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복음] 공동체가 함께 만드는 교회의 소중한 보물

예전 보좌신부로 있던 한 본당에서는 유독 어린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세대 간의 결합이 잘 이루어져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마치 친손주를 대하듯 이름을 불러 주시며 간식을 챙겨 주셨습니다. 아이들 또한 어르신들의 손길을 낯설어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가 머물곤 했습니다. 아이들과 청년들 사이의 관계도 매우 좋았습니다. 청년들이 주관한 행사에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행사인 것처럼 기쁘게 참여했고, 청년들은 그런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챙기며 서로 간의 돈독한 유대를 쌓아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의 행사에도 아이들이 함께했고, 아이들의 행사에도 어르신들과 청년들이 함께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청년들을 보며 활기찬 신앙생활의 모습을 꿈꾸었고, 어르신들을 통해서는 삶으로 전해지는 신앙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본당 공동체 전체가 ‘하느님의 한 가족’(에페 2,19)임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표지라고 느껴졌습니다. 청소년 신앙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본당 공동체의 관심과 보살핌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나이지리아 속담처럼, 한 아이의 성장은 개인이나 가정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공동체의 배려와 협력이 더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청소년 신앙 활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환경과 체계적인 교리교육, 헌신적인 교리교사 모두 중요하지만, 그 바탕에는 공동체 전체의 관심이 자리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청소년들에게만 본당의 모든 관심과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당에 속하는 다양한 구성원과 단체 그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균형과 공감입니다. 지금까지 본당을 지탱해 오신 어르신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리면서도, 이제는 교회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신앙의 유산을 기꺼이 나누어야 한다는 데 공동체가 함께 뜻을 모아야 합니다. 동시에 아이들이 단지 ‘미래’가 아니라, 이미 교회의 ‘현재’임을 깨닫고 더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그들을 품어야 합니다. 얼마 전, 교회 내 청소년과 성소자가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저출산 시대를 생각하면 놀라운 일만은 아니지만, 동시에 지금 우리 본당에 머물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단순히 사회적 변화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을 교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본당 전체가 함께 나서야 할 때입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그들이 신앙 안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모두의 책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먼저 살아온 우리가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한 가족 안에서 사랑과 안정감을 경험하며 자란 아이들은, 분명 교회의 소중한 보물이 될 것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수원가톨릭미술가회, 그리고 365갤러리

수원가톨릭미술가회는 매년 두 차례 전시를 통해 신앙과 예술이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성화성물전’과 ‘정기전’은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관람객들에게 신앙의 깊이를 전하는 예술적 봉사의 장이 됩니다. 수원화성순교성지 안에 자리한 북수동성당 입구에는 순교자 현양비가 세워져 있어,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바친 이들의 희생을 묵묵히 증언합니다. 그 곁에 자리한 ‘뽈리화랑’은 과거 소화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한 전시공간으로, 역사와 신앙,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입니다. 화랑의 이름은 북수동본당 4대 주임신부였던 심응영(沈應榮) 신부님의 프랑스 이름 폴리 장 마리 데지레 장 바티스트(Polly, Jean Marie Désiré Jean Baptiste)에서 유래합니다. 신부님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소화강습소를 설립해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그의 헌신과 신앙을 기리기 위해 2007년 문을 연 뽈리화랑은 순교의 터전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신앙의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전시가 열리던 날, 공간이 지닌 깊은 성스러움은 자연스럽게 마음을 기도의 자리로 이끌었습니다. 오래된 교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성당의 고요한 풍경, 걸음을 옮길 때마다 들려오는 마루의 삐걱거림은 시간의 흔적을 넘어 신앙의 기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울림은 단순한 감상이 아닌, 내면을 향한 조용한 성찰로 이어집니다. 뽈리화랑은 오늘날 ‘365갤러리’라는 이름의 연중 상설 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곳 전시장은 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원들이 순번을 정해 일 년 내내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번을 하는 날은 하루를 온전히 머무르며 작품과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 됩니다. 나무와 흙, 돌과 캔버스 위에 담긴 작가들의 작품은 단순한 조형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가 됩니다. 각 작품에 스며든 신앙의 메시지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마음을 울리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묵상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성미술로 채워진 갤러리 공간 안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작은 피정이 됩니다. 예술은 그렇게 신앙을 비추는 또 하나의 빛이 되어, 우리의 삶 속에 깊고 잔잔한 울림으로 전해집니다. 수원가톨릭미술가회가 1998년 수원교구청에서 창립전을 연 이후 어느덧 28년의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그 긴 여정은 단순한 전시의 연속이 아니라, 기도 속에서 빚어진 신앙과 예술의 축적이었습니다. 작가들의 손끝에서 완성된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은 자연스레 걸음을 늦추게 됩니다.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는 깊은 공감과 영적 울림을,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평온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내 삶의 여정 속에서 늘 함께해 온 성미술 작품들은 나를 깊은 신앙으로 이끄는 소중한 고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은총의 연결 안에서 오늘도 감사의 마음을 새깁니다. 글 _ 이재옥 모데스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에파타!”

“꼭 무엇을 해주려고 하는 것만이 환대가 아닙니다. 저희가 가는 길을 막지 않고 자유롭게 열어주는 것도 환대입니다.” 이주민들에 대한 도움과 지원 방안을 토의하던 자리에 참석한 어떤 이주민 신자가 한 발언이 기억납니다. 저에게 그 발언은 꽤 인상 깊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환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늘 ‘무엇을 해 주어야 하나?’ 고민한 적은 많았지만, ‘그들이 스스로 가는 길을 막지 않는 것만으로도 환대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대로, 때로는 지나친 호의와 관심이 이주민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유로움 안에서 일상적인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봐주기를 더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적당한 무심함이 오히려 관계를 편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그렇게 행동하고자 마음먹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가벼운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가도 그들의 어려운 처지를 대화 안에서 듣게 될 때면, 속으로 ‘지금 나에게 도와달라고 신호를 보내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고 ‘아니야, 내가 그저 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일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과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그래서 이주민들을 대면하면 종종 침묵 중의 어색함을 경험하곤 합니다. 의도된 침묵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고민하다가 말할 타이밍을 놓쳐 생긴 침묵입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그 어색함 안에서 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끼곤 합니다. 한번은 식당에서 이주 노동자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같은 식탁에 마주 앉은 이주노동자의 오른쪽 손이 뭉툭하게 붕대로 감겨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잘려 나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다친 손을 식탁 밑으로 감추고 태연한 척 행동했지만, 그것을 눈치챈 후 저는 자꾸만 신경이 쓰였습니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다쳤는지 물어볼까?’, ‘괜찮냐고 물어볼까?’, ‘아니야, 일하다가 손가락 절단된 것도, 다치고 상심해 있을 것도 뻔한데 뻔한 질문을 뭐 하러 물어봐…. 그냥 못 본 척 가벼운 대화를 하자. 그런데 이 상황에서 무슨 대화를 해야 하지?’ 그렇게 머릿속에서는 많은 말이 떠오르다가 다시 고민하고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둘이 마주 앉아 묵묵히 밥을 먹은 20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식사를 마치자 다친 손에서 시선을 멀리 두려고 노력하는 저를 두고 갑자기 그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밥 먹는 내내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도 안 한 나의 태도가 그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나 후회스러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콜라 한 캔을 가지고 돌아오더니, 테이블 위에서 한 손으로 캔 뚜껑을 조심스레 열고 저에게 그 콜라를 나누어 따라 주었습니다. “신부님, 콜라 드세요.” 그리고 살짝 웃었습니다. 그제야 저도 혀가 풀리고 말이 비로소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너무 상심하지 말고 힘내요.”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물에 담은 신앙

수원교구 제2대리구 중앙본당 주임으로 계시던 시절부터 정영식(바오로) 신부님께서는 성화와 성물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후 교구 제1대리구 영통성령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시며 성전 건축과 성물 조성에 대한 관심으로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소속 작가들과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뜻깊은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영통성령성당에 들어갈 종탑 십자가, 성수대, 야외 분수대 제작에 참여하는 은총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집을 함께 만드는 작업은 미술 작가로서도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성물 제작은 단순한 미적 취향을 넘어, 전례 공간 안에서 신앙이 어떻게 살아 숨 쉬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탑 십자가를 구상하며 떠오른 것은 단 하나의 형상이 아니라, 시대와 신앙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수많은 십자가의 모습이었습니다. 고통과 희생의 상징으로만 머물던 십자가를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희망과 구원의 표징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날카롭고 무거운 이미지보다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형상으로 풀어내고자 했습니다. 멀리서도 바라볼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더욱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십자가를 생각하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성수대에는 성혈과 성령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붉은 석재는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을 상징하고, 상부의 형태는 비둘기를 단순화하여 구상했습니다. 세례 때 물 위로 오르신 예수님께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셨듯,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성수를 통해 새로이 태어나는 삶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야외 분수대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가 중심 기둥을 감싸며,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순명과 봉헌’의 의미를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을지라도 기꺼이 내어놓을 때, 그것이 하느님의 손안에서 얼마나 큰 기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물의 흐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앙의 깨달음을 조용히 전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성물을 완성하고 성당 봉헌식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그 자체로 감사와 기쁨의 여정이었습니다. 함께한 이들과의 만남,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작업은 단순한 제작을 넘어 신앙의 체험이 되었습니다. 성물 안에 담기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믿음과 삶이라는 것. 그리고 그 믿음이 머무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성당임을 이 소중한 여정 속에서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면 모든 과정이 은총이었습니다. 성물은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신앙의 여정입니다. 글 _ 이재옥 모데스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발행일 2026-05-10 제3490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당 안에서 피어난 예술과 신앙

세례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2대리구 중앙본당으로 교적을 옮기면서 새로운 신앙의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중앙성당은 1954년 목조 성당으로 시작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품고 성장해 온 신앙 공동체의 상징입니다. 김영섭(시몬)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된 이 성당은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모티브로, 건물 전체에 가톨릭 신앙의 상징과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노출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현대적 구조 속에서도 따뜻한 영성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성미술 작품들 덕분일 것입니다. 특히 제대 공간은 깊은 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세 개의 십자가는 골고타 언덕의 좌도와 우도를 상징하며, 인간의 죄가 깊어질수록 더욱 강렬해지는 십자가의 의미를 구조와 빛의 대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단 위에 세워진 <부활 예수상>은 임송자(리타) 교수의 작품으로, 십자가 대신 부활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이는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대속 그리고 부활의 기쁨을 함께 묵상하게 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햇살이 비추는 주일 오전 미사 시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우러진 제대의 모습은 신앙과 예술이 하나 되는 깊은 감동을 전해줍니다. 성당이 완성되어 가던 시기인 2002년, 본당에 문화분과가 신설되었습니다. 2002년부터 2004년 성당 봉헌까지의 시간 동안, 저는 성미술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예술과 신앙이 만나는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종상(요셉) 교수의 자문 아래, 본당은 깊은 고민과 기도를 통해 가톨릭 작가들에게 성미술 작품을 의뢰했습니다. 최종태(요셉) 교수의 성모상, 한진섭(요셉) 작가의 성수대 제작 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작품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기도의 결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이 작품에 담아내는 신앙의 깊이는 제 자신의 기도와도 이어졌고, 그 시간은 제게 또 다른 영적 체험이 되었습니다. 특히 소성당 성미술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당시 본당 주임 정영식(바오로) 신부님은 기존의 십자가의 길 14처에 ‘부활’을 더한 15처를 제안하셨습니다. 이는 수난과 죽음에서 끝나지 않고, 부활로 완성되는 신앙의 여정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고통의 묵상에 머무르지 않고 희망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신앙의 길을 걷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2010년까지 이어진 중앙성당에서의 시간은 예술과 신앙이 서로를 비추며 성장해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문화분과에서의 8년은 단순한 활동의 시간이 아니라, ‘예술로 빚어진 신앙’을 직접 보고 느낀 은총의 시간이었습니다. 예술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더욱 깊은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중앙성당에서의 경험은 제게 신앙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삶과 예술 속에서 끊임없이 빚어져 가는 살아 있는 여정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을 떠올리면, 작품 하나하나에 담겨 있던 기도와 숨결이 마음 깊이 울려옵니다. 글 _ 이재옥 모데스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가정의 달

4월 17일 북향민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부활 시기가 지나고 꽃도 곱게 피는 때가 되면, 해마다 이들과 봄나들이하러 갑니다. 그런데 북향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늘 한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흔히 말해 ‘족보가 꼬인다’는 것입니다. 북향민들끼리 결혼한 경우가 많다 보니, 어떤 한 사람을 모두가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누구에게는 시어머니이고, 누구에게는 친정어머니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제수씨가 되기도 하고, 처제가 되기도 합니다. 각자 들어온 시기가 다르기에 언니와 동생이 되었다가,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모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호칭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서로를 언니, 오빠라 부르고 어머니라 부르며 자연스럽게 가족처럼 지냅니다. 혹시 호칭이 불편하지는 않은지 물어봐도,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비록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만난 사람이 진정한 어머니가 되고 또 시어머니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예전 본당에서 사목하던 시절, 첫영성체를 준비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한 아이가 제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부님, 하느님 안에서 다 형제자매라고 하면 저도 신부님 동생이에요? 저도 신부님을 형이라고 불러야 해요?” 정말 귀여워 웃으며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북향민들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실제로 서로 형제자매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5월은 성모 성월이면서 동시에 가정의 달입니다. 저 역시 중국에 있을 때는 5월만 되면 유난히 외로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가족끼리 나들이를 나온 모습을 보고 있으면, 혼자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마음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괜히 전화 한 통 더 드리곤 했습니다. 아마 대한민국에 처음 정착하는 북향민들도 비슷한 마음일 것입니다. 언론은 연일 가정의 달을 이야기하지만, 홀로 이 땅에 정착해야 하는 이들에게 그 말은 오히려 더 쓸쓸하고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5월을 ‘가족의 달’이 아니라 ‘가정의 달’이라고 부를까요? 저는 그 말 안에 혈연만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울타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북향민들에게 하나의 가정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이미 같은 북향민들끼리 서로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혈육은 아니더라도 한 가정을 이루는 형제자매라면, 우리 역시 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름다운 5월에도 외롭게 지내는 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 함께 가정의 달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들이 참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밤 9시에 바치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기도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5-03 제3489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나에게 신앙이란

나의 신앙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삶 속에서 서서히 스며들며 깊어져 온 여정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시아버지의 장례미사에서 느낀 성스러운 울림이었습니다. 처음 접한 천주교 장례미사의 엄숙함과 평화로움은 마음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고, 그 감동은 남편과 함께 비산동본당에 예비신자로 입교하고 세례를 받게 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시작이 곧 깊이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교사로서, 조각가로서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에서 신앙은 주일미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나에게 전환점이 된 것은 1995년 성라자로마을 아론의 집에서 열린 ME 주말이었습니다. 2박3일 동안 이어진 그 시간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신앙이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는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이후 지역 부부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은 신앙을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게 했고, 삶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탈리아 여행 또한 나의 신앙과 예술을 연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신앙의 역사와 예술이 결합된 살아 있는 현장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조각가의 눈으로 바라본 성당의 공간과 작품들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신앙의 본질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성당을 둘러보면서 예술이 곧 기도이며 신앙의 또 다른 표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보고 느꼈던 신앙은 창작 활동을 통해 제 내면을 단단하게 채웠습니다. 1998년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창립전은 신앙을 작품 속에 담아내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지도신부님, 동료 작가들과의 교류 속에서 신앙은 더 이상 개인적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예술을 통해 나누고 증거하는 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술가회 활동은 신앙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쥴리아나 갤러리 박미현 대표와의 만남은 신앙과 예술이 어떻게 하나로 완성될 수 있는지 보여준 특별한 인연이었습니다. 해외 아트페어 기간에도 성당을 찾아 주일을 지키고, 성물을 정성껏 봉헌하는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술이 단순한 창작을 넘어 신앙의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충북 음성 꽃동네 성당의 돔 위 예수님상, 서울 대림동 살레시오회 수도원에 세워진 요한 보스코 성인상,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 성녀의 동상을 봉헌하는 과정을 옆에서 보아왔던 시간은, 나의 작업이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하게 만든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서 신앙과 예술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로를 비추며 나를 이끌어온 하나의 길이었습니다. 이 두 세계가 함께해 온 여정은 축복이며, 앞으로도 내가 걸어갈 길을 밝혀주는 가장 깊은 빛이 될 것입니다. 글 _ 이재옥 모데스타(수원가톨릭미술가회)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자연 속에서 만나는 하느님, 생태영성 피정으로의 초대

어릴 적 더운 여름밤에 불을 끄고, 창문을 열고 있으면 반딧불이가 방안으로 날아들곤 하였습니다. 산골이 아니었음에도 마당에 나오면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한적했던 마을은 사라지고 넓어진 도로를 달리는 무수한 차와 건물의 밝은 빛 때문에 반딧불이도, 별도 볼 수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여전히 하늘을 수놓은 예쁜 별을 볼 수 있습니다. 개체 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산골에 가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기도 합니다. 그 언제보다도 풍요로워진 세상이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느님을 잊고 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성체를 모신 성당에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실제로는 일상을 조금만 벗어나 무수한 생명을 들여다볼 여유만 가진다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예쁜 꽃을 피우고,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푸른 잎으로 가득한 숲에 들어가면 하느님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하천의 청량한 물소리와 그 속에 자리 잡은 수초와 돌에 낀 이끼, 헤엄치는 물고기와 많은 생명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그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스러운 경전은 두 권의 책으로 묶여 있는데, 하나는 창조 세계라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라는 책이다”라는 말씀으로 우리가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주말에라도 시간을 내어 동네 뒷산이나 공원을 거닐어 보십시오. 내가 딛는 발길을 통해 하느님께서 땅과 생명을 축복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걸어보십시오. 창조주 하느님이 허락하신 수많은 생명을 품은 대지와 청량한 공기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천히 숲속의 생명을 의식하며 걷다가 마음이 끌리는 나무나 돌 혹은 그 어떤 것을 발견한다면 잠시 멈추고 그 생명과 사물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오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 보십시오. 숲속에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번잡한 일상에서 들을 수 없었던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여정 속에서도 홀로 자연 속에 머무는 시간을 자주 가지셨습니다. 생태환경위원회는 예수님과 성인들의 삶의 모범에 따라 자연 속에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만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관상의 삶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기 위해 ‘생태영성피정’을 진행합니다. 생태영성피정은 자연 속에서 피조물들을 통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매월 첫 번째 토요일에 수리산성지 고택성당에서 진행되는 ‘생태영성월피정’과 1년에 한 번 진행되는 ‘1박2일 생태영성피정’을 통해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소중한 것을 찾으며, 생태 사도로서 우리를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만나실 겁니다. 글 _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4-26 제3488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장애를 딛고

‘고성(古城)에 뜨는 달.’ 흥망성쇠로 얼룩지고, 영욕의 세월 속에 허물어져 잊힌 성채(城砦)를 으스럼히 밝히며 내려다보고 있을 둥근 달의 낭만적인 모습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든 성곽은 말끔히 개축되어 허물어진 성체는 없다. 그럼에도 고성에 뜨는 달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밤 남한산성 야간 촬영에 단독으로 나섰다. 이날 남한산성에선 민속놀이와 쥐불놀이 행사도 있었던 터라 야간 촬영 소재가 추가되었으나 쥐불놀이는 산불 위험이 있다고 취소되었다. 미리 정해둔 성곽으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여기저기 대형 조명등이 밝게 켜져 있어 촬영할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리던 낭만적인 고성에 뜨는 달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장비를 거두고 철수하려던 참이었다. 마침 그곳에 와 있던 가까운 사진 동호인의 권유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그를 따라 높낮이가 고르지 않은 돌계단을 오르던 순간,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멘 채 그만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잠시 정신을 잃었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통증이 너무 심해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꽁꽁 언 땅은 내 체온에 녹아 등 아래 옷을 젖게 했다. 곧바로 119에 구조를 요청했다. 한밤중 산길로 구급차가 올라왔고, 나는 들것에 실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골절 수술이 어렵다고 해 밤 11시가 넘은 시각, 다시 서울의 한 종합병원으로 이송됐다. 응급실 대기 침대에 누운 채 나는 통증에 신음하며 밤을 지새웠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고관절과 대퇴부 등 두 곳의 골절이 확인됐다. 돌계단에서 넘어질 때 카메라 가방이 완충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행히 머리는 다치지 않았다. 다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이후 1년이 넘는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결국 회복할 수 없는 보행장애를 안게 됐다. 내 나이 여든셋 때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카메라를 멨고, 국내외를 오가며 출사를 이어갔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이제 전처럼 모험적인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지만 내 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카메라 촬영을 한다. 이른 아침엔 아파트 3층 방 창문을 열고 동녘 하늘에서 눈부시게 빛나며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생명의 빛을 받는다. 해 질 무렵 서쪽 하늘이 붉은 노을로 물들 때면, 그 아름다움이 무한한 감동과 기쁨으로 온몸에 전해진다. 나는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창 너머 먼 산이 바라다보이는 베란다 화단에서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피고 지는 꽃들을 찍고, 겨울이면 하얀 설경도 담는다. 피사체는 늘 비슷해 보여도, 사진 속에 담긴 모습은 언제나 새로운 감동을 안겨 준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골라 인터넷을 통해 다른 이들과 감동을 나누는 시간 또한 내게는 큰 행복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글 _ 김영덕 요한 세례자(수원교구 사진가회)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인격적인 만남

첫 주임으로 소임을 받은 본당에서는 미사 전후로 주일학교 아이들을 성당에 데려오고 집에 데려다주는 승합차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열정이 넘치던 시기였기에, 봉사자가 잘 구해지지 않자 직접 차량을 몰고 미사 전 아이들을 모시러 다녔습니다. 아이들을 태우러 출발해 다시 성당에 도착하기까지 약 1시간30분이 걸렸습니다. 미사 전에 그 정도의 시간을 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3개월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힘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성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이들과 떠들며 나누었던 시간이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조용한 줄로만 알았던 한 아이는 생각보다 말이 많은 친구였고, 말썽꾸러기로만 알고 있던 아이는 누구보다 제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친구였습니다. 그 시간은 비록 힘에 부치고 쉽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깊이 알아갈 수 있었던 소중하고 즐거운 ‘성당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대리구청에 온 이후로는 아이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대부분 행정적인 일에 치우치다 보니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인격적인 만남’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필요로 합니다. 교리서에서 배운 지식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삶 안에서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친구처럼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우리 또한 사랑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그분과 함께하며 대화해야 합니다.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묻고,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며, 성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듯이, 청소년 사목 역시 청소년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데서 시작됩니다. 직접 만나보지 못한 채 우리의 경험만으로 그들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상투적이고 형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다가갈 때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향하던 제자들과 동행하시며 그들의 마음에 다가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이러한 만남과 동행의 경험은, 우리가 청소년 사목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결국 청소년들은 단순한 사목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을 체험함으로써 하느님의 큰 사랑을 깨닫고 성장해 나가는 사목의 주체입니다. 교회는 그 여정에 동행하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가 청소년과 청년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교회가 그들을 잘 안다고 착각한 채,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듯이, 우리 청소년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그분을 더욱 깊이 알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주시길 청합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4-19 제348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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