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종교] 청년 취업난 위해 교회 문 ‘활짝’

국가데이터처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일자리 밖’ 청년의 수가 170만 명을 넘어섰다. 조사 결과 실업자, 일도 구직 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 취업 준비생 등을 합친 ‘일자리 밖’ 상태인 20·30대가 170만 6000명으로, 해당 연령대의 13.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인공지능(AI)의 확산과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 현상으로 청년 구직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개신교가 교회 인프라를 활용해 청년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서울 강동구 초대교회는 교회 내 ‘초대구름 작은도서관’을 매개로 청년들에게 일자리, 취업 정보, 멘토링 등을 제공하고 있다. 2021년 구재원 담임 목사가 강동구의 주민참여예산사업에 이런 내용의 ‘작은도서관 청년일자리 지원’ 사업을 제안했고, 사업 선정 이후 매년 2명 이상의 청년이 도서관 일자리를 얻는 등 혜택을 받고 있다. 사업을 제안한 배경에는 구 목사가 청소년·청년 사목을 이어오며 마주한 현실이 있었다. 구 목사는 취업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보며 재정과 인프라를 갖춘 교회가 이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도와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그 결과 다양한 청년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었다. 초대교회는 재능과 역량 있는 이들을 도서관 강좌의 강사로 세워 소정의 비용과 함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청년 일자리 프로그램 정보도 꾸준히 안내해 실제 사업에 선발된 사례도 여러 차례 나왔다. 앞으로도 문화복지 사단법인 ‘초대와이음’을 설립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1인 가정 청년들을 후원하고, 청년 일자리 사업에도 꾸준히 참여할 계획이다. 구 목사는 “선한 마음과 바른 가치관을 지닌 청년들이 취업과 경제적 사정 때문에 좌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종교 활동만 열심히 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며 “종교는 청년들이 이러한 이유로 공동체를 떠나지 않도록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현실적인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충현교회도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자 교회 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고 있다. 2023년 12월 15일 강남구와 ‘청년 점프업(Jump-Up)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체결한 뒤로 4차 산업 분야 취업·창업, 인턴십, 자격증, 청년 스타트업 등 일자리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교육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사업을 통해 83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으며, 92명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편,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제동본당(주임 안재현 미카엘 신부)은 2025년 교리실 한 곳을 청소년·청년 전용 독서실로 만들고 무료로 개방했다. 본당은 “방학뿐 아니라 학기 중에도 학생들이 공부와 회의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앙 속 예술, 예술 속 신앙]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살베 레지나〉와 마르티니 신부

1760년 무렵, 대 바흐의 막내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이름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1735~1782). 이는 그저 전기적 사실처럼 보이지만, 바흐 가문에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바흐 일가는 루터교 신앙과 불가분인 음악가 집안이었고, 그 시초에는 파이트 바흐(Veit Bach)가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루터교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고향을 떠나 튀링겐에 정착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떠난 사람. 음악을 누구보다 사랑한 분. 독일 최고의 음악 가문인 바흐 일족은 자신들의 선조를 그렇게 기억했다. 그런 가문의 막내가 다른 길을 택했다.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갔고, 밀라노에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이복형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는 가계도 속 동생 이름 옆에 씁쓸한 문장 하나를 남겼다. “우리 가운데 이 사람만이 신실했던 파이트와 다르게 살았다.” 이탈리아에서 크리스티안은 마르티니 신부(Giovanni Battista Martini·1706~1784)를 만난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마르티니 신부는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는 음악 이론가이자 교육자였고, 크리스티안은 그에게서 대위법과 작곡을 배웠다. 신학자 존 자나로(John Janaro)는 마르티니를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음악적·영적 아버지’라고 정의한다. 그렇지만 크리스티안의 개종에 마르티니 신부를 주요 배경으로 놓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리라. 그의 결단에는 가톨릭 신자로서 얻을 수 있었던 현실적 고려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개종 직후 1760년 밀라노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그의 전환에는 교회음악가로서의 직책 획득, 이탈리아 음악계에서의 생존과 성공 욕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런 현실이 있다고 해서 사제지간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티안에게 가톨릭 신앙은 음악으로 먼저 다가왔다. 마르티니 신부의 가르침을 통해 라틴 전례음악의 악보로, 대위법 훈련으로, 간절한 기도와 정연한 음악학은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으로 왔을 것이다. 5월 성모 성월의 한복판, 그래서 그의 성모 찬송가 〈살베 레지나(Salve Regina)〉는 남다르게 들린다. 물론 루터교 전통이 마리아 관련 전례 텍스트들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었다. 루카복음 1장 46~55절을 기반으로 한 마리아의 노래 〈마니피캇〉은 루터교 전례 안에서도 주요 축일마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버지 바흐도, 이복형 에마누엘 바흐도 이 찬가로 빼어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살베 레지나〉는 크리스티안이 ’자비의 어머니’, ’우리의 변호자’, ’예수님을 보이소서’ 같은 수사가 표방하는, 가톨릭 성모 신심의 정수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그의 〈살베 레지나〉를 듣는 일은 한 작곡가의 변심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극적인 회심담으로 치환하는 것도 위험하다. 바흐 가문은 그를 ’신실했던 파이트와 다르게 산 사람’으로 기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긴 라틴 교회음악들은 깊은 신심과 모차르트조차 매료되었던 국제성과 유창함, 전아함을 보여준다. 그렇게 마르티니 신부 곁에서 대위법을 익히고, 라틴 교회음악을 손으로 더듬으며 배운 청년이 있었다. 스승은 음악가이자 신학자였고, 제자는 그 두 가지가 조화로이 통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의 호소력 있는 〈살베 레지나〉와 마주한다는 것은, 루터교 바흐 가문의 막내가 어떻게 가톨릭 음악 언어를 배웠고, 그 일생일대의 전환이 어떤 자취로 남았는지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글 _ 박찬이 율리아나(음악 칼럼니스트)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6면

“양면성 지닌 인공지능…‘공동선’ 위한 새 사목 과제”

인공지능(AI)이 사회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넓히면서, 이 기술이 가져올 가능성과 위험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논의가 교회 안팎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AI는 인간의 지식 활동을 돕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열 수 있지만, 동시에 인간의 주체성과 존엄을 흔들 수 있는 문제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AI를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이 주체성을 잃지 않고 AI를 올바르게 활용하려면, 기술을 만드는 이들과 사용하는 이들 모두가 윤리적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교회 역시 기술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중심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청을 받고 있다. AI 기술의 양면성은 종교계에서 이미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생성형 AI 기술이 급속히 대중화되면서,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는 레오 14세 교황의 실제 영상과 AI 제작 영상을 짜깁기해 근거 없는 내용을 교황의 발언인 것처럼 유포하거나, 가톨릭 교리와 부합하지 않는 내용을 퍼뜨리는 국내외 계정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반대로 AI 제작물임을 분명히 밝히고 이를 사목과 선교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국내 사목자들 가운데는 역대 교황들이 한자리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구현한 영상 등 신자들이 부담 없이 접할 만한 콘텐츠를 선별해 SNS에 공유하며 호응을 얻은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가톨릭 교리를 묻고 답할 수 있는 가톨릭 자료 기반 AI 서비스도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에서 AI의 이러한 양면성을 짚으며 기술 자체보다 인간의 선택과 책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이 강력한 도구들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인간성과 지식을 증진함으로써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밝혔다. 이어 AI가 인류의 공동선을 우선하도록 기업가, 학자, 교육자 등이 협력해야 하며, 특히 개발자와 국가 입법자들이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황청 AI 연구 그룹이 발간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을 공동 번역한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리노·마산교구장)와 책을 감수한 수원교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도 인터뷰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밝혔다. 주교들은 사용자가 AI를 활용할 때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고, 설계자는 AI 기술의 개발 단계부터 윤리적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의 미래는 결국 이를 다루는 인간의 윤리성에 달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박찬호(필립보) 신부는 5월 7일 열린 학술발표회 ‘인공지능의 도전 앞에 선 인간과 교회’에서 “AI의 윤리적 지위와 관련된 사안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측면이 고려돼야 하기에, AI의 발전 양상에 따라 지속적으로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 신부는 “중요한 것은 논의의 중심에 언제나 인간이 윤리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 곧 윤리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AI 활용이 사회 각 분야와 교회 공동체 안에서 확산되면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가 새로운 사목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술의 가능성을 살리되, 인간의 주체성과 윤리적 책임을 놓치지 않는 접근이 요구된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면

최은영 소설가 “고유한 영혼 지닌 우리…절망 대신 희망 선택하길”

사랑과 우정,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 낸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처와 연대를 이야기해 온 최은영(프란치스카 로마나) 작가가 청년들에게 절망 대신 희망의 길을 붙들 것을 당부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조직위원회는 5월 9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다섯 번째 WYD 수퍼클래스로 최 작가의 강연을 마련했다. ‘소설 읽기, 정직하게 나를 대면하는 시간’을 주제로 열린 이날 강연에서 최 작가는 인간 내면의 어둡고 깊은 자리까지 마주하는 글쓰기와 독서의 의미를 전했다. 최 작가의 작품에는 청년뿐 아니라 성소수자, 사회적 참사 유족, 가정폭력 피해 여성 등 우리 사회에서 쉽게 들리지 않는 이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그는 이날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사회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그는 “사람은 성별과 직업, 거주지 같은 것으로 규정될 수 없는 ‘고유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며 “책을 읽고 난 뒤 곁에 있는 사람이 영혼을 지닌 존재이고, 함부로 대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한 최 작가는 사회에 만연한 무력감과 절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가만히 있으면 어둡게 생각하게 되고, 희망을 저버리는 일은 너무 쉽다”며 “이는 사람의 본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염세적인 태도는 멋지게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가장 주의해야 할 태도”라며 “절망의 끝에는 결국 자기 자신마저 놓아버리는 결말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거창한 희망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절망의 목소리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가진 희망은 붙들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작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위로를 전하는 작품들의 뿌리가 된 신앙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중학생 무렵 세례를 받은 뒤 청소년기 까리따스 수녀원 모임과 대학 시절 청년 성서 모임, 떼제 공동체 등을 통해 신앙 안에서 위로를 얻었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인생을 살아가며 너무 외롭지 않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마음에서 신앙을 갖게 됐다”며 “한때 굉장히 어두운 사람이었음에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면서 신앙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참가자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시간도 마련됐다. 참가자 홍성근(마르코) 씨는 인공지능의 영향력이 커지고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었다. 이에 최 작가는 “독서는 오랜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게 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까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라며 “이러한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 대해서도 잔인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청년들에게 “자신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건너가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아무리 힘든 시간도 영원하지는 않기에, 언젠가는 현재를 돌아보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한편 최 작가는 소설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밝은 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등을 집필했으며, 최근 첫 산문집 「백지 앞에서」를 펴냈다. 허균문학작가상, 한국일보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제5회·제8회·제11회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21면

[홍보 주일 특집] 이성효·곽진상 주교 “AI 시대…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성’ 지켜야”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말과 표정, 판단과 관계까지 흉내 내는 시대, 레오 14세 교황은 제60차 홍보 주일 담화를 통해 “얼굴과 목소리를 지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AI 시대의 과제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관한 물음이라는 뜻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교황청 AI 연구 그룹이 집필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주체성 회복」이 최근 우리말로 출간됐다. AI가 인간의 자유와 판단, 관계성에 미치는 영향을 짚으며, 기술 발전 속에서도 인간 주체성을 지키는 길을 모색하는 책은 한국교회가 기술을 어떻게 식별하고 사용할 것인지 함께 성찰하도록 돕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책을 번역한 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리노·마산교구장)와 감수를 맡은 수원교구 곽진상(제르마노) 주교는 5월 7일 수원교구 제2대리구청에서 인터뷰를 갖고, AI 시대 인간 주체성 회복의 의미와 교회의 과제를 제언했다. 교회가 AI 시대에 인간의 주체성 회복을 강조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단순히 정보를 처리하거나 효율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유롭게 선을 선택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과의 친교를 향해 나아가는 인격적 존재라는 것이다. 이성효 주교는 “하느님으로부터 지성과 자유의지를 부여받은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고 서로 협력하며 책임 있게 선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과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인간 주체성”이라며 “오로지 기술적 진보만을 추구한 결과 인간 주체성이 위협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곽진상 주교는 AI 기술이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짚었다. 알고리즘이 인간의 욕구와 행동을 예측하고 유도하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식별하는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곽 주교는 “알고리즘이 설계한 정교한 넛지(유도)와 중독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에 대해 숙고할 능력을 잃게 만든다”고 말했다. 또 “탈숙련화는 인간에게 필요했던 숙달된 능력뿐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게 봉사하기 위해 행하던 단순하고 반복적인 과업 수행의 기회마저 앗아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존엄성과 주체성은 물론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기에 교회는 주체성 회복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AI 시대에 인간의 취약성도 새롭게 조명된다. 하지만 주교들은 AI와 구별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가 취약성을 통해 드러난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AI의 관점에서 취약성은 비효율적이라는 측면에서 제외 대상이 되지만 레오 14세 교황님은 인간의 취약성을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곧 인간 존재의 진리와 은총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제시하고 있다”며 “인간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연약하기에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며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인간성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주교는 인간 주체성을 회복하는 열쇠가 ‘인격적 만남’에 있다고 강조했다. AI가 방대한 지식을 제공하고 인간의 언어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책임 있는 관계를 맺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주교와 곽 주교는 한목소리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강생하셨다는 사실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겪는 고통과 기쁨, 관계 속에서 인간 주체성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나아가고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관계성 안에서 주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교회는 AI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교들은 AI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인간의 존엄과 공동선을 위한 도구로 식별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곽 주교는 “온전히 AI에 의존하기보다 비판적인 정신을 가지고 AI가 제시한 의견에 대해 선택하는 결정권을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교회는 AI 기술이 설계 단계에서부터 윤리적 가치를 포함하도록 지침을 제공해야 한다”며 “최종적 판단과 선택의 주도권은 언제나 인간에게 유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주교는 “교회는 AI 기술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증진해 나가는 방향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에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며 “교회 안에서의 AI 활용에 대한 여러 지침을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1면

[칼럼 -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20) 전쟁 포화 속 기후·생명의 희망 찾다

중동에서 타오르는 전쟁의 불길은 우리 식탁과 지구 환경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전 세계 물가 상승을 부추겼고, 천연가스 기반 비료 생산이 중단되면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소득 국가 주민들은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했다. 기후에 미치는 영향 또한 압도적이다. 전쟁 발발 후 단 2주간의 폭격만으로 아이슬란드가 1년 내내 배출하는 양과 맞먹는 온실가스가 뿜어져 나왔다. 더 우려되는 점은 종전 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이다. 이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은 지난 2주간 배출량의 무려 14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이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핵심 원인임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미국의 반대로 군사 부문 배출량이 산정되지 않았고, 최근에야 국가별 재량에 따라 포함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의무 사항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군사 부문 배출량을 국가 인벤토리에 반드시 포함하도록 각국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독성 물질에 의한 오염이다. 최근 테헤란의 석유 저장 시설이 폭격당하자, 시민들은 하늘에서 석유가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는 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장기적으로 이란 시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거대한 재앙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신음하는 이란 시민들을 돕기 위해 필자가 속한 단체와 가톨릭기후행동, 불교기후행동 등 종교단체들이 힘을 모아 이란 영화 특별 상영회를 열었다. 우리는 이 자리에 영화를 제작한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 감독과 그의 배우자인 김주영 감독을 초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 말미에는 미군 폭격으로 숨진 호르무즈 해협 인근 초등학생 120명의 넋을 기리고, 남은 이들을 돕기 위한 지원 요청이 있었다. 상영회 직후 현장 모금이 진행되었고, 온라인 계좌를 통해서도 적지 않은 성금이 답지했다. 이란 현지 학교에서 한국 지원 단체의 로고를 물품에 넣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기후 위기와 전쟁은 너무나 거대해 보이기 때문에, 우리 시민들은 종종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처음에는 뉴스 속 피해 소식에 놀라다가도, 반복되는 보도에 마음이 무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처지를 이해하고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위기에 맞설 희망을 발견한다. 이런 점에서 자신들에게 관심을 두고 지원하는 한국 시민들이 있다는 소식은, 전쟁을 견뎌내는 이란 시민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것이다. 전쟁을 멈추고 지구를 살리는 평화의 연대는 바로 이러한 따뜻한 공감과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 교황께서 강조하신 창조물 돌봄과 평화의 디딤돌이기도 하다. 글 _ 민정희(국제기후종교시민네트워크 사무총장)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7면

‘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한국교회는?

한국교회가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11주년을 기념해 5월 17일부터 24일까지 ‘2026년 찬미받으소서 주간’을 지낸다. 올해 주제는 ‘희망에서 행동으로’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전쟁과 폭력, 기후위기 속에서 인간 사회뿐 아니라 지구와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까지 함께 성찰하자는 취지를 담았다. ‘기후영화 상영회’는 19일 오후 3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다. 다큐멘터리 「내성천 하늘을 오르다」 상영 후 내성천제비연구소 최태규 대표와 영화에 담긴 이야기를 나눈다. ‘삼척 연대 방문’은 20일부터 이틀간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고통받는 강원 삼척에서 진행된다. ‘아픈 삼척 되살리기’의 일환으로 탈탈탈(탈핵·탈석탄·탈송전탑) 미사와 도보 순례가 마련된다. 생태계 파괴로 위기에 처한 지구를 살리기 위해 매주 금요일 이어 온 ‘금요기후행동’ 제318차 행사는 2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펼쳐진다. 참가자들이 각자 기후위기 피켓을 들고 인증 사진을 올리는 캠페인도 함께 전개된다. 이어 정오에는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신규핵발전소 반대 광화문 시국 미사’가 봉헌된다. ‘찬미받으소서 주간 기념미사’는 23일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블라시오) 아빠스 주례로 봉헌된다. 미사 후에는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출발해 유네스코 빌딩과 명동역을 거쳐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는 행진이 이어진다. 교구별 기념행사도 잇따른다. 대구대교구는 ‘공생공존, 팔현습지와 함께 희망하다’를 주제로 16일부터 24일까지 교구청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갖는다. ▲지역 먹거리와 생태 물품 장터 ▲교구·본당 생태 활동 작품 전시 ▲백두대간 국립수목원 허태임(플로라) 연구원 특강 ▲팔현습지 생태공원 현장 체험 ▲영화 <별과 모래> 관람과 토크 등을 진행한다. 대전교구는 18일 오후 7시30분 천안성정동성당에서 교구장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 주례로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본당에 탄소중립 인증서 ‘LUNA’를 수여한다. 또 2025년 12월부터 운영 중인 생태 실천 애플리케이션 ‘에코체크(ECCE)’를 적극 활용한 신자에게 우수상을 수여한다. ※문의 02-460-7622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 053-250-3072~3 대구대교구 생태환경 및 농어민 사목부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7면

[함께 살기, 다시 쓰는 가족] 사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

아빠 베드로는 이제 전화를 받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이 울리면 초록색 동그라미를 오른쪽으로 밀기만 하면 된다고 엄마 소피아가 백 번을 넘게 말해도 소용없답니다. 이제 팔순이 넘은 베드로는 이미 수년 전에 인지장애 판정을 받았고 작년에 치매 판정을 받았습니다. 클라라는 늘 베드로가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다고 경기도 파주에서 경상남도 밀양까지 그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갈 수는 없기에 영상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베드로는 전화를 받지 못하니까 소피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화면 속 아빠 베드로는 한겨울에나 입을 법한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엄마 소피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느그 아빠 니가 사 준 옷 입고 있다, 지금”, “니 첫 월급 받았을 때 백화점에서 사 준 옷 있다아이가.” 첫 월급이라니요. 그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중간고사 마치고 첫 직장에 취업했으니 1998년 늦가을이었을 것입니다. 첫 월급을 받고 나서 샀다면 정확히 27년 전 한겨울이었을 텐데, 그 옷을 아직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니요. 이제 완연한 봄 날씨인데, 베드로는 계절을 상관없이 27년 전의 그 따뜻한 온기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 클라라가 사 준 옷, 우리 클라라가 사 준 옷…” 하면서요. 하느님께서 손수 지으셨기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 각자 가진 고유의 아름다운 어떻게 찾고 사랑해야 할까 저, 클라라는 베드로가 정신이 또렷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제가 베드로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면, 베드로는 “나는 건강하게 타고났는데도 나이가 들어서 (건강 상태가) 이 모양인데, 니는 약하게 타고났으니 나이가 들면 더 힘들끼다. 니 걱정이나 해라”라고 했고, 제가 소피아의 노후에 대해 걱정하면, 베드로는 “느그 엄마는 내가 잘 챙길끼다. 그러니까 니는 니나 잘 챙기라” 했었습니다. 그랬던 아빠 베드로가 이제 엄마 소피아 없이는 전화도 받지 못하는 갓난아이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베드로의 마음만큼은 생애 가장 기뻤던 순간에 머물러 있는 듯했습니다. 약하게 타고난 딸 클라라가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진정한 성인이 되었던 그날, 어쩌면 클라라가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마음을 놓았을 그 순간 말이지요. “당신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당신께서 만드신 것을 하나도 혐오하지 않으십니다. 당신께서 지어 내신 것을 싫어하실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지혜 11,24) 지혜서를 읽고 묵상합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기도 지향은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지혜’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빠, 베드로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함께 하며 어떻게 사랑을 나누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베드로의 일과는 제가 사 드린 옷을 입고 집 앞 골목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쓰레기를 줍고 빗자루로 깨끗하게 좁은 길을 쓰는 일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몸을 깨끗이 씻고 하루하루 생을 정돈합니다. 그 모습에서 젊은 베드로가 매일 어린 클라라의 구두를 닦았던 모습을 봅니다. 사랑은 소멸해 가는 존재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베드로가 참 아름답습니다. 글 _ 김정은 클라라(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6면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노래로 희망 전하는 소프라노 임선혜 씨

소프라노 임선혜(아녜스) 씨의 2026년 새해 첫 무대는 콘서트홀이 아니었다. 1월 중순, 전북 시골의 작은 성당과 양로원에서 연 ‘희망나눔콘서트’(이하 희나콘)였다. 희나콘은 그가 ‘음악을 통한 나눔’을 위해 18년째 이어오는 음악회다. 국제 무대 데뷔 28년 차, 미국 뉴욕타임스는 ‘눈부시게 빛나는 소프라노’라 했고, 지휘자 르네 야콥스(René Jacobs)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연기자 겸 가수 중 하나’라 했던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현장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른다. 그날 임 씨는 사제관 안에 옹기종기 모여 신자들이 끓여준 라면과 어묵탕으로 몸을 녹이고, 항아리에서 꺼낸 김장김치를 나눠 먹으며 공연했다. 이튿날 양로원 어르신들은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걸 언제 또 들을 수 있겠나”라며 눈물을 흘리셨다. 돌아오는 길, 어르신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그 먹먹한 마음은 다른 연주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희나콘은 어쩌면 임 씨에게 가장 본질적인 무대다. 큰 무대에서는 얻을 수 없는 초심과 묵상이 절로 일어나는 자리다. 희망을 나누고 받는다 희나콘은 2009년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 5월 문화축제에서 시작됐지만, 2013년부터 구조가 전환됐다. 기관이나 본당의 초청으로 ‘희망 공연’을 열고, 그 수익금으로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성당과 복지시설, 병원을 찾아 ‘나눔 공연’을 마련한다. 나눔 공연에서 음악가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을 기부한다. 받은 것을 각자의 탈렌트로 다시 나누는 형식 덕분에, 음악가들의 자존감이 지켜지고 기쁨도 크다. 희나콘이 단순한 봉사를 넘어선 ‘문화’로 20년 가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다. 지난해 여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의 경험은 희나콘의 방향을 한층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1965년 아시아 최초로 호스피스를 시작한 이 병원은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이 운영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방에 아무도 들이지 않던 환자 한 분이 방 밖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다. 마침내 방에 들어와 달라고 청했다. 그리고 이틀 뒤 선종했다. “담당 수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 음악이 문을 열었고, 하늘 가실 때 마지막으로 동행한 것이라고요. 그때부터 희나콘은 더 먼 곳,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게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난 5월 9일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에서 희망 공연을 연 희나콘은 올해도 춘천교구 등지에서 여러 차례 나눔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성당에서 온 답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으로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친 그는 1999년 23살 때 고음악의 거장 필립 헤레베허에게 발탁돼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후 르네 야콥스, 만프레드 호네크, 윌리엄 크리스티 등 시대를 대표하는 지휘자들과 작업했고,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프랑스 파리의 주요 오페라 무대를 밟았다. 헨델의 〈아그리피나〉로 BBC 뮤직 매거진 어워드와 그래미 노미네이션, 슐호프 가곡 전집으로 독일음반비평가상을 받았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내내 그는 하나의 물음을 놓지 못했다. “노래가 세상에 무슨 의미인가.” 데뷔 10년이 지날 무렵, 그 답이 뜻밖의 방식으로 왔다. 성당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위로’와 ‘기쁨’이라는 두 단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세상에 위로와 기쁨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그 말이 “너 기쁘라고, 너 위로해 주려고”라는 말로 다르게 들렸다. 노래가 먼저 자신에게 기쁨이고 위로라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위로받고 기쁜 것이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이 노래가 기쁠 수 있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겼다. 공연 후 찾아와 “당신의 음악으로 일주일이 행복할 것 같다”고 하는 관객들의 말이 진심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 깨달음은 희나콘을 이어가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동양인이 바흐 수난곡을 노래하기까지 유럽 고음악계에서 바흐 수난곡은 특별한 영역이다. 매년 사순 시기마다 콘서트홀과 교회 어디서나 연주되지만, 그 레코딩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자리에 동양인이 서는 일은 드물다. 2005년쯤 그에게 기회가 왔다. 녹음도 잘 나왔다. 그러나 결국 노래의 자질과는 무관하게 독일인 소프라노로 대체됐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고음악 지휘자 르네 야콥스가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의 소프라노 솔리스트 모두를 그에게 맡겼다. 주일마다 성당을 찾는 임 씨를 오랜 협업 속에서 지켜봐 온 야콥스는 “유럽인들이 이 음악을 만들면서 가졌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것을, 이 동양인이 가지고 있다”고 섭외 배경을 밝혔다 . 임 씨가 공연을 준비할 때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가사다. 외국어 가사를 최소 두 언어로 대조하고 마지막에는 한국어로까지 번역한다. 악보 하나 들고 정자세로 서는 오라토리오(종교 음악) 무대는 그에게 각별하다. 화려한 의상도 무대 세트도 연기도 없이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전달해야 하는 시간이다. “발이 다시 땅에 딱 붙는, 저를 겸손하게 하는 음악”이라고 설명한 임 씨는 “노래할 때마다, 남들에게 빼어나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내 기도가 되게 해달라고 청한다”고 들려줬다. 신앙의 뿌리 부모님의 신실한 신앙과 봉사 활동 속에서 스며든 ‘하느님’은 그에게 자연스럽다. 유럽에서 식사 전 성호경을 그을 때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다음 식사 때는 따라 하는 사람이 생겼고, 성당을 함께 가는 동료도 생겼다. 신앙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성악가에게 활동 영역을 좁히는 편견이 되지는 않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임 씨는 지휘자 만프레드 호네크(Manfred Honeck)에게서 찾는다. 2018년 그래미 최우수 오케스트라 연주상을 받고 현재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호네크는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계약할 때부터 미사 시간을 조건으로 넣을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임 씨는 호네크가 “하늘에 올라가면 하느님이 ‘너 뉴욕 필 무대에 서봤어? 베를린 필이랑 작업 해봤어?’ 이렇게 묻지는 않으실 것 같다. ‘나한테 물으실 걸 답하고 살아야겠다’”고 했다며, “그 한마디가 지금도 마음에 남는다”고 말했다. ‘달릴 길을 다 달렸다’ 말하고 싶다 그간 드라마 OST, 뮤지컬 공연 등 클래식의 경계를 넘나들어 온 임 씨의 올해 행보도 다채롭다. 연극배우들과 오페라 가수들이 함께하는 창작극, 피아니스트 임윤찬과의 모차르트 투어,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20년 만의 러브 듀엣 리바이벌이 예정돼 있다.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대학교(UNISA) 주최 국제음악콩쿠르 심사에서 젊은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젊음의 열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새삼 느꼈다. 그들에게 더 많은 무대를 열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떠올렸다.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달릴 길을 다 달렸다고 후련하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맞고 싶다”는 그는 “멋있게 무대를 내려가는 준비를 시작하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냐고 물었다. “가사가 잘 전달되는 사람,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노래해도 그 가사가 뜻한 것이 듣는 이의 가슴에 닿는 성악가, 그렇게 기억해 주시면 가장 큰 칭찬이 아닐까 싶어요.” 그러면서 “노래할 때 행복해 보이는 사람, 그건 자신 있다”고 덧붙였다. 희나콘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공연은 원하는 본당이나 기관이 먼저 손을 내밀면 된다. “희망 공연을 열어주신 분들이 곧 나눔 공연의 후원자가 되시는 거예요. 기꺼이 찾아가겠습니다.”

발행일 2026-05-17 제3491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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