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칼럼] (109)콘클라베 관련 격언들이 틀린 이유/ 존 알렌 주니어

입력일 2022-08-31 수정일 2022-09-01 발행일 2022-09-04 제 3309호 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콘클라베 관련 격언들이 틀린 이유
격언과 실제 결과 대체로 달라 
과학기술과 시대 변화에 따라
더더욱 예상하기 힘든 상황
참고는 하더라도 맹신 말아야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열리면, 방송과 신문에서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과 기사를 통해 콘클라베 관련 격언들을 소개한다. 개중 몇몇은 끊임없이 소개돼 꽤 익숙해지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교황이 될 줄 알고 콘클라베에 임한 추기경은 교황이 되지 못한다”는 격언으로, 항상 유력한 후보자가 선출되지 못하고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또 다른 격언에는 “뚱뚱한 교황 다음에는 마른 교황”이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 속담으로 다음 교황에는 이전 교황과 다른 면모를 지닌 이가 뽑힌다는 뜻이다.

또 자주 인용되는 격언 중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콘클라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정작 콘클라베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밝히지 않고 의미 없는 추측들만 떠돌기 때문이다.

이런 격언들 중에서, 지난 100여 년 동안 철옹성같이 굳건한 입지를 구축한 말이 있다. 바로 “미국인 교황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초강대국 출신 교황이 선출돼선 안 된다는 의미로, 그렇게 되면 교황청의 지정학적·외교적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미국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이런 격언들은 적어도 어느 일정 부분은 허풍이다. 따라서 미국인과 관련된 격언도 크게 믿을 것은 못 된다.

“교황이 될 줄 알고 콘클라베에 임한 추기경은 교황이 되지 못한다”는 격언을 체크해보자. 1922년부터 2022년까지 지난 100년 동안 8번의 콘클라베가 열렸고, 유력한 후보자 세 명이 선출됐다. 1939년 비오 12세 교황과 1963년 성 바오로 6세 교황, 2005년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다. 또 다른 세 번의 콘클라베에서는 두 번째로 유력했던 후보자가 선출됐다. 바로 비오 11세 교황과 요한 바오로 1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이 ‘깜짝 놀랄 만한 결과’였다.

“뚱뚱한 교황 다음에는 마른 교황”과 관련해서는 어떨까? 비오 11세 교황은 대체로 베네딕토 15세 교황의 정책을 이어받았고,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성 요한 23세 교황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비전을 수행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치세의 지적 토대를 쌓았다.

아마도 지난 100년 동안 성 요한 23세 교황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만이 전임 교황과 다른 노선을 걸었다고 판단되지만, 변화의 폭은 그리 크지 않다. 예를 들면, 2005년 콘클라베 당시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자유주의적인 동료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요한 바오로 2세의 주교’라고 불리었다는 건 주목할 만하다. 다른 말로, 전임 교황과의 단절도 절대적이진 않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는 격언은 어떨까? 이 격언은 어느 정도 맞지만, 지금은 21세기다. 여행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추기경들은 실제 콘클라베가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모일 수 있고, 시스티나 경당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추기경들은 매일 전체회의를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이 말들은 거의 실시간 외부로 유출된다. 많은 추기경들이 로마 주변에서 이야기하고 미사 강론과 기자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추기경들은 사적으로 따로 모이며, 이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는 금세 퍼진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해석하는 일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만일 한 추기경이 “교회는 사목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중도자유주의자를 말한다. 만일 그가 “우리는 명료성을 원한다”고 말한다면, 더 보수적인 인물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물론 추기경들이 큰 소리로 “나는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는 교황 선출 작업이 아무것도 없는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 이제 미국인과 관련된 격언으로 돌아가 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1978년 폴란드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의 선출로 이탈리아인이 교황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났다. 마찬가지로 2013년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의 선출로 유럽의 독점도 깨버렸다. 우리는 사실상 다음 교황이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초강대국 교황’을 향한 비공식적인 거부도 흐름에 맞지 않다. 우리는 지금 두 개의 주류 진영으로 나뉜 세상이 아니라 다극화되어 힘과 영향력이 나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인 교황을 막는다면, 중국인 교황, 러시아인 교황도 막아야 한다. 또 새롭게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인도와 브라질 출신 교황도 막아야 한다. EU 출신도 막아야 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하면 인재풀을 상당히 제한할 수밖에 없다.

또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출한 콘클라베에서 미국 보스턴대교구장 션 오말리 추기경이 큰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만일 당시 추기경들이 베르골료 추기경을 중심으로 연합하지 않았다면 오말리 추기경도 선출 가능성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요점은 이것이다. 때가 되면 콘클라베와 관련한 격언들을 심사숙고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콘클라베에 관한 격언들은 항상 맞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