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P.E.바흐 <주님의 부활과 승천> 중 ‘주님께서 환호 속에 승천하시네(Gott fähret auf mit Jauchzen)’
바로크 음악이 종말을 맞았지만 아직 빈 고전주의 음악은 등장하지 않은 18세기 중반, 사회와 예술에서는 매우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보편적인 감정이나 자연을 모방하려던 음악은 이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음악가의 사회적 위치가 높아지고, 시민 계급이 성장하면서 음악가들이 직접 시민을 상대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는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大)바흐’, 즉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둘째 아들입니다. 당대에 그는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음악가였고,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음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선구자였습니다.
에마누엘 바흐는 흔히 ‘대왕’이라 불리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 밑에서 궁정 음악가로 30여 년 일한 뒤 1767년에 대부였던 텔레만이 세상을 떠나면서 공석이 된 함부르크의 음악 감독에 취임했습니다. 함부르크는 부유한 상업 도시로, 일찍부터 시민 계급이 예술을 후원하고 즐겼습니다. 이미 베를린 시절부터 궁정 바깥의 시민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에마누엘 바흐는 다섯 개의 주요 교회의 음악을 책임지는 직무와 더불어 일반 시민을 위한 대중 음악회를 열었고, 직접 악보 출판까지 하면서 빈틈없는 사업가로서의 역량도 발휘했습니다.
그가 시민을 대상으로 열었던 연주회에서는 교향곡이나 협주곡뿐만 아니라 라틴어와 독일어 종교음악도 연주했는데, 이는 함부르크라는 도시의 특성과 사회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대규모 교회 음악을 교회가 아니라 콘서트홀에서 연주하는 관습을 시작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가령 예수님의 승천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뤘지만 아버지 대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1738년에 쓴 ‘승천 오라토리오’가 교회에서의 전례를 위한 작품인 반면, 아들 에마누엘이 함부르크에서 1774년에 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Die Auferstehung und Himmelfahrt Jesu)은 극장이나 콘서트홀을 위한 작품입니다.
에마누엘 바흐는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힘차고 풍부한 표현으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맞이하는 기쁨을 노래하며, 특별한 줄거리는 없지만 전편에 극적인 긴장감이 팽팽하게 흐릅니다. 그리고 1부와 2부의 끝부분에는 아버지 바흐를 연상케 하는 장대한 합창 푸가로 장엄한 주님의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마지막 합창은 시편의 마지막 구절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알렐루야!’로 끝납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입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