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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기획 - 아름다운 기다림] 한국서 마지막 성탄 보내는 성바오로수도회 마리오 수사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09-12-08 수정일 2009-12-08 발행일 2009-12-13 제 267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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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건립 도우며 보낸 45년
“마음의 고향 한국 잊지 않을게요”
31살 입국…집·기계 수리하며 인연 맺어
지병으로 귀향 결정  “늘 마음은 이곳에”
성바오로수도회 한국준관구 최고령자인 마리오 수사는 45년 동안 한국에서 항상 이곳을 고향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성바오로수도회 한국준관구 최고령자 마리오(Mario Mecenero·77) 수사에게 특별한 성탄절이 다가온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성탄이기 때문이다.

마리오 수사는 45년 한국생활을 접고, 내년 4월 고향인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반세기 가깝게 고향을 떠나 살아온 노(老) 수사에게 ‘귀향’은 설렘보다는 걱정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리오 수사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스스로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바오로수도회 가족을 위한 결정이었다.

“내 마음은 여기 한국에 있어요. 이제 여기가 내 집이지만 갑자기 내가 아프면 어떻게 되겠어요. 내 가족들을 힘들게 할 수 없잖아요. 지금 (이탈리아로) 돌아가도 너무 많이 변해서 나는 아는 것도 없고 아무 쓸모가 없어요.”

1964년 31살의 혈기왕성했던 시절 한국에서 보낸 첫 번째 성탄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구유도 없고, 트리도 없던 소박한 성탄절이었다.

“먹을 게 없으니 파티도 없었어요. 미아동 일대에 성당도 없어서 수도회 신부님과 성바오로딸 수녀님들과 함께 조용히 미사 봉헌한 게 다였죠. 한국 온지 한 5년쯤 지나니까 조금씩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이 없었다. 한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하지만 2년전 심장질환으로 18시간 동안 수술을 받으면서 귀향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간다고 하니 한국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국말도 배우기 전에 길음동에 가서 합판 하나를 사온 일, 주일마다 승합차를 몰고 부산, 광주, 대구 등을 찾아다니며 수도원과 서원을 지었던 일, 수도원의 수리공을 자처했던 일들도 모두 어제일 같다.

곤혹스러웠던 일도 있다. 보리밥과 김치 일색이었던 식단은 이탈리아인인 마리오 수사에게는 곤욕 그 자체였다. 믿을 거라곤 손재주밖에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가 집과 기계를 수리하며 우유, 치즈, 고기 등을 얻어왔다. 덕분에 마리오 수사는 성바오로수도회의 ‘슈퍼마리오’이자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곧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아쉬운 점도 많다. 한국생활 45년째인데도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공사장과 잡일을 통해 배운 한국말이 전부였다.

“수도원 다 지으면 학교 보내준다고 했어요. 그런데 우리 집 말고 다른 수도회 집도 짓다보니 20년이 지나가 버렸어요.”

옛날 이야기를 쏟아내는 수사는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 고백했다.

“돌아가기로 결정했을 때 마음으로 울었어요. 이제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젊은 시절 한국에 와 백발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노 수사의 모습은 인간을 사랑해 이 땅에 내려오신 구유 속 아기 예수와 닮아 있었다.

마지막 성탄이라고 해서 마리오 수사는 유별나게 보낼 생각이 없다. 그저 평상시와 같이 성바오로수도회 가족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제2의 고향’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성탄을 맞는 마리오 수사. 그저 평상시와 같이 성바오로수도회 가족을 위해 기도할 뿐이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