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청년 단체를 찾아서(10)] 의정부교구 청년 성령쇄신봉사회 ‘헤세드’

의정부교구 청년 성령쇄신봉사회 ‘헤세드’(회장 김영주 메히틸다·지도 김영철 베드로 신부)는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사랑, 자비, 자애’라는 그 이름대로 우리 안에 현존하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에 힘입어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려는 공동체다. 성령묵상회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교구 청년들에 의해 2018년 시작된 모임으로, 지금도 매주 금요일 저녁 10여 명 회원이 교구 마두동성당에 모여 기도회를 열고 있다. 매년 청년 성령묵상회를 여는 것 외에도 ▲성경 공부 ▲가톨릭 청년 교리서(YOUCAT) 공부 ▲기도와 찬양 ▲생활 나눔 ▲밤 기도회 등 여러 신앙 활동을 펼치고 있다. 헤세드는 청년들이 하느님 사랑을 절절히 느끼게 하는 장이 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공허하거나, 일상생활에서 영적 어려움을 겪고, 관계 안에서 상처받는 청년들이 하느님께 의지하고 더 뜨겁게 기도하고자 가입하고 있다. 성당에 다녀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던 몇몇 회원은 헤세드에서 그분 현존을 체험하고 신앙의 전환점으로 삼아 다른 청년들에게 쇄신의 삶을 권유할 정도다. 성경과 교리 공부, 찬양 등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조화롭게 성장시키는 여러 활동이 어우러져 있다는 게 헤세드의 신앙적 유익함이다. 김영주 회장은 특히 신령한 언어로 기도하는 ‘심령기도’를 들면서 “회원들은 성령의 이끄심 안에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말씀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체험을 통해 거듭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헤세드는 청년들이 영적 성장을 이루는 배움터가 되고 있다. 2018년 헤세드 일원이 된 권태훈(요셉) 씨는 “자기밖에 모르던 내가 공동체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고 고백했다. “회원들과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됐다”는 권 씨는 “이런 기도가 이웃사랑이라는 것, 헤세드에서 받은 하느님 사랑을 이웃사랑으로 시런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영철 신부는 “누구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기에 청년들에게 헤세드가 좋은 영적 피난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체험을 할 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지니게 된다”며 “흔들리는 믿음을 잡아줄 수 있는 현존 체험을 청년들이 성령쇄신을 통해 새롭게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김형근 작가

방황하던 학생이 성미술의 길로 저의 재능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미술대학 건축과를 나오셨거든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미술을 공부하신 아버지께서 제 그림을 보고 응원을 많이 해 주셔서, 진짜 그림을 잘 그리는 줄로 착각했죠. 어린 시절 동물을 좋아했어요. 찰흙으로 동물을 만들어 놀았어요. 시중에 나오는 동물 모양의 장난감들은 제 어린 눈에도 제대로 만들어진 게 없었거든요. 중학교 1학년 때 만든 호랑이 작품이 하나 있는데, 지금 봐도 어떻게 어린아이가 이렇게 정교하게 잘 표현했을까 싶은 정도였어요. 찰흙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대학 입시에서도 다른 진로는 생각하지 않고 미대를 지원했어요. 그렇게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에 입학했는데, 당시 주류 미술을 따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외국에서는 컬트 미술, 우리나라에서는 민중 미술이 유행했어요. 당시만 해도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면 경찰이 최루탄을 터뜨릴 때였거든요. 작품에 사회적 개념이나 작가의 정신을 넣어야 하는데, 사실 전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4학년 때쯤 앞날이 막막해졌어요. 대학에서 조각을 배웠으니 뭐라도 만들고는 싶은데, 뭘 만들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묵주 기도 9일기도를 했어요. 태중 신자라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묵주 기도를 했는데, 특히 고3 때 많이 했어요. 묵주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좋더라고요. 원하는 기도 지향도 잘 들어주시고.(웃음) 그러다가 명동 가톨릭회관 1층에 있는 성물방을 우연히 지나가게 됐어요. 당시 유명했던 최종태(요셉) 교수님이나 최봉자(레지나) 수녀님의 작품 소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어요. 그때 ‘작가가 성상을 만들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전까지는 성상은 상업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교수님과 수녀님의 작품을 보니 작가의 색도 들어가 있고 작가들의 신앙심도 들어가 있는 거였어요. 그걸 보고 나름 하느님을 생각하는 가톨릭신자이니 제 신앙이 들어간 성미술 작품을 해보자고 결심했죠. 새내기 성미술 작가에 대한 교회의 배려 학교를 졸업하고 동기 형과 함께 ‘김형근 조형 연구소’라는 작은 작업실을 차렸어요. 저는 성상 조각 작업을 하고 금속조각을 전공한 형은 감실 등 금속이 들어가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전업 성미술 작가의 길은 쉽지 않았어요. 무작정 서울대교구청으로 찾아가 성당 신축에 관한 정보를 가르쳐 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안 알려줬죠. 그래도 끈질기게 관련 성당 정보를 알아내 신부님들을 찾아갔어요. 제가 그동안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며 ‘조각가인데 성물을 맡겨주시면 좋은 작품 설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인데, 신부님들께서 젊은이가 노력하니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한두 군데씩 하다보니 포트폴리오도 생기고 다른 신부님들께 소개도 해주셔서 성미술 전업 작가로의 길을 걸을 수 있었어요. 처음 성미술 작품을 봉헌한 본당은 인천교구 서곶성당(현 검암동성당)이었어요. 두 번째가 서울대교구 송파동성당이었는데 당시 주임이셨던 권태형(리노) 신부님께서 정말 좋아해 주셨어요. 젊은 작가가 뭔가 한다고 하니 잘 봐주셨고 소개도 많이 해 주셨고요. 상업적이지도 않고 작가 색도 있다면서요. 그렇게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광주대교구 옥과동성당, 서울대교구 우면동성당,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 등 많은 곳에 작품을 봉헌할 수 있었어요. 예수님을 향하도록 돕는 작품 활동 계속하고파 한번은 어느 성당에 피에타상을 봉헌했는데요. 처음에 제가 대학 시절에 만들었던 피에타상을 어느 신부님께 보여드렸죠. 신부님께서 그 작품을 맘에 들어 하셔서 성당에 피에타상을 설치하게 됐어요. 제가 대학 때 만들었던 작품이니만큼 그동안의 제 경험을 살려 더 멋지게 피에타상을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신부님께서는 실망하셨어요. 첫 작품에서 무언가 느끼신 점이 있는데, 수정된 작품에는 없었던 거죠. 이 일로 작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보는 사람이 눈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겠다’라고 생각하는 작품에는 별 반응이 없고, 성당에서 하자는대로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은 작품들도 있고요. 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가 제일 중요한 거였죠. 그 이후로는 그저 ‘제 작품을 통해서 신자들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작품 활동을 해요. 그리고 첫 작품을 봉헌했을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제가 만든 십자고상이 성당에 걸려 있고,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는 모습에서 저도 큰 감동을 받았거든요. 앞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성미술 작가가 되고 싶어요. ◆ 김형근(야고보) 작가는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를 졸업하고 ‘김형근 조형 연구소’를 설립해 성미술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천교구 검암동성당을 시작으로 30여 곳의 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길, 성상, 감실 등을 봉헌했다.

2024-12-08

한 분이신 그리스도 믿기에, 화합·연대의 길로 나아갑니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공동의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김종생 목사, 이하 신앙과직제)는 11월 25일부터 12월 3일까지 로마 교황청, 스위스 제네바 세계교회협의회, 튀르키예 이스탄불 콘스탄티노플 세계총대주교청 등지에서 ‘생명과 평화의 길,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순례’(이하 일치순례)를 진행했다. 순례 여정을 3회에 걸쳐 전한다. ■ 일치를 위한 순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전, 한반도의 긴장상황, 정치경제의 양극화, 기후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통에 신음하는 현시대에 한국의, 그리고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할 것인가. 같은 하느님을, 같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이 이를 위해 어떻게 일치해, 힘을 모아야 할까. 이번 일치순례는 국내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운동을 위해 구성된 신앙과직제 설립 10주년을 맞아 특별히 다양한 고통을 겪는 이 시대를 묵상하며 ‘화합과 공존을 위한 그리스도인 일치 순례와 토론회’로 마련됐다. 한국의, 그리고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연대로 평화를 가꿔나가는 길을 꿈꾸며 국내 여러 그리스도교 교단이 뜻을 모은 순례다. 국내 여러 그리스도교 교단은 신앙과직제가 창립되기 전인 2006년부터 일치순례를 추진, 그리스도교의 국제 네트워크를 활용해 인류 공동의 과제에 관해 세계의 그리스도인들과 토론하고 연대하는 다양한 순례를 진행해 왔다. 이번 일치순례는 그 5번째 여정이다. ■ 가톨릭교회와 일치하며 순례단은 그 첫 번째 목적지로 로마를 향했다. 그중에서도 가톨릭교회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부(이하 일치촉진부)를 찾아 ‘일치 화합의 의미와 위기 시대 교회의 사회적 과제’를 함께 고민했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다른 그리스도교인들을 ‘갈라진 형제’라고 부르며 본격적인 일치운동을 시작했다. 가톨릭교회는 다른 그리스도교인들을 공의회 참관인으로 초청했고,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사무국을 설치했다. 이 사무국은 공의회 회기를 거듭하면서 중요한 기구가 됐고, 현재 일치촉진부로 발전했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설립 10주년 기념 화합·공존 위한 순례와 토론회 가져 베드로·바오로 사도 발자취 함께 걷고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해 평화 염원 전달 11월 26일 교황청 성직자부 회의실에서 마련된 간담회에는 일치촉진부 차관 플라비오 파체 대주교가 순례단을 맞았다. 파체 대주교와 순례단은 먼저 성경을 봉독하고 함께 묵상하며 일치의 의미를 찾고, 그리스도인들이 일치를 통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해야 할 평화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 나눴다. 파체 대주교는 “예수님께서 ‘모두가 하나 되게 하소서’라고 일치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분의 제자인 우리도 일치를 위한 기도를 계속해야 하고,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소명이자 사명”이라면서 “일치 여정과 경청의 나눔 안에서 항상 우리가 일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고 서로 다른 다양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그 은총을 성령께 청하자”고 초대했다. 또한 “여러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치하는 활동을 한국 순례단을 통해 볼 수 있어 기쁘고 한국에서 이렇게 일치의 여정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그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깊이 감사드린다”고 순례단에게 인사했다. ■ 사도들의 발자취를 통해 평화를 향해 로마를 방문한 순례단은 특별히 베드로 사도가 순교하고 묻힌 성 베드로 대성당,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트레 폰타네와 그 무덤이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을 순례했다. 순례단은 모든 그리스도교가 갈라지기 전, 초대교회를 이끈 두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기도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일치를 통해 추구해야 할 평화에 관해 묵상하는 시간을 보냈다. 순례단의 여정은 초대 교회를 이끈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길에서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베드로 사도의 자리를 잇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27일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열린 일반알현 중 순례단을 특별 초대해 일치를 위한 순례단의 여정을 격려하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순례단은 이 만남 중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세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그중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와 특별한 동행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했다. 순례단은 교황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고백하는 우리는 특별히 6·25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우리는 지금의 북·중·러 - 한·미·일 사이의 긴장 고조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지 않고, 한반도에 평화 체제가 정착되기를 간구하고 있다”면서 “이 뜻깊은 모임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순례단은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 ▲적절한 때에 평양을 방문을 통한 남북관계의 평화적 중재를 요청했다. ◆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는 신앙과직제는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2014년 5월 창립, 여러 그리스도교 사이에 신앙적 친교를 이루고, 공동선을 지향하는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신앙과직제는 현재 천주교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원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구세군한국군국,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 기독교한국루터회)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2024-12-08

별이 된 159명 가슴에 묻은 채…간절히 기다리는 그날의 진실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도 2년이 지났다. 올해 5월이 돼서야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참사 특별법)이 통과되고, 9월 13일 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해 본격적인 진상규명에 들어갔다. 당연히 이뤄졌어야 할 과정이 미뤄지는 동안 유가족은 가족을 잃은 고통이 채 가시기도 전에 투사가 됐다. 추모공간 ‘별들의 집’에는 하늘의 별이 된 희생자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사고의 명확한 원인 규명을 기다리는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어려 있었다. 이곳은 별들의 집입니다 서울시 종로구 적선현대빌딩 1층엔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공간 별들의 집’(이하 별들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로비를 사이에 두고 있는 맞은편 카페의 복작거림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고요하다. 유가족에 따르면 이곳은 건물에서 가장 밝게 디자인된 곳이다. 아픔을 딛고 희망을 꿈꾸는 유가족의 바람인 걸까. 별들의 집은 찾아오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기 위해 노력한 듯한 흔적이 보인다. 그 마음을 아는지, 한쪽 벽에 걸린 희생자 159명의 얼굴빛도 한결같이 밝다.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진들 위로 천장에 달린 반짝거리는 별 장식들이 보인다. 또 곳곳에 다양한 크기의 별 모양 장식품들도 있다. 딸 고(故) 이주영 씨의 아버지이자 유가족협의회 대표 이정민(프란치스코) 씨는 “별은 밤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희생자들을, 또 반짝이던 삶을 의미한다”고 소개했다. 한쪽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들이 보인다. 유가족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면서도 쪽지에 적힌 시민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을 얻는다. 드문드문 방문객이 들어와 추모공간을 둘러본다. 시청 앞 광장 분향소 때처럼 야외에 개방된 장소는 아니다 보니, 추모공간의 존재는 알아도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유가족은 말한다. 시민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별들의 집은 ‘기억소통공간’이라는 말답게 참사 희생자들과 그들이 살아온 삶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유가족이 서로 소통하고 의지하기 위한 곳이기도 하다. 2년 지나도 명확한 원인 규명 없어 언제 또 옮겨야 할지 모를 추모공간 159명 희생자 얼굴 사진 걸린 벽면 한 쪽엔 유가족 위로하는 쪽지들도 “시민들의 연대와 공감이 커다란 힘” 어려움 속에서도 별을 지키는 이들 “언제 다른 곳으로 또 옮길지, 옮길 만한 장소가 있기는 할지 몰라요. 그래서 좋아질 거라는 희망과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게 보장된 게 없다는 걱정 두 가지를 다 안고 버티고 있습니다.” 추모공간은 올해 6월 시청 앞 광장 분향소에서 을지로 부림빌딩으로 옮겨 ‘별들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개소했으나 11월 2일 지금의 자리로 또 옮겼다. 모두 서울시가 임시로 대여해 준 공간이기 때문이다. 언제 또 다른 장소로 공간을 옮길지 모르지만, 별들의 집에는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해줌은 물론이고 진상규명을 기다리고 염원하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고(故) 이상은 씨 어머니 강선이 씨는 “정식으로 추모공간을 조성하라고 특별법에 명시돼 있지만, 그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그때까지 몇 번을 더 옮길지, 옮길 만한 장소가 있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추모공간은 유가족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강 씨는 “2년이 넘으면서 유가족도 각자의 경제적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로 이 ‘지킴이’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들을 버티게 하는 힘은 “도대체 이 사고가 왜 발생했나”를 밝힐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이다. 그저 진실을 알고 싶을 뿐 “우리가 알고 싶은 건 도대체 왜 이 사고가 발생했고, 우리 아이가 사고 후에 제대로 인계가 안 됐을까… 그나마 이런 것들이라도 밝혀져야 답답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희생자들 억울한 거 다 풀고, 또 앞으로 이런 사고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규명이 돼야 해요.” 유가족은 진상규명만큼은 정쟁이 아닌 ‘정의’에 기반을 두길 바랐다. 하지만 대통령이 특별법을 최종 공포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진통 끝에 여야 합의가 이뤄져 특별법이 공포됐고, 이 법을 근거로 범정부적인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시작했다. 그 사이에 참사 행정 책임자들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있었다. 이정민 씨는 “재판 결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었던 건,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고 일어나선 안 됐다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 하나”라고 말한다. 특별조사위는 재판 결과를 토대 삼아 더 구체적인 진상규명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조위는 국회를 방문해 여야 원내대표를 모두 만나 “진실에는 정파가 없고, 진상규명에는 여야가 없다”며 조사 여정이 다시는 정쟁에 휩싸이지 않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희망, 길고도 긴 그들만의 ‘대림’ 이정민 씨는 딸의 희생에 슬픔과 분노에 휩싸인 나머지 신을 원망하며 신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그를 가장 많이 위로한 이들은 수녀들이었다. 그래서 이제 숨기지 않는다. 강선이 씨는 딸 덕분에 지금은 남편과 함께 예비신자다. 강 씨는 “상은이의 꿈이 천주교 신자가 돼 명동성당에서 결혼하는 것이었다”며 “못 이룬 딸의 바람을 이어 ‘로즈마리’라는 세례명으로 남편과 함께 내년 3월 세례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채 가시지 않았고, 불확실하고 어려운 길을 걷고 있지만 유가족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이들은 좀 더 일찍, 그들만의 간절한 대림을 보내고 있다. “많은 분이 연대하고 공감해 주시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하늘의 별이 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진상규명 중인 저희 모두를 위해 신자 분들도 기도 중에 기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24-12-08

청년들이 선보이는 ‘동감’….공감!

“우리 본당 청년들이 얼마나 뜨겁게 하느님을 찾는지 그저 자랑스럽기만 할까요? 본당 신자 모두가 매달 손꼽아 동감하고 응원하게 되는걸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청년들이 매달 만드는 ‘동감매거진’을 보면서요!” 부산교구 당감본당(주임 이동화 타라쿠스 신부) 신자들은 이렇듯 “우리 본당 청년들만큼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없을 것”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본당 청년회 ‘동감’(회장 정민석 티모테오·지도 김진호 바오로 신부)이 청년회 소식은 물론 청년들 기도와 묵상까지 듬뿍 담아 발행해 온 ‘동감(同感)’의 월보, ‘동감매거진’을 읽으면서다. 청년들이 9월부터 매달 동감매거진을 만들어 온 건 ‘청년들은 기도보다 노는 걸 좋아한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깨기 위해서다. 굳어진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청년 개개인 신앙에 도움이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 왔지만 “청년회가 그래서 뭘 하는 덴데?”라는 시선을 바꾸는 것은 어려웠다. 이렇듯 청년회가 무슨 활동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어른도 많기에 처음에는 동감매거진을 청년회 소식지처럼 기획했다. 하지만 무슨 활동을 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였기에 청년들의 기도와 묵상을 담아내도록 발전했다. 청년회 내 자체적으로 영적 독서를 하는 모임이 있을 정도로 기도와 묵상에 소홀한 적 없었던 만큼 “우리의 유익한 신앙생활을 공유하면 본당 모두의 선익이 될 것”이라는 떳떳함이 싹텄다. 그 자부심대로 청년회 모두가 재능기부 등 의기투합해 동감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1면 이미지는 그림 그리기에 ‘금손’(재주가 좋은 사람)으로 정평이 났음에도 재능을 펼칠 기회가 없던 회원이 도맡아 그리고 있다. 김진호 보좌신부가 매달 주제성구를 정하면 회원이 한 명씩 돌아가며 그에 맞는 묵상을 쓴다. 코너마다 청년들이 두루 참여하기에 동감매거진은 형식적 소식지를 넘어 청년들의 진정한 영성 이야기가 되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을 통해 만나고 깨달은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도 소개하는 ‘동감 pick’, 시를 비롯한 문학으로 신앙고백을 녹여낸 ‘동감 문학’, 삶과 세상에 대한 각자의 진솔한 염원과 희망을 담은 ‘청년의 기도’ 등 코너마다 회원들을 돌아가며 선정해 글을 기재하고 있다. ‘맛있는 복음밥’은 청년들 복음 묵상을 담는 코너인 만큼 청년들의 영성 생활과 기도를 실감나게 전할 수 있어 1면에 들어간다. 코너 이름도 이용현 신부(베드로·인천교구 모래내본당 주임)가 자신의 매일 복음 묵상 글들을 엮어낸 동명의 책 제목에 따라 지어졌다. 발행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해도 동감매거진은 신자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다. 청년회 정민석 회장은 “성당 앞에 전시해 둔 매거진 수량을 매주 확인하는데, 갈 때마다 수십 장씩 줄어있는 걸 보면 많이들 봐주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동감매거진 첫 발행을 맡았던 최태영(안테로) 씨는 “어르신이든 누구든 보기 쉽게 글씨도 큼직하게, 또 직관적인 방향으로 편집해 온 덕분인지 ‘주보보다 잘 읽힌다’거나 ‘청년들의 재능과 생각을 잡지 읽듯 접할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 가장 기분 좋다”고 덧붙였다. 매거진을 만드는 데는 시간도 많이 들지만 정신적 에너지도 상당히 소모된다. 나의 묵상을 많은 신자가 볼 것이라는 부담감도 크고, 묵상을 글로 제대로 완성하고자 원고를 몇 번이고 수정하는 건 다반사다. 하지만 많은 신자가 매거진을 통해 위로받고 즐거워할 것이라는 흐뭇함이 그를 상쇄한다. 고동민(안드레아) 씨는 “‘청년회가 술만 마시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구나, 나도 들어가 볼까?’ 하는 반응을 이미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차다”고 웃었다. 김진호 신부는 “동감매거진은 본당과 청년회가 한 가족으로서 유대감을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많은 본당에서 본당 공동체와 청년 단체가 유리돼 있는 현실에서 모범이 될 만한 사례”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 본당 청년들만큼, 저마다 분투하는 청년 신앙인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열정적 믿음을 가졌는지 다들 괄목상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감매거진은 청년회 인스타그램(@danggam_donggam)에서도 접할 수 있다.

2024-12-08

[대림 특집] 성탄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44) 임마누엘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림 1주, 설레는 마음으로 대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성스러운 마음을 담아 대림환을 만든 신자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주님성탄대축일 주님 안에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예비 신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대림환 만들기 - 서울 무악재본당 “나를 내려놓고 귀한 손님 맞이할 준비해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복음 낭독과 함께 대림환 만들기가 시작됐다. 11월 23일 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주임 김민석토마스데아퀴노 신부) 신자들은 대강당에서 대림환을 만들고 꾸미는 시간을 가졌다. 김민석 신부는 “오늘이 대림 4주간을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도구인 대림환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대림환 꾸미기에 나선 15명의 신자들은 보라색과 분홍색의 초 네 개, 유리병, 오아시스, 측백나무 등 다양한 준비물로 각양각색의 대림환 만들기를 시작했다. 서로서로 “꾸미는 잎들과 초가 너무 가까우면 잎이 촛불에 탈 수 있다”, “꽃과 잎들을 너무 조금 넣으면 별로 안 예쁘다” 같은 팁도 공유하며 함께했다. 손영민(비비안나) 씨는 “‘기다림’의 대림 시기는 너무 귀한 손님을 맞이한다는 생각으로 나를 내려놓는 시간인 듯하다”며 “대림 때마다 매년 그해의 목표를 지향했는데 이번에는 그룹 성서 봉사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림환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대림환 만들기를 주관한 헌화회 담당 안 비비안나 수녀(예수성심시녀회)는 “스스로 준비한 대림초에 불을 붙이고 기도하며 대림 시기 의미를 더 깊이 깨닫길 바란다”며 “대림 시기가 묵상을 통해 더 기쁜 성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 주님성탄대축일에 세례 받는 예비 신자들 - 서울 청담동본당 주님 자녀로 첫 발, 설렘 가득한 예비 신자 교리반 “앞으로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추길 기대합니다. 새 신자로서 믿음을 키워나갈 날들이 기다려집니다.” 11월 24일 서울대교구 청담동본당(주임 양장욱 베드로 신부). 주님성탄대축일에 세례식이 예정된 예비 신자들의 교리가 한창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신자가 되는 최고령 부부 박창섭·유정자 씨는 나란히 출석해 금실 좋은 모습을 보였다. 신자로서의 기대감을 나타낸 박창섭 씨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딘가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교리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성당 강당은 스무 명 남짓한 예비 신자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대림 시기를 간절한 ‘기다림’으로 맞이하는 듯 보였다. 부부 예비 신자인 최 엘리사벳 씨는 “남편은 불교, 나는 개신교 신자였는데 남편이 성당에 함께 나가자고 해 한 분이신 하느님을 남편과 함께 믿고 싶어 입교하게 됐다”며 “주님성탄대축일이라는 뜻깊은 날에 받는 세례는 우리 부부에게 큰 선물이고 올해 성탄이 평생 의미있는 날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최 씨는 “앞으로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ME 모임 등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보였다. 절박한 상황에서 입교를 결심한 예비 신자도 적지 않았다. 장윤희 씨는 “편찮으신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인 가정간호사·요양보호사님 덕분에 대세를 받을 수 있었다”며 “버거운 선택의 순간이 계속되는 중에 주님께 기도하고 싶고 신자 분들이 주시는 도움에도 감사해 입교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장 씨는 이어 “3월에 통신교리를 시작해 9개월 만에 받는 세례라 오래 기다린 만큼 가장 큰 선물 같은 날이 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비쳤다. 홍지연 씨는 “인대 재건술을 받은 뒤 예후가 안 좋아 걷게만 해주시면 성당에 다니겠다고 하느님께 기도한 뒤 거짓말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됐다”며 “냉담 중이던 남편도 성당에 다시 다니게 된 기쁨에 더해 성탄이라는 의미 있는 날 주님의 자녀로 첫발을 내딛을 수 있어 설렌다”고 말했다. “말씀 안에서 신앙을 전한다는 마음…새 신자들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도록 돕고 싶어” 예비 신자들이 새 신자로 거듭나길 기다리며 본당에서도 많은 준비를 해 왔다. 주일반 강의를 맡은 김미정 수녀(세노리나·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는 “예비 신자들을 맞이하기 두세 달 전부터 이분들을 지향으로 두고 기도해왔다”며 “가르치기보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신앙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부활과 또 다른 절정인 성탄에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도록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예비 신자를 담당하는 본당 부주임 박용준(요한 사도) 신부는 “세례를 앞둔 분들이 지향과 간절함을 가지고 예수님 탄생과 세례를 기다리는 대림 시기를 보내시길 바란다”며 “복음을 듣기는 쉽지만 소화하기는 어려운 만큼 세례 후 동기 부여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세례 후 6개월간 후속 프로그램도 진행하니 계속 함께해달라”고 당부했다. 예비 신자 교리반 봉사자 윤상희(마리아) 대표는 “나도 모태 신앙이 아니었기 때문에 예비 신자분들께 공감이 많이 된다”며 “어색하고 어렵겠지만 성당에 자주 나오셔서 신자분들과 친교를 나누다보면 신앙을 더욱 활짝 꽃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2024-12-01

WYD 십자가, 한국교회 청년들 품 안에

11월 24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지난해 세계청년대회를 주최한 포르투갈의 청년들이 세계청년대회(이하 WYD)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을 2027년 다음 WYD를 주최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 전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이번 WYD 상징물 전달식은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이자 제39차 세계 젊은이의 날인 11월 24일 오전 8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미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이었지만,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모인 신자들은 끊임없이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줄을 기다렸다. 미사 전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먼저 묵주 기도를 바쳤다. 의정부교구의 김예나(로사) 씨는 한국어로 묵주 기도 한 단을 선창하기도 했다. 미사 전 교황은 한국의 WYD 상징물 전달식 순례단 청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이어 제대 왼편에 WYD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미사가 시작됐다. 이날 미사의 성찬례는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이 집전했다. 한국에서 온 청년과 사제, 수도자 60여 명은 양편의 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와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바오로) 주교도 제대 위에 올라 성찬례를 공동집전했다. 영성체 후 WYD 상징물 전달식이 이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달식에 앞서 특별한 기도를 올렸다. WYD 상징물이 전쟁과 폭력의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힘의 원천이 되어 달라고 간구한 것이다. 교황은 “어디든지 이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이 닿는 곳은 사람들 사이에 하느님 사랑과 형제애가 샘솟아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르투갈 청년 15명이 제대 곁에 세워져 있던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들고 제대 앞으로 나왔고, 한국 청년 15명이 십자가와 이콘을 받아 제대 앞에 세웠다. 2027 서울 WYD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십자가를 나눠 진 인천교구 강수민(리드비나) 씨는 “많이 무거울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 같이 드니 십자가가 전혀 무겁지 않았다”면서 “십자가를 지고 옮기는 동안 계속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본당 주일학교 교사인 강 씨는 “학생들에게 신앙을 알리는 교사로서 책임감이 더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희망은 더 멀리 내다보게 한다’는 교황님의 말씀을 되새겨 제가 맡고 있는 학생들을 또 다른 청년 사도로 키울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제2독서와 예물 봉헌에 한국 순례단원이 참여했다. 독서자로 나선 서울대교구 김시홍(모세) 씨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전례봉사에 참여하면서 그동안 제가 성악가로서 교구 청년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그간 살아온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WYD라는 행사가 한 청년, 사제, 교구의 힘으로는 절대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관심을 갖고 힘을 합쳐야 할 것 같다"면서 “저도 그 안에서 함께 노력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한복을 차려입고 예물 봉헌에 나섰던 광주대교구 민성경(실비아) 씨는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로마에서 교회에 관해 배우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면서 “특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예물 봉헌에 나선 것은 가톨릭신자로서 가장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미사 후 대성당을 나서는 교황님께서 다정한 할아버지처럼 아이들에게 과자 등을 챙겨주시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덧붙였다. 청년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민 씨는 “WYD에서 교구대회도 많이 중요한 만큼 광주를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미사 후 성 베드로 광장에서 이뤄진 삼종기도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무실에 인천교구 유현민(마르티노) 씨와 수원교구 강은비(아녜스) 씨 등 두 명의 한국 청년이 초대됐다. 두 청년들은 교황이 삼종기도를 주례하는 중간 교황 곁에 섰다. 교황은 “오늘 이 두 한국 청년이 WYD 십자가를 받아가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한다”면서 “한국의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말했고, 광장을 가득 채운 순례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서울 WYD의 시작을 환영했다. 주교회의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는 순례단에게 “오늘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전달받았다”면서 “특히 천사의 알림을 마음속 깊이 새겼던 성모님께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처럼 우리가 오늘 받은 감동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오늘의 이 감동을 깊이 새겨 우리 이웃에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을 전하며 WYD에 임하자”고 덧붙였다. ■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의 유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이 세상에 구원을 선포한지 1950년째가 되던 1983년 구원의 해를 선포했다. 당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상징인 십자가를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높이 3.8 미터의 십자가를 성 베드로 대성당 제대에 설치했다. 구원의 해가 끝나며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성문을 닫은 교황은 이 십자가를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맡겼고, 성 베드로 대성당 인근에 있던 산 로렌조 청년센터가 이 십자가를 보관하도록 했다. 당시 교황은 “희년을 마치며 이 희년의 상징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젊은이들에게 맡긴다”면서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 십자가를 세상에 짊어지고 나아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선포하라”고 당부했다. 산 로렌조 청년센터는 이 십자가를 관리하며 세상에 선보였다. 첫 번째 순례는 1984년 독일 뮌헨에서 열린 ‘가톨릭의 날’ 행사였다. 이어 프랑스의 루르드로 순례를 떠났다. 같은 해 당시 공산 치하에 있던 체코에도 선을 보였다. 유엔이 정한 세계 청년의 해였던 1985년 성지 주일 약 30만 명의 청년들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만났는데 그 때에도 이 십자가가 놓여 있었다. 그해 12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매년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정했고, 1987년에는 전 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세계청년대회를 개최했다. 이때부터 이 십자가는 WYD 십자가로 불리게 됐다. WYD 십자가는 계속해서 전 세계를 순례했는데,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2차 세계성체대회 중 열린 ‘젊은이 성찬제’를 위해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1996년부터는 WYD 개최국 청년들에게 십자가가 전달되는 전통이 시작됐다. 2008년 시드니 WYD를 앞둔 2007년, 아시아태평양 순례 도중 두 번째로 한국을 순례했고, 이번이 세 번째 한국행이다.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uli Romani) 성모 이콘은 2000년 대희년에 로마에서 열린 WYD 철야 기도와 교황 미사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후 200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WYD 십자가’의 순례 여정에 ‘로마 백성의 구원자’ 성모 이콘을 함께하도록 했다. 이콘의 원본은 로마 성모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으며, 화가들의 수호성인인 루카 복음사가가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2024-12-01

[WYD 상징물 전달식 한국 청년순례단] 로마 성모대성당에서 포르투갈 청년들과 묵주기도 봉헌

세계청년대회의 상징물인 WYD 십자가와 성모 이콘 전달식에 한국교회는 전국 각 교구 청년대표를 비롯해 60여 명의 순례단을 파견했다. 순례단은 상징물 전달식에 앞서 무너져가는 교회를 일으켜 세운 프란치스코 성인의 숨결이 남아있는 아시시를 순례하고 WYD 십자가를 관리하는 산 로렌조 센터를 찾았다. 또 이전 대회 주최국인 포르투갈 청년들과 함께 2027 WYD의 성공을 위해 함께 묵주 기도를 봉헌했다. 성 프란치스코와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에 WYD 성공 기원 11월 20일 로마에 도착한 순례단은 다음 날인 21일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취가 남아있는 아시시를 순례했다. 순례단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묘소를 참배하고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에서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총무 최인비(유스티노) 신부는 강론에서 순례단에게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을 본받아 가난한 삶을 선택할 것을 당부했다. 최 신부는 “가난한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필요성을 깨닫고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는 삶”이라면서 “2027 세계청년대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WYD 상징물 전달식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의 시간을 하느님께 봉헌한 우리는 가난한 선택한 것이며 이는 하느님께는 영광이며 우리 교회에는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순례단은 아시시교구 성 루피노 대성당 앞 광장에서 깜짝 손님을 맞았다. 바로 내년 4월 27일 시성이 예정된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 아쿠티스 여사를 만난 것. 순례단은 최근 한국교회에 아쿠티스 복자의 유해를 선물한 안토니아 여사에게 감사의 의미를 담다 한국의 성모상을 선물했다. 안토니아 여사는 아쿠티스 복자가 2027 WYD 최초의 순례자가 됐다는 순례단의 말에 “카를로도 다음 WYD의 첫 순례가자 된 것을 기뻐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안토니아 여사는 “WYD는 아주 중요한 행사로 젊은이들이 많은 은총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젊은이들은 현재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주님 안에서 희망의 증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아쿠티스 복자가 성체 신심과 묵주 기도를 통해 젊은이들의 모범이 된 것처럼 청년들도 “하느님 나라로 가는 고속도로인 성체성사를 통해 성화의 삶을 살길 바란다”고 전했다. 순례단에 참여한 유현민(마르티노·인천교구 해안본당) 씨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아쿠티스 복자는 각자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복음 선포에 열정을 보였다”면서 “두 성인의 자취가 남아았는 아시시를 순례하면서 우리도 현재의 삶에서 복음을 살아내고 전파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 청년으로서 WYD에 참여하면서 두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 교회의 주역이 되어 복음화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성모대성당에서 포르투갈 청년들과 묵주 기도 순례단은 23일 오전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고 대성당 인근 산 로렌조 청년센터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산 로렌조 청년센터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4년 WYD 십자가를 만든 후 청년들이 언제나 찾아와 경배하도록 십자가를 맡긴 곳이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 대학교사목부 담당 박민재(미카엘) 신부는 순례단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의 희망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살고자 따르는 모든 하느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끄는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WYD 십자가를 우리에게 건네주셨다”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끄는 이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소명에 함께 응답하자”고 당부했다. 이날 오후 순례단은 로마 성모대성당에서 지난 WYD 개최지였던 포르투갈 청년들과 함께 묵주 기도를 봉헌했다. 성모대성당은 WYD 십자가와 함께 WYD 상징물인 성모 이콘 원본이 있는 곳이다. 2003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젊은이들이 성모님의 모성을 자신들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상징으로, 성모 이콘을 젊은이들에게 선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해외 사목방문에 나설 때마다 이곳 ‘로마의 구원자 성모’ 이콘 앞에서 기도한다. 이날 묵주 기도회는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 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이 주례했다. 패럴 추기경은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지고 여러분의 여정을 용기 있게 걸어가 달라”면서 “전 세계적 위기, 그리고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상에 이 십자가와 성모 이콘을 전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우리의 긴 여정을 떠나는 전야에, 성모님께서 당신 품에 예수님을 안으셨던 것과 같이 우리를 안아주시고 전구를 들어주시도록 성모님께 의탁하자”고 덧붙였다. 묵주 기도는 한국어와 영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로 번갈아가며 진행됐다. 묵주 기도를 마친 양국의 청년들은 지난 리스본 WYD 주제곡 ‘서둘러 가보자’를 부르며 신앙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만끽했다. 한국과 포르투갈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세계청년대회 개최를 간절히 염원했던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WYD 교구대회 준비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시몬) 주교,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 총괄 코디네이터 이경상(바오로) 주교 등 한국 주교단도 묵주 기도회에 참여했다.

2024-12-01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오수연 작가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 어릴 적부터 늘 그림을 그렸어요. 피아노를 치기도 했는데, 그냥 그림이 좋았어요. 어머니께서 여러 성지에 다니셨는데, 저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종이나 땅에 그림을 그렸던 게 기억나요. 중학교에 들어가니 미술반이 있어서 거기에 들어갔어요. 한번은 조각 수업을 했는데, 사람 얼굴을 만드는 시간이었어요. 다른 친구들은 눈을 표현할 때 그냥 평면으로 동그랗게 그렸어요. 그런데 저는 눈을 입체감 있게 동그랗게 파놓았죠. 그걸 보신 선생님께서 저보고 ‘너는 조소과 가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다른 아이들이 눈을 평면으로 표현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주님께서 제게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탈렌트를 주신 것 같아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 조각을 하게 됐어요. 정대식(마티아) 작가님이 아버지의 오랜 친구셨어요. 정 작가님이 홍대 출신이라 저보고 ‘너는 그냥 홍대 가라’고 하셔서 홍익대 조소과에 들어갔어요. 당시 미대가 몇 군데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갔어요. 대학에 들어가서는 인사동 갤러리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작가들의 작품을 보고 어떤 성향인지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만들었는지 많이 보았어요. 아마 작품을 보는 눈도 주님께서 주신 탈렌트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나게 그림의 의미를 설명하곤 했죠. 성미술 작가의 길로 대학 졸업 후 미래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어요. 집안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혼자서 방에 콕 처박혀서 밤새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어요. 밤새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고 작업을 하다가 새벽에 잠에 드는 그런 생활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성모상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전 누가 부탁을 하면 그냥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어머니의 부탁에 성모상을 만들었어요. 그날 여느 때처럼 촛불을 켜놓고 성모상과 제 자화상을 만들고는 깜빡 잠이 들었었어요. 잠결에 누군가 제 머리를 강하게 치는 느낌이 들어 일어나니, 제 방 한가운데에 불기둥이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미처 끄지 않은 촛불 때문에 방에 불이 난 거였어요. 전 원래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깰 수 있었어요. 부랴부랴 욕실에 가니 우연찮게 욕조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그 물로 불을 껐어요.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했죠. 불을 끄고 천천히 보니 신기하게도 성모상은 티 하나 없이 깨끗한데, 제 자화상을 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전 그날 일은 주님께서 수호천사를 보내 저를 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원교구 광주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였어요. 아는 신부님이 가톨릭미술가회가 있다고 들어오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가들이 왜 성물을 만들어야 하지 하면서 이해하지 못했어요. 성물은 그냥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기도하는 도구잖아. 그냥 사면 되지. 왜 작가가 필요해?’라고요. 그만큼 성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당시 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 주임이던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님께서 성당 리모델링을 하면서 저에게 작품을 의뢰하셨어요. 성수대와 한지 유리화였어요. 대학 시절 한지공예 전통기법 중 하나인 ‘꽃일’ 기법을 배웠어요. 한지 위에 글씨나 그림을 그리고, 그 부분을 잘라내 걸어놓는 꽃일 기법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전해요. 성당 계단 창과 교리실, 휴게실 창에 설치된 작품들에는 다양한 성모상을 한국적인 모습으로 표현했어요. 최 신부님은 아무 경험이 젊은 작가였던 제게 큰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도 인사를 드리면 ‘항상 정진하세요’라는 표현으로 응원을 해 주세요. 야탑동성당에서 작업한 게 2005년 즈음이었는데, 이후로는 1년에 한 군데 정도씩은 작업을 했어요. 십자가의 길 14처와 십자고상 등을 꾸준하게 만들어 봉헌했어요. 십자고상을 만들 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사실 십자가의 길은 처음에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잘 몰랐어요. 최종태(요셉) 선생님께서 관련 자료를 구해주셔서 그걸 보고 연구하고, 명동대성당이나 다른 성당에 가서 작품들을 많이 보고 묵상하며 만들었어요. 신자들이 보고 기도하는데 방해만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언제나 최선 다하는 성미술 작가 되고파 2014년 세월호 참사 일어나고 아버지께서 그해 가을에 돌아가셨어요. 제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요, 제 작업실 앞으로 등교하던 아이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중간에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들어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만, 작업을 놓게 되더라고요. 또 어머니께서 중간에 돌아가시고 그렇게 혼자가 됐어요. 2014년 이후로 한 7년 동안은 성미술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21년 서울대교구 양원성당에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을 봉헌했어요. 여기 십자가의 길에는 제 부모님이 투영돼 있어요. 아버지를 잃은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예수님을 잃은 성모님의 마음으로 투영한 거죠. 양원성당 이후로 작업을 쉬고 있어요. 뒤늦게 짝을 만나 결혼도 했고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누군가 부탁하면 언제나 ‘네’라고 답을 해요. 곧 제 작업을 다시 시작할 거예요. 언제나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성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요. ◆오수연(세레나) 작가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5년 평화화랑 개인전 등 3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십자고상과 십자가의 길, 묵동성당 십자가의 길을 포함해 다수의 본당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2024-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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