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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시선]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 이대로 신부

이대로 레오 신부(가톨릭신문 기획주간),
입력일 2023-10-18 수정일 2023-10-18 발행일 2023-10-22 제 3364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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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계 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단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다소 생소한 가수 김만준이 부른 ‘모모’라는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사실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을 읽은 이후이다. 프랑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을 곡의 제목으로 정했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거기다 1975년 소설 출판 후 3년 만에 나온 곡인데 사연인 즉, 시련을 겪은 작곡가는 이 책을 읽고 그 영감으로 곡을 썼고 격랑의 시대와 맞물린 노랫말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곡을 들을 때마다 당사자의 현실과 소설의 장면이 어우러지며 적잖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곡의 모티브가 된 소설은 등장인물부터 남다르다. 독일 수용소를 경험했던 유다인이면서 창녀 출신이자 그들의 버려진 자식들을 돌보는 로자 아줌마와 창녀의 자식이며 흑인 소년이자 무슬림의 이름을 가진 모모가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주요 줄거리이다. 이 외에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 자체가 온갖 이질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성별, 인종, 민족, 계층, 종교, 법치 등에서 프랑스뿐 아니라 일반 사회의 주류 하고도 전혀 접점이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소외계층이자 각자 또한 전혀 다른 성분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갈 때 그들은 무엇 때문에 행복을 떠올릴 수 있을까? 모모는 이웃이자 그에게 선생과도 같은 하밀 할아버지에게 질문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던진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제국주의, 전체주의, 냉전시대 즉, 식민사관, 민족, 이념으로 인간을 구분하던 시대를 살아온 작가의 시선은 세상의 관념에 의해 구획된 인간상을 거부하고 순수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려 한다. 그렇기에 혈연이라는 구분마저 넘어서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대하는 모모의 모습은 지독한 슬픔이 아닌 순수함으로 받아들이게 한다.(이 대목은 소설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소설은 모모의 회상과 함께 독백으로 전개된다. 로자 아줌마의 죽음을 경험한 이후 모모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랑’은 삶의 화두이다. 때론 사제로서 강론이나 한 말씀 해야 하는 순간 손쉽게 남발(?)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에게 그 사랑의 의미가 무디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잠시 놓쳤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본다. 세상의 관념을 내면화하여 쉽사리 사람됨을 판단해버렸던 나에겐 적잖은 경종을 울렸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떠한가? 내 자식만, 내 소속만, 내 피부 색깔만 중요시할 때, 심지어 “이념이 중요하다”할 때 드러나는 교육, 정치, 사회의 민낯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와 전통을 가진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랑이 으뜸이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마디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예수님 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가까운 어느 때 모모가 제시한 답변마저도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가? 그럼에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이대로 레오 신부(가톨릭신문 기획주간),