰 용기를 지녀야 한다. 중국의 맹자는 전국 시대에 살았는데, 각 나라의 왕들은 유능한 인재를 끌어들이려 혈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학식과 덕망 높은 대학자였던 맹자는 왕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맹자가 도덕 정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맹자는 왕이 올바른 정치를 하려면 백성을 사랑하고, 욕심을 버리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이 매일 일어나는 마당에 맹자의 이런 주장을 귀담아듣는 왕은 없었다. 어느 날 높은 관리가 와서 진정한 용기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되면 1000만 명이 가로막는다 해도 가는 것이 용기라고 가르쳤다. 남의 말에 귀를 닫으라는 말이 아니라 타인과 자신의 의견이 다를 때 깊이 성찰하여 하늘과 자신에게 떳떳하다면 용기를 내서 실천하라는 의미이다. 미디안족의 세력이 이스라엘을 억압하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을 피하여 깊은 산속에다 은신처와 동굴 등 밖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곳들을 마련하였다. 그래도 미디안족과 다른 종족은 올라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농사지은 소출을 모두 약탈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은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느님께 절규하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주님의 천사가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나타났다. 주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말했다.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너는 마치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족을 칠 것이다.” 기드온은 이게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했다. 집안도 변변치 못하고 어린 자신이 미디안족과 싸움을 할 수 있냐며 반문했다. 살기등등한 미디안족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많은 수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소집되었지만, 하느님은 군인 숫자를 줄이라고 명령하셨다. 안 그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전쟁인데 병력 숫자를 줄인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았다. 많은 병력으로 전쟁에서 이기면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고, 하느님께서는 이 전쟁을 자신이 이끄신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이었다. 시험을 통과한 군인들이 겨우 300명이었다. 군인을 시험하는 방법도 특이했는데 물가로 데려가 개처럼 물을 핥는 이들을 뽑았다.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합격한 것이었다. 기드온은 300명의 군인을 이끌고 전쟁에서 대승하였다. 이스라엘이 몇십 배가 넘는 적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다. 민족의 영웅인 기드온도 말년에 전리품으로 탈취한 금을 가지고 에폿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그 에폿을 섬기며 음란죄에 빠졌다. 말년에 한 번 잘못 판단한 실수로 인해 자신이 쌓은 평생의 명예가 무너져 버렸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2024-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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