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 레오 14세] 첫 행보로 엿본 새 교황의 ‘찐사랑’

레오 14세 교황의 교황청 밖 첫 방문지는 로마 외곽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였다. 같은 이름의 성화를 모신 성지에서 교황은 자신의 사명을 되새기는 장소로 찾았다고 밝힐 정도로 성모님께 대한 극진한 공경과 사랑을 드러냈다. 십자가도 화제다. 목에 건 가슴 십자가에는 성 아우구스티노 등 성인과 복자의 유해가 봉인돼 있다. 십자가에 모신 아우구스티노 성인을 따를 것임도 여러 차례 천명했다. 교황은 선출 직후 로마와 온 세계에 보내는 첫 강복에서 자신을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라고 전했다. 선출 직후 행보로 엿본 새 교황의 ‘찐사랑’들을 살펴본다. 새로운 사명을 안고 찾아 나선 곳 교황 레오 14세는 바티칸에서 약 50km 떨어진 이탈리아 제나차노에 위치한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를 방문해 “교회가 나에게 맡긴 새로운 사명을 안고 이곳을 꼭 찾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알바니아 슈코더(Skodër)에서 전승된 성지와 동명의 성모 성화가 있다.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알바니아 침공 당시 슈코더의 신자 두 명이 성화 앞에서 무사히 탈출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던 중 갑자기 성화가 공중에 떠올랐고, 이들을 이탈리아로 이끌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후 성화는 제나차노에 도착한 뒤 사라졌고 이와 관련한 기적이 이어졌다. 제나차노에는 ‘착한 의견의 성모’를 모신 성당이 있었으나 오랜 시간 방치돼 폐허가 됐다. 1467년 이곳의 한 과부는 성당의 황폐한 모습에 보수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돕지 않았고, 그녀 혼자서는 완공할 수 없었다. 같은 해 성 마르코 축일을 맞아 마을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던 중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갑작스레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와 성당의 미완성돼 있던 벽 중 하나를 덮었다. 구름이 사라지자 아무 것도 없던 벽면 위에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그려진 성화가 나타났다. 이날의 기적으로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몰려 들었다. 성화의 인도로 이곳을 찾은 알바니아인들은 한 목소리로 슈코더의 그 성화라고 증언했다. 당시 교황이었던 바오로 2세는 주교들을 파견해 조사 후 기적으로 공인했다. 1903년 레오 13세 교황은 이곳 성지를 소바실리카(minor basilica)로 승격시켰다. 성당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이곳에 가해진 폭격에도 손상되지 않았다. 선택 앞에서 지혜를 구하는 상징인 착한 의견의 성모 성화는 5월 18일 열린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 제대 곁에 놓였다. 선출 직후 목에 건 십자가 5월 8일 선출 직후 레오 14세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목에 건 가슴 십자가도 화제다. 십자가에는 성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성인과 복자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에 있는 작은 공방에서 제작된 이 십자가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시복시성 청원 담당 조세프 스키베라스(Josef Sciberras) 신부가 레오 14세 교황이 추기경에 서임됐던 2023년 9월 선물한 것이다. 십자가 본체가 두 겹으로 제작돼 결합된 나사를 풀면 내부에 보관된 성인의 유해가 보이는 구조다. 십자가에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어머니 성 모니카, 성 토마스 빌라노바, 복자 안셀모 폴랑코, 가경자 주세페 바르톨로메오 메노키오의 유해가 함께 담겼다. 시베라스 신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성인들은 각각 충실함과 개혁, 봉사, 순교의 덕목을 상징하며, 이 덕목들이 레오 14세 교황의 사명을 이끌 것”이라고 전했다. 성 모니카는 아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은 강인한 신앙인의 표상이다. 성 토마스 빌라노바는 15~16세기 발렌시아 대주교로, 수도 개혁과 가난한 이들에 헌신한 목자로 평가받는다. 복자 안셀모 폴랑코는 스페인 내전 중 순교한 주교로 “내 양 떼 중 단 한 명이라도 남았다면 나는 남겠다”며 목자의 모범을 보였다. 가경자 메노키오는 나폴레옹에 저항한 유일한 주교로 로마 시민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스키베라스 신부는 “콘클라베 전날, 우리가 선물한 십자가를 착용하면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모니카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교황에게 보냈다”며 “발코니에 선 교황이 그 십자가를 착용한 모습을 보고 깊이 감동 받았다”고 전했다. 아우구스티노의 영성을 ‘사명’으로 교황은 선출 직후 첫 강복에서 “‘여러분과 함께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며 여러분을 위한 주교입니다’라고 말했던 성 아우구스티노의 아들이자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의 일원"이라고 소개한 만큼 성 아우구스티노를 향한 존경과 애정을 여러 차례 표현하고 있다. 1244년 설립된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영성과 가르침을 뿌리로 삼고 있다. ‘서양의 스승’으로 불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자 신학자, 영성가다. 354년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성인은 젊은 시절 철학과 수사학에 깊이 빠졌고 진리를 찾으려 마니교를 따르기도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교사로 활동하던 중 성인은 당시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성인의 설교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이전까지 세속적 성공에 얽매였던 성인은 “집어서 읽어라”라는 신비로운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에 따라 펼친 구절은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로마 13,13)였다. 성인은 말씀에 깊이 깨달음을 얻고 세례를 받았다. 성인은 세속적 삶을 정리하고 아프리카 수도원에 들어가지만 뜻하지 않게 사제가 됐고, 5년 만에 히포의 주교로 임명된다. 주교가 된 후에도 꾸준히 글을 쓰며 「고백록」을 포함한 수많은 저술을 남겼고, 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힘썼다. 주교가 된 후에도 주교관 내에 성직자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이어갔을 정도로 성인은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뛰어난 영성가로 칭송 받는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2면

[새 교황 레오 14세] 교황 즉위 미사 이모저모

레오 14세 교황이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봉헌한 5월 18일 오전 10시(로마 현지시간) 로마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전 세계에서 새 교황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 각국 정상 등 20여만 명은 미사 시작 전부터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웠다. 새 교황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환희가 가득했다. 교황은 미사 시작 전 덮개가 없는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은 물론 광장 밖에 자리한 인파에 다가가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고, 아기를 안아 축복하며 친근한 목자의 모습을 보여 줬다. 즉위 미사는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 내 베드로 사도 무덤을 찾아 기도를 바치면서 시작됐다. 추기경단이 성 베드로 사도 무덤에 도착하는 교황을 맞이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에서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으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목자의 사명을 상징하는 팔리움을,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으로부터 교황의 라틴어 이름이 새겨진 ‘어부의 반지’를 전달받았다. 이어 미사 강론을 통해 앞으로 교황직 수행에 대한 각오와 사명을 밝히면서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교황은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은 우리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고, 우리는 목자 없는 양 떼가 된 것처럼 느꼈다”며 “콘클라베를 위해 모인 추기경단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유산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사목자를 선출하겠다는 소망을 하느님께 맡겼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우리 모두가 하나 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길을 여러 사람들과 만들기 원하는 형제로서 다가가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은 또한 증오와 폭력, 편견으로 인한 분열을 극복하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하느님의 집을 짓는 것을 교회의 첫째 사명이라고 지적하면서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선교적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성찬의 전례와 영성체 예식에 이어 ‘로마와 온 세계에’(우르비 엣 오르비, Urbi et Orbi) 강복했다. 즉위 미사에 참례한 모든 이들은 교황이 착한 목자가 되기를 바라며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또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이지 못한 전 세계 신자들도 TV 중계를 통해 교황 즉위 미사에 함께했다. 교황은 미사 후 주교단 및 세계 각국 정상들과 인사를 나눴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1면

“새 교황 최우선 과제는 시노달리타스 실현”

한국 천주교회의 신학자들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제267대 교황 레오 14세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이는 가톨릭신문이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계기로 실시한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조사는 한국교회 신학자 70명을 대상으로, 네이버폼에서 작성된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5월 8일부터 18일까지 실시됐다. 응답자들은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17개 응답 문항 중 두 가지를 선택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기술했다. 응답자 70명 가운데 절반인 35명(25%)이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을 새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이들은 시노달리타스의 실현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작한 교회 쇄신과 개혁의 핵심 과제로 인식했으며, 교회가 참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목표로 봤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세계화 문제(양극화, 난민과 이주민 등)’를 선택한 응답자는 27명(19.2%)으로 두 번째로 많았고, 이어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18명(12.9%),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이 12명(8.6%)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과 ‘세속주의 및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은 각각 8명(5.7%)이 선택했다. 특히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들은 대부분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사목 방향이나 교회 정책과 긴밀히 연관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난민과 이주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몸소 실천해 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지역의 분쟁 등 잇따른 국제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했으며,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제시함으로써 자연 생태와 인간 생태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기후위기 등 환경 파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이 가난한 이들임을 강조했다. 한편 신학자들은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교회의 지속적인 쇄신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이들은 특히 이러한 개혁 과제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여성의 교회 내 지위 확대’, ‘공의회 정신의 실현’, ‘직무사제직 문제’ 등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면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1)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가톨릭신문은 새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맞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 – 신학자 70인에게 묻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교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이끄는 교황의 가장 중요한 사목적 과제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톨릭교회 전체의 소명을 드러내며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 소명의 실천에 어떻게 협력하고 투신할 것인지를 가르쳐준다. 총 4회에 걸쳐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와 하느님 백성의 나아갈 길을 살펴본다. 1. 시작하며 - 설문조사 결과 종합 2. 시노드 교회를 향해 - 시노달리타스의 실현 3. 교회는 쇄신돼야 -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 4. 세상과 교회 - 빈곤과 폭력을 넘어 그리스도의 평화 이전 조사 대비 ‘기후 위기 시대’ 생태 문제 주요 과제로 부상 가톨릭신문은 2005년 베네딕토 16세 교황 선출, 8년 뒤인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에 즈음해 신학자 100인을 대상으로 같은 조사를 실시했다. 2005년 조사에서는 ‘서구 문화와 전통적 그리스도교 가치의 충돌’과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의 중요성이 가장 많이 지적됐다. 전자는 서구 사회에서 그리스도교적 가치와 윤리가 더 이상 기꺼이 수용되지 않는 상황을 보여준다. 후자는 그리스도인이 소수인 지역에서 더 절실한 과제로, ‘말씀’보다 ‘증거’가 더 설득력을 갖는 현대인의 심성, 그리고 개방적 ‘대화’와 삶을 통한 ‘증거’가 강조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다. 2013년 조사에서는 문항이 보다 세분화되었고, 국제 평화와 기후위기 등 사회적 가르침에 대한 항목들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이 최우선 과제로 꼽혔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현과 빈곤·세계화 문제가 그 뒤를 이었다. 교황청의 재정 비리와 불법적 자료 유출 등에 따른 ‘교황청의 쇄신’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됐다. 성직주의의 폐해, 여성 부제직을 포함한 직무사제직 문제, 평신도 특히 여성의 더 활발한 교회 참여, 생명과 가정 윤리 문제 등은 두 차례 조사에서 모두 지속적으로 지적된 과제들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생태 문제에 대한 통합적 접근도 주요 과제로 부상했다. 조사 결과, 총 17개 과제 제시돼 이번 조사에서도 “새 교황의 사목적 과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두 가지 응답을 중복 선택하고, 그 배경과 이유를 기술하도록 했다. 총 17개 항목이 제시됐으며, 이전 항목들에 더해 세계 평화, 시노달리타스, 교회 쇄신 관련 항목이 추가되었다. 조사 결과, 70명 중 절반에 해당하는 35명(25%)이 ‘시노달리타스 구현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을 가장 시급한 사목적 과제로 꼽았다. 뒤를 이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 세계화 문제(양극화, 난민과 이주민 등)’가 27명(19.2%), ‘교회 쇄신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 18명(12.9%), ‘폭력과 무력 분쟁 해소 및 평화 회복’이 12명(8.6%)으로 나타났다. ‘기후위기와 생태환경 보전’ 및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은 각각 8명(5.7%)이었다. 시노달리타스와 자비 실현 등 프란치스코 교황 개혁 과제들 이어갈 것 요청 빈곤·경제적 불평등, 기후 위기, 보수·진보 통합 등 주요 사목 과제로 떠올라 시노달리타스의 구현 응답률이 가장 높았던 항목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력히 추진해온 교회 개혁과 하느님 자비의 표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21년부터 3년간 진행된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한 세계주교시노드는 프란치스코 개혁의 정점이었다.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는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못지않은 열정으로 세계주교시노드를 개최했다”며, “시노드 과제 실천만이 교회가 본질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며, 세상 안에서 성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도 “이제 경청하는 교회의 모습은 되돌릴 수 없다”며, “하느님 백성 모두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정진만 신부(안젤로·수원가톨릭대학교 대학원장 겸 교학처장)는 “시노달리타스 구현은 아직도 요원한 과제”라며 “각 지역교회의 고유한 상황 속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새 교황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빈곤, 세계화, 전쟁의 문제들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을 받은 과제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했던 핵심 주제다. 그는 평생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드러냈고, “사람을 죽이는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난민과 이주민의 고통을 위로했다. 분쟁과 폭력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고 있는 현실의 개선 역시 시급한 사목 과제로 지목됐다. 김선필(베드로)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현대 세계의 위기, 특히 전쟁의 원인은 대부분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교회는 세상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며 분명한 가르침과 실천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통합적 생태론을 제시했으며, 이는 지구와 피조물을 보존하는 일이 곧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실천이기도 하다는 깊은 책임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계속돼야 할 쇄신의 여정 ‘교회의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응답자 모두가 동의했다. 사목적 과제로 제시된 모든 항목은 교회 쇄신의 목표이자 과정이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응답자들은 쇄신의 기준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가장 큰 지표로 제시했다.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 강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 ‘여성의 교회 내 지위와 역할 확대’, ‘직무사제직 문제(사제 독신제, 여성 사제 등)’ 등은 각각 3~5명의 응답률을 보였다. 이 항목들은 모두 ‘하느님 백성의 교회론’에 입각해 있으며, 교회 안 모든 계층이 고유한 직무를 지니고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이 응답 항목들은 사실상 공의회 정신 실현이라는 같은 방향의 사목 과제를 지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지역교회의 자율성 확대’, ‘주교단의 단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신앙과 문화의 토착화’, ‘종교 간 대화와 그리스도교 일치’ 등에 대한 응답은 거의 없었다. 또한 이전 조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졌던 ‘가정과 생명 윤리 문제(낙태, 피임, 동성애 등)’와 ‘대화와 증거를 통한 선교’는 이번 조사에서는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통합의 리더십 특히 눈에 띄는 항목은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통합과 일치’가 6명(4.3%)의 응답을 얻은 점이다. 비율은 높지 않지만,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이 보수층의 저항을 불러온 체험을 반영한다. 레오 14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노선을 이어갈 것이라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재위 기간 중 드러났듯, 보수층의 우려와 저항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새 교황에게는 교회 내 통합과 일치를 이끄는 지혜로운 통치가 더욱 요구되고 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3면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으로 함께 걷고자 합니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18일 오전 10시(로마 현지시간)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 미사를 봉헌하며 제267대 교황직에 공식 취임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에서 정의와 평화를 추구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상처받은 세계에서 화합하는 교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즉위 미사에는 다양한 그리스도교 종단 대표자들이 참석해 교회일치를 위한 자리가 됐으며, 전 세계 100여 개국 정부 대표단도 한자리에 모여 세계 평화와 화해를 모색하는 연대의 장을 마련했다. 즉위 미사가 열린 성 베드로 광장 안과 주변에는 약 20만 명의 군중이 운집해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를 기도 속에 축하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과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마티아)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 정부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현주(그라시아) 주교황청 대한민국 대사 등이 경축사절단으로 자리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봉헌에 앞서 오전 9시경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낸 뒤 광장 바깥까지 나가 가까이에서 군중들을 대면했다. 친근한 교황의 모습에 군중들은 환호했다. 즉위 미사 시작 직전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 안에 있는 초대 교황 베드로 사도의 무덤을 찾아 기도와 분향을 한 뒤 교황 목장을 손에 들고 제단으로 향했다. 교황직을 상징하는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 복음서를 든 부제들이 교황의 앞에서 행렬했다. 교황 즉위 미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의식인 팔리움 수여는 주 시리아 교황대사 마리오 제나리 추기경이 맡았으며, 교황은 전임 교황들과는 달리 선 채로 팔리움을 받았다. 팔리움은 십자가가 수놓인 양털 띠로 양 떼를 돌보는 목자의 사명을 상징한다. 어부의 반지는 교황청 복음화부 장관 직무대행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쪽 약지에 끼워 줬다. 교황은 역시 선 채로 어부의 반지를 끼며 엷은 미소를 짓다가 감동한 듯 하늘을 올려다봤다. 교황은 어부의 반지를 낌으로써 사람 낚는 어부였던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지위를 분명히 했다. 복음서를 전달받은 교황은 베드로 직무를 개시하는 미사 강론에서 ”아무런 재능도 없는 제가 교황으로 선택되어 두렵고 떨린다“면서 ”한 사람의 형제로서 여러분의 신앙과 기쁨을 위한 종으로 다가가 우리가 하나로 일치되길 바라는 주님 사랑의 길을 함께 걷겠다“고 말했다. 교황은 아울러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언급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세상에서 더 가치 있는 것이 된다면 모든 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아울러 “성령의 빛과 힘에 의지해 하느님 사랑에 근거한 하나 되는 교회, 일치의 표징이 되는 교회, 인류의 화합에 촉매가 되는,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자”고 당부했다. 교황은 미사 후 각국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면서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행보를 보였다. 즉위 미사에 참례한 뒤 교황을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레오 14세 교황님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라며 “교황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즉위 미사 말미에 “가자지구와 미얀마 그리고 우크라이나 등 분쟁지역에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자”고도 당부했다.

발행일 2025-05-25 제3443호 1면

[새 교황 레오 14세] “논 세데 바칸테, 체 일 파파!”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장 정연정(티모테오) 몬시뇰이 콘클라베 시작부터 새 교황의 선출과 발표 순간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끽한 설렘과 감동, 환희의 순간을 기록해 전해 왔다. 정 몬시뇰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고 마음을 활짝 열어 새 교황의 축복에 흠뻑 빠져들었다“며 ”예수님 마음을 지닌 사목자를 새 교황으로 선출한 하느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고 전했다. 지난 4월 28일 콘클라베 날짜가 공지됐다. 성 베드로 광장 주변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직자부 앞에 만들어진 스탠드형 부스에 공간이 부족하여 맞은편 주교부 앞에도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등록한 취재진이 5천 명가량이라고 했다. 광장에서 ‘천사의 성’으로 연결되는 ‘화해의 길’에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배경으로 좋은 화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명당 자리를 선점하느라 언론사들 경쟁이 뜨거웠다. 기자들은 언어와 관계없이 취재에 응할 대상들을 섭외하느라 사방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반 군중들도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거나 나름의 특종 사진을 만들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군중들의 얼굴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빈 자리를 채워줄 착한 목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5월 7일 오후 4시 30분에 새 교황의 선출을 위한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133명의 추기경 행렬이 시작됐다. 새 교황을 뽑을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경당으로 입당하고 개별적인 선서 장면이 방송으로 중계되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의 성령이 교회를 돌보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예상했듯이(?) 콘클라베 첫 번째 투표에서 새 교황은 선출되지 않았다. 이날 저녁 9시 무렵에 무려 10분여 동안이나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콸콸 터져 나온 시커먼 연기를 보면서도, 절망스러운 장탄식을 단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밝은 미소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색깔의 기대감을 안고 내일을 약속하며 흩어졌다. 다음 날인 5월 8일 오전 11시 50분쯤 시스티나 경당의 굴뚝에서 희미한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더니 이내 순식간에 시커먼 검은 연기가 뿜어 나왔다. 결국 콘클라베의 세 번째 투표까지도 새 교황 선출은 무산됐다. 그런데 전날 저녁때와는 달리 검정 연기의 양이 적었고 연한 흰색을 띤 잿빛 연기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막연했던 기대감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추기경들의 표가 거의 한쪽으로 모였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중천의 해가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저녁 6시가 채 안 되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약 4만 5천 명의 군중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귀가 찢어질 듯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곳곳에서 태극기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기들이 펄럭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굴뚝에서 흰 연기가 펄펄 쏟아져 나왔다. 약 1시간 후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의 장막이 열리고, 도미니크 맘베르티 수석 부제 추기경이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장엄하게 선포했다. 그런데 많은 이의 예상과 달리 뜻밖의 이름이 호명되자 주위가 술렁였다. 조금 후 군중들 사이에서 새 교황은 미국 출신 프레보스트 추기경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곧이어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14세가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라는 첫 마디에 이어 새 교황은 ‘우르비 엣 오르비(Urbi et orbi)’, 즉 ‘로마와 온 세상에’ 첫 축복을 했다. 발 디딜 틈 없이 광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사람들이 한순간에 숨을 멈추고 마음을 활짝 열어 새 교황의 축복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번 콘클라베에 들어가는 아프리카 출신 추기경한테서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목자에게 투표하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양 냄새 나는 목자’로 표현했고, 그 모습으로 선종하기 바로 전날까지 교황직을 수행했다. 새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페루에서 주교로 사목할 때 작은 말을 타고 산 위에 사는 신자들을 찾아다니던 모습과 엘니뇨로 인한 수해 때에 긴 장화를 신고 피해당한 신자들에게 달려갔던 사진들을 보았다. ‘예수님의 마음을 지닌 사목자’를 새 교황으로 선출한 하느님의 섭리가 참으로 놀랍다고 생각했다. ‘논 세데 바칸테, 체 일 파파(Non Sede vacante, c’è il Papa).’ 이탈리아어로 ‘(교황좌는) 공석이 아니다. 교황이 있다!’는 뜻이다. 새 교황의 선출로 ‘슬픔과 절망’이 ‘기쁨과 희망’으로 바뀌었다. 이 짤막하고 단순한 표현 안에 교회의 신비, 신앙의 신비, 부활의 신비가 담겨 있다. 이제 새 교황 레오 14세의 사목 표어인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In Illo uno unum)된 모습으로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사도 13,52 참조), 우리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묵시 7,17 참조), 주님을 알고 따라야 한다(요한 10,27).’ 천상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지상의 레오 14세 교황이 두 손을 마주 잡고 우리를 앞서 걸어가면서 ‘희망의 순례자’로 이끌고 있다. 글 _ 정연정 티모테오 몬시뇰(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원장)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5면

[새 교황 레오 14세] 교황 선출 직후 행보

레오 14세 교황은 5월 8일(로마 현지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후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의 지도자로서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레오 14세 교황의 발걸음에 14억 신자들은 물론 세계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교황직 수행에 대한 의지와 방향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는 교황 선출 직후의 행보를 따라가 본다. ◎…레오 14세 교황은 5월 9일 로마 시스티나 경당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한 자리에 모인 가운데 교황으로서 첫 미사를 주례했다.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웃음을 사거나, 반대에 부딪히거나, 경멸당하거나 동정심을 얻는 곳이 가톨릭교회의 선교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이 불합리하다고 평가되거나 약자들이나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로 여겨지기도 하고, 사람들은 기술과 돈과 성공, 권력, 쾌락을 선호하지만 이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도 가톨릭교회에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교황은 첫 미사를 주례하기 위해 시스티나 경당에 입장하면서 전통적으로 교황들이 신었던 빨간색 구두가 아닌 검정 구두를 신었다. ◎…5월 10일에는 교황청 뉴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에게 첫 공식 연설을 하며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인공지능(AI)을 대하는 자세,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시했던 가치들을 이어가야 하는 과제에 대해 언급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발표한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제시한 핵심 가치들인 시노달리타스, 신앙감각,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 세상과의 용기 있는 대화 등을 인용한 뒤 “하느님의 자비로운 얼굴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다”며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 것을 강조했다. 아울러 “AI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 정의, 노동의 가치를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며 인류는 AI를 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추구했던 개혁 노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도 교황은 밝혔다. 이어 자신의 교황명을 ‘레오’로 택한 이유에 대해 “레오 13세 교황이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해 당대의 사회문제에 응답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도 AI와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간의 가치를 보호하는 데 응답해야 한다”고 청했다. AI 시대에도 가톨릭 사회교리는 여전히 중요하고, 인간을 위한 복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할 수 없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이다. ◎…교황은 10일 오후에는 로마 외곽 제나차노의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를 방문했다. 교황 선출 후 첫 외부 일정이었다. ‘착한 의견의 성모 성지’는 1200년부터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관할하고 있다. 교황은 “교회가 나에게 맡긴 새로운 사명을 안고 이곳을 꼭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교황이 미니밴을 타고 성지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교황을 향해 환호했다. 교황은 성지 성당에서 ‘착한 의견의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를 봉헌한 뒤 성모송과 ‘살베 레지나’를 불렀다. 교황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으로 선출된 2001년 이곳을 찾은 것을 회고하며 “그때 나의 삶을 교회에 봉헌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교황은 교황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마 성모대성당을 찾아 프란치스교 교황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바쳤다. ◎…5월 11일 오전 교황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지하 초대 교황 성 베드로의 무덤에서 기도를 바친 후 무덤 앞 제대에서 미사를 주례했다.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 알레한드로 모랄 안톤 신부가 미사를 공동 집전했다. 이후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로 이동해 교황 선출 후 처음으로 주일 정오 부활삼종기도를 바치며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 분쟁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성 베드로 광장에는 수만 명의 군중들이 모여 교황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다. 교황은 “오늘날 제3차 세계대전이 단편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은 더 이상 안 된다”며 특히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인질 석방을 요청했다. 교황은 성소 주일을 맞이한 신자들에게 “사제들과 봉헌생활자들이 사랑과 진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청했다. 또한 청년들에게는 “두려워 말고 교회와 예수님의 초대에 답하라”고 당부했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3면

[새 교황 레오 14세] 사진으로 보는 새 교황 탄생의 순간

새 교황 탄생 과정은 한 순간 한 순간 숨가쁘고 감동적이었다.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시스티나 경당 굴뚝만을 바라보며 새 교황 선출의 순간을 누구보다 빨리 맞이하려던 신자들이나 속보로 전해지는 기사들을 숨죽여 기다리는 이들이나 마음은 같았다. 착한 목자로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고 동시대를 사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칠 새 교황이 탄생하기만을 기도했다. 그 기다림이 마침내 5월 8일(로마 현지시간) 이뤄졌다. 미국 출신으로 페루에서 오랜 시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목했던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시스티나 경당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나올 때 아쉬운 탄성을 쏟아내던 군중들은 8일 오후 6시7분경(한국시간 5월 9일 새벽 1시7분경) 흰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환희에 휩싸였다. 이어 오후 7시12분 교황청 수석 부제 추기경인 도미니크 맘베르티 추기경이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 축복의 발코니에 나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는 새 교황을 가졌습니다”(Habemus Papam)라고 선포했고, 레오 14세 교황이 처음으로 대성당 중앙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레오 14세 교황 탄생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전한다.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4면

[새 교황 레오 14세] 새 교황은 누구인가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이다. 프레보스트 추기경은 5월 8일(로마 현지시간) 교황청 시스티나경당에서 열린 콘클라베 네 번째 투표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후 교황명으로 ‘레오 14세’를 택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 미국 추기경들 중 성 베드로의 후계자가 될 가장 큰 잠재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이끌게 된 레오 14세 교황은 누구인지 알아본다. 최초의 미국 출신 대통령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인 4월 25일, 이탈리아의 유력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는 프레보스트 추기경을 조명하며 “국제적이면서도 수줍음이 많고, 보수적인 동시에 진보적인 인물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라 레푸블리카의 이러한 분석처럼, 레오 14세 교황은 콘클라베에 들어설 당시부터 다른 추기경들과 폭넓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교황청 주교부 장관으로 활동해온 그의 이력은 예외였다. 레오 14세가 걸어온 삶의 여정과 성직자로서의 경력은 그를 자연스럽게 국제적인 인물로 성장하게 만든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은 1955년 9월 1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올해 만 69세다. 레오 14세 교황이 스스로 명확하게 말한 적은 없지만, 그는 흑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의 외할머니 루이스 바쿠이에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난 서인도제도 혼혈 흑인으로 알려졌다. 레오 14세 교황의 모계 가족은 20세기 초까지 흑인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크레센트에서 거주하다가 시카고로 이주했다. 교회법 전공하고, 페루에서 20년 넘게 활동 레오 14세 교황은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가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운영하는 빌라노바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77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소재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 입회해 수련기를 시작했다. 이후 1978년 9월 첫 서원, 1981년 8월 장엄 서원을 한 뒤 1982년에는 시카고 가톨릭 신학원에서 신학 학위를 받았다. 또한 수도회로부터 파견받아 로마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을 전공했다. 로마에서 체류하던 중 1982년 6월 19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학업을 계속 이어가 1984년에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1986년 페루 피우라주 출루카나스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1987년에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에서 지역 장상의 역할’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레오 14세 교황은 198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성소 책임자 겸 선교 책임자로 선임됐지만, 1988년 페루 트루히요 선교지로 파견돼 1999년 시카고에 있는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관구장으로 선출될 때까지 주로 페루에서 활동했다. 이어 2001년 열린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됐으며, 2007년 총회에서 연임됐다. 2013년 10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로 돌아온 레오 14세 교황은 양성 책임자 겸 관구장 대리로 봉직하던 중 2014년 11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서리로 임명돼 11월 7일 취임했다. 이어 12월 12일 과달루페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페루 북부 치클라요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주교품을 받았으며, 이듬해 9월 26일 치클라요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2020년 4월 15일에는 페루 카야오교구장 서리로도 임명돼 2021년 5월까지 재임했다. 레오 14세 교황이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선교사와 주교로서 페루에서 활동한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미국과 페루 시민권 모두를 가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레오 14세 교황은 2023년 1월 30일 교황청 주교부 장관 겸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대주교가 됐고 그해 9월 30일 추기경에 서임됐다. 레오 14세 교황은 교황청 주교부 장관 외에 복음화부의 첫복음화와 신설개별교회 부서, 신앙교리부, 동방교회부, 성직자부, 축성생활회와 사도생활단부, 문화교육부, 교회법부, 바티칸시국위원회 위원도 역임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2023년 5월 주교부 장관으로서 주교들의 역할에 대해 역설하며 특히 교회 일치를 증진할 의무를 강조했다. 교황은 “일치의 부족은 교회에 매우 고통스러운 상처를 준다”며 “교회의 분열과 양극화는 교회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주교들은 교회의 일치와 친교 증진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주교들은 하느님과 동료 주교들, 사제와 모든 하느님의 백성과 친밀해야 하고, 홀로 떨어져 있으려는 유혹에 약해지거나 사회나 교회에서 특정 수준을 정해 놓고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레오 14세 교황은 미국과 페루, 지역교회와 보편교회에서 다양한 역할과 문화를 체험하면서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에 능통하고, 라틴어와 독일어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을 지니고 있다. ■ 레오 14세 교황 약력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 출생 1977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입회 1978년 9월 첫 서원 1981년 8월 29일 장엄 서원 1982년 6월 19일 사제수품 1984년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석사학위 취득 1985~1986년 페루 피우라주 출루카나스에서 선교활동 1987년 교황청립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교회법 박사학위 취득 1988~1998년 페루 트루히요 선교지 파견 1999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장 선출 2001~2013년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총장 재임 2013년 10월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착한 의견의 성모 관구 양성 책임자 겸 관구장 대리 2014년 12월 12일 주교수품 2015년 9월 26일 페루 치클라요교구장 주교 임명 2020년 4월 15일 페루 카야오교구장 서리 임명 2023년 1월 30일 교황청 주교부 장관 겸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장 임명 2023년 9월 30일 추기경 서임 2025년 5월 8일 제267대 교황 선출

발행일 2025-05-18 제3442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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