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기도서」의 ‘자녀를 위한 기도’ 후반부는 아이의 삶이 놓이게 될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세상 부패에 물들지 않게 하시며.”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세상이 아이를 위협하는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 기도는 아이를 세상으로부터 떼어 놓아 달라는 요청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 기도의 의미가 제 걱정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도는 아이를 세상에서 빼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 않게 해 달라는 기도에 가깝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부패’는 노골적인 악의 얼굴로만 다가오지 않습니다. 더 자주,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삶의 형태로 다가옵니다. 비교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분위기, 질문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길 말입니다. 아이들이 물드는 것은 악 그 자체보다, 이런 무감각과 체념일지도 모릅니다. 기도는 이어서 말합니다. “온갖 악의 유혹을 물리치고.” 유혹은 대개 위험한 제안의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속삭입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 “다들 그렇게 살아.” 이런 말들은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리기에 더 위험합니다. 아이들이 맞닥뜨리는 유혹은 나쁜 선택을 하라는 권유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길로 내미는 손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마침내 깨닫게 됩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보호막이 아니라, 분별의 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이 옳은지 대신 판단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멈추고 묻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힘 말입니다. 기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청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이루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말은 자칫 착하게 살라는 도덕적 권고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늘 질문하는 분이셨습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회 질서에 질문을 던지셨고, 힘의 중심보다 주변부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모범생이 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녀를 위한 기도의 후반부는 아이를 약한 존재로 바라보는 기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아이는 세상을 살아갈 힘이 필요하다고, 다르게 살아갈 용기가 필요하다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이 지점에서 가족의 역할도 다시 보입니다. 가족은 꿈을 대신 이루어 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 남아 주는 사람들입니다. 아이가 세상 속에서 흔들릴 때,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대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질문해도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는 자리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를 꿈꾸게 하는 가족이라고 말입니다. 꿈을 대신 살아 주지는 않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함께 살아 주는 가족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서도 자기 길을 잃지 않도록, 서로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입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의 후반부는, 아이를 세상에서 빼내 달라는 기도라기보다, 세상 한가운데서도 자기 삶을 지켜 내며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글 _ 유형선 아우구스티노(가족인문학연구소 공동운영자)
발행일 2026-02-08 제3478호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