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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성슬기 기자
입력일 2021-06-01 수정일 2021-06-01 발행일 2021-06-06 제 324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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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회와 천주교회 숙제는 ‘진정한 대화’… 연대적 협력 필요”
뮈텔 주교는 “세금의 폐단” 제주 사회는 “천주교회 잘못”
초창기 서로 인식 달랐지만 제주교구, 100년 뒤 선언문서 서로의 잘못 인정하고 사과
아픈 역사의 교훈 바탕으로 지역 사회 안에 평화 이루는 공감대 형성 위해 노력해야
교구도 진정한 용서·화해 위해 황사평 추모공원 조성 사업과 평화 교육 활성화 등 추진
제주 사회와의 연대 활동도

5월 28일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참가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사진 이창준 제주지사장

“독창적이고 담대하게 치유와 새로운 만남의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평화의 장인들이 필요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모든 형제들」 225항)

제주교구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5월 28일 제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을 주제로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교구는 심포지엄을 통해 신축교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제주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형성과 변화’(양인성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대중문화에 드러난 신축교안의 양상’(강옥희 상명대학교 국문과 교수), ‘2003년 미래 선언의 의미와 향후 기념사업의 방향’(현요안 신부) 등의 발제가 이어졌다. 심포지엄의 주요 내용을 알아본다.

■ 신축교안을 둘러싼 기억, 대립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로

처음 교회와 제주 사회는 신축교안을 두고 상당한 인식 차이를 보여 왔다. 양인성(대건 안드레아) 책임연구원은 당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작성한 3개의 문건을 통해 “뮈텔 주교는 신축교안의 원인은 세폐(稅弊)였고, 세금을 징수하던 봉세관이 제주를 떠나자 공격의 화살이 천주교인에게 향하게 됐다고 인식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교회는 신축교안을 ‘무고한 신자들이’ 학살당한 박해로 기억했지만, 제주 사회는 이재수 등이 천주교 신자들의 횡포에 격분해 제주성을 함락시키고 교폐(敎弊)를 해결한 영웅적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뮈텔 주교의 신축교안에 대한 인식은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점차 교회 안에서도 천주교 신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의견이 대두됐다.

대구대목구 청년회가 발행한 기관지 ‘천주교회보’(현 가톨릭신문)는 1929년 2월 1일자 기사에 탐관오리들과 천주교 신자들의 ‘과실’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불량한 교우’가 권리를 남용하고 이웃을 속여 재물을 탐하는 잘못을 저질렀고, 이것이 민란의 도화선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교구는 ‘제주 선교 100주년’(1999년) 기념사업으로 교구사를 편찬하며 신축교안에 대한 인식을 재검토했다. 또 1997년 10월 3일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신축교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당시 문창우 신부(현 제주교구장)는 교안 당시 있었던 선교사들의 문화우월주의, 교회의 전통신앙 배척 사실을 인정했다.

이런 인식 변화는 2003년 11월 7일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문’으로 이어졌다. 제주교구는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함께 선언문을 발표하며 과거에 대한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양 연구원은 “오랜 기간 평행선을 달려왔던 만큼 단기간에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교회와 제주 사회의 ‘진정한 대화’는 앞으로의 숙제”라고 덧붙였다.

■ 문학으로 기억하는 역사, 과거를 반성하며 화합으로

신축교안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주제다. 현기영의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나 박광수 감독의 영화 ‘이재수의 난’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만 사건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있는 정도다.

강옥희 교수는 제2주제 발표에서 소설가 현기영이 「변방에 우짖는 새」를 통해 신축교안의 발발 과정과 경과, 그 안에서 민중과 교회의 역사적 비극을 잘 드러냈다고 밝혔다. 소설 전반부에는 제주도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수탈의 상황 속에서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 잘 묘사돼 있다. 이어 중반부에서는 봉세관의 횡포와 천주교 신자들의 갈등 속에서 민란이 발생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강 교수는 “「변방에 우짖는 새」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의 부패상과, 가난한 백성들이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갈등하며 받은 상처와 그 치유 과정을 통해,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낸 역사적 전사(前史)로 교훈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변방에 우짖는 새」를 비롯한 영화 ‘이재수의 난’ 등은 신축교안의 주된 원인이라고 평가됐던 교폐의 근저에는 세폐의 문제가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면서도 “제주 민란의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는 이재수는 실제 기록에는 부정적으로 평가돼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올해는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는 해이고, 1901년 제주에서의 기억은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상기시킨다”면서 “역사에서나 문학작품 안에서 신축교안의 기억은 현재 우리의 삶을 통찰하고 반성하며 화합하는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 억압과 폭력, 갈등을 넘어 ‘제주다움’ 회복에 동참

마지막으로 현요안 신부(교구 사무처장)는 교구가 앞으로 ‘제주다움’의 비전 제시와 공동체 회복을 위해 제주 사회와 ‘연대적 협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출발은 ‘명확하고 숨김 없는 진실’(「모든 형제들」 226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먼저 평화를 향해 쉼 없이 노력하고 창의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 신부는 “진실은 변화를 이끈다”며 “진실이 감동과 변화를 일으키는 이유는 우리가 ‘진실의 차원’에서 서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신축교안과 제주4·3의 역사적 교훈을 바탕으로 평화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지역 사회 안에 정의와 평화, 생명의 문화 만들기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이번 발표에서 교황이 최근 발표한 회칙 「모든 형제들」 안에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며 ▲평화 운동 ▲제주의 공동체성 회복 운동 ▲신축교안, 제주4·3을 주제로 한 ‘진실과 화해’ 운동 ▲생태환경 교육 등 앞으로 펼칠 기념사업의 방향도 발표했다.

교구는 구체적으로 ▲황사평 성역화 사업: 추모공원 ▲평화 교육 활성화 ▲신축교안의 제주도민 사회와의 연대 사업 활성화(‘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와의 연대) 등 크게 3가지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교구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추모 공간을 조성한다. 이미 올해 3월 황사평성지의 종합적인 계획을 위한 ‘장묘문화 소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신축교안의 역사적 장소인 ‘황사평 신축교안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다.

더불어 신성학원은 인성교육과 역사교육, 평화교육, 생태환경교육의 산실로 제주 지역 학교에 대안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예정이다. 신성학원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가톨릭학교로, 당시 여성과 가난한 가정 어린이 등 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시작돼 제주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해온 교육기관이다.

※신축교안이란?

1901년 5월 제주도에서 천주교 신자들과 민군이 충돌한 사건으로, 5월 28일 제주성에 입성한 민군은 천주교 신자들을 대거 살해했다.

당시 제주도민은 세폐(稅弊), 즉 가혹한 세금 징수와 세금 징수관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가운데, 프랑스 선교사들은 고종 황제가 내어준 ‘여아대’(如我待, ‘나와 같이 대우하라’ 즉 프랑스 신부 대하기를 임금 대하듯이 하라는 뜻)를 비롯한 특권을 토대로 전교활동을 했다.

선교사들은 가혹한 세금 징수에 시달리던 신자들을 봉세관(세금 징수관)의 마름으로 쓰도록 요청했다.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실무자인 마름에게는 세금 감면의 특권이 있었다. 하지만 몇몇 ‘불량신자’ 마름들이 세금 수탈에 앞장서며 비신자들의 원망을 샀고, 제주 토속 종교를 비하하는 등 교폐(敎弊)를 일삼았다. 신축교안은 세폐와 교폐 복합작용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