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기에르 주교 알아가면서 우리 신앙 성장할 것”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여정이 한 번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한국교회 신자들의 발걸음이 중국에 남겨진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발자취를 따라 지속돼야 할 것입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회 조화수(바오로) 회장은 4월 16~21일 5박6일 동안 서울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중국에서 마련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에 참여한 뒤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이번 순례는 중국 내 미묘한 종교 정책에 의해 본래 순례하기로 정했던 목적지를 방문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지만 우여곡절 속에서 희망도 찾을 수 있었다. “순례를 마치고 받은 소감을 말한다면, 신앙인으로서 모든 일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주도 하에 시작되고 끝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중국의 복잡한 종교 상황으로 인해 이번 순례의 중요 순례지를 방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하느님의 ‘시그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순례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암시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번 순례를 통해 ‘불쏘시개’를 주신 것 같습니다.” 조 회장은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국교회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새로운 깨우침을 얻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초대 조선교구장 시복시성 기도’를 바치다 보면 ‘조선 선교를 자청한 뒤 온갖 고난과 질병을 극복하면서 오로지 조선에 들어가 선교하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온 삶을 봉헌한 브뤼기에르 주교’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기 기도문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떤 성직자인지를 알려주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브뤼기에르 주교에 관해 1831년에 임명된 초대 조선교구장이라는 사실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조 회장은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예”하고 응답한 모범을 보인 사제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우리 한국교회 신자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홀대하지 않았나 반성합니다. 이 분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초대 조선교구장으로 부름 받았을 때 순교까지 각오하고 ‘예’라고 응답했기 때문에 한국교회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중국 순례는 앞으로 지속해야 할, 브뤼기에르 주교님 발자취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의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조화수 회장은 “신자들이 한국교회사를 공부할 때 이승훈(베드로)이 첫 세례를 받은 뒤 평신도들의 주도로 한국교회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더라도 초대 조선교구장이 브뤼기에르 주교라는 점과 조선교구 설립 과정을 모른다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한국교회의 초석이며 한 축이 된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신앙도 더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4-04-28

“지구 훼손에 책임있는 노년이 앞장서 공멸 막아야”

“우리 베이비붐 세대는 풍요와 편리를 이유로, 개발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훼손하고 젊은이들의 미래를 빼앗아 왔습니다. 이를 회개하며 인간과 자연의 공멸을 막는 데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마음뿐이에요.” 불타는 지구의 화재 현장으로 긴급출동하는 소방대원의 마음, ‘노년이 달라져야 미래가 달라진다’는 각오로 노년 기후운동단체 ‘60+ 기후행동’(이하 기후행동)은 2022년 1월 19일(119) 창립 발대식을 올렸다. 민윤혜경 운영위원(아녜스·67·서울 청담동본당)은 창립 때부터 기후행동 일원으로서 삼척 화력발전소 반대, 국민연금의 석탄투자 반대 등 피케팅 및 세미나를 비롯한 활동에 꾸준히 함께해 왔다. 민윤 위원은 “손주들이 살아갈 지구를 어떻게든 나은 모습으로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니어 기후 활동가로 나서게 됐다.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회원으로도 활동했던 그는 “민족 화해, 사회정의 실현 등 다른 문제도 중요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이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를 실현할 사회도, 평화를 되찾을 민족도 결국 먼저 지구가 살아 숨 쉬어야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민윤 위원은 2020년 미국 서부를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을 현지에서 접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록적 폭염이 산불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했다. “파란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삽시간에 붉고 검은 밤이 깔렸습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재앙이 거실 창문 밖에서 펼쳐지고 있었죠. 기후위기는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는 충격으로 눈뜨게 됐어요.” 그는 “그런 재앙을 앞당긴 것이 젊은 날 무분별한 개발주의 일변도로 달려왔던 우리 베이비붐 세대였기에 다른 세대보다 노인 세대가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태적 회개를 바탕으로 후손들을 보살피는 어른으로 모범을 보여야 다른 세대가 기후위기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민윤 위원은 “노년 세대만이 가진 고유한 가치들은 기후위기에 맞서는 젊은 세대에게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축적된 경험과 성찰을 바탕으로 막다른 길에 빠진 청년들을 트인 길로 안내하고, 안정된 노년의 시간·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기후위기 대응 활동을 적극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탈석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피케팅, 삼척 맹방해변을 순례하며 바치는 생태적 회개 기도…. 아랑곳하지 않는 거대 자본을 저지하려는 이 작은 움직임들이 “곧 신앙고백이자 생태적 순교”이기에 가치를 갖는다고 민윤 위원은 말했다. 단번에 지구를 푸르게 만들 수는 없더라도, “작은 영적 헌신이 모여 하느님 창조 질서를 세상에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긍지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어떠한 도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민윤 위원. 그는 끝으로 “노년의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 질서 보전’의 직무를 사명감으로 수행할 것”이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 손주들을 위해 노년을 가치 있게 봉헌할 것”이라고 전했다.

2024-04-21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집필 박재형 작가

“제주 복음화를 위해 헌신한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의 발자취를 더 깊이 알고 모범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 삶을 새겨 우리 신자들도 신앙의 불꽃을 더 활짝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3월 1일 제주교구가 발간한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을 집필한 박재형(프란치스코·72·제주 중앙주교좌본당) 작가는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님께서 90여년 전 이곳 제주에서 고난의 시기를 신자들과 함께 하며 활동하신 골롬반 신부님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전기 집필을 요청하셨다”며 “자료조사와 집필 과정은 지난했지만 한편으로 신부님들의 열정과 희생정신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책 1부는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개, 2부는 선교회의 한국 진출과 골롬반 신부들의 제주 선교, 일제강점기 수난을 담았다. 이어 ‘제주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다한 신부님들’이라는 제목의 3부에서는 제주에 머물렀던 70명의 골롬반 선교사 중 지역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13명의 신부를 상세히 소개했다. 초대 제주지목구장 헨리(현 하롤드) 대주교를 비롯해 항일 운동에 참여하다 일본군에 붙잡혀 형무소에 끌려갔던 라이언(나 토마스) 신부, 고향인 아일랜드보다 제주에 더 오래 살며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맥그린치(임피제) 신부 등의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지난해 8월부터 집필에 들어간 박 작가는 “골롬반 신부님들의 행적을 찾아 신자들을 만나면서 ‘노인 한 사람이 돌아가시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말이 사실임을 느꼈다”며 “5~10년 전 준비했더라면 더 충실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도 있다”고 전했다. 박 작가는 1983년 ‘아동문예’에 동화, 2022년 월간 ‘문학’에 시로 등단한 문인이다. 초등학교 교사 정년퇴임 후 현재 집필과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삶의 희망을 준 목자 맥그린치」(1991, 2005)와 「수도자의 삶을 살다간 독립운동가 제주교육의 선구자 최정숙」(2009, 2016, 2019), 「하느님의 종 라크루 신부」(2021) 등 제주 교회 대표 인물들의 전기도 집필했다. 박 작가는 “골롬반 신부님들은 세간살이라곤 야전용 침대와 미군 담요뿐이었던 절제와 청빈의 삶을 사셨고, 초상이 났을 때는 발 벗고 나서 장례 의식에 최선을 다하고, 레지오 회합 후 신자들과 2차 주회를 즐기며 문화가 낯선 제주에서 조화롭게 사목하려 노력하셨다”며 “책이 하느님 나라를 제주에 건설하려는 신부님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제주교구는 「제주 복음화의 사도들 –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 500부를 제작, 전국 각 교구와 가톨릭교회사 연구기관, 교구 내 각 본당과 공소, 가톨릭 관련 대학과 제주 소재 공공도서관 등에 배포했다.

2024-04-14

국민포장 받은 이영숙 수녀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임종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암환자뿐만 아니라 힘든 수술을 하고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요청하기만 하면 밤 늦은 시간에라도 달려가 임종자가 평화롭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왔어요.” 비영리 재단법인 마뗄암재단 이사 이영숙 수녀(베드로·77·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는 1987년부터 성모자애병원(현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원목실 호스피스 상담실장으로 활동하며 “하느님께 받은 은혜 중에 제일 복되고 소중한 것은 선종의 선물”이라는 신념으로 임종자들에게 헌신해 왔다. 이영숙 수녀는 임종자들을 위한 한결같은 헌신의 공로로 3월 21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제17회 ‘암 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포장을 받았다. “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제가 해 오고 있는 일에 대해 하느님께서 꽃다발을 주실 만하면 주실 것이라고만 믿고 살아왔어요. 상 받으러 오라는 연락이 왔는데 당일까지도 무슨 상인지도 몰랐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상 받을 아무 이유도 없어요. 하느님이 주신 상이라고 여기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수녀가 40년 가까운 세월을 하루처럼 임종자들이 평화로움 속에서 하늘나라에 갈 수 있도록 헌신한 모습을 지켜본 이들은 이 수녀가 국민포장 같은 상을 몇 번을 받아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거의 매일 임종자들을 돌보았고, 하룻밤 사이에 7명이 돌아가시는 순간을 뛰어다니다시피 곁에서 지킨 날도 있었습니다. 제 역할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임종 전에 자신의 인생을 후회 없이 정리하고 기쁘게 하느님 품 안에 안길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는 분들을 신앙 안으로 인도하고 하느님 앞에 갈 수 있도록 병자성사를 마련해 드리고, 함께 기도했어요.” 임종자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행복하고 기뻤던 순간보다는 자신이 지은 잘못을 떠올리며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이 수녀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임종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예수님이 못 박힐 때 옆에 있던 죄인처럼 깨끗해진 영혼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임종자들이 받아들일 때만큼 기쁘고 보람 있을 때는 없어요.” 이 수녀는 주위에서 기본재산 없이 법인 설립은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 8월 18일 보건복지부로부터 마뗄암재단 인가를 받았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마뗄암재단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암환자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암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무료 피정과 쉼터를 제공하는 ‘강화마뗄쉼터’도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 이영숙 수녀에게는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임종자들이 마지막 생을 무료로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은인의 기부로 강화마뗄쉼터 인근에 부지를 마련했고 건물 설계까지는 진행된 상황이다. 아직 많은 이들의 후원이 필요하다. “임종자들이 가장 행복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집을 지어 그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습니다. 건물을 짓고 필요한 부대시설을 마련하는 데 큰 재원이 필요하지만 예수님을 임종자를 위한 집의 회장님으로 모셨으니 아무 걱정 없습니다. 저는 심부름꾼일 뿐이고 예수님께서 부족한 것을 다 채워주시리라 믿기에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024-04-07

신임 평화나눔연구소장 정수용 신부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시대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빛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평화나눔연구소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함께 걸어갈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를 희망하며 2015년 문을 연 평화나눔연구소. 9년차에 접어든 연구소는 한반도 관계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평화를 염원하며 한 길을 걸어왔다. 지난 3월 15일 5기 연구위원회 출범과 함께 평신도가 맡았던 소장 자리에 사제로서 처음 임명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이냐시오) 신부는 “교구 민족화해위원회와 연구소의 긴밀한 연결을 통해 화해로 나아갈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고민하고 함께 실천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관계 안에서 북한문제를 다각도로 살펴봤던 연구소는 올해 새롭게 꾸려진 연구위원들과 함께 ‘북한사회’에 집중할 예정이다. 정치적인 대립에만 몰입된 남북관계를 풀어낼 수 있는 실마리를 우리 안에서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최근 중고등학생 통일 인식조사에서 불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이 점점 높아져, 2023년에 39%에 달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한반도 문제가 점점 더 이분법적이고 적대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충돌 이슈만 접했을 뿐, 북한 사람들의 현재 실상은 알지 못합니다. 서로를 모르기 때문에 단편적인 사건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적대감만 남게 되는 것이죠.” 북한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패션은 무엇이고, 경제적 상황이 어떤지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민족으로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정 신부는 “북한을 온전히 이해해야 화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평화나눔연구소는 올해 평화학, 북한학 등을 전공한 5기 연구위원들과 함께 북한 실상 등 한반도 내부 문제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대북활동에 있어 국가가 북한 체제에 집중한다면, 교회는 북한 사람들을 바라본다. 각자 분야의 존중과 균형이 필요하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은 용서와 화해의 가치를 잊게 만들었다. “북한과 관련된 활동이 관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는 민간단체의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해를 위해 교회가 오랫동안 해온 노력도 한순간 물거품이 돼버리는 것이죠. 정치적 충돌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특정 정권이나 정당의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대의를 모아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점점 더 요원해 보이는 한반도 평화의 길.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한편에 남아 있는 작은 희망의 씨앗은 현실에서 평화라는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평화나눔연구소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희망의 씨앗을 찾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용서와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절망적이었던 순간, 희망을 간직한 사람들이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는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남북관계가 안 좋은 지금, 평화나눔연구소는 더욱 열심히 용서와 일치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24-03-31

97세 ‘수세미 할머니’ 부활 선물에 500가지 사랑 가득

인천 모래내본당 최고령 신자 이종옥(도미니카·97) 할머니는 올해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손뜨개질을 하느라 바쁘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부활·성탄마다 손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를 500개씩 떠서 본당 전 신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1년 내내 수세미 1000개를 뜨는 강행군이지만 이 할머니는 오히려 “나누는 기쁨이 더 커서 오히려 뜨면 뜰수록 힘이 차오른다”며 웃었다. 소소한 선물이지만 바늘코마다 순수한 선의만이 깃들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서 시작된 이 할머니의 나눔이기 때문이다. 46세 무렵,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지 않았는데도 문득 “성당에 가야겠다”며 신앙을 갖게 됐듯 “인간의 뜻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이유를 찾는다”는 그의 고백대로다.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뜨개질은 이 할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오랜 방법이다. 젊어서도 조끼, 스웨터, 치마 등을 떠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순간 잡념도 어느새 사라질뿐더러,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코 한 코 기도도 같이 해줄 수 있다”는 할머니만의 기쁨도 있다. 알고 지내는 신자들에게만 장갑, 목도리 등 큰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수세미를 뜨기로 했다. “작은 선물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신자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가 450명이라 500개씩 뜨고 있어요. 오랜만에 성당에 나온 교우나 이웃 본당 교우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50개씩 더 뜨고 있답니다. 특히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를 나누는 것도 많은 교우가 성당에 오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수세미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 할머니는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고 표현했다. 특히 “할머니 팔 아프신데 그만 떠 주시고 쉬셔요”라며 이 할머니의 수고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 오히려 힘이 안 든다”고 미소 지었다. 옷 뜨개질보다는 손이 덜 가도 수세미를 뜨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 할머니는 “기분 좋은 날에는 하루 20개씩을 뜰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나쁘면 하루 한 개도 뜨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척추와 고관절에 병이 있어 하반신도 잘 쓸 수 없는데 다리는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앉아서 뜨개질에 집중하다가 침대에 눕기를 되풀이하는 투혼은 필수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부활과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며 열두 달 내내 뜨개질을 한다. “되살아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나누어 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힘의 원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은 뜨개질뿐이지만 그로써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싶다”는 이 할머니. 그는 “보잘것없어도 부엌 한편에 늘 있는 수세미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한다”는 유일한 작은 바람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매년 선물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더 고맙고 힘이 납니다. 나중에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 할머니 생각난다’며 위령기도나 한번 해주셔요~!” 이종옥 할머니는 “작은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수세미를 뜨고 있다”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2024-03-31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 섬기는 마음으로 한센인과 함께했습니다”

“중국 선교사제로서 한센인들과 함께했던 여정은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신동민 신부(스테파노·인천 용현동본당 대이작도공소 공소사목전담)는 한센인들 안에 계신 버림받은 예수를 섬기고자 20여 년 중국 산골에서 한센인 선교사제로 투신했다. 1997년~2007년 산시(陕西)성 상뤄(商洛)시에서, 2012년~지난해 구이저우(貴州)성 리핑(黎平)현에서 한센인 전문 요양원 인애원(仁爱院)을 세우고 사목했다. 신 신부는 당시 한센인들이 죽어서도 나올 수 없었던 수용소 같았던 곳에 인애원을 세웠다. “한센인을 한 인간으로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전했다. 대학생 시절, 국내 한센인 시설을 돌아다니며 봉사하면서 “신앙도 생명의 가치도 모르는 그들을 위한 선교를 하고 싶다”는 성소를 받았다. 1996년 작은형제회 사제로 서품 후 부산교구 구라마리아회의 연결로 중국으로 선뜻 떠난 건 ”절망 속에 부르짖는 인간 안에서 위로를 갈망하는 그리스도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 신부가 마주한 한센인들의 삶은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육체에 영양을 공급하는 신호체계인 신경세포를 죽이며 말초신경계에 손상을 초래해 손발이 마비, 기형을 일으키고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나균이 몸에 침투하면 눈까지 머는 등 복합 장애가 찾아왔다. “손가락과 발목이 피부 껍질에 간신히 붙어 있는, 장애 그 이상의 아픔”이라고 신 신부는 밝혔다. 신 신부는 “병에 걸린 순간 부모, 자식,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센인들이기에 심리도 철저히 망가졌다”고 회상했다. “영육 양쪽으로 사무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애가 탔지만, 감사의 눈조차 잃어버린 그들의 절망만을 번번이 마주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의 분변을 받아내고 기저귀를 채워주면 그 기저귀를 일부러 벗어 던지거나 이불에 문질러 버리고, 그를 반복하는 일도 있었다. “자기가 인간이라는 것, 인간 그 자체에 대한 반항이었어요. 그 상처를 아물게 하는 건 신앙뿐이었기에 한결같이 그들을 신앙으로 회심시키는 수밖에 없었어요.” 수도회 총원에서 “헌신해봤자 공산당에게 빼앗긴다”는 반대로 상뤄시 인애원에서 철수해야 했던 건 신 신부의 가장 큰 아픔이다. 결국 인천교구로 이적해 교구 병원 대외협력부장 직함으로 리핑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신 신부를 유일한 가족으로 의지하던 한센인들을 버리고 왔다는 책임감에 지금도 신 신부는 “자신을 기다리다가 죽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로 리핑현 인애원은 중국나사협회로 이관됐고 신 신부도 중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났다. 하지만 지금도 그는 협회 봉사자 자격으로 중국을 드나들며 시설을 관리한다. 1~3개월 방문해 농사를 돕거나 전기·수도 시설을 고쳐주고 필요한 물품을 채워주고 있다. 신앙이 없는 곳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기쁨 때문이다. 1월 15일부터 인천교구 대이작도공소에서 공소사목을 펼치는 신 신부. 그는 “공소사목도 선교사로서의 삶의 연속”이라며 인천 본토에서 44km 떨어지고 상주 사제가 없는 섬 주민들을 위해 사목에 자원했다. 끝으로 신 신부는 "이렇듯 국내에서도 선교사제로서 사람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전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2024-03-24

한국인 최초 교황에게 교리교사 직무 수여받은 박모란·백남희씨

박모란(클라라·56·인천 박촌동본당)씨와 백남희(마르가리타·56·인천 송림동본당)씨가 1월 21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국인 최초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교리교사 직무를 수여받았다. 세계 각국 교리교사 9명이 직무를 수여받는 미사에서였다. 각각 27년, 36년간 주일학교 교리교사로 헌신한 두 사람은 “교리교사 직무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며 “아이들 마음에 신앙을 불어넣고 키워주는 교리교사로서 사명감 위에 더욱 열심히 봉사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황은 2021년 5월 자의 교서 「오래돤 직무」를 통해 교리교사 직무를 공식 제정했다. 평신도 중에서 신앙을 전수하는 역할을 하도록 전문적 양성을 거친 교리교사 직무의 전문성을 부각하고 엄연한 평신도 사도직임을 강조하는 행보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사목 계획을 수행할 성직자들이 부족하므로 교리교사들의 직무는 대단히 중요하다”(4항)는 내용대로다. 두 교사는 “한국인 최초로 직무를 받았다는 자부심보다는 오히려 큰 책임감이 앞선다”고 입을 모았다. “직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봉사와는 다른 것이며, 교회의 신앙 전달과 성장을 위해 주님의 도구가 되도록 부름받았다는 귀중한 사명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큰 은총에 대한 감사보다 ‘하느님께서 교리교사들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더 컸어요. 단순히 어떤 수업을 할지 같은 고민보다 교리교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후배 교사들에게 어떤 모범을 보여줘야 할지에 집중하게 됐죠.” 박씨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통해 미래의 신앙을 심어주는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앙 안에서 나아갈 삶의 방향을 알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배우는 시간은 교리교사의 수업을 통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흐름에서 백씨는 “단순한 신앙 지식 주입이 아닌, 아이들이 신앙을 체험하고 성찰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교리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는 기쁨,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고 사랑을 실천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 마음에 심어주는 거예요. 교육을 통해 '작은 평화의 사도’로 자라난 아이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로 설 수 있게 됩니다.” 두 교사는 “영성 캠프, 생태적 회심을 위한 쓰레기 매립장 방문 등 지식과 활동이 균형을 이룬 수업도 중요하지만, 아이들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친교와 교류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말 못 할 힘듦으로 성당에 발길을 끊은 아이들에게도 관심을 놓지 않는다. “목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했어”라는 말에는 성당에 나오라는 강요가 아니라 “잘 이겨낼 거야, 선생님이 기억하고 있을게, 힘내”라는 진심 어린 지지만 담겼다. “교리교사는 아이들 미래 신앙의 책임자”라고 입을 모은 박씨와 백씨. 그들은 끝으로 “아이들에게 하느님을 심어주려면 교사들이 매 순간 함께하시는 하느님 현존을 느껴야 한다”며 “현존 체험을 나눌 수 있는 교사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교회 신앙의 전수자'라는 소명 의식에서, 먼저 하느님과 함께하는 행복을 서로 일깨워주는 공동체로 나아간다면 좋겠습니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

2024-03-17

‘DMZ 생명평화순례’ 참여하는 이은형 신부

지구 한 편에서는 이웃 나라에게 총을 겨누고, 다른 한 편에서는 하나였던 나라가 둘로 갈라져 ‘다시는 하나가 될 수 없다’고 날선 비난을 이어오고 있다. 충돌의 현장에는 죽음과 공포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갈라진 틈에 종교인들이 손을 잡고 함께 섰다. 교리는 다르지만 ‘평화’라는 공통된 가치를 찾고자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4대 종단 종교인들이 마음을 모았다. 2024 DMZ 생명평화순례에 천주교 대표로 참여한 의정부교구 제6지구장 이은형(티모테오) 신부는 “우리나라 역사의 큰 아픔이 서려 있는 한반도의 허리선을 지나며 종교인들이 함께 평화의 기도를 하면 치유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염원을 담아 4대 종단이 함께하는 순례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임진각, 백마고지, 철원DMZ생태평화공원을 거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끝나는 400㎞의 여정. 일정 중에는 장파리공소, 해안성당, 고성원불교교당, 초도제일교회 등 각 종단을 대표하는 장소도 포함됐다. 4대 종단은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를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9·19 군사합의가 파기되는 등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하자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고자 뜻을 같이한 것이다. 침묵 중에 각자의 기도를 바치며 걷는 22일의 여정. 이들의 순례는 고요했지만, 간절한 기도 속에 담긴 에너지는 뜨겁고 무거웠다. 이 신부는 “2월 29일 순례를 시작하고 3월 1일,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날 선포식을 하고 다시 함께 걷는 여정으로 기획했다”며 “첫날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각까지 20㎞가량 걸으며 몸이 고되긴 했지만 우리 민족이 안고 있는 고통이나 아픔을 생각하며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걸었다”고 말했다. 성당 안에서 하던 기도는 분단과 아픔의 현장에서 더욱 큰 울림을 전했다. 이 신부는 “평화와 북한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념적인 가치에 쉽게 혼동될 수 있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며 “이때 우리가 보고 들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어떤 지향을 두고 하셨는지다”라고 전했다. 승복을 입은 스님과 로만 칼라를 한 신부, 묵주를 든 수녀가 함께 걷는 발걸음에는 미움과 상처를 치유하는 평화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님 옆에 선 이 신부는 긴 여정을 걸으며 이렇게 기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 땅에 참된 평화가 찾아오길 바라며 걷고,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 안에 많은 이들이 기도로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24-03-10

북한 지도체제 연구로 박사학위 받은 황소희씨

“교회 안에서 근무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나오는 기금이 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린아이의 헌금과 어르신들이 숨겨 둔 쌈짓돈이 얼굴도 모르는 평신도 연구자를 위해 쓰인다는 점을 인식하고 부끄럽지 않게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민족화해 분야 연구자로 활동해 온 황소희(안젤라·39)씨가 2월 26일 연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 수령의 후계에 대한 인식이 후계자의 위협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김정일과 김정은 집권 이후 군사활동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 연구자로서 이제 32개월 된 쌍둥이를 키우는 힘겨운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며 받은 학위여서 주변의 많은 축하를 받고 있다. 아직 ‘박사’라는 호칭이 익숙하지 않은 황소희 박사는 주교회의 명도회 장학금을 3년, 인천교구 사제연대 장학금을 2년 동안 지원받았다.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이 교구 민족화해위원회를 통해 장학금을 보내 준 것을 비롯해 여러 신자들도 육아를 병행하며 연구에 고군분투하는 황 박사에게 아낌없는 격려와 물적 후원을 보냈다. “박사과정에 총 8년 걸렸고, 논문 작성에는 2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느끼기에 ‘기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8년 동안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필요한 학비는 한순간도 부족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필요한 때에 격려의 손길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의미있는 연구성과를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북한 지도자와 지배계층(엘리트)의 인식 체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논문 주제를 정했다는 황 박사는 한국교회가 북한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교회는 교회만의 북한에 대한 비전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많았습니다. 평화·일치·화해라는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치적 진영논리를 교회가 공식처럼 흡수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교회의 대북담론이 교회의 벽을 넘어 사회 전체에 울림을 줄 수 있는 경쟁력을 지니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황소희 박사는 남북한이 통일돼야 하는 당위성을 ‘한반도의 보다 나은 미래’에서 찾고 “통일의 시기나 가능성을 묻기 전에 우리가 통일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4-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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