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톨릭 신앙 입문: 화란 새 교리서」(수정 증보판)

점점 더 세속화되어 가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종파와 이단이 난무하는 한국의 그리스도교 상황에 식상해 있으며, 신자들 역시 오래전 세례 당시 배웠던 교리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교리서 마련이 교회의 급선무 가운데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히 유용한 교리 교육 도구가 새 단장을 하고 한국교회에 소개됐다. 「가톨릭 신앙 입문: 화란 새 교리서」 수정 증보판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쇄신과 적응이라는 화두에 걸맞게 현대인의 실존적인 상황과 눈높이에 맞게 집필된 교리서로, 출판 당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오랫동안 많은 예비자 교리교육뿐만 아니라 신자 재교육에 큰 역할을 해왔다. 화란 교리서는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인간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에서부터 제시하고 있다. 이 교리서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시까지 널리 퍼진 문답식이나 연역적 방법이 아닌, 계시 진리를 중심으로 하는 첫 번째 서술식 교리서였기 때문이다. 이 교리서는 형식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새로운 점이 많다. 무엇보다 이 교리서는 ‘말씀’에서 출발하는 가운데 계시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중요하지만 딱딱할 수밖에 없는 교의나 교리가 그 중심을 이루지 않고, 하느님 말씀 안에서 구원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또 인간의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 등 우리의 일상을 하느님의 구원 활동과 분리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생 문제에서 시작하여 선(善)을 향한 끊임없는 인간의 갈망을 파고들고, 여러 민족의 종교 안에 있는 하느님의 흔적을 찾아 가톨릭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교리서는 크게 5부로 구성돼 있다. 전체 구조는 신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들을 숙고하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귀납적 전망을 제시한다. 역자는 지난 2004년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에서 교리교육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서 12년간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로서 신학생을 양성하고, 동시에 10년 이상 주교회의 소속 교리교육 위원회 총무로 활동한 교리교육학자인 부산교구 박종주(베드로) 신부다. 박 신부는 몇 년 전 사제품 은경축을 보내며, 교리교육학자로서 한국교회에 의미 있는 열매를 맺어주고 싶은 지향으로 이 방대한 작품의 수정 증보판을 준비했다. 몇 년간 이어진 박 신부의 작업을 통해 그간 교회의 곳간 깊숙이 숨어 있던 이 보화가 새롭게 단장해서 신자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글 _ 윤주현 베네딕토 신부(가르멜 영성연구소장)

2024-09-15

안셀름 그륀 신부 「감정 학교」…마음 속 불편함 극복하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받으면 복수심이 생기기 쉽다. 똑같이 상처를 주거나 내가 받은 상처에 상응하는 피해를 주고 싶다. 상처가 깊을수록 복수심도 강해진다. 거기에 이끌리면 상상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경솔한 짓을 할 수 있다. 고대 신화 속에서도 영웅들이 분노와 광기에 휩싸여 격분하고 거대한 힘을 쏟아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상처를 받았다는 기분이 드는 순간 솟구치는 복수심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선택에 달렸다. 복수심이 제멋대로 날뛰게 되면 우리가 오히려 가해자가 되고 상대방을 희생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기도로 표현된 복수심은, 하느님이 다시 정의를 세울 것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악인들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변할 수 있다. 저자 안셀름 그륀 신부는 ‘시기심’과 ‘복수심’, ‘걱정’, ‘공허함’, ‘평정심’ 등 인간의 대표적인 감정 48가지를 통해 감정이 어떻게 우리 존재를 규정하고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지 알려준다. 감정의 정의와 오해, 감정이 만들어진 유래와 역사적 사례, 감정의 특징과 기능을 들려주면서 감정의 중요성과 위험성 및 감정 대처법, 성찰과 활용 등을 나눈다. 잘못된 감정적 대응으로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 속 인물들의 사례와 융의 심리학을 결합해 감정의 양면성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억누르거나 아니면 화를 참지 못해 터트리고 후회하는 악순환에 대해 그륀 신부는 감정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감정은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또한 세상과 타인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다. 마음속 날뛰는 감정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면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회사 업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어디에서나 싫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피할 수 없이 미움받는 일도 일어난다. 이때 우리는 쉽게 무력해지고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그륀 신부는 감정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나 자신과의 관계 맺기와 더불어 가족과 회사 동료, 친구, 이웃 같은 여러 인간관계 속 갈등도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힌다. 모든 감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잘 살피고, 대화를 나누며, 그 감정의 정당성과 의미를 찾아 우리 삶에 긍정적인 힘이 되도록 고민하는 것이다. 감정의 또 다른 의미는 ‘나와 남을 연결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마음속에서 느끼고 외부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한다. 그륀 신부는 “먼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열리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느끼면 마침내 서로의 인격이 만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인격은 합리적 주장보다 감정 속에서 더 많이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감정은 우리 인격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불편한 감정 안에 인생의 해답이 있다”는 저자는 “부정적인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저 내 돌봄이 필요한, 나의 위로를 기다리는 아픈 감정만 있을 뿐이다. 모든 감정은 삶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색깔임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다양한 감정을 초대하고 그것들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일깨운다. 더 이상 감정에 휘둘리거나 억누르지 않고도 말이다.

2024-09-15

「존재 영성의 시작」…은총 속 하느님과 나의 일치를 사는 방법

인류는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러나 우리 삶도 더 나아졌을까. 문명의 핵심은 인간임에도 우리는 인간이 점점 더 소외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 현대인은 ‘스스로 나 자신 되기’에 집중한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유한함으로 인해 스스로 나 자신 되기는 결국 자기소외로 마무리된다. 자칫 이기심에 빠져,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물질로 공허함을 채우려는 끝 없는 탐욕의 악순환에 갇혀버릴 수도 있다. 「존재 영성의 시작」에서 저자 양정식 신부(마르코·살레시오회)는 이러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은총 안에 하느님과 나의 일치를 사는 ‘존재 영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재 영성이란 무엇일까? 은총으로 주어지는 신적 본성에 내 존재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 본성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존재 영성은 하느님 안에 있는 자기 존재를 깨닫게 함으로써 절망에 이르게 하는 자기부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존재 영성은 하느님 안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로 살아가기다. “존재 영성은 나만의 영성, 혹은 너만의 영성이 아닙니다. 존재 영성은 나와 너, 즉 우리의 영성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느님 사랑과 은총에 영원히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나가는 말’ 중에서) 저자는 캄보디아 포이펫에서 돈보스코학교 총책임자(Director)를 맡고 있다. 돈보스코학교는 캄보디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지적 가르침뿐 아니라 희망을 선물하는 선교사다. 캄보디아라는 영적 사막에서 선교사로서 살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깨달은 저자는 그 원천으로 독자를 초대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존재라는 어렵고 지루한 주제를 저자는 철학과 신학 용어로 알기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주제가 주제인 만큼 숙독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영성서적을 읽을 때 자주 접하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영성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

2024-09-08

「요한 카시아누스의 참된 자유」…권위에 맞서 복음 지킨 영성 묵상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유’의 사전적 정의처럼 사람들 대부분은 자유를 바란다. 그러나 자유와 자의(恣意)를 혼동하기도 하고, 내가 바라는 자유가 진정 무엇인지 잘 모르기도 한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5장 1절에서 “자유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여기서 자유는 진정 어떤 의미일까. 신앙인들이 되새겨야 할 참된 자유는 무엇이고, 또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일까. 이집트의 수도승 요한 카시아누스는 정치적·교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타인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지향하는 자유로운 영적 삶을 추구했다. 책은 서방에 동방 영성을 전한 위대한 교부 요한 카시아누스의 생애와 글을 통해 참된 자유에 대해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끈다. 요한 카시아누스가 살았던 4~5세기는 정치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혼란한 시대였다. 콘스탄티노플의 군사력은 풍전등화였고 로마는 그리스도교 대도시 중 우위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서고트의 알라리쿠스와 그의 군대에 점령당하고 만다. 신생 종교였던 그리스도교 상황도 좋지 않았다. 올바른 신앙 고백을 두고 치열한 싸움이 진행 중이었다. 이런 혼돈 속에서 그의 화두는 ‘권력자들인 당시 황제와 신하들, 관리들은 백성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도록 허용되었는가? 그리스도인은 욕망과 악에 저항할 의지가 있는가?’ 등이었다. 그는 자기 길을 찾아 사막으로 나섰다. 당시 사막에는 내적 자유를 찾아 떠나온 많은 이들이 있었다. 요한 카시아누스는 그가 찾아가 만났던 사막 교부들이 그들을 유혹하고 괴롭히며 충동질하는 생각과 어떻게 싸우는지 보았다. 어지러웠던 시기에 세계를 떠돌며 동방과 서방, 도시와 사막이라는 극과 극의 생활을 접하고 경험했던 요한 카시아누스는 「담화집」 등의 글에서 어떻게 하면 속박에서 벗어나고,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내적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지 살폈다. 「담화집」에서 친구 게르마누스와 요한 카시아누스는 경험 많은 수도승에게 평온함에 다다르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묻는다. 핵심은 ‘아나코레스’(Anachorese)였다. 그리스어로 ‘물러남, 피난, 휴식’을 뜻한다. 낡은 습관과 관념에서 벗어나고, 우리에게 필요하거나 우리가 해야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이다. 아울러 공허함을 견디고 평정함을 찾고 본질적인 것을 위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막 교부 및 교모의 영성을 전공하고 지금은 고대부터 중세 초기의 영성을 현대 정신분석과 연결하는 작업 중인 저자는 요한 카시아누스의 가르침으로 삶 속의 실패, 실수, 죄, 위기 등을 다룬다. 그리하여 본질적인 것을 인식하기 위해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깨닫도록 한다. 교만과 슬픔, 분노, 온유, 단식, 분별, 습관 등 우리가 일상에서 늘 고민하는 내용들이 요한 카시아누스를 비롯한 사막 사부들의 지혜 속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유롭게 되고 자유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십니다. 여기서 자유란 선을 행할 자유, 하느님의 선한 계명을 깨닫고 그 계명에 따라 사는 자유를 뜻합니다. 목표는 마음의 순결입니다.”(117쪽)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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