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최후의 만찬 후 겟세마니에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기도하십니다.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끌어달라는 예수님의 기도는 저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사제성소의 길을 고민했던 저의 모습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하고 싶어도,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할 수 없었던 제 처지와 같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는 저에게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족한 내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아버지께서 나를 통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그 기도는 저를 주님의 뜻에 따를 수 있도록 항상 이끌어 주셨습니다.
또한 이 성경구절이 저에게 더 마음으로 다가왔던 이유 중에 하나는 수원가톨릭대학교 갓등중창단을 통해 듣게 된 ‘아버지 뜻대로’라는 성가가 저의 마음을 주님께로 더욱 향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임의 그 사랑 나도 따라서 세상의 참 사도되리라. 주여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당신 앞에 나아가리라. 한 말씀만 하소서. 내 주여 내 영원히 따르리라.(현정수 신부 곡, 아버지 뜻대로 中)”
수원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사제성소와 다른 꿈 사이에서 고민할 때에도, 신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사제성소의 길을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 때에도, ‘임의 그 사랑 나도 따라서 세상의 참 사도되리라’라는 가사처럼 저에게 항상 사도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중심을 잡아 주었던 성가였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을 무렵, 서품 상본을 제작하고 그 뒤에 넣을 서품성구를 정할 때, 저는 아무 고민없이 “아버지의 뜻대로(마태 26,42)”로 서품성구를 정했습니다.(사실 ‘공동번역 성서’에서 ‘성경’으로 편집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라는 표현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로 바뀌게 됐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모습을 저도 영원히 따르기를 다짐합니다. 저는 오늘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뜻을 찾아, 뜻대로 살아가기를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를 위해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저도 받아들이기 위해 성체 앞에 머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너를 통해 하실 일 기대해.”(천강수 곡, ‘기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