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만난 복음]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대대로 가톨릭 신앙을 이어온 구교 집안 출신이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여느 유아세례를 받은 교우들처럼 특별한 계기나 선택의 순간 없이, 말하자면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릴 적 제 놀이터는 성당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독서실 역시 성당이었습니다. 성당은 곧 제 집이었고, 저는 그렇게 신앙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진학하며 복사단 활동을 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친구들과 함께 예비신학생 과정을 시작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사제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신앙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에 오히려 신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일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부끄럽게도 사제직을 준비하던 신학생 시절뿐 아니라 사제가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앙생활을 너무도 당연하게 해왔던 탓에, 저와는 다른 배경에서 자란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약 3년 전, 대리구에서 청소년 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서부터 비로소 저와 다른 이들, 특히 오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본당에서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만났을 때조차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질문들이었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신앙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여전히 제게 청소년사목과 청년사목은 어렵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는 것 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하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청소년·청년사목의 출발점은 저와는 다른 성장 배경 속에서 살아온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신앙을 접한 이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어린 시절부터 체득해 온 신앙의 감각이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느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경험한 것이 전부가 아니며,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반드시 정답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의 처지와 상황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할 때에야 비로소 오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교회가 그들에게 무엇을 건네야 할지에 대한 답도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듣는 행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급히 단정 짓기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현장의 목소리를 마음 깊이 새기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교회의 가르침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함께 고민하고, 교회의 주체로서 소속감을 가지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동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글 _ 이규성 요셉 신부(수원교구 제2대리구 청소년2국장)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인생의 전환점을 만든 신앙

교구 가톨릭미술가회 회장을 맡으며 평온했던 일상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수원화성순교성지 내에 있는 옛 소화초등학교 교실을 리모델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곳에서 회원들의 작품을 상설로 전시해 작품 판매가 이뤄지면 작가들도 활력을 받고 더 좋은 성미술 작업이 이뤄질 거라는 지도 신부님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다. 적지 않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작품을 상설 전시할 수 있는 데 의미를 두었다. 2025년 5월 20일 뽈리365 갤러리가 문을 열었고 1년 내내 휴일 없이 회원들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게 됐다. 상설 전시장으로 변신한 갤러리는 새로운 기운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수원화성순교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이 주된 관람객이지만 가끔 비신자들도 전시장에 들르곤 한다. 그들이 관람 후 새로운 느낌을 받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그들도 믿음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한다. 어떻게 하면 전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까 고민하다 좋은 아이디어를 찾은 끝에, 성당의 모습과 닮은 촛대를 제작하였고 좋은 기념품의 역할도 하게 되었다. 촛대의 의미를 관람객에게 설명했을 때, 그 의미를 듣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작가로서의 기쁨이기도 하다.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던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몇 가지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우선 믿음의 뿌리가 되었던 ‘말씀’이다.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나의 작품세계는 말씀을 주제로 성물을 작업하는 계기가 되었다. 메리지앤카운터(이하 ME)도 작품 생활에 변화를 줬다. 37년간의 ME 봉사로 인생 여정의 동반자 역할을 맡아준 배우자의 협조는 작품 활동에 큰 힘이 되었다. 또한 작품 활동과 봉사로 시간을 빼앗겨 자녀들을 잘 돌보아 주지 못했음에도 잘 성장하여 각자의 자리를 지켜줌에 이 또한 주님께 감사드린다. 이제까지의 삶이 신앙을 떠나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나의 예술세계도 공허함만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욱이 나의 신앙생활과 예술 작품 여정에는 임기도 정년도 없으니 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이러한 믿음과 재능을 주신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나의 작품을 감상하며 하느님이 계심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다. 성미술 작가로 활동하며 받았던 많은 사랑과 격려, 끊임없는 관심으로 계속 전진할 힘을 얻는다. 갤러리를 찾아오는 모든 관람객이 성미술 작품을 보고 하느님 나라를 간접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글 _ 최계진 마리아(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기쁨

흙을 빚어 작품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던 시기, 나무를 재료로 작업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나무를 조각하는 일이 복을 깎아내는 거라며 말리셨지만, 작가가 되고 나서도 나무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여러 성당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성물과 성화들을 보게 되는데, 더 좋은 묵상으로 이끌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면서 다양한 소재로 작업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무로 모형을 다듬고 건조와 옻칠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 성작을 보면서 흙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얻게 됐다. 생각했던 것들을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나무를 작업하면서 만족감을 얻는 이유 중 하나였다. 금속과 나무, 두 가지 다른 재료로 다양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로서의 뿌듯함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만족감이 커졌다. 작품의 완성은 또 다른 영감을 찾는 원동력이 됐고 늘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작업실을 떠나지 못했다. 작업에 속도가 붙었던 시기, 작은 소품 작업에서 더 나아가 하느님 말씀을 성전 전체에 표현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때마침 분당야탑동성당 성전에 성미술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십자가가 걸린 벽면을 작업하는 일이었는데, 거대한 빛이 세상 속으로 퍼져나가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을 향해 나에게 오라고 말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렇게 십자가가 걸린 벽을 황금빛 빛을 닮은 도자 벽화로 채웠다. 성당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큰 은총을 마주하며 기쁨을 얻고 가길 바랐다. 그동안 믿음이 약해 주님이 계신지 확신이 없었는데, ‘벽화를 보면서 정말 하느님께서 계심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작업하는 이외의 시간에는 가까운 이웃들을 작업장에 초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미술 작업도 신앙생활의 일부였지만, 그 외에 소공동체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특히 레지오 마리애와 메리지앤카운터(ME) 활동은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2000년 대희년에는 수원ME 12대 대표부부로, 2015년부터 3년 동안은 한국ME 대표부부로 활동했다. 전국의 ME가족들과 함께 성가정의 중요성을 생각한 시간이었다. 대내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도예 작업을 하고 있다. 주어진 일상에서 자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를 봉헌하는 것은 새로운 작업을 스케치하는 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많은 일을 해낸 후 조금의 여유가 찾아왔을 때 수원가톨릭미술가회 7대 회장이라는 소명이 주어져 지금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 글 _ 최계진 마리아(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중앙 유라시아 국가 출신 A 양은 10년 전 한국에 들어와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취업한 그녀는 한국 영주권을 신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외국인 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려고 하니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거기에 코로나19 시기까지 겹쳐 더더욱 친구를 사귈 기회는 사라졌습니다. 영어,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한국말도 아주 유창하게 하지만 한국에 지인이 없으니 한국에서의 삶은 외롭기만 했습니다. 영주권을 신청하려면 현재의 체류 비자 조건을 잘 이행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고정 수입도 증명해야 하고, 세금도 제때 잘 내야 합니다. 본국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하루하루의 삶은 한국의 여느 청년들처럼 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나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 나의 곁에서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도움을 줄 사람 하나 없이 한국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기 위해 혼자 필사적으로 몸부림쳐야 하는 삶은, 그녀로 하여금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한국에 와 있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자꾸만 던지게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문제가 생겨 최근에 직장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이슬람 국가에서 왔지만, 따로 믿는 신앙이 없는 그녀는, 지치고 답답한 마음에 이곳저곳을 찾다가 결국 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까지 찾아왔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무엇인지, 교회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자신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할 누군가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우는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은 아니지만,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머무는 많은 청년이 있습니다. 여느 청년처럼 그들도 경쟁 안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불안함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그들에게는 늘 지금(오늘)이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대부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겠지만, 그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낼 친구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야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인간관계 안에서 서로 간의 경계를 만드는 많은 장애 요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성별, 국적, 세대(나이) 등…. 그리고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경계 안에서 많은 이가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큰 도움은 되어주지 못했지만, 얼마 전 그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저도 제 삶이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누군가에게) 꼭 도움이 되고 싶어요.” 우리는 모두 마음속으로는 인간관계의 경계와 장벽을 허물고, 서로와 소통하고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글 _ 이상협 그레고리오 신부(수원교구 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분단의 땅에도 뿌려진 씨앗

찬미 예수님! 올 한 해 지면을 통해 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알려드릴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족화해위원회는 선종하신 김남수 주교님의 요청으로 1999년 북한선교 지원사제 모임으로 처음 시작됐고 26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직자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북한, 더구나 분단 이전 한반도에서 가장 활발했던 신앙 공동체가 지금은 아무것도 못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가슴 아픈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에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이 전해지고 찬양하는 소리가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고 준비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 때문인지 설립부터 지금까지 민족화해위원회라고 이야기하면 순수한 마음보다는 정치적인 색깔을 지닌 단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는 이야기는 그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있습니다. 예전 일본 나가사키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잠복 그리스도인’, 즉 ‘가쿠레 키리시탄’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습니다. 에도막부 시절 잔인하게 그리스도교를 탄압하여 성직자가 사라지고 그리스도교의 뿌리조차 뽑혔던 것처럼 보였던 그곳. 300여 년이 지나 선교사가 입국하자 숨어있던 신자들이 발견된 것은 하느님 말씀의 씨앗은 한번 뿌려진 곳에서 절대 사라지지 않음을 확인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어떠합니까? 분단 전에는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 정말 많이 뿌려진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지금 신자들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300여 년이 넘는 시간에서도 그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이제 분단 80년이 된 그곳에도 분명 하느님의 씨앗은, 싹이 트지는 않았지만, 분명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신자들이 다 사라졌을 것이라 확신하고, 그들의 신앙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이후 레오 14세 교황님까지 줄곧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시는데 그 사실 또한 우리는 신앙적인 눈이 아닌 정치적인 또는 사회적인 눈으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올 한 해는 북한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매일 밤 9시에 바치는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기도 모임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2020년 이후 지속해서 거행하는 이 운동에 동참하셔서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인류의 일치를 바라시는 주님! 갈라져 사는 저희 겨레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소서!” 글 _ 허현 요한 세례자 신부(수원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성미술 작가의 삶이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렇게 다양하게 맡겨진 삶을 어떻게 전개하여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흐름은 달라진다. 우선 내 자신부터 변화되지 않으면 좋은 삶을 살아가기 어렵고 이웃에게도 선한 영향을 줄 수 없음을 여러 피정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찾아왔을 때, 디자인실에서 눈여겨보았던 잡지에 수록된 그림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유리창 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내 삶의 흐름은 달라졌다. 비록 바다는 아니지만, 작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작업장을 예쁘게 마련하였다. 작업장을 열고 처음에는 흙을 빚는 작업보다는 예쁜 집에 신자들을 초대하는 일에 집중했다. 주말마다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찾아오는 이들을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에 마음을 다하였던 것 같다. 소극적이던 나에게 넓은 작업장은 큰 놀이터가 됐다. 손님들을 맞이하는 시간 외에는 작업에 엄청난 열정을 쏟아부었다. 성경 말씀의 모든 구절이 작품의 소재가 되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열심히 작업했다. 가마에 온도가 오를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산속에서 밤낮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기도할 일도 많았다. 작업장에서 불을 지피고 마무리하면서 깜깜한 밤중에 문을 잠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오싹해서 “주님 저를 지켜주십시오!”라는 화살기도를 수도 없이 되뇌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산모퉁이 거대한 공동묘지를 꼭 지나쳐야 해서 더욱 공포를 느끼며 운전대를 꽉 움켜잡았다. 지금도 온몸이 무서움으로 오그라들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열심히 작업한 작품들이 빛을 보게 됐다. 2003년에는 첫 개인전을 서울 명동 평화화랑에서 했다. ‘나에게로 오너라’, ‘빛이 되어’, ‘착한 목자’ 등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한 개인전이었다. 그 이후 흙으로 성물을 제작하면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작업이 떠올랐다. 나무를 이용하여 성작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무를 좋아했기에 작가로서 나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열정이 다시 떠올랐다. 나이테가 분명해 무늬가 아름다운 물푸레나무를 작품의 재료로 삼았다. 물푸레나무를 깎고 8번의 옻칠을 한 뒤, 완성된 성작 위에 성화를 그려 넣었다. 성작과 성반으로 구성된 세트를 제작했고, 봉성체용 소성작을 전시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가끔 내 성작 작품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사제들을 보면 감사한 마음과 함께 가슴이 먹먹해지는 뿌듯함을 느낀다. 글 _ 최계진 마리아(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1-04 제3473호 3면

[예술로 빚은 신앙] 미술 작가의 토대가 된 신앙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어린 시절에는 소심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공소 회장이셨던 아버지와 7명의 형제자매 사이에서 지내면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지 못한 채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 대한 한 가지 기억이 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있을 때 기도할 시간이라고 부르던 부모님의 목소리다. 어린 마음에 기도하지 않고 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었다. 미술을 하고 싶다는 말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나무에 조각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나무를 깎아내는 일은 복이 붙지 않는 일”이라며 다른 일을 할 것을 권했다. 그때 미술을 포기했다면 나는 성미술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미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흙과 염색, 직조 등을 접하면서 새로운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의 손길을 통하여 무언가가 창조된다는 기쁨은 미술 작업에 몰입하는 원동력이 됐다. 대학미술대전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담아낸 내 작품이 큰 상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로 나만의 작품 세계가 구축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의류회사 디자인실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하며 세계로 수출하는 옷감에 무늬를 그려내는 작업을 했다. 8명의 디자이너와 아이디어를 나누며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훗날 미술 작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내 삶의 또 다른 한 축은 신앙이다. 미술 작가로 성장하는 데 신앙도 큰 역할을 했다. 결혼하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본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시작했다. 활동을 하면서 비신자를 입교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내향적인 성격인 탓에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9일 기도를 시작했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덕을 구하며”라는 구절이 나를 변화시켰다. 그 무렵에 교구에서 성경공부 봉사자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도에 대한 답을 찾았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봉사를 시작했고 그 여정은 7년간 이어졌다. 사람들에게 신앙에 대한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내가 여러 사람 앞에서 말씀을 전달하기에 이른 것이다. 강의하기 위하여 매일 성경과 강의 노트가 집안에 펼쳐져 있었다. 강의를 준비하는 일은 일상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성경 말씀을 어떻게 신자들에게 잘 전달할지를 고민했고 더 나아가 말씀을 흙으로 어떻게 표현해 관람객들에게 기쁨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내 미술 작업의 중요한 정체성이 됐다. 그렇게 흙을 빚어 성물을 제작하는 미술 작가 최계진이 됐다. 글 _ 최계진 마리아(수원가톨릭미술가회 회장)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3면

[현장에서 만난 복음] 광야를 걷는 생태환경분과와 본당 공동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탈출 14,15) 2014년 세계은행은 ‘Turn Down the Heat(온도를 낮추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최악의 경우 2100년 경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14도에서 4도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환경부와 기상청이 공동으로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과 2023년에 발표된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IPCC)의 보고서를 종합해 보면, 한반도의 지표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8도 상승하여 지구 평균(1.2도 상승)을 크게 웃돕니다. 대전환 없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2100년쯤에 지구 평균 기온이 4도 이상(한반도는 5도 이상) 오르면 생태계 붕괴로 인한 전 지구적인 식량 위기 등으로 인류는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기후위기는 아프리카와 남태평양의 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반도가 더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가 발표된 이후 각 본당에 생태환경분과가 신설되고 있습니다. 현재 50여 본당에서 생태환경분과 구성원들이 본당과 지역 사회의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본당의 생태환경분과가 본당 공동체의 변화를 위해 어떤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신자들의 참여와 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안에서 공동체의 무관심과 몰이해로 상처받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마치 파라오의 압제 속에 울부짖자, 모세를 통해 하느님의 응답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모세와 그 협력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모세와 그 협력자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이끄심에 홍해 바다를 건너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걸으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여정을 감당했습니다. 모세와 백성들은 파라오와 이집트로부터의 해방의 기쁨도 잠시, 광야라고 하는 감당하기 힘든 곳에서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갈증과 배고픔, 그리고 수시로 찾아오는 탐욕과 하느님께 대한 불신이 그들을 흔들었습니다.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면서도 그들은 끝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후손들이 노예가 아닌 하느님의 상속자로서 살아갈 새로운 세상을 얻게 해줍니다. 각 본당의 생태환경분과는 단순하게 일회용품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통해 자원 재활용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질의 탐욕에 갇힌 이집트라는 과거의 삶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여정을 시작한 이들입니다. 생태환경분과원들이 꿈꾸는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 사회는 하느님을 온전히 주님으로 모시는 생태적 회개를 통해 가능해집니다. 생태환경분과의 활동 때문에 여러분들의 본당이 무엇인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면, 죽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생명이 넘치는 세상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는 신호입니다. 글 _ 양기석 스테파노 신부(수원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발행일 2026-01-01 제3472호 3면

[신앙 에세이]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자전거 성지순례가 끝이 났지만, 저의 정신은 생각보다 건강했습니다. 성지순례를 도중에 포기했다고 해서 절망에 빠졌다거나, 더 이상 자전거로 성지순례를 이어갈 수 없음에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도에서 흙바람과 튀기는 돌을 맞아가며 성지순례를 이어가지 않게 해준 하느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 것에, 영하의 날씨에 침낭 하나만 가지고 노숙했어도 살아있음에, 포기해야 할 상황에서 포기한 것에 감사했습니다. 4박 5일의 자전거 성지순례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나고 곱씹어 보니 감사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처음 성지순례를 결심했을 때처럼, 뇌리에 생각이 스쳐 갔습니다. ‘성지순례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막연하게 성지순례를 해야겠다는 패기가 아닌 그동안의 감사함으로 성지순례를 이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의원도 찾아가 다리를 회복하려 했지만, 두 다리는 좀처럼 본래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전거가 아닌 차로 성지순례를 이어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차로 하는 성지순례 때는 모든 순간이 꿈만 같았습니다. 비록 차에서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는 잘 수 없었지만, 수리산 성지 앞에서 노숙했을 때보다는 훨씬 더 편하고 따뜻했습니다. 덕분에 어디서 잘지 고민하지 않고 여행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몸이 편안해지자 성지에서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친 숨을 내쉬며 성지에서 쉬는 것 대신 성지 안내 글을 읽으니 성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리성지에서는 수녀님을 도와 눈을 쓸었고, 갈매못 순교 성지에서는 살면서 처음으로 성체조배를 해보는 영광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산막골 성지에서는 미사 때 독서 봉사를 하는 의미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순간마다 저의 희망의 불꽃이 4박5일 만에 맞이한 절망에도 꺼지지 않았음에 감사했습니다. 30일 동안 26곳의 성지를 방문했고, 장소는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희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치지 않는 패기로,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겸손으로, 절망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그저 제 신앙 체험으로 끝날 수 있었던 희망은 이 지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련의 순간들이 모두 저에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역시나,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글 _ 조각희 프란치스코(수원교구 가톨릭 대학생 연합회 총회장)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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