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43년 군생활 마감한 6.25참전 마지막 용사 정육진 준장

입력일 2018-10-15 수정일 2018-10-15 발행일 1993-09-12 제 187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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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진급은 기적같은 선물”

전투중 만난 신부 인도로 영세
군종신부들 뒷바라지에 헌신
“42년8개월이란 짧지 않은 세월동안 대과 없이 군생활을 끝마칠 수 있었고 남부럽지 않은 성가정을 이룰 수 있어서 주님께 감사합니다”

6ㆍ25참전 마지막 용사로 만 42년8개월의 최장수 현역 기록을 세우고 8월31일 전역한 육군 준장 정육진(바오로·60세·전 육군 3사관 학교 교수)장군은 기적과 같이 자신의 삶을 안배해주신 하느님께 모든 영광을 돌렸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당시 서울 한성중학교 5학년이던 정 장군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학도병으로 입대, 단 1주일의 군사교육을 받고 최전방 소총병으로 참전했다.

육군 제8사단에 배속, 강원도 황성 서하리 전투에 투입된 그는 종군신부로 있던 김이환 신부의 깊은 신앙심과 고매한 인품에 끌려 가톨릭에 입교하고 51년 6월10일 성신강림대축일 전투 중에 바오로를 세례명으로 세례성사를 받았다.

영세 후 그 유명한 김일성 고지 탈환작전에 참전한 그는 치열한 격전에서 8사단 2개 연대병력이 산화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1953년 8월 갑종간부 57기로 임관한 그는 일선 소대장과 군수 작전 정훈장교를 거쳐 국방 장학생으로 단국대 법대를 졸업한 후 미 육군 특수전학교에 유학하기도 했다.

정육진 장군은 65년 10월 맹호부대에 정훈장교로 배속(당시 대위)월남전에 참전 외신기자들에게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월남인들에 대한 한국군의 인도적 선무작전을 소개했다. 이 내용은 런던타임지 1면에 ‘고보이 전투의 교훈’이란 머리기사를 보도, 4백50여 명의 사이공 주재 외신기자들이 한국군의 활약상을 경쟁적으로 취재하도록 만들었으며 그 공로로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대만 유학 후 77년부터 줄곧 육군 제3사관학교에서 ‘국민윤리’와 ‘현대 이데올로기론’ ‘공산주의 전략전술론’을 강의해온 정 장군은 10여 년 간 3사관 학교내 성 바실리오 본당 사목 회장직을 맡아오면서 군종장교 후보생으로 입대한 신임 군종신부들의 뒷바라지에 혼신을 다했다.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어려움에 처했더라도 감사하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삶의 지표로 삶고 한평생 군복무에 충실해온 정육진 준장은 생각지도 못한 장군 진급에 “오직 하느님께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올 봄 국제 군인 성지순례에 참가, 루르드에서 남다른 신앙체험을 했다는 정 장군은 “3사관 학교 교수직이란 보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장군 진급이 성사된 것은 바로 루르드의 기적”이라며 기뻐하고 “58세 되는 안사람 생일인 8월30일에 진급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하느님이 주신 큰 선물인 것 같다”며 감사해 했다.

육군 준장으로 진급 후 제일 먼저 고향인 충남 천안군 덕소성당을 찾아 성체조배를 한 정육진 장군은 “장군 진급보다 매스컴의 보도로 미국으로 유학간 후 소식이 끊긴 대자 오영준씨와 재회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쁘다”고 흐뭇해했다.

“교회가 기회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고 싶다”는 정육진 장군은 부인 김영옥씨(젬마)와의 사이에 해경(로사), 해찬(사베리오), 해동(안나)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 해찬씨는 현재 미국 리하이 대학에서 반도체 부문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