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교황과 주교, 공의회와 신학자의 이름으로 채워진 서술 구조 속에서 여성의 이름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 교회사 전문 매체 ‘크리스찬 히스토리’가 지적했듯, 초기교회에서 여성은 십자가 아래 마지막 제자였고, 빈 무덤의 증인이었으며, 초대교회의 중요한 일꾼이었지만 그 역사는 소홀히 다뤄졌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공식 기록 안에서 잘 눈에 띄지 않았지만 공동체와 사상, 신앙 실천의 영역에서 깊은 발자국을 남긴 세 명의 여성을 다시 만나 본다. ■ 성녀 마크리나(Macrina the Younger, 327~379) - 교부 시대 이해에 필수적 인물 4세기 카파도키아의 성녀 마크리나는 흔히 대 바실리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의 누이로 소개된다. 그러나 니사의 그레고리오가 남긴 「마크리나의 생애」와 「영혼과 부활에 대하여」를 따라가 보면, 단순한 ‘교부의 자매’가 아니라 형제들의 신앙과 사유에 중요한 기준점을 제공한 인물로 드러난다. 약혼자의 죽음 이후 독신을 선택한 마크리나는 가족 재산을 나누고 노예들을 해방시킨 뒤, 폰투스 이리스 강변에 여성 금욕 공동체를 세웠다. 그가 이끈 공동체에서 해방된 여성 노예들은 하녀가 아니라 함께 기도하고 일하는 자매였다. 노예와 주인이 한 공동체 안에서 재산을 공유하며 생활한 이 실천은 당시의 신분 질서를 고려할 때, 초기 그리스도교가 금욕과 공동생활을 어떻게 결합해 갔는지를 보여주는 예로 거론된다. 이 공동체에서는 묵상과 기도, 찬송이 노동과 긴밀히 얽혀 있었으며, 마크리나 자신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눈 뒤 손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신앙이 경제적 선택과 사회적 책임으로 이어진 삶이었다. 세속적 명성을 좇던 대 바실리오가 금욕과 공동체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배경에는 마크리나의 권고와 모범이 있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는 임종을 앞둔 누이를 ‘스승(ho didaskalos)’이라 부르며, 영혼의 불멸과 부활을 논한 밤샘 대화를 「영혼과 부활에 대하여」에 남겼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여성이 신학적 사유의 주체로 등장하는 드문 문헌으로 평가된다. 그의 삶은 수도 전통의 형성과 교부 신학의 배경에 깊이 관여했다. 주요 기록에 이름을 크게 남기지 않았어도 ‘교부 시대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기억되는 이유다. ■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 1098~1179) - 교회 학자로 선포된 네 번째 여성 12세기 독일의 베네딕도회 수녀원장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체험한 환시를 바탕으로 창조와 구원, 교회와 역사, 인간과 세계에 관한 독창적인 신학적 상징 언어를 펼쳐 보였다. 신학 저술에 그치지 않고 성가와 음악을 작곡하고 자연과 의학에 관한 저작을 집필했으며, 수도원 담장 너머 교회 현실과 직접 소통했다. 교황과 황제, 주교와 평신도들에게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내 성직자들의 부패를 비판하고 회개와 개혁을 촉구했으며, 라인강과 마인강 일대를 순회하며 설교했다. 중세교회에서 여성이 공적으로 설교하고 교계 지도자들을 향해 발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언어는 완곡하지 않았다. 당대 성직자들을 향해 “눈먼 이들이 눈먼 이들을 이끈다”고 직격했고, 교황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거침없이 교회의 나태와 부패를 질타했다. 힐데가르트는 자연과 인간, 몸과 영혼, 예술과 전례를 분리하지 않는 통합적 영성을 제시했다. ‘푸르름(viriditas)’이라는 개념으로 모든 피조물 안에 스며 있는 하느님의 생명력과 치유를 말하며, 자연과 몸, 음악과 식생활을 모두 창조와 구원에 참여하는 자리로 이해했다. 이 시선은 오늘날 생태 영성과 전일적 치유 담론에서도 그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2012년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힐데가르트를 보편교회의 성인으로 선언하고 교회 학자로 선포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아빌라의 데레사, 리지외의 데레사에 이어 네 번째 여성 교회 학자다. 중세의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도 영적 권위와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 수도자가 신학적 권위를 갖고 활동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그의 이름은 이제 교회가 스스로 인정한 신학사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 가경자 마들렌 들브렐(Madeleine Delbrêl, 1904~1964) - 일상 속 신앙 실천한 평신도 사회복지사 20세기 프랑스의 평신도 마들렌 들브렐은 공산주의 체제 한복판에서 복음을 살았던 가톨릭 신비가이자 사회복지사다. 거리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을 소명으로 받아들이며, 평신도 사도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을 무신론자로 규정하며, 지적·예술적 분위기의 파리 청년 문화 안에서 살았다. 그러나 20대 초, 깊은 내적 공허와 삶의 의미에 관한 질문 속에서 기도와 복음,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살아 있는 사랑’으로 체험했다. 이 회심은 그의 삶 전체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신앙을 얻은 뒤 향한 자리는, 믿지 않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 변두리였다. 노동자 계급과 공산주의가 강하게 뿌리내린 파리 근교 이브리(Ivry-sur-Seine)로 이주해 친구들과 함께 작은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가난한 이들과 이웃이 되어 살았다. 시청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공산주의자들과 같은 동네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일상을 나누는 방식으로 복음을 증언했다. ‘우리는 길 위의 사람들(Nous autres, gens des rues)’이라고 말했듯이, 거리가 곧 그의 생활이자 선교의 공간이었다. 저작 「우리 거리의 작은 사람들」 등은 평범한 일상의 성덕과 세속 한가운데서의 관상을 말하는 고전으로 읽힌다. 들브렐은 글과 강연을 통해 평신도 사도직과 ‘길 위의 영성’을 강조하며, 신앙을 성당 안이 아니라 일상의 자리에서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세상 한가운데 선 평신도의 삶 자체가 교회의 현존이 될 수 있다는 이 확신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평신도 사도직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1964년 이브리에서 선종한 뒤, 1993년 시복시성을 위한 조사가 시작됐고, 2018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영웅적 덕행을 승인해 ‘가경자’로 선포했다. 그는 평신도 여성이 도시의 가장 세속적인 자리에서 교회의 얼굴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로 평가된다.

제주 서귀포의 어느 목장 귀퉁이. 수령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못했던 하논본당 터를 품고 70년을 버텨 온 나무다. 2010년, 제주교구 서귀포본당 110주년 ‘뿌리 찾기’ 사업을 추진하던 신자들이 38만 평 하논분화구를 며칠째 헤매다 이 나무와 마주쳤다. 하논본당 제3대 주임이었던 에밀 타케 신부가 1910년경 성당 소유지임을 표시하려 심었다는 바로 그 나무였다. 설립 당시 지번도 없고 상황을 아는 사람도 없던 터. 70년간 묻혀 있던 성당 자리가 은행나무 한 그루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잊혔던 제주 산남지역 신앙의 출발점이 다시 확인됐고, ‘하논성당길’이 시작됐다. 하논성당길 순례는 서귀포성당을 기점으로 한 바퀴 원을 그리듯 도는 코스다. 천지연 산책로를 지나 하논성당 터와 하논분화구를 거쳐, 솜반천과 흙담소나무길을 지나 홍로성당 터 면형의 집에 닿는다. 여기까지는 에밀 타케 신부가 성당을 옮기며 걸었던 길이다. 이어 서귀복자성당과 이중섭거리를 지나 다시 서귀포성당으로 돌아온다. 시작과 끝이 연결돼 있음을 깨닫는 ‘성찰’의 뜻이 깃들어 있다. 이번에는 역사의 시간순으로, 하논성당 터에서 출발해 각 장소를 짚었다. 산남지역 신앙의 못자리 제주 서귀포시 일주동로 하논분화구 가장자리에 먼저 섰다. 한반도 최대의 마르형 분화구, 38만 평 너른 땅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10여 분 걷자, 하논성당 터에 다다랐다. 목장 귀퉁이, 잎을 모두 떨군 그 은행나무가 서 있었다. 당시 제주에는 은행나무가 거의 없어 목포에서 묘목을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은행잎을 보러 비신자들도 많이 찾는다. 은행나무 앞에서, 초기 본당 공동체와의 만남을 이끈 섭리를 생각했다. 1899년 제주본당(현 주교좌중앙본당)에 이어 1900년 6월 12일 세워진 하논본당은 한라산의 남쪽, 즉 산남 지역 최초의 본당이었다. 오늘날 한라산 남쪽 아홉 개 성당, 신자 3만 명이 모두 이 한자리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듬해 신축교안, ‘이재수의 난’으로 공동체는 큰 피해를 입었다. 희생된 신자 309명 중 216명, 70%가 본당 관할 신자였다. 1902년 타케 신부가 홍로(烘爐) 마을로 본당을 이전한 뒤 빈터로 남은 자리는, 4·3을 거치며 하논마을과 함께 불타 사라졌다. 하논성당길의 별칭 ‘환희의 길’은 잃어버렸던 성당 터를 되찾은 기쁨에서,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를 떠올리며 붙인 이름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이 길에서만큼은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환희로 충만한 순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솜반천을 따라 - 타케 신부의 길 하논성당 터를 뒤로 하고 흙담소나무길과 솜반천을 따라 걸었다. 타케 신부가 홍로 마을로 갈 때 걸었던 옛길을 따라 조성됐기에 ‘에밀 타케의 길’로도 불린다. 홍로성당 터에는 한국 순교 복자 성 직수도회 제주분원이자 피정 시설인 ‘면형의 집’이 들어서 있다. 타케 신부가 13년간 선교한 장소다. 그는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고 온주밀감을 제주에 들여왔으며, 1만여 점의 제주 식물을 채집해 유럽으로 보내며 제주를 식물의 보고로 세계에 알렸다. 식물 채집으로 선교 비용을 마련하면서도 어르신들에게 감귤밭을 무상으로 경작하게 하고, 지역 주민과의 화합으로 신축교안의 상처를 수습해 나갔다. 성당 입구에 전시된 '홍로의 맥'은 타케 신부가 심었던 온주밀감 나무 중 고사한 나무로 만든 조형물이다. 뒤틀린 마른 가지들이 당시 밀감나무를 직접 심고 돌봤을 그의 손길을 떠올리게 했다. 서귀포성당·서귀복자성당 터와 이중섭거리 면형의 집을 나와 서귀포성당에 닿았다. 1937년 현재 자리에 정착한 이후 산남지역 여섯 개 본당을 분가시킨 실질적인 모태 성당이다. 성당 한편의 ‘하논 카페&갤러리’에는 하논본당-홍로본당-서귀포본당으로 이어진 본당 역사와 타케 신부의 식물채집 기록, 옛 하논성당 복원 모형 등이 전시돼 있다. 걸음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 입구 중앙공원으로 이어졌다. 1970년 서귀포성당에서 분가한 서귀복자성당이 있던 자리다. 1980년대 민주화 항쟁 당시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을 피해 성당 지하실로 몸을 피했고, 수녀가 두 팔 벌려 형사들의 진입을 막아섰다. 지금은 표지석과 항쟁 기념비가 남아 있다. 현 서귀복자성당에는 네 명의 성인 유해가 안치돼, 참배와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성당 맞은편 이중섭거리에는 화가 이중섭의 옛 거주지가 남아 있다. 교회의 역사와 지역 문화, 서민의 삶이 맞닿는 구간이다. 순례의 발걸음이 어느새 일상의 한복판으로 스며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자들이 찾아 나선 길 약 11㎞, 네 시간 남짓. 하논성당길은 제주 서귀포 천주교의 형성과 신축교안의 상처, 4·3의 기억, 하논분화구의 생태 환경, 타케 신부의 식물사, 지역의 민주화 역사까지 교회사와 생태·문화를 겹겹이 품고 있다. 무엇보다 이 길은 많은 순례길들이 기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신자들이 잊힌 서귀포 신앙의 뿌리를 찾아 나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의미가 크다. 하논성당 터와 면형의 집에서 기도와 묵상에 집중하고, 서귀복자성당 이후로는 시장과 이중섭거리에서 일상을 체험하는 흐름으로 걸으면 좋다. 신앙의 역사와 현재의 삶이 하나의 원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걷는 내내 하논분화구의 생태 환경 보전 문제와 제주 지하수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길이다. ◆ 순례 길잡이 제주교구 하논성당길(환희의 길) : http://santoviaggio.com 서귀포성당 : 064-762-3444 서귀복자성당 : 064-733-5523

사랑의 가치는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순수성, 진실성, 열정, 헌신, 자유 등.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열정적인 사랑의 대명사이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강렬함은 독자들의 뇌리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설이 1847년 출판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였다. 당시 고딕 소설은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명확한 도덕적 시각이 없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흔하지 않은 깊은 사랑이 복수와 폭력을 감싸고 있어서, 빛과 어둠이 혼재해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교회사 안에서도 사랑의 이름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었던 경우들이 있다. “신이 원하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약 200년간 비극적 폭력을 낳았다.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행위로 믿었다. 또한, 종교재판, 마녀사냥,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학살 등의 사건들이 있다. 교회는 과거 그리스도교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대해서 사과하였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는 규범과 예의를 강조하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다. 남녀의 사랑은 절제되고 예의범절에 맞는 형식 안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규범을 넘어서는, 원초적인, 그리고 죽음도 멈출 수 없는 강렬한 열정의 힘 자체였다. 캐서린의 “나는 히스클리프이다”라는 말과,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영혼(캐서린) 없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은, 서로를 자기 존재 그 자체로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규범적이고 문명화된 사랑은 이들의 결합을 담아낼 수 없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 대한 사랑을 “영원한 바위층과 같다”는 유명한 표현을 한다. 자신의 사랑이 달콤하고 낭만적이기보다, 거칠며 변하지 않는, 뭔가 근원적임을 보여준다. 이 사랑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거친 들판과 격렬한 날씨, 즉 폭풍의 언덕 같은 것으로 형상화된다. 그래서 그 사랑은 길들지 않는 원초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캐서린의 죽음 앞에서 히스클리프는 자신을 ‘미치게 만들어도’ 좋으니, ‘어떤 모습’이라도 “항상 자신의 곁에 있어 달라”고 절규한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유령이 되어서 자신을 괴롭혀 달라”고 간청한다. 그녀의 존재가 사라진 심연에 홀로 사는 것보다, 유령에게 시달리기를 스스로 자청하며, 사랑이 무덤의 문턱을 넘어선다. 고통과 죽음조차도 그들의 사랑을 갈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작가는 이 사랑의 열정을 이상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캐서린의 신체적, 심리적 무너짐과 히스클리프의 평생에 걸친 고뇌와 잔혹한 복수의 주된 원인으로서 파괴적이며 광적인 집착이다. 캐서린이 에드거와 결혼해 버리자, 사랑은 복수로 변한다. 3년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사법적이고 경제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한다. 담보, 부채, 결혼 계약을 이용해 언쇼 가문과 린튼 가문의 재산을 독차지해 버린다. 결국 힌들리는 과거에 어린 히스클리프가 그랬던 것처럼, 하인처럼 전락해서 완전히 파멸한 채 절망 속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연인에 향한 히스클리프의 집착…복수를 ‘사랑’으로 정당화해 절망·파멸 자초 평화로 충만한 사랑 이루려면 폭력 멈추고 끊임없이 이해하고 용서해야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복수를 폭력이나 죄로 생각하지 않고, 근원적 질서를 바로 잡는 행위로 간주한다. 그와 캐서린은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존재론적 관계로 엮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캐서린이 에드거를 선택한 일은 사회의 계급과 재산 구조가 강요한 부당함으로 느끼기 때문에, 복수의 폭력과 잔혹함은 캐서린의 결혼이 무너뜨린 존재론적 사랑의 질서와 균형을 회복하는 정의로 포장된다. 히스클리프에게 사랑과 복수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 복수는 사랑의 연장선이다. 복수는 상대방에게 고통 자체를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받은 고통을 드러내고 알리기 위함이다.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의 “심장을 부쉈던 것이 아니라, 그녀가 그를 버림으로써 그녀의 심장을 부쉈고, 그러는 동안 자신의 심장도 부서졌다”고 말한다. 즉 복수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는 파괴는 바로 자신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외부로 드러나는 것이다. 캐서린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복수에 의해 겪는 고통을 통해, 그의 고통을 깨닫도록 기대된다. 복수는 과거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죽어가는 상태에서 말한다, “나는 그녀 없이는 살 수 없어. 내가 그녀에게 가기 전에 내 영혼은 저 언덕 꼭대기에 있을 거야.” 자신이 걸어온 복수의 길이 결국 그녀에게 돌아가기 위한 여정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복수를 사랑의 행위로 정당화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히스클리프는 계획했던 복수를 거의 다 이루었음에도 감정적으로, 영적으로 소진되어 버리고, 만족과 평화를 얻지 못한다. 이제 그는 ‘기와 한 장 들어 올릴’ 힘도 없고, “그들을 파괴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털어놓는다. 복수가 그의 존재를 충만케 한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집어삼켜 버렸다.” 자기 기만적이며 파괴적 집착으로 포장된 그의 사랑은 결국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괴해 버렸다. 구약시대 모세의 율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태복수법이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구약시대의 전통을 그대로 드러낸다. 심지어 이런 형태의 복수는 부모들의 다음 세대까지 이어진다. 히스클리프는 과거에 힌들리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헤어튼의 교육을 박탈해 버리고, 캐시에게 자신의 병약한 아들과 결혼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라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신다.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비록 히스클리프가 뉘우치는 태도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끝 무렵 캐시와 헤어튼에게서 캐서린의 모습을 발견하고, 두 사람이 관계를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놓아둔다. 언쇼 가문과 린튼 가문을 상징하는 두 사람의 사랑은 복수와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용서와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 두 사람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태도 변화는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의 전환점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열정적인 사랑의 깊이는 예의범절과 사회계급이 중요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게 분명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동시에 사랑의 이름으로 정당화된 히스클리프의 폭력은, 19세기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문명과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저지른 잔인함과 폭력을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와 자기파괴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적 신분과 물질적 욕망 때문에 에드거와 결혼해 버린 캐서린을 용서하지 못한 완고한 마음 때문이다. 죽음조차 멈출 수 없었던 사랑이었지만, 그 안에 용서가 없었다. 용서가 없는 사랑은 결국 집착과 복수와 자기파괴의 결과를 낳았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의 사랑은 실망과 상처를 피해 갈 수 없다.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적인 관계의 지속이 아니라, 평화와 충만감의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용서라는 단어가 지겨워지지 않아야 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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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이어온 사순 시기 운동…‘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

한국교회는 매년 ‘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를 주제로 사순 시기 운동을 펼친다. 사순 시기 운동의 핵심은 단식과 자선이다. 이를 실천할 올해 ‘사랑의 단식재’ 권고일은 3월 27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동 헌금의 날’은 3월 29일이다. 사순 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회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때다. 교회는 이 시기에 신자들이 내적인 보속과 함께 공동체적인 보속 행위를 하도록 권고한다. 그 방법으로 단식재를 지키고 그 몫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도록 하는 것이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는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실천을 독려하고자 매년 사순 시기 운동 홍보 포스터를 제작하고, 교황 담화와 함께 배포하며 전국 차원의 캠페인을 펼친다. 이 운동의 3대 요소는 ▲이웃 사랑 의식 교육(사순 시기 교육) ▲단식재 권고(사순 제5주간 금요일) - ‘사랑의 단식재’ ▲전국 헌금(주님 수난 성지 주일) -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동 헌금의 날’이다. 단식재는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하고 죄를 보속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올해 사순 시기 담화에서 “단식은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우리 자신을 준비하는 구체적인 길”이라면서 “음식의 절제는 고대의 수덕(修德) 실천이었으며, 회개의 여정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단식은 참회의 표현이자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단식은 악에 맞서 싸운 예수님의 투쟁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행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을 새롭게 하려는 의지를 하느님 앞에 드러내 보이고, 정화된 몸과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를 준비한다. 사순 시기 공동 헌금, 어디에 쓰이나?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실시하는 사순 시기 공동 헌금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밝히는 구체적인 나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모금은 주로 사순 저금통이나 2차 헌금을 통하여 이뤄진다. 전국 교구 중에서 광주대교구는 사순 저금통과 더불어 별도의 ‘단식재 봉투’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사랑의 단식재’ 날에 단식으로 절약한 몫을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봉헌하도록 돕는 모금 방식이다. 헌금의 수합 주체는 교구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교구 관리국이나 사회사목국(사회복지국), 교구 사회복지법인이 이를 맡는다. 대부분의 교구가 공동 헌금을 사회복지기금, 소외된 이웃 등을 지원하는 일에 쓰지만, 교구의 지향에 따라 지원 형식에 차이가 있다. 광주대교구는 공동 헌금의 상당 부분을 이주민들을 위하여 사용한다. 수원교구는 사회복음화국 생명위원회를 통하여 생명 지원 사업에 힘을 보탠다. 마산교구는 교구 내 사회복지시설 지원뿐 아니라 자연재해 피해 긴급 지원금으로도 사용하고 있다. 제주교구는 공동 헌금을 각 본당에 배분하여 자선 활동비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군종교구는 본당에서 추천한 자선 나눔 대상자를 선정하여 지원금을 전달한다. 한국교회 ‘사순 시기 운동’의 시작과 변화 한국교회의 사순 시기 운동은 1977년 시작됐다. 1977년 1월 27일, 주교회의 산하 기구였던 인성회(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의 전신)의 전국 교구 대표자 회의에서 이 운동 실시를 결의했고, 같은 해 2월 18일 주교단의 승인으로 제1차 사순 시기 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주교단은 ‘사순 시기 공동 사목 교서’를 통해 사순 제3주간 금요일에 신자들이 공동 보속의 의미로 단식재를 지키고, 단식으로 절약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헌할 것을 권고하였다. 1978년부터 운동의 주제가 ‘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로 고정됐다. 사순 제5주간 금요일에 단식을 하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공동 헌금을 실시하는 방식도 정착됐다. 초기에는 교구 헌금의 일부를 전국 기금으로 납부했으나, 주교회의 1992년 추계 정기총회 결정에 따라 공동 헌금 전액을 각 교구에서 사용하게 됐다. 초창기부터 1990년대까지 사순 시기 운동은 단식재와 공동 헌금 권고, 신앙 쇄신과 나눔 실천 교육에 중점을 뒀다. 2000년대 초반부터 헌금 저금통과 2차 헌금 진행, 자선 음악회나 바자회 개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이 확산됐다. 특히 ‘사순 시기 특별 헌혈’, ‘장기 기증 운동’, ‘자원 봉사 활동’ 등 여러 나눔 활동을 진행하는 교구들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운동의 의미가 확장됐다. 사순 시기 운동은 절제와 희생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 운동으로 자리 잡고, 50년 동안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오늘도 이 운동은 신자들이 사순 시기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며 애덕을 실천하도록 이끄는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나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 프란치스코의 해’ 기도문 한국어 번역 공개

한국교회 프란치스칸 수도회들의 협의 기구인 프란치스코 가족 봉사자 협의회(회장 이승훈 레오 신부)가 ‘성 프란치스코의 해’ 기도문을 번역해 2월 27일 공개했다. 기도문은 각 수도회별로 인쇄해 소속 기관이나 수도원 등에 우선 배포될 예정이다. 레오 14세 교황은 지난 1월 7일 서한을 통해 “이 은총의 해에 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께서 우리 모두에게 완전한 기쁨과 조화를 계속 심어 주시기를 청하며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바친다”며 프란치스칸 가족 총장 회의(Conference of the Franciscan Family, CFF)에 기도문을 전달한 바 있다. 총장 회의는 전 세계 프란치스칸 수도회들의 협의 기구다. 기도문은 갈등과 분열로 고통받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화의 증거자가 되기를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전구해 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편 레오 14세 교황은 1월 10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기를 맞아 특별 희년을 선포하고, 교령을 발표했다. 더불어 성인과 관련된 수도회 성당이나 경당을 순례하는 이들에게 전대사를 부여한다고 한 바 있다. 다음은 한국어 기도문 전문. <성 프란치스코 파스카 800주년 기념 기도문> 저의 형제이신 성 프란치스코님, 당신은 팔백 년 전 평화의 사람이 되어 누이인 죽음을 맞이하러 가셨으니, 주님 앞에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당신은 성 다미아노 십자가에서 참된 평화를 알아보셨으니 모든 장벽을 허무는 화해의 샘을 주님 안에서 찾는 법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은 무장하지 않은 채로 전쟁과 몰이해의 경계를 가로지르셨으니, 세상이 담을 쌓은 그 자리에 다리를 놓는 용기를 저희에게 주소서. 갈등과 분열로 고통받는 이 시대에 저희가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무장하지 않으며 무장을 해제시키는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평화의 증거자가 되도록 전구해 주소서. 아멘. -프란치스코의 한국 가족 봉사자 협의회 -

FABC “주요 강대국 ‘보복의 악순환’, 인도적·경제적 피해 초래”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는 3월 3일 ‘중동에서 고조되는 분쟁에 관한 FABC 성명’을 발표하고, 중동에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에 연관된 국가들이 적대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FABC는 “최근 주요 강대국과 지역 강국들이 연루된 폭격과 보복의 악순환은 이 지역과 세계에 헤아릴 수 없는 인도적·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아시아교회는 위협이나 무기에 의해서는 평화가 세워질 수 없음을 상기시키신 레오 14세 교황의 긴급한 호소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하고 책임감 있는 대화를 지속해야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향한 길을 열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FABC는 “민족의 존엄과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유일한 길인 대화가 다시 분쟁 해결의 기본 수단이 돼야 한다”며 “분쟁 지역에 존재하는 종교 간 연대를 촉진해 생명의 거룩함을 함께 증언하고, 지정학적 계산 속에서 외면당하는 가난한 이들과 전쟁의 희생자들과 함께 서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 중동에서 고조되는 분쟁에 관한 FABC 성명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방콕에 모인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중앙위원회는 시노달리타스적 친교의 정신 안에서 중동 지역에서 다시 고조되고 있는 폭력 사태에 깊은 고통과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최근 주요 세계 강대국과 지역 강국들이 연루된 폭격과 보복의 악순환은 이 지역과 세계를 헤아릴 수 없는 인도적·경제적 피해를 초래할 분쟁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다. 아시아 대륙의 교회들은 이러한 상황을 특히 깊이 우려한다. 우리는 파괴와 고통, 죽음을 낳는 위협이나 무기에 의해서는 평화가 세워질 수 없음을 상기시키신 레오 14세 교황의 긴급한 호소에 뜻을 같이한다. 안정은 두려움에서 비롯될 수 없으며 정의 또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다. 오직 진실하고 책임 있는 지속적인 대화만이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향한 길을 열 수 있다. 풍부한 종교적 다양성과 깊은 문화 전통,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일상적인 고통이 특징인 아시아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평화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대화의 결실이고, 민족들 사이에 신뢰를 인내로써 쌓아 가는 과정이다. 반대로 전쟁은 가장 취약한 이들, 곧 가난한 이들, 삶의 터전을 떠난 이들, 어린이들, 그리고 미래 세대에게 특히 큰 상처를 입힌다. 아시아교회가 함께 식별해 온 길에 충실하고자 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호소를 겸손히 제시한다. • 우리는 즉각적인 적대 행위의 중단을 촉구하며, 모든 당사자가 도덕적 책임을 다하여 더 깊은 고통과 되돌릴 수 없는 상실만을 초래하는 긴장 고조의 악순환을 멈출 것을 요청한다. • 우리는 분쟁 해결의 기본 수단으로 외교가 다시 회복될 것을 촉구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대화는 민족의 존엄과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유일한 길이다. • 우리는 특히 이 지역에 존재하는 주요 종교 전통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종교 간 연대를 촉진하여, 생명의 거룩함을 함께 증언할 것을 권고한다. • 우리는 지정학적 계산 속에서 종종 외면당하는 가난한 이들과 전쟁의 희생자들과 함께 서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새롭게 한다. 그들의 고통은 평화를 위한 모든 노력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우리는 사순 시기를 지내는 이때 아시아 전역의 모든 지역 교회가 평화를 위해 기도와 단식, 그리고 구체적인 연대의 실천을 더욱 강화하도록 간절히 초대한다. 희망의 순례자로서 우리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도 성령께서 계속해서 화해의 길을 열어 가신다고 믿는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중동의 모든 민족과 함께하시며 상처 입은 우리 세상을 위하여 전구해 주시기를 빈다. 2026년 3월 3일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를 대신해, 친교와 희망 안에서 FABC 의장 필립 네리 페라오 추기경, FABC 부의장 파블로 비르질리오 데이비드 추기경, FABC 사무총장 기쿠치 이사오 추기경

청주교구 배티 순교 성지, 최양업 신부 탄생 205주년 기념 행사 개최

최양업(토마스) 신부 탄생 205주년 기념일을 맞아 가경자의 영성을 본받고, 시복시성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렸다. 청주교구 배티 순교 성지는 3월 1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탄생 205주년 기념 후원회원과 봉사자를 위한 감사의 날’을 개최하고, 교구장 김종강(시몬) 주교 주례로 감사미사를 봉헌했다. 이번 행사는 3월 26일 예정된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 재판을 앞두고 기적 심사 통과를 위해 기도하고, 성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써 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자 마련됐다. 미사에서 김 주교는 성지 봉사 단체인 ‘삼박골’에서 20년 이상 활동해 온 장기 봉사자 4명에게 축복장과 선물을 수여하고 노고를 격려했다. 김 주교는 강론에서 “최양업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믿음으로 응답한 분이셨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먼 유학길을 떠나고, 사제가 된 후 해마다 7000리가 넘는 길을 걸을 수 있었다”며 “최 신부님의 삶은 주님을 따른 가장 특별한 답이었고, 신앙 후손인 우리도 이 복된 부르심에 답해 그분의 영성을 따라야 한다”고 당부했다. 성지 담임 최문석(안드레아) 신부도 미사 중 “신앙 선조들은 박해를 피해 살아가던 이곳에서 성대하게 미사를 봉헌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아름다운 신앙을 선물로 주신 신앙 선조들과 하느님께 감사하자”고 말했다. 행사 중에는 성지 피정의 집인 ‘양업 영성관’ 축복식도 거행됐다. 2002년 문을 연 피정의 집은 노후화된 탓에 시설 개선이 필요했다. 이에 건물 내 시설을 새롭게 정비하고, 식당 건물을 증축하는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피정의 집은 4월 1일부터 운영을 재개할 예정이다. 성지 후원회원과 봉사자는 연 2회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 이날 행사에서는 순교신심 함양을 위한 다양한 공연도 열렸다. 교구 극단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느님의 모상)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 여정을 담은 성극 <길 위에서>를 선보였다. 교구 성 음악원 소속 단체인 스콜라 챔버 오케스트라, 가브리엘 성가대, 안젤루스 도미니 어린이 합창단은 최 신부의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사향가> 등의 곡으로 무대를 꾸몄다. 후원회원 이경연(사라·대전교구 천안불당2동본당) 씨는 “우연히 성지에 왔다가 후원회원에 가입해 벌써 10년째 활동하고 있다”며 “최양업 신부님에 관한 공부하면서 감화도 많이 받았기에 꼭 시복되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혜영(아가타·대전교구 천안불당2동본당) 씨도 “오늘 행사에 와서 최양업 신부님 십자가도 받고, 다채로운 공연도 봐서 좋았다”며 “새로 문 여는 피정의 집에도 가족들과 본당 식구들과도 와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종합

프랑스 무대 서는 꿈나무마을 남성중창단, 경비 마련 모금 나서

자립준비청년들로 구성된 ‘서울시 꿈나무마을 남성중창단’이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오는 8월 프랑스 현지에서 초청 공연을 펼친다.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주관한 ‘프랑스 내 한국 행사’ 공모에 최종 선정되는 기쁜 소식을 안았지만, 항공료와 체류비 등 별도 재정 지원은 없어 이들의 프랑스 공연 성사를 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남성중창단은 예수회 기쁨나눔재단이 꿈나무마을을 위탁 운영하던 2024년 3월 창단됐다. 사회로 나아가기까지 더 많은 준비와 시간이 필요했던 자립준비청년들은 중창단 활동을 통해 노래로 호흡을 맞추며 자신감과 책임감을 키워왔다. 현재 12명이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올해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아 주프랑스 한국대사관이 현지 문화예술 공연자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공모 신청을 맡았던 단원 이지효(스테파노·서울대교구 서대문본당) 씨는 “많은 팀이 지원했을 것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선정됐다는 소식에 무척 기뻤다”며 “하지만 곧바로 비용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단원 가운데에는 경계선 지능을 지녔거나 수술 이후 회복 중인 청년도 있어 보육교사의 동행이 필요하다. 단원과 인솔자를 포함해 최소 15명이 프랑스를 방문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창단 지휘자인 성악가 최윤성(프란치스코·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씨는 지난해 설립한 사단법인 서울문화예술교육협회를 통해 우선 일부 경비를 마련하고 있으나, 전체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문화예술 분야 예비 창작자를 지원하는 ‘진선창작지원금’ 사업으로 이지효 씨의 자립을 후원한 바 있는 (재)진선재단도 중창단의 선정 소식을 접한 뒤 모금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재단 박선영(마르타) 이사장은 “자립준비청년들은 일반 청년들보다 사회 적응 과정에서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소외되기 쉽다”며 “이들이 중창단에서 노래를 배우며 서로 의지하고 용기를 키워가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기회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창단이 프랑스 공연에 초청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 청년들의 도전을 돕는 일이 우리 재단에 맡겨진 소명처럼 느껴졌다”며 “더 많은 이의 관심과 응원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중창단은 주프랑스 한국문화원 등 현지 공연 장소를 물색하는 한편, 오는 5월 22일 서울대교구 청담동성당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공연을 열어 후원과 관심을 모을 계획이다. 최윤성 씨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단원이라는 정체성을 살려 중창단 활동명을 ‘라르고(Largo)’로 정했다”며 “라르고는 음악 용어로 ‘아주 느리게’라는 뜻으로, 단원들이 노래를 부를 때도, 앞으로 사회에서 살아갈 때도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후원 계좌 하나은행 391-910039-43804 (재)진선재단

대구대교구, 클래식 무대로 2027 서울 WYD 준비 여정 선포

대구대교구가 관객과 호흡하는 클래식 무대로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대구 교구대회 준비 여정의 시작을 대내외에 알렸다. 대구대교구 젊은이사목대리구는 2월 28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에서 WYD 대구 교구대회 성공 기원 ‘가톨릭필하모닉오케스트라 2026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공연에 앞서 취지를 설명한 WYD 대구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문창규(베드로) 신부는 “이 대회는 가톨릭교회의 행사로서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 함께 전 세계 순례객을 맞이하는 축제로서 의미를 더한다”며 “아름다운 선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WYD 본대회와 대구 교구대회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많은 젊은 순례자에게 기쁨과 감동을 전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연주회는 ‘춤추는 지휘자’로 대중에게 알려진 백윤학 영남대학교 음악학부 교수가 지휘를 맡아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과 <교향곡 제1번 C단조> 등을 전했다. 소프라노 강혜정(보나) 계명대학교 음악공연예술대학 교수는 <생명의 양식>, <내 마음의 강물>, <일 바치오(Il bacio)> 등을 공연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교구의 큰 축제를 알리는 첫걸음을 위해 자부심을 갖고 준비해 주신 단원들과 후원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우리 시대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용기를, 공동체에는 화합의 기쁨을 선사하는 소중한 문화 사도직의 마당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가족과 함께 공연을 관람한 김혜순(데레사) 씨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고 관객과 즐겁게 소통한 무대였다”며 “흥겨우면서도 중후함이 강조된 브람스의 곡들에서 WYD 대구 교구대회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신자 전문 연주자들로 구성된 클래식 전문 연주 단체인 가톨릭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2012년 창단 이래 교구 주요 행사부터 이웃을 위한 나눔의 현장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와 탄탄한 연주력으로 세상에 감동을 전하고 있다.

WYD 상징물, 춘천교구 순례 시작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를 상징하는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춘천교구 순례가 2월 25일 강릉 솔올성당에서 시작됐다. 2027 WYD 춘천 교구대회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이날 솔올성당에서 주관한 환영 예식에는 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 조직위 사무국장 김선류(타대오) 신부를 비롯한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평신도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원주교구로부터 인계받은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를 제대 앞으로 옮겨 세우면서 시작된 환영 예식은 김주영 주교의 분향과 성수 예식, 말씀 전례, 십자가의 길, 십자가 경배, 강복 등으로 진행됐다. 김 주교는 “우리 교구 지구와 본당에서 사순 시기와 겹치는 한 달 동안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순례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며 “WYD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품은 각자의 지향에 하느님께서 은총 내려주시기를 기도하자”고 전했다. 환영 예식 강론에서 김선류 신부는 “십자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무겁고 차가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구원한 가장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면서 “혹시 마음이 지쳐 있거나 미래가 두렵고, 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 십자가를 바라보자”고 당부했다. 또한 “WYD 십자가가 세계를 순례해 왔다는 사실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한다”며 “청년 여러분은 이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증거자로서 세상이 냉소를 말할 때 희망을 말하라”고 청했다. 조직위는 3월 22일 오후 2시부터 주교좌죽림동성당에서 WYD 십자가와 성모 성화 환영 예식을 다시 한번 개최한 뒤, 25일 상징물을 수원교구로 인계할 예정이다.

서울대교구 구파발본당 ‘탄소포집벗’, 어린이 환경신문 창간

서울대교구 내 첫 어린이 하늘땅물벗인 구파발본당 ‘탄소포집벗’이 최근 환경신문 창간호를 펴냈다. ‘탄소포집벗’ 1기는 2025년 한 해 동안 이어온 생태 활동을 환경신문에 담았다. 초등부 어린이 30명은 매달 마지막 주일 모여 생태 감수성을 키우고 생활 속 환경 실천을 이어왔다. 환경신문 제작을 위해 어린이들은 1월 25일, 1년간의 활동을 돌아보며 단신 기사와 기획 기사, 특집 기사 등을 직접 작성했다. 남은빈(콜레타) 초대 단장의 기고문을 싣고, 부모들의 글을 받아 칼럼을 구성하며, 본당 부주임 최정현(힐라리오) 신부를 인터뷰해 생태 보호의 의미를 담았다. 기사 작성과 편집, 구성까지 모든 과정을 어린이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완성된 신문은 본당 주보 사이에 간지로 삽입됐다. 어린이들은 2월 14일과 21일 본당 어린이미사 전 신자들에게 직접 신문을 나눠주며 환경 보전의 중요성을 알렸다. 신문은 1년간 이어온 실천을 정리한 결과물이자, 본당 공동체에 생태 감수성을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흙으로 만든 맑은 물’ 제목의 특집기사를 작성한 윤진우(라파엘·13) 군은 “흙공을 직접 만들어 하천에 방류하는 활동은 처음이었다”며 “흙공이 하천을 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여전히 쓰레기가 과도하게 발생하고, 분리배출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중학생이 되어서도 탄소포집벗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며 “동생들에게도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고 밝혔다. 탄소포집벗은 지난 1년간 다양한 생태 활동을 펼쳤다. 그림 작가와 함께 멸종위기 동물을 그리며 사라져가는 생명을 기억했고, 하천 정화를 위해 EM 흙공을 만들어 던졌다. 자전거 페달을 굴려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체험을 진행했으며, 2025년 6월 15일 열린 본당의 날 행사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피켓 캠페인도 벌였다. 한편 본당 탄소포집벗 2기 32명의 어린이 생태사도는 2월 28일 창단 미사를 봉헌하고 활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