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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교황 방한, 응답하라 2014 한국교회 - 교회 쇄신, 300인에게 물었다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4-06-03 수정일 2014-06-03 발행일 2014-06-08 제 2898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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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 특집 / 가톨릭신문 ‘교회 쇄신’ 설문조사 결과
“교황 쇄신 행보, 한국교회에 변화 바람 일으킬지는 미지수”
설문응답자 대부분 교회 쇄신에 절대 공감
8월 교황 방한 계기로 현실적 영향 미칠지에 확신 갖지 못해
성직·수도자·평신도 모두 성직자 탈권위주의 강조
“교회 운영자 역할 아닌 목자로서 사목자 요청”
교회 안 세속주의도 우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지향 노력 언급
우리는 모두 참된 복음화를 향한 새로운 출발로 부름 받고 있습니다. 교회의 쇄신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거룩하게 된 사제들이 “껍데기뿐인 영성과 사목으로 치장한 세속적인 교회에서 저희를 구하소서!”하고 기도할 것을 권고합니다.(복음의 기쁨 20항, 97항 참조)
한국교회의 여론주도층 314명, 서울대교구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회원 420명 등 총 734명의 한국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 조사는 첫째, 쇄신이 필요한가? 둘째, 무엇을 쇄신해야 하는가? 라는 두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

쇄신, 바람은 있지만 확신은 없다

첫 번째 물음에 대한 응답자들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가톨릭교회는 위기에 직면해서 쇄신돼야 하는데, 새 교황 프란치스코가 그러한 변화를 실제로 가져오고 있다. 한국교회 역시 변화돼야 하는데, 8월의 교황 방한을 통해 그 계기가 마련될 수 있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쇄신이 교황 방한을 계기로 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기대에 ‘매우 동의’하는 응답자는 4명 중 겨우 1명꼴이다. ‘약간 동의’까지 포함하면 69%이지만, 나머지 31%는 사실상 별로 기대를 보이지 않으며, 약간 혹은 전혀 동의 안하는 응답자도 7%나 된다.

이처럼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쇄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쇄신의 열매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한 순간의 과업이 아니라는 차분한 기다림일 수도 있겠으나, 경직되고 구태의연한 그간의 교회 모습에 대한 실망감 또는 비관론의 표시일 공산도 크다.

쇄신의 필요성에 대한 절박한 인식의 근거는 편의상 두 가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통계적으로 증명되는 다양한 지표들이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 끊임없이 지적되는 주일미사 참례율의 하락, 무기력한 성사생활, 교회를 빠져나가는 젊은이들, 교회 가르침과 신자 생활의 유리 등은 통계적으로 파악되는 신앙의 위기로 지적된다.

가장 최근에는 ‘신앙의 해’ 등을 계기로 신앙의 쇄신을 호소하며 다양한 집중적 신자 재교육에 나서기도 했지만 상황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고 있다. 이제 상황은 평신도들에 대한 집중 교육으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는 구조적인 요인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 백성의 저변으로부터 나타나는 지속적인 문제 제기이다. 주로 제도 교회의 권위적인 교회 운영과 경직된 구조, 일방적 커뮤니케이션 등의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요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문제 제기들은 신자들 사이에 ‘무기력한 나태’, ‘회색의 실용주의와 무덤의 심리학’, ‘무익한 비관주의’와 패배주의를 양산하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쌍방향과 참여의 커뮤니케이션이 급속도로 팽창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이른바 ‘한국천주교회 해체선언’이라는 온라인 선언을 통한 교회 고발이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후, 전에는 터부시됐던 교회 비판적 발언들이 일상적으로, 주로 온라인을 통해서 발해지고 있다.

여러 쇄신 노력들, 아쉬운 결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세계교회사 안에서 가장 최근의 중요한 쇄신 노력이었다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그 이후 대략 두 시기의 자기 쇄신을 위한 시도가 있었다. 하나는 선교 200주년을 맞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모시고 개최한 사목회의였고, 다른 하나는 2천년을 전후해 교구별로 이어진 교구 시노드였다.

200주년 사목회의는 1980년 11월부터 1984년 12월 1일 폐막까지 4년여의 준비와 본회의를 거쳐 12개 의안을 그 성과로 내놓았다. 한국교회 모든 구성원이 총동원되어 거둔 성과는 놀라울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지만 오늘날 적지 않은 이들은 그 의안들이 거의 사장되다시피했다고 평가한다.

2000년 대희년을 앞둔 한국교회는 높은 성장을 구가하던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서 침체기를 맞이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복음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한 자기 쇄신의 필요성에 직면한다. 이에 따라, 1982년 가장 먼저 교구 시노드를 개최한 부산교구 외에 2000년을 전후해 대구, 인천, 수원, 서울에서 시노드가 연이어 열렸고, 2008년에는 청주교구도 시노드를 개최했다.

많은 비용과 인력, 시간을 들여 마련한 시노드 역시 획기적인 쇄신의 전기를 마련하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목의 전 영역을 포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진한 후속작업은 시노드의 성과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

이처럼 쇄신 노력의 성과가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 이어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회의적인 시선이 쇄신의 필요성에 대한 전적인 공감에도 불구하고 확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쇄신 제1순위, 사제들

교황 프란치스코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은 사제들의 쇄신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교황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교회 쇄신’을 강조하면서 말한다. “제가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저도 실천하여야 하므로, 저 또한 교황직의 쇄신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사실 「복음의 기쁨」 전반부는 거의 대부분 교황 자신과 추기경들, 주교와 사제들을 향해 ‘사목’으로 회귀할 것을 극단적으로 강력하게 요구하는 질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명령하기보다는, 스스로 그 모범을 보이고 있다.

조인영 신부(예수회 한국부관구장)는 이와 관련해 “교황이 그만큼 사제들의 쇄신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라며 “한국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교황이 “일반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비를, 성직자들에게는 강력한 쇄신을 요청하고 있다”며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파견된 이가 사제들이기 때문에 교황은 사제들에게 그 어느 지체들보다 강한 쇄신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서 쇄신이 긴급한 영역 중 1위는 단연코 ‘성직자들의 권위주의와 성직중심주의’(44.08%)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거의 두 명 중 한 명꼴로 권위주의적인 성직자들의 태도와 성직중심주의적인 교회 운영을 한국교회에서 쇄신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지적했다.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사고, 행동방식은 사실상 평신도와 수도자들에게서도 발견된다. 대전교구 곽승룡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는 “한국교회에서 쇄신에 대한 인식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에게서 나타나는 권위주의”라고 말했다. 즉, 위로부터 일방적인 하향식 구조에 익숙한 성직자, 그런 성직자에 의지하는 수동적인 평신도들 모두 권위주의적인 사고에 매여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권위주의의 해소는 성직자는 물론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성숙이 동시에 이뤄내야 할 과제로 보인다.

보수화되고 있는 교회

CNS 자료사진
사제의 쇄신이 요구되는 또 다른 영역은 ‘사목이 아니라 관리가 강조되는 교회 운영’(23.68%)이다.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단순히 ‘쇄신’이 아니라, ‘사목으로의 회귀’를 요청한다. 즉, 지금 교회와 성직자는 ‘사목’이 아니라 교회의 유지와 보전을 위한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질책이다. ‘양의 냄새’가 나는 목자라 되라는 권고는 그 강도로 보아 경고의 메시지이다.

비교적 많이 지적된 ‘교회 안의 세속주의’(33.88%)에 대한 우려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20.72%)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물질주의와 성과 중심주의가 교회 안에서 발견될 때, 교회는 복음의 힘을 잃고 세속과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 가난한 이들은 교회 안에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없고 교회 공동체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한국교회의 중산층화에 대한 우려와 경고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천주교 신자들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 학력 등은 모두 한국사회 전체의 평균치를 훨씬 웃돈다. 하지만 정작 사목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경계가 보이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은 이른바 ‘특수사목’으로 특별 관리되고 있다.

노길명 교수(고려대 명예교수)는 “중산층 중심교회로 변화되면서 한국교회는 세상과 유리되고 있다”며 “70-80년대 세상과 함께하던 한국교회가 지녔던 복음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교회가 중산층화되고 자기 만족에 빠지는 순간 그리스도와 복음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교회의 중산층화는 자연스럽게 보수화와 체제유지적인 성향을 강화하게 마련이다. 이는 곧 교회의 사회 참여와 사회교리에 대한 인식에도 크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의 사회교리에 대한 무관심’(14.14%)와 성속이원론에 바탕을 둔 ‘신앙과 삶의 유리’(13.49%)는 신앙의 사회적 차원을 무색케하고 신앙을 개인의 지극히 사적이고 내적인 영역에 가둔다. 결국 사회 정의와 평화의 증진을 위한 공동의 과제에는 눈을 돌리고, 기복적 성향을 가진 평신도들의 ‘미성숙하고 개인주의적인 신앙’(19.74%)에 머물게 된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쇄신의 요청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나타난 긴급한 쇄신의 영역들은 이미 언급됐듯이, 개인의 내적 신심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 오히려 고질화돼 있는 교회제도와 구조, 전통과 관례의 문제들이 신자들 개개인의 신앙과 윤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쇄신의 실마리 역시 공동체적으로, 구조와 제도의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 운영의 권리와 책임을 독보적으로 보유한 성직 계층의 쇄신을 위한 분발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평신도들에 대한 교육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히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