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형의 클래식순례] 카리시미의 오라토리오 <입타>

5월 26일은 성 필립보 네리 사제(1515~1595)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필립보 네리 성인은 로마에서 활동하며 신자들의 영성을 지도했고, 재속 사제들의 공동체인 오라토리오회를 설립했습니다. 더불어 성인은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음악 장르인 ‘오라토리오’라는 이름이 바로 오라토리오회에서 연유했기 때문입니다. 오라토리오회에서는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묵상과 설교를 행했는데, 성인은 성경과 성인전, 일상생활을 소재로 친근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깊이 있는 설교를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로마 사람들이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 성당, 산타 마리아 인 발리첼라 성당에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설교와 묵상 사이에 찬가(Lauda)를 불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주일이나 중요한 축일의 저녁기도에서 전문 음악가들의 음악 작품을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1부에서 설교를 듣고 2부에서는 음악을 듣는 형태가 되었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는 음악 작품을 1부와 2부로 나누고 중간에 사제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라토리오회를 중심으로 음악 형식이 발전하면서 그 이름은 오라토리오가 되었고, 결국은 독립적인 음악 장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형성된 17세기 오라토리오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작곡가는 자코모 카리시미(Giacomo Carissimi, 1605~1674)였습니다. 그는 평생 로마에서만 활동하면서 방대한 작품을 썼는데, 그중 열다섯 곡의 ‘히스토리아’는 오라토리오 형식의 완성을 알린 걸작으로서 음악사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 작품들은 사순 시기에 로마의 오라토리오 델 산티시모 크로치피소 성당에서 연주하려고 만들어졌습니다. 카리시미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마르크-앙투안 샤르팡티에, 요한 카스파르 케를 등 외국인 제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오라토리오를 쓰면서 오라토리오 형식이 전 유럽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카리시미 오라토리오 중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서 당대부터 유명했던 <입타(Jephte)>는 1648년 무렵 만들어진 작품으로, 구약성경 판관기 11장에 나오는 입타의 일화를 음악으로 꾸몄습니다. 입타는 전쟁에서 암몬 사람들을 물리치게 해주시면 돌아가서 자신을 맞으러 처음 나오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했는데, 그의 딸이 맞으러 나오지요. 카리시미는 같은 시기에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초기 오페라의 여러 기법과 형식을 받아들여 강렬한 극적 표현을 시도했는데, 팽팽한 긴장감과 신랄한 반음계, 깊은 감정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주님 앞에서 한 맹세 때문에 딸을 제물로 바치게 된 입타의 한탄, 이를 받아들이는 딸이 노래하는 라멘트(멀리서 들리는 ‘메아리’ 효과가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합창에는 여전히 듣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습니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17면

<임쓰신 가시관> 부른 ‘낙산중창단’, 40년 만에 의기투합

1980년대 생활성가 열풍을 일으켰던 ‘낙산중창단’(단장 박정우 후고 신부)이 40여 년 만에 다시 뭉친다. 낙산중창단은 5월 30일 서울대교구 도림동성당에서 ‘낙산중창단 <임쓰신 가시관> 발표 40주년 기념 공연’을 개최한다. <임쓰신 가시관>은 낙산중창단이 녹음했던 비공식 앨범명이자 타이틀 곡명이다. 도림동본당 주임인 박 신부는 “1983년부터 1985년도 사이 입학해 사제의 꿈을 꾸던 젊은이들이 중년이 된 지금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 뜻깊은 공연을 마련한다”며 “4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80년대 청춘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중창단이라는 의미에서 젊은이들의 축제인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도 축하하고 홍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공연은 신자 뿐 아니라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30일 무대에 서는 낙산중창단 멤버는 박 신부를 비롯해 서울대교구 성음악위원회 위원 최호영(요한 사도) 신부, 생활성가 가수 신상옥(안드레아), 지 토마스, 이상필(요한 사도), 안종수(요셉) 씨다. ‘신상옥과 형제들’ 멤버와 수원교구 갓등중창단 OB도 찬조 출연한다. 낙산중창단은 성직자와 평신도로서 각자 삶의 자리를 채우고 있던 멤버들 중 공연할 수 있는 6명을 꾸려 도림동성당 사제관을 연습실로 삼아 지난해 7월부터 공연을 준비했다. 연습 자체도 40년 만이었다. 그렇게 10개월 넘게 호흡을 맞췄다. 기억 속의 화음을 다듬고 악보를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 낙산중창단은 공연을 한 달여 앞두고 이제 막판 담금질에 들어갈 예정이다. 낙산중창단은 1985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재학하던 신학생들이 창단했다. 1986년 11월 직접 작사·작곡한 곡과 더불어 기존의 젠(zen) 성가, 민중가요 등을 편곡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생활성가로 널리 알려진 <임쓰신 가시관>도 신상옥 씨가 작곡했다. 곡들은 SNS가 없던 시절임에도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퍼져 청년 신자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낙산중창단은 가톨릭대 신학대학 축제 ‘감골제’ 등에서 공연했지만 이후 군에 입대하거나 수원교구와 인천교구 신학생들이 수원가톨릭대학교로 이동하면서 1년이 조금 넘는 활동을 아쉬움 속에 마무리했다. 당시 수원가톨릭대학교로 옮기게 된 신상옥 씨는 ‘갓등중창단’을 창단했다. 신 씨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물결은 신학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학생들도 자유로움 속 각자의 개성과 자아를 펼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낙산중창단’”이라며 “음악을 좋아하던 신학생들이 취미로 한 곡 한 곡 연주하며 소통하고 공연하던 것이 어느새 중창단 창단으로 이어졌고, 그 때의 열정을 신학교 신부님들도 좋게 봐주시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17면

구하우스 미술관, ‘기후 위기의 경계 1.5℃’전

“우리가 환경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행동하는 것이다.”(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경기도 양평 구하우스 미술관(관장 구정순 아우구스티나)이 특별한 전시를 마련했다. 10인의 작가가 ‘기후 위기의 경계 1.5℃’전을 통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예술로 조명한다. 이번 전시는 지구 생태계의 현주소를 알리고, 더 나아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기획됐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후위기를 표현했다. 김선우 작가는 멸종된 도도새를, 변대용 작가는 서식지를 잃어 가는 북극곰을, 김시하 작가는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의 흔적 등을 담아냈다. 회화,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로 표현된 멸종된 생명체와 생존 위기에 처한 동물, 해양 쓰레기로부터 태어난 괴생명체 등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으로 인해 생겨 난 자연의 변화를 직시하도록 한다. 특히 5월 한 달 동안은 연계 프로그램으로 특별 강연이 열린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현대 미술과 환경 문제의 접점을 소개하고,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후 위기의 과학적 실체와 대응 방안을 강의한다. 이어 권춘희 조경 전문가는 자연과 인간, 공간의 관계를 조경학 관점에서 풀어낸다. 김지운 학예연구원은 “기후 위기는 현재 우리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다”며 “이번 전시는 예술의 언어로 쓰인 하나의 보고서이자,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14면

9~18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 전시

가톨릭스테인드글라스회의 특별전과 이도경·최민정 작가의 개인전이 5월 9~18일 서울 명동 갤러리1898(관장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에서 열린다. 가톨릭스테인드글라스회(회장 박정석 미카엘, 담당 정순오 미카엘 신부)는 제2전시실에서 ‘빛의 십자가’를 주제로 <그리스도와의 참 만남>, <길>, <기적> 등 45점을 전시한다. 회원들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각자의 묵상과 신앙고백을 담아냈다. 박정석 회장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찬란한 빛은 자신을 희생하며 우리에게 구원의 빛을 주신 주님의 십자가와 많이 닮았다”면서 “전시를 통해 사람들이 빛이신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기도한다”고 밝혔다. 이도경(젬마) 작가는 제1전시실에서 ‘그리움 거름되어’전을 연다. 행복했던 유년 시절 속의 엄마와 성당 사람들 등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반으로 가른 수녀님>, <보이는 기도>, <절대지존님> 등 13점의 점토 공예를 선보인다. 최민정(로사) 작가는 제3전시실에서 이콘전 ‘Lux, Icon’을 마련한다. 라틴어 빛(Lux)과 이콘을 결합한 의미로, 하느님의 거룩한 빛을 향해 나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담아냈다. <성모영면>, <저승에 내려가심> 등 총 27점의 작품을 내보인 최 작가는 “이콘 앞에서 머무는 짧은 시간이 기도의 시작이자 영혼의 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14면

“좋은 그림이 주는 위로, 한 사람의 버팀목 될 수 있죠”

“좋은 미술 작품은 좋은 친구와 같다고 생각해요. 같은 작품이라도 하루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그림이 다르게 보여요. 작품을 바라보며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다 보면 마치 대화를 나누듯이 기쁨도, 위안도 얻을 수 있죠.” 예술전문기업 (주)헬리오컴퍼니 한혜욱 대표(헬레나·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는 미술 작품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 프랑스 파리 보자르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팡테옹 소르본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시간은 그를 자연히 전시 기획자의 길로 이끌었다. “파리에서 매일 같이 미술관과 성당을 오가며 몇 시간씩 그림을 구경했어요. 오후에는 거리와 공원을 다니며 사람들을 지켜봤죠. 당시 교수님께서 ‘그림을 그리려면 사회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거든요. 이방인으로서 외로운 날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한 발 떨어져 예술과 사람, 사회를 바라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쌓인 시간이 지금의 저를 있게 했죠.” 파리에서 돌아온 한 대표는 약 20년 동안 크고 작은 전시회를 통해 작품과 관객이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전시를 기획하며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어떤 그림을 선보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렘브란트가 어둠에서 빛을 찾아 대상에 내재된 본질을 포착했고 뭉크가 자신의 고통을 대표작 <절규>로 승화해 관객에게 말을 건네듯, 그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이란 관객의 내면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품이다. 누군가는 캔버스에 까만 칠만 한 그림에서 감동을 얻기도 한다. 때문에 한 대표는 새로운 작가를 만날 때 그의 작품을 오래 걸어 두고 지켜본다. 한두 달의 시간이 지나도 또 보고 싶은 작품일 때 전시를 결정한다고. 긴 고민 끝에 탄생한 전시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어깨가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스한 위안으로 가닿는 순간을 지켜볼 때 어떤 작품을 전시하느냐가 결국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 작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항상 관심을 갖고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한 대표는 내년 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릴 기획 전시 준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가 끊임없이 새로운 그림을 찾고, 그림을 가까이하는 이유는 하나다. 하나의 좋은 그림이 한 사람의 버팀목이 된다는 믿음을 많은 이에게 전하고 싶은 것. “매일 같은 업무를 반복하듯 작품들을 보다 보면 어느새 기쁨은 사라지곤 해요. 그럴 때면 컴퓨터 앞에 앉아 제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한 장씩 감상해요. 스트레스는 금세 사라지고 편안해져요. 지금은 미술관이 연인들의 흔한 데이트코스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직까지 미술관을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죠. 미술은 전 세계 공통 언어라고 하잖아요. 많은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전시 문화를 위해 새롭고 좋은 작품들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싶어요.”

발행일 2025-05-11 제3441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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