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서간 등 알기 쉽게 해설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

성경이라고 하면 흔히 먼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하는 복음서를 떠올린다. 그러나 복음은 네 권의 복음서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세운 이스라엘의 역사, 초대교회가 그리스도 신앙을 삶의 질서로 받아들인 서간들 안에서도 복음은 살아 움직인다. 성경을 알기 쉽게 해설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 9권과 26권은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콜로새서와 테살로니카서 등 이름은 익숙하지만 깊이 읽기는 쉽지 않았던 성경 본문을 오늘의 교회와 신앙의 자리에서 다시 읽도록 이끈다. 이 본문들은 우리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기는 바빌론 유배 이후 하느님 백성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되짚으며 신앙의 정체성을 새롭게 세우는 과정을 보여 준다. 족보와 다윗 왕조에 대한 강조, 성전 중심의 예배, 계약과 갱신이라는 핵심 주제를 역사적·문학적·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역대기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약과 자비, 회개를 통한 회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드러낸다.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는 유배 이후 공동체가 겪은 종교·사회적 재건 과정을 탐구한다. 특히 바빌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귀환의 여정을 하느님이 이끄신 제2의 이집트 탈출로 바라보고, 에즈라의 영적 쇄신과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을 통해 유배 이후 이스라엘이 어떻게 새로운 영적 공동체로 거듭났는지 설명한다. 이어 신약의 콜로새서는 그리스도의 우주적 통치권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낸다. 그리스도를 통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강조하며, 콜로새 교회가 직면했던 그릇된 가르침의 실체를 짚는다. 테살로니카서는 신약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쓰인 문헌으로 꼽히는 서간을 통해 초기 복음의 핵심이 어떻게 교회 안에 뿌리내렸는지를 분석한다. 동시에 공동체에 이 서간이 왜 필요했는지, 그 안에 담긴 신앙의 권고가 오늘날 교회에 지니는 의미를 주목한다. 티모테오서는 이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신학적 유산이 변화하는 시대 안에서 창조적으로 적용된 결과물로 바라본다. 바오로 사도가 겪은 고독과 배신,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되새기며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티토서는 교회 직제가 확립되는 과정과 로마 제국의 통치 아래 살아가던 초대교회가 자신들의 고유한 정체성을 세워 나간 과정을 살핀다. 끝으로 필레몬서는 이 서간이 단순히 주인과 노예 사이를 중재하는 개인 서신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였음을 밝힌다. 당시 노예제도 문제를 신앙 안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내는지를 성찰하며,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제시한다.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5면

기도가 어려운 이들에게…「기도, 할수록 좋네요」

기도는 신앙생활의 중심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그만큼 많은 신자가 어려워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리고 눈을 감고 하느님을 기다려 봐도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을 때면 막막하기 때문이다. 예수회 사제이자 다양한 책과 매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전 세계 수많은 신자와 소통 중인 저자가 생활 속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기도 안내서를 펴냈다. 2021년 펴낸 「기도, 이렇게 하니 좋네요」의 후속으로 월간지 「Give Us This Day」의 칼럼에 기고한 글을 모은 책이다. 전작이 기도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을 일상의 언어로 전했다면, 이번 책은 삶의 여러 순간과 전례력 안에서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지를 더욱 폭넓게 안내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분명히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모든 시간은 결국 우리를 변화시킨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수회 수련자 시절 첫 영적 지도신부가 전해 준 인생 최고의 조언을 독자에게 전한다. 그 가르침은 ‘하느님은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 당신을 만난다’는 것.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거창하고 영적인 기술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된다는 이야기다. 마음이 평안할 때뿐만 아니라 내면이 불안과 메마름, 탄식과 어둠으로 가득한 시기라도 자신의 삶을 기도 안으로 가져갈 수 있음을 전한다. 책은 크게 기도의 기초, 다양한 필요를 위한 기도, 기도의 방법들, 전통 기도,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전례력에 따른 기도 등으로 구성된다. 청원과 전구기도, 예수기도, 화살기도, 묵주기도, 성체조배 등 전통적인 기도 방법을 다루면서도 설명은 쉽고 간결하다. 독자는 이를 따라 자신의 상황에 맞는 기도 방법을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 있다. 특히 책은 ‘개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화해와 치유, 평화, 생명 존중, 정의, 이주민과 난민, 굶주린 이들, 임종을 앞둔 이들과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기도까지 다룬다. 기도가 자신의 안위와 위안에 그치지 않고 세상과 이웃을 품는 신앙의 행위임을 일깨우고, 타인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수 있도록 독려한다. 쉽고 단순한 저자의 글에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유머와 실제적 조언이 담겨 있다. 친구에게 말하듯 하느님께 솔직히 이야기하라는 권고, 하루를 돌아보며 하느님이 어디에 계셨는지 발견하는 양심 성찰의 안내는 기도에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의 문턱을 낮추고,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책은 기도를 ‘잘하는 법’보다 ‘기도하며 살아가는 법’을 묻는 책이다. 바쁜 일상, 흔들리는 마음속에서도 하느님께 말을 건네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권한다. 기도는 완벽한 마음을 갖춘 뒤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을 하느님께 내보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임을. “기도하는 중에 문득 떠오르거나 의식하게 되는 생각(깨달음), 감정, 기억, 이미지, 열망, 몸의 느낌, 그리고 때로는 어떤 단어나 구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238쪽)

발행일 2026-06-14 제3495호 15면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 두 종교학자의 대담…AI 시대, 종교의 역할은?

신(神)은 잊히고 인간은 인공지능(AI)으로 대체되는 시대, 종교는 어떤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시대의 질문에 종교학의 두 석학이 해답을 제시한다. 비교종교학의 대가로 불리는 오강남 명예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종교학과)와 종교심리학자 성해영 교수(서울대학교 종교학과)가 2011년 출간한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이후 15년 만에 개정증보판 「종교, 다시 깨달음이다」로 다시 돌아왔다. 두 학자는 종교와 영성에 관한 대담을 통해 어제의 믿음을 해부하고, 내일의 영성을 내다본다. 책은 먼저 ‘탈종교화’에 주목한다. 최근 국내 한 여론조사 기업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40%에 그친다. 특히 저연령층일수록 종교가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낮아져, 20대 4명 중 3명은 종교가 없다. 두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뿌리에 ‘표층종교’가 있다고 분석한다. 표층종교는 경전의 문자적 의미에만 몰두하고, 종교를 ‘현재의 나’가 잘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를 말한다. 사후에 ‘좋은 곳을 가려고’ 헌금하거나 선행하는 모습도 결국 자신의 안녕을 위한 행동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종교는 이대로 사라지는 것일까. 저자들은 오히려 자유가 확대된 사회에서 개인들이 공허와 혼란을 겪고 있으며, 기성 종교가 쌓아온 지혜가 인간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템플스테이 열풍과 명상·마음챙김 애플리케이션의 확산 역시 많은 사람이 깨달음과 영성에 갈증을 느낀다는 방증이다. 특히 개정증보판에서 새로 더해진 마지막 4부는 AI 시대의 종교를 묻는다. 저자들은 종교가 맡아온 위로와 치유의 역할마저 AI가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이 노동과 생존의 압박에서 벗어날수록 삶과 죽음, 초월과 같은 종교의 근원적 질문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도 커진다고 본다. 이에 저자들은 표층종교의 반대 개념으로 ‘심층종교’를 제시한다. 심층종교에서 헌금과 선행은 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을 넘어 더 넓은 자아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수행이 된다. 저자들이 말하는 심층종교의 핵심은 바로 ‘깨달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책은 20세기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의 통찰도 소환한다. 라너가 “미래의 그리스도인은 신비가이거나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듯, 신앙은 제도와 교리의 외적 수용을 넘어 하느님을 체험하는 내적 깊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와 관상기도, 14세기 영국의 익명 수도자가 쓴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 등은 그리스도교 안에 이어져 온 관상과 수행의 전통을 보여준다. “붓다, 예수와 같은 위대한 스승은 인간이 지향해야 할 궁극의 깨달음을 또렷하게 설파했습니다. 비록 후대의 종교 권력이 자주 왜곡했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여전히 경이롭게 다가옵니다.”(244쪽) 저자들이 말하는 깨달음은 이성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인간 이성이 다다른 한계 너머의 깊이를 체험하는 일이다. 신앙은 지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을 넘어서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책은 AI 시대의 종교가 제도와 형식, 자기 안녕을 비는 신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인간 내면을 깊이 두드리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묻는 종교, 곧 ‘심층종교’로 돌아갈 때 종교는 다시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15면

[이달의 잡지] 2026년 6월

■ 경향잡지 ‘경향 돋보기’에서는 ‘사제로 살아가기’를 주제로, 우리 교회의 사제 양성과 사제의 삶에 관한 성찰을 나눈다. 허찬 신부(베드로·목포가톨릭대학교 교수), 정창주 신부(프란치스코·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김영수 신부(헨리코·전주교구 치명자산성지 관장)의 글이 실렸다. ‘신약성경 비하인드, 신비’에서는 바오로 사도의 조력자이자 ‘위로의 아들’로 불린 바르나바 사도에 대해 알아본다. ‘초록의 안부를 전하는 시간’에서는 주교의 진분홍색 모자 ‘주케토’를 닮은 꽃을 소개한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3900원> ■ 빛 ‘다시 만나는 마르코복음’에서 인간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첫 말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에 대해 묵상한다. ‘가 보고 싶었습니다’에서는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가실성당,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을 소개한다. ‘레지오마리애 릴레이’는 경산본당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찾았다. <대구대교구/2500원> ■ 생활성서 특집 ‘지상의 평화’는 이창항 신부(세바스티아노·성 바오로 수도회 준관구장), 레바논 마론파 가톨릭교회 무니르 카이랄라 주교, 우리신학연구소 황경훈(바오로) 연구원의 목소리를 담았다. 각각 제2차 세계대전 수용소, 전쟁의 한복판인 레바논, 2024년 내전과 테러를 겪은 스리랑카 이야기를 통해 폭력에 맞서는 인간의 품위와 희망을 전한다. ‘아침을 여는 기도’에서는 구정모 신부(마르코·예수회)가 투병 중 만난 마음속 어둠, 그리고 그 가운데 주님을 만난 깊은 기도와 은총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생활성서/4800원> ■ 월간 꿈CUM 손용환 신부(요셉·원주교구 동해 북평본당 주임)는 ‘맹신부의 복음 톡talk’에서 분열과 일치의 기원을 전한다. ‘지상에서 천국처럼’에서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가 공동선을 주제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2005년 세계 평화의 날 주제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를 다룬다. ‘꿈CUM 수필’에서는 안영(실비아) 소설가가 평화에 대한 단상을 풀었다. <월간 꿈CUM/5000원> ■ 참 소중한 당신 특집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묵상하고, 그 사랑과 자비를 닮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뷰 - 깨소금 신앙’에서는 여주 민들레학교 이경세(미카엘) 교장을 만나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품는 사랑 이야기를 듣는다. ‘청년, 세상을 그리다’에서는 김지혜(안나) 씨가 닫힌 문 너머, 또 다른 문으로 오시는 하느님에 관해 들려준다. <미래사목연구소/4000원>

발행일 2026-06-07 제3494호 15면

방향 잃어버린 시대에 ‘사랑’의 척도를 묻다 「신애론」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1115년 프랑스 클레르보 계곡에 수도원을 세운 후, 유럽 각지에 수도원을 잇달아 설립하며 12세기 그리스도교의 중추적 인물로 자리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 성인이 평생 붙들었던 질문이다. 베르나르도 성인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한 중세교회의 대표적 신학자다. 수도원장이었지만 교회의 여러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영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 수도자로서 또 수도자의 스승으로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 불타는 삶을 전하려 애썼다. 「신애론」은 성인이 쓴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를 1부에 수록하고, 2부에는 원전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엮은이의 해설을 함께 담았다. 그의 사랑 신학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책이다. 1부는 베르나르도가 아이메리코 추기경의 요청에 답하는 형식으로 쓴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 원문이다. ‘하느님을 왜 사랑해야 하는가’, ‘어떤 척도로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두 물음에서 출발해, 하느님의 복과 사랑의 본질, 사랑의 네 단계를 거쳐 체르토사 수도원 형제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서한으로 마무리된다. 베르나르도의 답은 단순하면서도 깊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서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보다 더 마땅히 사랑받을 존재는 없으며, 하느님보다 더 큰 유익을 주는 사랑도 없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도에게 인간은 진리를 향해 움직이는 존재이며 그 움직임이 곧 사랑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사랑이 단번에 완성될 수 없음을 직시한다. 사랑은 인간의 나약한 본성 안에서 점진적으로 정화되고 고양되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그는 네 단계로 설명한다.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육체적 단계에서 출발해, 자신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식별의 단계,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단계를 거쳐, 마침내 하느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거룩한 사랑의 단계에 이른다. 이 네 단계는 추상적 이론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에서 출발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내적 여정이며, 동시에 사랑이 지녀야 할 방향과 기준을 제시한다. 성인은 인간의 사랑이 존엄성, 지식, 덕이라는 세 가지 선을 통해 성숙해 간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기준으로서의 정의를 강조한다. 하느님 사랑을 감정이 아닌 질서를 지닌 ‘여정’으로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 깊다. 2부는 암브로지오 M. 피아조니의 해제다.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된 해제는 베르나르도를 둘러싼 12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사회와 교회, 클뤼니 수도원과 시토회의 수도원 개혁 운동을 짚은 뒤, 베르나르도의 생애를 상세히 따라간다. 클뤼니와의 논쟁, 1130년의 교회 분열, 성전 기사단과의 관계, 제2차 십자군 전쟁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대를 헤쳐 나간 한 수도자의 궤적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의무」의 원문과 출처, 출판 시기와 독자들, 구조와 내용을 꼼꼼히 해설하며, 베르나르도 영성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핀다. 오늘날 사랑은 점점 그 방향과 기준을 잃어 가고 있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지 않는 시대에, 9세기를 훌쩍 넘어 건너온 베르나르도 성인의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15면

이냐시오 영성이 제안하는 영적 식별법 「생각과 마음 사이」

삶의 갈림길 앞에서 어떤 선택이 옳은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흔히 이성에 기대거나 감정에 휩쓸린다. 「생각과 마음 사이」는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위한 영적 식별 안내서다. 책은 이냐시오 영성에 뿌리를 둔 식별의 방법을 다섯 장에 걸쳐 풀어낸다. 1장은 감정(Emozione)과 감정적 태도(Sentimento)를 구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흔히 뭉뚱그려 쓰는 ‘감정’이라는 말 안에 얼마나 다른 층위가 있는지를 먼저 살피자는 것이다. 2장은 갈망을 다룬다. 저자는 갈망을 ‘성령을 담는 그릇’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갈망을 주님 앞에 내어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과의 참된 관계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뜻밖의 방식으로 찾아오는 기회들을 저자는 별에 빗댄다. 그 별 같은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는 갈망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3장은 기도로 이어진다. 기도란 삶의 갈망과 정서, 사건들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자리이며, 삶이 기도 안으로 들어오고 기도가 다시 삶 안으로 들어오는 ‘들숨과 날숨 같은 움직임’이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4장과 5장은 실제 결정의 문제를 다룬다.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빛난다고 다 금이 아니듯 결정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식별할 것인지를 짚는다. 책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선택의 결과보다 선택에 임하는 태도다. 저자는 식별이 ‘하느님께서 미리 써두신 대본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삶에 대해 자신의 응답을 쌓아가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 어떤 배움의 길을 택할지, 자신의 삶을 어디에 바칠지,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는 그 물음들 앞에서,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어디인지를 분별하도록 돕는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를 존중하시며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시지만,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몫이라고 저자는 짚는다. 자기계발서와 선을 긋는 입장도 뚜렷하다. 책의 목적은 높은 성과가 아니라 ‘생각과 마음이 서로 화해하도록’ 초대하는 데 있다. 판단을 서두르지 말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하며, 판단은 하느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도 거듭 당부한다. 각 장 끄트머리에 놓인 질문들은 그 화해의 실마리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진정으로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삶 안에서 유혹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나요?” 정답을 향해 독자를 몰아가는 대신, 지금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천천히 들여다보도록 공간을 열어 준다.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 여유가 독자를 더 깊숙한 묵상으로 이끈다.

발행일 2026-05-31 제3493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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