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26) 교회는 신앙의 중심이 아니라 신앙의 자리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
입력일 2019-01-08 수정일 2019-01-08 발행일 2019-01-13 제 3128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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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들과 심지어 시성된 교황까지도 미성년자와 여성들, 젊은 사제들과 신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추행을 은폐했거나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폭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적어도 영어권에서는, ‘나는 왜 가톨릭교회를 떠나는가’ 류의 글이 새로운 문학 장르로 자리 잡을 정도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귀찮게 글을 쓰지는 않는다. 진화하는 성 감수성 관련 쟁점들에 강박 관념을 가지면서 정작 범죄는 묵인 또는 은폐하려는 주교들에게 신물 난 젊은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그저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미래 세대가 될 자기 자녀들도 그렇게 멀리 떨어뜨려 둘 것이다.

글을 쓰는 이들 가운데 교회에 반감을 품고 떠난 이들은 무늬만 신자인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당과 교구에 깊숙이 발 담그고 있었다. 교리교사 활동을 하고, 급식 봉사를 하고, 전례 봉사를 하고, 인권과 평화 운동에 나서고, 각종 헌금도 내던 이들이다. 그들은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교, 나아가 모든 종교에 불만을 품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자기 자녀들을 가톨릭 신자로 기르려고 애쓰던 이들이다.

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들은 설득력이 있다. 또 속을 것인지, 아니면 결단을 내릴 것인지 선택을 내리기까지 그들은 수많은 배신들을 참고 견뎠을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아직 믿고 있는 이들, 또는 이번에는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주교들의 되풀이되는 약속을 기꺼이 견디려는 이들은 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왜 떠나는가’ 류의 글들을 읽거나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음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놀랍도록 많은 경우에, 그런 글이나 대화에서 ‘가톨릭교회’라는 말은 여느 정당 이름이나 형제애 단체 이름으로 대체해도 큰 무리가 없다.

그들은 가톨릭교회에 관해, 자신들이 지녔던 충성심에 관해, 추행과 은폐와 배신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께 가까워지는 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치우기 위해 가톨릭교회를 떠난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교회를 떠나거나 남아 있을 경우에 각각 어떤 유익이 있을지 고려하면서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마땅히 신앙의 가장 기본 요소가 되어야 하는 그것은, 바로 주님과의 관계이다. 적극적 가톨릭 신자이지만 아직 그리스도께 이르지 못한 이들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왜 그런가? 비난의 화살을 그들에게 돌리기 쉽지만 그들 잘못이 아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던 교회의 문제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진흙탕 사태의 근본 원인이며, 성추행 위기 자체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것일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반발이 이를 보여준다. 교황에 대한 반발은 대부분, 그는 교회가 강조해 온 규율과 전통을 강화하기보다는 예수님이셨다면 어떻게 응답하셨을까 식별하려 노력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물론 복음을 대충만 훑어보아도 예수님께서 규율이나 계명에 엄격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종종 충실성의 척도로 규율을 강조하는 듯 비쳐져 왔고, 그 규율들이란 대부분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행동에 근거를 두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교회를 신앙의 가장 중심으로 여기게 됐다. 교회를 떠나는 이들 대다수도 그런 경우로 보인다. 그러나 교회는 신앙의 자리이지, 중심이 아니다. 교회는 행정 기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움직여야 한다.

물론 교회를 비롯한 온갖 제도들은 모든 인간 활동의 정상적 부분이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고, 신자 공동체를 체험하며, 성사와 그리스도의 몸의 사명을 나누는 이 모든 활동은, 오늘날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

‘지도력’이라는 이름도 아까운, 가톨릭교회의 ‘운영’에 정나미가 떨어지고 거기서 소외되어 있을지언정, 나는 떠나는 이들의 무리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교회는 주님과의 만남을 위한 이상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효과적인 수단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다.

교회를 통해 주님을 찾지 못한 이들이 교회를 떠나서는 부디 그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교회 안에 남아 있으면서 그분을 만나기를 희망하듯이.

윌리엄 그림 신부(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