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청년들 질문에 사제가 답하다…「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

“모든 이주민을 환영할 수 없지 않나요?”, “여성은 왜 사제가 될 수 없나요?”, “노예제도로 만든 제품을 쓰면 나도 죄인인가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청년에게 교회는 무엇이라 답할까. 「청년이 알아야 할 사회교리 Q&A」는 머뭇거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들이야말로 신앙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저자 미헬 레메리 신부는 ‘하느님과 트윗을’ 시리즈로 디지털 세대와 소통해 온 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소속 사제다. SNS에서 140자로 신앙을 나누던 그가 이번엔 청년들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섰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한국 청년들과도 직접 대화를 나눈 그는, 전 세계 청년들이 던진 진짜 질문들을 모았다. 가난, 이주민, 노동, 전쟁, AI, 기후 위기. 청년들이 매일 뉴스에서 접하고 SNS에서 논쟁하는 이 주제들에 대해, 교회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을까? 레메리 신부는 성경과 교황 문헌을 인용하되, 설교조의 답변은 피한다. 대신 “그런데 정작 일부는 그러한 입장에 동조하면서 후한 대가를 받기도 합니다”(35쪽)처럼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고,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93쪽)처럼 솔직하게 인정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이 책의 특징은 사회교리를 완성된 답처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노예제도로 생산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마다 우리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67쪽)라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독자에게 그 답을 함께 찾아가자고 제안한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이 책은 그 대화를 미리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각 장마다 토론 질문과 추천 자료가 담겨 있어, 청년 모임이나 소그룹에서 함께 읽고 나누기 좋다. “우리의 사명은 모두가 불완전한 이 세상을 가능한 한 견딜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11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완벽한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을 함께 견디며 조금씩 바꿔 가는 사회교리의 핵심 의미를 청년의 언어와 현실로 풀어낸다. 정의와 평화, 연대와 공동선. 어렵게만 느껴졌던 이 단어들이 우리 삶의 구체적인 선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26개의 질문과 답변 속에 녹아있다. 질문마다 ‘더 알기’, ‘더 읽어보기’, ‘실천하기’ 등을 통해 교리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일상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끈다. ‘요약’에서는 주제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짧고 명료하게 담아 답변의 핵심을 잘 파악하도록 돕는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5면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바오로 성인의 회심을 그린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파울루스>

교회는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간구하는 일치 주간으로 지내며, 마지막 날인 25일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기념한다.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더욱 선명히 만드는 사실이 있다. 사도의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는 타르수스 출신 유다인이자, 로마 시민권자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8~2009년을 ‘바오로 해’로 선포하며 “바오로 사도는 로마, 그리스, 유다라는 서로 다른 세 문화의 교차점에 있던 이”로 정의한 바 있다. 그를 통해 초대 교회가 풍요로운 개방성, 문화 간 매개, 참된 보편성을 갖추게 되었다고 말이다. 이 다면적인 경계성은 그를 세계로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만들었다. 이런 바오로 사도를,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Bartholdy, 1809-1847)이 오라토리오 <파울루스(Paulus)>의 주인공으로 세웠다.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유다계이자 그리스도교인 멘델스존에게 바오로 성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었고, 독일 사회에서 유다인으로 살아가던 그의 다층적인 입지를 투영하는 거울이기도 했다. 멘델스존 가문은 부와 명예를 지닌 상류층이었지만, 그들조차 유다교 신앙을 고수하며 유다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소외와 차별 가능성에 놓인다는 것을 뜻했다. 이런 상황에서 멘델스존의 부친 아브라함은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고, 자신의 성 멘델스존에 ‘바르톨디’를 덧붙였다. 이는 유다적 뿌리를 감추거나 최소 희석해야 했던 시대상을 암시한다. 개종은 동화에 대한 의지였지만, 완전한 편견의 종식을 뜻하지 않았다. 멘델스존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자기 이해와 신앙은 확고했다. 그는 <파울루스>에서 자신이 존경하던 바흐의 어법, 합창과 코랄(회중이 함께 부르는 프로테스탄트-루터교 찬송 선율)로 신앙 공동체의 언어를 되살렸다. 바흐 수난곡처럼 사건은 레치타티보와 독창이 서술하고, 의미는 합창과 코랄이 노래한다. 이 지점에서, 경계인 바오로와 경계인 멘델스존은 서로를 비춘다. 한 사람의 회심이 교회의 보편성을 열었다면, 한 작곡가의 작품은 그 보편성을 음악으로 들려준다. 합창은 하나의 얼굴만 갖지 않는다. 합창과 코랄은 신앙을 말하지만, 때론 ‘투르바(turba)’, 곧 군중의 목소리가 되어 폭력과 맹목의 집단성을 토해낸다. 성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에서 무리의 돌팔매질과 무자비함은 격렬한 외침으로 표현되고, 이에 협력했던 사울(회심 전 바오로)의 과거는 회심 이후 변화가 얼마나 극명한지 보여준다. 멘델스존은 개인 영웅담을 만들지 않는다. 성 바오로가 평생 온몸으로 겪어냈던 ‘공동체의 양면성’을 합창으로 드러낸다. 절정은 1부 다마스쿠스 회심 장면이다. 중요한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묘사한 방식이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사도 9,4)는 남성 독창이 아닌 여성 합창으로 제시된다. 이는 회심을 예수님-사도의 대화로 연극 인물처럼 묘사하기보다는, 공동체가 함께 듣고 기억하는 장면으로 만든다. 이어서 합창이 “일어나라, 빛이 되어라”로 의미를 강화하고, 코랄 “깨어나라! 한 목소리가 우리를 부른다”가 놓인다. 순서는 자체로 하나의 선언이다. 회심은 개인 차원이 아니라, “깨어나라”는 공동체적 부르심이며, 한 사람의 깨달음이 교회적 사건으로 확장되는 순간이 된다. 코랄 각 구절 사이에는 호른과 트럼펫, 트롬본 같은 금관악기들의 팡파르를 끼워 넣으며, ‘회심’을 교회의 공적 고백이자 선포로 전환시킨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바오로 성인에게서 믿음을 배우고, 그리스도를 배우며, 마지막으로 올바른 삶의 길을 배우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유다계 그리스도교인 멘델스존에게 사도는 어떤 존재였는가. 교회는 왜 공동체인가. 오라토리오 <파울루스>는 이 질문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작품이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6면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이 된 ‘성 세례자 요한의 죽음’…서울에서 만난다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 모더니즘까지 유럽의 미술 발전사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갤러리1898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대형 미술관까지 아름다운 색채로 올겨울을 수놓고 있는 주요 전시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을 3월 15일까지 개최한다. 전시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 소장한 ‘로버트 리먼 컬렉션’의 회화와 드로잉 등 총 81점으로 구성됐다. 빈센트 반 고흐를 비롯해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세잔, 카미유 피사로, 살바도르 달리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인간의 몸과 초상, 도시와 자연 등을 주요 테마로 화가들이 전통적 장르를 새롭게 해석해 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특히 신약성경 속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희생된 내용을 화폭에 담은 <성 세례 요한의 머리 앞에서 춤을 추는 살로메>(19세기 중·후반 추정)는 주요 작품 중 하나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가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혼인한 일에 대해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책망하고, 이에 헤로디아는 그에 대한 앙심을 품는다. 그 무렵 헤로데의 생일 축하 연회가 열리고, 헤로디아의 딸(살로메)은 춤으로 연회를 즐겁게 만든다. 헤로데는 딸에게 무슨 소원이든 들어주겠다 약속하고, 딸은 어머니의 뜻을 따라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마르 6,17-29 참조) ‘죽음’과 ‘춤’이 맞물린 이 기록은 향락과 폭력이 맞닿는 순간으로 읽히며 19세기 말 유럽에서 여러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이후 유행한 ‘살로메’ 회화 흐름 속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화폭 가운데 살로메가 춤을 추고 있고, 헤로데는 우측 옥좌에서 살로메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살로메 옆에 놓인 참수된 머리는 이와 대비되며 관람객들에게 화려한 연회와 잔혹한 죽음이 교차하는 찰나를 전한다. 한편 ‘빛의 화가’로 불리는 영국의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1775~1851)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경북 경주 우양미술관은 ‘터너: 인 라이트 앤 셰이드(Turner: In Light and Shade)’를 5월 25일까지 연다.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휘트워스미술관의 협력 전시로, 터너의 판화와 회화, 수채화 등 총 86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터너의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풍경 판화 연작 <리베르 스투디오룸(Liber Studiorum)>을 집중 조명한다. 라틴어 ‘리베르 스투디오룸’은 한국어로 ‘연구의 서’로 풀이된다. 터너가 1807년부터 1819년까지 작업하고 인쇄한 71점의 판화로, 영국과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그린 풍경 스케치가 담겨 있다. 연작 가운데는 19세기 스위스 바젤 대성당의 모습이 담긴 <바젤>을 비롯해 성당 내부와 수도원 회랑 등의 작품도 포함돼 터너가 선과 명암, 여백으로 표현한 신앙의 공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에는 터너가 탐구한 빛을 주제로 한 램프 만들기, 판화 제작, 21세기 풍경 그리기, 미술사 산책 등 연계 프로그램도 상시 운영된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4면

“성직자 아닌 신자?…평신도 의미 조명”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60년, 평신도는 여전히 ‘성직자가 아닌 그 외의 신자들’로 정의되고 있다. 공의회는 평신도를 ‘하느님 백성’으로 명시하며 그 품위를 강조했지만, 교회의 가르침과 실천 사이에는 여전히 괴리감이 존재한다. 「평신도 혹은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현실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평신도 신학은 정말 완성되었는가? 책은 신약성경 시대부터 현대까지 평신도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교부 시대와 중세를 거치며 교계와 평신도는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굳어졌다. 중세에 평신도는 왕과 귀족으로 대표되는 권력자 평신도와 그 외의 백성으로 분할되었고, 대다수 신자는 교계 아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았다. 전환점은 종교개혁과 함께 찾아왔다. 시민사회의 성장과 함께 평신도는 교회의 교황 중심주의에 반발했고, 믿는 이들의 공통된 품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근대에 들어 평신도는 사회와 교회에 동시에 속하며 자신의 직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교계는 평신도에게 사도직에 협력할 것을 요청하며 평신도의 사명을 인정했지만, 여전히 평신도의 정체성과 자율성에 관한 논의는 부족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이러한 성찰들을 종합해 평신도 신학을 재정립했다. 공의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신분 분할 대신 ‘하느님 백성’이라는 공통 정의를 강조했다. 평신도의 세속적 성격이 인정되었고, 그리스도의 사명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의무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영향은 새 「교회 법전」과 1987년 시노드, 교황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교회의 역사를 따라가며 평신도를 이해하는 일이 곧 교회를 이해하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 흐름에 들어가다 보면 평신도의 자각 과정은 곧 교회론의 전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평신도라는 주제는 교회론 총론, 교회와 사회의 관계, 사제 직무의 개념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라는 주제로 확장된다”고 설명한다. 책은 결국 “평신도는 그리스도인이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는 여러 논의, 평신도의 현세성이나 교계 구조를 둘러싼 구분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형성된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며, 중심에는 언제나 공통된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신도는 성품성사를 받지 않았더라도 일상의 자리에서 교회의 사명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다. 교회의 사명은 입문성사에서 시작되며, 각각이 지닌 은사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교계 구조에 참여하는 여부가 평신도의 정체성을 규정하지 않으며, 조직적 구조는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역할을 할 뿐이다. 특히 저자는 ‘종말’의 관점에서 평신도의 사명을 설명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조건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함’을 의미하며, 이는 교회의 신분 구조에 제한되지 않는다. 개인이 받은 은사나 직무를 통해 특화된 사명은 교회 밖에서도 드러나며, 평신도는 세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여정에서 본질적인 역할을 맡는다. 바로 여기에서 평신도에 대한 성찰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설명하기 위한 역사적·조직적 자료’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책은 평신도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제공한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5면

‘창설 80주년’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그림으로 방유룡 신부 삶 기념한다

올해로 창설 80주년을 맞은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창설자 하느님의 종 고(故) 방유룡 신부(1900~1986)의 삶과 영성을 기념하는 전시를 개최한다. 1월 23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전시는 구계숙(마리아) 수녀가 ‘영원한 기도-하느님의 종 방유룡 레오 신부와 점 그리고 점’을 주제로 캔버스 위에 수놓은 작품 20점을 선보인다. 구 수녀는 ‘점’이라는 원형적 기호를 기도와 빛, 우주의 근원, 영원의 기도 등 다층적 의미로 변주하고 확장해, 평생 신앙의 길 위에서 헌신한 방 신부의 삶을 비춘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방 신부의 초상은 점과 연결돼 그가 남긴 선한 영향력,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궤적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방 신부는 ‘점은 자신을 비우는 무아(無我)의 시작이며 끝’임을 강조해 왔다. 구 수녀는 “이번 전시는 점이라는 기호를 통해 점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한 가르침을 준 방 신부의 영성을 재조명하는 것”이라며 “방 신부님의 삶이 점과 점을 이어 하느님께 향한 사랑을 완성하는 영원한 기도였음을 알리고 싶다”고 전했다. 같은 기간 제2전시실에서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설립 50주년 기념 ‘사랑, 더 큰 희망이 되다’ 전시가 열린다. 장애 미술작가들의 활동을 통해 그들이 지닌 재능을 사회와 공유하고, 연대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전시에는 김선태(안드레아)·김예슬(로사)·서주현(체칠리아)·이근희(소피아)·이승윤(미카엘) 작가 등을 비롯한 25명이 참가한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동아리 ‘예림’은 제3전시실에서 정기 회원전을 연다. 예림은 신학대학 내 유일한 미술 동아리로 신학생과 수도자, 평신도 재학생 등 28명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들은 1년간 각자의 신앙적 체험과 일상에서의 영감을 담아 회화와 조소 등 40여 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2025년 정기 희년 표어에서 영감을 얻은 김동희(모세) 작가의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와 정유석(안셀모) 작가의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등을 포함해 예림의 활동을 담은 사진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4면

[새 책] 「한 사제의 묵주 기도」

저자 조정래 신부(시몬·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가 순례 여정에서 매일 묵주를 손에 쥐고 걸으며 떠올린 사색과 기도를 정리한 책이다. 로사리오의 의미와 실천 방식 그리고 각 신비의 단계별 묵상과 기도를 담았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저자는 묵주 알을 하나하나 넘기며 그리스도의 삶을 성모 마리아의 눈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떠오른 생각들을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 책은 한 사제가 순례자로서 겪은 영적 여정의 기록이자, 기도 안에서 자신의 연약함과 마주한 고백록이기도 하다. 특히 진솔한 묵상과 기도 구절들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환희의 신비 4단을 바치면서 “내려놓지 못함은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고, 이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다면, 고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17쪽)라고 성찰하고, 고통의 신비 4단에서는 “주님, 제가 지고 있는 이 십자가의 무게는 당신을 얼마나 더 사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29쪽)라고 기도한다. 이처럼 각 단의 묵상마다 저자 자신의 삶과 신앙 여정이 투영되어 있고, 순례길에서 건진 사유가 한 문장 한 문장에 스며있다. 조 신부는 집필 배경에 대해 “순례 여정 중 긴 시간 묵주기도를 계속 드리면서 걸었다”며 “그때 떠오른 묵상들을 정리해 보았다”고 전했다. 이어 “묵상인지 상상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생각인지 구별하기는 힘들지만, 나름대로 각 신비의 한 단, 한 단마다 어떤 묵상을 해야 할지, 무슨 마음을 가져야 할지, 또 어떤 기도를 드리고 어떤 결심을 해야 할지를 정리해 보았다”고 밝혔다. 책에는 '묵주기도란 무엇인가?', '묵주기도를 바치는 방법', '묵주기도 주요 기도문' 등도 실어 기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발행일 2026-01-18 제3475호 15면

「바실리우스 규칙」…수도자에게 건네는 영적 해답 “복음을 따르라”

‘대(大) 바실리우스’(Magnus, 329/30~379)는 동방교회 4대 교부 중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이단을 논박하며 니케아 신경을 옹호한 신학자이자, 금욕 생활의 개혁을 주도해 후대 수도승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수도 교부다. 특히 그가 남긴 규칙서들은 동방 수도 영성의 기준이 되었고, 서방 수도 전통에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바실리우스의 규칙은 「도덕집」, 「소 수덕집」, 「대 수덕집」으로 나뉜다. 이번 책은 이 가운데 수도승 루피누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소 수덕집」을 옮긴 것이다. 루피누스는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바실리우스 규칙’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루피누스의 번역본을 접한 베네딕토 성인도 자신의 「규칙서」에서 바실리우스 규칙서를 읽으라고 권고한 이후 서방 교회에서 「바실리우스 규칙」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바실리우스 규칙은 「파코미우스 규칙」, 「아우구스티누스 규칙」과 함께 모든 고대 수도 규칙의 토대가 된 ‘모(母) 규칙’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교부학연구회의 ‘그리스도교 신앙 원천’ 제20권으로 나온 이 책은, 지금까지 학술 논문이나 연구서에서 일부만 인용돼 온 「소 수덕집」을 처음으로 완역해 한국어로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눈여겨볼 것은 「소 수덕집」과 「베네딕도 규칙」의 관계다. 베네딕토 성인은 자신의 규칙서 머리말에서 바실리우스가 영적 아들에게 건네는 권고를 떠올리게 하는 어조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다시 한번 “우리의 거룩한 사부 바실리우스의 규칙을 읽으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이 때문에 ‘「베네딕도 규칙」은 바실리우스와 더불어 시작하고 끝난다’는 말을 듣는다. 책에는 바실리우스가 주교의 보조 사제로 활동하던 시기, 여러 금욕 공동체를 방문하며 수도자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전체 203개의 질의응답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는 조항과 명령을 나열하는 일반적인 규칙서와 달리 실제 신앙생활에서 제기되는 질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겸손에 이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죄를 미워할 수 있습니까?” 같은 물음은 오늘의 신앙인에게도 낯설지 않다. 바실리우스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언제나 성경, 특히 복음을 기준으로 답한다. 그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 기억’이다. 그는 성경을 반복해 되새기는 삶을 통해, 신앙인이 일상에서 하느님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15면

“거장들의 성화 한자리에”…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부터 인상주의, 모더니즘까지 유럽의 미술 발전사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갤러리1898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국립중앙박물관 등 대형 미술관까지 아름다운 색채로 올겨울을 수놓고 있는 주요 전시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서울 종로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탈리아·스페인 컬렉션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의 상설 소장품 65점을 선보인다. 1926년 개관 이래 한 번도 해외 반출이 되지 않은 작품 25점도 공개된다. 전시는 거장들의 명작을 통해 서양 미술사 600년을 조망할 수 있도록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20세기의 모더니즘 등 5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전시에는 가톨릭 신앙이 담긴 2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사실적인 세부 묘사가 돋보이는 카를로 크리벨리의 <성모자>(1468년경)부터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의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1660~1665년경)까지 다양한 성화를 통해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에 걸쳐 변화한 르네상스와 바로크 등의 화풍을 비교, 감상할 수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리스도의 체포>(1515년경)는 특히 주목할 작품이다. 신비와 환상을 결합한 화가로 평가받는 보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많은 성화를 작업했지만, 이상화된 모습보다는 비대칭적이고 비현실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작품은 고요한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배신을 저지른 후 몰래 빠져나가는 유다와 검을 휘두르는 성 베드로 사도, 로마 병사 등의 모습 등이 담겨 있다. 그리스 출신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가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는 루카복음(2,8-20)의 말씀을 담은 <목자들의 경배>(1576~1577년경)와 그의 작품 중 가장 사랑받는 <참회하는 성 베드로>도 관람할 수 있다. 스페인 공주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가 마드리드 수도원을 장식할 대규모 태피스트리를 위해 의뢰한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1622~1625년경), 평온한 모습으로 누워 있는 어린 양을 통해 구세주 그리스도를 극적인 대비로 나타낸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하느님의 어린 양>(1635~1640년경) 등도 관람 포인트다. 이 외에도 인상주의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의 <샤이의 건초더미들>(1865년)과 호아킨 소로야의 <라 그랑하의 마리아>(1907년),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푸른 눈의 소년>(1916년) 등 샌디에이고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전시장에는 섹션별로 각자의 시대에 맞게 예술을 표현한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이 흐르며, 가톨릭 작품들이 집중된 르네상스와 바로크 섹션에서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칸타타 <예수는 인류의 소망과 기쁨>, 자코모 푸치니의 미사곡 <미사 글로리아> 등이 감상을 돕는다. 평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주말 오전 11시, 오후 2시에 도슨트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한 1월 17일과 24일, 31일 토요일 오후 5시에는 유튜브 ‘허세미술관’ 채널을 운영하는 이안 디렉터의 ‘그림 좀 보는 이들이 스페인 거장에 열광하는 이유: 샌디에이고 컬렉션 속 스페인 화가의 미술사적 영향력’, 세종사이버대학교 세종휴머니티칼리지 전원경 교수의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미술을 읽는 방법’, 바티칸뉴스의 한국어 번역을 맡고 있는 가비노 김 작가의 ‘왜 양은 발이 묶여 있는가: 희생양의 얼굴들 - 그림 속 신앙, 그림 밖 우리’ 강연도 각각 진행된다. 전시는 2월 22일까지. 운영 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발행일 2026-01-11 제3474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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