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특집] 캄보디아에서 만난 예수 그리스도(하)

캄보디아 민경화 기자
입력일 2023-01-31 수정일 2023-02-01 발행일 2023-02-05 제 332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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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조차 가난할 순 없기에 오늘도 희망의 씨앗 심습니다
가난으로 또는 난민이란 이유로
배움의 기회 빼앗긴 아이들에게
직업학교 운영해 기술 가르치고
글 익힐 수 있는 교습소 마련

마을의 어려움에 발벗고 나서며
희노애락 함께하는 선교사제들
“선교는 주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으며 함께 사는 것”

썸롱톰성당 아이들이 윤대호 신부에게 안수를 받기 위해 줄서 있다.

박해의 위협을 무릅쓰고 조선에 천주교를 전파한 서양선교사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한국외방선교회(총장 정두영 보나벤투라 신부)는 그 감사함을 잊지 않고 과거 우리와 같이 어려운 이들을 찾아 나섰다.

기도할 성당이 없는 이들, 정치적인 이유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동행하고 있는 한국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의 모습은 200여 년 전 조선을 찾은 서양선교사들과 닮았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곳에는 늘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감사와 보은’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한국외방선교회의 캄보디아 선교현장에 서울 방배4동본당(주임 이동익 레미지오 신부) 신자들과 동행했다.

썸롱톰성당 아이들이 한국에서 온 손님을 환영하고 있다.

가난 이길 수 있는 ‘희망’ 찾고자 손잡은 선교사제

“반하어이, 반하어이”

1월 11일 캄보디아 역사를 알기 위해 ‘뚜얼슬랭 대학살 박물관’을 보고 돌아가는 길, 이곳에서 10년 넘게 선교하고 있는 한국외방선교회 이범석(시몬 베드로) 신부는 캄보디아의 50~60대 부모들이 자식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을 소개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그만하면 됐어”다.

크메르 루주 정권에 의해 대학살이 자행됐던 1960~19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55~60대는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는 자’로 지목된 이들, 즉 지식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이들이 학살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의사, 교사, 종교인 등 지식인 계층의 죽음은 열심히 공부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빼앗았다. 악행의 고리는 대를 이어 내려왔고, 캄보디아 젊은이들이 가난과 무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됐다. 가난은 10살을 갓 넘긴 아이들을 농장과 공장으로 내몰았고,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여유는 없었다.

배우지 못한다는 것은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것과 같다. 캄보디아 선교에 나선 한국외방선교회는 아이들에게 돈보다 중요한 ‘희망’을 알려주고 싶었고, 2009년 코미소 직업기술학교(KOMISO·담당 김명동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하 코미소)를 세웠다. 수업은 미용반(헤어·네일·메이크업), 오토바이 수리반, 재봉반 등 3개 반. 코미소에서 6개월간 숙식하며 기술을 배운 아이들은 졸업 후에 대부분 보다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다는 게 코미소 담당 김명동 신부의 설명이다.

직업교육에 앞서 이곳에서 중요하게 배우는 것은 인성교육이다.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덕과 예절을 배우며 성장한 아이들은 행동과 표정, 말투까지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코미소를 졸업한다. 김명동 신부는 “코미소는 가난한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기회가 없는 아이들을 뽑아서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라며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었던 아이들이 ‘여기에 오고 나서 삶의 희망이 생겼다’고 웃으며 학교를 떠날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메콩강과 인접해 있는 썸롱톰본당은 전쟁 때 피난 온 보트피플, 즉 베트남 난민들이 신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10여 년 전 이곳에 성당을 세운 선교사 신부가 땅을 구입해 수상가옥에 사는 베트남 난민들에게 집과 땅을 제공했다. 현재 마을부지 60% 이상이 천주교 소유인 상황. 또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는 마을 아이들은 썸롱톰본당 부설 초등학교에서 캄보디아어와 수학 등 기본 과목을 배운다. 정식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2학년까지 아이들이 글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썸롱톰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는 윤대호(다니엘) 신부는 이곳 뿐 아니라 쁘렉닺·껌뽕쩜렁본당에서도 아이들이 글을 배울 수 있는 교습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제인 그가 살림을 아껴 교실을 만들고 책상과 칠판을 마련해 아이들을 성당으로 불러 모으는 이유는 하나다. “아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돕는 것이 사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먼 나라, 한국에서 온 신부와 가족이 된 썸롱톰 마을 아이들은 성당의 울타리 안에서 희망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썸롱톰본당 부설 초등학교 교실 내부. 운영비가 부족해 아이들은 책상과 의자도 없이 공부하고 있다.

이미 그곳에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

베트남과 태국 대표팀의 축구경기가 있었던 1월 13일. ‘캄보디아의 한일전’이라 여겨질 만큼 중요한 경기를 보기 위해 뽀젠똥 마을 사람들이 성당 마당에 모였다. 큰 화면으로 경기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마을이 폐쇄됐을 때는 이곳에서 선교하는 이범석 신부 덕분에 물과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다. 뽀젠똥 마을에서 성당은 마을회관이며, 이 신부는 이장과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윤대호 신부가 사목하고 있는 썸롱톰 마을도 마찬가지다.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윤대호 신부와 골목길을 지나가자 다들 문밖으로 나와 반갑게 인사를 전한다. “밥은 드셨어요?” “아픈 덴 어떠세요?” 윤 신부가 안부를 묻자 손을 잡고 미소 짓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가족만큼 끈끈한 정을 나누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썸롱톰본당에서 하는 일은 미사 집전만이 아니다. 전례용 미사곡이 없는 캄보디아 신자들을 위해 작곡을 하고, 제대와 독서대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제작했다. 집이 없는 신자들을 위해 집을 지어 주기도 했다. 윤 신부의 올해 목표는 성당에 화장실을 만들고,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마련하는 것이다. 윤 신부가 이처럼 팔방미인이 된 것은 캄보디아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장 이창원(다니엘) 신부는 “우리의 선교 목표는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교국가인 캄보디아에서의 선교활동이 녹록지 않지만 그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오래전 받았던 은혜를 갚기 위해 가난한 이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는 직업학교와 무료 진료소, 그리고 본당 사목을 통해 누군가가 가난 때문에 희망을 잃지 않도록 손을 잡고 동행하고 있다. 무엇하나 넉넉하지 않아 보이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그들에게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캄보디아에서 선교하고 있는 신부들은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것이 더욱 많다”고 말한다.

코미소 클리닉에서 사목하고 있는 김지훈(안드레아) 신부는 “이곳에서 사목하면서 사람들 안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다”며 “선교는 주는 것만이 아닌, 서로 주고받으며 같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캄보디아에서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선 선교사제들의 의미 있는 여정에 우리도 동행하면 어떨까.

※후원 계좌: 우리은행 1006-601-211-961 (재)천주교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문의 02-3673-2525

코미소 직업기술학교 오토바이 수리반 교실.

캄보디아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