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밖 볼 줄 아는 의사 되고 싶습니다”

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에서 치매 환자를 진료하는 신경과 의사 구본대 교수(마태오·서울 개포동본당)는 3월 9일 제23회 한미수필문학상에서 지역사회 치매 돌봄터에서 환자들과 함께하며 느낀 감동을 담은 수필 ‘우리들의 블루스’를 출품해 장려상을 받았다.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의 돈독한 관계와 신뢰 회복을 취지로 한다. 수필을 쓴 계기에 대해 구 교수는 “치매 돌봄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료실 밖에서 마주한 환자들에게서 받은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병원 진료와 강의로도 빠듯한 스케줄이지만, 구 교수는 매주 인천 지역 치매 돌봄터와 치매안심센터 4곳에서 치매 환자와 보호자 면담, 진료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진료실에서의 관계에만 충실할 수 있음에도 환자들과 진료실 너머의 동반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 교수는 “환자이기 전에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역설했다. “30년 전 의사가 된 후 늘 환자를 진료하는 현장에만 있어야 했어요. 지난 3년간 치매 돌봄터에서의 경험은 치매라는 질병을 진료실에서와는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게 했습니다.” 구 교수는 “진료실에서는 환자를 진료 대상으로만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여러 환자를 봐야 해 초진 경우 15~20분, 재진은 5분이라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진료가 이뤄진다. 또 진료실에서는 원인 질환을 감별하기 위한 검사를 시행하고 약제를 처방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된다. 증상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의 호소가 있으면 행동 조절 약제를 추가해서 처방하는 정도다. 환자들 또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없다. “돌봄터에서의 경험은 환자에게서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어르신의 모습을 바라보게끔 했다”고 구 교수는 밝혔다. 노래 부르기 등 돌봄터 활동 삼매경 중에도 구 교수가 나타나면 먼저 나와서 반갑게 손잡고 인사하는 어르신도 있다. 구 교수는 “잠깐 머물다 가는데도 늘 환대하는 어르신들 진심은 진료실에서는 볼 수 없는 뭉클한 온기이자 의사의 보람”이라고 전했다. “검사와 처방 위주 진료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어요. 자세히 면담하면 여러 가지를 알게 돼 더 나은 치료를 할 수 있죠.” 수필 내용이 되기도 한 지난해 연말 돌봄터에서 열린 치매 안심 노래자랑은 구 교수에게 “영혼이 정화되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환자인 어머니 기억을 되살리고자 가사와 관련된 소품을 준비한 딸, 초로기 치매 환자인 아내 손을 꼭 잡고 ‘사랑해’ 하며 노래를 부르던 남편, 가사를 까먹어 눈물을 못 감추는 환자인 어머니를 위해 함께 노래 불러주던 가족들…. 구 교수는 “이렇듯 하느님 모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환자들과 인간적 신뢰를 맺는 영적 치유도 의료인의 사명임을 되새겼다”고 말했다. “물질 너머 영적인 것을 상상할 줄 아는 것이 가톨릭신자다운 삶”이라는 그의 고백대로다. “감동이 더 많은 이에게 퍼지길” 희망하며 상금 전액 300만 원을 바보의나눔에 기부한 구 교수. 그는 끝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믿음”이라며 “신뢰 위에 돌봄터 활동을 계속해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의사가 내게 가장 좋은 처방을 했다는 환자의 믿음이 있어야 그다음 만남이 이뤄집니다. 환자에게서 사람을 발견하는, 진료실 밖을 볼 줄 아는 의사로 소임하고 싶습니다.”

2024-05-19

“평신도 입장 대변·역량 강화 위해 노력합니다”

1994년 평신도 신학운동을 지향하는 이들이 힘을 모은 가톨릭 평신도 연구소,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가 설립됐다. 평신도 신학자로 양성되고 활동하려는 가톨릭 청년 연구자들 중심으로 이들의 활동을 지지하는 평신도와 사제, 수도회와 단체 등이 조합 방식으로 함께한 결과였다. 당시 창립 회원 대부분은 1970~80년대 천주교 사회 운동에 어떤 형태로든 몸담은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교회 쇄신과 사회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 특별히 현장 운동을 지원하는 학술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우신연 출범은 이런 배경 속에서 평신도가 시작한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다. 지난 2월 말 우신연 총회에서 새 소장으로 선출된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는 “30년의 세월은 창립 목적을 실현하는 과정이었지만 자원이 빈약한 연구소로서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최대의 성과와 보람은 그 시간을 버텨내며 경제적 어려움, 교회 내 반대 진영의 방해에도 평신도 신학 연구소로 우뚝 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에서 우신연 역할의 가장 큰 의미를 “평신도 입장을 대변하고 평신도가 교회와 세상에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하는 것”으로 꼽은 그는 또 “시대의 징표를 먼저 읽고 교회가 관심 기울이지 못한 영역에 있는 이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소장은 “종교, 교회 모두 어려움에 직면한 때에 소장에 취임하게 돼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각오가 새롭다”고 취임 소감을 말하며 “종교와 교회가 모두 본래 역할을 다함으로써 다시 활력을 찾고, 그 일에 우신연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창립 때 회원들은 경제적 안정보다 생각의 자유를 선택하자고 결의했고, 이에 따라 교회와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많다 보니 비판과 견제도 많았습니다. 평신도 목소리를 대신하는 것이 때로 성직자를 공격하는 것으로 비칠 때도 있었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론과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시노달리타스를 교회가 실현해야 할 모습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박 소장은 “이를 거스르는 흐름과는 앞으로도 단호히 맞설 것이고 그러면서도 우신연이 이를 사는 모범이 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우신연은 시작부터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 주제를 선정하고 이를 통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박 소장은 “연구소가 현재 우선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 ‘가속화하는 탈교회 현상을 멈추는 것'과 떠났던 신자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매력 있는 교회’를 만드는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라며 “여러 연구 단체와 연대하는 가운데 그 해결책을 조사하고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우신연은 올가을 3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다음 30년의 방향과 과제를 논의하는 회원 대상 세미나를 여러 차례 열 예정이다.

2024-05-12

“의사이자 봉사자로서의 삶, 주님께서 이끌어 주셨죠”

“돈 몇 푼 더 받는 것보다 소외된 이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죠. 후배들도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환자를 만나는 의사가 되길 바라요.” 지난 4월 5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제52회 보건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요셉의원 신완식(루카·74) 전 의무원장은 소탈한 웃음과 함께 시종일관 겸손했다. 신 전 원장은 지난해 은퇴했지만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여전히 요셉의원으로 진료 봉사를 나오고 있다. 보통은 진료실에 있지만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있으면 직접 방문 진료를 가기도 한다. 그는 표창에 대해 “지금껏 받았던 상에 ‘대통령’상이 없어서 주신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이어 “요셉의원에서 16년째 봉사하는 노고에 대해 좋게 봐줬다고 생각한다”면서 “의사이자 봉사자로서의 삶은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감염내과 권위자로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신 전 원장은 정년을 6년 앞둔 2009년 3월 요셉의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줄곧 언젠가는 꼭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던 그는 “교수 시절 은퇴한 선배를 찾아뵀는데, 봉사하고 싶어도 몸이 너무 힘들다는 말을 듣고 봉사에도 다 때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요셉의원에서의 생활은 대학병원과 사뭇 달라 적응하기 어려웠다. 신 전 원장은 “일반 병원과 가장 달랐던 건 몸과 마음을 모두 치유해야 하는 ‘전인적 치료’를 한다는 것”이라며 “세상에서 천대와 냉소를 받던 환자들은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 처음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어르고 달래며 환자들을 진심으로 대하자 닫혔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막상 신뢰를 얻자 깨달은 건, 환자들이 마치 겉은 딱딱한 갑옷을 입은 것 같지만 속은 정말 여리다는 것입니다.” 신 전 원장은 “투덜대며 쌀쌀맞게 굴던 어느 할머니께서 다음 진료에는 머리핀까지 꽂고 해맑은 미소를 보였던 때 정말 큰 행복을 느꼈다”고 기억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은 그가 끝까지 봉사하는 의사로 남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 신 원장은 “이곳의 많은 환자가 무시당할까 봐 일반 병원 가기를 꺼려했다”며 “여기는 그래도 나를 ‘인간’으로 대한다고 느껴 마음 편히 진료를 받으러 오신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지금도 조심스럽고 따뜻하게 환자를 대하고 있다. 그는 “봉사자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며 “다들 시간을 쪼개가며 봉사하러 오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은퇴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옛날 같지 않지만 봉사자들을 보면 얼른 진료하러 가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한다. 신 전 원장에게 의사라는 직업은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다. 그는 “의대생들에게 강의를 하던 때 항상 왜 의사가 되고 싶은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조언했다”고 전했다. “후배들이 먼 훗날 ‘나는 타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의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24-05-05

“브뤼기에르 주교 알아가면서 우리 신앙 성장할 것”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이 한 번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 신자들의 발걸음이 중국에 남겨진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발자취를 따라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조화수(바오로) 회장은 4월 16~21일 5박6일 동안 서울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중국에서 마련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에 참여한 뒤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번 순례는 중국 내 미묘한 종교 정책에 의해 본래 순례하기로 정했던 목적지를 방문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속에서 희망도 찾을 수 있었다. “순례를 마치고 받은 소감을 말한다면, 신앙인으로서 모든 일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주도 하에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중국의 복잡한 종교 상황으로 인해 이번 순례의 중요 순례지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시그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순례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암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번 순례를 통해 ‘불쏘시개’를 주신 것 같습니다.” 조 회장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국교회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초대 조선교구장 시복시성 기도’를 바치다 보면 ‘조선 선교를 자청한 뒤 온갖 고난과 질병을 극복하면서 오로지 조선에 들어가 선교하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온 삶을 봉헌한 브뤼기에르 주교’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기 기도문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떤 성직자인지를 알려주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브뤼기에르 주교에 관해 1831년에 임명된 초대 조선교구장이라는 사실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조 회장은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한 모범을 보인 사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홀대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이 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부름 받았을 때 순교까지 각오하고 ‘예’라고 응답했기 때문에 한국교회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중국 순례는 앞으로 지속해야 할,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의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화수 회장은 “신자들이 한국교회사를 공부할 때 이승훈(베드로)이 첫 세례를 받은 뒤 평신도들의 주도로 한국교회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더라도 초대 조선교구장이 브뤼기에르 주교라는 점과 조선교구 설립 과정을 모른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한국교회의 초석이며 한 축이 된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도 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4-28

“지구 훼손에 책임있는 노년이 앞장서 공멸 막아야”

“우리 베이비붐 세대는 풍요와 편리를 이유로,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훼손하고 젊은이들의 미래를 빼앗아 왔습니다. 이를 회개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멸을 막는 데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마음뿐이에요.” 불타는 지구의 화재 현장으로 긴급출동하는 소방대원의 마음,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각오로 노년 기후운동단체 ‘60+ 기후행동’(이하 기후행동)은 2022년 1월 19일(119) 창립 발대식을 올렸다. 민윤혜경 운영위원(아녜스·67·서울 청담동본당)은 창립 때부터 기후행동 일원으로서 삼척 화력발전소 반대, 국민연금의 석탄투자 반대 등 피케팅 및 세미나를 비롯한 활동에 꾸준히 함께해 왔다. 민윤 위원은 “손주들이 살아갈 지구를 어떻게든 나은 모습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니어 기후 활동가로 나서게 됐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회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민족 화해, 사회정의 실현 등 다른 문제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를 실현할 사회도, 평화를 되찾을 민족도 결국 먼저 지구가 살아 숨 쉬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윤 위원은 2020년 미국 서부를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을 현지에서 접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 폭염이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했다. “파란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삽시간에 붉고 검은 밤이 깔렸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재앙이 거실 창문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죠. 기후위기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는 충격으로 눈뜨게 됐어요.” 그는 “그런 재앙을 앞당긴 것이 젊은 날 무분별한 개발주의 일변도로 달려왔던 우리 베이비붐 세대였기에 다른 세대보다 노인 세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태적 회개를 바탕으로 후손들을 보살피는 어른으로 모범을 보여야 다른 세대가 기후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민윤 위원은 “노년 세대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들은 기후위기에 맞서는 젊은 세대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축적된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막다른 길에 빠진 청년들을 트인 길로 안내하고, 안정된 노년의 시간·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적극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피케팅, 삼척 맹방해변을 순례하며 바치는 생태적 회개 기도…. 아랑곳하지 않는 거대 자본을 저지하려는 이 작은 움직임들이 “곧 신앙고백이자 생태적 순교”이기에 가치를 갖는다고 민윤 위원은 말했다. 단번에 지구를 푸르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작은 영적 헌신이 모여 하느님 창조 질서를 세상에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긍지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어떠한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민윤 위원. 그는 끝으로 “노년의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 질서 보전’의 직무를 사명감으로 수행할 것”이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손주들을 위해 노년을 가치 있게 봉헌할 것”이라고 전했다.

2024-04-21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집필 박재형 작가

“제주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의 발자취를 더 깊이 알고 모범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 삶을 새겨 우리 신자들도 신앙의 불꽃을 더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3월 1일 제주교구가 발간한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을 집필한 박재형(프란치스코·72·제주 중앙주교좌본당) 작가는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님께서 90여년 전 이곳 제주에서 고난의 시기를 신자들과 함께 하며 활동하신 골롬반 신부님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전기 집필을 요청하셨다”며 “자료조사와 집필 과정은 지난했지만 한편으로 신부님들의 열정과 희생정신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책 1부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개, 2부는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골롬반 신부들의 제주 선교, 일제강점기 수난을 담았다. 이어 ‘제주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다한 신부님들’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제주에 머물렀던 70명의 골롬반 선교사 중 지역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13명의 신부를 상세히 소개했다. 초대 제주지목구장 헨리(현 하롤드) 대주교를 비롯해 항일 운동에 참여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형무소에 끌려갔던 라이언(나 토마스) 신부, 고향인 아일랜드보다 제주에 더 오래 살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맥그린치(임피제) 신부 등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집필에 들어간 박 작가는 “골롬반 신부님들의 행적을 찾아 신자들을 만나면서 ‘노인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느꼈다”며 “5~10년 전 준비했더라면 더 충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도 있다”고 전했다. 박 작가는 1983년 ‘아동문예’에 동화, 2022년 월간 ‘문학’에 시로 등단한 문인이다. 초등학교 교사 정년퇴임 후 현재 집필과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삶의 희망을 준 목자 맥그린치」(1991, 2005)와 「수도자의 삶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제주교육의 선구자 최정숙」(2009, 2016, 2019), 「하느님의 종 라크루 신부」(2021) 등 제주 교회 대표 인물들의 전기도 집필했다. 박 작가는 “골롬반 신부님들은 세간살이라곤 야전용 침대와 미군 담요뿐이었던 절제와 청빈의 삶을 사셨고, 초상이 났을 때는 발 벗고 나서 장례 의식에 최선을 다하고, 레지오 회합 후 신자들과 2차 주회를 즐기며 문화가 낯선 제주에서 조화롭게 사목하려 노력하셨다”며 “책이 하느님 나라를 제주에 건설하려는 신부님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제주교구는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 500부를 제작, 전국 각 교구와 가톨릭교회사 연구기관, 교구 내 각 본당과 공소, 가톨릭 관련 대학과 제주 소재 공공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2024-04-14

국민포장 받은 이영숙 수녀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임종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힘든 수술을 하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요청하기만 하면 밤 늦은 시간에라도 달려가 임종자가 평화롭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어요.” 비영리 재단법인 마뗄암재단 이사 이영숙 수녀(베드로·77·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는 1987년부터 성모자애병원(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원목실 호스피스 상담실장으로 활동하며 “하느님께 받은 은혜 중에 제일 복되고 소중한 것은 선종의 선물”이라는 신념으로 임종자들에게 헌신해 왔다. 이영숙 수녀는 임종자들을 위한 한결같은 헌신의 공로로 3월 21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제17회 ‘암 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받았다.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제가 해 오고 있는 일에 대해 하느님께서 꽃다발을 주실 만하면 주실 것이라고만 믿고 살아왔어요. 상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는데 당일까지도 무슨 상인지도 몰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상 받을 아무 이유도 없어요. 하느님이 주신 상이라고 여기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수녀가 40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처럼 임종자들이 평화로움 속에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헌신한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이 수녀가 국민포장 같은 상을 몇 번을 받아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거의 매일 임종자들을 돌보았고, 하룻밤 사이에 7명이 돌아가시는 순간을 뛰어다니다시피 곁에서 지킨 날도 있었습니다. 제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임종 전에 자신의 인생을 후회 없이 정리하고 기쁘게 하느님 품 안에 안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는 분들을 신앙 안으로 인도하고 하느님 앞에 갈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마련해 드리고, 함께 기도했어요.” 임종자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보다는 자신이 지은 잘못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수녀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임종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예수님이 못 박힐 때 옆에 있던 죄인처럼 깨끗해진 영혼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임종자들이 받아들일 때만큼 기쁘고 보람 있을 때는 없어요.” 이 수녀는 주위에서 기본재산 없이 법인 설립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 8월 18일 보건복지부로부터 마뗄암재단 인가를 받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뗄암재단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암환자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무료 피정과 쉼터를 제공하는 ‘강화마뗄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이영숙 수녀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임종자들이 마지막 생을 무료로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은인의 기부로 강화마뗄쉼터 인근에 부지를 마련했고 건물 설계까지는 진행된 상황이다. 아직 많은 이들의 후원이 필요하다. “임종자들이 가장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집을 지어 그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건물을 짓고 필요한 부대시설을 마련하는 데 큰 재원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을 임종자를 위한 집의 회장님으로 모셨으니 아무 걱정 없습니다. 저는 심부름꾼일 뿐이고 예수님께서 부족한 것을 다 채워주시리라 믿기에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24-04-07

신임 평화나눔연구소장 정수용 신부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시대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평화나눔연구소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희망하며 2015년 문을 연 평화나눔연구소. 9년차에 접어든 연구소는 한반도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평화를 염원하며 한 길을 걸어왔다. 지난 3월 15일 5기 연구위원회 출범과 함께 평신도가 맡았던 소장 자리에 사제로서 처음 임명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는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연구소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화해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고민하고 함께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관계 안에서 북한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봤던 연구소는 올해 새롭게 꾸려진 연구위원들과 함께 ‘북한사회’에 집중할 예정이다. 정치적인 대립에만 몰입된 남북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우리 안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고등학생 통일 인식조사에서 불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이 점점 높아져, 2023년에 39%에 달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한반도 문제가 점점 더 이분법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충돌 이슈만 접했을 뿐, 북한 사람들의 현재 실상은 알지 못합니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단편적인 사건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적대감만 남게 되는 것이죠.” 북한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패션은 무엇이고,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정 신부는 “북한을 온전히 이해해야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평화나눔연구소는 올해 평화학, 북한학 등을 전공한 5기 연구위원들과 함께 북한 실상 등 한반도 내부 문제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북활동에 있어 국가가 북한 체제에 집중한다면, 교회는 북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자 분야의 존중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잊게 만들었다. “북한과 관련된 활동이 관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는 민간단체의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해를 위해 교회가 오랫동안 해온 노력도 한순간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이죠. 정치적 충돌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대의를 모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점점 더 요원해 보이는 한반도 평화의 길.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작은 희망의 씨앗은 현실에서 평화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평화나눔연구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용서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절망적이었던 순간,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는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남북관계가 안 좋은 지금, 평화나눔연구소는 더욱 열심히 용서와 일치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24-03-31

97세 ‘수세미 할머니’ 부활 선물에 500가지 사랑 가득

인천 모래내본당 최고령 신자 이종옥(도미니카·97) 할머니는 올해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손뜨개질을 하느라 바쁘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부활·성탄마다 손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를 500개씩 떠서 본당 전 신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1년 내내 수세미 1000개를 뜨는 강행군이지만 이 할머니는 오히려 “나누는 기쁨이 더 커서 오히려 뜨면 뜰수록 힘이 차오른다”며 웃었다. 소소한 선물이지만 바늘코마다 순수한 선의만이 깃들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서 시작된 이 할머니의 나눔이기 때문이다. 46세 무렵,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지 않았는데도 문득 “성당에 가야겠다”며 신앙을 갖게 됐듯 “인간의 뜻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이유를 찾는다”는 그의 고백대로다.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뜨개질은 이 할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오랜 방법이다. 젊어서도 조끼, 스웨터, 치마 등을 떠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순간 잡념도 어느새 사라질뿐더러,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코 한 코 기도도 같이 해줄 수 있다”는 할머니만의 기쁨도 있다. 알고 지내는 신자들에게만 장갑, 목도리 등 큰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수세미를 뜨기로 했다. “작은 선물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신자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가 450명이라 500개씩 뜨고 있어요. 오랜만에 성당에 나온 교우나 이웃 본당 교우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50개씩 더 뜨고 있답니다. 특히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를 나누는 것도 많은 교우가 성당에 오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수세미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 할머니는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고 표현했다. 특히 “할머니 팔 아프신데 그만 떠 주시고 쉬셔요”라며 이 할머니의 수고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 오히려 힘이 안 든다”고 미소 지었다. 옷 뜨개질보다는 손이 덜 가도 수세미를 뜨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 할머니는 “기분 좋은 날에는 하루 20개씩을 뜰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나쁘면 하루 한 개도 뜨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척추와 고관절에 병이 있어 하반신도 잘 쓸 수 없는데 다리는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앉아서 뜨개질에 집중하다가 침대에 눕기를 되풀이하는 투혼은 필수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부활과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며 열두 달 내내 뜨개질을 한다. “되살아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나누어 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힘의 원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은 뜨개질뿐이지만 그로써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싶다”는 이 할머니. 그는 “보잘것없어도 부엌 한편에 늘 있는 수세미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한다”는 유일한 작은 바람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매년 선물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더 고맙고 힘이 납니다. 나중에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 할머니 생각난다’며 위령기도나 한번 해주셔요~!” 이종옥 할머니는 “작은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수세미를 뜨고 있다”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2024-03-31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 섬기는 마음으로 한센인과 함께했습니다”

“중국 선교사제로서 한센인들과 함께했던 여정은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신동민 신부(스테파노·인천 용현동본당 대이작도공소 공소사목전담)는 한센인들 안에 계신 버림받은 예수를 섬기고자 20여 년 중국 산골에서 한센인 선교사제로 투신했다. 1997년~2007년 산시(陕西)성 상뤄(商洛)시에서, 2012년~지난해 구이저우(貴州)성 리핑(黎平)현에서 한센인 전문 요양원 인애원(仁爱院)을 세우고 사목했다. 신 신부는 당시 한센인들이 죽어서도 나올 수 없었던 수용소 같았던 곳에 인애원을 세웠다. “한센인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했다. 대학생 시절, 국내 한센인 시설을 돌아다니며 봉사하면서 “신앙도 생명의 가치도 모르는 그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싶다”는 성소를 받았다. 1996년 작은형제회 사제로 서품 후 부산교구 구라마리아회의 연결로 중국으로 선뜻 떠난 건 ”절망 속에 부르짖는 인간 안에서 위로를 갈망하는 그리스도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 신부가 마주한 한센인들의 삶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육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신호체계인 신경세포를 죽이며 말초신경계에 손상을 초래해 손발이 마비, 기형을 일으키고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나균이 몸에 침투하면 눈까지 머는 등 복합 장애가 찾아왔다. “손가락과 발목이 피부 껍질에 간신히 붙어 있는, 장애 그 이상의 아픔”이라고 신 신부는 밝혔다. 신 신부는 “병에 걸린 순간 부모, 자식,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센인들이기에 심리도 철저히 망가졌다”고 회상했다. “영육 양쪽으로 사무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애가 탔지만, 감사의 눈조차 잃어버린 그들의 절망만을 번번이 마주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의 분변을 받아내고 기저귀를 채워주면 그 기저귀를 일부러 벗어 던지거나 이불에 문질러 버리고, 그를 반복하는 일도 있었다.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반항이었어요.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신앙뿐이었기에 한결같이 그들을 신앙으로 회심시키는 수밖에 없었어요.” 수도회 총원에서 “헌신해봤자 공산당에게 빼앗긴다”는 반대로 상뤄시 인애원에서 철수해야 했던 건 신 신부의 가장 큰 아픔이다. 결국 인천교구로 이적해 교구 병원 대외협력부장 직함으로 리핑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신 신부를 유일한 가족으로 의지하던 한센인들을 버리고 왔다는 책임감에 지금도 신 신부는 “자신을 기다리다가 죽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로 리핑현 인애원은 중국나사협회로 이관됐고 신 신부도 중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협회 봉사자 자격으로 중국을 드나들며 시설을 관리한다. 1~3개월 방문해 농사를 돕거나 전기·수도 시설을 고쳐주고 필요한 물품을 채워주고 있다. 신앙이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기쁨 때문이다. 1월 15일부터 인천교구 대이작도공소에서 공소사목을 펼치는 신 신부. 그는 “공소사목도 선교사로서의 삶의 연속”이라며 인천 본토에서 44km 떨어지고 상주 사제가 없는 섬 주민들을 위해 사목에 자원했다. 끝으로 신 신부는 "이렇듯 국내에서도 선교사제로서 사람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전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202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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