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는 왜 축일이 같을까?

박효주
입력일 2024-06-19 수정일 2024-07-04 발행일 2024-06-30 제 3399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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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특집] 상호보완적 관계로 교회 초석 놓은 두 기둥 함께 기려

6월 29일 교회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을 기념한다. 서기 37년에 예루살렘에서 보름의 시간을 함께 보내고 14년 후인 51년에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다시 만났던 두 성인. 열두 사도의 으뜸인 베드로와,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의 축일을 함께 기념하는 이유와 축일 전반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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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 폰타네에 있는 ‘바오로 순교 기념성당 순교 벽화’

두 사도의 순교일 혹은 유해 이전일

6월 29일은 두 성인의 순교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로마의 네로 황제(37~68)가 교회를 박해하던 기간에 순교했다.

베드로 사도는 64년(추정)에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 ‘칼리굴라 혹은 네로의 서커스’에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 베드로 사도는 네로의 박해 소식을 듣고 도망가던 중 자신을 대신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예수님을 만난 뒤 회개하고는 예수님과 같은 죽음을 당할 자격이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세워졌다. 성당 내부 베르니니가 제작한 발다키노 아래로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교회의 반석’과 ‘이방인의 사도’
두 성인 모두 네로 황제 박해로 순교
6월 29일은 유해 이전일일 가능성 커
“사도들 피로 거룩하게 된 날 기념”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64년 혹은 67년(추정)에 십자가형보다 비교적 관대한 참수형을 당했다. 전승에 따르면 잘린 바오로 사도의 머리는 바닥에서 세 번 튀었는데 부딪힌 바닥마다 물이 샘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역을 트레 폰타네라고 부르며 그곳에 바오로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는 성 바오로 순교 성당이 있다. 바오로 사도의 무덤은 로마 외곽 성 바오로 대성당에 있다.

또 이날은 두 성인의 유해가 옮겨진 날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은 신자들이 258년 6월 29일에 발레리아누스 황제(190?~260?)의 박해를 피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유해를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로 임시 보관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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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크리벨리 ‘베드로와 바오로’ (1470년대)

베드로와 바오로를 함께 기리는 이유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초석을 놓은 두 기둥이다. 두 성인은 서로 다른 만큼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베드로는 신앙고백의 시초이며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에서 교회를 세웠다. 바오로는 교회의 박해자였다가 회심 후 이방인들에게 열성적으로 선교한 설교자요 교사였다.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한 가족을 모았다.

성 바오로 대성당 정문에는 두 성인의 생애와 순교 장면이 함께 묘사돼 있다. 이처럼 교회는 전통적으로 베드로와 바오로를 복음으로 묶인 하나의 존재로 여겼다.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395년 한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두 사도는 축일을 같이 지냅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서로 다른 날 고난을 받았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가고 바오로가 뒤를 따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위해 사도들의 피로 거룩하게 된 이날을 기념합니다.”

아울러 로마에서 순교한 두 성인은 로마의 수호성인이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늑대에게 키워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 의해 건국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6월 29일은 로물루스와 레무스와 관련한 고대 기념일이었다. 이 기념일은 3세기에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로 대체되기 시작해 4세기엔 두 사도의 축일로 보편적으로 전파됐으며, 교회 박해가 지나간 5세기 중반엔 거의 대체 됐다.

축일을 기념하는 방법

4세기에는 이날 세 번의 미사가 거행됐다. 한 번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다른 한 번은 성벽 밖에 있는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에서 봉헌됐다. 

하지만 성 바오로 대성당이 하루 안에 이동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기에 다음날인 6월 30일에 바오로 사도 기념일을 지내게 된다. 바오로 사도 기념일에도 베드로와 바오로는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는 교회 전통에 따라 베드로도 함께 기념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 중 교황은 지난 1년 동안 새로 임명된 대주교들에게 양털로 만든 띠의 일종인 팔리움을 수여한다. 팔리움은 바오로가 순교한 트레 폰타네에 있는 트라피스트 수도원 수도자들이 키우는 양의 털로 만들어진다. 이 중 새끼 양 두 마리를 ‘어린양’이라는 의미의 ‘아뉴스’로도 묘사되는 성 아녜스 대성당에서 교황이 축복하고, 이 양들의 털을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체칠리아 수도원 수녀들이 팔리움으로 만든다.

이날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베드로 청동상은 붉은색과 금색의 망토로 덮고 교황 삼층관을 씌운다. 또 저녁에는 성대한 불꽃놀이를 열어 특별한 날을 축하한다. 한국교회는 해마다 이 대축일 혹은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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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 출처 위키미디어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의 또 다른 축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은 2월 22일로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자신의 지상 대리자이자 교회의 기초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일반적으로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진 최고 목자로 표현된다.

바오로 사도는 교회 박해자였다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다. 이를 기념하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은 1월 25일이다. 보통 바오로는 참수를 당했던 칼과 그의 편지들이 실린 성경을 들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