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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 구명활동 벌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서신 공개

곽승한 기자
입력일 2009-05-26 수정일 2009-05-26 발행일 2009-05-31 제 2650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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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김대중 전 대통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구명활동을 벌인 사실이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광주일보’가 5월 19일 국가기록원 대통령 기록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12월 11일 주한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감형을 요청하는 서신을 제5공화국 정부에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이른바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1980년 9월 17일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 해 12월 4일 2심에서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교황은 1차 서신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씨에 대해 순수하게 인도적 이유로 자비를 베풀어주실 것을 요청한다”며 선처를 당부했다.

교황의 친서를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1년 1월 5일 답신을 통해 “본인은 (교황) 성하의 호소가 순전히 인도적 고려와 자비심에 의거한 것임을 유념하겠습니다”라며 “아국의 특수 사정에 대해 계속 동정적인 이해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대중은) 어떠한 정치적 이유가 아닌, 오직 불법적인 방법과 폭력에 의한 합법 정부의 전복기도를 포함한 반국가적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고 있다”며 “동인에 대한 재판은 아직 대법원에 계류 중입니다”라고 밝혀 감형 가능성을 내비쳤다.

교황이 첫 편지를 보낸 지 43일 뒤인 1981년 1월 23일 김 전 대통령의 형량은 곧바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이 소식을 들은 교황은 1981년 2월 14일 감사의 뜻을 담은 두 번째 친서를 보냈다.

교황은 2차 서신에서 “(전두환) 각하께서 신속히 배려(감형)해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각하께 최대의 경의를 표하며 훌륭한 한국 국민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후, 1982년 형 집행정지를 받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으며, 1987년 사면·복권되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2003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세계 각국 종교단체와 주요 인사들이 김 전 대통령의 구명활동을 벌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교황이 한국 정부에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선처를 요청한 문서가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곽승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