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바오로 사도의 영적 아들, 티모테오

지난 성모 승천 대축일에 하느님 나라로 가신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은 성모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성소를 결심했던 계기가 중학교 3학년 때 명동성당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며 개인적으로 특별한 체험을 했고, 그때부터 사제의 길을 꿈꿨다 했습니다. 티모테오 주교님은 신학생 때부터 제 동생 신부와 같은 반이라 자연히 친동생처럼 가깝게 지냈습니다. 예전 독일 유학 시절, 차를 타거나 산책할 때 주교님은 늘 제게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자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길을 따라 산길을 함께 걸을 때도 주교님은 특히 묵주기도를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고속도로에서 매서운 바람과 폭우를 만나 차가 이리저리 흔들릴 정도였는데 묵주기도를 함께 바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우리 둘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모님이 도와주셨네” 하며 웃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티모테오 주교님을 기억하면, 어느 아름다운 봄 주일 아침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있고 새들이 지저귀고 시냇물이 흐르는 숲속 산책길에서 함께 묵주기도를 했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티모테오는 사도 바오로의 제1차 전도여행 때 그의 할머니 로이스, 어머니 에우니케를 통해 그리스도교에 입교했을 것입니다. 티모테오의 성실한 믿음도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받은 것입니다. 티모테오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성실한 믿음은 사도 바오로에게도 강한 인상과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훌륭한 사목자 뒤에는 훌륭한 부모님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뒤에서 기도와 희생으로 사목자에게 큰 용기와 힘이 되어 줍니다. 바오로는 당시 소년 티모테오가 심성이 착실하다며 칭찬했습니다. 그 후에 바오로의 가장 믿을만하고 중요한 협조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바오로는 아들처럼 아끼던 티모테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자주 믿음과 바른 양심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라고 당부합니다. 티모테오에게 책임감을 강조하고 교회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제시하기도 합니다. 교회 지도자는 흠이 없고 가정에서는 충실한 남편, 절제와 신중한 성격을 지니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따듯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지도자는 가르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당시에 교회의 큰 문제로 야기되었던 사람을 속이는 영들과 마귀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거짓 신앙인들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하며, 성경 읽기와 가르침, 권고에 열중해야 하며, 하느님이 주신 은사를 소홀히 여기지도 말 것을 당부합니다. 이런 사목적 행동에 전념하여 매일 성장하는 모습을 주문합니다. 바오로의 서신은 티모테오에게는 물론 교회를 책임질 지도자를 선정하는데도 유념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교회 지도자의 자질과 자세에 관해서 설명했다고 봅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 그동안 ‘성경 속 인물’을 연재해 주신 허영엽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21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무한한 유혹, 재물을 선택한 젊은 부자 청년

동창 신부님에게 들었던 이야기이다. 오래전 부인을 보내고 혼자된 한 부자 노인이 자녀들의 끈질긴 청을 이기지 못했다. 일생의 피와 땀이 얼룩진 그의 재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는 요구였다. 자식들에게 당장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그는 고민 끝에 유산을 미리 상속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께 모든 형제가 지극정성이었다. 그런데 몇 년 후 아버지는 암에 걸려 병원에서 여러 번 수술을 받게 되었고 오랜 시간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부자 아버지는 병원 입원비도 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자식들은 점차 발걸음을 끊더니 병든 아버지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자식들의 배신에 관해 들은 담당 의사도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조언했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연락하여 사실은 아직도 친구의 명의로 토지가 아주 많이 남아있으니 처분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라고 했다. 연락을 받은 자식들은 바로 아버지 계좌로 많은 돈을 보냈다. 그래야 더 많은 토지를 받을 수 있다고 자식들은 생각했다. 돈을 받은 아버지는 돌아가실 게 뻔한데 뭐 하러 생돈을 쓰냐는 똑똑한(?) 자식들과 연을 끊었다. 돈과 재물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때론 가족, 부부관계 등 애틋한 인간관계도 파괴해 버리니 말이다. 물론 돈과 재물, 그 자체는 좋은 것이며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재물 역시 세상의 모든 만물처럼 덧없이 지나가는 것이며 영원하지 않다. 재물 욕심이 너무 과할 때 자제력을 잃고 몸과 마음은 파멸에 이른다. 하느님이 계셔야 할 최고의 자리를 돈과 재물이 차지한다면 재물의 노예와 다름없다. 어느 날 한 금수저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주님, 제가 어떤 선한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그 청년은 하느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켰던 열심한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 능력도 출중하고 인생에서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쩌면 영원한 생명조차 자신이 가진 엄청난 돈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청년은 예수님께 “간음, 살인, 도둑질,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등은 어릴 때부터 잘 지켜 왔다”며 의기양양했다. 그 청년에게 예수님은 그가 생각하지 못한 말씀을 하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꼭 하나 있다.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런 다음에 나를 따라라.” 부자 청년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던 재산을 모두 포기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청년은 몹시 슬펐다. 부자 청년은 세상에서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고 슬퍼졌다. 처음 느끼는 좌절감이었을 지도 모른다. 예수님의 말씀은 돈과 재물 자체를 최고인 양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재물이나 돈이 인생의 최종 목적, 영원한 생명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인생에서 올바른 최고의 가치를 깨닫는다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2-14 제3470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사도단에 치맛바람 일으킨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유다인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천재들이 많은 것은 그들의 특별한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대교육이 지식이나 암기, 연역적 방법을 중시하는 것에 비해, 유다인들은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감성이나 지혜에 초점을 두고 토론이나 귀납적 방법을 사용한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장이며 제사장이며 교육자의 역할을 한다. 유다인들에게 식사 시간은 성경 공부 시간이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율법을 직접 받은 것 같은 감동으로 자녀들에게 토라를 가르친다. 논리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며 자녀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한다. 그런데 과학계는 지능은 어머니를 닮는다고 주장한다. 유다인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무척 중요하다. 어머니는 자녀 정서교육의 원천이며 최고의 심리치료사이며 교육의 상징이다. 어머니는 자녀의 거룩함, 올바른 행위, 좋은 성품을 계발해 주고 남편과 자녀들이 하느님 말씀을 배우게 도와준다. 자비로운 어머니는 동시에 능력이 있는 교사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교육열이 유별난 우리나라의 어머니들도 치맛바람(?)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이지만, 좀 더 지혜로울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식만 챙기다 보니 교권을 침해하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제베대오의 부인 살로메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로 아주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사도단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되는데 어머니의 역할이 컸을 것이라 짐작된다. 부유한 가정 출신이라 예수님께 물심양면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여성 제자그룹의 가장 핵심 인물이었을 것 같다. 그녀는 왜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을까? 유다 사회에서 여성은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살로메는 예수님의 사상과 활동에 매력을 느껴 전심전력으로 사도단을 도왔다. 살로메는 보통 유다인 가정처럼 아들들에게 많은 교육을 시켰을 것이다. 살로메는 인간적으로도 예수님께 큰 기대를 품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살로메는 예수님에게 청탁한다. 예수님의 나라가 서면 자신의 두 아들을 주님의 양편에 하나씩 앉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분명히 예수님이 언젠가 큰 권력을 잡아 세상을 통치할 큰 인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사도들 안에서는 당연히 분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을 꾸짖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5-27) 물론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제자들은 드물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살로메의 치맛바람으로 사도단 내에 말썽이 난 셈이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제자들이 모두 줄행랑을 친 후에도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밑에까지 함께했던 의리있는 여장부였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2-07 제3469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회개의 표지로 네 배의 보상을 약속한 자캐오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27세에 나이트로글리세린 제조법을 발견했다. 그런데 그가 발명한 ‘다이너마이트’는 평화와 문명을 파괴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면서, 그에게는 칭찬보다 비난이 쏟아졌다. 한동안 깊은 시름에 빠져 정작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던 그에게 프랑스의 나폴레옹 황제는 십만 프랑을 주며 “세계 산업에 일대 변혁을 초래할 발명품”이라고 격려했다. 그 이후 노벨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평화주의자였던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화약이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로 더욱 악용되는 현실을 보면서 큰 실망과 함께 자책감에 빠졌다. 유명한 ‘노벨상’은 이런 인간적인 고뇌에서 시작되었다. 노벨은 천문학적인 유산을 원금으로 맡기고, 매년 그 이자를 ‘인류의 발전과 행복에 위대한 일을 한 사람’에게 큰 상금으로 수여하도록 했다. 각종 기초과학·응용과학 분야의 상이 있지만, 수학상이 제정되지 않은 것에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노벨은 친구인 수학자 미타크 레플러가 자신의 부인과 몰래 밀애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벨 수학상이 제정되면 당대의 천재인 레플러가 수상자가 될 것은 거의 확실했다. 노벨이 수학상을 두지 않은 것은 연적에 대한 마지막 복수였다는 것이다. 세리는 로마가 통치하는 지역에 꼭 있는 직업이었다. 로마는 식민지의 세금 징수에 그 나라의 사람들을 이용했다. 세관장들은 한 해의 예상 세입을 먼저 로마에 지불했다. 그러니 당연히 세리들은 선불금을 포함해 최대한 세금 수입을 올리려고 부당한 일을 서슴지 않았다. 세리들은 유다인 사회에서 로마 제국의 하수인이자 대리인으로, 이방인이나 창녀 같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 자캐오란 인물도 다른 세리들처럼 법을 악용하여 재물을 모은 부자였을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소문이 자자한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과도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이미 들은 터였다. 길가에 많은 사람이 환호하자, 키가 작은 자캐오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주님은 나무 위에 올라간 자캐오를 보고 그를 부르셨다. 주변 사람들이 죄인과 어울린다며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의 일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캐오의 집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다. 동족에게도 비난과 멸시를 받으며 고독하고 소외된 삶을 살던 자캐오는, 자신을 평범한 친구처럼 대해주시는 예수님께 큰 감동을 받았다.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은 자캐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자캐오는 주님께, 많은 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약속했다.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소유를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율법에는 남을 기망하거나 착취해서 부당한 이익을 챙겼을 때, 이익을 본 액수에 20%를 더해 되갚도록 하여 죗값을 치르게 했다.(레위 5,24 참조) 자캐오는 자신의 회심을 이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사람은 마음이 변화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1-30 제3468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사도 바오로를 후원하고 동행했던 티토

가곡의 왕이란 불리는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관현악곡, 교회음악, 실내악곡, 피아노곡 등 명작을 남겼다. 31세로 아깝게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가 가난과 타고난 병약함 등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슈파운이라는 친구 덕분이었다. 교직에 있던 아버지는 슈베르트도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좋은 시를 발견하기만 하면 즉석에서 작곡할 수 있는 천재적 재능이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슈베르트의 학창 생활은 빗나가 보였다. 화가 난 아버지는 슈베르트의 용돈마저 끊어버려 15세의 슈베르트는 외롭고 힘들었다. 악상이 떠오를 때 정리할 오선지를 구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이때 다행히도 슈베르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친구 슈파운이 있었다. 슈파운은 자신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슈베르트에게 오선지를 사 주곤 하였다. 슈베르트는 교직 과정을 이수하여 교사 생활을 시작했지만 평탄하지 못했다. 그는 17세에 <C장조의 교향곡>을 완성할 정도로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친구 슈파운은 학교에 얽매여 전전긍긍하는 슈베르트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슈파운은 돈 많은 친구 쇼벨의 하숙집으로 슈베르트를 데려가 작곡에만 전념하도록 했다. 그리고 후원회를 만들어 슈베르트를 적극 후원하는 데 앞장섰다.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선량한 시민들의 모임도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슈베르트의 음악이 눈부시게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그럴듯한 연주회 한 번 못 한 불우한 음악가였지만,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친구를 가진 행운아였다. 사도 바오로는 여러 명의 좋은 협력자 덕분에 성공적으로 선교를 할 수 있었다. 성공한 이들을 보면 항상 좋은 은인, 친구가 있다. 바오로에게는 그리스 출신으로 바오로를 만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티토라는 인물이 있다. 티토는 바오로가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바오로의 어려운 전교 활동에도 항상 그가 동행했다. 티토는 믿음직스럽고 충실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심 깊은 신자였다. 바오로가 “이 형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송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로 주님의 영광과 우리의 열의를 드러내려고 우리가 맡아 수행하는 이 은혜로운 일을 위하여, 여러 교회가 우리의 여행 동반자로 뽑아 세운 사람이기도 합니다”(2코린 8,18-19)라며 티토를 칭송했다. 문제가 생긴 교회에 파견되어 사태를 수습한 것을 보면 티토는 지혜와 정치적 수완도 있었던 인물이었다. 티토의 가장 중요한 활약은 코린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었다. 고린토 교회의 분열은 바오로의 큰 관심사였다. 교회가 분열되어 붕괴로 이어질 위험한 상태였는데, 티토는 코린토 교회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 사태를 수습했다. 바오로가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것도 티토같은 성실하고 도움을 주는 협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고 함께해주는 진정한 친구는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1-23 제3467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집념과 인내의 믿음을 지닌 가나안 부인

어릴 적 퀴리 부인에 관한 위인전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조국의 불행과 많은 고통을 딛고 학문에 전념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마리 퀴리는 학창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집념과 인내로 공부를 지속했고, 인류에 공헌한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 마리 퀴리는 어린 나이에도 개인 교사를 하며 먼저 파리 소르본 의대에 진학한 언니에게 학비를 부쳐주었다. 마리 퀴리도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학문의 평생 동반자인 남편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퀴리 부부는 오랫동안 방사성 물질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핵물질에 접촉되었다.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않고 라듐을 취급하는 바람에 엄청난 열과 방사선에 노출됐다. 어느 날, 남편이 마차에 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퀴리 부인은 큰 시름에 빠졌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 마치지 못한 실험을 계속했다. 그녀의 손은 늘 불에 덴 것처럼 쭈글쭈글하고 손의 지문까지 닳아 없어질 정도로 열심히 연구와 실험을 했다. 건강이 나빠질수록 그녀의 인내와 집념은 더 강해졌다. 퀴리 부인은 결국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녀는 향년 67세로 세상을 떠나 파리 외곽에 있는 남편 묘소 옆에 나란히 묻혔다. 라듐을 발견했던 순간의 감동을 기록한 마리 퀴리의 연구 노트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지하에 차폐되어 보관 중이다. 지금도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어서 함부로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상태라고 한다. 퀴리 부인은 노벨 화학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과학계에 큰 발자국을 남겼다. 예수님의 일행이 티로와 시돈 지방을 지날 때였다. 가나안 여자 한 명이 다급히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달려왔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가던 길을 재촉하셨다. 그는 고래고래 더욱 큰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따라왔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일은 좋지 않다”고 그녀에게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은 하느님이 선택한 ‘하느님의 자녀’이고, 이방인은 주인도 없이 먹이를 찾아다니며 사는 강아지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부인은 강아지라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하였다.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방인인 가나안 부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며 바로 딸을 치유해 주셨다. 가나안 부인의 지속적인 인내심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무언가 간절하고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인내와 집념이 필요하다. 믿음에서 중요한 것도 인내심과 충성심이다. 하느님은 인내하며 끊임없이 구하는 사람에게 응답을 주신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을 죽인 바리사이파 사람들

지금은 이스라엘 성지순례가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서 전쟁 상황이 정리되면 많은 분들이 이스라엘의 성지를 찾을 것이다. 과거에도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할 때 안식일이 되면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시내가 텅텅 비고 호텔 엘리베이터도 정지되는 경우가 많다. 유다교의 중심은 율법이다. 율법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토라’는 본래 ‘가르침’이란 뜻이다. 율법이란 십계명을 중심으로 한 하느님 백성의 생활과 행위에 관한 하느님의 명령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 모든 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율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받은 십계명 등은 바로 율법의 뼈대가 된다. 사회가 복잡하게 발달하면서 율법도 세분됐다. 예수님 시대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세분되고,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령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율법 중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 같은 경우에도 아주 자세하게 열거되어 있다. 나뭇가지와 잎을 뽑거나 자르기, 잔디 깎기, 화초에 물주기도 할 수 없다. 밭을 갈거나 씨를 뿌리기, 타작하기, 알곡 고르기, 빻기나 찧기도 금지된다. 심지어 불 켜기와 끄기도 할 수 없다. 특히 바리사이파(Pharisees)는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기에 유다교의 중요한 분파이다.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된 후 바리사이파는 유다교의 기초가 되었다. 신약성경에서도 바리사이파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되고 이들은 율법을 중심으로 한다. 율법 학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모세 율법을 가르치기 때문에 가장 존경받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라며 율법 학자들을 직접 공격하는 장면이 나온다.(마태 23,1-36 참조) 율법은 이스라엘 교육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가난한 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고 율법을 모르니까 지킬 수 없어 이미 죄인으로 판단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작정했을까? 예수님이 반대한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지키는 율법주의이다. 예수님은 율법의 중심은 바로 하느님과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율법의 준수와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중요하다는 새로운 율법을 선언했다.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완성했다.(마태 5,38-48 참조)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의 기본 정신을 잃어버렸고 모세가 전해준 율법은 변질되었다. 예수님 자신이 길이고 생명이므로 그분이 곧 율법의 완성이 되는 것이라 했다. 예수님이 선포하는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사람들에게 인기도 높아졌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해칠 것으로 생각되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했다. 유다교에서는 현재도 예수님을 한 사람의 예언자로 여길 뿐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다교는 여전히 다윗 왕조를 다시 회복할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신자가 되어 가치있는 삶을 산 노예 오네시모스

‘히브리 노예의 합창’은 베르디(Giuseppe Verdi)의 초기 오페라 <나부코(Nabucco)>에 나오는 유명한 합창곡이다. 나부코는 구약성경의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가리키며, 이 합창은 유다인들이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노역을 하며 잃어버린 조국 예루살렘을 그리워해 부르는 노래다. 사슬에 묶여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다인들이 노역 중 부르는 이 장면은 오페라의 압권으로 꼽힌다. 노예란 자유 없이 주인의 지배 아래 놓인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뜻하며, 본래 경멸적 의미가 담긴 단어다. 다만 유다 사회에서 유다인 노예의 법적 지위는 외국 노예와 크게 달랐다. 특히 유다인 노예는 대개 6년이 지나면 아무런 보상 없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탈출 21,2 참조) ‘히브리인 노예를 산 사람은 상전을 산 것과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노예는 인권을 기대하기 어려운 힘없는 존재였고, 주인에게 노예는 재산이자 생사여탈권의 대상이었다. ‘유익하다’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오네시모스는 콜로새 필레몬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였다. 당시 노예들은 대개 전쟁 포로나 노예상에게 팔려 온 사람들이었고, 노예제도는 고대사회의 산업 활동을 떠받치는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오네시모스는 혈기 왕성한 젊은이로, 자라면서 자신의 처지와 환경을 견디기 어려웠고 노예 신분을 벗어나길 갈망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주인 필레몬은 부유한 사람이었고, 사도 바오로를 통해 가족과 함께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집을 신자들의 모임 장소로 내어줄 만큼 신앙에 열정적이었다. 바오로와도 친구처럼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오네시모스는 마침내 주인에게서 도망쳤다. 그 시대에는 도망 노예가 주인의 물건을 훔치거나 가족을 해치면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오네시모스는 주인의 재산을 훔친 뒤, 당시 세상과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로 향했다. 그는 로마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곳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로마에 있던 오네시모스는 감옥에 수감 중이던 바오로를 운명처럼 만나 그의 말에 깊이 감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오로는 오네시모스의 인성과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함께 주님의 복음을 전하자고 권했다. 오네시모스는 이에 훌륭히 협력하며 바오로를 도왔다. 오네시모스의 사정을 들은 바오로는 편지를 써 주며 필레몬에게 돌아가라고 권했다. 필레몬은 편지를 손에 들고 돌아온 오네시모스를 노예가 아니라 형제로 맞이했다. 신앙을 통해 오네시모스의 삶은 완전히 새로워졌다. 과거에는 어둡고 쓸모없어 도망치고만 싶던 삶이었지만, 이제는 참으로 ‘쓸모 있고 유익한’ 인생이 된 것이다. 이 세상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가 넘치는 세상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안수를 받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의 능력

몇 년 전 한 선배 신부님의 소개로 명동 근처의 한 치과를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성실한 분으로, 단골 어르신들을 부모님처럼 대하며 항상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 흘러도 늘 한결같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사실 난 치과 공포증이 있어 치료도 계속 미루곤 했었다. 어느 날 잇몸 치료를 위해 의자에 누워 얼굴 가리개를 덮고 입 주변만 드러내고 있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신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지금 연세가 많은 어르신의 위험한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안수를 받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내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나는 얼굴 가리개를 한 채로 누워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수술 부위 근처에 신경이 아주 가까이 있어 많이 걱정되었다고 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난 뒤, 그는 밝은 얼굴로 “안수 덕분에 수술이 아주 잘되었다”고 웃었다. 안수는 손을 얹어 축복을 전하는 행위로, 성경에도 자주 등장한다.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다른 이들에게 성령을 전할 때도 안수를 했다. 최근 사도행전을 읽다가,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세례까지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안수하는 장면이 새롭게 다가왔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15-17) 필리포스에게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사도들의 안수 후 비로소 하느님의 성령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 가톨릭교회의 여러 성사에서 안수가 행해진다. 이때 손을 얹어 기도하는 안수 동작은 악의 세력을 쫓고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위한 축성과 거룩한 권능을 전수한다는 표지가 된다. 따라서 안수는 하느님의 성령이 교회가 선발한 이들에게 직무를 수행할 합당한 능력을 수여하는 것이다. 우리 역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때 안수를 받았다. 그 안수는 교회 안에서 당시 사도들이 믿는 이에게 했던 안수와 똑같은 효력과 의미를 지닌다. 우리도 성령을 받아 악의 세력을 쫓아내고 몸과 마음이 병든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기적과 치유를 쉽게 체험하지 못할까? 그 답은 성경 속에 있다.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 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19-20) 그렇다. 성령을 받았다고 만사가 다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주님께 기도하며 믿음을 크게 하고 단단히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총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0-26 제3463호 18면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예수님과 따듯한 대화로 구원받은 사마리아 여인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스탕달(마리앙리 벨, 1783~1842)은 변화와 혼란이 극심한 시대에 살았다. 그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고, 부유했지만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유롭고 계몽주의자였던 외조부의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게 되었다. 1800년 나폴레옹 군대에 입대해 이탈리아 원정군 장교로 이탈리아에 가면서 예술과 문화, 특히 문학과 음악, 미술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는 그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준다. 그는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고 보수화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공직에서 점차 멀어져 문학 활동에 몰두하였다. 1810년대에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오가며 문학과 미술, 음악에 관한 평론을 발표하였고 ‘스탕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문학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애정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을 힘껏 사랑했던 경험의 덕택이라고 고백했다. 남에게 정성껏 사랑을 베풀다 보면 세상을 보는 눈도 넓고 따뜻해지기에 마음도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은 더욱 값지고 보람차다. 그런데 사랑과 호의를 받는 것도 경험이 없거나 상처가 많으면 힘들어하기도 한다. 예수님이 일행과 함께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다 지쳐 야곱의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대표적이다. 당시에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접촉과 대화도 금지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이 그녀에게 물을 청한다. 그래서 여인은 “당신은 유다인이고 나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사막 지방에서 아침나절이 아닌 한참 더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은 분명히 사람의 눈을 일부러 피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사마리아인들은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기원전 721년경 앗시리아가 사마리아 지역을 점령하고 식민지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은 잡혼으로 민족 간의 피가 섞이게 된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게 되었고, 원수지간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만약 당신이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나에게 물을 달라고 했을 것이오”라며 말을 이어간다.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에 그녀는 솔깃해졌다. 예수님은 그녀가 혼인을 다섯 번이나 했고, 지금 함께하는 사람도 남편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녀는 단번에 자신의 과거를 정확히 알아맞히자 깜짝 놀라며 예수님을 분명히 예언자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나눈 것에 감동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눈이 싫고 무서워서 일부러 피했던 그 여인을 한 인간으로 대해주셨다. 편견 없이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네고 소통하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다. 글 _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영성심리상담교육원장)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18면
기사 더보기더보기아이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