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겨울, 유럽은 깊은 어둠 속에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대공황이 덮쳤고, 사회주의 열풍으로 교회를 등진 이들이 넘쳐났다. 바로 그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벨기에의 두 마을에서 성모 발현이 잇따랐다. 브뤼셀 남쪽 나뮈르 주의 보랭(Beauraing)에서 서른세 차례, 독일 국경에 가까운 리에주교구의 바뇌(Banneux)에서 여덟 차례. 하느님의 어머니는 지도에서도 구석의 외진 곳을 택하셨다. 황금 성심의 성모가 머문 자리, 보랭 “나는 원죄 없이 잉태된 동정녀이다. 항상 기도하여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마을 보랭(Beauraing)에서 성모 마리아가 다섯 아이에게 거듭 들려주신 말씀이다. 세속 이념이 신앙을 잠식하고, 경제적 궁핍이 가정과 공동체를 짓누르던 그 시절, 성모 마리아께서는 파티마에 이어 다시 한번 기도와 회개의 길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셨다. 성모 마리아는 1932년 11월 말부터 1933년 1월 초까지, 드쟝브르 자매인 앙드레(14세)와 질베르트(9세), 브와쟝 남매 페르난드(15세)와 질베르트(13세), 알베르(11세)에게 33차례 발현했다.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가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1932년 11월 29일, 집으로 돌아오다 처음으로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순백색의 긴 옷을 입은 부인이었다. 세 번째 발현 때부터는 학교 정원 산사나무 곁에 황금빛 왕관 차림의 성모가 나타났다. 발현이 거듭되면서 성모는 기도를 당부하고, 경당을 세워 달라는 청과 함께 이곳에 사람들이 순례하러 오기를 바란다는 뜻도 전했다. 그리고 12월 29일, 팔을 벌려 작별을 고하듯 서신 성모의 가슴에서 황금빛 성심이 처음으로 빛났다. 이후 1월 3일 마지막 발현까지, 성모는 매번 그 황금빛 성심을 드러내 보이셨다. 성지는 소박하고 조용하다. 발현 장소에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대리석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발현 당시의 높이를 반영한 받침대 위에 팔을 벌린 채 서 계신 성모의 가슴에서 황금빛 성심이 햇빛 속에 또렷이 빛난다. 보랭의 성모가 '황금 성심의 성모(Notre-Dame au Cœur d'Or)'로 불리는 까닭이다. 성모상 뒤편에는 화재와 토네이도를 견뎌낸 산사나무가 발현의 증인처럼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모상이 있는 작은 정원 곁에 기념 경당인 ‘봉헌 경당’이 있고, 경당 외벽에는 야외 미사를 위한 제대가 마련돼 있다. 성모 마리아의 청에 의해 건축이 시작된 경당은 보랭 출신 건축가 미셸 클레가 설계하고 현지 돌을 직접 쌓아 1954년 축복됐다.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요새를 연상시키는 외관 곳곳에 발현 날짜와 횟수를 숫자로 새겨 넣은 특징이 있다. 서쪽의 17개 돌 아치는 경당 짓기를 청하신 12월 17일을, 남쪽의 33개 돌 아치는 33차례 발현을 기념한다. 경당을 마주 보는 위편으로는 나뮈르 지역 건축가 로제 바스탱이 설계한 현대적인 바실리카가 들어서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콘크리트를 즐겨 써 공간의 유동성과 빛의 흐름을 건축에 담아냈다.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1968년 10월 6일 축성됐고, 2013년 8월 22일 소바실리카(Minor Basilica)로 승격됐다. 나뮈르 교구는 1935년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오랜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1949년 7월 2일 당시 교구장 앙드레-마리 샤뤼 주교가 보랭 발현의 초자연성을 공식 선언했다. 보랭 발현의 의미는 눈에 띄는 기적보다 회심과 기도에 있다. 성모 마리아는 인류가 계속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죄인들의 회개가 미뤄질 때 닥칠 무거운 결과를 경고하셨다. 동시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도와 보속으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셨다. 그래서 보랭은 병을 고치는 치유의 성지이기보다, 영적 회개의 성지로 기억된다. 발현 소식이 전해지자 냉담하던 신자들이 고해소로 향했고, 교회를 등졌던 부모들은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성당 문을 두드렸다. 1933년 한 해에만 순례자가 200만 명을 넘었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가 머문 자리, 바뇌 보랭에서의 마지막 발현 열이틀 뒤, 성모께서는 다시 나타나셨다. 산골 마을 바뇌(Banneux)였다. 아르덴고원에 자리한 작고 가난한 이 마을은 가톨릭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보랭보다 더 심했던 곳이다. 그러나 바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화(戰禍)를 피한 주민들이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봉헌한 마을이기도 하다. ‘바뇌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그 이름의 마을에 성모님께서 다시 찾아오셨다.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성모 마리아는 당시 11살이었던 마리에트 베코에게 여덟 번 발현하셨다. 마리에트는 일곱 형제의 맏이로,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안의 아이였다. 아버지는 종교에 무관심했고, 가족 중 신앙생활을 하는 이도 없었다. 첫 발현은 1월 15일 저녁, 마리에트가 부엌 창문 너머로 정원에서 빛나는 형상을 본 것에서 시작됐다. 흰옷에 파란 허리띠를 두른 아름다운 부인이었다. 발현이 거듭되면서 성모께서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임을 밝히시고, 마리에트를 샘터로 이끌어 그 물이 “모든 민족을 위하여, 병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려고 마련된 것”이라고 하셨다. 또한 ‘작은 경당’을 원한다고 하시며 기도를 거듭 당부하셨다. 성모의 요청대로 발현 장소인 베코 가족의 집 앞 정원에 경당이 세워졌고, 샘은 그 곁에서 지금도 쉬지 않고 흘러내리고 있다. 바뇌 성지로 들어서는 길은 조용했다. 입구 비석에는 “1933년,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가 여기를 다녀갔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경당과 샘터가 차례로 나타난다. 바뇌는 루르드와 함께 샘물을 중심으로 한 대표적인 성모 발현지다. 화려한 장식도, 웅장한 건물도 없다. 성지 전체가 숲속에 조심스럽게 들어앉은 느낌이다. 바뇌의 분위기는 보랭과도, 루르드와도 다르다. 루르드가 수백만 순례자를 품는 대형 국제 성지라면, 바뇌는 숲과 샘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성지다. 발현 기념 경당은 베코 가족 집 앞 정원, 발현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다. 설계는 건축가 마르셀 카롱 등 세 사람이 맡았으며, 1933년 5월 25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마리에트 베코가 직접 머릿돌을 놓았다. 경당 앞에는 마리에트가 성모님과 대화를 나누던 자리를 표시한 구조물이 있고, 발현 날짜들이 비석에 새겨져 있다. 1933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축복된 이 작은 경당은, 교황청이 인정한 성모 발현 성지 가운데서도 가장 소박하다. 세 개의 아치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몇 사람이 간신히 서 있을 만한 공간이 나온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경당이다. 목발을 비롯해, 치유를 체험한 이들이 바친 작은 기념패와 감사 표지들이 눈에 띈다. 작은 공간은 그렇게 수많은 기도와 은총의 기억을 품고 있다. 경당 곁으로는 발현 25주년이던 1958년 조성된 넓은 야외 광장이 펼쳐져 있다. 순례자들은 이 광장을 ‘하늘 아래 펼쳐진 초록 성당’이라 부른다. 정면 계단 위에는 큰 제대가 놓여 있고, 제대 상단에 성모님께서 마지막 발현 때 남기신 말씀 ‘MÈRE DU SAUVEUR MÈRE DE DIEU(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가 새겨져 있다. 샘 앞에는 흰 성모상이 두 손을 다소곳이 모은 채 서 있다.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누군가는 물을 손에 적시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오래 기도한다. 말이 없어도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 기도가 되는 곳이다. 경당을 나와 십자가의 길을 따라 숲길을 걸으며 순례단은 함께 기도를 바쳤다. 숲 곳곳에는 각국 신자들이 봉헌한 기념비 등이 있다. 바뇌가 얼마나 많은 나라의 순례자들과 이어져 있는지를 전해준다. 서울대교구 서초3동본당 신자들이 봉헌한 한복 차림의 성모자 상도 볼 수 있다. 바뇌의 성모 발현은 1949년 8월 22일 리에주교구장 케르크흡스 주교의 공식 선언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았다. 파티마의 루치아, 루르드의 베르나데트가 수도자의 길을 걸은 것과 달리, 보랭과 바뇌에서 성모 마리아를 마주한 이들은 수도원이 아닌 일상에서 살아갔다. 1932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유럽 벨기에의 두 마을에서 울려 퍼진 말씀은 단순했다. “기도하여라. 회개하여라. 믿어라.” 그 말씀 앞에서 사람들은 잃었던 신앙으로, 떠났던 자리로 돌아왔다. 말씀의 힘은 그 단순함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순례 정보 보랭: https://sanctuairedebeauraing.be 바뇌 : https://banneux-nd.be ◆ 가톨릭신문투어 순례 문의: 02-2281-9070, 1577-5006 카카오톡 ID: cttour 홈페이지:http://www.cttour.org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 씨의 2026년 새해 첫 무대는 콘서트홀이 아니었다. 1월 중순, 전북 시골의 작은 성당과 양로원에서 연 ‘희망나눔콘서트’(이하 희나콘)였다. 희나콘은 그가 ‘음악을 통한 나눔’을 위해 18년째 이어오는 음악회다. 국제 무대 데뷔 28년 차,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부시게 빛나는 소프라노’라 했고, 지휘자 르네 야콥스(René Jacobs)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연기자 겸 가수 중 하나’라 했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현장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날 임 씨는 사제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신자들이 끓여준 라면과 어묵탕으로 몸을 녹이고, 항아리에서 꺼낸 김장김치를 나눠 먹으며 공연했다. 이튿날 양로원 어르신들은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걸 언제 또 들을 수 있겠나”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돌아오는 길, 어르신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먹먹한 마음은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나콘은 어쩌면 임 씨에게 가장 본질적인 무대다. 큰 무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초심과 묵상이 절로 일어나는 자리다. 희망을 나누고 받는다 희나콘은 2009년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5월 문화축제에서 시작됐지만, 2013년부터 구조가 전환됐다. 기관이나 본당의 초청으로 ‘희망 공연’을 열고, 그 수익금으로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성당과 복지시설, 병원을 찾아 ‘나눔 공연’을 마련한다. 나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을 기부한다. 받은 것을 각자의 탈렌트로 다시 나누는 형식 덕분에, 음악가들의 자존감이 지켜지고 기쁨도 크다. 희나콘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선 ‘문화’로 20년 가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여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의 경험은 희나콘의 방향을 한층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1965년 아시아 최초로 호스피스를 시작한 이 병원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던 환자 한 분이 방 밖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 마침내 방에 들어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선종했다. “담당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음악이 문을 열었고, 하늘 가실 때 마지막으로 동행한 것이라고요. 그때부터 희나콘은 더 먼 곳,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난 5월 9일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에서 희망 공연을 연 희나콘은 올해도 춘천교구 등지에서 여러 차례 나눔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성당에서 온 답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1999년 23살 때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허에게 발탁돼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르네 야콥스, 만프레드 호네크, 윌리엄 크리스티 등 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들과 작업했고,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프랑스 파리의 주요 오페라 무대를 밟았다. 헨델의 〈아그리피나〉로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와 그래미 노미네이션, 슐호프 가곡 전집으로 독일음반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내내 그는 하나의 물음을 놓지 못했다. “노래가 세상에 무슨 의미인가.” 데뷔 10년이 지날 무렵, 그 답이 뜻밖의 방식으로 왔다.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위로’와 ‘기쁨’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에 위로와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 말이 “너 기쁘라고, 너 위로해 주려고”라는 말로 다르게 들렸다. 노래가 먼저 자신에게 기쁨이고 위로라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위로받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공연 후 찾아와 “당신의 음악으로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다”고 하는 관객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은 희나콘을 이어가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동양인이 바흐 수난곡을 노래하기까지 유럽 고음악계에서 바흐 수난곡은 특별한 영역이다. 매년 사순 시기마다 콘서트홀과 교회 어디서나 연주되지만, 그 레코딩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자리에 동양인이 서는 일은 드물다. 2005년쯤 그에게 기회가 왔다. 녹음도 잘 나왔다. 그러나 결국 노래의 자질과는 무관하게 독일인 소프라노로 대체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고음악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모두를 그에게 맡겼다. 주일마다 성당을 찾는 임 씨를 오랜 협업 속에서 지켜봐 온 야콥스는 “유럽인들이 이 음악을 만들면서 가졌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을, 이 동양인이 가지고 있다”고 섭외 배경을 밝혔다 . 임 씨가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가사다. 외국어 가사를 최소 두 언어로 대조하고 마지막에는 한국어로까지 번역한다. 악보 하나 들고 정자세로 서는 오라토리오(종교 음악) 무대는 그에게 각별하다. 화려한 의상도 무대 세트도 연기도 없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전달해야 하는 시간이다. “발이 다시 땅에 딱 붙는, 저를 겸손하게 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한 임 씨는 “노래할 때마다, 남들에게 빼어나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내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청한다”고 들려줬다. 신앙의 뿌리 부모님의 신실한 신앙과 봉사 활동 속에서 스며든 ‘하느님’은 그에게 자연스럽다. 유럽에서 식사 전 성호경을 그을 때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다음 식사 때는 따라 하는 사람이 생겼고, 성당을 함께 가는 동료도 생겼다. 신앙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성악가에게 활동 영역을 좁히는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임 씨는 지휘자 만프레드 호네크(Manfred Honeck)에게서 찾는다. 2018년 그래미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을 받고 현재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호네크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약할 때부터 미사 시간을 조건으로 넣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임 씨는 호네크가 “하늘에 올라가면 하느님이 ‘너 뉴욕 필 무대에 서봤어? 베를린 필이랑 작업 해봤어?’ 이렇게 묻지는 않으실 것 같다. ‘나한테 물으실 걸 답하고 살아야겠다’”고 했다며, “그 한마디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말하고 싶다 그간 드라마 OST, 뮤지컬 공연 등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들어 온 임 씨의 올해 행보도 다채롭다. 연극배우들과 오페라 가수들이 함께하는 창작극,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모차르트 투어,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20년 만의 러브 듀엣 리바이벌이 예정돼 있다.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대학교(UNISA) 주최 국제음악콩쿠르 심사에서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젊음의 열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떠올렸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후련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맞고 싶다”는 그는 “멋있게 무대를 내려가는 준비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가사가 잘 전달되는 사람,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노래해도 그 가사가 뜻한 것이 듣는 이의 가슴에 닿는 성악가, 그렇게 기억해 주시면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노래할 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 그건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희나콘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공연은 원하는 본당이나 기관이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희망 공연을 열어주신 분들이 곧 나눔 공연의 후원자가 되시는 거예요. 기꺼이 찾아가겠습니다.”

인공지능(AI)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이 기술이 가져올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논의가 교회 안팎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AI는 인간의 지식 활동을 돕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열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기술을 만드는 이들과 사용하는 이들 모두가 윤리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교회 역시 기술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중심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AI 기술의 양면성은 종교계에서 이미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급속히 대중화되면서,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는 레오 14세 교황의 실제 영상과 AI 제작 영상을 짜깁기해 근거 없는 내용을 교황의 발언인 것처럼 유포하거나, 가톨릭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퍼뜨리는 국내외 계정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반대로 AI 제작물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사목과 선교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사목자들 가운데는 역대 교황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구현한 영상 등 신자들이 부담 없이 접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 SNS에 공유하며 호응을 얻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 교리를 묻고 답할 수 있는 가톨릭 자료 기반 AI 서비스도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에서 AI의 이러한 양면성을 짚으며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이 강력한 도구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인간성과 지식을 증진함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AI가 인류의 공동선을 우선하도록 기업가, 학자, 교육자 등이 협력해야 하며, 특히 개발자와 국가 입법자들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청 AI 연구 그룹이 발간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을 공동 번역한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리노·마산교구장)와 책을 감수한 수원교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도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밝혔다. 주교들은 사용자가 AI를 활용할 때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고, 설계자는 AI 기술의 개발 단계부터 윤리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미래는 결국 이를 다루는 인간의 윤리성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박찬호(필립보) 신부는 5월 7일 열린 학술발표회 ‘인공지능의 도전 앞에 선 인간과 교회’에서 “AI의 윤리적 지위와 관련된 사안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고려돼야 하기에, AI의 발전 양상에 따라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신부는 “중요한 것은 논의의 중심에 언제나 인간이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곧 윤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AI 활용이 사회 각 분야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확산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사목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살리되, 인간의 주체성과 윤리적 책임을 놓치지 않는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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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한국교회는?

한국교회가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11주년을 기념해 5월 17일부터 24일까지 ‘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지낸다. 올해 주제는 ‘희망에서 행동으로’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폭력,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 사회뿐 아니라 지구와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까지 함께 성찰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기후영화 상영회’는 19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다큐멘터리 「내성천 하늘을 오르다」 상영 후 내성천제비연구소 최태규 대표와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나눈다. ‘삼척 연대 방문’은 20일부터 이틀간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고통받는 강원 삼척에서 진행된다. ‘아픈 삼척 되살리기’의 일환으로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미사와 도보 순례가 마련된다. 생태계 파괴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 이어 온 ‘금요기후행동’ 제318차 행사는 2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쳐진다. 참가자들이 각자 기후위기 피켓을 들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캠페인도 함께 전개된다. 이어 정오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신규핵발전소 반대 광화문 시국 미사’가 봉헌된다. ‘찬미받으소서 주간 기념미사’는 23일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 후에는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출발해 유네스코 빌딩과 명동역을 거쳐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행진이 이어진다. 교구별 기념행사도 잇따른다. 대구대교구는 ‘공생공존, 팔현습지와 함께 희망하다’를 주제로 16일부터 24일까지 교구청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는다. ▲지역 먹거리와 생태 물품 장터 ▲교구·본당 생태 활동 작품 전시 ▲백두대간 국립수목원 허태임(플로라) 연구원 특강 ▲팔현습지 생태공원 현장 체험 ▲영화 <별과 모래> 관람과 토크 등을 진행한다. 대전교구는 18일 오후 7시30분 천안성정동성당에서 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본당에 탄소중립 인증서 ‘LUNA’를 수여한다. 또 2025년 12월부터 운영 중인 생태 실천 애플리케이션 ‘에코체크(ECCE)’를 적극 활용한 신자에게 우수상을 수여한다. ※문의 02-460-7622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 053-250-3072~3 대구대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 사목부

한국교회, 인공지능 대응 ‘태스크 포스’ 구성한다

한국교회가 인공지능(AI)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 포스(Task force, 이하 TF)를 구성하고, AI 관련 지침 마련에 나선다.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5월 1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회의를 열고, AI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TF를 꾸리기로 했다. 상임위는 AI가 신앙, 윤리, 교육 등 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 차원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같이 결정했다. TF 책임은 주교회의 홍보국장 임민균(그레고리오) 신부가 맡는다. TF는 한국교회의 AI 관련 지침을 우선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아울러 세계주교시노드 제14차 정기총회 후속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10주년을 기념해 10월 7일부터 14일까지 교황청에서 열리는 ‘세계 주교회의 의장들의 모임’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참석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 2026년 추계 정기총회 일정은 10월 19일부터 23일까지로 변경됐다. 제28회 한일주교교류모임은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일본과 한국교회의 이주민·난민·외국인 사목’을 주제로 열린다. 상임위는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에 청주교구 최승환(요셉) 신부를 임명했다. 임기는 3년. 2010년 사제품을 받은 최 신부는 청주교구 모충동 보좌, 교구 청소년 사목국 차장을 거쳐 로마 교황청립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어 옥산본당 주임, 교구 사무처 차장 겸 전산홍보 담당, 교구장 비서, 청주 성모 병원 원무행정부장, 교황청립 성바오로 국제선교신학원 부원장, 서청주본당 주임 등으로 사목했다.

[홍보 주일 특집] 신앙생활에 도움 되는 ‘가톨릭 인공지능’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AI를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대가 됐다. 성경, 교리, 기도, 윤리 문제 역시 AI에 묻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답을 조합하는 AI의 답변이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에 맞는 것은 아니다. 방대한 온라인 자료 안에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거나 부정확한 자료들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가톨릭교회 문헌과 교리, 성경을 바탕으로 답변하는 AI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있다. ▲마지스테리움 AI(Magisterium AI) ▲가톨릭 AI-신앙 안내서 ▲트루슬리(Truthly) 등 국내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가톨릭 자료 기반 AI가 여럿 있다. 다양한 AI, 내 신앙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학술적인 차원에서 가톨릭 자료 기반 AI를 사용하고 싶다면 마지스테리움 AI를 추천할 만하다. 마지스테리움 AI는 성경을 비롯해 교황·교황청의 문헌뿐 아니라 교부 문헌, 신학·철학 문헌 등 3만 건 이상의 문헌을 바탕으로 답변한다. 질문에 대한 답과 함께 관련 문헌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료 계정은 주 90회 질문할 수 있고, 프로(PRO) 구독은 월 5500원, 연 4만4000원이다. 마지스테리움 AI가 ‘신학자’라면, 가톨릭 AI-신앙 안내서는 ‘교리교사’ 느낌에 가깝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교회법 등을 바탕으로 한 신앙 문답은 물론이고 매일 독서와 오늘의 성인 등을 바탕으로 신앙에 영감을 주는 교리·강론 자료들을 제공한다. 기도 기록이나 고해성사 준비를 돕는 기능도 있다. 구독료는 월 8100원, 3개월 2만 원, 연 7만2900원이다. 트루슬리는 교리 지식뿐 아니라 신앙 실천에도 도움을 주는 AI다. 신앙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매일의 묵상과 실천 과제, 짧은 강좌 등을 통해 신앙을 일상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데 초점을 둔다. 다만 채팅 기능 외에는 한국어가 지원되지 않는다. 일주일 체험 이용이 가능하며 구독료는 월 6600원, 연 4만4000원이다. 이 AI들은 모두 채팅창에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간편하게 교리와 문헌을 찾아 주고, 신앙 자료 준비를 돕고, 일상적인 질문에 답하는 등 교리나 신앙에 관한 비교적 정확한 지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영어를 기반으로 검색과 답변을 제공하다 보니 한국교회의 공식 용어와 다르게 표현되는 아쉬움이 있고, 한국교회 고유 지침이나 현황 등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톨릭 자료를 기반으로 하는 AI는 신앙생활을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교회는 AI를 ‘만능’으로 여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AI가 모든 상황에 정답만을 주는 것도 아니고, 신앙생활이란 교리를 배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양심 안에서 식별하며, 하느님께 응답하고, 사랑과 용서로 이웃과 관계를 맺는 삶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학과 그리스도교 영성] 「노인과 바다」: 일상의 고통과 성사적 은총

미사의 마침 예식은 성체성사의 거룩함과 세속과의 경계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의 은총을 일상 삶으로 이어간다는 의미이다. 미사의 라틴어 어원인 ‘missa’는 ‘파견하다’ 혹은 ‘보내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는 미사를 통한 성사적 체험을 일상 안에서 살아가도록 파견받는다. 가정, 혹은 일터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다. 20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이면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노인과 바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이 겪었던 인간 존재 의미의 위기에 대한 응답이었다. 1950년대 지배적인 정서는 인간 존재의 취약성을 드러낸 전쟁의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는, 피로감과 도덕적 모호성이었다. 작가는 역사나 이념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한 인간이 일상 안에서 겪는 시련의 과정과 태도를 통하여 인간과 삶을 긍정한다. 이 소설은 고기잡이하며 살아가는 노인 산티아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허무함과 좌절감에 빠질 수 있는 배경으로 시작한다. 노인은 지난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더욱이 자신과 함께 일했던 어린 조수 마놀린의 부모는 노인의 운이 다했다고 생각해, 아들을 다른 어부의 배에 타도록 했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자신을 ‘놀리는 어부들’의 시선이나, 계속 허탕 치고 있는 현실에 굴하지 않고, 오늘도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한다. 바다에서 고기 잡는 준비와 행위는 생계를 위한 단순한 노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의례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언제 바다로 나가야 하는지, 물살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미끼를 꿰는 방법, 낚싯줄을 당길 때 힘의 조절 등의 규격화된 반복적인 동작은 기계적인 습관이 아니라, 한평생의 고기잡이를 통해 응축된 몸의 기억이다. 이 기억은 노인의 정체성을 떠받치는, 일종의 몸에 각인된 의례이다. 종교의 의례적 행위가 정형성과 반복성을 통해 속세 한가운데에서 성스러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내듯, 노인의 몸에 새겨진 고기잡이 행위는 바다에서 거룩한 시간과 공간을 창출한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차를 마시게 될 때, 이 차 한잔을 마시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부대끼는 시끄러움 속에서 가장 거룩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돈을 제법 많이 벌어들인 젊은 어부들은 전통적인 ‘찌’ 대신 모터보트를 타고 다니며 부표를 사용하여 고기를 잡는다. 그들은 바다를 남성인 ‘엘 마르 (el mar)’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바다는 ‘경쟁자나 투쟁 장소, 심지어 적’으로 간주 되었다. 그러나 노인은 바다에서 거룩한 창조 질서의 흐름과 관계를 거스르지 않고, 온전히 살아간다. 비록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야 하지만, 주인공은 ‘자연을 단지 이윤과 이익의 대상으로만’(「찬미받으소서」 82항) 여기지 않고, 존중, 친밀감, 연민 등을 바탕으로 깊은 인격적 관계를 형성한다. 창조는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만남의 역동성이다. 매일 고기잡이 허탕 치는 현실…굴하지 않고 바다로 나간 노인 물고기 잡기 위해 처절한 사투…결국 빈 손이지만 ‘존엄’ 지켜내 시련 딛고 사명 지키는 삶 사는…진정한 신앙인의 가치 보여줘 젊은 어부들과 달리, “노인은 언제나 바다를 라 마르 (la mar)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사람들이 바다를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스페인어였다.” 또한 날치를 ‘좋은 친구’라고 부른다. 밤사이 배 가까이 다가온 돌고래 두 마리의 물을 뿜어내는 소리만 듣고도 누가 수놈인지 혹은 암놈인지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친밀감을 보여준다. 또한 외적으로 내적으로 고통받는 대상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늘 먹이를 찾아 날아다니지만, 허탕 치기 일쑤인 작고 가냘프고 까만 제비갈매기’가 인간보다 ‘더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고 가여워한다. 노인은 과거에 청새치 한 쌍 가운데 암놈을 잡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수놈이 항상 암놈에게 먹이를 양보하기에, 암놈이 낚싯바늘에 걸려들었다. 마지막까지 암놈 곁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던 수놈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 노인은 ‘암놈에게 용서를 빌고 도살 작업을 신속하게’ 마쳤다. 바다에서 경험한 ‘가장 슬픈 광경’이었다고 고백한다. 마침내 84일간의 허탕을 뒤로하고, 자신의 작은 낚싯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잡는다. 그러나 배 옆에 매달려 있던 고기를 상어들이 다 먹어 치워버리고, 뼈만 남은 채 항구로 돌아온다. 바로 이 부분이 헤밍웨이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이다. 여러 날 동안 몸을 망치며 어렵게 잡은 물고기가 결국 다른 포식자의 배만 불리는 꼴이 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인공의 위대함은 물고기를 잡고 지켜내는 과정에서 겪게 된 극도의 고통과 피로감과 심리적 압박을 견디어 냈다는 점에 있다. 한밤중에 상어들이 다시 달려들면 끝장이라는 두려움 속에서도, 노인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거야”라며 굽히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노인은 ‘패배했음’을 인식한다. 그러나 노인은 패배했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는 큰 소리로 말한다. “나를 패배시킨 것은 없어, 난 그저 너무 멀리 나갔을 뿐이야.” 모든 것을 초월한 듯, 그저 집을 향해 배를 몰고 간다. 항구에 정박한 노인의 배에 묶인 뼈를 보며, 사람들은 “그런 물고기는 정말 한 번도 본적이 없어”라며 경외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세상의 칭찬과 인정이 노인의 인간 존엄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물질적 혹은 경제적 보상이 없더라도, 어부로서 노인이 보여준 의례적 행위, 친밀감, 용기, 충실함, 끝까지 버틴 인내심이 그의 가치를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물고기를 성공적으로 잡는 것보다는, 고통과 피할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어떻게 인간 존엄을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흥미롭게도 비평가들은 노인이 바다에서 겪은 고통과 인내의 경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닮았음을 언급한다. 여러 날 동안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면서 손은 경련을 일으키며 굳어지고 상처를 입는다. 기력은 소진된다. 그의 몸은 탈진되고 부서진다. 3일 동안의 바다 여정을 마치고 항구에 도착한 후, ‘돛대’를 빼서 ‘어깨에 메고 기슭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부서진 몸은 무거운 돛대의 무게로 인해 여러 번 넘어지고 주저앉아야 했다. 마침내 집에 도착하여, “엎드려 얼굴을 신문지에 대고, 양팔을 밖으로 쭉 뻗어 내밀고 손바닥은 위로 향한 채 잠이 들었다.” 미사의 성체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친밀감과 고통을 동시에 수반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기 위해서 그리스도는 상처받아야 했다. 그 상처에 대한 순명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비운다. 사람들은 이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친밀감과 고통을 동시에 경험한다. 바다와 깊은 친밀감을 형성한 노인은 동시에 바다에서 온전히 자신을 비우게 된다. 공동체의 도움이 닿기 힘들어 홀로 서야 하는 ’먼 바다’로 나아간다. 그곳에서 체력, 잠, 땀과 피, 심리적 힘 그리고 정신적 힘까지 모든 것을 내어놓는다. 자신의 배보다 더 큰 고기를 잡았지만, 결국 다시 빈손으로 돌아온다. 십자가의 역설은 외적으로 패배하였지만, 진정한 내면의 더 깊은 승리라는 것이다. 3일 동안의 사투 끝에 또다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 노인의 상처 난 빈손은 물질적으로 실패였지만, 한 어부로서 인간 존엄을 지켜냈다. 바오로 사도는 긴 선교여행과 박해 속에서도 사명을 완수했음을 고백한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산티아고의 상처난 빈손도 말한다. “나는 부끄럽지 않게 싸웠고 견딜 것을 다 견디었으며, 어부로서 소명을 지켰습니다.” 헤밍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일상 안에서 거룩한 창조 질서의 회복을 바라며, 인간 존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를 초대한다. 글 _ 김치헌 바오로 신부(예수회·서강대학교 영문학부 교수)

종합

마산교구 진주 옥봉동본당 “신앙 선조들 희생으로 빚은 한 세기 축하”

‘경남 진주 지역 본당들의 어머니’ 마산교구 옥봉동본당(주임 이진수 스테파노 신부)이 설립 100주년을 맞아 5월 10일 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역대 주임 강영구(루치오·성사 전담), 황봉철(베드로·성사 전담), 최경식(야고보·신안동 주임 겸 진주지구장) 신부와 본당 출신 장신영(요한 마리아 비안네·국내 유학) 신부, 조규일 진주시장, 박일동 진주부시장 등 내외빈과 신자 600여 명이 참여했다. 성당에 들어오지 못한 신자와 주민들을 위해 외부 잔디밭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됐으며, 미사는 유튜브로 생중계됐다. 이성효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한 세기라는 시간, 현대사의 굴곡을 지나오는 동안 많은 신앙 선조의 눈물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축제를 지낼 수 있는 것”이라며 “다시 새롭게 200주년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자리에 우리는 함께 머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본당 주일학교 초중고 학생들을 ‘AI 사도단’으로 선포한다”며 “이 시대에 어떻게 하면 AI를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도단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지원하자”고 말했다. 영성체 후에는 본당의 한 세기를 함께 지켜 온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감사패 전달식도 열렸다. 유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본당 출신 장신영 신부를 키워내고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양진순(다리아) 씨, 본당에 헌신한 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봉사 중인 윤철지(루카) 씨, 역대 사목회장 중 최고령 정회교(바오로·95) 씨와 현재도 솔선수범하고 있는 김재권(니콜라오) 씨 등이 신자들의 환호 속에 감사패를 받았다. 이진수 신부는 “본당 출신 신부님들, 역대 주임 신부님들 그리고 수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본당 공동체 모두를 위해서 박수 한 번 치자”며 신자들을 격려했다. 1911년 공소로 출발해 1926년 승격된 본당은 1933년 현재 모습의 붉은 벽돌 성당을 완공했다. 성당 건물은 2005년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154호로 지정됐다. 본당은 해성유치원·해성학원 등 교육사업과 한센인 공동체 산청 성심원 설립, 노인 요양시설 운영 등으로 100년의 시간만큼 복음화와 지역 사회 발전에 의미 깊은 족적을 남겼다. 한편 성당에서는 ‘100주년의 선물’이라 부를 만한 성물이 발견돼 화제를 모았다. 100주년을 맞아 성당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김대건 성인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해가 발견된 것. ‘ANDREA KIM’(안드레아 김)이라는 글귀가 선명히 새겨진 유해함은 성전 돌 제대에 봉인돼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본당은 이를 신자들에게 공개한 뒤, 교회 규정에 따라 진위 확인과 인증 절차를 밟아나갈 예정이다.

서울대교구 가양동본당, 발달장애인 화가 초청 전시

서울대교구 가양동본당(주임 강현우 마르티노 신부)이 지역사회 발달장애인 화가들을 초청해 뜻깊은 전시회를 열었다. 본당은 4월 21일부터 5월 15일까지 성당 1층 로비에서 관할구역 내 ‘기쁜 우리 복지관’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 화가 5명의 작품 10점을 전시했다. 이번 전시는 복지관이 장애인 예술가 양성을 위해 운영하는 특화사업의 취지에 본당이 공감하면서 마련됐다. 전시에서는 박민 작가의 <학>, 정하연 작가의 <로데오거리>, 한화석 작가의 <얼굴들> 등이 소개됐다. 작가들은 각자의 시선과 감각으로 일상과 풍경, 인물을 표현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는 본당이 4월 26일 마련한 ‘소중한 이웃의 날’ 행사의 하나로 복지관과 협력해 이뤄졌다. 본당은 이날 복지관 이용 장애인 등 고령과 신체적 불편으로 이동이 어려운 이들을 초대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전례무용 공연과 복지관 소속 ‘기쁜 우리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함께 열렸다. 강현우 신부는 “본당은 신자들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사회 모두를 위한 공동체”라며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본당 신자 공둘연(유스티나)씨는 “우리 본당은 장애인들이 신앙생활과 문화생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며 “발달장애인 화가들의 작품을 본당에서 감상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개관 16주년 ‘성모의집’ 증축 축복식

가톨릭광주사회복지회 ‘성모의집’은 5월 7일 교구 총대리 김영권(세바스티아노) 신부 주례로 개관 16주년 기념식과 증축 축복식을 개최했다. 미혼모 보금자리인 성모의집은 프로그램실과 공동 육아 공간이 부족한 데다, 위기 임산부를 위한 긴급 주거 시설도 필요해 증축을 추진했다. 이번 증축으로 기존 건물 옥상에 연면적 112.93㎡(33평) 규모의 사무실과 프로그램실, 임시 거주실이 새로 마련됐다. 김영권 신부는 “성모의집을 찾는 미혼모들과 산모, 그리고 태어날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나눌 때 우리에게 더 큰 기쁨이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며 “이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은총과 기쁨을 나눠 주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현재 성모의집에는 미혼모와 자녀 등 9명이 생활하며 지원받고 있다. 2010년부터 지원을 받은 미혼모는 178명이다. 성모의집은 2024년부터 ‘1308’ 전남 지역 상담 대표 기관으로 지역과 연계해 상담, 초기 양육 물품 지원, 일시 주거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1308’은 보건복지부가 위기임산부의 안전한 출산과 양육을 돕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으로, 전국 17개 지역 상담 기관이 지정돼 있다. 또한 전라남도교육청으로부터 미혼모 대안교육 사업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임신한 중고등학생 30명을 대상으로 학습 지원을 이어 오고 있다. 원장 정금자(베아트릭스·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수녀는 “버려지는 생명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미혼모와 아이를 돌보겠다”며 “앞으로도 위기 임산부가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 길음동본당, 5월 한 달간 재활용 공예 작품전 개최

다 쓴 휴지 심과 조개껍데기, 골판지, 솔방울이 신앙을 담은 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일상에서 무심코 버려질 재료들로 만든 작품들이 본당 신자들의 눈과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길음동본당(주임 오대일 요셉 신부)은 성모 성월인 5월 한 달 동안 성당 지하 1층에서 특별한 전시를 열고 있다. 전 사목회장 김영훈(요한 세례자) 씨가 생활폐기물과 자연물을 활용해 손수 만든 작품 70여 점을 선보인 자리다. 얼핏 정교한 공예품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주변에서 쉽게 버려지거나 지나쳐 온 것들이 작품의 재료가 됐음을 알 수 있다. 평생 약사로 일해 온 김 씨가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20년 무렵이다. 운영하던 약국 건물이 재개발에 포함되면서 2년가량 일을 쉬게 된 그는 무료함을 느끼던 중, 철사를 구부려 만든 가게 안내판을 보고 “나도 한번 만들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철사 공예를 따라 하며 손을 익혔고, 이후 길가의 다양한 소재들을 재료로 삼았다. 솔방울은 꽃이 되고, 조개껍데기는 나비 날개가 됐다. 약국을 다시 운영한 뒤에도 작업은 5년째 이어지고 있다. 작품 곳곳에는 김 씨의 신앙도 담겼다. 가운데 십자가를 배치하거나, 성모님 그림을 오려 골판지로 장식한 작품도 있다. 이를 본 오대일 신부가 “성모 성월에 신자들도 함께 보면 좋겠다”고 제안하면서 5월 1일부터 전시가 마련됐다. 신자들이 원하는 작품은 구매할 수 있으며, 판매 수익은 본당에 기부된다. 일부 작품에는 이미 ‘판매 완료’ 표시가 붙었다. 김 씨는 “내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신자들이 전시를 보며 서로 대화하고 친교를 나누는 모습이 참 좋다”며 “작품들이 신자들의 믿음을 더 돈독히 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