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교구 성당 순례] 광교1동성당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 사이를 걷다 보면, 갑자기 웅장하고 경건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나 보행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19세기에 세워진 성 패트릭 대성당이다. 이처럼 사막 같은 도심 속에서 생명수를 만난 듯한 경험을 주는 성당이 우리 곁에도 있다. 2021년 수원디자인대상을 받은 제1대리구 광교1동성당(주임 서상진 바오로 신부)이다. 수원 광교신도시 중심에 자리한 성당은 ‘하느님이 사람들 가운데 오셨다’는 의미의 ‘임마누엘’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백화점, 아울렛, 병원, 지하철역 등 편의시설로 둘러싸인 도심에 위치한 광교1동성당은 고전적 건축양식으로 눈길을 끈다. 아치와 돔, 붉은 벽돌로 이뤄진 이 건물은 현대적 빌딩과 아파트 사이에서 오히려 돋보인다.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따지지 않고, 정서적 환기라는 공공적 가치를 담아낸 건축물로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당은 공원으로 둘러싸여 있어, 비교적 낮은 건물임에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좁은 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한 평면 설계와 더불어, 내부 안쪽에 조성된 성모 광장은 개방감과 접근성을 높였다. 광장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 사용하는 열린 공간으로, 모임과 휴식을 위한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광장 한편 성모 동상에는 루르드 성모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곁에는 신자들이 봉헌한 20여 개의 컵 초가 밝게 빛나고 있다. 본당 주보 성인인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자들의 깊은 신심이 느껴진다. 광장 가장자리에 놓인 구유는 3차원의 나무 외양간 안에 2차원으로 표현된 인물과 동물 그림 패널이 배치되어 독특한 입체감을 준다. 몇 차원인지도 모를 높은 곳에서 낮은 세상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해, 보는 이로 하여금 감사와 경건함 속에 기도를 드리게 한다. 거룩함의 무게가 느껴지는 곳 성당 1층에는 벽이 없는 개방형 카페가 있다.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대화하며 공동체의 온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카페 유리 벽면에는 ‘가나의 혼인 잔치’를 표현한 대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최복순 수녀(안젤라·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작품으로, 성전이 아닌 일상 공간에서도 신앙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한다. 2층 로비와 대성전 내부에서는 다양한 색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순례자를 맞이한다. 그림은 성화 못지않은 섬세한 선과 채색으로 표현돼 있다. 대성전 왼쪽 창은 초록색과 파란색으로 성령의 ‘바람’을, 오른쪽 창은 보라와 붉은색으로 마치 성령의 ‘불’을 상징하는 듯하다. 성모님의 칠고칠락을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와 바로 위 십자가의 길 14처가 서로 대비되거나 일치하며, 고통에 대한 묵상을 더욱 깊게 이끈다. 기둥 없는 대성전 구조와 제대 위 돔 천장은 특유의 공간감을 선사한다. 냉난방, 결로, 환기, 음향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돔 구조는 고요한 공기 속에서 거룩함의 무게를 실어주며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제단 위 감실은 주황과 노란빛 십자가와 둥근 성체로 표현돼 따뜻한 분위기를 낸다. 봉헌에 맞갖은 공동체의 장으로 광교1동성당은 2019년 2월 기공식 후 약 21개월간의 공사를 거쳐 2020년 11월 입당 미사를 봉헌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이중의 고비를 극복하고 이뤄낸 결실이다. 당시 본당 총회장이었던 김성균(안드레아) 씨는 “막막했던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나아가자 성전 신축이라는 소망이 이루어졌다”고 회고했다. 본당 신자들은 새 성당 신축을 위해 크고 작은 정성을 봉헌해 왔다. 현재는 성경에 나오는 과부의 헌금처럼 ‘교무금 납부율 50% 이상 봉헌 참여’ 등을 통해 하늘의 재물 쌓기 운동을 전개 중이다. 공동체의 영적 기초도 튼튼히 다지고 있다. 신자들은 ‘소공동체 참여를 통한 참된 신앙의 삶 봉헌’, ‘공동체 성화를 위한 밤 9시 주모경 기도 봉헌’을 통해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성당의 봉헌식을 준비하고 있다.

발행일 2025-12-25 제3471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배곧성당

세대 유입이 빠른 신도시의 활기 속에서도 고요한 영적 숨결을 간직한 성당이 있다. 경기도 시흥 배곧신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수원교구 제2대리구 배곧성당(주임 김정환 비오 신부)은 바다와 맞닿은 도시 특유의 넓고 시원한 풍경을 품으며, 현대적 건축미와 가톨릭교회 전통의 깊이를 자연스럽게 담아낸 공간이다. 사방이 열린 대지 위로 성당 뒤편의 넓은 주차장과 신도시 아파트 단지들이 어우러지며, 개방성과 공동체의 따뜻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독특한 공간적 매력을 품은 성당을 직접 찾았다. 신도시의 성장과 함께 자란 열린 공동체 ‘배곧’은 ‘배우는 곳’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조선어강습원’을 ‘한글배곧’이라 부르며 사용한 데서 유래한다. 2015년부터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이 지역은 젊은 세대 중심의 대규모 신도시로 빠르게 성장했고, 본당 역시 자연스럽게 지역의 신앙·커뮤니티 중심지로 자리했다. 본당은 2017년 6월 설립돼 신도시의 성장과 발맞춰온 ‘젊은 공동체’다. 초대 본당 주임 김정환 신부와 신자들의 손길이 성당 곳곳에 스며 있으며, 현대적 건축 양식 속에서도 가톨릭적 상징성과 고전미를 조화롭게 드러낸다. 우뚝 솟은 종탑과 삼각 지붕, 곡선형 통유리 외관은 세련된 도시 풍경과 잘 어울리면서도 종교적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성당 전면에는 김 신부가 직접 디자인한 ‘승리의 십자가’가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시관을 형상화한 십자가는 고난을 통해 완성된 구원을 상징한다. 성당 입구에는 주보성인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동상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동상 뒤로는 작은 성모 동산이 있다. 성모 동산을 감싸고 있는 사시사철 푸른 나무는 항구한 성모 신심을 상징한다. 설립 초기, 본당이 가장 먼저 한 일도 성모님을 공동체 한 가운데 모신 것이었다. 빛과 색으로 드러나는 성전의 영적 공간 성당은 크게 성전동과 나눔동으로 나뉜다. 나눔동은 유리 통창을 통해 성당 안팎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설계해 ‘열린 공동체’라는 본당의 방향성을 반영한다. 1층의 ‘cafe1984’는 신자들이 미사 전후 머무르며 친교를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성전동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24개의 작은 유리창이 이어지는데, 유은미(엘리사벳) 작가가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악보를 색채로 변환해 유리화로 표현한 작품이다. 성전으로 오르는 발걸음 자체가 성모 신심을 묵상하는 여정이 되도록 한 것이다. 성전 로비는 중세 교회 건축에서 기도와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공간의 의미를 이어받아 어둡고 차분하게 조성됐다. 이곳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성모님의 기쁨·고통을 묵상하도록 한 유리화가 자리한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유리화가 더 빛을 발하는 ‘달드베르 공법’을 활용해 깊은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성전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밝은 색감과 장엄한 구조가 조화를 이루며 마치 천상에 들어온 듯한 공간이 펼쳐진다. 성전 양쪽 벽은 파노라마 형태의 유리화로 꾸며져 있는데, 뒤편의 짙은 파란색이 제대 쪽으로 갈수록 점차 하얀 빛으로 변화하며 구원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제대 십자가는 이콘 양식으로 제작됐고, 좌우에는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 이콘이 배치돼 있다. 제대 뒤 ‘제단벽 부조’는 마태오복음 17장 4절의 ‘초막’ 장면을 모티브로 한 세 폭 구성으로, 가운데 초막에는 감실이 자리하고 있다. 제대 앞에는 주보성인의 유해감실도 있다. 김정환 신부가 2019년 폴란드 크라쿠프 전임 교구장 드츠비츠 추기경에게 서한을 보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혈액 유해를 받아 조성한 것이다. ‘찾아가는 사목’이 만든 성장 배곧신도시에 성당을 짓고 공동체를 세우기까지는 김정환 신부의 간절한 기도와 신자들의 헌신이 더해졌다. 신도시 특성상 처음에는 기반이 거의 없어 신자 간 유대가 형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김 신부는 이를 위해 먼저 ‘찾아가는 사목’에 나섰다. 2017년 당시 약 770가구를 직접 방문해 세족례를 진행했다. 한쪽 발은 신부가 씻어주고, 다른 한쪽 발은 가족이 서로 씻어주는 방식이었다. 또한 성모 동산의 성모상을 축소 제작해 가정에 선물하며 공동체의 일체감을 북돋웠다. 이 과정에서 신자들의 은사와 성향을 파악해 봉사자를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이는 본당 단체 구성의 기반이 됐다. 사제와 신자들은 이렇게 신뢰를 쌓았고 공동체의 유대감은 차츰 두터워졌다. 본당은 성당 건축을 마무리한 뒤에도 남아 있는 건축 부채를 갚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겨자씨 예탁금’을 통한 기부금 영수증 발행, 승리의 십자가 디자인을 활용한 에코백·머그잔·이콘 키링 제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모금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신자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본당을 만들겠다는 김 신부의 의지와 공동체의 연대가 빚어낸 결과다.

발행일 2025-12-07 제3469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죽산순교성지 성당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죽산성지’라 새겨진 큰 돌을 만난다. 성지 초입이다. 이곳에서 성지까지는 800여m. 포졸들에게 잡혀 와 죽산 관아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초주검 된 신자들이 처형 터로 향하던 그 길이다. 죽주산성을 마주하는 이곳은 고려 때 원나라 군사가 진을 친 곳이어서 ‘이진(夷陳)터’라 불렀는데, 박해시기 ‘잊은 터’라는 이름이 더해졌다. 훗날 신자들은 그 자리에 성지를 세워 기억의 공간으로 삼았다. 24위 순교자와 이름 모를 무명순교자들이 잠든 죽산순교성지(전담 이해윤 루도비코 신부)는 위령성월을 맞아 순교자를 기억하기 위해 발걸음을 한 순례자들 덕분에 가을 햇살 아래 더욱 빛나고 있다. 잊어야 하는 터, 기억해야 할 터가 되다 성지 대문은 웅장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성역(聖域).’ 성스러운 공간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현판을 단 큰 문루를 넘어서자 넓은 잔디광장 너머로 순교자 묘역이 눈에 들어온다. 성지는 대문을 중심으로 기와를 얹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안쪽으로 묵주기도의 길, 순교자 묘역, 십자가의 길이 정갈하게 배치돼 있다. 봄이면 꽃들이 만개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수놓여 사시사철 아름다운 성지는 이제 잊은 터가 아닌 기억에 남는 터가 됐다. 담벼락 끝에 자그마한 십자가가 보인다. 성지 대성당이다.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황토색 벽에 검은색 기와를 얹은 소박한 모습이다. 성당은커녕 함께 모여 기도할 공간조차 없었을 신앙 선조들을 대신해 오늘 순례자들은 성당 안에서 순교자들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대성당 앞에 앉으면 성지 전체를 올려다볼 수 있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위해 고된 길을 걸었을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며 새롭게 지어진 아름다운 마을에서 고통받지 않고 마음껏 하느님 사랑을 느끼길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다. 성당을 나와 오솔길을 오르면 순교자 묘역이다. 중앙의 무명 순교자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에 병인박해 24위 순교자 묘와 현양탑이 대칭을 이룬다. 순례자들이 피의 순교를 체험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순교자 묘는 성지의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묵주기도의 길에서 성모 신심을, 묘역에서 순교 신심을 묵상한 순례객은 마지막으로 소성당에서 성체조배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체험한다. 성지를 찾은 민영문(스테파노·인천교구 중3동본당) 씨는 “다른 어떤 성지보다 순교자 묘역을 잘 조성해 놓아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소성당에서 순교자들의 유해를 바라보고 기도할 수 있어 올해 위령 성월이 더욱 뜻깊었다”고 말했다. 순교자 피로 물들었던 처형 터, 성지로 거듭나다 죽산은 삼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자, 임진왜란 이후 전략 거점으로 평가돼 1595년 도호부로 승격됐다. 병인박해(1866년) 때 도호부사는 토포사와 영장을 겸임하며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신자를 체포했다. 작은 고을이었지만, 그 박해 속에 죽산에서는 22명의 신자가 순교했다. 당시 이곳에는 처형장이 있었다. 삼남에서 서울로 향하는 큰길가에 자리해 행인의 왕래가 잦았고, 누구나 처형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관헌은 신자들뿐 아니라 신자가 아닌 이들에게도 경각심을 주기 위해 공개된 자리에서 잔혹한 형을 집행했다. 기록에는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가족이 함께 순교한 사례도 남아 있다. 충북 진천 절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체포돼 죽산 관아로 끌려온 복자 박경진 프란치스코와 오 마르가리타 부부가 그중 하나다. 당시 조선의 법은 가족을 동시에 처형하는 것을 금했으나, 병인박해의 광풍 속에서는 이런 비극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여정문(1867년 순교)은 아내와 15세 아들과 함께, 최성첨(1868년 순교)은 아들과 함께 한날한자리에서 목숨을 바쳤다. 순교자의 피로 얼룩진 그 자리에 성지 조성이 본격화된 것은 46년 전이다. 1979년 제1대리구 죽산본당은 ‘죽산성지 조성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병인박해 순교지 ‘잊은 터’를 성지로 가꾸기 시작했다. 순교 터 위치를 확인하고 사료를 수집한 본당은 1994년부터 2만여 평의 부지를 확보하며 조성 사업에 속도를 냈다. 이어 1997년 6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해 같은 해 12월 14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발행일 2025-11-16 제3466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어농성지 성당

11월은 위령 성월이다. 특히 1일부터 8일까지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2일)’을 포함한 기간 중, 정성된 마음으로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면 연옥 영혼에게 양도할 수 있는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교회가 운영하는 일반적인 봉안당이나 추모 공원을 방문할 수 있지만, 많은 성지에 성인과 복자 혹은 순교자 묘역이 조성돼 있기에 성지를 찾는 것도 좋다. 1801년 신유박해 순교 복자 윤유오(야고보)의 묘역에서 시작된 어농성지(전담 윤석희 미카엘 신부)를 찾았다. 밀알 하나가 떨어지다, “다 이루었다” 성지는 경기 이천시 모가면 어농로62번길 148에 자리하고 있다. 성지 주차장에서 포장도로 혹은 비포장 잔디밭 길 둘 중 하나를 따라 우측으로 올라가면 성당이 나온다. 나지막한 황토색 건물이 대지와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준다. 성당 앞에는 돌아온 탕자를 연상시키는 동상이 부친을 부둥켜안고 “아버지!”를 부르짖고 있다. 동상 이름은 ‘돌아온 탕자’가 아닌 <아버지 상>이다. 나 자신의 회개도 중요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회심을 받아들일 줄 아는 용서와 화해의 마음 또한 중요함을 깨닫는다. 2002년 봉헌된 성당 내부는 한층 더 토속적이다. 나무와 황토, 짚으로 마감된 정답고 전통적인 분위기가 이곳이 한국 순교자를 기리는 곳임을 보여준다. 벽에는 성지에서 모시는 한국교회 순교 복자 17위 중 8위의 성화가 걸려 있다. 오동회(가타리나) 화백의 세밀한 그림에 복자들의 따뜻한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성전에 들어서자,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너머로 걸린 십자가가 눈에 들어온다. 전형적인 십자가 모양이 아닌 탓에 처음에는 무엇인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지만, 그 어떤 십자가보다 더 깊은 묵상을 이끈다. 고상 위에 “다 이루었다”(공동번역 요한 19,30)는 말씀이 새겨져 있는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며 고개를 떨구시던 바로 그 순간, 예수님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구원의 은총을 빛살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유봉옥(제노베파) 작가가 하나의 소나무로 5개월간 조각해 완성했다.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어야만 비로소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성지 성당에서 봉헌되는 오전 11시 미사에 참례한다. 순례 날은 마침 성지의 추수 일이다. 어농(於農)성지는 이름 그대로 농사와 관련이 깊다. 때문에 성지는 자체적으로 벼농사를 짓고 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는 하늘과 땅, 바람과 햇살, 눈과 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기도드리는 선조들의 정신을 받들고 살린다. 자연의 순리에 맞춰 피와 가라지도 뽑지 않고 약도 치지 않아, 이상기후가 더해진 올해는 아쉽게도 풍년은 아니다. 그래도 미사 중에 요즘 도시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잘 익은 벼 이삭을 받으니, 마음은 만석 부자 못지않게 풍성해진다. 오늘 미사의 영성체송 “나는 그리스도의 밀알이다”를 묵상해 본다. 주님 닮은 ‘좋은 땅’ 17위 어농성지는 을묘박해(1795) 순교 복자 윤유일(바오로), 신유박해(1801) 순교 복자 주문모 신부 등 17위의 순교자를 모시고 있다. 이 가운데 윤유오 복자의 묘에는 유해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나머지 묘역은 의묘다. 성지는 원래 파평윤씨의 선산이었고, 유해가 이곳에 모셔진 뒤 집안이 토지를 교회에 봉헌해 성지가 조성됐다. 1987년 성모상과 묘역 축복 미사가 봉헌되며 본격적으로 순례지로 자리 잡았다. 윤유오·윤유일 형제, 윤운혜(루치아), 윤점혜(아가타)는 모두 파평윤씨로, 여주 출신이다. 이중 윤유일은 주문모 신부의 입국을 도운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동생 윤유오는 형의 뒤를 이어 교리를 연구하고 기도 모임을 갖다가 이어진 박해로 순교했다. 같은 여주 출신으로 부부인 복자 정광수(바르나바)와 윤운혜는 특히 묵주를 많이 만들어 전교하는 데 열심이었다고 알려진다. 또한 복자 이중배(마르티노), 정순매(바르바라), 조용삼(베드로), 최창주(마르첼리노), 원경도(요한), 심아기(바르바라), 윤점혜(아가타) 등도 모두 경기 출신이다. 성지는 형구전시관에 순교자들의 고문이나 이동에 썼던 의자 형틀과 수레 등을 실물 크기로 전시해 놨다. 또 농사짓는 성지답게 생태 농원이 넓게 자리한다. 십자가 동산에는 크고 작은 십자가들이 묵상의 터를 이룬다. 이 외에도 성지에는 피정의 집인 ‘야고보의 별’, 십자가의 길, 야외 제대 등이 마련돼 있다. ■ 청소년 위한 다양한 캠프 ‘인기’ 현양하는 순교 복자들이 비교적 젊은 20~40대인 어농성지는 2007년 청소년 성지로 선포됐다. 숙소, 수영장, 식당, 강당 등 시설을 갖춘 성지에서는 매년 여름과 겨울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캠프가 열린다. 여름 캠프는 각 단체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대관만 가능하며, 4월쯤 방학 시즌 신청을 받는다. 겨울 캠프는 자체 진행과 위탁 모두 가능하다. 참가는 성지 홈페이지 게시판에 공지된 일정에 맞춰 메일로 선착순 접수할 수 있다. 2026년 1~2월에는 초등부, 청소년, 청년 등 연령대별로 찬양 캠프와 피정, 복사 학교가 열린다. ※문의 031-636-4061 어농성지 사무실, 홈페이지: http://onong.or.kr

발행일 2025-11-02 제3464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천진암성지 성모성당

1883년 레오 13세 교황은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이 있는 10월을 묵주기도 성월로 제정하고, 신자들에게 우리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고했다. 기도하고 묵상하기에 알맞은 가을날, 묵주기도의 의미를되새기며 경기도 광주 천진암성지(전담 양형권 바오로 신부)를 찾았다. 이곳에는 특별한 성모 신심이 깃든 성모성당과 성모상, 묵주기도의 길이 있다. 성모님께 감사하며 봉헌한 성당 성지 정문에서 1km쯤 이어진 길을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면 성모성당이 자리한다.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빛의 큼지막한 <천주의 모친> 모자이크가 외벽 중앙을 장식하고 있다. 성지 내 여러 모자이크를 제작한 남용우(마리아) 작가의 작품이다. 성당은 1988년 약 1600㎡(500평)의 부지에 터를 닦아 1999년 축복식을 거행했고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봉헌됐다. 가로로 긴 형태의 건물은 길이 40m, 폭 20m의 약 800㎡(240평) 규모로 1000여 명이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 성당은 성지의 성역화 사업 과정에서 인명 사고 없이 모든 공사가 마무리된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성모님께 봉헌됐다.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성모님께 깊은 공경심을 드려온 데다, 수원교구의 주보 성인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임을 이어받아 성지도 성모 신심을 더했다. 매월 첫 토요일에는 성모 신심 미사와 촛불 기도회가 봉헌된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제대 뒤 벽면 주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빛 모자이크가 눈을 사로잡는다.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성령이 십자가에 계신 예수님께 임하고 있다. 십자고상 좌우에는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자비의 예수님 성화, 열두 제자 성상,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 성화가 균형감 있게 배치돼 있다. 제대 앞에는 순교자들이 옥중에 목에 썼던 칼 형태의 함이 세워져 있다. 함에는 성 정하상(바오로)과 성 남종삼(요한)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제대 맞은편과 양 측면의 벽은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빛을 발한다. 제대를 바라보고 우측은 성모님의 생애, 좌측은 예수님의 수난과 영광이 영롱하게 성당 벽면을 수놓는다. 예수님과 성모님이 함께하는 묵주기도의 길 성모성당에서 내려와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높이 22m, 폭 6m, 무게 25t에 달하는 대형 파티마 성모상이 순례자를 맞는다. 성모상은 세계 평화와 모든 민족의 신앙의 자유, 특히 남북의 평화를 기원하며 2013년 축복식을 거행했고, 2018년에는 천상모후의 관 대관식이 열렸다. 성모상 앞 묵주기도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는 바닥에 놓인 십자고상이 자리한다. 이곳에서 시작해 돌로 만든 묵주알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성모님의 매듭이 성지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하다. 분홍빛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길 위로 순례자들은 묵주를 손에 쥐고 기도한다. 영광의 성모상과 바닥 십자고상은 다소 대비된다. 문득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이 떠오른다. 당대 사람들은 위엄 있는 성모님 품에 안긴 예수님이 초라해 보인다며 비판했지만, 미켈란젤로는 하느님의 시점에서 바라보았다고 밝혔다.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예수님이 중심이 된다는 뜻이었다. 천진암의 성모상 또한 그러하다. 하느님의 시선에서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중심에, 그 곁에 기도하는 성모님이 계신다. 학구열 속에서 싹틔운 신앙 가을 하늘이 높아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계절, 천진암의 공기는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예로부터 이곳은 학문과 신앙이 만난 자리, 곧 한국 천주교 신앙이 싹튼 천진암 강학회의 현장이다. 천진암 강학은 하느님의 종 권철신(암브로시오)이 주도해 성현들의 경서를 공부하며 심신을 수양하는 선비들의 모임이었다. 1779년 권철신은 제자인 하느님의 종 이벽(요한 세례자) 등과 함께 천진암 강학회에서 천주교 서적을 읽고 토론하며 신앙에까지 관심을 기울였고, 1784년 세례를 받았다. 이곳에서 천주교의 진리를 연구하고 토론하며 신앙을 싹틔운 한국교회 창립 선조 5위는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하느님의 종 이벽, 권철신, 이승훈(베드로),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성지에는 이들 한국교회 창립 선조 5위의 묘역이 조성돼 있다. 약 119만㎡(36만 평)에 달하는 성지는 1975년부터 시작된 성역화 사업의 결실이다. 1980년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에는 성 정하상과 성 유진길(아우구스티노), 복자 정철상(가롤로)의 묘도 함께 모셔져 있다.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인 성지는 매년 6월 24일 한국천주교회 창립 기념미사와 행사를 연다. 이날은 천진암 강학회에서 천주교 교리에 관한 토론을 이끈 이벽의 영명축일이기도 하다. 순교자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감사드리며, 그분이 순교자들과 함께했던 영광을 묵상한다. 순례자들은 묵주를 손에 쥐고, 천진암의 성모성당을 한 바퀴 돌며 기도한다. 그 기도 속에, 한국교회의 뿌리를 되새기고 오늘의 신앙을 새롭게 다지는 시간이 깃들어 있다.

발행일 2025-10-19 제3462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발안성당

경기 화성시 향남읍의 작은 시골 마을. 두 팔 벌린 예수상이 환히 길을 밝혀준다. 묵주기도의 길, 십자가의 길, 그리고 하늘을 향한 종탑까지. 이곳이 하느님의 집임을 알린다. 성당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마치 인간의 땅에서 하느님의 땅으로 들어선 듯한 경외감이 밀려온다. 신자들이 함께 가꾼 하느님의 집은 누구에게나 천국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이렇듯 신앙의 향기가 깊게 배어 있는 제1대리구 발안성당(주임 문상운 알베르토 신부)을 찾았다. 순교자 얼 스민 땅에 세운 지역의 큰 울타리 박해 때부터 이 지역에는 양감면 용소리 ‘양간 마을’과 요당리 ‘느지지 마을’ 등의 신앙공동체가 자리했다. 이중 느지지 마을에서 장주기(요셉, 1803~1866) 성인이 태어났다. 슬기롭고 신앙심이 깊었던 그를 모방 신부는 전교회장(공소회장)으로 임명했다고 전해진다. 기해박해를 피해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충북 제천 배론에서 체포돼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성인의 6촌 동생 장 토마스도 느지지 마을 출신이다. 이처럼 순교자의 얼이 스며든 땅 위에 발안성당이 세워졌다. 경기도 최초의 본당인 왕림본당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임응승(요한 사도) 신부는 화성 지역 복음화를 위해 신자들과 함께 교통의 요충지였던 발안에 성당을 세웠다. 신자들의 땀과 정성으로 성당은 1956년 완공됐다. 당시 성당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종소리는 10리(약 4km) 밖까지 울려 퍼졌다. 라디오조차 귀하던 시절, 주민들은 종소리를 통해 시간을 알았으며, 신자들은 밭일을 멈추고 삼종기도를 바쳤다. 모든 마을 사람이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종소리가 울리는 곳이 성당임을 알았다. 발안성당은 이처럼 지역의 큰 울타리였다. 본당은 농촌 지역 공동체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1970년 ‘비안네 농장’을 설립해 향나무, 뽕나무, 참외, 포도를 재배했다. 농장 수익으로 농민교육원을 세워 지역 농민을 도왔고, 누에를 길러 양잠 기술을 전파했다. 이어 1976년 ‘꿀벌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해 신자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금융기관을 세웠다. 이는 오늘날 발안신협의 모태가 됐다. 시대의 아픔도 함께하는 공간이었다.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효순이·미선이 추모집회를 위해 성당 운동장을 제공했고, 지금은 잘 가꿔진 정원과 운동장이 주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마음에 평안 주는 하느님의 정원, 사랑으로 피어나다 현재 성당은 1999년 새로 지어졌다. 두 팔을 벌려 환영하는 예수님을 지나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기와지붕처럼 보이는 성당의 지붕과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겹쳐 보인다. 성당 외부의 거대한 동판 지붕은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갓을 형상화했다. 정자 앞에는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커다란 묵주알이 둘러싸고 있는 이곳에는 묵주기도의 길과 십자가의 길이 함께 조성돼 있다. 푹신한 잔디밭 위에서 성모님을 바라보며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기도를 마치고 천국의 문을 지나면 이곳이 하느님의 땅임을 멀리까지 알리는 종탑을 만날 수 있다. 종탑의 4개 면에는 삼위일체상, 예수 부활상,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상, 성 장주기상이 새겨져 본당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미사가 끝난 성전은 고요하다. 푸른빛 창으로 스며든 빛이 제대 위 십자가를 감싸며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느끼게 한다. 대성당의 십자고상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목장 위 십자가를 본뜬 것으로, 비틀린 구조와 거친 질감이 예수의 고난을 더욱 선명히 드러낸다. 노출 콘크리트 벽과 어두운 배경은 십자가의 의미를 한층 깊게 새겨준다. 성당 문을 나서면 성당이 지어질 당시부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름드리 팽나무가 순례자를 맞는다. 소나기에는 우산이 되고, 뙤약볕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모과나무와 호박 덩굴 등 곳곳의 식물은 신자들이 직접 가꾼 것이다. 신자들의 정성 어린 돌봄으로 자리한 하느님의 집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니라, 마음에 평안을 주는 하느님의 정원으로 지역에 사랑을 전하고 있었다.

발행일 2025-10-05 제3461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미리내성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깊은 산골. 밤이면 아름다운 은하수가 펼쳐지던 교우촌이 있었다. 지금의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자리에 모여 살던 신앙 선조들은 호롱불을 밝히고 별빛과 달빛이 비치는 시냇가 곁에서 기도했다. 호롱불 불빛과 자연의 빛이 어우러진 풍경은 신앙의 빛을 상징하듯 아름다웠다. 선조들이 떠난 자리에는 십자가가 세워졌고, 그들이 호롱불 아래 드렸던 간절한 기도는 오늘날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신앙이 만나는 곳, 미리내성지(전담 김진우 베드로 신부)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을 찾았다. 성 김대건 신부와 함께 기도하는 성지 “나의 마지막 시간이 다다랐으니 잘 들으시오. 내가 외인과 연락한 것은 나의 종교를 위해서이고 나의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내가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해서입니다. 나를 위해 영원한 생명이 바야흐로 시작되려 합니다. 여러분도 사후에 행복하려면 천주를 믿으시오.” 1846년 9월 16일, 형장 앞에 선 김대건 신부는 두려움 없이 이렇게 고백하며 순교했다. 당시 국사범으로 처형된 이들은 사흘 뒤 가족이나 연고자가 시신을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 신부의 시신은 땅에 묻힌 채 파수의 감시 속에 지켜졌다. 이 소식을 들은 미리내의 17살 청년 이민식(빈첸시오)은 유해를 모시기로 결심하고 새남터로 달려갔다. 그는 파수의 눈을 피해 시신을 몰래 수습해 인근에 임시로 매장한 뒤, 40일 후 다시 시신을 모시고 미리내로 향했다. 해가 진 뒤에만 길을 옮긴 여정은 꼬박 일주일이 걸렸고, 마침내 교우촌에 도착해 시신을 묻을 수 있었다. 신자들은 하느님 곁으로 간 사제를 위해 무덤 앞에서 밤낮으로 기도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로부터 55년 뒤인 1901년 5월 20일,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명으로 무덤이 발굴됐다. 이후 성인의 유해는 성지에 자리한 세 곳의 성당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 그리고 성 요셉 성당 제대 아래에 모셔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앞마당에는 김 신부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179년 전 교우촌 신자들이 무덤 앞에서 올렸던 간절한 기도는, 오늘날 성지를 찾는 신자들의 기도와 함께 이어지고 있다. 성인을 기억하는 성당, 신자들 발걸음 멈추다 가을로 접어드는 9월, 성지를 둘러싼 산록의 푸르름은 여전히 교우촌 시절 청명한 분위기를 전한다. 십자가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옛 교우촌 신자들을 위로하듯, 성지 입구에서 보이는 첨탑 위 빛나는 십자가가 이곳이 하느님 백성의 자리임을 알려준다. 십자가를 향해 오르는 길 끝에 웅장한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산 중턱에 세워진 이 성당은 아랫지붕이 윗지붕을 받치는 독특한 구조로, 마치 커다란 제대를 형상화한 듯 입체감을 자랑한다. 외부의 장엄한 기운은 성당 내부로 이어지며, 고딕양식의 높은 천장과 제대 뒤에 펼쳐진 장대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신자들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한다. 제대 아래 모셔진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 앞에서 기도를 봉헌한 뒤 제대 뒤를 올려다 보면, 5개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속 김대건 신부와 103위 성인들의 모습이 찬연히 빛난다. 외부의 빛을 듬뿍 받아 가장 밝게 보이도록 설계된 중앙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 김대건 신부와 여섯 명의 파리 외방 전교회 신부, 성모 마리아와 성령이 그려져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며 김대건 신부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103위 성인들과 함께 드린 미사는 신자들의 마음을 더욱 깊은 신심으로 채운다. 성전 밖으로 나오면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십자가의 길을 혹은 묵주기도의 길을 기도하며 걷다 보면 순례자들은 성 김대건 신부 기념성당과 묘소에 이르게 된다.

발행일 2025-09-21 제3459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구산성지 성당

경기 하남시 망월동에 자리한 구산성지(전담 정종득 바오로 신부)는 서울·수원 등 수도권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는 순례지로 한국교회 초창기 순교사를 간직한 신앙의 터전이다. 특히 103위 한국 순교 성인 중 한 명인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이 태어나고 묻힌 자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박해 속에서도 “나는 천주교인이오. 살아도 천주교인으로 살고 죽어도 천주교인으로 죽을 것입니다”라 고백하며 굳은 믿음을 증거했다. 성지는 그의 신앙을 기억하며, 성당과 묘역 그리고 순례 공간을 통해 믿음을 지켜온 선조들과 함께 걷는 길로 순례자들을 초대한다. 믿음과 순교의 흔적이 살아 있는 길 성지는 김성우(안토니오) 성인과 8위 순교자가 태어나고 묻힌 자리로, 오랫동안 후손들이 교우촌을 이루며 살아온 신앙의 땅이다. 1980년 성지로 선포됐고, 2001년에는 하남시 향토유적 제4호로 등재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신도시 개발의 여파로 지금은 사방을 둘러싼 고층 아파트 숲이 성지를 감싸고 있지만, 그렇기에 개발의 파고 속에서도 지켜내야 할 순교 성지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성지 입구, 야트막한 동산을 닮은 정문이 순례자를 맞이한다. 납작한 기와를 층층이 쌓아 올린 구조는 구산(龜山)이라는 지명의 유래와 걸맞게 거북이 등을 형상화했다. 그 위에는 꽃과 십자가 모양의 도자기 조각이 알알이 박혀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시선은 형형색색의 도자기 작품으로 둘러싸인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 마리아상’으로 향한다. 성모자상은 초대 주임 고(故) 길홍균(이냐시오) 신부가 꿈에서 본 성모님의 모습을 토대로, 고(故) 김세중(프란치스코) 화백이 조각해 1983년 봉헌한 특별한 작품이다. 성모상 왼편 묵주기도의 길에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상을 의미하는 흰색과 푸른색 도자기 알이 항아리 위에 놓여 있다. 특히 항아리는 박해시대 신자들이 새우젓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 삶을 기리기 위한 조형물이다. 성지 안에는 옹기 가마도 있다. 옹기는 신앙을 지키며 살아낸 신자들의 땀과 눈물을 품은 생활의 그릇이자, 그들의 굳은 믿음을 상징한다. 박해 속에서도 믿음의 삶을 이어간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오른편 길에는 고즈넉한 기와지붕의 ‘안당문(安當門)’이 서 있다. ‘안당’은 안토니오의 중국어 음역으로, 신앙의 길을 함께 걸어온 순교 성인들과 동행하는 관문이다. 문을 지나면 맞은편에는 순교자 묘역이 자리하며, 김성우 성인을 비롯해 여덟 순교자의 묘소가 진묘와 의묘 형태로 보존돼 있다. 형구의 창과 고요한 공간, 순례자를 품는 성당 성지 성당은 순교자들의 묘소 옆에 자리하고 있다. 길게 뻗은 구조의 성당 외벽에는 각기 다른 모양의 창들이 나 있다. 가까이 다가서면 단순한 장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창 하나하나가 박해시대에 쓰였던 형구와 형벌을 형상화한 것이다. 포승줄과 철편, 뜨거운 인두를 본뜬 화저창, 곤장을 모티브로 한 창 등 16가지 창은 신앙 선조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생히 전하며, 동시에 어떤 고문과 칼날도 순교자들의 믿음을 꺾지 못했음을 증언한다. 성당 벽은 층층이 쌓아 올린 기와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신앙의 세월이 켜켜이 담긴 듯한 인상을 준다. 입구에 놓인 기와에는 순례자들이 저마다의 기도 지향을 적어 봉헌할 수 있게 했는데, 이 기와들은 다시 성역화 작업에 사용되거나 성지 정문을 꾸미는 데 보태진다. 순례객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은 기도가 성당의 벽돌이 되고, 성지의 문을 세우는 재료가 되어 눈앞에 살아 있는 신앙의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벽돌과 나무 기둥이 주는 안정감 속에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은 기도와 묵상의 분위기를 더한다. 중앙 제대 위의 십자가와 성모상, 전통 회화 양식으로 그려진 순교자 초상화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고요히 이끄는 신앙의 중심으로 살아 숨 쉰다. 성당 외부 벽면에는 서양 선교사로는 처음 조선에 입국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성 모방 신부의 청동 부조가 걸려 있다. 방인사제 양성과 조선 선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모방 신부는 김성우(안토니오) 성인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다. 달레 교회사에는 “1836년 모방 신부가 입국하자, 김성우는 자기 집에 작은 공소를 마련하고 여름에는 모방 신부를 모시며 우리말을 가르치고 전교를 도왔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성당 벽면에 새겨진 그 얼굴은, 선교와 순교의 길을 함께 걸었던 두 신앙 선조의 우정을 지금까지도 증언한다.

발행일 2025-09-07 제3457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동탄송동성당

세련된 신도시 분위기에 걸맞게 현대적이면서도, 유서 깊은 가톨릭 전통과 고전미를 함께 품은 성당이 있다. 도로와 보행로로 둘러싸 사방으로 열려있는 경기도 화성의 수원교구 제1대리구 동탄송동성당(주임 이상훈 바오로 신부)은 2023 경기도건축문화상 경기도건축가회 회장상을 수상했다. 상징성과 장소성, 그리고 비접촉 시대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건축으로 의미 있다는 평을 받았다. 더불어 동탄호수공원과 마주해 신자와 방문객 모드 자연 풍경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동탄송동성당(이하 성당)을 찾았다. 지역사회를 밝히는 ‘평화의 등대’ 대지는 넓지 않지만, 그 면적에 맞춰 짜임새 있게 설계된 건물이 눈길을 끈다. 새롭게 정비된 지역에 자리한 신축 성당은 깔끔한 외관으로 주변 경관과도 잘 어울린다. 경사진 부지에 축대를 세워 지상 1층을 법적 지하 1층으로 구성함으로써 접근성을 높이고, 전체 건물에 안정감을 더했다. 네 면에 문을 내어 언제나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성당으로 자리한다. 다홍빛을 띠는 벽돌 외관은 지역의 대표적 장소로서 따뜻하고 품격 있는 인상을 준다. 성당의 대각선 너머로는 초록빛 나무와 파란 물결이 펼쳐진 동탄호수공원이 있다. 때문에 공원을 찾는 시민들도 성당 앞을 지나며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발길을 멈춘다. 성당의 네 면은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건물은 단순히 막힌 벽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곳곳에 바람이 스며드는 길목을 두어 마치 성령이 지나가는 듯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층고는 높지만, 주변의 고층 아파트보다 낮아 위압적이지 않다. 또 공원의 나무와 호수보다는 높아, 주변 환경 속에서 지나치게 두드러지지도, 그렇다고 묻히지도 않는 균형 잡힌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비례와 조화는 자칫 삭막해질 수 있는 무채색 건물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따스한 온기와 시원한 숨결을 불어 넣는다. 저녁이면 성당 외벽에 조명이 켜져 한층 더 아름다워지며, 그 모습은 처음 설계 단계에서 그렸던 ‘평화의 등대’라는 구상을 그대로 구현해 내고 있다. 오순도순 모이고 통하는 나눔 공간 성당 1층에 올라서면 한쪽에 성가정상이 다복한 모습으로 서로를 보듬고 있다. 김형근(야고보) 작가가 모든 가정이 하나가 되길 희망하며 만든 작품이다. 이어 성모상과 화초들이 싱그럽게 반기는 현관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카페와 작은 도서관이 마련돼있다. 공원이 바라다보이는 현관 바깥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잔하며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책 한 권 읽기 적격이다. 로비는 열린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타 한 대다. 본당 전 주임 최광호 신부(바실리오·교구 관리국 부국장)가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타 본당을 방문해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를 연주하며 불렀던 바로 그 악기다. 가운데에는 본당이 설립된 2020년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행사 사진들이 걸려있고, 오른쪽에는 본당 신자들과 함께 도보 성지 순례를 이어가고 있는 현 본당 주임 이상훈 신부의 배낭과 등산화가 놓여 있다. 옆으로 이어지는 벽면은 신자들이 직접 찍은, 성당의 이모저모가 담긴 작은 사진 타일과 액자가 장식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이 추억 모음 공간이 모두가 본당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끼게 한다. 옥상에는 넓은 마당과 함께 다양한 꽃이 심어진 화단과 스테인드글라스 십자가가 조성돼 있다. 예전에는 이곳도 테라스로 꾸며 신자들에게 개방했지만, 현재는 잠시 정비 중이다. 이렇듯 성당 구석구석은 신자들이 휴식하고 친교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조성돼 있다. 갖가지 색이 하모니를 이루는 빛의 노래 성문 앞 성모상은 찬란한 은총 속에 고요히 피어난 백장미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다. 성모상과 제대 위 십자가는 모두 김형근 작가의 작품으로 단순함과 선, 조각적 일체감에 중점을 두고 한국적으로 표현돼 있다. 특히 ‘겸손과 기도’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서 빚어졌다. 영롱하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2층 로비와 복도에서는 ‘정화’와 ‘조명’을, 성당 안에서는 ‘일치’를 상징한다. 조규석(요한) 작가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까지도 고려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했다. ‘성모님 품 안의 파란 하늘 빛깔’로 물들인 좌우 수직 창 사이로, 이종상(요셉) 화백이 그리고 임채욱 작가가 판화로 재탄생시킨 십자가의 길 14처가 불빛을 밝힌다. 크로키를 연상시키는 스케치 형식의 그림은 고난의 절벽 앞에서 죽음의 경각을 마주한 예수님의 심정을 묵상하도록 돕는다. 한지에 배면 조명 기법으로 만들어져 특유의 깊이와 질감을 살렸다. 십자가가 걸린 제대 벽면에는 파벽돌을 빛의 파편처럼 흩뿌려 놓았다. 이처럼 단아하고 고운 성 미술품들과 함께 거룩한 성당이 완성됐다. 무엇보다 시작부터 마침에 이르기까지 봉헌된 정성과 기도가 성당 안을 깊게 울리고 있다.

발행일 2025-08-24 제3455호 4면

[수원교구 성당 순례] 죽전1동 하늘의 문 성당

야곱은 베텔에서 꿈을 꾼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창세 28,12) 그리고 주님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15) 야곱은 주님을 만난 그곳을 ‘하늘의 문’이라 했다. 그분이 살아 계심을 믿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함께 키워가는 곳. 경기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 있는 죽전1동 하늘의 문 성당(주임 박영훈 요한 사도 신부)을 소개한다. 성모님의 기쁨과 고통, 벽에 새겨지다 크고 높은 고개라는 뜻의 ‘대치고개’로도 불렸던 죽전(竹田). 고개의 끝에 자리하고 있는 하늘의 문 성당은 그 이름처럼 하늘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 하늘을 향해 물줄기가 뻗어나가는 듯한 디자인의 성당 외관. 그 줄기를 세어보니 7개다. 하늘의 문이신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는 본당은 성모님의 ‘칠고(苦) 칠락(樂)’의 상징을 외벽에 새겼다. 하늘을 향한 7개의 벽은 원죄 없으신 동정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하고, 천주의 성모로 인정받고, 예수님을 세상에 낳으시어 성모님이 되신 등의 7가지 기쁨을 상징한다. 또 하늘을 향해 숙이고 있는 7개의 벽을 통해 성전에서 시메온의 예언을 들으신 고통, 아기 예수를 안고 이집트로 피난 가신 고통, 소년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으신 고통 등 일곱 가지 고통(七苦)을 기억할 수 있다. 외벽 색은 흙색이다. 땅 속에 묻혀 있는 무덤을 표현하고자 외벽 타설 시 안료에 돌가루를 섞어 색을 냈다. 신자들은 성모님의 기쁨과 고통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일 하느님의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하늘의 문 성당은 2013년에 경기도건축문화상 사용승인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다. 대지면적 1984㎡, 건축면적 991.98㎡ 규모의 성당은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과 일곱 가지 기쁨을 빛의 명암을 통해 표현했을 뿐 아니라 건물 전체적으로 비대칭과 비정형성을 드러내 종교 건축물이 가진 근엄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탈피한 실험정신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예수님의 부활을 매일 체험하는 성전 성당의 외관은 디자인 측면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으나 그 안으로 들어오면 기도에 집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성물들로 더욱 빛이 난다. 성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십자가는 여느 성당 십자가와 다르다. 벽에 붙어있지 않고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있다. 성 다미아노 성당에 걸려 있는 십자가에서 착안한 다미아노 십자가는 12세기 시리아 수도자에 의해 그려진 비잔틴 양식의 이콘이다. 요한복음에서 이미지를 가져온 이 이콘은 영광의 신비가 잘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가시관 대신 영광의 관을 쓰고 있는 예수님. 승리를 거둔 그리스도의 몸은 어두운 배경과 대조적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 예수님 발아래 4명의 성인 중 2명은 각각 의사와 약사의 주보성인 고스마와 다미아노 성인을 그린 것도 인상적이다. 신자들이 보는 십자가의 반대편에는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승리를 의미하는 예수님과는 반대로 수난의 예수님이 제대를 바라보고 있다. 가장 위에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는 장면도 아래에 있다. 창세기부터 최후의 만찬까지를 하나의 이콘에 담은 것이다. 예수님 발치의 검은 해골로 표현된 아담의 해골은 인류를 의미하며 예수님의 몸을 타고 흐르는 보혈은 인류의 죄를 사하심을 상징한다. 미사 중 성체, 성혈 거양 시 사제가 성작을 높이 치켜들면 예수님의 피가 성작 안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다. 흰 배경 안에 걸린 이콘 십자가와 성당 외관 벽을 그대로 옮긴 제대는 심플하면서도 미사에 대한 집중도를 높인다.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상징이 적은 것을 아쉬워하자, 미사가 끝나고 기도를 하고 있던 한 신자가 제대 위 천장을 보라고 손짓한다. 제대 오른쪽 끝에 다다라 고개를 들자 성전 안에서 가장 보물같은 공간을 눈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집모양의 벽을 따라 천장에서 들어오는 빛. 가느다란 빛을 받고 있는 이 자리는 예수님이 부활하고 남아있던 빈무덤의 현장을 보여준다. 신자들은 성전, 즉 빈무덤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매일 체험하고 있었다. 빈무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성전 문을 열자, 아름다운 색을 입은 성모님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형형색색 스테인드글라스로 창문에 새겨진 승천하시는 성모님은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자들을 따뜻한 미소를 맞이한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체험하고 승천하시는 성모님이 인자한 미소로 신자들을 맞는 성당 안에서는 조용히 기도하는 짧은 순간만으로도 따뜻한 신앙의 온기가 채워졌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빈무덤에 모인 사람들은 구원의 기쁨을 만끽하며 하늘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발행일 2025-08-03 제345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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