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졸업은 한 프로그램의 완료이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의 입문이다. 프로그램의 매듭을 묶으며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계획한다. 따라서 졸업은 과거 이력과 미래 청사진이 현재 속에 녹아있는 순간이다. 졸업하는 순간은 과거의 미담과 회한이 교차하므로 엄숙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와 다짐 속에서 가슴 벅차기도 하다. 졸업식의 피날레인 졸업가 속에도 엄숙과 다짐이 잘 나타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다양한 버전의 졸업가가 등장하기도 했으나, 졸업가 중의 대표선수는 윤석중(尹石重) 작사, 정순철(鄭順哲) 작곡의 동요인 ‘졸업식(卒業式) 노래’다. 1, 2, 3절로 이루어진 곡을 재학생, 졸업생, 다함께 등으로 나누어 부르면서, 송사와 답사에서 흘렸던 눈물을 다시 한번 분출시킨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1절)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2절)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3절)
1절에서 재학생이 떠나는 언니들을 축하하고, 2절에서 졸업생이 아름다운 다짐을 한다. 3절에서는 서로를 격려하며 재학생과 졸업생이 공동의 다짐을 결의한다. 내용도 논리도 흐름도 모두 완벽하여 졸업가로는 가히 ‘클래식’ 급이다. 그런데 졸업가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다시 만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잘 있거라. 또 보자”, “다시 만날 그날”,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등에서 떠나는 이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한다. 새로운 만남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재상봉 약속은 삶의 동력이 되고 희망의 불씨가 된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박해의 칼에 쓰러지면서 이와 같은 거룩한 희망의 불씨를 유산으로 남겼다. 그 한 예가 김대건 성인이 쓴 ‘회유문’이다. ‘회유문’은 전문이 한글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회유문’이라는 글 제목의 의미는 廻諭文(돌려가며 읽어서 깨우치도록 하는 글), 懷柔文(좋은 말과 태도로 구슬리고 달래는 글), 誨諭文(가르쳐서 깨우치도록 하는 글) 등으로 풀 수 있다. 이 글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성인께서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직전에 조선천주교회 교인들에게 남긴 유언장이다. 성인께서는 ‘회유문’ 말미에, “할 말이 무수하되 거처가 타당치 못하여 못 한다. 모든 신자들은 천국에 만나 영원히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적으며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담대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추신에 해당하는 ‘정표’에서도 당신의 소회를 천국상봉으로 마무리한다. “한 몸같이 주를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서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 천만 바란다.” 긴 신학생 시절에 이은 짧은 사제의 삶을 졸업하며, 성인께서는 진정한 행복은 “우리를 내신 임자”를 천국에서 만나 뵙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학생들은 정든 교정을 떠날 때 졸업가를 부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나도 인생의 프로그램을 졸업할 때 김대건 성인의 유언을 되새기며 천국 재상봉을 희망해 본다. 우리 모두 ‘천주의 착실한 군사’로 살다가 천국에서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