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통계로 본 사목적 시사점(5·끝)] 주일학교와 신앙교육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4월 19일「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을 펴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는 한국교회 신자와 성직자·신학생 현황, 교회 내 성사 활동과 신앙 교육, 사회사업과 해외 파견 현황 등을 파악해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자료다. 통계 주요 지표와 함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사목적 시사점을 제언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 분석 보고서’(이하 분석 보고서) 내용을 종합, 소개한다. 전체 본당의 84.5%에서 주일학교 운영 초등부 학생 소폭 증가, 중등부는 전년 대비 감소 전국 1,789개 본당 가운데 84.5%인 1,511개 본당에 주일학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일학교가 있는 본당은 2019년까지 매년 87% 이상으로 나타났으나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운영되지 않는 주일학교가 늘어나면서 83.8%까지 낮아졌다. 2021년 비율이 소폭 늘었지만 2022년과 2023년 84%대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일 학교 대상자 가운데 등록한 초등부 학생 비율은 2022년 대비 0.6%p가 증가한 49.9%로 나타났다. 초등부 등록 비율은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46.8%(전년 대비 -11.7%p)로 떨어진 후 2021년 41.5%(전년 대비 –5.3%p)까지 떨어졌으나 2022년 49.3%(전년 대비 +7.8%)로 올랐으며, 이어 올해 소폭 증가를 나타냈다. 중등부 학생 비율은 2022년 대비 1.0%p 감소한 27.6%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에는 26.7%(전년 대비 –6.2%p)로 떨어진 후 2021년 24.4%(전년 대비 –2.3%p)까지 떨어졌으나 2022년 28.6%(전년 대비 4.2%p)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2023년에는 다시 전년 대비 감소하였다. 2023년 고등부 학생 비율은 2022년 대비 1.0%p 감소한 14.9%로 나타났다. 고등부 주일 학교 등록 학생 비율은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중단되었던 2020년을 제외하고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나 코로나19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주일학교는 운영 자체도 중요하지만 과연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교구와 본당 차원의 자체 점검과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신앙 교육, 꾸르실료·성령 쇄신 운동 등 증가 코로나19 이전보다는 여전히 크게 미진 한편 2023년 신앙 교육 이수자 수는 2022년과 비교하여 부문별로 증가 또는 감소를 나타내고 있다. 이수자 수가 전년보다 증가한 신앙 교육은 꾸르실료(증가율 26.6%), 성령 쇄신 운동(79.2%), 혼인 강좌(5.4%), M.E.(36.0%)이고, 전년보다 감소한 신앙 교육은 성서 사도직(-7.4%), 신앙 강좌(-38.5%), 피정(-21.7%)이다. 성인 신자들의 신앙 교육 역시 코로나19에서 완전히 회복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꾸르실료 이수자 수는 2019년의 81.8% 수준으로 나타났고, 성령 쇄신 운동은 2019년의 53.5%, 성서 사도직은 38.5%, 신앙 강좌는 69.9%, 피정은 54.6%, 혼인 강좌는 65.2%, M.E.는 65.3%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도 크게 미진한 상황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현재 한국교회는 자신의 근본 사명으로서 복음화 사명에 충실하게 임하고 있는지, 또는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기에 충분한 내적 자원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며 “통계가 보여주는 작은 단초를 통해 교회의 복음화 여정이 놓여 있는 현실을 돌아보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화려한 그라피티 뒤에 감춰진 오염수…'반인권·반생태' 그늘 짙었다

주한 미군 반환부지를 정비해 시민에게 공개한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6만6000㎡, 약 2만 평에 달하는 용산어린이정원은 서울 도심에서 푸르른 신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줄곧 ‘아이와 가볼 만한 곳’으로 추천되고 있다. 개방 1년 만에 21만 명이 다녀간 용산어린이정원이 다크투어, 즉 재난이나 역사적 비극이 일어난 장소를 찾아가는 투어의 대상이 됐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동심을 키워갈 정원이 비극적인 장소로 지목된 이유가 무엇일까? 녹색연합의 용산다크투어에 동행했다. ■ 미군의 유류 유출, 용산에 괴물을 키우다 한강과 접해있어 선박을 통한 물류 운송이 용이했던 용산은 조선시대부터 물류 교역의 중심지였고, 이런 장점 때문에 조선군의 병참기지가 있었다. 이후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일본군을 한반도에 진주시키기도 했는데 이 중 20사단이 용산에 주둔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면서 용산기지는 미군에게 돌아갔다. 1949년 병력을 철수했던 미군은 6·25전쟁이 끝난 후인 1953년 8월 15일 용산에 주둔했고 이후 60년간 용산에 머물렀다. ‘서울 속의 작은 미국’이라 불리며 반세기 넘게 금단의 구역이었던 용산 미군기지. 그 안에서 벌어졌던 잔혹한 일들은 그들이 용산을 떠난 뒤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며 보이지 않는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가 2017년 미국의 정보자유법(FOIA)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30년간 용산 미군기지 내에서 발생한 유류 유출 사고는 84건이다. 2001년에는 녹사평역 지하철 공사 중 지하수 유류 오염이 됐는데, 당시 미군은 휘발유 성분 유출은 인정했으나 등유 성분 유출은 인정하지 않았다. 2006년 녹사평역 지하수를 조사하자 5개 조사 지점에서 기준치의 수백 배가 넘는 1급 발암물질 벤젠이 발견됐고, 여전히 기지 바깥으로 기름이 새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군수품 공급지 역할을 했던 한강로 1가 1-1번지 캠프킴 자리에서도 2006년 다량의 유류가 퍼져있는 것을 한국전력 직원이 발견했다. 기름의 종류가 미군에서 사용하는 JP-8 항공유로 확인됐으나 미군은 공동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기름이 유출된 상태의 땅을 반환받았고 땅값만 4조 원으로 알려진 금싸라기 땅에는 ‘사람이 살’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용산어린이정원은 캠프킴에서 700m가량 떨어져 있다. 2000년 미군의 독극물 방류 사건도 화제가 됐다. 미 군무원이 시체방부처리용 포드말린 용액 470병을 영안실 싱크대에 쏟아부어 독성물질이 한강으로 흘러든 이 사건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모티브가 됐다. 서울시에 따르면, 2013년 6월 기준 녹사평역, 캠프킴 주변 등 기름 유출로 오염이 확인된 대지의 면적은 최소 1만2235㎡(약 3700평)에 달하고, 오염을 정화하는데 58억 원가량이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 오염된 공간으로 초대받는 어린이 용산다크투어는 녹사평역에서 출발해 용산기지 담벼락길, 캠프킴,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이어졌다. 녹사평역 3번 출구를 나와 몇 걸음 걷자, 발아래로 이어진 집수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염된 지하수를 관리하고자 녹사평역 인근에는 40여 개의 집수정이 있다는 게 투어 가이드인 녹색연합 박상욱 활동가의 설명이다. 곧이어 도착한 이태원광장에는 스케이트보드를 즐기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청년들 뒤로 보이는 그라피티가 그려진 철제 구조물은 젊음을 상징하는 이태원과 잘 어울리는 듯 보였다. 구조물 앞에 멈춰 선 가이드는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수를 모아둔 곳”이라며 “도시경관사업의 일환으로 몇 년 전 구조물에 그라피티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구조물 뒤로 넘어가자 그라피티에 가려져 있었던 더러운 집수정의 원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체에 위험한 물질이 보관돼 있는 집수정은 화려한 그라피티에 가려져 바닥에 적힌 접근금지 표시를 발견할 수 없게 만들었다. 투어 참가자들은 “이렇게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데 겉모습만 바꾼다고 오염 문제를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삼각지역 인근 캠프킴 주변은 고층빌딩이 빼곡했다. 한눈에 봐도 금싸라기 땅임을 알 수 있는 현장을 바라보며 가이드는 “2006년 기름유출 사고 이후 여전히 캠프킴 지하수 주변으로 다이옥신과 비산 등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84번의 유류 유출 사고가 있었던 용산 미군기지 땅에는 사람이 안전하게 머물 곳이 없어 보였다. 그 땅에 조성된 용산어린이정원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당연했다. 한국환경공단의 ‘(용산 미군기지)사우스포스트 환경조사 보고서’(2022)에 따르면 전체면적의 66.1%인 10만8920㎡에서 석유계총탄화수소(TPH)는 기준치 500㎎/㎏ 대비 36배, 비소는 9.4배, 납은 5.2배 등 여러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했다. 석유계총탄화수소에는 암 유발물질인 폴리아로메틱 하이드로카본 등의 물질이 들어있다. 환경단체들이 용산어린이정원 개방을 우려하자 2022년 5월 정부는 “임시 개방에 따른 노출시간, 노출량 등을 고려할 때 인체에 위해하지 않은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어린이는 행동, 식습관, 대사 및 생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부 환경오염 물질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며 정원 개방을 반대했다. 하지만 용산어린이정원은 2023년 5월 4일 임시 개방됐다. 토양환경보전법, 국토계획법 등에서 도시공원 또는 어떠한 토지이용시설의 임시 개방에 관한 정의나 절차, 요건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용산어린이정원 ‘임시 개방’ 이면에는 시민들의 목숨값이 담보되고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도록 아름답게 꾸며놓은 정원에서 투어 참가자들은 웃고 즐길 수 없었다. 참가자 채경미씨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에 이렇게 위험 요소가 많은데 덮고 가리는 데만 급급한 정부의 모습을 체험하게 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며 “아이에게 좋은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온 정원이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성씨도 “입장하면서부터 정원 관계자가 감시하고 따라붙는 상황을 겪으면서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피부로 느낀 시간이었다”며 “반인권적이며 반생태적인 이곳이 과연 국민들을 위한 장소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2024-05-19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 이모저모] “문장으로 빚어낸 삶과 사랑으로 신앙의 등불 밝혀주길”

올해 제27회를 맞는 한국가톨릭문학상 시상식은 어느 때보다 많은 교회 내 인사들과 유명 문화출판인들이 함께한 축제의 자리였다. 수상 작가들에게는 아낌없는 축하의 박수가 쏟아졌고,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담아낸 작품을 발굴 시상하면서 창작활동을 격려하는 한국가톨릭문학상 취지에도 재삼 격려가 이어졌다. 시상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정리해 본다. ◎…시상식은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위원장인 가톨릭신문 사장 최성준(이냐시오) 신부의 인사말로 막을 올렸다. 학창 시절 「천국의 열쇠」와 「칠층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 작품을 접하며 고민도 하고 성소의 꿈을 키웠던 경험을 전한 최 신부는 “사제로 살며 문학을 통해 삶의 여러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 같다”며 “특히 역사 소설은 상상하기 힘든 역사 속 장면들을 작가의 고증과 상상력으로 우리 앞에 펼쳐 주는것 같아 좋았다”고 밝혔다. 이어 최 신부는 참석 내빈을 소개하며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 한국가톨릭문학상 위상을 키우며 이 세상에 평화를 널리 전하는 데 힘쓸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상이 더 큰 등불이 되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격려사에 나선 대구대교구장 조환길(타대오) 대주교는 최근 흑산도 공소를 방문해 공소를 지키는 선교사와 만난 일을 소개하며 “공소를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에서 이런 분들이 사라져가는 가치들을 지키는 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문학 하시는 분들도 우리가 정말 지켜야 하는 가치들을 외롭게 지켜내고 있기에 응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중고등학교 때 읽은 많은 책이 성소를 체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오늘날 청소년들이 입시 위주 교육으로 책 읽을 겨를이 없는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고, 책에 길이 있다고 했는데 오늘날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길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된다”고 전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김범석 영업부문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이번 본상 수상작은 역사적인 통찰력을 통해 현 세태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고, 작품상 수상작은 비판적 시선을 잃지 않고도 힘차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와 희망을 전하며 독자들 마음에 오래도록 큰 울림을 줄 것”이라며 “2027년 세계청년대회가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모두 함께 모여 신앙을 성찰하고 발전하는 대회가 되어 많은 신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를 기대하고, 우리은행 또한 한국가톨릭의 동반자로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사랑과 혁명」의 추천사를 쓴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히지노) 대주교는 “김탁환 작가의 수상작을 읽으면서 마치 오케스트라를 듣는 것처럼 심장의 박동을 느꼈고 한 폭의 수려한 산수화를 보는 것 같게 공감했다”며 “천주교신자 이상의 느낌과 직관으로 순교자들의 삶을 시대를 뛰어넘어 본 것에 감사드리고 이에 공감하는 함께한 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김 대주교는 덧붙여 “오늘 우리가 있게 된 이 장소, 기회, 시간은 앞서 자신을 송두리째 봉헌한 순교자들의 기운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밝히고 “우리 순교자들, 무명 순교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시상 및 수상자들의 소감을 듣는 시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축하 꽃다발이 줄을 이었고, 수상자들은 정감 있는 소감으로 훈훈함을 더해 주었다. 김재홍 시인은 축하를 위해 참석한 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에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수상자보다는 하객으로 있는 게 좀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또 살아있는 예술가로서의 느낌이 들게 한 선배 시인들을 거론하며 “이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떠나지 않고 자극이 되고 동기가 되고 힘이 된다”고 말했다. ‘섬진강대학교 4학년’이라고 소개한 김탁환 작가는 곡성과 인연을 맺고 「사랑과 혁명」을 집필하게 된 과정을 소개하면서 ”소설가로 산 지 28년이 됐는데 등장인물들이 가장 고통받는 곳에서 같이 4년을 살며 소설을 쓴 건 태어나서 처음이고, 그래서 이 소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작가는 “2027년 정해박해 200주년을 앞두고 있는데, 순례를 위해 곡성에 오시면 성지를 걸으면서 설명을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1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시상식장은 어느 때보다 다양한 계층의 교회 내외빈이 모습을 보였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전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를 비롯한 주교회의,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cpbc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등 교구 기관 본당 단체들의 사제단이 함께했다. 가톨릭문인회 및 출판계 인사들,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및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관계자들도 자리를 빛냈다. 한국가톨릭문학상 운영심사위원들과 후원사인 우리은행 관계자 및 가톨릭신문사 편집 자문위원 등도 참석했다. 「사랑과 혁명」을 출간한 해냄출판사 이혜진(보나) 주간은 “귀한 상을 제정해 27년간 빠짐없이 시상해 온 과정이 대단하다”며 “어찌 보면 다소 가볍고 얇은 것이 선호되는 세태에서 박해사가 주는 의미와 가치에 천착해 시간을 쏟은 작가의 노력이 가톨릭에서 인정받고 지지받아 출판인 입장에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상자 관계자들의 뒷얘기도 눈길을 모았다. 김탁환 작가의 전남 곡성 집필실과 생택책방 ‘들녘의 마음’이 있는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에서는 이동현(안토니오) 대표와 가족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총출동했다. 김탁환 작가와 이 대표는 2018년 미실란 밥 카페 ‘반하다’ 밥을 통해 인연이 됐다. 이동현 대표는 “책을 집필하는 4년의 과정을 지켜보고 한 건물에서 같이 살다 보니 상을 받으신 모습이 너무 감동”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날 김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를 제작해 사진을 찍기도 했다.

2024-05-19

복음화와 전인교육 위해 머리 맞대는 자발적 실천 공동체

세속적 성공이 절대적 가치가 돼버린 사회에서 교육은 입시 전유물이 된 지 오래다. ‘좋은 학생’이란 심성이 바른 학생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뜻하게 됐다. 부모들은 자녀가 ‘좋은 학생’이 되길 바라고, 학교는 그 수요에 따르는 서비스 제공자로 변했다. 가톨릭학교들도 이러한 교육환경에 적응하며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왔다. 교육자들은 ‘복음화와 전인 교육을 사명으로 하는’(「한국 가톨릭학교 교육 헌장」 제2장) 교육이념에 무지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체적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가톨릭학교교육포럼(공동대표 조영관 에릭 신부·김율옥 안젤라 수녀, 이하 교육포럼)은 이처럼 ‘가톨릭학교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서 2003년 활동을 시작했다. 교육 주간(5월 20~26일)을 맞아 가톨릭학교를 가톨릭학교답게 하고자 고민하며 가톨릭 교육자들에게 길을 제시해 온 교육포럼에 대해 알아본다. ■ 정체성에 대한 자발적 탐구 한국 교육 제도와 문화에서 가톨릭학교가 자기 정체성을 구현하는 것은 도전적 과제였다. 1970년대 이후 종교교육 및 종교행사 규제 등 종교계 사립학교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뤄지며 가톨릭적 교육이념을 실현하는 노력은 큰 제약을 받았다. 더구나 일반학교와 마찬가지로 성적 위주 학교교육 여건에 순응하며 ‘준공립화’의 함정에 빠졌다. 이런 현실에서 정작 가톨릭학교 교육 현황과 전망에 대한 연구가 소홀한 것이 문제였다. 1986년 가톨릭교육재단협의회가 발족해 교육 관계자들의 연수, 정보 교환, 상호 친목 도모를 해왔지만, 내용이 부족하며 활동 빈도와 학교들의 참여가 낮다는 지적이 있었다. 교육포럼은 이렇듯 실질적 연구모임이 전무한 상황에서 교육 관련자들이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전문적 연구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장에 대한 필요성 위에 출범했다. 당시 동성고 종교교사로 재직하던 조영관 신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평소 가톨릭학교 교육에 대한 논의를 이어오던 김경이 교수(클라라·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김율옥 수녀(당시 성심여고 종교교사) 등 교육자들의 자발적 학습 공동체로 첫발을 내디뎠다. 가톨릭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일선 교사들과 대학 연구자들이 정기적 연구 및 연수 활동을 통해 가톨릭학교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현재 공교육이 가진 문제점을 교회적 시각에서 성찰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교육포럼의 핵심 취지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월례 세미나와 심포지엄 등 학술 활동, 교사들이 소명 의식을 고취하며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고 연대감을 맺는 장이 되는 3박4일 ‘생명의 교육자’ 집중 연수 프로그램 등을 주요 활동으로 펼쳤다. 초기에는 가톨릭학교 교육에 대한 연구가 거의 수행된 적이 없고 참고할 도서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세미나는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정체성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됐다. 종교교육의 목적과 이념, 교육의 종교성 회복을 위한 접근 등 평소 회원들이 고민하던 주제들이 선정됐다. 심포지엄은 ‘가톨릭학교 교사의 영성’, ‘앎과 삶을 통합하는 가톨릭학교 교육’ 등을 주제로 교육자들이 그간 수행해 온 가톨릭학교 교육 실천의 이론적 토대부터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 이후 세미나는 교육의 주요 요소인 교사, 학생뿐 아니라 교육 과정·철학, 대안학교, 리더십 등 폭넓은 주제에서 가톨릭학교다운 시각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시의성 있는 주제로도 나아갔다. 학생 인권 조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2012년에는 ‘가톨릭교육과 학생 인권 조례’를 주제로 평신도 교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교육포럼은 국내 가톨릭 관련 연구자, 교사, 다양한 교육 공간에서 가톨릭교육을 펼치는 사람들이 가톨릭교육을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 및 출판에도 힘썼다. 2021년에는 신학·종교교육학자 토머스 그룸(Thomas Groome) 교수의 저서 「생명을 위한 교육」을 번역했다. 가톨릭 교육자로서 알아야 할 인간론, 사회론, 우주론, 인식론, 영성, 가톨릭의 개방성과 환대에 대해 제시하고 그를 토대로 한 교육론을 내용으로 담은 책으로 일부 학교에서 교사 교육에 활용되는 저서다. 또 주교회의 교육위원회(위원장 문창우 비오 주교)의 의뢰로 2020~2021년 교육포럼이 주축이 되어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헌장」과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지침서」 개정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학교 현장에서 널리 공유되고 실천될 수 있도록 전통성, 실천성, 명료성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이렇듯 가톨릭교육의 정체성을 다방면으로 구현해 온 교육포럼은 자발적 실천 공동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조 신부는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들이 스스로 모여 배우는 과정에서 참가자 개인뿐 아니라 교육 공동체 모두가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서로 비전을 공유함으로써 학생들을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실현시키는 가톨릭학교들의 ‘생명의 교육자’라는 정체성과 방향성도 날로 구체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위기 봉착 가톨릭학교 교육 위해 유관 전문자들 모여 전문 연구 교사들이 직접 실천할 수 있게 구체적인 전인교육 방향 제시 ■ 방향성 뚜렷해진 전인교육 전인교육은 복음화와 함께 가톨릭학교 교육의 좌우 날개로 제시되는 목표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일선 교사들이 명확한 방향성을 찾기는 어렵다. 가톨릭 전인교육은 지덕체가 골고루 발달한 인간을 양성하는 일반적 전인교육과 다르기 때문이다. 교육포럼은 추상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 전인교육이 곧 예수의 가르침을 내면화한 ‘그리스도적 인간’을 육성하는 것임을 교사들에게 일깨워 준다. 이해타산, 가치전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선으로 나아가는 하느님의 모상을 육성할 수 있도록 가톨릭학교만의 전인교육에 구체적 방향을 제시한다. 참가자들이 전인교육 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서 교육포럼은 큰 호응을 거두고 있다. 2013년부터 교육포럼에 참여해 온 박문여자고등학교 남상보(바오로) 교사는 “‘가톨릭교사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 참여한 이후 전인교육을 위한 학급 담임교사로서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역할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남 교사는 “동료 가톨릭학교 교사들의 교육 비전과 영성을 토대로 나누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부터 교육포럼에서 활동한 소명여자고등학교 김종오(마티아) 교감은 “각종 교회 문헌 가르침을 공부하며,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교사들의 고민들을 알아보면서 나는 과연 어떤 교사로 살아갈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헌장」과 「한국 가톨릭 학교 교육 지침서」 개정 작업에도 동참한 김 교감은 “학문적이고 추상적일 수도 있는 가톨릭교육 사명을 구현하며 나는 현장에서 어떤 교사로 살아갈 것인지 되뇌는 계기가 된다”고 전했다.

2024-05-19

[순례, 걷고 기도하고]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

주막거리가 북적였다. 이곳은 용인과 안성, 원삼 등지에서 ‘천주쟁이’들을 잡아 온 포졸들의 중간 집결지, 죽산 관아가 지척이었다. 막걸리 한 사발에 취기가 오른 포졸 하나가 오라에 묶인 죄인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돈을 내. 네놈들은 저 고개만 넘으면 죽은 목숨이야. 돈을 내면 풀어줄게.” “안된다고? 돈이 없다고? 이 고약한 놈들. 너희 때문에 이 고생인데….” 몽둥이질, 발길질 온갖 매질이 시작됐다. 혹시 풀려날까 호송 행렬을 뒤따른 죄인의 가족들이 그 모습에 땅을 쳤다. 두드렸다. 죽산성지에서 6km 떨어진, 오늘의 안성시 삼죽면 덕산리. 죄인들이 두들겨 맞고 가족들이 안타까움에 땅을 두들겼다 해 ‘두둘기’ 마을이라 불린다. ‘잊은 터’ 죽산 중부고속도로 일죽 IC를 나와 안성 방향으로 300미터정도 가면 ‘죽산성지’라 새겨진 큰 돌을 만난다. 성지 초입이다. 이곳에서 성지까지는 800여 미터. 포졸들에게 잡혀 와 죽산 관아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초주검 된 신자들이 처형터로 향하던 그 길이다. 죽주산성을 마주하는 이곳은 고려 때 원나라 군사가 진을 친 곳이어서 ‘이진(夷陳)터’라 불렸는데, 박해 시기 ‘잊은 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거기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해서였다. 두둘기와 잊은 터의 아픔을 간직한 이곳은 이제 성스러운 땅,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다. 주차장 한가운데 예수성심상이 두 팔 벌려 순례자를 맞이한다. 기와를 얹은 담벼락을 따라 걷자 ‘성역’(聖域)이라는 현판 걸린 커다란 대문이 세워져 있다. 속(俗)의 세계를 벗어나 성스러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푸른 잔디밭이 널따랗게 자리한 성지 광장. 양옆으로 돌 묵주알이 줄지어 서 있고 장미 넝쿨이 반원 모양으로 묵주알을 감싸고 있다. 묵주기도의 길 곁은 장미 터널이다. 5월 성모성월의 끝 무렵이면 장미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복자와 하느님의 종 그리고 무명 순교자들, 이곳에 잠들다 성모신심의 길 끝에 놓인 피에타상을 지나면 ‘순교신심의 길’이다. 죽산에서는 병인박해를 전후해 수많은 신자가 목숨을 잃었다. ‘병인박해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해도 24명. 순교신심의 길에는 24명 순교자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과 봉분 그리고 한가운데는 보다 큰 둥근 봉분의 무명 순교자 묘가 자리하고 있다. 죽산에서의 박해는 잔혹했다. 부자(父子)를 같은 날 함께 처형하는 것을 국법이 금했음에도 순교자 여정문(1867년 순교)은 아내와 15살 아들, 순교자 최성첨(1868년 순교)은 아들과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순교신심의 길에는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의 묘도 자리하고 있다. 병인박해를 피해 4형제를 데리고 충북 진천 절골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부부는 1868년 절골에 들이닥친 죽산 포졸들에게 쫓기게 된다. 젖먹이 아이를 안은 채 쫓기던 오 마르가리타는 산중에서 잡히고 박경진 또한 숨어있던 집 주인의 밀고로 붙잡혀 죽산 관아로 끌려온다. 모진 고문이 이어졌지만 부부는 배교하지 않고 그해 9월 함께 순교한다. 꽃이 지지 않는 성지 죽산은 꽃이 지지 않는 성지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와 영산홍, 조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장미가,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 겨울에는 눈꽃과 함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꽃을 대신한다. 참혹했던 피의 순교가 이뤄진 땅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믿음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에 감사한다. 피의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천주님께서 안배하신 대로 순명하여라” 이곳을 다녀간 순례자들이 봉헌한 초가 가지런히 놓인 현양탑을 돌아 ‘십자가의 길’에 들어섰다. 야트막한 오르막에서 다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14처 길은 성지마당에서 보면 순교자 묘역을 감싸 안은 모양이다. 순교자들이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십자가의 길 1처 앞에 섰다. 하느님의 종 박경진 프란치스코가 옥중에서 동생 필립보와 아들 안토니오에게 보낸 편지 글을 묵상한다. “어린 조카들을 잘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천주님을 공경하고, 천주님께서 안배하시는 대로 순명하여 나의 뒤를 따라오도록 하여라.” 아멘… ◆ 순례길잡이 수원교구 죽산순교성지(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는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가 심문과 고문을 당하면서도 하느님을 증거하며, 목숨을 바친 순교성지다. 순교자묘역에는 복자 박경진(프란치스코)과 오 마르가리타 그리고 하느님의 종 8명 등 24위 순교자의 묘와 무명순교자 묘가 조성돼 있다. - 미사 : 화~주일 오전 11시 - 순례 문의 : 031-676-6701

2024-05-19

[함께 보는 우리 성인과 복자들(2)] 궁녀 성 김유리대와 복자 문영인

조선 시대 궁녀는 정5품에 속하는 상궁부터 그들의 처소에 소속된 하인까지 포함된다. 궁녀 조직은 왕실 생활을 보필하기 위한 거대한 ‘비서실’이었다. 이들은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삶의 공간도 제한돼 궁녀는 신앙을 가지기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궁녀가 됐지만 신앙을 지키다 결국 궁궐을 떠난 순교자, 성 김유리대(율리에타·1784-1839)와 복자 문영인(비비안나·1775~1801)을 알아본다. 각자 다른 이유로 궁녀가 되다 성 김유리대는 태중 교우로 시골에서 태어나 1801년 신유박해 이전에 부모와 함께 서울로 이사했다. 부모는 성인이 혼인을 하길 원했으나 그는 동정을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에 자기 머리털을 가위로 자를 만큼 신심이 깊었다고 전해진다. 신유박해가 끝나고 냉담한 부모와 달리 18세의 성인은 신앙을 유지하며 동정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제 발로 궁녀가 됐다. 궁녀의 제한된 삶이 오히려 동정의 신념을 지키기엔 좋다고 여긴 것이다. 정확한 직책이 전해지지 않지만, 상궁·나인 등 고위직 궁녀를 보좌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중인 출신의 복자 문영인은 일곱 살 때 조정의 관리에 의해 궁녀로 선발됐다. 복자의 아버지는 궁녀에 선발될 만한 나이가 많은 딸들은 숨겨두고, 아직 어린 복자와 동생들만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관리는 그녀의 총명함과 용모를 보고 궁녀로 선발했다. 역시 정확한 직책은 전해지지 않지만, 열다섯 살부터 궁궐에서 복자에게 문서 쓰는 일을 시켰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성장기를 궁에서 보내다 보니 신앙을 가지진 못했다. 신앙을 지키다 궁을 떠나다 성 김유리대는 동정을 지키기 위해 궁궐에 들어갔지만 궁에는 교우도 없는 데다 궁궐 행사에 스며들어 있는 유교 예절이 천주교 교리에 어긋나기도 해 힘들어했다. 하는 수 없이 배웠던 경문만 열심히 외우는 데 그쳤던 성인는 오랜 고민 끝에 병을 핑계로 10년간 삶의 터전이었던 궁궐을 떠났다. 성인은 궁에서 나와 장사로 돈을 벌며 조그만 집을 사 홀로 살았다. 당시 성인은 힘든 와중에도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으며 성격이 강직하고 말과 행동도 준엄해 교우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성인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사람들은 성인을 “죽는 한이 있어도 결코 악을 향할 여인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일곱 살부터 궁녀 생활을 시작한 복자 문영인은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궁녀들과 다과를 마치고 돌아오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쓰러졌다. 이후 치료를 위해 잠시 궁을 떠나게 된 복자는 한 노파로부터 천주교 신앙에 대해 듣게 됐고, 교리를 배우더니 세례성사까지 받았다. 복자가 세례를 받자 그렇게나 앓던 병이 싹 나았다고 전해진다. 병이 완쾌돼 궁궐로 돌아간 뒤에도 몰래 기도하던 복자는 얼마 못 가 천주교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돼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렇게 복자도 신앙을 지키다 궁궐 생활을 마치게 됐다. 복자는 청석동(현 서울 견지동)에 집을 얻어 살며 한양으로 이주해 온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회장에게 집을 빌려주기도 했다. 또 전교로 새 영세자를 만드는가 하면 교우들을 집에 숨겨주는 등 여러모로 교회에 헌신했다.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교우임을 밝히다 성 김유리대는 1839년 기해박해 때 몸을 숨기지 않고 집에서 포졸들을 기다렸다. 체포된 성인은 포도청에서 모진 고문을 받았지만, 그의 의지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성녀는 교우들이 숨어있는 곳을 밝히라는 관헌들에게 “만약에 어떤 사람을 고발하면 그 사람에게 사형을 내리실 것이요, 책을 갖다 바치면 태워버리실 것이니 입을 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는 죽는 길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형조로 넘어간 뒤엔 성인을 배교시키기 위한 관원의 온갖 감언이설도, 혹독한 매질도 소용없었다. 결국 2개월간 옥에서 고통을 감내하다 마침내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향년 56세로 순교했다. 복자 문영인도 1801년 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에게 돌아가 겸허히 순교를 기다렸다. 복자는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오히려 다과를 대접하고, “내가 천주교인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포도청에서 관원이 “궁에서 교육받은 여인이 국법의 준엄한 형벌 무서운 줄 모르고 사교에 빠졌느냐”며 다그치자, 복자는 그저 “저는 제가 공경하는 하느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라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복자의 강한 저항에 더 화가 난 관원들이 더욱 혹독하게 고문했다고 전해진다. 배교시키기 위한 온갖 유혹도 소용없었다. 결국 복자도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참수형으로 향년 26세에 순교했다. 순교 당시 복자의 목에서 흰 피가 솟구쳐 나왔다고 전해진다. 성 김유리대와 복자 문영인은 안락한 궁궐 생활을 오로지 신앙 때문에 포기했다. 각자의 모습대로 교우들에게 모범을 보이던 이들은 자신이 몸담았던 국가의 처형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증거했다는 것에 당당했고 영광스러워했다. ◆ 성인과 복자가 순교한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 서소문은 소의문(昭義門)이라고도 불렸으며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에 있던 간문(間門)이었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아현에서 서소문으로 향하는 길에 있었는데, 당고개·새남터·절두산과 더불어 조선시대 공식 처형지였다. 조선 사법기관이었던 형조·의금부와 가깝고, 유동인구가 많다 보니 한마디로 죄인을 일벌백계(一罰百戒)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는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돼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많은 이들이 순교했다.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 중 44명이 1984년 성인으로, 2014년에는 27명이 복자로 선포됐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191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1927년엔 수산시장이 개설되면서 형장의 흔적이 사라졌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의 제안에 따라 시작된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2019년 문화 복합 공간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또 2018년 9월에는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포함한 서울 천주교 순례길이 그 특별한 역사성을 인정받아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 순례지로 거듭났다.

2024-05-19

[저를 보내주십시오] 예수회 박문수 신부(하)

생물학 교수를 꿈꾸던 예수회 박문수 신부(Francis Xavier Buchmeier·프란치스코·83)는 1974년 미국으로 돌아가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노동조합 운동을 펼치는 가톨릭신자들이 투옥·고문당하는 현실을 목격하고, 왜곡된 도시계획을 위한 재개발과 철거 강행 으로 고통받는 농민, 노동자, 도시빈민을 위한 해방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박 신부는 1985년 귀화하자마자 ‘천주교도시빈민회’(이하 천도빈)에 가입하고 철거민들의 현장에 참여하는 등 가난한 이들의 터전으로 뛰어들었다. 메말랐던 세상, 박 신부는 가난한 이들의 동반자로서 어떻게 기꺼이 헌신해 왔을까. ■ 가난한 이들의 현장으로 1980년대 우리나라의 도시계획 목표는 가난을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 사당동, 목동, 상계동 등 재개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집을 빼앗기고 쫓겨나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철거반원들의 폭력으로 많은 주민이 다쳤다.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한 박 신부는 서강대학교 교수로서 도시빈민운동과 주민운동 단체의 활동에 도움이 되는 연구 및 분석을 계속했다. 가난한 이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치던 천도빈의 일원이었지만 그가 주로 하는 일은 빈민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조력자 역할이었다. 그런 그가 현장에 동참하게 된 것은 1986년 상계동 강제 철거 사건 이후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이유로 상계동 등 200여 곳에서 철거가 강행됐다. 박 신부가 기억하는 철거는 매우 잔인했다. 대규모로 침입한 깡패들이 여성들의 머리채를 잡아 내던지고 상처를 입혔다. 경찰들은 개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폭력에 쓰러진 주민들을 연행했다. “소식을 들은 그날 저녁 저는 달라졌습니다. 학자로서의 연구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현장과 괴리되지 않은 연구를 위해 주민들과 직접 함께할 필요성을 절감했죠.” 그렇게 박 신부는 “멀리서 객관적인 연구를 하는 것보다 참여하는 사람과 같은 입장에서 체험하면서 연구해야 한다는 것”에 눈떴다. 재개발 지역을 찾아 철거민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등 본격적 빈민 사목에 나섰다. 강제 철거 다음 날에는 아침 일찍 상계동 현장에 뛰어가 주민들과 함께했다. 쫓겨나는 주민들의 아픔을 학생들이 직접 목격하게 하는 현장 강의들도 펼쳤다. 학생들과 함께 깡패들과 맞서 철거 시도를 막아내기도 했다. 사목의 핵심은 가난한 주민들이 뭉치게 하는 것이었다. 당시 주민들에게는 공동체라는 개념이 없었다. ‘흙이 없는 땅에 떨어진 씨’라는 박 신부의 표현처럼 각자 계층 향상에 힘쓰느라 사분오열된 그들은 존엄을 되찾는 일에 단합된 힘을 모을 수 없었다. 박 신부는 “주민들을 조직화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고 회상했다. ■ 함께함으로써 해방을 “빈민 사목은 제일 돈이 없는 사람을 찾아 돌보는 사목이 아니에요. 사회 구조로 인해 억압받는 가난한 이들이 스스로 해방될 수 있도록, 그들이 단합된 힘으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도록 함께하는 사목이죠.” 주민 조직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들과 관계를 맺고 이웃이 되는 것이 중요했다. 박 신부는 천도빈 활동가로서 세입자들을 대상으로 주거권이 무엇인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교육하는 동시에 친교와 나눔의 자리를 계속 만들어 갔다. 교육과 조직화를 위해서는 주민들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화곡동 예수회 신학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신정동 철거촌 주민들을 계속 접촉했다. “몸은 수입이어도, 마음은 한국산”이라는 말은 입버릇이었다. 강제 철거를 앞둔 지역에 미리 들어가 스스로 주민이자 이웃이 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무악동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1990년 독립문 지역 철거를 앞두고 그곳에서 공동체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예수회 신부들과 전세방에서 생활하며 세입자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노력으로 200세대에 달하던 세입자들이 가(假)이주 단지를 얻어 살다가 무사히 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다. 1999년에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서울 무악동선교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는 등 온전히 빈민 사목에 투신했다. 선교본당은 당시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무악동, 삼양동 등 재개발 지역 주민들 삶에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세운 도시 공소를 발전시킨 개념의 공동체다. 박 신부는 초대 본당 주임으로서 주민들이 스스로 권익을 찾을 수 있도록 자치회 및 부녀회를 구성하고 청소년 스카우트 운동을 조직하기도 했다. 박 신부는 본당과 주민들 사이 접촉점을 늘리기 위해 본당 부설 협동조합형 자활공동체인 ‘독립문 평화의 집’도 세웠다. ‘독립문 평화의 집’은 종교색 없이 주민들이 함께 주민운동을 펼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됐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이 자기들만의 조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움이 됐다”고 박 신부는 전했다. ■ 새롭게 이어지는 ‘연대’ 박 신부는 다른 차원의 가난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새로운 ‘동행’의 길, 평화를 위한 ‘연대’의 씨앗을 심는 일에 나섰다. 2009년 선교본당 주임 사목을 마친 박 신부는 바로 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이하 연구센터) 설립에 착수, 이듬해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연구센터의 목적은 이주노동자와 난민, 소외층을 위해 헌신하는 사회사도직 단체들의 활동을 연구로 지원하고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예수회원들은 “오랜 시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박 신부가 센터장을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초대 센터장으로서 박 신부는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나섰다. 예수회 일본관구와 연대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평화와 군축 세미나를 열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세미나 및 토론회를 열었다. “환경 보호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평화 운동”이라고 박 신부는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핵발전소 반대운동은 세계 평화를 요청하는 일본의 평화헌법을 수호하는 운동이었죠. 일본은 히로시마 원폭의 상처를 가진 나라예요.”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처럼 군사주의적 폭력에 맞서는 데도 함께했다.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길 바라며 2014년부터 강정 평화 콘퍼런스와 평화대회 마련에 동참했다.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와 연대하면서 핵발전소 반대운동에 나설 뿐 아니라 조선학교와 관계를 맺고, 차별받는 재일조선인들을 위로했다. 이렇듯 개발 광풍에 떠밀려 외면받는 빈민들을 ‘동반’하고, 미움과 차별로 멍든 땅에 ‘연대’의 가치를 전해온 박 신부의 선교 여정은 어느덧 55년째에 접어들었다. 반백 년 이상 한국교회와 함께한 그는 끝으로 ‘불평등’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가난을 언급하며 “교회가 세속화되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끝까지 함께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주거 공간이 아닌 투기 대상이 돼버린 집, 무제한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불평등입니다. 순교자의 교회인 한국교회가, 하느님의 정의를 외치는 예언자적 사명을 잊지 않길 늘 기도합니다.”

2024-05-19

[한국교회 통계로 본 사목적 시사점(4)] 팬데믹과 성사 활동의 회복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4월 19일「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을 펴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는 한국교회 신자와 성직자·신학생 현황, 교회 내 성사 활동과 신앙 교육, 사회사업과 해외 파견 현황 등을 파악해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자료다. 통계 주요 지표와 함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사목적 시사점을 제언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 분석 보고서’(이하 분석 보고서) 내용을 종합, 소개한다. 교회 성사 활동 여전히 회복 국면 주일 미사 참례율, 2019년의 74.5% 수준 코로나19 팬데믹은 교회의 일상적 사목 활동, 그중에서도 함께 모여서 할 수밖에 없는 교회의 성사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이번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에서는 그것이 여전히 회복 국면에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영세자 수는 5만1307명으로 전년(4만1384명) 보다 1만명 늘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영세자(8만1039명) 대비 63.3%의 회복률을 나타냈다(유아 세례는 2019년 유아 세례의 72.1%, 어른 세례는 59.3%에 해당). 2023년 등록된 예비신자 수는 3만9249명으로 2019년의 59.1% 수준에 달했다. 전국 본당의 평균 예비신자 수는 22명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년 전인 2013년에 비해서는 49명,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비해서는 16명이 감소한 수치다. 주일 미사 참례자는 80만5361명으로 전체 신자 대비 주일 미사 참례율은 13.5%였다. 2019년 대비 74.5%까지 회복됐다. 또 부활 판공성사 참여자 수는 2019년의 73.9%, 성탄 판공성사 참여자 수는 2019년의 76.0%까지 회복했다. 교회의 혼인 건수는 2019년의 74.7%에 달했다. 2023년 견진성사 건수는 2019년의 68.6% 수준으로 나타났고 병자성사는 2019년의 90.6%, 첫영성체 80.8%, 영성체 73.0%, 고해성사는 73.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초부터 사실상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됐고, 5월에는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엔데믹을 선언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우려가 어느 정도 잦아든 상황에서 주일 미사 참례율이 74.5%에 그친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팬데믹 이전 주일 미사를 참례하던 신자의 4분의 1은 여전히 성당에 돌아오지 않은 셈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실시한 ‘한국 천주교회 코로나19 팬데믹 사목 백서 마련을 위한 설문조사’에서는 코로나 종식 이후 주일 미사 참례 의향을 묻는 질문에 22%는 ‘상황에 따라 참석할 것이다’, 15.3%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나타낸다. 전반적으로 교회의 성사 활동은 회복 국면에 있음이 분명하지만 팬데믹이 준 충격과 그에 익숙해진 신자들에게는 여전히 다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교회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2024-05-19

[한국교회 통계로 본 사목적 시사점(3)] 신부 고령화와 외국인 수도자 증가

주교회의(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4월 19일「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을 펴냈다. 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집계된 통계는 한국교회 신자와 성직자·신학생 현황, 교회 내 성사 활동과 신앙 교육, 사회사업과 해외 파견 현황 등을 파악해 사목 정책 수립에 반영하기 위한 자료다. 통계 주요 지표와 함께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사목적 시사점을 제언한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3 분석 보고서’(이하 분석 보고서) 내용을 종합, 소개한다. 새 수품 신부 지속적인 감소세 10년 이내 원로 사목자 진입 신부 비율 2013년 9.2% → 2023년 16.6% 오늘날 새 수품 신부 수는 지속적인 감소세에 있다. 2019년까지는 100명 이상이던 수가 2020년부터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2023년은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수로 2013년보다 32.4%가 감소하였다. 한편, 10년 전에 전체 사제의 6.7%(269명)였던 원로 사목자는 2023년에는 11.4%(536명)나 됐다. 10년 전에는 전체 사제의 63%였던 30~40대 젊은 사제 비율이 2023년에는 47%로 감소했고, 70세를 일반적인 원로 사목자 연령으로 본다면 10년 이내에 원로 사목자에 진입할 60대 사제의 비율은 9.2%에서 16.6%로 증가했다. 이런 수치로 원로 사목자의 비율이 늘어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원로 사목자 자신과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그에 적합한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새 수품 사제 수와 고령 사제 비율을 종합적으로 보건대 수년 내에 한국교회도 현재의 중년 사제들이 일선 사목에서 은퇴하면서 사제 부족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 예상되기에 이에 대한 좀 더 중장기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새 수품 사제의 감소 현상은 신학생 수의 급격한 감소에 기인한다. 곧 2023년 신학생 수는 교구 790명, 수도회 228명으로 총 1018명인데, 교구 신학생 수는 10년 전보다 37.5%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회의 사도직 활동 축소, 외국인 수도자 증가 「한국 천주교회 통계」로 볼 때 최근 수년 동안 남녀 수도자들의 대외적인 사도직 활동은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자 수도자들의 경우에 최대 소임인 본당 전교 활동 비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가운데 2018년에 처음으로 30% 아래로 내려온 이래 2023년에는 24%를 기록했다. 이어서 교육기관,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특수 사도직 분야 등 모든 영역에서 축소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타 사도직 활동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주로 수도회 내부 소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수도자 수 감소와 고령화 현상, 그리고 사회 복지 사업 축소 등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대다수 수도회가 전교나 사도직 활동 수도회인 것을 감안한다면 좀 더 적극적인 비전 수립과 실천이 필요해 보인다. 아울러 현재 한국의 수도회들에서는 많은 외국 출신의 지원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수도회 전체적으로 수련자와 유기 서원자의 수가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2017년부터 외국인 수가 한국인 수를 앞지르기 시작했고 많은 수는 종신 서원을 받고 있다.

2024-05-12

기회 간절했던 청년들, 짐바브웨에 ‘희망’ 선물

‘기회’를 박탈당한 시대에 청년들은 가장 어려움을 겪는 세대로 손꼽힌다. 언론에서는 ‘N포세대’ 등 동정 어린 키워드로 청년들의 메마른 현실을 조명하고, 사회에서는 각종 지원 제도와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라 청년을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불쌍한 수혜자’로만 바라보는 시선이 정착하고 말았다. 그 편견을 깨부수고자 청년문간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 이하 청년문간)은 지난해 ‘무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13명의 서포터즈를 모집, 올해 4월 16일~25일 짐바브웨에서 청년들의 손으로 희망을 전했다. 자립은커녕 생계유지조차 어려워하는 지구촌 이웃에게 청년의 고유한 아름다움으로 희망을 안겨주고 돌아온 ‘무카나 서포터즈’의 현지 활동 이야기를 들어본다. ■ 기회를 선물할 기회 청년문간은 청년들이 짐바브웨 고퀘 지역 주민에게 ‘무카나’(짐바브웨 공용어인 쇼나어로 ‘기회’)를 선물할 기회를 주고자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속적으로 노동할 수 있는 기반 없이 하루 두 끼, 옥수수죽으로 배고픔만 달래며 주저앉은 주민들이 자립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청년들은 현지에서 손수 미싱기, 태양광 패널, 각종 부자재를 구매해 봉제 시설(가칭 ‘희망 팩토리’) 설비를 지원했다. 또 현지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는 사업비 마련을 위한 모금 및 크라우드펀딩도 청년들이 스스로 기획·실행했다. “그분들이 그냥 밥만 먹고 사는 것을 넘어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주고 싶었어요.” 청년들이 주민들에게 선물하려던 것은 피상적인 연민이 아니라 존엄한 인간의 삶이었다. 그들의 자립에 기여할 수 있는 도움을 주는 것뿐이 아니라, 동료 인간으로서 함께 누렸으면 하는 소소한 가치들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한 청년 비영리봉사단체로부터는 선글라스 100여 개를 기부받아 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자외선이 강한 아프리카에 꼭 필요한 물건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일생 가난에 내몰려 스스로 꾸며볼 기회조차 없었을 주민들의 사정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전유물인 사치품이 아니라, 사람 누구나 자신을 보다 소중히 생각할 수 있는 선물로 마련했다. 또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청년들은 주민 200여 명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곳 주민들은 살면서 자기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출국 전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챙겼다. ‘인생샷’(살면서 가장 잘 찍은 사진) 한 장씩 선사해 ‘아무리 힘든 삶이면 뭐 어때, 나는 이미 충분히 멋진 사람인걸’ 하는 긍지를 심어주려는 마음이었다. 듬뿍 담긴 진심과는 달리 어려움도 따랐다. ‘희망 팩토리’ 설비 지원을 위해 수도 하라레에서 물건을 사서 공장이 있는 고퀘까지 이동하려면 차로만 9시간가량 걸렸다. 길도 거의 비포장도로라 많이 흔들리고 험했다. 선글라스를 챙겨 출국할 때는 공항에서 예상 못 한 관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하지만 기회 없이 놓인 이웃에게 기회를 선사하는 기쁨은 그 모든 힘겨움을 상쇄했다. 즉석에서 나온 폴라로이드 사진에 신기해하면서도 사진 속 자기 모습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기뻐하던 주민들, 한순간 피어나는 꽃처럼 얼굴에 드리웠던 무기력함을 거둬버리는 웃음은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특히 살면서 처음 써보는 선글라스에 대해서도 주민들 호응은 예상외로 높았다.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곳곳에 있는 주민들 무리마다 적어도 2명씩은 선글라스를 낀 채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는 모습은 청년들에게 영화 속 명장면처럼 남았다. “저희도 소중한 기회를 선물 받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희망을 안겨줄 기회 말이에요.” 청년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을 내면에도 크나큰 긍지가 차올랐다”고 입을 모았다. “얼마나 가졌고 성취했느냐와 상관없이, 또 도움의 크기가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기쁨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준 박재근(28·마티아)씨와 한은진(23)씨는 “우리가 가진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누군가를 활짝 웃게 해줄 수 있다는 체험은 지금도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았다”며 “나아가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 메아리쳐 돌아온 희망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어요. 마음도 잘 돌볼 여유가 없었고, 내면의 이야기에도 귀를 닫고 있었죠.” 갈피가 잡히지 않는 진로, 거듭되는 실패, 그에 따라 커져만 가는 불안…. 서포터즈도 여느 청년들처럼 자립 성장통을 겪고 있다. “배운 것이 명확하게 없는 것 같고, 지금까지 닦아 온 스펙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공통된 호소대로다. 간절히 원하는 정답은 야속하게도 단서조차 보이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내 잘못이구나” 하는 자책의 늪으로만 깊이 빠져든다. “나는 도움받기만 하는 무력한 존재인가 봐” 하며 자신의 가치에조차 회의적이 되는 청년들에게 서포터즈 활동은 ‘나는 청년인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이미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영화인을 꿈꾸는 권나영(26)씨는 짐바브웨 백수와 한국 백수가 만났을 때 어떤 대화를 나눌지를 초점으로 현지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권씨는 “과정이 행복하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연기 오디션 100회에 지원했을 때 한두 번 연락이 돌아오기도 힘든 현실에 떠밀렸던 권씨는 그간 결과에만 집착했다. 그런 그는 “짐바브웨 사람들을 피사체로 담고, 그들과 소통하는 과정 자체에서 치유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나의 작은 재능으로 누군가 좋은 경험을 하고, 행복해하고, 서로 섬기고 섬김받는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한 선물이었다”는 깨달음이다. “쓸 수 있는 글이 ‘영찍영’(영화 찍는 영화)에 갇혀 있는 것 같아 늘 고민이었다”는 영화감독 지망생 오승현(24)씨는 “새로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청년들 내면에 잠재된, 외연을 넓혀 나가는 사랑에 눈떴다”는 오씨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자체를 궁금해해야 하는 영화감독의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이문수 신부(글라렛 선교 수도회)는 “청년들이 소유, 성취 등 조건과 상관없이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과 능력을 표현하고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무카나 프로젝트의 뼈대”라고 전했다. 이어 “수혜의 대상처럼만 인식되는 청년 세대들이 사실은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고 스스로도 자립 성장통을 이겨나가는 멋진 잠재력이 있음에 모두가 감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2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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