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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 공주 이전 기념 학술대회

민경화
입력일 2024-07-01 수정일 2024-07-02 발행일 2024-07-07 제 3400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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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지역 순교정신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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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교회사연구소 공주 이전 기념 학술대회에서 해미국제성지 신앙문화연구원 서종태 원장이 발표하고 있다. 사진 내포교회사연구소 제공

대전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요셉 신부)는 6월 27일 대전교구 공주교동성당에서 ‘공주의 천주교 순교와 향옥’ 주제로 연구소 이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백제충청학연구부 홍제연 부장은 「사학징의」에 드러난 공주의 천주교인에 대해 발표했다. 홍 부장은 “공주는 1603년 충청감영이 문을 연 이후 1932년 도청이 대전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전통있는 행정중심도시였고 수백 년간 감영과 우영이 소재해 공권력이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에서 신앙생활을 펼치기 어려운 환경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천주교인이 감영으로 끌려와 형이 집행되는 광경을 목도한 공주사람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이 강하게 뿌리내렸을 것”이라면서도 “끝내 죽음을 택한 순교자들의 신앙은 오늘날 공주 천주교의 바탕이 됐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해미국제성지 신앙문화연구원 서종태(스테파노) 원장에 따르면, 박해 시기 공주에서 순교한 신자는 282명에 달한다. 이중 교수형을 당해 순교한 자는 193명으로 참수형(36명) 보다 5배 이상 많다. 그 밖에 순교자는 고문 후유증으로 옥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 원장은 발표를 통해 “박해 시기 공주의 순교터는 황새바위(36명), 향옥(197명), 진영 뜰(3명), 감영 뜰(2명) 등 4곳”이라며 “순교 터별 순교자들의 숫자로 볼 때 공주의 주된 순교 터는 참수 터인 황새바위가 아니라 교수형이 집행된 향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므로 참수 터를 중심으로 순교 성지를 개발하는 것을 지양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신자가 교수형을 받아 순교한 향옥도 성지로 조성해 그곳에서 순교한 신자들을 현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주향옥의 존재 양태와 정비 방향을 연구한 지역앤사람역사연구소 고순영 소장은 “내포교회사연구소의 공주 이전과 이전지가 바로 공주향옥 터와 지척에 있다는 점은 그간의 연구성과와 논의, 제안을 실현할 수 있는 고무적인 기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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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교회사연구소 이전 축복식에서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 주교(왼쪽)와 연구소장 김성태 신부가 연구소 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 민경화 기자

한편 내포교회사연구소는 학술대회에 앞서 대전교구 총대리 한정현(스테파노) 주교 주례로 충남 공주시 무령로 195-1 현지에서 연구소 이전 축복식을 개최했다.

한 주교는 환영사를 통해 “공주는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의 도시이자 그 안에는 박해에도 두려움없이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한 순교자들의 정신이 포함돼 있는 곳”이라며 “공주로 옮긴 내포교회사연구소는 또 다른 방법으로 순교정신 계승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