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완전 ‘럭키비키’잖아!

과거 별자리, 띠, 혈액형의 시대를 지나, 요즘 우리는 바야흐로 MBTI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정확히 16개의 유형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체계적으로 서로를 파악할 수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맹신은 금물이지만요. 이 성격 검사 유형 중 하나에 따르면 저는 지극히 계획적인 J형 인간입니다. 즉,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많은 계획을 세우고 돌발 상황까지도 예측하거나 대비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 어디 계획대로만 되겠습니까? 지금도 수많은 무너짐을 통해서 성격을 변화시킬 기회가 찾아오지만, 늘 걱정부터 앞서는 이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하나의 ‘밈’(문화적 유행 또는 그 창작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원영적 사고’, ‘럭키비키’라는 신조어로 대표되는 이 밈은 아이돌 그룹 IVE(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으로부터 시작됐는데요.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입니다. 예컨대, 너무 먹고 싶은 빵을 사러 빵집에 갔는데 바로 앞에서 다 팔려버렸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누군가는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늘 운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빵이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렸지만, 갓 구운 빵을 먹을 수 있으니 완전 럭키비키잖아!” ‘럭키비키’는 ‘럭키’(행운)와 그녀의 영어 이름 ‘비키’를 합친 말입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나아가 ‘오히려 좋은 일’로 받아들이는 것이 이 ‘원영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부정을 억지로 긍정으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비가 오고 추웠던 어제를 ‘그래도 따뜻했어’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맑은 날씨를 더 따뜻하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희미한 미래의 무엇을 위해 오늘의 힘듦을 꾸역꾸역 받아넘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분명히 주어진 오늘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것. 다소 우울한 사회, 의미 없는 유행이 돌고 도는 이 시대에 선한 영향력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한 아이돌의 초긍정 사고가 참으로 멋있습니다. 나도 모르게 다음, 다다음 걱정 계획이 세워져 있는 저에게는 더더욱!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제가 좋아하는 어떤 노래 가사처럼 오늘도 많은 이들이 미래의 꽃 날을 꿈꾸며 힘든 하루를 살아갑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를 포함한 우리들 모두 그날의 행복이 아닌, 오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면 참 좋겠습니다. 지금의 행복이 모여 미래의 행복을 만들고, 오늘의 구원이 모여 그날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구상 시인의 시구절처럼 우리도 앉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실은 그 아래에서 나를 지탱하던 작은 꽃들을 되찾는 오늘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래서 여쭙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럭키비키’한 일이 있었나요?”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11-10

[신앙에세이] 하느님 집 문간에라도 살기를 원합니다

“형님, 형님은 성당에 나가거든 연령회에 가입하세요.” 오래 전 내가 세례를 받기 며칠 전 나보다 먼저 교회에 다니던 동생이 나에게 한 말이다. 내가 세례를 받고 성당에 나간다니 동생은 자기 일처럼 엄청 기뻐했다. 난 ‘연령회? 비슷한 또래들끼리 모이는 모임인가’ 하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세례를 받고 얼마쯤 후 미사 참례 후 성당 카페에서 아는 분께 연령회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연세가 80은 훨씬 넘어 보이는 분을 모시고 와서 “이 어른이 연령회장님이세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연령회가 뭐하는 곳인가요?”하고 물으니 “연령회는 사람이 죽으면 염(殮)도 하고 돌아가신 분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라고 말씀하신다. 순간 동생이 왜 연령회를 하라고 그랬는지 이해가 됐다. 난 강원도 횡성의 아주 산골 유교를 믿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원주로 유학 나올 정도의 오지 마을이다. 30리쯤 떨어진 동네에 가면 하얗고 예쁜 집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공소였다. 머리가 노랗고 코가 큰 외국인이 가끔 보였는데 그분이 신부님이었을 테고. 내가 20대 중반까지 할아버지가 생존해 계셨다. 그때 팔십이 넘으신 할아버지는 장손인 나를 엄청 예뻐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집이 못사는 것도 아닌데 동네에 초상이 나면 염습부터 장례를 도맡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으셨지만 당신 방법으로 선업을 행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분께서는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장손인 네가 나를 묶어서 땅에 묻어줘야 한다”, “난 내 손주가 날 묶어서 보내주면 참 좋을 것 같다”,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시면서 동네에 초상이 나서 염습하러 가실 때면 나를 꼭 데리고 가셔서 보게 하시고 시신을 만져보게 하시며 염습 순서를 알려주셨다.(옛날에는 집에서 염습을 하던 때였다.) 덕분(?)에 염습을 아마 열 번 이상 해본 것 같다. 그래서 성당 카페에서 만난 할아버지 연령회장님께 “아 제가 염습은 조금 해 봤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며 당장 연령회에 가입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세례와 동시에 연령회에 가입하는 아주 희한한 성당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얼마 후 성당에 초상이 났다고 오라고 해서 어느 장례식장에 갔더니 연령회에서 “염을 해야 하는데 나보고 할 수 있겠냐”고 하셨다. 아무 생각 없이 하겠다고 하고는 염습실에 들어가서 염습을 하는데, 염습실 밖에서 이상한 노래가 들려왔다. “깊은 구렁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사오니, 주님 제 소리를 들어주소서.” 그 노래를 듣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왠지 모를 야릇한 아니 울컥한 그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그것이 이때까지 연도(위령기도)를 공부하고 연령회를 하게 된 시작이었다. 글_김태은 안셀모(수원교구 연령회연합회 회장)

2024-11-10

[밀알 하나] 마음과 마음이 모인 곳에

저에게 주어진 소임은 장애인 사목이지만, 사는 곳은 ‘평화의 모후원’이라는 양로원입니다. 경로 수녀회로 잘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무료 양로원에 거주하면서 매일 아침 미사를 봉헌하는 성사 전담 사제로 살아가고 있지요. 1839년, 프랑스의 잔 주강 성녀께서 구걸하던 할머니 한 분을 보살펴드리기 시작한 일부터 시작된 양로원 유일 사도직의 작은 자매회는 현재 31개국 159개의 양로원에서 약 9000명 넘는 어르신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수원, 서울, 전주, 담양 총 네 곳의 분원이 있는데, 제가 사는 수원 평화의 모후원에는 여덟 분의 수녀님들과 여러 직원들이 50여 분 넘는 어르신들을 마음 다해 모시고 있습니다. 작년은 작은 자매회가 한국 진출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습니다. 주교님을 모시고 감사미사를 드릴 때, 수녀회에서는 자신들을 상징하는 ‘바구니’ 하나를 봉헌 예물로 준비했습니다. 국가의 도움 없이 오직 후원과 모금으로만 운영되는 이 무료 양로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모금 바구니이기 때문입니다. 휴대전화로 모든 것을 결제하는 이 편리한 시대에 직접 현물을 받아오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수녀님들은 아직도 매주 수요일마다 인근 시장으로 모금 활동을 나가십니다. 남는 채소, 가치가 떨어진 과일 등을 직접 ‘구걸’하는 일이야말로 잃어버릴 수 없는 수도회의 정신이자 영성인 까닭입니다. 구걸(求乞). 남에게 무엇을 거저 달라고 비는 일입니다. 단어 그 자체로 이미 가난함을 내포하고 있기에 대부분은 멀리하고 싶은 단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도회의 이름 안에 ‘가난’을 새긴 수녀님들은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그 구걸 행위를 오히려 자발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빌어오고 빌어 주는 이 작은 이들의 내어줌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뚜렷하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앞둔 저에게 한 수녀님께서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지금 로비로 한 번 가 보셔요.” 입구 한 구석에 쌀 포대가 한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고 누가 이렇게 많은 쌀을 보내주신 것인지 여쭤보니 수녀님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습니다.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것은 분명해요. 호호호~”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 요셉 성인께 전구를 청하는 것이 ‘직빵’이라며, 성당 요셉 성인상 아래에 기도 쪽지를 넣어보라 권하시는 수녀님들. 우리 수녀님들의 순수하지만 강한 믿음을 마주하며, 늘 인간적인 고민과 걱정으로 한숨 쉬면서도 정작 하느님은 때때로 잊고 사는 저를 다시금 성찰해 봅니다. 메마른 세상이라 하지만, 여전히 살아갈 만합니다. 의인들이 곳곳에 숨어 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과 친구를 위하여 빵을 구하려고 열심히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이 두 마음이 모인 곳에 하느님께서 머무르십니다. 여러분들이 계신 곳에는 어떤 마음들이 모여 있나요?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11-03

[밀알 하나] 당연하지 않을 때 보이는 것들

우리 교구 사회복음화국에는 본당 외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위원회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목하는 장애인사목위원회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체, 농아, 시각, 발달 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회원과 봉사자들이 모여 매주 미사를 봉헌하고 각종 교육과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주요 업무인데요. 특별히 요즘처럼 좋은 계절에는 주일마다 함께 성지 순례를 떠나는 일정이 많아서 매주 일기예보를 확인하며 제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이 일상이 됐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가진 신자분들과 함께 한지 만으로 2년이 다 돼갑니다만, 아직도 이분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참 많습니다. 작년 가을, 지체 선교회에서 한 성지로 순례 계획을 세우게 됐습니다. 이전에 제가 많이 갔던 곳이라서 나름 자신만만했지만, 행사를 준비하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됐습니다. 휠체어로 접근 불가능한 곳은 없는지, 장애인 화장실은 잘 갖춰져 있는지 등. 우리 회원들을 위해 확인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한데 막상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직접 답사를 다녀오면서, 우리 회원들의 불편함을 아주 조금은 공감하게 됐습니다. 농아 선교회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드릴 때에도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성사 보실 내용을 글자로 적어 오시면 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지요. 하지만 농아인들이 사용하는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는 문법도, 관용적 표현도 완전히 다른 언어입니다. 예컨대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고 해서, 한국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한국인의 언어이지만 또한 완전히 다른 두 언어 사이의 괴리감은 소수의 입장에서 더 크게 다가옵니다. 시각 선교회 회원들이 미사 중 성가를 부를 때는 가사를 먼저 알려드리고, 여행지에 가면 손을 맞잡은 봉사자들이 그곳의 풍경을 설명해 드립니다. 처음 위원회에 왔을 때 놀랐던 점은 사진을 가장 많이 찍는 분들이 바로 우리 시각 선교회 회원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정말 큰 제약임은 분명하지만 다른 감각들을 통해서,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이 나누는 마음을 통해서 아름다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발달 선교회 미사를 봉헌할 때에는 가끔 돌발 상황이 벌어지는 탓에 정신 줄을 잡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특정한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거나 성당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지요. 이럴 때마다 봉사자들과 부모님들은 늘 노심초사 걱정하지만, 그래도 이 시간만큼은 불안한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들 나름의 방식대로 순수하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당연한 듯 누리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익숙한 나의 길을 잠시 멈추고 걸음 느린 이들과 보폭을 맞추며 공감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 됨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글_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

2024-10-27

[신앙에세이] 동티모르 선교 방문기(4)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야고 2,22) 선교지에 가기 전까지는 불안과 두려움과 초조함이 있었습니다. 신부님이 동행하지 않고, 평신도들로만 가는 여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요. ‘다름은 풍요의 원천’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서로 분분하던 의견들도 결국에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야훼 이레’ 주님께서 함께하시어 일치되어 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처음, 동티모르에 방문하기로 마음에서 결심하고, 함께할 동료들을 모으고, 어떻게 방문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든 과정은 결정의 연속이었습니다. 많은 결정들이 모아져서 선교지 방문과 봉사의 열매를 맺게 된 것이지요.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 중에서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할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고지대의 가문비나무에서 우리는 귀한 지혜를 봅니다. 가문비나무는 어둠 속에 놓인 마르고 죽은 가지를 스스로 떨구어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문비나무는 우리에게 죽은 것을 버리라고 가르칩니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결별하라고 이릅니다. 살아가면서 어떤 부분과 결별해야 하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생명에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렵다고 모두 해가 되는 것이 아니고, 쉬운 것이 모두 축복은 아닙니다”라고 들려줍니다. 김민조 하상 바오로 신부님은 “동티모르에서 선교 활동이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희생 덕분으로 많은 분들에게 사랑을 전해줬다. 선교 체험이 발판이 되어 일회성이 아닌 사랑의 나눔이 계속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수원교구 하느님의 종 47위」에 나오는 서태순 아우구스티노 순교자는 교회의 가르침인 자선과 애긍을 몸소 실천해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신 분입니다. 그동안 애덕 실천과 교회의 가르침을 머리로 외우고 입으로만 되뇌고 있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했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믿음, 선행, 추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선행과 믿음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선교는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시노드 정신으로 함께 가는 길입니다. 저희가 동티모르에 선교 봉사 갔을 때도 많은 직암회 회원들과 지인들이 기도와 물질적 후원으로 응원해 줬습니다. 큰 위로와 힘이 됐습니다. 주님의 뜻 안에서 함께 떠난 선교의 여정에 처음에는 불안이 가득했지만 참된 행복을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이 됐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며 많은 분들께서 기도하고 응원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_정옥금 클라라(직암선교후원회 봉사자)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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