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

지난 11월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가 세 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개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국가인권위 권고 이행을 위해 법무부가 시행하고 있는 ‘장기체류 미등록 아동 조건부 구제대책’(이하 구제대책)이 내년 3월 종료됨에 따라, 지난 4년간 운영한 해당 제도의 의미와 문제점, 향후 관련 제도 마련 시 고려해야 할 점들을 논의했다. 여러 발제들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이제는 청년이 된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들의 증언이었다. 다섯 명의 청년들 중 네 명은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고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한 명은 새롭게 이주한 도시에서 전학갈 학교를 찾지 못해, 더 정확히는 학교마다 전학을 거부해 자격요건을 상실하면서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에 토론회 참석자들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 나왔다. 잠깐의 휴식 후 이어진 지정토론 시간에 법무부 이민조사과 사무관이 토론문 대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싶다고 해, 발제자와 토론자는 물론 참석자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나 역시 얼마 전 구제대책으로 체류 자격을 얻게 된 본당 이주민 신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지역 단위 외국인출입관리소 운영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외국인출입관리소로부터 연락을 받아 다음날 방문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직장에 이야기를 해 겨우 오전 반차를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돈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구제대책에 따르면 부모 각각 미등록 체류기간에 따른 벌금을 내야 하는데, 70%를 감면해 주기는 하더라도 이주민들이 하루 만에 수백만 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본당 이주민 신자의 경우 이 사실을 알려줘서 급히 본당 사회사목기금으로 지원을 하고 천천히 갚아 나가는 것으로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지만, 많은 이주민들이 벌금을 마련하지 못해 체류자격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문제는 법무부에 이 구제대책을 계속 이어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참석한 법무부 사무관은 구제대책을 ‘악용’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며 내부적으로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더 크다고 밝혔다. 이대로 내년 3월 구제대책이 종료되면 3000명이 넘는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언제 강제출국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서 초‧중‧고 재학 중인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모여 ‘WE ARE ALL DREAMERS’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지난 11월 16일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이 안정적으로 체류할 권리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회견문에서 이주배경 아동청소년들은 ”구제대책은 미등록 이주아동의 안정적인 거주와 정책을 보장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공교육 이수’라는 신청 대상 요건, 신청 시 부모님이 내야 하는 커다란 범칙금, 고등학교 졸업 이후 부모님은 출국하셔야 한다는 규정은 신청을 가로막는 장벽”이라며 “무엇보다 구제대책이 정해진 기간 동안만 이뤄지고 고교 졸업 이후 진로에 대해 대학 진학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점도 짚었다. “우리에게는 머무를 권리가 있습니다! 미래를 꿈꿀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회견문 말미의 구호에 참 마음이 아팠다. 선주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을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걱정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아닐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1-24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

어느새 11월이다.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린 분들을 각별히 기억하는 위령 성월을 지내고 있는데, 죽음이 무엇인가? 1897년 4월 말경 스물넷 젊은 리지외의 데레사는 아침마다 각혈을 했다. 결핵 말기에 이른 그는 밤이 되면 특히 기침이 심해져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897년 9월 30일에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리는데, 그는 곧 죽음을 맞을 것을 인식하면서 말한다.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이에요.” 데레사에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죽음은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이런 죽음 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언니 수녀들이 그가 죽어서 자신들 곁을 떠나는 것으로 여기며 아파할 때, 자기가 죽음을 맞으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실제적으로 언니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깨워 준다. 데레사가 죽음을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을 깊게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살았다. 그는 죽음 준비를 위해 ‘성사를 받는 것’도 하느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것’도 다 “좋다”고 했다. 그 ‘모두가 은총’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은총의 바다, ‘은해’(恩海)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는 자기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알고 살았던 것이다. 그의 이같은 하느님 신뢰는 고통을 많이 받는 것도 적게 받는 것도 관심이 되게 하지 않는다. 그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것은 이런 신뢰 속에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 큰 언니 성심의 마리 수녀는 데레사가 겪는 고통을 안타까워하며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이 많이 고통받지 않도록 기도했는데, 당신은 이토록 고통받고 있어요!” 이때도 데레사는 단순하게 답했다. “나는 하느님께, 나에 대한 그분의 계획을 이루시는 데 장애가 되는 기도는 듣지 마시라고 청했어요. 그리고 그것에 어긋나는 모든 어려움을 거두시라고 했어요.” 이것은 하느님에 대한 그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를 증거하는데, 이 하느님 신뢰가 ‘어린이의 길’이라고 알려진 그의 ‘작은 길’의 핵심이었다. 데레사는 어느 날 말했다. “이처럼 고통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나는 어린아이처럼 고통받고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나는 더 큰 고통을 청하고 싶지 않아요. 그분이 고통을 늘리신다면, 그것이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니, 나는 기쁘고 즐겁게 고통을 참아 받을 거예요. 그러나 내 스스로 힘을 가지기에는 내가 너무도 작아요. 내가 고통을 청한다면 그건 나의 고통이 될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혼자 참아야 할 거예요.” 자기가 겪는 고통은 그분께서 주시는 고통이기 때문에, 그분이 이 고통을 겪을 수 있는 힘도 자기에게 주시리라는 신뢰 속에서 그는 말한다.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혼자서 할 수 있었던 적이 없답니다.” 하느님에 대한 데레사의 이 깊은 신뢰가 고통을 그렇게 기쁘게 받아들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죽음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으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알고 살게 한다. 그의 이런 죽음 이해가 그토록 기쁘게 하느님 안에서 하루하루를 사랑하며 살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추상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충실하게 살고 기쁘게 죽음을 맞을 수 있게 하는 원천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작은 데레사의 이같은 삶과 죽음 이해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1-17

‘무중구’ 수녀의 바람

여성 할례. 아직도 아프리카에서는 부족 문화에 따라 성인식을 빙자한 나이가 어린 남자아이들의 할례식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의 할례가 부족 문화 속에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이 놀랐다. 탄자니아로 파견된 우리 공동체의 한 수녀가 휴가를 나왔다. 가끔 탄자니아 상황을 이메일로 전해주곤 했는데 마주 앉아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했던 것보다는 탄자니아의 8세에서 15세 여자아이들의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함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탄자니아 마산가(Masanga) 마을에 수도회 공동체가 있고 무소마교구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이곳은 케냐국경선에서 8km,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2시간 떨어진 쿠랴(Kurya) 부족이 주를 이루고 사는 농촌이다. 이 마을에서 피부색이 다른 유일한 사람, 탄자니아 사람들은 피부색이 다른 이 수녀를 무중구(백인을 일컫는 말)라고 부른다. 선교활동 중에 만난 레베라(가명)는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어린 친구이다. 레베라는 여자아이들의 할례거부를 위한 활동을 하는 공동체 기숙사에 머물고 있다. 겨우 11살인데 학교에 가본 적이 없어서, 스와힐리어(탄자니아 공통어) 말은 할 줄 알지만 글을 읽고 쓰기는 아직 어렵다. 선교사로서 낯선 환경에 익숙해질 무렵 레베라가 왜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센터 숙소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마산가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이 성인식인 할례를 통과하는 것이 결혼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며 학교의 방학이 시작하는 12월 첫 주부터 1월 마지막 주까지 남녀 아이들의 성인식을 마을의 큰 축제로 지낸다. 레베라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 사촌언니 그리고 동네 언니들도 모두 이 일을 겪었다. 그들은 이런 성인식에 참여하는 어린아이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으면서도, 딸에게, 손녀에게, 조카에게 성인식을 강요한다. 레베라는 이것에 대한 두려움에 ‘할례거부 운동 센터’ 기숙사로 용기 있게 도망 아닌 도망을 선택한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삶의 일부를 거부한다는 것은 탄자니아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선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족과 친지를 피해 보장되지 않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 그를 수녀들은 따뜻하게 품어준 것이다. 현재 기숙사에는 다양한 사례, 할례거부 외에도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으로 가출한 여학생 40여 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레베라는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돌보며 글을 깨우쳐 가고 있는 중에도 마음이 우울해지면 할머니 집에 가고 싶다고 매일 매일 보챈다. 하지만 할머니를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을 리베라는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 아프다. 할머니의 집은 기숙사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인데 그 길을 걸어가는 길목에서 혹시라도 만날 수 있는 가족이나 친척들로 인해 끌려가서 억지로 할례를 당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할례가 그들에게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풍습과 일종의 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다움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자기결정이 전통적 풍습이라는 이름으로 선택권이 용인되지 않으며 무시되고 있다. 마을 안에서 언제 할례를 받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맑은 눈으로 크게 웃으며 뛰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런 아이들에게 희망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길 무중구 수녀는 간절히 바란다. 탄자니아 정부는 할례를 법으로는 금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법을 거슬러 반인권적 할례가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 감은 눈을 크게 떠야겠다. 그리고 할례 예방 교육을 통해 국민의 인식을 바꾸고 이런 악습을 끊어내려는 노력이 과감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글_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1-10

딥페이크 성폭력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이후 올해 명문대 단톡방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은 충격을 줬다. 딥페이크란 AI 기술을 이용해 얼굴과 신체 부위를 합성해서 만든 동영상으로 성폭력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 경찰청의 보고에 따르면 2024년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 유포로 474건이 검거됐고 가해자의 80% 이상은 십대로 그중에는 초등학생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십대들은 성적으로 무지한 존재가 아니고 성폭력에도 자유롭지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그들은 성착취물에 대한 접근이나 제작이 어렵지 않다. 여성 연예인의 성착취물을 제작·판매한 가해자는 십대이고, 단톡방 운영자는 고등학생 때부터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했다고 한다. 친구의 초대를 받고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제작 프로그램을 통해 성착취물을 생산한다. 딥페이크 성폭력은 남성 가해자/여성 피해자의 성별화된 현상을 보여준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고양하고 온·오프라인 성폭력 예방 교육과 상담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동)로 딥페이크 성폭력의 쟁점조차 피곤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 처벌이 AI 기술 발전에 장애가 된다거나, 남성의 성적 쾌락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들도 있다. 이러한 반론들을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타자의 고통에도 내 욕망이 우선한다는 폭력에 대한 둔감성, 공감 능력의 부족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주고받으면서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생산, 유포한다. 이 과정은 죄의식을 희석시키면서 자신감을 갖게 하고 남성들 간의 유대를 강화시킨다. 이들은 엄마, 누나, 여동생의 사진까지 공유하면서 환호를 받는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는 이미지 착취이기 때문에 가해자들은 물리적 성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피해가 없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얼굴이 노출된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힘들고 고통받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사진은 삭제되고 졸업앨범은 사라질 위기에 있다. 친구, 지인, 교사 등은 폭력의 피해로 인간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경험을 한다. 2024년 9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개최한 17회 여성인권영화제는 딥페이크 성폭력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영화 <나의 금발여친>에서 피해자는 소셜미디어에 몇 년 전 드레스 입은 사진을 올렸다. 이들은 사진을 도용당해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또한 <나의 가해자 추적기>에서 주인공은 친구와 식당에 갔다가 노트북을 도난당했다. 가해자들은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을 딥페이크 성착취물로 만들어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두 영화에서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체포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진은 내가 아니다. 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다’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다. 피해자가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용기 있는 행위이지만 불가피한 선택일 수밖에 없기에 가슴 아픈 일이다. 해외의 언론은 한국이 딥페이크 성착취물이 많이 생산되는 국가이고 여성 피해자가 많다고 보도한다. 이러한 오명에도 운영자가 단톡방을 폭파하면서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에 가해자의 체포와 처벌이 쉽지 않다. 회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경찰의 수사 협조를 거절해 왔던 텔레그램이 딥페이크에 의한 불법 정보 삭제에 동의했다. 정부는 올해 10월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소지,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법안을 의결했고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해 5년 이하에서 7년 이하의 징역형을 강화했으며,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이용한 협박에 대해서도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실태조사 이후 폭력예방교육을 계획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성폭력의 주무 부서로 해석되지만 조직이 축소 운영되는 현실에서 인력이나 지원이 부족한 현실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좀 더 통합적인 대책이 필요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딥페이크 성폭력에 대한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11-03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교회는 해마다 9월의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지내고 있다. 올해로 110차를 맞는 이날은 이주민과 난민 문제가 오랫동안 교회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라는 점을 보여주는 날이다. 의정부교구는 해마다 이날 이주민 축제를 열어 교구 내 거주 중인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 국가, 인종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는 동시에 이주민과 선주민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몇 년 동안 중지됐던 이주민 축제를 다시 열기로 결정하며, 교구 이주사목위원회(이하 엑소더스)는 고민에 빠졌다. 이주민 축제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어느새 이주민들‘만’의 축제로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1000명 가까운 인원이 모이다 보니 교구 산하 수련원을 축제 장소로 선택했던 결정이 역설적이게도 축제에 대한 선주민의 관심이 줄어들게 만들었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이에 따라 일선 본당을 섭외해 축제를 열고 축제 이름도 ‘엑소더스 축제’로 변경해 선주민들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갈피가 잡혔다. 그리하여, 본당에서 열리는 첫 ‘엑소더스 축제’의 장소는 자연스럽게(?) 동두천성당으로 낙점됐다. 본당 관할 구역에 오랫동안 이주민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어 선주민 신자들도 어렵지 않게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축제 장소로 선정된 후 엑소더스 위원장 신부들과 직원들이 몇 차례 방문해 차근히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 함께 하면서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쓰다니!’ 하며 놀란 적이 적지 않았다. 지난 축제들에서 파악한 문제점이 어디서 기인한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축제에 참여하는 이주민과 선주민이 불편하지 않으려면 또 어떤 것을 생각해야 할지 등 정말 많은 것을 염두에 둔 기획 과정이었다. 마침내 엑소더스 축제 당일. 축제는 의정부교구장 손희송(베네딕토) 주교님이 주례하신 개회미사로 막을 열었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함께 한 미사에서 우리가 가장 신경 쓴 것은 ‘성찬 안의 일치’였다. 주교님은 영어로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 미리 연습을 하셨고, 비영어권인 베트남, 동티모르 공동체를 위해 전례문과 강론을 번역해 화면에 띄우고, 보편지향기도는 영어, 베트남어, 프랑스어, 한국어로 다양하게 진행했다. 그렇게 해도 여전히 언어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긴 했지만, 미사 후 선주민 신자에게서 “낯선 곳에서 낯선 언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어려울 것인가 헤아려 볼 수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미사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는 어려움이 없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가 주님의 식탁에 함께 모인 존재임을 느꼈으면 했던 우리의 의도가 성공한 듯했다. 미사 후에는 먹을거리 장터가 마련돼 성당 마당에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부스마다 이주민 공동체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 선주민을 배려해 강한 향신료는 배제하고 음식을 준비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덕분에 어르신들도 음식을 맛있게 드실 수 있었다. 이주민, 선주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식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식구'(食口)라는 말의 의미가 오감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화목한 식사 자리를 언제고 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희망과 함께. 뒤돌아보니, ‘성찬의 식탁’과 ‘오찬의 식탁’이 함께한 엑소더스 축제였다. 주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한몸을 이루고 있음을 성체와 음식을 통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 ‘한몸됨’을, 이 ‘일치’를 우리가 늘 잊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좋아하는 생활성가의 한 소절이 떠오른다.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됨을 위하여.” 부디 우리 모두, 함께 이 길을 걸어가길.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10-27

존재의 거룩

10월 쌀쌀해진 어느 날 새벽, 살아 숨 쉬는 아기를 상자에 담아 내려놓고 돌아서는 한 어머니가 있다. 이렇게 하는 어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다 알기란 어렵다. 건강한 아기도 있고,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기나 뇌성마비가 온 아기도 있다. 심주희 어린이를 만난 수많은 이들이 물었다. “주희가 고통이 저렇게 심하다면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주희에게는 더 좋지 않을까요?” 그는 1981년 2월 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지체 장애와 언어 장애도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놔두고 가출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뇌성마비로 자율신경의 조절 기능을 상실한 그에게는 강직성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한쪽 어깨를 움직이면 양쪽 팔이 탈골돼 고통을 겪곤 했다. 말 한 마디에도 몸이 울려 고통을 겪었다. 한 번 자극을 받으면 주희의 등은 활처럼 휘어졌다. 거꾸로 휘어지는 등. 자세 교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주희는 그 격렬한 고통으로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8년을 돌보며 지내다가 생계가 어려워지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그를 버렸다. 그런데 주희가 꽃동네에 오고 나서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버지가 꽃동네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자원봉사를 청했다. 그의 청은 받아들여져서 부녀가 함께 꽃동네에서 행복하게 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아버지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꽃동네 사람들은 염려했다. 아프고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가 없어지면서, 더군다나 이번까지 부모에게 세 번이나 버려지는 상황에 직면해서, 그가 겪을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깊을까 걱정하면서 너무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떠난 후에도 ‘수선화 같은 그 고운 미소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 날들을 맞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의사 수도자인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자매회 신상현(야고보) 수사가 물었다. “너를 세 번씩이나 버린 부모가 밉지 않니?” 그러자 그는 온 존재로 내는 한 마디 한 마디 말들을 모아 경어로 답했다. “선생님, 전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어디 계시든지 잘 사시라고요. 요즘은 기도를 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정도예요.” 주희는 1995년 4월 4일 열네 살 어린 나이에 급성호흡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음을 맞기 전 자기를 돌보기 위해 온 신 수사에게 늘 그렇듯 경어로 말했다. “선생님, 엄마 아빠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어요.”, “너를 버린 미운 사람들인데도?”, “그래도 엄마 아빠예요. 부모님 용서는 벌써 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그는 끝내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그가 귀천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그의 아버지가 왔다가 장례가 끝난 뒤에 그가 사랑한 딸 심주희 그를 가슴에 품고 다시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심주희, 그는 자신의 온 존재,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온 삶으로 우리에게 탄생은,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삶은 ‘한 상태’, 고통보다 축복이 더 큰 상태라는 것을 증거했다. 이 신학적 진리를 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탄생(삶) = 상태(축복 > 고통)’ 한 존재가 자기 존재의 원뿌리에 닿아서 부르는 존재의 노래, 저 탄생과 삶의 진리를 증거한 증거자 심주희가 죽기 직전 갈망으로 애타하며 말했다. “욕심이 생기는지 자꾸만 보고 싶어져요.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요.” 자기 존재를 매개해 준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 그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존재의 충만을 향한 갈망, 이것이 우리 안에 있다. 그것은 거룩한 갈망이고 그 자체로 ‘엄청난 축복’인데, 우리는 심주희처럼 자신의 이 같은 갈망을 알고 사는가?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10-20

은행나무와 가을

몇 년 전에 수녀원으로 전화 한 통이 왔다. 아주 불쾌한 목소리로 수녀원 마당에 심어진 은행나무 때문에 냄새가 심하고 나뭇잎이 많이 떨어져 불편하니 나무를 잘라 달라는 요청이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나무를 자르라는 요구에 그들의 불편함을 생각하기 보다는 자연을 너무 왜곡해서 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불만이 먼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무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아름다운 가을 은행나무의 듀얼리즘이다. 오래전 수녀원 뜰 담 주변으로 처음 심은 나무가 은행나무였다. 그 후 15년이 지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정원에 떨어진 은행을 주어 그것을 씻을 때는 심한 냄새가 풍기니 코를 틀어쥐고 악취에 대한 불평을 했었다. 하지만 예쁘게 씻긴 은행을 나누는 기쁨도 컸다. 이것을 맛있게 구어 먹을 때는 이 귀한 것을 거저먹을 수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런데 긴 시간이 흘러 주변의 이웃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나무가 됐다. 결국 수녀원 공사가 있었던 참에 모든 은행나무를 잘라버렸다. 계절의 온도를 이겨내고 가을을 뽐내려는 노란 잎 은행나무가 거리마다 가득하다. 은행나무는 화사한 노란색으로 가을의 낭만을 즐기게 해 주지만 나무가 품고 있는 노란 열매 은행은 밟으면 악취를 풍기며 고약함을 드러낸다. 주로 길가에 떨어져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어찌 됐든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니 의도치 않은 만인의 적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몸에 좋다고 알려진 이 열매를 구입하려면 비싼 값을 내야 하니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길가에 떨어진 것을 주우려 위험을 감수하고 은행을 줍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는 가을의 한 풍경도 있다. 그런데 길에서 주운 은행을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와 차량들이 뿜어내는 공해 속에서 자란 도심 속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을 주어 그냥 먹어도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서울 시내 가로수에 떨어진 은행은 먹어도 건강에 이상은 없지만 식약처는 “위생 절차를 거쳐 정해진 양을 익혀서 섭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알맹이는 겉·속껍질 보호를 받아 오염물질이 닿지 않는다”며 “토양오염도 은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다.(헤럴드경제) 그래도 가로수의 특성상 오염 가능성을 생각하여야 하고 정해진 양과 꼭 익혀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또한 은행을 줍기 위해 도로로 뛰어들어 운전자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모한 도전은 멈춰야겠다. 요즈음은 가로수로 식재된 은행나무에 열매 수집망, 마치 거꾸로 펼쳐진 우산 같은 모습의 신박한 은행 받이 그물망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그물망을 쳐서 떨어지는 은행을 한 곳으로 모으는 깨끗한 거리 만들기에 노력한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떨어지는 은행을 모으고, 냄새도 방지하여 가을철 은행나무 열매로 인해 발생하는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 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열매를 주우려는 분들의 위험을 방지하여 마음 편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겠다. 이것이 가을이다. 거리를 노랗게 물들인 아름다운 모습도 거리를 걸으며 킁킁거리며 냄새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을의 풍경이다. 잠시의 불편함을 못 이겨서 수목 교체 작업을 한다면 노란색으로 물들이는 아름다운 가을의 모습을 영영 볼 수 없고 몸에 좋다는 그 열매 은행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름답지만 냄새가 나는 이 가을의 풍경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든 지자체의 고민이 깊어지겠다. 가을이 절정일 때 노랗게 물들어 잎새는 아름다워도 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이 많은 만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통한 또 다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글 _ 강성숙 레지나 수녀(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 회)

2024-10-13

돌봄과 독립

모성은 자녀에 대한 한없는 희생과 헌신을 의미하고 여성의 덕목으로 해석돼 왔다. 자녀 사교육에 대한 열정도 어머니의 역할에서 비롯해 비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여성은 자신보다 자녀의 성취를 위해 애쓸 때 덜 비난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모성도 가족의 성공, 계층 유지와 관련돼 있으니 이기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되면 어머니의 역할은 끝나는 것으로 해석됐으나, 자녀가 결혼한 후에도 어머니들은 손자녀 양육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과 가정생활 병행이 힘들고 보육제도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맞벌이 자녀를 도와야 하는 것이다. 고학력 어머니들은 자녀의 학습을 보충·지도하고 사교육 정보를 수집한다.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니는 자녀의 과제, 논문, 상급 학교의 원서 작성을 도와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자녀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모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어머니들이 자녀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이러한 행위를 사랑으로 해석해 죄의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 낮은 학점을 받은 대학생의 어머니가 교수를 찾아와서 따졌다는 이야기,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회사 면접을 볼 때 어머니들이 면접이 끝날 때까지 회사 앞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해외 유학을 다녀와서 엄마에게 “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헬리콥터맘’ 자녀들의 이야기와, 임용된 이후 자기 연구실을 꾸미는 것도 어머니가 와서 해줬다는 어떤 대학 교수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자녀는 늘 아이와 같으니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90세의 어머니도 70세의 자녀에게 “조심해서 다녀라”고 노심초사하기 마련이다. 또 구조적 실업이나 경기불황으로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가 자녀의 생존을 책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머니가 자녀의 인생을 계획하고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주변에서는 이러한 분리를 생각하지 않고 자녀들이 영원한 마마보이, 마마걸로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행위가 과연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들은 과잉보호와 가족이라는 안전망 속에서 위험에 노출되거나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지 못할 것이다. 철학자 사라 러딕(Sara Ruddick)은 「모성적 사유」에서 “어머니는 자녀가 독립적이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돌봄이나 간섭을 억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돌봄으로 형성되었던 애착관계 때문에 분리의 아픔을 감당해야 한다. 반면에 우리 사회에는 진정으로 돌봄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치매 환자 아버지의 보호자가 된 청년 조기현은 「아빠의 아빠가 됐다」에서 어린 나이에 아픈 부모를 돌보는 영케어러들의 경험을 기술한다. 이들은 아픈 부모 돌봄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다니지 못한다. 이들은 다른 연령층의 돌봄 제공자들보다 더욱더 어려움에 처해 있다. 노년과 장애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족의 돌봄에 의존하기에 그 가족은 힘든 상황에 있다. 과잉보호와 돌봄이 가족이라는 배타적 울타리에서 이뤄질 때 정작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소외된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수혜나 분배는 불균형적이다. 자녀와 분리된 삶으로 나아간다고 나쁜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지원하면 된다. 노년기 여성들은 자녀의 삶을 그들에게 맡기고 돌봄에서 자유로워져서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면 좋겠다. 누군가를 돌보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다면 가족을 넘어 공동체 차원에서 정말 돌봄이 필요한 곳, 소외된 이웃을 찾아가 돌봄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돌봄이 여성에게만 한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글 _ 이동옥 헬레나(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2024-10-06

Minor Feelings

어쩌다 보니 ‘방주의 창’에 올리는 글이 이주민과 난민들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큰 부담이었다. 이주민 특성화 본당에 오게 되어 자주 접하게 되는 일들을 글로 옮겨 알린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활동가’로 이야기하기에는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아직도 알려야 할 일도, 알리고 싶은 일도 너무나 많은 것도 사실이기에 이곳에서 내가 배우게 된 것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달 원고를 준비하면서 휴가를 떠나게 됐다. 2년 만의 휴가는 당연히 달콤한 것이었지만,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그곳의 공공도서관에서 방해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서관 기념품 가게에서 우연히 책 하나를 만나게 됐다. 작가 이름이 너무나 특이했기 때문이었다. 캐시 박 홍(Cathy Park Hong). 책 한가운데에 박혀있는 ‘Park Hong’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자마자 책을 집어 들게 됐고, 몇 쪽 읽어 보다 ‘아, 이거 사야겠다!’ 싶었다. 이 책의 제목은 「Minor Feelings」. 대중적이지 않은 감정을 적은 것일 줄 알았는데, 말 그대로 소수자(minor)로서의 자신의 감정을 적어 놓은 글이었다. 등단 시인이자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 보면 부러울 게 없을 것 같은데, 2세대 한인으로서 자기 부모와 함께 겪어야 했던 온갖 어려움들, 특히 우리에게도 각인돼 있는 LA 폭동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는, 차별 섞인 눈빛들을 만날 때의 감정을 표현한 부분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주었다. ‘어, 이거 어디서 본 건데?’ 차별 섞인 눈빛들을 본 곳은 다름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동두천의 길거리였다. 미군 부대 근처 보산역에는 ‘외국인 관광특구’가 설치돼 미군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술집과 클럽이 밀집돼 있다. 이곳 술집과 클럽 입구에는 ‘내국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고 종업원들 역시 이주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주민 종업원들을 바라보는 선주민 업주의 눈빛은 분명 차별의 눈빛이었다. 업주들뿐 아니라 관광특구 내에 살고 있는 적은 수의 선주민들 또한 차별의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긴 너희가 있을 곳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한 쏘아붙이는 눈빛으로. 1960년대 냉전 구조 속에서 미국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위상을 선전하려고 이민법을 전면 개정해 쿼터제를 폐지하고 이민의 문을 넓히자,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지금처럼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은커녕 국제전화로 목소리 듣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어쩌다 한 번씩 편지를 통해 전해지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 뒤편에 얼마나 많은 설움과 차별의 시간이 있었는지 이제는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물 설고 말 선 곳에서 살아가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지, 라고만 넘길 수 없었던 지난한 차별의 시간⋯. 이제야 경제 분야는 물론 정치 분야에서도 한인 출신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인으로 겪어야 하는 무수한 장벽이 있음을 캐시 박 홍은 분명히 전하고 있다. 타지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동포’에게는 한없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면서 한 동네에서 함께 살고 있는 이주민에게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단일민족 ‘신화’와 우생학적 ‘편견’과 서구적 ‘세계관’에 매몰돼 피부색만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및 남아시아 출신 이주민을 비하하고 폄훼해 그들로 하여금 ‘minor feelings’를 느끼게 하는 적지 않은 이들은, 과연 캐시 박 홍이 전하는 ‘minor feelings’에는 뭐라고 답할까. 글 _ 이종원 바오로 신부(의정부교구 동두천본당 주임)

2024-09-29

끓는 지구 시대에 적정 에어컨 온도는?

9월 1일부터 시작된 창조 시기를 맞아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호소하신다.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입시다.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지구도 지금 ‘아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의 이와 같은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교황은, 끓는 지구(global boiling)를 염려하는 가운데, 우리가 지구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물으신다. 우리의 응답이 미진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지구가 끓어올라 더워진 데는 민감하면서도 지구가 앓고 있는 것에는 둔감한 이유가 기술지배 패러다임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교황은 예리하게 포착하신다. 이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전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촉 지대’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모든 창조물들과 하나로 결합시켜 주셨습니다. 하지만 기술지배 패러다임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로부터 우리를 고립시키고, 전 세계가 서로 만나는 ‘접촉 지대'(contact zone)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들어서 우리를 속일 수 있습니다.”(「하느님을 찬미하여라」 66항) 2024년 여름 무더위가 참으로 길고 심했다. 나는 지은 지 30년이 넘은 아파트 1층에서 살고 있는데, 조금 그늘이 진 침실은 32℃, 햇빛이 드는 거실은 33℃까지 올라갔다. 통풍을 시키며 자연 바람하고 함께 살면서, 바람이 불어 33℃에서 32℃, 32℃에서 31℃로 기온이 내려가는 것을 느낄 때면 바람이 참으로 고맙다. 집 밖으로 나오면 뜨겁기는 해도,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이 이것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바람 없는 여름 없고, 바람 없는 도시 없다. 그런데 에어컨으로 온도를 33℃에서 24℃, 혹은 23℃로 내려놓고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연 바람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든다. 밖으로 나가서도 바람을 느끼기보다 뜨거운 열기에 얼른 에어컨이 있는 실내로 들어가고 싶어하기 쉽다. 기술지배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추상이 아니라 에어컨과 같은 제품들을 통해서 이렇게 우리 일상에 깊게 들어와 있다. 기술지배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자연에서 떼어놓는다.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과 자연 만물과 이웃을 만날 때 우리에게 ‘접촉 지대’가 되어 주는 자연을 잊게 만들어서 ‘접촉 지대’를 삭제하는, 그리하여 결국 그 사용자들이 자기와 자기 후손들을 스스로 제거하는 결과를 낳는다. 8월 30일 새벽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가 다시 기차로 전남 나주로 가서 택시를 타고 남평에 있는 광주가톨릭대학교로 이동해 신학생들 수업을 동반했다. 그리고는 광주송정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송으로 가서 카리타스대학원 영성과 실천 강의를 위해 가톨릭꽃동네대학교로 갔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몸이 굳어오기 시작해 밤새 앓아야 했다. 오른편 어깨 쪽으로 마비가 와서 숨을 깊게 쉬기가 어려워졌고, 성호를 긋기 위해 손을 이마까지 올리기가 힘들었다. 아픈 과정을 통해서 “고통이 크면 클수록 움직일 가능성은 줄어들고, 평형에 대한 그리움은 커진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평형을 회복해 가는 동안,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병과 함께 살 줄 아는 통합 생태적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갔다. 선인들이 말한 것처럼, 앓는 것은 알아가는 과정이다. 자기가 누구인가를, 그리고 이웃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알아가는 은총의 비에 젖는 때다. 그런 속에서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물음이 있었다. 이 끓고 있는 지구 시대에 전주교구청은 에어컨 온도를 26~28℃로 설정하고 있었는데, 그 온도를 몇 ℃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그 적정 온도를 어떻게 합의해 갈 수 있을까? 우리 교회와 사회는? 글 _ 황종열 레오(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

2024-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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