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대화」…“놓아 버렸을 때, 비로소 들려오는 하느님 목소리”

교회가 시작된 후 16세기까지는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관상 기도를 그리스도교 영성의 목표로 여겼다. 이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 침묵으로 머무는 기도 방식이다.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거나 묵상하는 단계를 넘어,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계심을 믿고 그 현존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이런 하느님 앞에 조용히 머무는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이어가는 전통적인 방법의 하나로 전해져 왔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 이 유산은 살아 있는 전통으로서는 사실상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이후가 돼서야 그리스도교 관상 전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1975년 ‘향심 기도’ 운동을 시작한 그리스도교 관상 기도의 대가,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 책을 통해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재조명하고, 관상기도를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한다. ‘그리스도교 관상의 길’이라는 부제처럼, 관상 기도의 전통을 현대적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깊이 성찰하면서, 신비 체험의 영역에만 두지 않고, 인간의 심리와 의식 구조를 통과하는 여정으로 설명한다. 그가 정의하는 관상 기도는 우리 삶을 지탱해 온 오랜 욕구와 통제 구조를 하느님 앞에서 서서히 내려놓는 과정이다. 무언가를 이루거나 하느님 앞에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며 자유와 진리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배워가는 도정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결핍과 두려움, 타인과 세상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신앙과 기도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며, 관상 기도가 이 구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서서히 비워 가는 과정임을 밝힌다. 무엇보다 키팅 신부는 관상 기도의 전통을 현대의 심리학적 통찰로 조명한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관상 여정과 그의 영성 세계를 이해하는 사상적 배경을 함께 다룬다. 관상 기도는 인간 의식에 단계적인 변화를 불러오지만, 변화가 언제나 평온하지만은 않다. 기도가 깊어질수록 혼란과 메마름을 경험할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것이 기도를 잘못한 것일까, 오히려 영적 성장이 더 후퇴한 것일까. 키팅 신부는 관상 기도 안에서 경험되는 다양한 어려움을 인간 내면이 정화되는 과정, ‘신적 치료’의 일부이자 필수적이고 보편적인 여정이라고 설명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 성녀 예수의 데레사, 성 안토니오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먼저 걸었던 이들의 체험을 들려주면서, 관상 기도에서 겪는 어려움이 어떻게 이해되고 해석돼 왔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놓아 버림’이다. 이 빈자리에 하느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기회가 마련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들어선다. “기도가 깊어지면서 은총은 우리 정신 깊숙한 곳에 이르러 일생 동안 축적된 정서적 손상과 잔재를 덜어 내게 해 준다. 이성과 의지 행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던 단계에서 직관적 기능을 통해 그분께 직접 다가가는 단계로 옮겨 간다.”(172쪽) 초판 출간 이후 28년 만에 재출간된 책은 새로운 번역으로 오랫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내용을 다시 소개한다. 책의 디자인과 구성도 개편해 가독성을 높였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15면

고통 겪는 청소년과 어떻게 동반할까?…「사랑의 동반 : 청소년의 마음돌봄」

급격한 사회 변화, 경쟁 중심의 교육 환경, 관계의 단절과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청소년들은 정서적 불안, 우울,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 요한 보스코는 복잡한 사회 환경으로 방치되고 외롭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그들의 신체적, 정서적, 영적 삶에 주목했다. 그리고 예방 교육의 본질 가운데 하나인 ‘친절한 사랑(Amorevolezza)’으로 청소년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랑의 동반: 청소년의 성性과 사랑」에 이어 출간된 이 책은 10개 장에 걸쳐 사회 불안, 우울증, 신체 장애, 섭식 장애, 행위 중독, 정신질환, 자해, 자살 괴롭힘 등 장애나 현상을 주제로 다뤘다. 각 장 첫 부분에서는 해당 장애나 현상에 대한 ‘인식’에 중점을 두고, 교육적으로 ‘어떻게 동반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책의 진정한 목적은 청소년들이 보내는 고통의 신호를 민감하게 식별하여 전문가에게 연결하고, 그 마음 회복의 여정에 든든한 조력자로서 함께하는 데 있다.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동반하면서 그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는 책은, 정신 건강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태도도 근본적으로 점검하게 한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15면

「무엇이 가톨릭 교육인가?」 오늘날 가톨릭 교육의 사명을 묻다

가톨릭 신학자이자 종교 교육학자인 토마스 H. 그룸은 40년 넘는 세월 동안 ‘무엇이 가톨릭 교육인가?’라는 물음을 붙들고 가르치고 글을 써왔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그 사유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책의 제목 ‘무엇이 가톨릭 교육인가?’는 그 질문 자체이며, 부제 ‘영적 토대(Spiritual Foundation)’는 답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제1부는 가톨릭 교육의 복음적 기초를 다룬다. ‘예수님처럼 가르치고, 희망을 북돋는 교육’인 가톨릭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짚어낸다. 제2부는 가톨릭 교육의 비전을 풍요롭게 길러 온 역사적 지혜를 보여준다. 초기 문헌 「디다케」를 비롯한 성 아우구스티누스, 베네딕토, 이냐시오, 안젤라 메리치, 메리 워드 등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도 그 가치를 증거해 온 이들의 실천과 정신을 소개한다. 제3부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톨릭 교육을 위한 영성적 기초와 함께 오늘날 가톨릭 교육이 수행해야 할 공적 사명과 역할을 밝힌다.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는 가톨릭 교육은 생명을 위한 교육이며,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지속적인 비전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 교육이 품어 온 영적 원천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쉽고도 통찰력 있게 풀어낸 책이다.

발행일 2026-03-08 제3481호 15면

「AI시대의 삶과 신앙」…“피지컬 AI 시대, 신앙인은 어떻게 살고 믿어야 할까?”

이른바 ‘AI(인공지능) 시대’다.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 ‘그록(Grok)’ 등 생성형 AI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렇다면 종교의 모든 활동에도 이런 AI 기반 로봇들이 활용될 수 있을까. 이미 2017년부터 개발을 시작해 2019년에 공개된 최초의 가톨릭 로봇 ‘산토(SanTo)’는 신앙적 질문에 성경 구절을 인용해 답변하고 묵주기도를 함께 바칠 수 있었다. 2017년 독일에서 등장한 로봇 목사 ‘블레스유투(BlessU-2)’, 일본 교토의 400년 고찰 고다이지(高台寺)에서 설법을 전한 AI 로봇 ‘민다르(Mindar)’ 역시 현재와 같은 고도의 AI가 탑재된 것은 아니었지만, AI가 종교 영역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선구적 사례들이다. AI와 많은 관련 분야를 연구해 온 이론 물리학자이기도 한 저자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는 인간의 삶이 원하든 원치 않든 AI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들어선 현실을 직시하며, “AI 시대의 도래는 우리의 삶과 심지어 신앙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신앙인이 이 시대를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를 차분하고 체계적으로 풀어낸다. 책은 2022년 저자가 발표한 논문 「AI 시대의 도래와 교회의 미래: AI의 현실에 관한 분석과 교회에 끼칠 영향 진단」과 가톨릭신문 기획 시리즈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 II’를 토대로, 최근의 AI 관련 새로운 내용을 대폭 보강했다. 먼저 AI의 정의와 탄생, 발전사를 일반 독자도 이해하기 쉽게 안내한다. 1943년 인공 신경 네트워크(ANN) 이론에서 출발해 1996년 IBM ‘딥 블루’의 체스 대결 승리,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국, 2022년 챗지피티의 등장, 2024년 노벨 물리학상·화학상의 AI 전문가 수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짚으면서, 이른바 ‘피지컬 AI’ 시대의 본격화까지 조망한다. 책의 핵심은 AI와 인간의 본질적 차이에 있다. 저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적 틀을 빌려, AI가 인간의 ‘이성’은 모방할 수 있어도 ‘지성’과 ‘의지력’은 결코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의지력이 없는 AI는 도덕적 선악을 분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성체성사를 포함한 칠성사와 신학적 영역은 AI가 결코 개입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더 주목하는 것은 이미 현실화한 약인공지능(Weak AI)의 문제들이다. 딥페이크, 자율주행, 노동 현장에서의 인간 배제 등을 짚으면서, 그 이면에 자리한 인간의 ‘교만’, 즉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욕망과 무신론적 과학만능주의의 확산을 신앙적 차원의 핵심 도전으로 제시한다. 아울러 프란치스코 교황의 AI 규제 촉구 문헌과 레오 14세 교황의 책임·분별력 요청으로 이어지는 교회의 목소리를 소개하며, 저자는 교회가 AI 윤리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추천사에서 “AI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 그 흐름을 타고 현명하게 대처해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항해하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며 “이번 책은 AI 시대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화두를 열어 주었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5면

은총 가득한 도예 작품과 함께 십자가의 길 묵상 「십자가를 품다」

‘흙에서 얻는 즐거움(土喜)’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는 이경희(에드부르가) 도예가와 학교법인 선목학원 사무차장 나영훈 신부(안토니오·대구대교구)가 함께 쓴 십자가의 길 기도서다. 기도문과 관련된 십자가 도예 작품도 함께 감상하며 묵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책은 이경희 도예가의 십자가 도예 작품 활동과 묵상에서 비롯됐다. 십자가의 길 기도 제1처 ‘예수님께서 사형 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에서 십자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초연(超然)한 손’을 발견한 도예가는 그 손을 통해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청한다. 그리고 십자가 도예 작품 활동 안에서 책임과 의무의 십자가가 하느님 은총으로 완성됨을 깨닫는다. 여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품속에 넣거나 가슴에 끌어안는 ‘품다’라는 의미를 알아 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경험했다고 이 도예가는 고백한다. “받아들이고자 하는 일은 그만큼 힘든 일이지만 끝까지 할 수 있는 힘과 결실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14처 작품이 완성될 때 알게 됐다”고 밝힌 이 도예가는 이 책으로 십자가의 길 한 처, 한 처를 묵상하며 걷는 모든 신자가 하느님 은총 안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깊은 사랑과 행복을 깨닫게 되길 희망한다. 아울러 이 책의 탄생과 함께한 십자가 도자조형물은 3월 20일까지 대구 남산동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 예담갤러리(대구 중구 남산로4길 111 2층)에서 열리는 전시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주일 휴관.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5면

[이달의 잡지] 2026년 3월

■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레오 14세 교황의 첫 권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한 교회의 길을 모색했다. ‘교구의 재발견’은 2024년부터 2026년까지 ‘청소년·청년의 해’를 지내며 젊은이들의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부산교구장 손삼석(요셉) 주교를 만났다. ‘이달에 만난 사람’은 지난해 3월 산불 피해를 딛고 신앙 공동체의 보살핌 안에서 자라나는 안동교구 영양본당 어린이들을 인터뷰했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독일 뮌헨대교구에서 활동하는 교회 음악가 여명진(크리스티나) 씨가 사순 시기에 깊은 수난 묵상을 돕는 성가 <수난 기약 다다르니>를 소개했다. ‘가 보고 싶었습니다’에서 대구대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배재영(안토니오) 신부는 제주 4·3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했다. 전인병원 진료과장 이소담(마리아) 한의사는 봄의 생명력과 간(肝)의 소통법에 관해 설명했다. <대구대교구/1800원> ■ 생활성서 ‘고해성사, 마음의 울림’을 주제로 한 이번 호는 사순 시기를 맞아 고해성사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특집을 통해 글라렛 선교 수도회 박재형(미카엘) 신부는 고해성사라는 ‘기적의 자리’에서 우리 죄보다 더 강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대해 들려주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는 청소년 지원 시설 ‘평화의샘’을 찾아 상처로 무너졌던 청소년들이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었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생물학 전공 이소연(아녜스) 박사가 ‘과학으로 만나는 신앙’, 유명 수학 강사 윤지섭(요셉) 원장이 ‘수학으로 만나는 신앙’을 통해, 세상 만물을 섭리하고 계시는 하느님 존재에 대해 묵상했다. 성 프란치스코 선종 800주년 기념 특별희년을 기념한 곽외심(클라라) 씨의 평신도 묵상도 실었다. 인기 있는 교회사 코너 ‘예수 그 이후’에서는 ‘신앙을 받아들인 바이킹’을 다뤘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부활 맞이 대청소’를 특집으로, 신앙생활 안에서 쌓인 나태함과 무관심의 먼지를 털고, 다시금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영적 대청소’의 경험을 나눈다. ‘인터뷰 - 깨소금 신앙’에서는 서울대교구 청년 성령쇄신봉사회 봉사자 김하윤(가타리나) 씨를 만나 자기 뜻과 욕심을 비우고 하느님 뜻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 사목정보 ‘AI 시대 교회의 동행’을 주제로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를 만나 AI 시대의 본질에 대해 알아봤다. 특집에서는 한창현(모세) 신부, 오석준(레오) 신부, 최진일(마리아) 교수가 AI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재구성하는 이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을 온전히 지켜 낼 수 있는 식별과 성찰의 방향을 제시한다. 기획 코너 ‘WYD를 향한 은총의 여정’에서는 WYD 인천 교구대회 조직위원회 사무국장 유영욱(프란치스코) 신부가 인천교구 교구대회 준비 등에 관해 들려준다. <미래사목연구소/1만원>

발행일 2026-03-01 제3480호 15면

역사와 신학적 흐름으로 읽는 「신약성경 입문(역사, 저술, 신학)」

신약성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원이자, 초기교회 공동체가 간직한 신앙의 기억이다. 단순히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신앙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때문에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나뉘는지, 또 어떤 과정을 거쳐 글로 묶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절정에 이르는지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신약성경 입문 (역사, 저술, 신학)」은 프랑스어권 가톨릭·개신교 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저작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신약성경을 역사·문학·신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안내한다. 원서는 스위스 라보르 에트 피데스 출판사에서 2000년 출간 이후 네 번째 개정판까지 이어지며 신약학 분야의 표준 개론서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오랜 세월 사랑받아 온 이유는 신약성경을 하나의 단편적인 주제로만 다루지 않고, 역사와 신앙의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했기 때문이다. 이번 번역본은 네 번째 개정판을 기준으로 했다.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해 본문이 재정비됐고, ‘예수에게서 복음서까지’라는 새로운 장을 추가해 내용을 한층 보강했다. 책은 총 7부 29장과 부록으로 구성됐다. 예수 전승에서 시작해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바오로 문학, 요한 전승, 가톨릭 서간, 경전 확정과 본문 비평까지 신약성경 27권을 역사적 배경과 집필 상황, 문학적 구성, 신학적 목적이라는 여러 층위에서 균형 있게 살핀다. 신약성경을 읽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주제들을 선별해 제시하면서, 각 문헌의 집필 배경과 문학적 특징, 신학적 의도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학문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의 경우 주요 가설들을 간결히 소개했다. 마르코복음을 다루는 대목에서는 ‘복음(euangelion)’이라는 단어가 지닌 이중 의미를 분석한다. 복음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이자 그분에 관한 서술이자 증언이라는 두 방향으로 소개한다. 사도행전의 경우 ‘예수님의 역사 다음에 사도들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고대 그리스도교에서 유일무이한 행위’(197쪽)라고 평가한다. 계시가 예수님의 생애로 국한되지 않고 교회의 역사까지 포괄하는 사건으로 이해된다는 것이다. 요한 묵시록은 단순한 종말 예언이 아니라 억눌린 공동체를 향한 위로와 각성의 선언으로 해석한다. 묵시문학의 저자들은 억압받는 소수 집단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당대 사회와 권력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다고 설명한다. 책이 지향하는 바는 ‘정답 제시’가 아니라 ‘읽기의 안내’다. 신약성경을 잘 읽고 이해하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처음 접하거나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물론, 성경 공부의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도 도움을 준다. 책 말미에는 용어 해설과 명칭, 주제 색인을 실어 활용도를 높였다. 전통적인 역사비평 방법론에 설화적 방법을 긴밀히 접목해 성경 본문 주해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 평가받는 책임 저자 다니엘 마르그라는 “이 입문서가 신약성경을 소개하는 역할, 곧 신약성경으로 이끌고 그것을 읽어 나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밝혔다.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5면

‘죽음’ 부정하는 현대인에게 일침…「죽음의 신비」

인간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죽음. 가톨릭 신비가이자 의사였던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의 저작 「죽음의 신비」는 죽음을 둘러싼 교회의 신앙 전체를 하나의 신학적 흐름 속에서 조망한다. 죽음을 감상적 위로나 체험담으로 다루지 않고, 인간 실존의 가장 두려운 한계이자 하느님의 섭리가 가장 깊이 드러나는 자리로 바라보는 책이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책은 죽음을 다양한 신학적 층위에서 다룬다. 구약성경의 죽음 이해(4장)에서 시작해, 죽음을 하느님의 섭리로 읽는 시선(5장), 바오로와 요한복음이 선포하는 ‘독침을 잃은 죽음’과 ‘부활이요 생명’의 의미(6, 7장), 교회와 성사 안에서 살아 있는 죽음 이해(8, 10장)로 전개된다. 이어 성인들의 죽음(9장)과 성모 마리아의 죽음(11장)에 이르기까지, 교회 전통 속에 축적된 죽음의 경험이 하나로 엮인다. 특히 병자성사를 다루는 10장은 죽음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개인적 사건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와 함께 건너가는 신앙의 사건임을 강조한다. 성인들과 성모 마리아의 죽음은 ‘죽음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긴 삶’의 얼굴을 보여 주며, 죽음을 두려움만이 아닌 완성의 순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한다. 이번 책은 특히 현대인이 죽음을 부정하거나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려는 태도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죽음을 끝으로만 이해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죽음에 더 사로잡히며, 허구적 초월과 자기 신격화로 도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통제하고자 하는 시도는 자유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불안과 공포를 더 증폭시키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슈파이어의 시선은 단순한 비판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죽음의 냉혹함을 끝까지 직시한 뒤, 그 자리에서 신앙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도록 이끈다. 바로 그 인정의 순간에야 비로소 인간은 하느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고, 죽음은 절망의 벽이 아니라 은총의 문턱으로 드러난다고 제시한다. “라자로에게서 죽음이 극복된 사건은 주님의 부활을 미리 전망하는 입장에서도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라자로의 죽음이 주님 죽음의 예형이 된다는 점에서 부활의 위력을 앞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유의미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 하느님께서 뜻하신 것이 우리의 눈앞에 훤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바로 창조주이시며 구원하시는 분임을 분명하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145쪽)

발행일 2026-02-15 제347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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