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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 , 사형수 묘지 찾아 미사봉헌

김유진 기자
입력일 2000-11-19 수정일 2000-11-19 발행일 2000-11-19 제 222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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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더이상 사형수가 없게 하소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 다운가」란 시구 마냥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자연은 이 계절에 제 몸뚱이의 이파리를 하나둘씩 떨구어 낸다. 하지만 '가야할 때' 를 마저 기다리지 못하고 시간이 채 다하기도 전에 단 하나 생명을 잃고 만 가슴아픈 사연들이 우리 곁에 있다.

서울대교구 본당 묘지가 여럿 모여있는 경기도 광탄. 종로본당 묘지인 나자렛묘원 한 켠에는 이름 없이 죽어간 사형수의 무덤 30개가 돌보는 이 없이 잡초만 무성한 채 나지막히 자리하고 있다. 사회에서 죄인으로 낙인 당하고 피붙이마저 외면한 죽음. 죽어서 마땅히 묻힐 곳조차 없던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오직 하나, 『천주교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랑이라고는 느끼지 못할 것 같던 이들이 한 자녀가 되어 갖는 마지막 바람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으로 사형수, 재소자의 이웃이 되어준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지난 79년 어렵사리 이곳에 100여평의 묏자리를 마련했다. 모든 죽은 이를 생각하는 11월. 교정사목 봉사자 1백여명은 10일 이곳 사형수 묘지를 찾아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하루종일 비와 진눈깨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 누군가는 『불쌍한 영혼들의 한(限) 때문』이라 말했고 또 어떤 이는 『하느님께서 불쌍한 이들을 위해 대신 울어주시는 것』이라 했다.

묻힌 자들을 위한 용서의 청원도 물론이지만 지금 감옥에 갇힌 사형수 또한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마냥 밝은 날을 약속할 수 없는 현실에 봉사자들은 무덤 앞에서 더욱 숙연해졌다.

교정사목 봉사자들에게 사형수는 아들이요, 형제요,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다. 이들 사이에서는 사형수라는 참담한 단어 대신 「최고수」라는 단어가 통용 된다. 최고수를 돌보다가 교도소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김자선(세실리아·서울 여의도동본당) 할머니. 30년 이상 최고수의 어머니로 살아온 그의 소망은 『사형제가 폐지돼 더 이상 이 묘지에 묻히는 이들이 없는 것』이다. 할머니는 사형제 폐지를 위한 모든 이의 기도와 정성을 재차 당부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고수 중 삼분의 일이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들은 진정으로 거짓된 삶을 뉘우치고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하며 매일의 삶을 행복하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임에도 늘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우리들과 이들 최고수 중 과연 누가 죄인이고 깨끗한 영혼인지 속단할 수 없음을 종종 느낍니다』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이영우 위원장 신부의 말이다.

사형수 중에는 시신기증을 한 이들이 몇 있다고 누군가 귀띔한다. 97년 형집행 을 당한 정은희(미카엘)씨의 시신은 아직 병원에 안치돼 있는 상태.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려 나무들이 또 한번 이파리를 흩날리는 날 사형수의 묘지 앞에 선 이들의 기도는 한결같이 그의 무덤이 마지막이 되길 비는 것이었다.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