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본당에 초상이 나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참석해 뜻도 모르는 연도(위령기도)를 바쳤다. 연도를 하면서도 ‘어떻게 이런 가락에 이런 가사를 도대체 왜 누가 만들어서 불렀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어느 날 장례식장에서 연도를 바치다가 ‘그래 이걸(연도) 제대로 한번 배워보자’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주변에 교우들에게 연도를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매일미사 뒷면의 피정 광고를 보다 대전에서 연도 교육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곳으로 전화를 해서 연도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하니 접수를 하고 언제까지 오라고 해서 안산에서 대전까지 연도를 배우러 열심히 다녔다. 그 후로 연도 교육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서울과 대전, 마산, 광주 등으로 10년을 넘게 다녔던 것 같다.
그 무렵 상조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장례가 발생하면 거의 모든 교우들의 장례를 상조 회사에서 했다. 내가 염습실에 들어가서 상조회사 직원들이 하는 염습을 보니 우리 교회의 예식에 맞지 않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참견을 하면 “우리는 장례지도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격증도 없는 분이 참견하지 마세요”하며 면박을 주는 것이었다. ‘난 우리 교우들이 선종하면 내 손으로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정성껏 옷을 입혀 하느님께 보내 드려야지’하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게 됐다.
그래서 가톨릭 상장례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보니 대전가톨릭대학교 정하상교육회관에서 상장례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나는 프랜차이즈 제과점과 피시방 두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두 곳 모두 주말이면 엄청 바쁜데 하필 교육이 한 달에 한 번씩 금·토·일요일 이렇게 주말에 있었고, 그것도 일 년 과정이었다. 난 아르바이트 직원과 아내에게 맡겨놓고 교육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 가정은 내가 먼저 세례를 받아 성당에 다니고 아내는 성당에 다니지 않을 때였다. 당연히 다툼이 있고 성당 나가는 것에 대한 반대가 심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내의 마음이 이해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교육받으러 다닌다고 하니 좋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했을 것 같다.
그래도 ‘이걸(장례지도사) 안 배우면 안 될 것 같다’는 굳은 마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느님께서 너는 이걸 배워서 이런 일을 하도록 이끌어 주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 _ 김태은 안셀모(수원교구 연령회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