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뜻하지 않은 기회에 봄의 기운이 뒤덮여지고 있는 산과 들에 다녀온 적이 있다. 물론 차편을 이용한 방법이긴 하였어도 마른 듯 서있는 나뭇가지 끝에 척박하게 굳은 듯 한 땅 위에 뾰족한 입을 내밀며 올라오고 있던 새싹들을 발견하는 감동은 참으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어느 때던가 함께 고속버스를 탔던 어떤 수녀님이 나무와 풀들을 바라보느라 차창 밖으로 던진 눈길을 거둘 줄 모르는 나를 보고 “수녀는 마치 조국산천을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처럼 어쩌면 그렇게 진지하게 구경을 하지?”라고 했던 적이 있다. 내 자신이 생각해도 어지간히 피곤하지 않은 이상에는 열심히 창밖 풍경을 놓치지 않는 것이 몸에 익은 양 싶다.
어떤 길을 처음 갈 때는 대개 위의 것들, 나무들에 먼저 시선이 닿는다.
그러다가 한번이라도 지나쳐간 적이 있는 길에서 아래에 보일 듯 말듯하게 숨어 핀 작은 꽃들을 찾아내야 할 특별소임이라도 받은 것처럼 조그만 꽃망울을 찾아내기에 열중한다.
‘세상에, 저 작은 꽃 좀 봐! 저 작은 꽃 안에 깃들인 생명의 아름다움은 또 얼마나 큰가!’
작은 꽃에 대한 같은 표현은 일찍이 수도자들의 가슴속에 무한한 동경으로 잦아들어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교회 안에서 작은 꽃으로 일컬어지는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는 ‘소화’라는 이름을 앞에 붙여 갖고 있고 하늘나라로 지칭되는 어린이처럼 가난과 순수의 삶을 살았던 성 프란치스코의 생활 하나하나가 잔 꽃송이로 불렸다는 것 등등이 수도자들에게 동일시의 모범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수도자의 모습을 감정이입 시킨 노래, 그래서 끊임없이 불리고 있는 ‘두메꽃’ ‘풀꽃’들의 노래에도 그 작은 꽃이고 싶은 맑은 동경이 절절이 배어 있다.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숨어서 피고 싶어라’
‘아무도 찾지 않는… 들에 핀 조그만 풀꽃 한마디 바람도 없이 아름다움을 수놓으려 하는가…’
자연 속에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무수한 작은 꽃이 존재하고 있다. 도로 주변의 풀더미 속에 논둑의 좁다란 길 위에 햇님이 드는 곳 산비탈 어디에건 작은 꽃이 그 조그만 얼굴을 살포시 들고 피어났다간 지고 또 피어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