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행복’ 누리는 가장 쉽고 강력한 방법은?…「하느님의 현존 연습」

“프라이팬에서 달걀을 뒤집을 때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서 한다. 전혀 어려울 것이 없다. 그저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 파리 맨발의 가르멜회 수도원에는 ‘부활의 로랑’이라는 수도명의 수사가 있었다. 다리가 불편했던 그는 겉보기에 특별한 것 없는 매우 평범한 수도자였고, 부엌일과 신발 수선, 포도주 배달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 연습’을 실천한 인물로,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이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하느님의 현존 연습」은 부활의 로랑 수사가 직접 남긴 금언과 편지 그리고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요셉 드 보포르 신부가 정리한 것이다. 2007년 초판 이후 14년 만에 개정된 이번 판은 가죽 양장본으로 새로이 편집되어, ‘평범함 속의 신앙’을 차분히 음미하도록 초대한다. 그의 영성은 놀라울 만큼 단순하며, 가장 쉽고도 강력한 영성 수련법으로 전해진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가장 사소한 일을 할 때도, 매 순간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이다. 마음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머물고 그분만을 생각하는 것. 그것만으로 천상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생애 내내, 죽는 순간까지 몸소 증명했다. 책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특히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부활의 로랑 수사는 요리사이자 신발 수선공으로서 스트레스와 고된 일, 단조로운 일과와 끝없는 일거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제안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일하는 동안 잠깐씩 중단하고, 때로는 그저 스쳐 지나가듯이, 몰래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께 경배드리라’고 조언한다. ‘식사할 때, 대화할 때, 일할 때 자주 마음으로 그분을 우러러보는 것’,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하느님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온갖 연습을 통해 그 목표에 이르고자 한다. 수많은 방법을 써가며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려고 무척 고생을 한다. 그보다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한다는 것이 더 빠르고 곧은 길이 아니겠는가.”(226쪽) 성당에 가야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세속을 살아가며 하느님과 가까워지기 어렵다고 느끼는 신앙인들에게, 부활의 로랑 수사는 ‘오늘, 여기서 시작하는 영성’을 말한다. 책 제목에서처럼, 하느님을 추구하는 일은 ‘연습’을 필요로 한다. 마치 살기 위해 숨 쉬는 것과 같다. 그는 시시때때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가 하느님과 대화하라고 당부한다. 또한 하루에 여러 번, 일을 하는 동안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순간마다 그분께 마음을 드리는 버릇을 들일 것을 강조한다. 낮 동안 ‘무심코 흘려보내는 순간’을 이용하라는 권고는 우리가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하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길을 걸으면서도 하느님의 현존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덧붙여 이런 ‘연습’이 자연스러워지려면,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돌아가 하루 동안에도 여러 번 짧은 내적 흠숭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석창우 화백 47회 개인전 ‘침묵을 일깨우는 정중동의 크로키 미학’ 개최

국내 첫 의수 화가이자 ‘수묵 크로키’로 주목받아 온 석창우(베드로) 화백이 47번째 개인전을 통해 전통과 현대, 신앙과 예술이 교차하는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석 화백은 11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에서 ‘침묵을 일깨우는 정중동의 크로키 미학’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을 주제로 한 신작들이 공개된다. 2019년 최민호 신부(마르코·의정부교구)와 40일간 떠난 유럽 순례 당시의 감상을 담은 작품들로, 이전과 달리 화려한 색채를 통해 표현된 다양한 꽃과 제각기 다른 표정의 사람들은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치유의 회화’를 주제로 작업한 주요 작품들도 전시되며, “주님, 저를 시험하시고 살펴보시며 제 속과 마음을 달구어 보소서”(시편 26,2) 등 그의 신앙이 녹아 있는 작품도 만나 볼 수 있다. 그는 50여 점의 작품을 통해 그간의 예술 여정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석 화백은 “그림은 곧 기도이고, 침묵은 곧 찬양의 시간”이라며 “붓은 세상과 하느님을 잇는 영적 언어와 같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전시는 신체적 한계를 넘어 신앙과 생명의 자유로 향하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1984년 감전 사고로 양팔을 잃은 석 화백은 이후 의수로 붓을 쥐고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의수와 한 몸이 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필치는 단순한 ‘선’을 넘어 삶의 호흡과 신앙이 담긴 하나의 언어가 됐다. 석 화백은 GKL사회공헌재단 이사와 한국장애문화예술원 이사를 역임했으며, 2024년 4월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돼 장애 예술인의 권익과 창작 활동을 위해 힘쓰고 있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14면

홍성남 신부 “나를 끝까지 이해하고 사랑하세요”

홍성남 신부(마태오·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의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 북토크가 10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약 300명의 청중이 자리한 가운데 열렸다. 가톨릭신문사(사장 최성준 이냐시오 신부)와 김영사가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는 가톨릭신문의 문화사목 활동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70분 넘게 이어진 강연에서 홍 신부는 자신의 우울증과 알코올중독, 자살 충동을 느끼며 좌절했던 기억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44세 때 계곡 다리 위에서 삶을 끝내려 했던 순간,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거냐”라는 허공의 목소리에 “죽기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 돌아섰다는 고백이 이어졌다. “그때까지 저는 나를 미워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오히려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더 착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넌 루저야’, ‘넌 못났어’ 등의 말을 항상 되뇌다 보니 당연히 우울과 불안감을 지니게 됐고, 사제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런 감정이 지속됐어요.” 홍 신부는 상담을 통해 자신을 짓누른 것이 양심인 척하는 ‘내사(Introjection)’라는 내면의 폭군임을 깨달았다. “심리학 책에서 그 부분을 보며 밤새도록 울었는데 속이 시원했어요.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를 몰아세운 것은 바로 나였구나’라는 것을 마주했죠.” 이날 홍 신부가 강조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자기를 끝까지 이해하고 사랑하라’ 둘째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버티는 자가 승자다’, 마지막은 ‘잘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 신부는 "나는 자신을 비난하지 말고 절대적인 아군이 되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스스로를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 지역 성당에서 깡패들의 협박을 받으며 5년을 버틴 이야기는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새벽 4시에 베토벤을 최대 볼륨으로 틀어놨죠. '듣다가 죽어라' 하면서요.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 제 속이 시원한 거예요. 클래식 음악 감상은 영혼의 샤워더라고요." 당시 명화 복제품으로 사제관을 장식하고, 좋은 향을 맡고, 일식 삼찬으로 식사를 차려 먹으며, 머리에 젤을 발라 단정하게 다녔던 구체적인 생존 비법을 제시한 홍 신부는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깔끔하게, 또 저렴하면서도 우아하게 살라"고 조언했다. 강연 말미에 홍 신부는 “사람 마음 안에는 다 꽃이 있다"며 "제 역할은 여러분 마음 안에 있는 돌덩이를 치워드리고, 그 꽃이 만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왔다는 한 참석자는 “자기혐오와 열등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시간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15면

창작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역사와 종교의 찬란한 조우”

조선 땅에 천주교를 뿌리내린 이벽(요한 세례자)·이승훈(베드로)·권철신(암브로시오)·정약종(아우구스티노)을 비롯해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MARTYRES)>가 최근 국제 음악 공모전 ‘비발디국제경쟁음악상(Vivaldi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에서 ▲합창·앙상블 음악 부문(Choir/Ensemble Music) 작품 대상(Grand Prize)과 창작곡(작곡) 부문(Original Composition) 최고 작곡상(Absolute First Prize)을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오라토리오를 함께 작업한 김재청(솔로몬·아트팜엘케이 대표) 작가와 이지은 작곡가를 만나 작품의 의미와 작업 과정, 수상 소감 등을 들었다. 오라토리오의 대본을 완성한 김 작가는 “<마르티레스>는 ‘역사와 종교의 찬란한 조우’”라며 “순교자들의 희생은 종교적 기록을 넘어, 한 민족과 나라의 역사를 동시에 담고 있기 때문에 오라토리오를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이 감동적인 사실을 알리고자 했다”고 전했다. <마르티레스>는 천진암 강학회, 이승훈의 세례, 수표교 모임, 명례방 종교집회, 신유박해로 이어지는 초기 천주교인들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만큼 두 창작자의 역사와 종교 연구 등 오랜 노력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김 작가는 “이번 작품의 바탕이 된 구한말 강화도 여성 신자의 일대기를 그린 오페라 <시간 거미줄>부터 이승훈을 주인공으로 한 칸타타 <초석>, 그리고 <마르티레스>를 완성하기까지 15년의 여정을 걸었다”며 “특히 <마르티레스>는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대학교 도서관 등 다양한 교회·연구 기관의 학술 자료 300권 이상을 토대로 지었다”고 밝혔다. 음악 형식적으로 대규모 편성을 요구하는 오라토리오의 특성상 <마르티레스>는 오케스트라, 성악과 합창, 판소리·해금·대금 등 국악, 라틴어와 영어까지 결합됐다. 작품의 끝부분이 조선의 모든 순교자를 위한 대합창으로 영어 가사를 붙인 가스펠 성가로 마무리되는 것 역시 특징이다. 이 작곡가는 “작품은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아닌 축제 같은 느낌으로 끝을 맺는다”며 “우리가 옛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단지 옛 사건에 그대로 머물러 있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거울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양 음악과 국악, 한국어와 라틴어, 영어까지 많은 음악과 언어가 섞여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양장을 입고 한식을 먹듯이 우리의 삶은 이미 다양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며 “음악과 예술도 우리 생활처럼 다양한 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도록 했다”고 말했다. 뼈아픈 역사적 사실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처연한 음악을 입고 관객들의 마음에 가닿는다. 이들은 지난 9월 20일 서울대교구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펼친 공연에서 관객들 눈물에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김 작가는 “작품을 쓰는 동안 깊은 고민에 잠기고 때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감동을 받는 신자들의 모습에 결국 하느님께서 이 작품을 위해 저를 보낸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어 “글이 막힐 때 명동대성당의 이벽 초상화를 자주 찾았다”며 “큰 상까지 받게 돼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언젠가 작품의 실제 배경인 명동대성당에서 공연하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이 작곡가는 “처음 완성된 대본을 살펴보며 현재 나의 삶과 고민이 이 처절한 역사 앞에서는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면서 “많은 사람이 작품을 통해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오라토리오 <마르티레스>는 멜론, 스포티파이, 유튜브 뮤직 등 주요 음원 사이트에서 감상할 수 있다.

발행일 2025-11-09 제3465호 14면

제12회 가톨릭영화제 폐막…영화 통해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 제시

10월 23일부터 나흘간 세상을 희망의 영화로 비춘 제12회 가톨릭영화제(Catholic Film Festival, CaFF)가 26일 서울 명동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가톨릭영화인협회(회장 이경숙 비비안나)가 주최하고 가톨릭영화제 집행위원회(위원장 조용준 니콜라오 신부)가 주관한 제12회 가톨릭영화제는 영화제 기간 ‘희망으로 나아가는 길(The Way to Hope)’을 주제로 21개국 50편(장편 16편, 단편 34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정태야(그레고리오)·채명지(체칠리아) 배우의 사회로 마련된 폐막식에서는 CaFF단편경쟁 5개 부문 시상과 폐막작(대상작) 상영 등이 이어졌다. 단편경쟁부문 대상은 치매를 앓는 퇴직 경찰이 동네 꼬마가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아 나서면서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송석주를 찾습니다>의 여장천 감독이 수상했다. 배장수(베네딕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차유진(이레네) 배우, 이한종(미카엘) 감독, 김명중 신부(시몬·서울대교구 직장사목팀 담당) 등 심사위원단은 “기억을 잃어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품위와 존재의 의미를 조명한 점이 돋보였다”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주인공의 마음이 오랜 잔상을 남긴다”고 평했다. 시상식에서는 여장천 감독을 대신해 강지영 프로듀서가 대상을 대리 수상했다. 강 프로듀서는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영화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작품”이라며 “이렇게 큰상을 받은 것을 보니 우리의 바람과 메시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쁘다”고 전했다. 이어 “뜨거웠던 작년 여름에 함께 작품을 만든 배우들과 제작진 그리고 영화를 완성시켜 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우수상은 <침묵의 사선> 정재훈 감독, <엑스레이> 박도겸 감독, <네일 플라워> 노언식 감독이 각각 수상했다. 배우 연기상인 스텔라상은 <송석주를 찾습니다>의 박경근 배우가 받았으며, 관객들의 투표로 선정된 관객상과 심사위원특별상은 <우리가 희망을 이야기하는 방식>의 김수홍·황완섭 감독에게 돌아갔다. 조용준 신부는 “지난 1년간 희망을 주제로 한 영화제 상영작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희망을 담은 영화가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면서 “힘든 준비 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을 계속 발굴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세상과 많은 사람에게 가톨릭만의 답을 제시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전했다. 한편 2013년 창립된 가톨릭영화인협회는 보편적이고 영성적인 영화를 통한 공동선 추구를 위해 매년 가톨릭영화제를 개최하고 있다. 제13회 가톨릭영화제는 ‘기쁨’을 주제로 2026년 10월 열릴 예정이다.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14면

[이준형 클래식 순례] 프란체스코 포지아의 <마니피카트>

11월 9일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San Giovanni in Laterano)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증해서 성 실베스테르 1세가 324년에 봉헌한 이 대성당은 박해가 끝나고 세워진 교회의 첫 성당으로서, 로마에 있는 4대 대성당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라테라노 대성당이 로마 주교(교황)의 주교좌성당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성당 입구 위에 새겨진 대로 ‘로마와 전 세계의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지닌 성당이지요. 유서 깊고 명예로운 성당인 만큼 음악 분야에서도 많은 역사와 전통을 품고 있습니다. 디 라소, 팔레스트리나, 소리아노, 드라고니, 프레스코발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음악가가 이곳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대성당의 아카이브에는 수많은 필사본 악보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1600년 희년을 준비하며 1597~1598년에 설치된 루카 비아지의 아름다운 오르간도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습니다. 아름다운 오르간 케이스는 자코모 델라 포르타의 디자인으로, 현존하는 오르간 중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악기죠. 1707년 1월 14일, 스물두 살의 청년 헨델은 이 오르간을 연주하면서 로마 사람들 앞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활동한 수많은 음악가 중 프란체스코 포지아(Francesco Foggia, 1603~1688)의 ‘마니피카트’를 소개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당대에는 뛰어난 교회음악 작곡가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가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로마에서 음악을 공부한 그는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한 이후 로마로 돌아와 1636년부터 1661년까지 라테라노 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1677년부터 1688년까지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서 봉직했습니다. 같은 세대의 자코모 카리시미와 더불어 로마를 대표할 만한 작곡가로, 흔히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로마악파의 진보적인 측면을 드러낸다는 느낌입니다. 그가 1667년에 출판한 교회음악 작품집인 <저녁기도를 위한 시편 찬가(Psalmodia Vespertina)>에는 다양한 작품이 담겼는데, 5성부 합창과 바소 콘티누오를 위한 마니피카트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을 정선율(cantus firmus)로 썼다는 점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의 옛 음악 전통을 따랐지만, 가사에 담긴 정념을 표출하는 모노디 풍의 극적인 표현과 대담한 화성, 바로크 양식의 콘티누오 파트는 새로운 시대의 음악을 보여줍니다. ‘권세 있는(Potentes)’ 같은 단어를 화려한 음으로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언뜻 당대의 오페라를 연상하게 되는데, 성과 속을 이분화하지 않았던 바로크 예술의 이념에 부합합니다. 당시 라테라노 대성당의 저녁기도에 모인 신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듯합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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