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97세 ‘수세미 할머니’ 부활 선물에 500가지 사랑 가득

박주헌
입력일 2024-03-21 수정일 2024-03-28 발행일 2024-03-31 제 338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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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모래내본당 최고령 신자 이종옥씨의 특별한 부활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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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옥 할머니는 “작은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수세미를 뜨고 있다”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사진 박주헌 기자

인천 모래내본당 최고령 신자 이종옥(도미니카·97) 할머니는 올해도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손뜨개질을 하느라 바쁘다. 할머니는 지난해부터 부활·성탄마다 손뜨개질로 만든 수세미를 500개씩 떠서 본당 전 신자에게 선물하고 있다. 1년 내내 수세미 1000개를 뜨는 강행군이지만 이 할머니는 오히려 “나누는 기쁨이 더 커서 오히려 뜨면 뜰수록 힘이 차오른다”며 웃었다.

소소한 선물이지만 바늘코마다 순수한 선의만이 깃들었다. 특별한 이유보다는 알 수 없는 이끌림에서 시작된 이 할머니의 나눔이기 때문이다. 46세 무렵, 누군가에게 권유를 받지 않았는데도 문득 “성당에 가야겠다”며 신앙을 갖게 됐듯 “인간의 뜻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서 이유를 찾는다”는 그의 고백대로다.

소학교(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좋아해서 시작한 뜨개질은 이 할머니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오랜 방법이다. 젊어서도 조끼, 스웨터, 치마 등을 떠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손의 움직임에 몰두하는 순간 잡념도 어느새 사라질뿐더러, 선물을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 코 한 코 기도도 같이 해줄 수 있다”는 할머니만의 기쁨도 있다.

알고 지내는 신자들에게만 장갑, 목도리 등 큰 선물을 할 수 있지만 수세미를 뜨기로 했다. “작은 선물이더라도 최대한 많은 신자와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가 450명이라 500개씩 뜨고 있어요. 오랜만에 성당에 나온 교우나 이웃 본당 교우들과도 나누고 싶어서 50개씩 더 뜨고 있답니다. 특히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를 나누는 것도 많은 교우가 성당에 오는 날이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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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옥 할머니는 부활과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며 열두달 내내 뜨개질을 한다. 사진 박주헌 기자

수세미를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 할머니는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고 표현했다. 특히 “할머니 팔 아프신데 그만 떠 주시고 쉬셔요”라며 이 할머니의 수고에 공감해 주는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마음을 알아주니 오히려 힘이 안 든다”고 미소 지었다.

옷 뜨개질보다는 손이 덜 가도 수세미를 뜨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 할머니는 “기분 좋은 날에는 하루 20개씩을 뜰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나쁘면 하루 한 개도 뜨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척추와 고관절에 병이 있어 하반신도 잘 쓸 수 없는데 다리는 만지기만 해도 아프다. 앉아서 뜨개질에 집중하다가 침대에 눕기를 되풀이하는 투혼은 필수다.

하지만 이 할머니는 부활과 성탄의 신비를 묵상하며 열두 달 내내 뜨개질을 한다. “되살아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시고, ‘나누어 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처럼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힘의 원천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눔은 뜨개질뿐이지만 그로써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이 되고 싶다”는 이 할머니. 그는 “보잘것없어도 부엌 한편에 늘 있는 수세미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한다”는 유일한 작은 바람과 함께 “힘닿는 데까지 매년 선물을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선물에도 고마워해 주시니 제가 오히려 더 고맙고 힘이 납니다. 나중에 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수세미 할머니 생각난다’며 위령기도나 한번 해주셔요~!”

이종옥 할머니는 “작은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는 기쁨으로 오늘 하루도 수세미를 뜨고 있다”면서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도해 줬으면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